[김중기의 필름통] 방송국 내 미투를 고발하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스틸컷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스틸컷

"그는 두 번이나 나를 끌어안았어요. 그리고 키스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물었어요. 계약이 언제 끝나지?"

감독(제이 로치)은 미국 최대 방송사의 CEO를 한 방에 무너뜨린 세 여인의 통쾌하면서 용기 있는 결단을 보여주는 영화다.

직장 내 최고 실권자이면서, 나의 목숨을 쥐고 있는 직장 상사. 알량한 밥줄을 무기로 여인들을 농락한 그의 이름은 미국 폭스뉴스 회장 겸 CEO 로저 에일스(존 리스고)다. 폭스 뉴스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뛰어난 전략으로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폭스뉴스를 거대 TV 채널로 키운 인물이다.

2016년 미국 대선 국면. 후보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설전을 벌이는 간판 앵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 그녀는 트럼프와 '맞장'도 서슴지 않으며 화제의 중심에 선다. 한편 동료 앵커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계약이 해지된 후 로저 에일스를 성희롱으로 고소한다.

야심 있는 폭스의 새내기 케일라(마고 로비) 또한 묘하게 흐르는 직장 분위기와 회장의 무리한 요구로 충격을 감추지 못한다.

'밤쉘'(Bombshell)은 깜짝 놀랄 소식을 뜻하는 말이다. 속된 표현으로는 예쁘고 늘씬한 여인을 뜻하기도 한다. 2차대전 중에 폭탄에 비키니 여성을 그려 넣은 것에서 유래됐다는 말도 있다.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라는 한국식 부제를 붙였지만 '밤쉘'은 이 두 가지 뜻을 잘 드러낸 제목이다. 뉴스를 생산하는 방송국과 그 속의 여자 앵커, 그리고 그들의 놀라운 행동을 다의적으로 내포하는 제목이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스틸컷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스틸컷

로저 에일스는 제왕적 인물이다. TV 방송국은 그의 일터이자, 위안의 장소이기도 했다. 계약을 미끼로, 앵커 발탁을 미끼로 여성들의 노출을 조성한다. "치미가 길다, 치마를 올려 다리를 보여라.", "내가 널 키워줄 수 있어. 그렇지만 너도 뭔가를 해줘야 해. 충성심이지. 어떤 방식으로 충성을 다할지 고민해봐!"

불만은 있지만, 아무도 그의 질주를 막을 수 없었다. 그레천 칼슨은 그런 면에서 선구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2005년 CBS에서 폭스뉴스로 이직했다. 오후 프로그램 '더 리얼 스토리'를 2016년까지 진행하고, 그해 6월 폭스뉴스와 계약이 종료된다. 그리고 며칠 뒤 로저 에일스를 성희롱으로 고소한다.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촉발된 것은 2017년 미국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이 세상에 밝혀지면서부터다. 이 사건은 그 보다 1년 앞서 진행된 일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실제 인물들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대선 TV토론에서 당시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와 설전을 벌이는 장면 등은 실제 방송과 연출 부분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따다 붙였고, 당시 켈리와 닮기 위해 샤를리즈 테론은 3D 프린터로 만든 코마개를 끼고 열연한다. 덕분에 이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을 받기도 했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케일라는 가상 캐릭터. 앵커에 대한 열정이 넘치지만 회장의 요구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하는 모든 여성의 현실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당시 로저 에일스와의 소송에 참여한 여직원은 모두 23명. 주인공 칼슨과 켈리 외 21명을 그녀가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로저 에일스 역을 맡은 배우는 존 리스고. 실베스타 스탤론의 '클리프 행어'에서 악당 역으로 잘 알려진 그는 본래 얼굴을 몰라볼 정도로 특수 분장과 뚱뚱한 몸으로 열연한다. 로저의 걸음걸이, 표정 등은 실제 로저의 지인들을 통해 분석했다고 한다.

이 실화는 TV 7부작 시리즈 '더 라우디스트 보이스 인 더 룸'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드라마에서는 러셀 크로우가 로저 에일스를, 나오미 왓츠가 그레천 칼슨 역을 맡았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스틸컷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스틸컷

영화는 TV라는 시각적 매체가 얼마나 여성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지도 잘 묘사하고 있다. 짧은 원피스만 제공되고, 다리가 잘 보이도록 유리 탁자를 비치하는 등 TV의 오랜 관행들을 고발하고 있다. 영화 '빅쇼트'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각본가 찰스 랜돌프의 사회성 짙은 작가 의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결국 로저 에일스가 물러나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이런 부조리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미디어는 여전히 남성들의 전유물이고, 여성혐오 발언을 일삼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로저 에일스를 해고하고 그 자리에 앉았던 언론계의 거물 루퍼트 머독은 "오! 도널드!"라며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이 소송으로 피해자들이 받은 금액은 5천만달러. 그러나 로저 에일스가 물러나는 조건으로 머독으로부터 받은 위로금이 6천500만달러다.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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