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나의 나라', 조선 건국을 청춘들의 관점으로 보면

끝없이 변주해온 조선건국 사극, ‘나의 나라’의 관점은

'나의 나라' 포스터. JTBC '나의 나라' 포스터. JTBC

조선 건국은 사극의 단골소재다. 그런 점에서 최근 방영하고 있는 JTBC '나의 나라'는 소재적 약점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막상 뚜껑을 연 '나의 나라'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어떤 점이 이런 반응을 만든 걸까.

◆무수히 많았던 조선 건국 사극, 그 이유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무려 159부작으로 방영한 KBS '용의 눈물'은 최고시청률 49.6%를 기록해 이른바 정통사극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용의 눈물'이 1년 반에 걸쳐 다양한 이야기를 몰입도 있게 끌어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고려 말 조선 초 역사적 사실에 담긴 드라마틱한 소재에 있다.

구세력의 적폐를 깨치고 새 나라를 세운다는 웅장한 목표가 담겨 있고, 그 과정에서 이성계라는 인물의 위화도 회군, 그 과정에서 부딪치는 최영 장군과의 일전, 왕좌에 앉은 태조와 야심가인 아들 이방원의 팽팽한 대결구도까지 역사 자체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용의 눈물'의 성공 이후, 조선 건국의 역사는 사극의 단골소재가 됐다. 특히 대선이나 총선 같은 정치적 이슈들과 맞물려 조선 건국의 사극은 당대의 대중들이 원하는 리더상이나, 세상에 대한 갈망을 담아내는 그릇처럼 등장했다.

예를 들어 2014년 방영한 KBS '정도전'은 조선 건국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왕보다는 조선의 시스템을 만들어낸 정도전에 집중했다. 이것은 당시 대선으로 대통령이 바뀌어도 그다지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이 투영된 것이었다. 세상은 리더 한 사람에 의해 바뀌는 게 아니라, 법 제도 같은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됨으로서 바뀔 수 있다는 의식이 '정도전'에는 담겨 있었다.

2015년 방영한 SBS '육룡이 나르샤'는 조선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단지 이성계나 이방원, 정도전 같은 역사적 인물들 만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걸 분이(신세경 분), 땅새(변요한 분), 무휼(윤균상 분) 등 가상의 민초 조력자들을 더해 그려냈다. 촛불집회 등을 통해 부각된 시민의식 영향으로, 실제 역사의 주인공은 그 현장에 있었던 무수한 민초들이라는 관점이 투영된 것이다.

이처럼 사극에서 조선 건국 이야기가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도 시청자들 사랑을 받았던 건, 그 특수한 역사적 시점이 가진 서사의 매력 자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때 그 때 달라진 대중들의 정서나 관점들로 재해석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9년 다시 조선 건국을 다루는 JTBC '나의 나라'는 어떤 관점을 담았을까.

'나의 나라' 이성계 역 김영철. JTBC '나의 나라' 이성계 역 김영철. JTBC
'나의 나라' 이방원 역 장혁. JTBC '나의 나라' 이방원 역 장혁. JTBC

◆청춘들의 절망과 야망, 생존이 투영된 '나의 나라'

'나의 나라'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조선이라는 새 나라에 대한 욕망이 저마다 다른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거기에는 '육룡이 나르샤'처럼 역사적 인물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이 포진해 저마다 각가 꿈꾸는 나라에 대한 신념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위화도 회군을 해 결국 왕좌를 차지하는 이성계(김영철 분)나 그의 가장 강력한 오른팔이면서 동시에 그를 두렵게까지 만드는 야망을 가진 이방원(장혁 분)에게 조선은 권력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할 목표가 된다. 따라서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이방원이 앞장서지만, 그것은 훗날 역사가 말해주듯이 부자 간, 또 왕자들 간에 벌어지는 권력 투쟁으로 이어진다. 국가라는 대의가 아니라 자신이 왕좌를 차지하는 권력의 의미로서 그들은 '나의 나라'라는 표현을 쓴다.

'나의 나라' 스틸컷. JTBC '나의 나라' 스틸컷. JTBC

하지만 이 사극의 실질적인 주인공들이자 민초로 등장하는 서휘(양세종 분), 남선호(우도환 분) 그리고 한희재(김설현 분)이 저마다 꿈꾸는 '나의 나라'는 그와 다르다. 이들 청춘들은 저마다 날개가 꺾여있다. 고려제일검으로 불렸으나 억울한 누명을 쓴 채 팽형을 당한 아버지 때문에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막혀 버린 서휘, 서얼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는 자결하고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야 하는 남선호. 그리고 고려의 무능을 벽서로 써 붙이고 다니는 한희재가 그렇다.

이들은 모두 새로운 나라를 희구하지만 그건 권력에 대한 야심이 아니다. "밥이 나라"라며 "쌀이 뒷간에서 나면 뒷간이 내 나라"라고 말하는 서휘가 꿈꾸는 나라는 생계 걱정하지 않게 해주는 나라이고, 서얼 팔자가 지긋지긋한 남선호에겐 그 팔자를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나라다. 한희재는 기생집에서 정보장사를 하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결국 권력에 빌붙어 살아가는 거라는 걸 깨닫고 스스로 힘을 갖겠다 마음먹는다. 그에게 나라란 종속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삶을 의미하는 셈이다.

결국 '나의 나라'가 조선 건국 이야기에 투영한 건 지금의 청춘들의 정서다. 물론 태생적으로 많은 걸 가진 청춘들은 이방원처럼 권력의 야망을 꿈꾸겠지만, 그렇지 못한 청춘들은 어떻게든 서휘나 남선호, 한희재처럼 저마다 꿈꾸는 나라의 의미가 다를 것이다. 이처럼 앞길이 막혀버린 청춘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나의 나라'가 그리는 조선 건국의 이야기는 현재적 의미와 공감을 갖게 된다.

'나의 나라'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주역 배우. 왼쪽부터 우도환, 김설현, 양세종. JTBC '나의 나라'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주역 배우. 왼쪽부터 우도환, 김설현, 양세종. JTBC

◆역사와 상상력의 균형으로서의 '나의 나라'

'나의 나라'는 최근 들어 사극이 역사를 벗어버리고 심지어 판타지로 흘러가는 경향에서 벗어난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최근 들어 KBS '조선로코-녹두전'이나 MBC '신입사관 구해령', JTBC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처럼 로맨스 판타지에 빠져버린 사극들이 쏟아져 나온 상황에, 역사의 진중함과 상상력의 확장을 적절히 균형 있게 잡아낸 '나의 나라'는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면이 있다.

한때 사극이 역사를 벗고 상상력을 더하는 것이 하나의 시대적 조류처럼 여겨진 적 있었다. 그래서 정통사극에서 퓨전사극으로 또 판타지 사극이나 장르 사극, 팩션으로 진화해왔다. 하지만 이처럼 역사를 벗어버리자 사극 특유의 진중함이 사라지면서 힘이 빠져버린 것도 사실이다. 특히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사극들은 사극이라기보다는 조선 배경의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나의 나라'는 이미 '육룡이 나르샤'가 시도한 것처럼 인물 구성 면에서 역사와 상상력의 적절한 균형을 만들었다. 그래서 조선을 세운 역사적 인물들의 묵직한 이야기를 그려가면서도 그 안에서 상상력으로 덧붙인 새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역사와 상상력 사이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이미 다 알고 있는 팩트임에도 색다른 스토리가 시너지를 만든 것. '나의 나라'가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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