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삶의 질 낮추는 불안·우울이 나를 생존케 하는 역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일상의 변화와 교류 단절로 무력감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현상을 말하는 '코로나 블루'. 정신 장애는 이제 개인적 경험이 원인이 될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사회적 문제가 야기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그러나 신간 '이기적 감정'의 저자이자 진화정신의학의 선구자인 랜돌프 M. 네스는 코로나 블루처럼 정신 장애가 유행하고 있다는 식의 접근은 문제 해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진화적 관점에서는 개인을 개인으로 이해하고 개개인의 경험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감정의 작동 매커니즘 이해하기"세계적으로 매일 3억5천만명이 기분장애로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며 상당수는 불행하게도 삶을 중단해버린다. 미국에서만 해도 우울증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2천100억 달러로 추산된다."(19쪽)실상이 이런데도 우리는 '인간은 왜 정신병에 걸리는가'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많지 않다. 지난 50년간 정신 장애에 관한 진단과 치료에 관한 연구에는 괄목할 만한 성과가 없었다. 정신분석학은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했고, 기대했던 각종 질병의 유전자 변이도 발견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간이 나쁜 감정을 느끼는 근거를 알아내지 못했다. 이제야 우리는 '접근법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신간 '이기적 감정'은 기존의 방식을 대신해 진화의학을 동원해 감정의 정상적인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평생 환자를 치료한 의사이자 진화의학의 연구자로서 진화의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학자다. 저자는 "진화의학은 바로 현실에 적용하는 치료법이 아니라, 진화 생물학의 원리를 활용해 의학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저자는 '이기적 감정'에서 진화 생물학을 바탕으로 감정과 정신질환에 집중해 '정신장애가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불안과 우울, 중독, 거식증, 자폐 등을 일으키는 유전자들은 왜 여전히 남아 있을까?'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책은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는 인간의 정신장애에 관해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2부는 부정적의 감정들이 진화적으로 어떤 유용성을 가지는지 밝힌다. 3부는 개인의 감정과 행동, 도덕적 행동과 사회적 선택, 무의식적 억압과 인지 왜곡이 가진 의미에 관해 진화적인 논점을 펼치고 4부는 다양한 정신장애, 특히 현대문명이 새롭게 만들어 낸 병에 대해 다룬다.◆나쁜 감정은 생존을 위한 자연선택불안, 우울, 슬픔, 수치심, 질투 등의 나쁜 감정은 인간의 삶의 질을 낮추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진화 과정에서 이러한 감정들은 인간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인간이 생존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나쁜 감정을 인간이 느끼게끔 자연선택한 결과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나쁜 감정이 당신을 보호하는 데 쓸모가 있어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의학에서는 통증, 기침과 같은 증상을 몸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로 간주한다. 그러나 정신의학에서는 불안, 우울 같은 증상을 그 자체로 문제로 바라보는 잘못된 시선을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화재 감지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증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질병을 키우게 된다. 즉 모든 감정에는 의미(신호)가 있으며, 우리는 감정의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인간이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울러 어떠한 감정도 적당해야 알맞다. 우리는 대개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고 긍정적인 감정을 적게 느낄 때 정신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을 적게 느끼고 긍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는 경우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불안이 부족한 과소공포증 환자는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고, 질투심이 전혀 없으면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낮아진다. 슬픔을 전혀 못 느끼는 사람은 똑같은 실수나 잘못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커진다.불안 등 나쁜 감정의 진화적 기원과 기능을 우리가 이해한다고 해서 특별한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고 나면 확실히 치료에도 변화가 생긴다. 저자는 환자를 치료할 때 "불안은 유용한 반응인데 종종 지나치게 커지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하자 환자가 자신이 정상적인 사람으로 대우받고 자신감을 얻는 느낌을 받은 경험을 언급한다. 어떤 사람은 기분 저하나 우울 등의 증상이 유용하다는 점을 알고 난 뒤 우울증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그만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526쪽, 2만2천원.
2020-08-27 11:11:53
케인스라면 어떤 처방?…「위대한 경제학자들…」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대담한 제안 린다 유 지음·안세민 옮김/청림출판 펴냄 지구촌은 현재 코로나 팬데믹으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기존의 경제상식을 뒤엎는 변화가 일어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혼란한 상황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의 가파른 성장은 국제무역과 투자의 급격한 확대로 이루어졌다. 달리 말하면 각국의 경제 번영이 세계화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말이다. 경제 세계화란 WTO 체제 아래 거의 모든 나라의 수출과 수입을 관장하는 국제 무역 시스템이 부수적 지역 간,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으로 분화됐다는 점을 의미한다.국내로 눈을 돌리면, 1997년 IMF라는 혹독한 시련을 시작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대침체기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라는 변수에 의해 경제상황은 위험한 롤러코스터 현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전반적인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그렇다면 우리 시대 경제, 무엇이 문제인가?첫 화두는 눈앞에 다가온 대량 실업이다. 올 초부터 덮친 코로나19 사태는 실업률의 고공행진으로 인해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심각한 일자리 위기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재난 상황에 고용촉진과 성장세 회복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두 번째는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이다. 우리나라는 OECD 35개국 중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각하다. 세 번째는 저성장의 미래이다. 가뜩이나 생산성 저하가 각국의 난제로 대두되고 있는 데 또 팬데믹으로 인해 저성장의 위험성이 코앞에 닥쳐왔다.책은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불러낸 12명의 뛰어난 경제학자들의 삶과 경제이론을 소개하고, 그들의 통찰력을 통해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제문제의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아담 스미스부터 앨프레드 마셜까지현재 영국과 미국은 서비스부문이 국내총생산의 3/4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경제구조는 금융위기 때 한 부문만 비대해진 경제의 단점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근대 경제학의 시조랄 수 있는 아담 스미스는 시장의 힘이 작동하는 데 정책 담당자들이 개입하는 것을 회의적으로 봤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경제 구조를 시장 매커니즘의 결과로 보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자신들의 이기심에 근거해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구매하는 시장의 특성을 강조했다.무역에서 비교우위설을 주창한 데이비드 리카도는 공리주의적 입장에 서서 영국과 미국의 탈공업화가 경험한 지속적인 무역적자를 꼬집고 있다. 그에 따르면 리쇼어링과 재공업화가 그의 이론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한 무역정책임을 밝히고 있다.카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에 비춰볼 때 현재 중국 경제가 성장을 지속시키려면 일련의 개혁이 필요하다. 과연 중국 공산당은 공산주의적 정치 제도와 국가 소유제의 유지를 바꿀 수 있을까?앨프레드 마셜은 사회복지를 증진하고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소득 불평등이 경기회복을 가로막는 요인임을 천명하고 있다.◆어빙 피셔부터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까지1930년대 대공황기를 경험한 어빙 피셔는 경제에서 가격과 상품 수량을 계산하는 수리경제학을 도입, 경제학에서 수학을 적용해 경제지표의 흐름에 대한 큰 진전을 보였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불황일수록 정부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고집했고, 스스로도 "모든 경제 문제는 해결책이 있다"는 낙관론을 펴기도 했다. 조지프 슘페터는 혁신만이 경제 성장의 엔진일 수 있다면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혁신은 '창조적 파괴의 영속적 강풍'으로서 신기술이 경제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케인스 혁명을 부정하면서 금리가 지나치게 낮게 유지되면 통화정책이 악성 투자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빚투'(빚내서 투자함)와 '묻지마 주식투자'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조앤 로빈슨부터 로버트 솔로까지조앤 로빈슨은 시장이 불완전할 때는 고용주가 시장 지배력을 갖고서 노동자에게 더 적은 금액을 지급함으로써 그들을 착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밀턴 프리드먼은 오늘날 일상적 경제 용어가 된 '양적 완화'와 '포워드 가이던스'(중앙은행이 미래 금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발표하는 것 '마이너스 금리' '거시 건정성 정책'과 같은 경제 용어를 등장시키면서 새로운 통화정책의 도구를 만들어 냈다. 더글러스 노스는 경제적 불황이나 침체의 원인 파악을 위해 정치학, 사회학, 역사를 도입한 학자로 국가가 번영할수록 경제 성장 속도를 필연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밝혀냈다. 그는 결국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도의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일침했고, 오늘날 국가가 경제적으로 실패한 이유를 착취적 경제 제도가 국민들에게 저축, 투자, 혁신을 하려는 동기를 마련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로버트 솔로는 노동과 자본이 경제에 더해질 때 경제성장이 발생한다면서 경제성장은 기술진보가 있을 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국가에 걸쳐 급격한 생산증가의 시기와 현저한 기술진보의 시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증명, 저성장 딜레마의 해결책은 투자 활성화임을 주장했다.춘추시대 초기 제나라 재상 관중(管仲)은 "국민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고, 국민이 싫은 것을 하지 않으며, 국민이 욕망하는 것을 최대한 만족시켜주는 정책"을 최상의 경제정책을 삼았고 그 결과 제나라 환공을 춘추시대 첫 패권자로 만들었다. 관중과 같은 경제 전문가가 절실할 때이다. 504쪽, 2만5천원
2020-08-27 11:10:50
[책] 누구나 천연광천수를 마시며 살 수 있을까?
'모든 국민이 천연광천수를 마시며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마시고 있는 물의 정체는 무엇이고, 좋은 물이란 무엇이며, 어떤 물을 마셔야 하는지에 대해 조사한 탐사보고서이다. 수돗물의 역사부터 우리의 물 문화를 왜곡시킨 일제의 물 정책, 현재 우리의 식수와 생수 현황까지 역사, 지리, 환경, 생태를 넘나들며 몸 건강의 문제를 넘어선 물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이 책은 또 언론인이자 과학도 출신인 저자가 지난 10여 년간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세계 각지를 누비며 다양한 자료와 관련자를 섭렵해 일궈낸 지난한 여정의 기록이자 그 결과로 도출해낸 천연광천수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우리가 마시는 물, 괜찮은가?우리가 마시고 있는 물은 크게 4가지이다. 수돗물, 정수기 물, 사서 마시는 생수(먹는 샘물), 약수터의 약수 등이다. 저자는 이 물이 어떤 물인지, 과연 마셔도 괜찮은 물인지 차례로 점검한다. 먼저 수돗물은 염소로 소독한 물이고 화학 물질이 가득한 물이다. 우리 국민들의 95%가 수돗물을 믿지 못해서 그대로 마시지 않고 정수기로 거르거나 끓여 마시는 실정이다.그렇다면 수돗물을 필터로 거른 정수기 물은 괜찮을까? 수돗물은 끓이거나 걸러도 염소를 비롯한 화학 물질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 특히 역삼투압 방식의 정수기로 정수한 물은 수돗물에 그나마 남아 있는 무기질을 완전히 걸러버린, 수돗물보다도 더 좋지 않은 죽은 물이다.미네랄이 살아 있는 천연광천수라고 광고하는 마트에서 파는 생수는 어떨까? 우리나라의 먹는 물 관리법으로는 생수에 일정량 이상의 미네랄이 있으면 판매가 불가능하다. 결국 고미네랄 천연광천수는 땅속에 고이 모셔둘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생수는 알고 보면 좋은 물이 아니라 해당 회사의 이미지 마케팅 때문에 소비자들이 이유 없이 비싸게 사 먹고 있는 셈이다.약수터의 물은 어떤가? 많은 약숫물은 관리 소홀과 부주의로 인해 오염된 물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으며, 병균이 아닌 건강을 위협하지 않는 일반 세균과 대장균 때문에 폐쇄된 약수터도 수두룩하다.따라서 저자는 수돗물, 정수기 물, 약수 등 모두 먹을 만한 물이 아니라고 말한다.◆어떤 물을 마셔야 할까?저자는 깨끗하고 미네랄이 풍부한 약알칼리성 '천연광천수'가 좋은 물이라고 말한다. 지표를 흐르던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나쁜 성분은 걸러지고 흙과 돌이 내준 미네랄을 녹여 머금은 게 바로 천연광천수다. 특히 우리나라의 지하 천연광천수는 pH 7.4 안팎의 약알칼리성인데, 7.4라는 숫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신비롭다. 건강한 인체 혈액이 바로 pH7.4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증거이며 동시에 우리가 인공으로 거르거나 무언가를 첨가한 물이 아닌 자연의 물 천연광천수를 마셔야 한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천연광천수, 어디에 있나?우리가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천연광천수는 주위 곳곳에 있다. 다름 아닌 민방위 비상급수시설이다. 40여 년 전, 전쟁에 대비해 준비해둔 비상급수시설이 현재에도 6천여 개나 된다. 이 가운데 당장 먹는 물 공급에 적합한 시설만도 2천600개나 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좋은 천연광천수를 곁에 두고도 아무도 여기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렇게 숨겨진 민방위 비상급수시설의 물을 먹는 물로 활용하는 방안부터 천연광천수 샘을 만들고 전국 곳곳의 유서 깊은 우물을 복원하는 등 물의 나라로 가기 위한 5대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그에 필요한 구체적인 예산까지 제시한다. 384쪽, 2만원. ◆저자 최재왕은?대가야의 도읍지 고령에서 태어나 연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매일신문사에 입사해 25년 간 정치, 경제, 사회, 문화부 등을 두루 거쳤으며, 대구신문을 3년 경영했다.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부터 물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왔다.
2020-08-27 11:09:37
교주경악전서(校註景岳全書)
교주경악전서(校註景岳全書) 상·하·부록/ 권삼수 편수 / 장계출판사 펴냄 교주경악전서(校註景岳全書)는 중국 명나라 때 장개빈이 쓴 의학서 '경악전서'(景岳全書)의 여러 판본에 나오는 오기(誤記)와 와전(訛傳)을 바로잡고, 어려운 어휘를 쉬운 말로 풀이한 책이다. 64권의 경악전서를 상·하로 나누고, 부록을 더해 3권으로 편찬했다. 권삼수 편수자는 "경악전서 여러 판본에서 병리 치료 등에 대한 오자가 많은 것을 발견했다. 원문의 해석과 달리 질병에 대한 치료방법이 다르게 된다면 원작자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이 작업을 시작했다"면서 "이를 완성하는데 장장 2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경악전서는 어떤 책?경악전서는 명나라의 명의이자 의학 이론가인 장개빈(1563~1640년)이 1638년에 쓴 의학서이다. 중국의학 이론과 임상에서 지도성과 실용성을 인정받은 의서로 의론(醫論)·진단(診斷)·본초(本草)·방제(方劑)·임상각과(臨床各科) 등을 두루 망라하고 있다. 음양·표리·허실·한열·기미 등 중국 의학 이론상의 문제를 다룬 전충록(傳忠錄)을 비롯해 맥법과 맥의의 정화를 논술한 맥신장(脈神章), 상한온병의 전변과 치료를 다룬 상한전(傷寒典), 내과 잡병과 눈·귀·코·인후·치아 등의 질병을 다룬 잡증모(雜證謨), 부인병을 다룬 부인규(婦人規), 소아질환에 대한 소아칙(小兒則), 천연두 치료에 대한 두진전(痘疹詮), 외과질환에 대한 외과검(外科鈐) 등 총 팔문(八門) 64권으로 되어 있다.장개빈은 온보학파(溫補學派)의 대표인물로, 이 책에서 사람의 생기(生氣)는 양(陽)이 주가 되는데, 양은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우며, 한번 잃으면 회복하기 어려우니 온보하는 것이 양생과 치병(治病)에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경악전서에 나오는 의론(醫論)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조선시대 의학서 '의문보감'(醫門寶鑑), '의감중마'(醫鑑重磨), '방약합편'(方藥合編),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청강의감'(晴崗醫鑑) 등의 실용의학서에도 이 책의 내용이 많이 인용되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아버지 조헌영의 통속한의학원론(通俗漢醫學原論)도 경악전서의 소개서이고 해설판이다. ◆10여 판본 일일이 대조·상세 주석 달아 읽기 편해경악전서는 명나라 말기에 저술됐지만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건국되는 혼란기여서 출판되지 못하다가 장개빈이 죽은 지 60년 후 그의 외손자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1700년에 출판된 경악전서는 이후 무려 50여 판이 속간됐다. 따라서 후학들이 편집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글자가 오식되거나 해석을 달리해 원본의 의도와 다른 의미의 내용으로 된 책이 많았다.저자는 이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어려운 자구나 어휘는 쉽게 풀이하기 위해 20년 전부터 이 작업을 시작했다. 경희대 도서관의 왕본(王本), 동국대 도서관의 강본(江本), 계명대 동산도서관의 가본(賈本), 안동대 도서관의 여본(藜本) 등 10여 판본에서 의문나는 부분을 일일이 대조하는 한편 200여 권의 인용원서를 교증하여 확인했다.새로 출간된 교주경악전서에는 이런 오기된 부분을 바로잡았고, 해석이 어려운 자구나 어휘를 설명하는 주석도 1만 여개나 달려 있다.또 수 차례의 교정으로 어느 판본보다 원문에 충실했다. 원본과 다른 문구의 오식이 있다면 이를 발견한 이에게 한 글자에 1만원의 보상금을 주겠다고 공지할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저자는 "이 책이 한의학 연구가에게는 지침서로, 한의학 입문자에게는 교과서가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상·하·부록(2천272쪽), 18만원. ◆편수자 권삼수는1941 포항 태생인 저자는 1983년 한악업사로 출발해 경북한약협회 총회의장, 대구경북한약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한약협회 학술위원회 위원장이다. 저서로 '대한한약협회백년사', '한문한자편람'(漢文漢字便覽), '동의험방속찬'(東醫驗方續纂) 등이 있다.
2020-08-20 14:51:04
[책]FBI 사람예측 심리학
FBI 사람예측 심리학로빈 드리케·캐머런 스타우스 지음/고영훈 옮김/KOREA.COM 펴냄 FBI(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미국 연방수사국) 수사물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에서 피의자의 심리 분석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추적하는 프로파일러의 활약은 극의 박진감을 더할 뿐 아니라 가히 신의 한수에 맞먹는 통쾌한 반전의 재미를 준다.삶은 매순간 신뢰하거나 의심하거나, 수용하거나 거부하거나, 떠나거나 남거나, 사랑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탐욕, 심리 조절, 권력, 통제, 기만 등 훨씬 음흉한 목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감추고 진실을 숨긴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특히 힘든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보잘 것 없는 권력일지라도 권력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이런 일을 흔히 벌이고는 한다.그 선택의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게 사람에 대한 예측이다. 이에 FBI 행동분석센터장이었던 로빈 드리케와 전문기자로 활동하는 캐머런 스타우스가 힘을 합해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는 방첩활동을 통해 '사람을 읽는 기술'에 관한 매뉴얼을 만든 게 이 책의 주제이다.책은 첫 장부터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에 대한 생생한 현장 묘사와 이에 대처하는 FBI뉴욕지부 요원들의 사건분석과 헌신적인 인명구조를 담고 있다.빈 라덴의 9·11테러는 이미 이전부터 미국 여러 정보기관을 통해 그 가능성들이 많이 숙지되어 있었으나 결정에 필요한 사실이나 정보가 부족한 탓에 강력한 반테러 대책을 구축하지 못했다.테러가 일어난 날. 당시 FBI요원이었던 드리케는 긴박했던 상황에서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동료들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곧 건물이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건물로 뛰어들던 동료와 두려움으로 인해 슬그머니 사라지는 동료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또 테러 용의자를 추적하고 국가 위기에 대한 첩보를 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사람을 제대로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중요한 상황에서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예측하는 방법을 연구해 직접 행동분석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뒤통수를 칠 사람을 구별하는 최고의 도구는 뭘까?적은 앞에서 나의 가슴을 찌르지만 친구는 뒤에서 나의 등을 노린다고 했다.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측한다는 건 더 이상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위기의 상황에서 가장 단적인 첫 번째 예측은 사람은 자신의 최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상대의 행동은 예측 가능한 셈이 된다.또한 행동 예측은 실제로 그러한 행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 책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함으로써 '상대편'과 '내 편'의 구별이 가능하다고 한다.행동 예측을 위한 6가지 신호는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될 정도로 주제를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들이다.그 첫 번째 신호는 흔들림 없이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인가는 판단하는 잣대인 '동맹'이다. 동맹의 단서는 상대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일 때 형성되는 인간적 유대감으로서 함께 일을 하다보면 믿음과 불신을 구별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신뢰와 불신은 ▷언어적 표현 ▷비언어적 표현 ▷행동 ▷관찰되는 의도로부터 충분히 추론해 낼 수가 있다.서로의 성공을 위한 공생관계인 동맹이 형성되면, 다음은 우정과 일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 지속성'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행동이 예측된다. 일례로 짧게 일한 동료보다 길게 일한 동료일수록 그의 행동은 훨씬 예측이 정확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세 번째는 '신뢰성'이다. 상대편이 자신이 말한 대로 과제를 해 낼 수 있는 역량과 성실함이 있느냐에 따라 미래의 그의 행동을 추정하는 것이 더 쉬워진다. 네 번째는 '행동패턴'이다. 지속적으로 나에게 긍정적인 행동 패턴을 보이고 있는가 혹은 인성과 도덕성이 충만한가에 따라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상대편의 행동에 대한 패턴의 예측이 더 정확해진다.다섯 번째는 '언어'다. 말 속에 신뢰할만한 단서가 보이는가에 따라서 상대와 나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은 '정서적 안정감'으로 일관되고 안정된 정서는 향후 행동패턴 예측에 큰 도움을 준다.9·11테러 당시 동료들의 예측 못했던 행동들, 의심스러운 첩보원들, 정보를 위해 접촉해야 하는 미지의 인물에 대한 긴장 등 긴박하게 움직였던 FBI의 속내를 보여주어 흥미를 더한 이 책은 영화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FBI의 사람을 읽는 기술의 핵심'을 알려주고 있다.352쪽, 1만6천원
2020-08-20 14:49:37
[책] 전쟁은 어떻게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가…중일 전쟁 전범의 고백
"상관은 군인에게 사람을 죽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을 사람들 열 명 정도를 끌고 왔어요. 그들을 나무에 묶어둔 채 우리 중 열 명 정도를 나무 앞에 길게 줄지어 세웠어요. 그 다음 "죽여라"라는 명령을 받았어요.아마 서른 명이나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다 함께 (그들을) 찔렀을 거예요. 부대로 돌아가서 우리 중 절반 정도는 음식을 먹지 못했어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가 되면 익숙해지고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걸 하면 실적이 올라갈 거야." 중일전쟁 전범의 고백이다. 그들은 자신에게서 악마를 발견했다.◆악의 포르노그래피를 넘어선 진정한 성찰강간, 학살, 고문, 생체 실험….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각종 잔악무도한 악행, 전범들은 왜 그토록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악한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신간 '악한 사람들'은 중일전쟁 전범들의 고백을 토대로 평범하던 개인이 어떻게 전쟁 범죄의 가해자가 되는지 파헤친다.저자는 전범들을 악한 사람들로 치부하고, 그들이 한 행동은 모두 나쁘다고 결론 내리는 쉽고 간편한 방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전범이 저지른 잔혹한 모습을 묘사하고, 독자가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악의 포르노그래피'와 다름없으며 이는 악에 대해 심도 있게 성찰할 기회를 박탈하는 탓이다.대신 저자는 악행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까지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탐구한다. 지금도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대해 전쟁 역사 왜곡과 갖은 혐오발언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그들이 왜 그런 짓을 저지르는지,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조직적, 구조적, 심리적 기제를 분석해 악한 사람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 답을 내리고자 한다.이런 탐구 과정은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더 넓고 깊은 사유로 발전할 수 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가해자의 증언, 인권, 트라우마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전쟁을 위해…폭력을 생산하는 제도'대량학살'(genocide)에 대해 처음 학자들은 가해자의 개인적 성격에서 공통점을 찾으려고 했지만 이런 접근 방법으로는 '악한 사람'을 구분지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개 악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이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대량학살의 원인을 개인의 성격보다는 조직 정체성, 사회적 상황, 국가 이데올로기에서 찾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대량학살 연구에서 관건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당신은 어느 사회에 속해 있는가'라는 질문이다.그러면서 저자는 폭력을 생산하는 제도에 집중한다. 많은 학자들은 대량학살을 일으키는 폭력성을 키우는 요인은 어린 시절 시작된 문화적 훈련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에서는 전쟁 전 공교육 과정에 '군국주의와 천황 숭배 사상의 체계적인 주입', '전쟁터 상황에 기반을 둔 산술 교육', '탐조등, 무선 통신, 지뢰, 어뢰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 등이 포함돼있었다. 인터뷰이들도 어릴 때부터 이런 훈련을 받아왔다고 증언했다.권위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일본군의 신병훈련은 군인으로 하여금 사람 죽이는 일을 고민없이 실행하도록 만들었다. 군대에서는 폭력과 체벌을 통해 정상적으로 길들여진 정체성을 박탈당했고, 명령에 복종하도록 통제당했다. 아울러 장기간의 교육과 학습을 통해 주입된 '특정 존재에 대한 혐오'는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로 하여금 혐오대상을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했다. 전쟁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그저 상관의 명령을 따른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전범의 고백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중일전쟁 일본군 전범들의 고백 앞에 저자 제임스 도즈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끔찍한 고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은 고민스러웠지만 그는 곧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 일부는 은폐되었고, 거짓이 되기도 했으며, 역사책에서 왜곡되거나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그는 이를 기록했다.예컨대 일본 문부성은 1962년 교과서에서 일본군이 중국에서 저지른 전시 강간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고, 1994년 일본 법무상 나가노 시게토는 1937년에 일어난 난징대학살을 "날조된 것"이라고 했다. 2007년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동원한 사실을 부인했다. 이처럼 최근 수십 년간 일본 정부 관료들, 학자들, 전직 군 장교들은 과거 일본제국이 저지른 만행을 부인하거나 축소했다. 그들은 여전히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전범들의 증언은 하나의 진실로서 다뤄져야 하며 그들의 말을 기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작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더군다나 아직 생존자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진실을 위한 투쟁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저자는 잊지 않고 자신의 조국(미국)이 벌인 전쟁에 대해서도 성찰한다. 중일전쟁과 세상 모든 전쟁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356쪽, 1만9천원.
2020-08-20 14:49:06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 학익진법(鶴翼陣法)
'학익진법'은 학이 날개를 펼쳐 적을 포위하듯 공격하는 정자(丁字)전법의 정명(正名)이다고 '장군다례'(將軍茶禮)는 전한다.이순신(李舜臣1545~1598)이 임진왜란(任辰倭亂) 때 해상전법으로 처음 학익진전법이라고 명명했다. 임진왜란은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으킨 전쟁이다. 그는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지방 영주가 되고, 전 일본을 통일시킨 군주가 되었다.100여 년의 전국시대에 배출된 무사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조선을 쳐 대륙진출로 제장들의 힘을 해외로 방출시키려는 일석이조의 야망적인 전략이었다.1592년 4월 13일 15만8천700 군사로 9군을 편성하여 부산포로 상륙했다. 부산진 점철사 정발(鄭撥)은 왜군을 맞아 싸웠으나 조총(鳥銃)에 맞아 장열하게 전사했다. 왜군은 부산성과 동래성을 무너뜨리고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서울을 15일 만에 함락시켰다. 북진하여 40일 만에 평양이 점령되자 선조는 의주로 피난하면서 명(明)에 원군(援軍)을 요청했다.왜군 침입의 급보가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전달되자 경상우수사 원균과 연합함대로 5월 7일 제1차 옥포(玉浦)에서 싸워 승리했다. 제2차는 사천(泗川)·당포(唐浦)·당항포(唐項浦;固城), 제3차는 한산도(閑山島), 제4차는 부산포에서 승리하여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한산도 대첩에서는 적선 60여 척을 쳐부수어 임란 3대첩으로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그해 5월 29일 거북선을 앞세우고 원균과 적선 12척을 섬멸했는데, 이때 장군의 왼쪽 어깨에 부상을 입고, 거북선의 위력을 확인했다. 노량해전에서는 일본군이 패배의 설욕을 노렸으나 한산앞바다에서 학익진법(鶴瀷陣法)을 구사, 판옥선(板屋船)의 총통(銃筩)으로 공격하여 적의 지휘자가 전사하는 전과를 올렸다. 장군이 고안한 판옥선은 좌측에서 쏘면 우측에서 장전하여 돌아서 쏘아 연속 불을 품었다. 거북선이 앞에서 진두지휘하고 판옥선이 뒤따라 학이 날개를 펼치듯 에워싸 사정거리 안에 가두고 공격했다. 이는 군사들에게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卽生 必生卽死)는 투철한 정신력의 힘이었다. 그러나 섬나라 일본은 바다에서의 참패는 씻을 수 없는 일이었다.중국과 일본 장수들이 이순신에 대한 평을 옮겨본다. 명(明)나라 원군 진린(陳隣)제독은 장군과 이견 충돌도 있었지만, 인격에 감동하여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재주가 있고, 나라를 바로 잡는데 지대한 공이 있다'(李舜臣 有經天緯地之才 補天浴日之功)고 찬사했다.일본해군 원수 도고 헤이하치로(東卿平八郞1847~1934)는 러·일 전쟁에서 발트함대와 싸워 이기고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당신은 이순신보다 훌륭하다'고 하자 나를 영국의 넬슨(1758~1805)에 비길 수는 있으나, 이순신에게 비기는 것은 감당할 수 없다. 내가 가진 함대를 만약 이순신이 가졌다면 그는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학자 도구도미(德富猪一郞)는 '이순신은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이겼다. 조선은 참으로 이순신을 자랑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도고는 러·일 전쟁에서 T자 전법으로 승리를 거뒀다는데, 그것은 결국 정(丁)자 즉 이순신의 '학익진법'으로 승리한 것이다. (사)효창원 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2020-08-13 13:33:05
[내가 읽은 책] 기다림… 「딜쿠샤의 추억」
기다림은 설렘이다. 언젠가 찾아올 만남을 생각하며 한껏 설렌 마음을 추슬러 간다. 기약 없는 기다림일수록 그 농도가 짙어진다.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에 가면 농도 짙은 기다림을 간직한 특별한 집이 있다. 지은 지 한 세기가 지난 2017년 8월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 687호로 등록된 그 집엔 긴 기다림 만큼이나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17년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부부가 권율 장군이 심은 은행나무에 반해 그 곁에 집을 지었다. 은행나무 마을인 그곳에 부부가 집을 지으며 특별한 집의 길고 긴 기다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건축가가 집을 지어도 하느님이 짓지 않으면 헛되고 파수꾼이 성을 지켜도 하느님이 지키지 않으면 헛되도다."(11쪽)1923년 완성된 집에는 이 성경 구절이 새겨졌다. 그리고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인 '딜쿠샤'라는 이름이 붙여지며 그 집만의 특별한 추억을 담기 시작했다.'딜쿠샤의 추억'은, 프롤로그-어느 행복한 날의 기억, 1917년~1942년-내 이름은 딜쿠샤, 1945년~2000년-창문 너머로 바라본 서울, 2006년~2016년-언제나 그 자리에, 에필로그-언젠가는 돌아올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매 시기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딜쿠샤를 만날 수 있다. 우리 민족을 아끼던 메리와 앨버트는 우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도 했다. 1919년 3·1 운동 하루 전에 태어난 아들 브루스 침대에 숨겨진 종이뭉치.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16쪽) 바로 '독립선언서'였다. 딜쿠샤에 숨겨진 독립선언서를 전 세계에 알리면서 그로 인해 3·1운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딜쿠샤에서 나고 자란 브루스가 군에 입대하기 위해 집을 떠나야 했다. "브루스야, 네가 어디를 가더라도 언젠가는 꼭 돌아와야 할 너의 집은 바로 이곳이란다."(20쪽) 메리는 딜쿠샤를 떠나는 브루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날 이후 딜쿠샤의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떠나간 브루스가 돌아올 그날을. 그리고 얼마 있다 추방당한 메리와 앨버트를. 그렇게 긴 기다림 속에서 딜쿠샤는 수많은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랜 세월 우리의 근현대사를 한 세기 동안 지켜본 딜쿠샤. 일제강점기, 8·15광복, 한국전쟁,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 딜쿠샤는 지나간 우리의 역사를 기억했다.한때는 모두가 떠나가고 텅 비어 새들만 잠시 쉬어가기도 했고, 어떤 때는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방마다 꽉 차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폭격 소리에 놀라 내려앉기도 하고, 그리고 어떤 때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딜쿠샤는 100여 년의 세월을 은행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기다렸다. 한 해가 두 해가 되고 은행나무가 파랗게 돋아났다 노랗게 물들고… 또 그것이 반복되고. 메리를 기다리고, 앨버트를 기다리고 또 꼬마 브루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또 누군가 딜쿠샤를 안아줄 날을 기다리면서…. 지금도 종로구 행촌동 1번지에 가면 딜쿠샤가 있다. 딜쿠샤는 지금 이 순간도 수백 번도 더 보아왔던 창문 밖 서울을 보면서 또 다른 기다림을 기다리고 있다.2016년 2월 28일 드디어 브루스가 영원히 딜쿠샤로 돌아왔다. 비록 주머니 속 작은 가루가 되었지만 약속을 지켰다. '네가 어디를 가더라도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너의 집', 브루스는 드디어 딜쿠샤에서 평화를 찾았다. 딜쿠샤의 짙게 익은 기다림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은행나무 골 딜쿠샤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우리가 보지 못했고 겪지 못했던 일들을 오롯이 간직한 딜쿠샤. 그 추억 속에서 기나긴 우리의 역사를 만났다.권영희, 학이사 독서 아카데미회원
2020-08-13 13:13:43
[책] 이념·자료 부족 때문…우리가 버린 독립운동가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잊히겠죠?… 미안합니다…"영화 '암살'에서 김원봉(조승우 분)은 독립을 위해 싸우다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이들을 기리며 쓸쓸한 목소리로 이렇게 읊조렸다. 관객들은 이 대사를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들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슬프지만 그 말이 진실이라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우리는 여러 독립운동가를 알고 있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더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해 누구는 평생을, 누구는 목숨을 바쳤다. 그렇게 우리가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에, 우리는 미안함과 부채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미안함과 부채감에서 출발한다.◆왜 우리는 그들을 잊어버렸나?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행적과 업적을 보면 이제껏 알려지지 않고 있던 것이 이상할 정도다. 왜 이들은 어떤 이유로 잊혀진 걸까?먼저 이념의 문제다. 광복에 이은 분단으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평가도 갈려버렸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언급 자체가 기피됐다. 김원봉이나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도 그전까지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이들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국 홍군(紅軍)과 협력한 양세붕이나 러시아 적군(赤軍)과 협력한 김경천 등과 같은 인물도 마찬가지 경우에 해당한다. 사회주의 활동을 한 주세죽(박헌영의 아내)과 박차정(김원봉의 아내)이 그러했다.이념과는 별개로, 정치적 이유에서 그렇게 된 경우도 있다. 박용만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이끌었는데, 이승만과 대립했다. 둘은 한때 의형제도 맺었지만, 독립운동의 방향을 놓고 완전히 절연한다. 해방 후 그의 업적이 덜 알려지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일부 세력이 정치적 이유로 유관순을 독립운동의 표상으로 띄우면서 김구응이 묻히게 된 것도 그런 사례다.자료가 부족하고 업적을 알릴 후손들이 없다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국외로 떠돌았는데, 특히 북한 지역이나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는 기록이 미비하다. 또 후손이 남아 있다면 나서서 독립유공자로 신청하고 선양사업도 할 테지만, 독립운동가 집안은 풍비박산 나기가 일쑤여서 남은 후손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한국에 없는 경우도 많다.만주 독립군 사령관으로 당시 신문에서 "독립운동에 관계된 인물로서 모르는 이가 없다"고 일컬어진 오동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오늘날 일반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변변한 연구논문도 없다. 후손도 끊겼고, 묘소도 국내에 남아 있지 않다.(그의 묘소는 북한의 국립묘지인 애국열사릉에 있다) 공식 문서에 남은 이름(윤혈녀)과 달라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 윤형숙도 자료의 부족으로 뒤늦게 알려진 경우다.◆이름 없이 사라진 독립운동가들을 밝혀내야이런 저런 사정으로 잊혀지고 버려진 독립운동가는 많다. 이 책에 수록된 20명은 그래도 그 행적이 전해지고 자료가 남아 있었던 덕분에 알려질 수 있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등록된 인물만 1만5천여 명인데, 그중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행적이 알려지지 않거나 북한에 남았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못한 독립운동가들도 부지기수다. 비밀리에 활동해 논문 한 켠에 행적이 겨우 적혀 있거나 아예 어떤 사료에도 흔적이 없는 이들도 많다.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을 쓴 진정한 목적은 단지 몇 명의 독립운동가를 더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기억의 저편에 파묻혀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썼다"고 했다. ◆저자 손성진은?신문사 기자로 입사해 현재 서울신문 논설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후의 시기, 특히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사회사와 생활사에 관심을 가져 '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을 비롯해 기자로 일한 경험을 살려 어린이들에게 신문에 나오는 시사적인 주제로 글을 짓는 법을 알려주는 '뉴스 속에 담긴 생각을 찾아라' 등을 냈다.288쪽, 1만5천원.
2020-08-13 11:25:30
[반갑다 새책]한국의 산사 세계의 유산/주수완 지음/조계종 출판사 펴냄
세상살이 번뇌의 바다에서 헤어나질 못할 때 푸른 숲 속 조용한 절을 찾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에 평온이 찾아올 때가 있다. 나고 늙고 병 들며 종내는 죽음을 맞닥뜨리는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산사는 어쩌면 적멸과 해탈의 가르침을 말없이 전해주는 곳이기 때문이리라.사찰 초입 일주문에서부터 사천왕, 석탑, 대웅전을 비롯해 여러 전각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곳도 이유 없이 자리한 곳은 없다. 눈이 가는 어느 곳도 가람을 배치한 지혜와 배려가 담겨 있다.한국의 불교유산은 1995년 해인사 장경판전과 불국사·석굴암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래 2018년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 7곳의 산사가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됐다.책은 미술사학자이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 작업에 참여했던 지은이가 통도사를 시작으로 불국사와 석굴암까지 우리나라 대표적인 산사 9곳을 소개하고 있는데, 가람 주변 산을 중심으로 사찰마다 지닌 역사와 전래되는 이야기 등을 사진과 함께 마치 가상현실을 속을 거닐 듯이 글로 풀어내고 있다.'지형에 순응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전체 풍광을 보면 다분히 의도적이다. 일직선으로 배치했다면 앞에 있는 건물에 가려져 그 뒤에 있는 건물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축선을 휘어놓으면 안으로 들어오면서 보일 듯 말 듯하면서도 가장 뒤에 있는 무량수전이 가려지는 일 없이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시각적인 배려다'(부석사 설명 중에서)이렇듯 가람이 지닌 건축의 아름다움은 물론 그 속에 깃든 정성과 배려, 불교적 이상세계의 구현 등을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그동안 산사에 들면 번뇌가 봄날 눈 녹듯 했던 까닭이 괜히 그러했던 것이 아니었다. 326쪽, 1만7천원
2020-08-13 10:54:26
[책체크] 도전과 헌신의 리더십 스토리/ 오연천 엮음/ 울산대학교출판부 펴냄
자기 인생에서 혁신을 가능케 한 동력과 성장 과정에서 배운 교훈을 소개한 '도전과 헌신의 리더십 스토리'가 출간됐다.이 책은 오연천 울산대 총장이 졸업생을 비롯해 사회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 진행한 '프레지덴셜 포럼' 강연과 토론을 정리해 펴냈다. 개인의 성공 과정을 전개하기 보다는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기울인 개인의 정신과 투혼을 조명한 점이 돋보인다.책의 주인공은 송창근 인도네시아 KMK글로벌스포츠그룹 회장, 손교덕 전 BNK경남은행장, 정갑영 전 연세대학교 총장,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이사, 박봉준 구암문구 대표, 이기광 전 울산지방법원장, 박기출 싱가포르 PG홀딩스 회장, 이승규 아산의료원장, 이치윤 ㈜덕양 회장, 남준우 삼성중공업㈜ 사장이다.특히 개인의 인생, 성취에 대한 철학을 요약한 '기조 강연', 리더십의 본질을 꿰뚫는 송곳 같은 '질의 응답', '리더십의 포인트'를 일목요연하게 수록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의 리더십 교본으로서도 제격이다. 247쪽, 1만2천원.
2020-08-13 10:53:35
[책] 공유경제의 민낯…장밋빛 전망 속 노동자에겐 그림자가 드리운다
"100년 전 금지된 고용노예.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이다."뉴욕에서 우버 기사로 일하고 있는 대학생 바란(28)은 우버에서 연결해준 렌트카 회사에서 주당 400달러에 차를 빌려 운행한다. 일주일에 사흘을 일해야 비용을 벌 수 있고, 이후에 버는 돈은 비로소 그의 몫으로 돌아온다. 일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을 두고 그는 마치 과거 미국으로 건너오기 위해 비용을 제공받고 정해진 기간동안 노예로 일하는 '고용노예'가 된 것 같다고 했다.◆공유경제, 장밋빛 전망의 그늘공유경제를 내건 플랫폼 업체들은 4차산업혁명 시대의 중심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누구의 지시도 받지 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자유롭게 일하라"며 노동자를 플랫폼 경제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정작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로서 노동자의 복지도, 자영업자의 자유도 보장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신간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의 저자이자 사회학자가 에어비앤비(숙박), 우버(교통), 태스크래빗(심부름), 키친서핑(출장 요리) 등 공유경제 노동자 약 80명을 인터뷰해 공유경제 산업의 파괴적 결과물,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삶 등 공유경제의 모순에 대해 고발하는 책이다. 저자는 "플랫폼 경제는 초기 산업사회와 유사한 형태를 보여준다"며 "노동자들은 장시간을 일하고도 시간이 아닌 생산량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고 산업 안전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으며 산업재해에 대해 보상받을 길도 없다"고 역설한다.지금까지 공유경제를 다룬 책은 플랫폼 서비스로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사회학자로서 플랫폼 노동자를 중심에 둔 비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노조를 만들 수 있는가, 산업재해 대비책이 있는가, 실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는가 등의 질문들은 플랫폼 경제로 하여금 고민할 지점을 짚어준다. 특히 저자가 2030세대 노동자의 사연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는 앱 기반의 플랫폼 경제가 밀레니얼 세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돼있는데, 노동자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노동의 비정규화라는 큰 흐름에서 공유경제가 위험과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며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을 논하는 3, 4장이 책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공유경제…자본의 새로운 수탈 방식공유경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기업은 아무런 책임이나 의무도 지지 않고 1만명의 노동자를 단기간 고용할 수 있지만, 일이 끝나면 노동자는 증발하고 만다. 이처럼 임시 고용, 적시 일정 관리(필요한 시점에만 노동자를 호출하는 방식), 대량 정리해고를 모두 채택한 공유경제는 저비용으로 자기 착취를 유도하는 자본의 새로운 수탈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이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할 권리가 없으며, 업무상 재해에 대한 보상조차 요구할 수 없으며 온갖 차별과 성희롱, 언어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이에 저자는 공유경제가 혁신이란 미명하에 지난 수 세대 동안 쌓아 올린 노동자 보호장치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노동자 착취가 만연했던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유경제는 진보가 아닌 퇴보다.나아가 공유경제는 일자리의 계층화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고도의 자본과 기술을 갖춘 노동자에게 공유경제는 탄력성, 선택권, 통제권이 보장되는 꿈의 일자리를 제공하지만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노동자의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이들은 앱을 통해 저수준 노동에 종사하며 위치추적 서비스로 감시를 당하고, 아무리 어려운 일도 거절하기 힘들고, 화장실에 갈 자유도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심부름 서비스 '태스크 래빗'에서 일한 사라는 진흙에 오물투성이인 마약굴 같은 아파트를 청소한 경험을 언급하며 자신은 '화장실까지 깨끗하게 청소해드릴게요'라는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고 회상했다.이처럼 노동의 비정규화를 촉진하고, 위험은 모두 노동자에게 전가하며 나아가 노동을 계층화하고 차별을 부추긴 결과로 벌어들인 경제적 이익 대부분은 플랫폼 기업에게 돌아간다.이 책은 이러한 현실을 꼬집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공유경제의 달콤한 꼬임에 수많은 노동자가 더 비참한 노동 환경에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해법을 모색한다. 이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은 공유경제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에게 생활 임금, 복지 혜택, 보호장치 등을 제공하는 기업을 소개한다. 392쪽, 1만8천원.
2020-08-13 10:52:43
[서평]복잡한 국제 정세를 이해하기 위한 지정학 전략
벽이 없는 세계/ 아이만 라쉬단 웡 지음·정상천 옮김/ 산지니 펴냄 지금까지 지정학과 국제 관계는 대개 서구의 관점에서 논의되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외고관인 저자는 미국, 중국, 터키, 러시아 등 세계 주요국의 지정학 전략을 통한 국제 정세를, 서구의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측면에서 분석한다. 복잡다단한 국제 정치 현상을 심도 깊게 분석하고 지정학의 세 가지 주요 열쇠인 권력(power), 지정학(geopolitics), 그리고 정체성(identity) 등을 오늘날 국제 정치의 주요 현안과 관련시켜 풀어낸다. ◆국제 정치를 해석하는 나침판: 권력, 지리학, 정체성저자는 이 책에서 국제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권력, 지리학, 정체성의 요소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권력의 축과 이동, 힘의 균형에 대해 설명한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법이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강대국의 이익을 옹호하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면,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전 세계가 이 사건을 비난했고, 일부 국가들은 더 폭력적인 수단으로 이라크를 징벌했다. 반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는 어떤 나라가 미국을 벌할 수 있었는가? 강자만이 살아남는 국제 정치에서는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국가와 연합세력을 구축해야 한다. 저자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듯이, 권력과 힘의 이동을 파악하고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두 번째, '지리는 운명'이라고 할 정도로 각국의 지리적 요건을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국가는 지리적 배경이 있다. 인접 국가들은 비인접 국가보다 더 위협적이고, 종종 내륙의 이웃 국가들이 해상의 이웃 국가들보다 더 위협적이기도 하다.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에게 매우 적대적이었고, 결국 이로 인해 두 번의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즉, 외교 정책과 전략을 수립에 있어서는 가치뿐만이 아니라 지정학적인 요소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세 번째,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지정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럽 국가의 일원이 되고자 했다가 이슬람 의식을 가진 국가로 바뀐 터키의 정체성 변화는 그들의 정치적 나침판을 유럽에서 중동으로 바꿨다. 미국은 서방 문화의 핵심국가이고, 러시아는 동방정교, 중국은 중화문화, 인도는 힌두의 핵심국가이다. 반면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이슬람들의 국가는 그들 문화권에 중심 국가가 없어 중심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분쟁을 하고 있다. 저자는 앞으로 국제 정치는 각 문화권의 중심 국가들의 정체성 확립과 핵심국가가 되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강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운명이 책에서는 또한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의 정세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특히 트럼프식 정치, 바람직하지 않은 한국의 통일, 김정은과 핵 벼랑끝 전술 등은 한반도의 미래와 동북아 정세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저자는 햇볕정책을 추진한 김대중 대통령부터 현재 문재인 대통령까지 북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짚어본다. 또한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지도자의 만남에 대해 분석하면서 둘의 만남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조급한 기대이며, 김정은은 서방 국가들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국제 정세·정치, 역사와 함께 쉽고 간결하게이 책에는 강대국뿐만 아니라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등 비료적 조명받지 못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설명해놓았다. 책을 읽다보면 필리핀은 왜 중국에 적대적인지, 베트남은 왜 중국과 애증의 관계인지, 북극 주변국가로 구성된 북극이사회에 왜 적도 근처에 있는 싱가포르가 참여하는지 쉽게 이해가 된다.오늘날 국제 정치 현상을 과거의 역사적 연원에 대한 설명에 기초해 분석해놓았기 때문에, 국제 정치, 외교, 국제 관계를 공부하는 대학생과 청소년에게 외교정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또 시사문제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된다. 304쪽, 2만원.
2020-08-06 13: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