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책 CHECK] 인문명리정치열전

인문명리정치열전/류동학 지음 / 신서원 펴냄 정치인의 행보를 인문명리학적으로 분석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풀이한 책이다. 명리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가문과 과거의 행적 및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미래의 전망과 예측을 내놓으며 지도자적 역량을 파악할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는 인문명리학과 주요 용어들에 대해 설명했으며, 2부 '대통령의 운명'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박근혜·이명박·노무현·김대중·전두환 전 대통령 등에 관한 내용을 실었다. 3부 '정치인의 운명 -주요 대선 후보'에서는 1987년 대선에 출마한 영원한 2인자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후보, 1992년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2017년 대선 및 후보 경선 출마자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손학규 등을 소개했다. 4부 '지역을 가꾸는 정치인의 운명 -필자의 관심 정치 지도자'에서는 김두관 국회의원, 이재명 전 성남시장, 최문순 강원도지사, 김관용 경상북도지사, 이철우 국회의원, 조원진 국회의원, 박노욱 경북 봉화군수, 백선기 경북 칠곡군수 등 12명을 실었다. 저자는 "명리학과 역사학의 지식으로 풀이하는 인물평가가 유권자들의 지혜로운 지도자 선택의 동기를 제공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451쪽, 1만9천원.

2018-05-12 00:05:10

[책 CHECK] The 큰 바보 경주 최부자

The 큰 바보 경주 최부자 Ⅰ. 숨겨져 있던 놀라운 이야기들/박근영 지음/두두리 펴냄 12대 400년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부자 가문을 조명한 책이다. 경주 최부자 종손인 최염 씨가 어린 시절부터 보고 듣고 경험한 최부자 집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실려 있으며 이런 이야기들이 어떻게 그 시대 주변인들 또는 백성들과 소통하는 도구가 되었는지 실감 나게 들려준다. 책은 크게 다섯 마당으로 돼 있다. 도입부가 개괄적으로 최부자 집을 소개하는 순서고 다음으로 나눔과 상생의 정신을 실천해 가는 과정에서 최부자 집의 다양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최부자가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실제로 얼마만큼 부자고 의식주의 행태는 어떠했는지 육훈이나 육연 외에 실제로 집안에서 전하는 가르침은 무엇인지 등 읽을거리가 넘친다. 세 번째 마당에서는 최부자 집을 스쳐간 무수한 과객들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최부자 집에서 손님맞이를 어떻게 했는지를 상객 중객 하객의 분류로 나눈 것이 흥미롭다. 네 번째 마당은 최부자 집의 가보 이야기, 마지막 장은 갑질과 미투로 얼룩진 현 세태에 대해 조용한 일침을 가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최부자 집이 '을'들인 주변인들과 어떻게 공생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갑다운 갑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다. 320쪽, 1만9천원.

2018-05-12 00:05:10

'웰빙 음료' 막걸리의 모든 것…『막걸리를 탐하다』

막걸리를 탐하다/ 이종호 지음/ 북카라반 펴냄 중국 사서 '위지동이전'에 '고구려는 초목이 중국과 비슷하여 장양(藏釀)에 능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장양'은 전통적인 발효식품이나 젓갈을 의미하지만 주류(酒類)학자들은 '술 담금' 즉 양조(釀造)의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처럼 술은 고대부터 우리 민족에게 널리 애용된 음료이자 식품이었다. 우리나라 전통술을 말할 때 막걸리를 빼놓을 수 없다. 막걸리는 1837년경에 저술된 '양주방'(釀酒方)이라는 문헌에 혼돈주(混沌酒)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쌀과 누룩으로 빚은 희고 탁한 액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민족의 술로 자리매김했다. 조상들은 마시고 즐기는 오락의 용도뿐 아니라 제례에 올리는 제물로도 막걸리를 인식했다. 시큼하면서 담백한 한국 막걸리를 다룬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이 펴낸 '막걸리를 탐하다'에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막걸리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건강에도 좋아 '웰빙 음료' 반열에 막걸리의 장점은 많이 알려졌지만 흔히 '5대 미덕'을 지녔다고 알려진다. 허기를 다스려주고, 취기를 심하게 하지 않으며, 추위를 덜어주고, 기분을 북돋우며,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선조들은 오랫동안 막걸리를 마신 경험을 통해 이런 '미덕'을 찾아냈다. 여러 장점이 과학적 검증을 거치며 막걸리는 이른바 '웰빙 음료'의 반열에 올랐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막걸리의 효능은 많다.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에 크게 도움이 된다. 막걸리의 평균 알코올 함유량은 6~8도로 웬만큼 마셔도 크게 취하지 않는다. 섬유질, 당류, 유기산 등에서 얻어지는 열량도 낮다. 풍부한 아미노산, 단백질도 막걸리의 장점. 발효 곡물에 들어 있는 단백질의 함량은 우유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술 발효 과정에서 효모 균체가 증식해 유산균 함유량이 많다. 이외 유기산, 비타민B가 풍부해 성인병 예방, 항혈전, 항고혈압, 항산화, 피부 미용에도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 ◆전국 유명 막걸리 양조장 탐방 이 책에는 전국의 유명 양조장 24곳도 소개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막걸리 등을 생산하는 양조장은 850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막걸리도 1천500여 종에 달한다. 저자는 학술서 탐독, 전문가 설문, 고증 등 구체적인 접근을 통해 '막걸리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 현지답사를 통해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전국의 양조장들을 소개했다. 저자는 5장에서 한국 막걸리 역사가 그리 순탄치 않았다고 말한다. 즉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전통 막걸리 맥이 거의 사라졌고 대신 일본의 누룩이 막걸리 업계를 석권했다는 것. 현존하는 양조장 중 전통누룩을 사용하는 곳은 몇 집 되지 않기 때문에 막걸리 명소를 찾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막걸리 붐 타고 '국민주'로 부상 막걸리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제조 방식이 달랐다.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됐으며 가내(家內) 기술 또한 대대로 전승됐다. 일제강점기는 막걸리 제조와 관련해 큰 변화를 맞게 된 시기다. 저자에 따르면 1910년 양조장 수는 15만6천 곳에, 술 제조 면허를 받은 사람도 36만6천700명에 이르렀다. 그러다 조선총독부의 양조장 억제 정책으로 술 제조 면허자 수가 13만1천700명에서 1930년경 4천 명으로 감소했다. 1932년에는 단 1명으로 줄었고, 1934년에는 제조 면허제 자체를 아예 폐지했다. 민간에서 직접 빚은 가양주(家釀酒)들이 대부분 징세에서 제외돼 세수가 줄어들자 일제는 1907년 '주세법'을 제정했던 것이다. 해방 후 막걸리는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고, 1960년대 이르러 '국민주' 대접을 받으며 술 소비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곧 복병을 맞게 된다. 정부가 식량난을 이유로 원료를 쌀에서 밀가루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1977년 통일벼 증산이 시작되면서 쌀과 밀가루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의 막걸리 붐은 지난 2005년부터 일본에서 불기 시작한 건강 열기와 무관치 않다. 열풍 이후 사람들이 전통 막걸리를 다시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과학계에서도 영양과 효능에 관한 연구를 계속 내놓고 있다. 이 책은 국민주로서의 막걸리를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살펴보자는 취지에서 접근하고 있다. 한국의 막걸리에 대한 백과사전이자 '막걸리 예찬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책장을 덮을 때쯤 막걸리의 시큼한 향기가 친근하게 다가오고,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지도 모른다. 356쪽, 1만6천원.

2018-05-12 00:05:10

변상벽 작 '국정추묘'

[내가 읽은 책] 『제후의 선택』 김태호, 문학동네, 2016

『제후의 선택』 김태호, 문학동네, 2016 작품을 쓴다는 것, 더군다나 동화를 쓴다는 것은 상상력이 최대로 동원되어야 하는 작업이다.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을 굴렸다, 풀었다, 꼬았다 하며 온종일 고민을 해도 아무것도 쓸 수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제17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이 책의 이야기 물꼬는 생각지도 않았던 옛이야기에서 풀어지고 있었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긴박했다. 제후와 고양이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는 도대체 이 아이와 고양이의 관계는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을 준다. 엄마, 아빠의 다툼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가 중요함을 증명해야 하는 아이. 모든 일에서 다급해 하는 제후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다. 제후는 곧 선택을 해야만 하는 묵직한 숙제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기로 하면서 시작된 나누는 일에 제후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건 하나하나, 통장의 돈까지도 서로 갖겠다고 싸우는 엄마 아빠도 제후 앞에서는 싸움을 멈춘다. 선뜻 제후를 맡지 않겠다는 엄마 아빠의 행동에서 받았을 제후의 상처가 아팠다. 내 가까이 있다면 기꺼이 제후를 한 번 꼭 안아 주고 싶다. 아린 가슴이 조금이라도 풀어지도록. 아직 어린 제후에게 선택권을 준 엄마 아빠의 행동은 진정 옳은 일일까?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어른들의 얕은 속내가 보이는 듯하다. "어느 쪽이든 환영받으며 가고 싶었다. 떠맡겨지는 짐처럼 따라가고 싶진 않았지만…." 제후는 선택을 앞두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리지만 제후로서 사는 게 쉽지가 않다. 오죽하면 들쥐에게 또 다른 제후를 부탁했을까. 어른들의 이기적인 생각이 또 한 아이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고양이의 공격으로 사라져 버린 제후와 제후는 또 다른 제후를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어른들의 선택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제후의 마음을 우리가 보듬을 수 없을까? 아저씨가 다시 만난 진짜 제후인 듯한 아이의 모습이 아팠다. "아이의 손가락 끝은 모두 빨갛게 멍울이 져 있었다. 손톱을 너무 짧게 잘라서 손톱 밑 살들이 전부 부어올라 있는 것이었다." 제후는 말한다. "한 번 자른 손톱인데 이상하게 아물지 않아요." 영원히 가져갈 제후의 아픔이 안타까웠다. 제후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빨갛게 멍울진 손톱만이 제후의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집중하지 않았던 제후의 멍울진 손톱은 엄마 아빠가 싸우느라 잊었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빨갛게 멍울진 손톱을 간직한 채 또다시 만들어지고 있는 수많은 제후들.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다. 5월처럼 싱그러운 어린이의 계절에 동화 한편 읽어서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그 녀석은 잘 지내죠?" 그들에게 던질 아픈 물음이다.

2018-05-12 00:05:10

'해가 지지 않는 영국' 비타민C 효과 때문…『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인간을 공격하는 질병과 병을 치료하는 약을 통해 인류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괴혈병, 말라리아, 매독, 에이즈 같은 무서운 질병이 인류를 위협하면 비타민C, 퀴닌, 살바르산, 항균제 같은 약이 발명돼 방패가 되어 주었다. 책은 인류를 치명적 위기에 빠뜨렸던 10가지 질병과 인류를 구한 10가지 약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지은이는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고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10가지 약으로 ▷비타민C ▷퀴닌(키니네) ▷모르핀 ▷살바르산(매독 치료제) ▷페니실린 ▷아스피린 ▷마취제 ▷소독약(병원 위생 개선) ▷설파제(항균제) ▷에이즈 치료제를 꼽는다. ◇영국과 청나라 역사를 바꾼 비타민C와 퀴닌 대항해 시대 뱃사람들은 풍랑이나 해적의 습격보다 괴혈병을 더 두려워했다. 긴 항해 동안 수많은 선원들이 괴혈병으로 죽었고, 이 때문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뛰어난 항해 기술과 훌륭한 선박을 가졌지만 세계를 제패하지 못했다. 괴혈병이 야기하는 비극을 끝낸 사람은 영국 해군 소속 군의관 제임스 린드였다. 18세기 후반 린드는 오렌지, 사과, 레몬 등을 이용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괴혈병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린드의 괴혈병 치료제란 다량의 비타민C가 함유된 과일과 채소 위주의 식단이었다. 이후 제임스 쿡 선장은 린드가 개발한 '비타민C를 포함한 과일과 채소 위주의 식단'을 활용해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그의 위대한 항해는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꼽히는 청나라 강희제는 61년간 집권하면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마흔 살에 떠난 원정길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맸다. 그러나 운 좋게도 예수회 선교사가 진상한 퀴닌(키니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퀴닌이 아니었다면 명군 강희제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역시 명군으로 인정받는 옹정제, 건륭제 역시 역사 무대에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청나라는 물론이고 아시아의 역사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지닌 약, 모르핀 아편은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동시에 지닌 약이다. 모르핀은 아편의 주성분으로 마약성 진통제이다. 중추신경계에서 통증 자극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억제해 진통효과를 낸다. 모르핀은 중국인들의 고통을 덜어준 약인 동시에 중국인과 중국을 망가뜨린 약이기도 하다. 영국이 중국에 아편을 밀수출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이며, 19세기에 이르자 중국에서 아편 소비량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청나라 황금기였던 강희·옹정·건륭제의 통치기가 끝난 뒤 중국 관료들은 부패했고 늘어난 인구를 부양할 만한 생산성의 향상이나 제도적 대책은 없었다. 중국인들은 현실의 쾌락이나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아편을 피웠다. 영국은 청나라와 사이에 발생한 천문학적 무역적자를 벌충하기 위해 아편을 공급했고, 이는 양국의 아편전쟁으로 이어졌다.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영국과 불평등조약을 맺었고 이후 미국, 프랑스 등과도 불평등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 대륙이 서구 열강에 의해 잠식되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소독약이 더 일찍 나왔더라면 석가모니는? 마야 부인은 석가모니 출산 후 이레째 되는 날 세상을 떴다. '산욕열'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석가모니는 우울한 청년기를 보냈고 오랜 고행 끝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산욕열은 태반 박리, 출산으로 생긴 상처 등에 세균이 침입해 발생한다. 하지만 19세기 중반까지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 1846년부터 연구에 몰두한 빈대학 종합병원 의사 제멜바이스는 의료진에게 손 씻기를 명하고 속옷과 의료기구를 철저히 소독해 12%였던 병원 내 산모 사망률을 0.5%까지 끌어내렸다. 이후 영국 외과의사 리스터가 페놀 소독약을 사용하면서 병원 위생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만약 석가모니 시대에 소독약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마야 부인이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석가모니는 출가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약은 진통·소염제인 아스피린이다. 지금까지 생산량은 5천㎎ 알약 기준으로 1천억 알 분량이며, 지구에서 달까지 한 번 반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짐승이 인류보다 먼저 약을 이용했다." 인류가 약을 활용하기 전부터 동물들은 약을 이용했다. 남미에 서식하는 꼬리 감는 원숭이(카푸친 원숭이)들은 노래기(지네 비슷하게 생긴 절지동물)를 발견하면 잽싸게 잡아서 자기 몸 여기저기에 문지른다. 노래기가 방출하는 화학물질 벤조퀴논(Benzoquinone)을 몸에 바르면 뱀이나 해충 등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곤충도 약을 쓴다. 불나방 유충은 제 몸속에 둥지를 튼 기생충을 퇴치하기 위해 '약초'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녀석들은 기생파리가 제 몸에 알을 낳으면,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나도독미나리속의 독당근(Conium) 같은 독성식물을 찾아 먹는다. 독성식물을 뜯어 먹은 불나방 유충은 독초를 먹지 않은 녀석들보다 생존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고대 인류는 어떤 물질들을 약으로 사용했을까?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기원전 4000년경부터 3000년경까지 점토판에 550종이나 되는 의약품 목록을 기록해 놓았는데 놀랍게도 소똥과 말똥, 썩은 고기와 기름, 불에 태운 양털, 돼지 귀지 같은 것들이다. 그들이 '약이 아닌 것'을 '약'으로 썼던 것은 질병을 악마가 몸속에 침투해 생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약이 아닌 약'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은 '의학의 성인' 히포크라테스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251쪽, 1만6천원. ▶지은이 사토 겐타로는… 1970년 5월 8일 효고현에서 태어나 도쿄대 이과대학교 이학부 응용화학과를 졸업했으며, 도쿄공업대학교 대학원에서 유기합성화학을 공부했다. 현재 과학 전문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화학 관련 잡지에 칼럼을 연재한다.

2018-05-12 00:05:10

한권으로 만나는 전국 맛집 3,245곳…『전국의 맛집 2018』

"이 책 한 권으로 전국의 내공 있는 맛집을 한 번에 만나보자." 맛집 평가 사이트 '블루리본 서베이'가 올해 '전국의 맛집' 2018년판을 선보였다. 음식 관련 전문가와 2만 명이 넘는 식도락가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서울을 제외한 전국의 수준 있는 맛집을 지역별로 소개하고 있다. 올해 이 책에 수록된 맛집은 3천245곳으로 지난해 3천304곳보다 59곳 줄어들었다. 올해 특이할 만한 것은 리본 3개를 받은 곳이 단 1곳이라는 점이다. 세종시의 프랑스식 레스토랑 '시옷'으로 국내 프렌치 오너셰프 1세대이자 20여 년 동안 정통 프렌치를 선보이는 서승호 셰프의 레스토랑으로, 전년도에 이어 올해도 좋은 평가를 받아 리본 3개를 유지해 전국 최고의 맛집으로 선정됐다. 리본 2개 맛집은 139곳으로, 지난해 137곳보다 2곳이 늘어났으며 리본 1개 맛집은 1천224곳에서 1천186곳으로 38곳이 줄어들었다. '전국의 맛집'은 2015년판부터 중부지역 편과 남부지역 편을 한 권으로 합본해 발행하고 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블루리본 추천 맛집, 2부 전국의 맛집, 3부 찾아보기 순이다. 3부에서는 책에 수록된 전국의 맛집을 음식 종류별, 가나다순으로 나열한 찾아보기를 수록해 원하는 맛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블루리본 서베이는 보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대다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결과를 제공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2006년 4월부터 자체 웹사이트(www.blueR.co.kr)를 통해서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평가가 이뤄지고 있으며, 이러한 평가 결과는 리본의 개수로 표시된다. 이 중에서 리본 2개를 받은 음식점을 대상으로 블루리본 기사단의 최총 평가를 거쳐 리본 3개를 받을 음식점을 선정한다. 대구에서 선정된 맛집은 ▷남구 20곳(그저모이기·금성반점·김천식당·낙산가든·대덕식당·대동강·대해복어·런던플랏·세창만두·청학식당·후포회수산 등) ▷달서구 9곳(가야성·김주연왕족발·남강장어·당인가차이나타운·데일리베이킹스튜디오·버들식당·석봉포차·신신반점·오월의아침·편대장영화식당 죽전점) ▷달성군 8곳(가창칼국수·박곡칼국수·살롱드이안·원조동곡할매손국수·원조현풍박소선할매집 곰탕·유심정·큰나무집·홍빠오) ▷동구 16곳(거창할매집·고향차밭골·구불로식당·꼬꼬하우스·노코루·만나식당·산골기사식당송이순두부집·삼아통닭·성공식당·신성가든·황정승 등) ▷북구 14곳(거창식당·단골식당·련·싱글벙글 막창전문점·왕근이칼국수·인도방랑기·자갈마당 복어·칠성동할매콩국수 등) ▷서구 6곳(똘똘이식당·명성식당·배박사 늑대갈비·복들어온날·제비원식당·최영경할매빈대떡) ▷수성구 49곳(대어초밥·더키친노이·둥굴관·라벨라쿠치니·라우스터프·마루막창·만반·묵돌이·민수사·바우만·산꼼파·분더브래드·뺑드깜빠뉴·신짜오·아리조나막창·일리아나레스토랑·정이품·전라도꽃게장·투베어스마켓·화청궁·허대구대구통닭 등) ▷중구 86곳(8번식당·강산면옥·개정·국일생갈비·교동따로식당·낙영찜갈비·남문납짝만두·노엘블랑·녹양·대동면옥·마산설렁탕전문·로타리식당·만리장성·미성당납작만두·미야꼬·백록식당·복해반점·부산안면옥·부창생갈비·산시로·삼송빵집·상주식당·성주숯불갈비·송학구이·영생덕·왕거미구이·유경식당·중앙떡볶이·진골목식당 등) 이 책에는 대구뿐 아니라 경북에도 한식(일반한식, 가금류, 민물어패류, 어패류, 면류, 육류, 탕·국·찌개), 중식, 일식, 이탈리아식, 디저트, 기타 등 300곳 안팎의 맛집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632쪽, 1만9천원.

2018-05-12 00:05:10

[반갑다 새책] 나뭇잎 물음표

나뭇잎 물음표/ 백점례 지음/ 고요아침 펴냄 매일신문 신춘문예 출신 백점례 씨가 1년 만에 시조집을 펴냈다. 백 작가는 201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작 '버선 한 척, 문지방에 닿다'는 시조에서 버선과 문지방을 시어(詩語)로 영혼의 고요를 뛰어나게 형상화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설을 쓴 정숙자 시인은 백 시인의 시 세계를 '고요한 경청과 발효의 문양'으로 정리하고 누구보다도 속 깊은 경청과 그것의 발효를 단정하게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현대의 역동성을 추구하기보다 비움으로 간소하고 단아한 시조 세계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정환 시인도 추천사에서 "백 시인은 언어의 샅바를 부여잡고 씨름하는 일을 오랫동안 잘 견디며 자아와 세계의 속사정을 면밀히 탐구해왔다"며 "그 덕에 자연의 함의(含意)를 표현하거나 현실 문제를 들추어낼 때 명료하다"고 평가했다. 시인은 68편의 작품을 통해 특유의 겸허와 조율한 문양을 시편(詩篇)에 가지런히 담아냈다. 110쪽, 1만원.

2018-05-12 00:05:10

[반갑다 새책]압독국의 맥박1, 2

압독국의 맥박1, 2/ 배석두 지음/ 정문출판사 펴냄 경산의 삼국시대 초기 소국 '압독국'을 주제로 한 소설 '압독국의 맥박 1, 2'가 출간됐다. 1960년대 후반, 고교를 졸업한 19세 청년 영석과 그 친구들이 의문의 토기를 마주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토기가 압독국 토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영석과 친구들은 2천 년 전 이곳에 존재했던 고대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압독국 실체를 찾아 나서면서 주인공은 압독국의 토기가 맥반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맥반석 토기가 신라시대 유물에도 사용됐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경북대 출신의 저자는 머리말에서 "고분들은 2천 년 전 압독국 선조들의 삶이 묻힌 곳이다. 선인들의 숨결이 깃든 고분 언저리는 우리들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 소년 때를 벗어나면서 밀어를 나누던 이곳은 그 어떤 곳보다 초월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적고 있다.

2018-05-12 00:05:10

조선일보 1928년 11월21일 자에 실린 임꺽정 제1회.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홍명희의 '임꺽정'과 경세제민

일제강점기 조선 삼대 천재로 불리는 세 명의 인물이 있다. 이광수, 최남선, 그리고 홍명희이다. 이 세 사람은 함께 일본 유학을 하며 근대를 배웠고, 함께 조선 신문학 건설의 꿈을 지녔으며 함께 조선의 근대와 자립을 향한 열망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독립이 요원해지자 사람들은 지쳐갔고 이광수와 최남선 역시 꿈을 버리고 친일을 향해 나아갔다. 그 신산한 세월 속에서 홍명희는 마지막까지 친일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버텼다. 경술국치를 한탄하며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어 자결한 부친 홍범식과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일제와 타협하지 않았다. 대하 역사소설 '임꺽정'(1928~1940)은 일제라는 폭력적 시대에 대한 홍명희 나름의 저항 기록이었다. '임꺽정'은 연산조에서 명종조에 이르는 어지러운 시대의 상황묘사에 긴 분량을 할애하면서 시작된다. 소설은 세밀한 시대 상황 묘사를 통해서 왜 임꺽정이라는 도적이 조선 중기에 출현했으며, 왜 그가 민중의 지지를 얻을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해간다. 여기에 이어서 임꺽정이 스승 갖바치와 함께 한라산에서 백두산에 이르는 조선 전국토를 여행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홍명희는 '임꺽정'에서 조선의 역사와 조선 국토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되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억이란 일본제국이 조선인들의 머릿속에서 지우려 한 조선인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임꺽정'에서 홍명희가 되살리고 있었던 것은 조선에 대한 기억만이 아니었다. 의적 임꺽정의 반역 모티프를 통해 저항의 정신을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불러내고 있었다. 조선조 명문 사대부 집안 후손 홍명희가 백정 임꺽정의 반역 정신을 지지하다니, 도대체 홍명희는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홍명희가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힌 것은 한문 경전이며 한시였다. 그는 수백 년 전 역사 속 인물들이 남긴 한문 경전이나 한시의 문맥을 읽으면서 지식만이 아니라 경세제민(經世濟民) 의식과 정신을 함께 마음에 익히고 있었다. 조선조 명문 사대부 후손인 홍명희가 양반 지배계급의 척결을 외치던 임꺽정의 반역 정신에 눈을 돌린 것은 한문 경전에 내포된 '경세제민'이라는 정신의 틀에 비춰볼 때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일제에 타협하지 않은 의지 역시 이 정신의 틀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시즘 같은 다양한 서구 학문을 공부하고,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소설을 탐닉했어도 홍명희 정신세계의 핵심은 언제나 한문경전과 맥이 닿아 있었다. 그의 정신은 스물두 살이던 1909년 지은 칠언율시 구절, '우국일심역로'(憂國日深易老·나라 걱정 날로 깊어 마음은 쉬이 늙고)의 세계 속에서 언제나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2018-05-12 00:05:10

초록의 숲

[내가 읽은 책]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두레/2017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두레/2017 도토리 한 알. 혼자서는 힘이 없다. 그러나 도토리가 흙을 만나 나무가 되고, 나무가 모여 숲이 되었을 땐 이야기가 다르다. 울창한 초록의 숲은 시냇물 소리, 새들의 노랫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만들어 낸다. 그것이 도토리 한 알에서 시작되었다고 누가 상상이나 할까. 하지만 더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그 울창한 숲이 보잘것없는 한 노인 혼자 일궈낸 것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장 지오노(Jean Giono·1895~1970)는 『나무를 심은 사람』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 남부 오트 프로방스의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쟁의 참화를 겪은 뒤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전쟁 반대, 무절제한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 참된 행복의 추구, 자연과의 조화 등이 그의 작품의 주제가 된다. 34세 때 첫 작품 『언덕』을 발표하면서부터 역량 있는 신예작가로 주목을 받았고, 약 30편의 소설과 에세이, 시나리오를 써서 20세기 프랑스의 뛰어난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장 지오노는 실제로 오트 프로방스를 여행하다가 혼자 사는 양치기를 만났는데, 그는 황폐한 땅에 해마다 끊임없이 나무를 심고 있었다. 작가는 여기에 큰 감명을 받아 이 책의 초고를 썼으며, 그 후 약 20년에 걸쳐 글을 다듬어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야기가 그토록 생생하게 들리는 것은 자신이 크게 감동한 실제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이야기 속 노인 '엘제아르 부피에'는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실의에 빠지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의심을 품는 일 없이 꾸준히 나무를 심어왔다. 그가 한 일은 도토리를 땅에 심는 단순한 노동이었지만, 그것이 불러온 변화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메마르고 거친 바람 대신에 향긋한 냄새와 함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때 난폭하고 원시적이었던 사람들도 젊음과 활력으로 넘쳐났다. 고집스럽게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낸 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이 노인을 '위대한 혼과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70쪽)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비록 배운 것 없는 노인이었지만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기에'(9쪽) 그의 인격을 고결하다고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노인을 통해 작가는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 어떤 사람도 거룩한 생각을 품고 굽힘 없이 목표를 추구해 나가면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ㄱ,ㄴ,ㄷ,ㄹ. 혼자서는 힘이 없다. 그러나 자음이 모음을 만나 단어가 되고, 단어가 모여 글이 되었을 땐 이야기가 다르다. 아니, 다르길 소망해본다. 이 글이 누군가를 『나무를 심은 사람』에게로 이끈다면. 그 책에 감동을 받은 사람 하나하나가 각자의 자리에서 고결한 인격을 발휘한다면. 그러면 언젠가 우리는 몰라보게 달라진 세상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도토리 한 알이 초록의 숲이 되는 것처럼….

2018-05-05 00:05:03

쇼스타코비치 '혁명 선율' 탄생, 러시아 현대사 반추하다…『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M.T. 앤더슨 지음/장호연 옮김/돌베개 펴냄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생애와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과 생애를 통해 러시아 현대사를 반추하는데,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길고 잔혹했던 레닌그라드 전투와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페트로그라드로, 다시 레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는 동안 명멸했던 사건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쇼스타코비치 "내 교향곡은 묘비다" 책의 줄기는 쇼스타코비치의 생애다. 190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이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안온한 삶과 작별하는 이야기부터 1975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70년의 세월이 시간순으로 펼쳐진다. 쇼스타코비치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소개하며,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과 당대 예술계의 풍경을 넓게 조명한다. 책 초반부이자 쇼스타코비치 청춘기에는 혁명의 기쁨과 내일에 대한 기대로 들끓는 젊은 예술가들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하지만 혁명의 끝은 처참했다. 예술 분야 미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마야콥스키는 자신이 건설에 참여했던 세상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권총으로 자살했다. 쇼스타코비치의 동료였던 연극 연출가 메이예르홀트는 갖은 고문을 당한 뒤 처형됐고, 메이예르홀트의 부인이자 배우였던 지나이다 라이흐는 무단 침입한 괴한의 칼에 난자당하고 눈이 도려진 채 죽었다. 음악 애호가였으며 쇼스타코비치의 후견인이었던 붉은 군대 투하쳅스키 원수는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했다. 피와 죽음은 끝없이 이어졌다. 예술가와 지식인, 농민, 노동자, 군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처형당했다. 훗날 쇼스타코비치는 이렇게 회고했다. "내 교향곡은 대부분 묘비다." ◇나치 독일의 공격을 견디기 위해 작곡 이 책의 핵심 부분은 '레닌그라드 전투'와 그 참혹한 가운데에서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가 탄생하는 이야기다. 독일의 2년 반 동안에 걸친 레닌그라드 포위 공격과 굶주림, 추위로 100만 명이 넘는 러시아 시민들이 죽었다.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나치의 포위 공격과 소비에트 독재라는 이중의 압박을 동시에 받았다. 스탈린 독재는 자유로운 영혼을 짓누르는 유령 같았고, 숙청 위협은 그림자처럼 그의 머리 위에 도사리고 있었다. 1941년 쇼스타코비치는 독일의 포위 공격으로 초토화된 레닌그라드 시민들을 찬양하고 추모하기 위해 '교향곡 7번' 작곡에 들어갔다. 이곡은 쿠이비셰프에서 사무일 사모수트가 지휘하는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1942년 3월 5일 초연됐다. 소비에트 당국은 이 곡을 반(反)나치 투쟁의 찬가로 치켜세웠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가 곡에 담은 정신이 나치에 대한 저항인지,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독재자 스탈린에 대한 저항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거나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던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이 곡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었고 다시 살아갈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나아가 이 곡을 들은 세계인들은 러시아의 곤경에 뜨겁게 공감했고, 광범위한 원조의 손길을 내밀었다. 러시아가 길고긴 레닌그라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끝내 무릎 꿇지 않은 도시 레닌그라드 이 책은 잔혹한 적들 앞에서 끝내 무릎 꿇지 않은 도시 레닌그라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시를 봉쇄하고 지독하게 몰아붙이는 독일군에 죽음으로 저항하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불굴의 정신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고통 속에서도 당시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음악과 예술과 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문명인임을,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따뜻한 인간임을 증명하고 보여주었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적을 물리치기 위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투에 임했고,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도왔다. 전투가 이어진 900일 동안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죽고, 거리마다 집집마다 매장하지 못한 시체가 뒹굴고, 집에서 기르던 동물을 잡아먹고, 식인 행위까지 은밀히 저질러졌지만, 끝내 그들은 살아남았다. 역설적이게도 문화예술의 도시 레닌그라드를 파괴한 인물은 히틀러가 아니라 스탈린이었다. 자신을 3인칭 '스탈린 동지'로 지칭하기를 즐겼던, 변덕스럽고 포악한 독재자 스탈린은 무모한 5개년 계획과 숙청으로 러시아 전역에 피바람을 일으켰다. 지은이는 "레닌그라드를 파괴한 것은 스탈린이고 히틀러는 그저 마무리했을 뿐이다. 이 책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은 인류의 두 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범죄를 고발하는 책이다"고 말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스탈린의 압제 아래 쇼스타코비치가 유배되거나 망명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그를 타협과 순응으로 목숨을 부지한 겁쟁이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실제로 쇼스타코비치는 정부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대신 쓴 선전 기사에 기꺼이 서명했다. 자신의 친구들을 수없이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밀경찰 NKVD의 악단을 위해 활기찬 춤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충성스러운 스탈린주의자였을까, 반체제 인사였을까? 기회주의자였을까, 소신 있는 사람이었을까? 지은이는 이렇게 답한다. "어느 쪽도 아니다. 그는 살아남으려고 애썼다."(481쪽)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친구들을 도우려고 애썼고, 대공포 시대에 감옥에 갇히거나 죽은 무고한 사람들의 누명을 벗기려고 최선을 다했다. 전쟁 후 스탈린이 또 다른 숙청을 준비하는 기미가 보일 때 스탈린과 그 부하들을 은밀히 조롱하는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고, 그렇게라도 조롱해야 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이 목숨을 부지한 방식을 수치스러워했다고 한다. 내키지 않는 선택과 굴종을 강요받았던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조건에서 살아가는 제3자가 함부로 평가할 일은 아닐 것이다. 546쪽, 2만2천원. ▷지은이 M. T 앤더슨은… 1968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나 보스턴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소설 쓰기, 만화 그리기, 컴퓨터 어드벤처 게임에 빠져 청소년기를 보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역사소설 '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 1: 천연두 파티'로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2018-05-05 00:05:03

[책 CHECK] 쓸모없는 세월은 없다

쓸모없는 세월은 없다/이영만 지음 / 페이퍼로드 펴냄 10년, 20년 시간이 쌓일수록 우리는 흘러간 시간에 대해 후회를 하기도 하고, 다시 못 올 순간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때로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이처럼 인생을 헛산 것 같은 허무감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쓰라린 가슴에 약이 되는 30여 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저자는 기자 생활을 40년이나 했다.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인생을 엿보아 오는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내면의 지혜를 얻었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쓸모없는 세월은 없다'는 것. 저자는 서문에서 '지금 살아있는 게 가장 큰일이고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한다. 저마다 인생의 과제가 다르고, 당장 손에 쥔 부와 명예도 천차만별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평탄해 보이는 삶이라 할지라도 군데군데 굴곡이 있으며,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해서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의 무게와 파고를 견디면서 그럭저럭 살아온 것만으로도 우리네 인생은 박수를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말한다. 166쪽, 1만1천200원.

2018-05-05 00:05:03

[책 CHECK] 밥 먹여주는 인문학

밥 먹여주는 인문학/ 이호건 지음/ 아템포 펴냄 이 책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통해 오늘날의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문학 안내서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생, 감정, 관계, 혁신, 생각 등 5가지의 대주제를 바탕으로 35개의 키워드로 일상에서 마주치는 질문을 던진다. '나의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정말로 꿈은 이루어질까' '고통은 왜 찾아오는 것일까' '우리는 왜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인생의 화두부터 '첫사랑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면' '약점은 숨겨야 할까, 드러내야 할까' 같은 인간관계에서의 소소한 질문까지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인문학이 결코 멀고 높은 곳에 있는 고상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살아가듯 우리의 삶 속에 녹아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은 인문학이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 일상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고, 현실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올바른 삶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게 해준다. 268쪽, 1만4천500원.

2018-05-05 00:05:03

살 만한 터전을 가꾸는 일, 삶의 철학 '풍수'…『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

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 최원석 지음/ 한길사 펴냄 우리 민족에게 풍수는 생활 속에 녹아든 삶의 철학이자 생활의 중요한 요소였다. '살 만한 터전'을 가꾸는 일 자체가 풍수였고, 체계화된 지리(地理)는 우리의 전통적 사고구조의 한 축이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기후, 풍토 여건에 맞춰 창의적으로 실천해온 삶의 태도이자 방식이기도 했다. 이런 풍수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종의 미신처럼 취급되었다. 그러면서도 일제는 전국의 명당에 쇠말뚝을 박는 비문명적이고 이중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우리 시대의 '산가'(山家)로 불리는 최원석 경상대 교수가 풍수에 관한 연구 성과를 정리한 책을 펴냈다. 저자는 오늘날 왜곡된 인식을 안타까워하며 우리 풍수의 본모습을 밝히려 애쓰고 있다. 각종 사료와 도판, 사진을 활용했다. ◆미신, 실용, 과학 사이 애매한 정체성 오늘날 우리에게 풍수는 미신과 실용, 신비와 경험, 사실과 허구가 섞인 애매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누군가는 TV 프로그램에서 정체가 불분명한 무속인이나 도인을 섭외해 수맥을 찾거나 비현실적인 운명론에 대해 논하는 것을 떠올린다. 저자는 이런 우리 사회의 풍수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합당한가 묻는다. 1천여 년 전부터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은 풍수는 단순히 과학으로 극복해야 할 낭설에 불과한가. 이 책은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한다. 최 교수는 우리 풍수는 현장에 가서 직접 봐야 그 실체를 알 수 있는 '생활풍수'에 가깝다고 말한다. 문헌에 남아 있는 좌청룡 우백호 같은 이론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마을 고유 풍수설화나 오래 가꿔온 경관에서 한국풍수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풍수 지식 체계는 한국인의 자연에 대한 태도와 문화경관 입지에 영향을 주고 자연경관을 문화 경관으로 바꾸는 인자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고려, 조선 거치며 민간 생활 속으로 한국풍수의 또 다른 특징은 불교와 결합이다. 불교는 한국에 전파된 최초 종교라는 점에서 두 사상의 결합은 필연적이었다. 이는 한국풍수 시조를 승려인 도선(道詵)으로 보는 것이나 사찰을 지을 때 대부분 풍수적 입지를 고려한 것을 봐도 잘 드러난다. 풍수는 8세기에 중국에서 전해졌지만 고려시대 들어와 불교와 결합하며 한국 풍수 특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명찰의 입지(立地)에만 풍수가 활용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지배층이 일종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풍수를 활용했다. 왕건의 '훈요십조'(訓要十條)나 묘청의 '서경천도론'이 대표적 사례다. 또 왕궁이나 왕릉, 국가 사찰 등을 만들 때 풍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일반 백성들과 왕실을 차별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런 계급적, 귀족적 풍수사상은 조선시대가 되면서 민간의 삶에까지 뿌리를 내리게 된다. 조선시대 유교 지식인들은 풍수를 주자학이라는 준거를 가지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크게는 국가적 제도에서 작게는 향촌사회의 공간담론과 개인적 주거생활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1세기 한국 풍수의 올바른 발전 방향 저자의 관심은 21세기 학자들은 풍수를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가에 미친다. 최 교수는 서양의 연구에서 평가된 풍수의 의의와 비전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환경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발전 대안 ▷심미적 경관미학 ▷지속가능한 주거지 입지선택과 건축 디자인 적용 ▷환경과 생태적 가치의 증진 등에서 그 가치를 찾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문화 다양성 가치가 중시되는 오늘날 풍수가 동아시아적 환경지식체계의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존하는 풍수경관은 자연과 문화의 통합적 유산으로서 문화적 경관자원이기도 하다. 한국의 왕릉과 하회·양동마을의 풍수적 입지요소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던 것도 그러한 맥락에 있는 것이다. 한국 풍수의 역사와 의의 그리고 오늘날 연구 성과까지 집대성한 이 책은 사회, 문화, 정치, 지역적인 접근 방법으로 풍수연구의 새로운 지평과 학문적 체계를 수립하려는 노력을 담아냈다. 21세기 풍수 르네상스를 꿈꾸는 저자는 마지막 5장에서 "최근 풍수에 관한 이론이 양적, 질적으로 해석 수준이 높아졌다"며 "과거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현대적, 과학적 접근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짚었다. 무엇보다 한국과 동아시아를 넘어 서구에서도 풍수에 관심이 커지고, 연구가 급증하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고려와 조선이 풍수사상에 다양한 시류(時流)를 담아냈듯, 현대에서도 한국 풍수가 세계의 담론으로 확장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676쪽, 2만4천원.

2018-05-05 00:05:03

[반갑다 새책] 천문과 지리 전략가 이순신

천문과 지리 전략가 이순신/이봉수 지음/ 시루 펴냄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지 4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에 대해 열광하고 있다. 그의 업적, 리더십, 인간적인 캐릭터를 분석한 책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최고 이순신 연구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저자는 이순신의 전략전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전투를 치렀던 장소를 직접 가봐야 한다는 믿음으로 지난 20년 동안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남해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이순신이 처음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노량해전지까지, 지난 20여 년 동안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새롭게 발견한 모든 내용이 총망라 됐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이순신의 리더십이나 인간적인 면에 감춰져 있던 천문과 지리에 대한 그의 놀라운 통찰과 혜안을 철저한 현장 답사를 통해 밝혀냈다. 304쪽, 1만6천원.

2018-05-05 00:05:03

[반갑다 새책] 청년의인당

청년의인당 최태욱 지음/ 책세상 펴냄 비정규직 노동자, 소상공인, 청년이 70∼80%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데, 국민의 선거로 구성된 우리 국회에 왜 이들을 대표하는 정당이 없을까? 정치제도 개혁을 위해 노력해온 정치학자 최태욱 교수(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가 한국 사회 정치개혁을 화두로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2016년 5월의 광화문 광장은 100만여 명의 청년들로 가득 채워졌다.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행진'을 선포한 청년들은 국회로 진격해 들어갔고 4천여 명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해 한 달간 농성에 돌입했다. 청년들의 국회 점거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는 물론 소설 속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청년 봉기'는 과연 가상의 사건이기만 한 것일까? 픽션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청년 문제가 현실에서 너무나 심각하다. 저자는 '청년들의 봉기'를 통해 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하는지, 개혁은 누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개혁을 하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414쪽, 1만4천800원.

2018-05-05 00:05:03

역사를 바꾼 유명 전투, 병법 어떻게 구사했나…『승리의 길』

승리의 길/ 공손책 지음, 이인호 옮김/ 뿌리와 이파리 펴냄 중국 역사에 나오는 10개 명전투를 통해 10인의 명장이 어떻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10개 명전투를 손자병법의 이론을 적용해 풀어낸다. 손자병법은 중국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병법서다. 흔히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不戰而屈人之兵) 등도 손자병법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이 책의 저자인 공손책은 시종일관 실전 사례로 '손자병법'을 검증한다. 중국 은상(殷商) 시대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의 역대 명장을 선별하고, 그들이 어떻게 병법을 구사했는지 분석한다. 더불어 10대 명장들이 주도한 전쟁이 중국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풀이한다. 10개 명전투 중에는 널리 알려진 적벽대전(赤壁大戰) 이야기도 있고,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전투도 있다. 대만의 저명한 역사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타고난 이야기꾼의 재주를 살려서, 실감 나게 역사 속 명전투와 명장들을 현시대로 불러온다. 이 책은 손자병법의 현대화를 목표로 핵심 원문을 가미해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 역사적 전투 사례를 통해 현대적 의미를 찾아낸다. 이 세상은 지금도 전쟁터나 다름없다. 사업, 경영, 투자는 물론이고 취업이나 전직에도 이 책의 교훈을 통해 유익하게 적용할 수 있다. 서두에는 중요 전투와 왕조 교체(하-은상-서주-춘추전국-진-서한-신-동한-삼국-서진-동진·오호십육국-남북조-수-당-송·요·금-원-명-청) 일람표 그리고 지은이의 서문 '행운으로 명장이 된 자는 없다'는 제목의 글을 싣고 있으며, 프롤로그에는 전략의 시조 '강자아'와 전략의 신 '손무'의 기록을 소개한다. 이 책이 소개하는 10개 명전투는 ①목야전투(은상-서주, 주 무왕이 800제후와 연합하여 은상의 주왕을 멸하고 주 왕조를 건립했다) ②장평전투(춘추전국-진, 진나라가 조나라를 철저하게 무너뜨린 이후 동방 여섯 제후국은 진나라의 밥이 되었다) ③거록전투(진-서한, 항우가 장한을 격파한 순간 진나라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④곤양전투(신-동한, 유수가 왕망의 백만 대군을 격파한 순간 신 왕조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⑤관도전투와 적벽대전(동한-삼국, 관도전투는 조조가 원소를 격파하고 북방을 평정한 전투며, 적벽대전은 손권·유비 연합군이 조조를 격파해 위·촉·오 삼국시대를 연 큰 전쟁) ⑥비수전투(동진·오호십육국-남북조, 전진의 부견이 남방 정벌에 나섰다가 크게 패하자, 북방과 남방이 각자 분할통치하는 남북조시대가 열렸다) ⑦호뢰전투(수-당, 이세민이 두건덕을 격파하자 왕세충이 투항했다. 통일은 이로써 확정됐다) ⑧고량하전투(송·요·금, 북송이 무너졌다. 이때부터 중국은 북방 이민족에게 고개를 숙이고 수모를 당했다) ⑨파양호 전투(원-명, 주원장이 진우량을 격파하자, 나머지 군웅을 제압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⑩사르후 전투(명-청, 누르하치는 4개 노선으로 진격하는 명나라 군대를 한 방에 격파했다. 후금(이후 청나라)의 공세에 명나라는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이 책을 옮긴 이(이인호)는 "승리한 명장은 어떻게 승리의 길로 이끌었는지, 패장은 어떻게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됐는지를 비교해보라"고 권한다. 292쪽, 1만6천원.

2018-05-05 00:05:03

[이종문의 한시 산책] 맛있는 이 음식, 어머니께 드릴 수 있다면

밥상을 받고 정온 이 가난을 어쩔거나, 어머니는 늙었는데 慈顏已老奈家貧(자안이로내가빈) 끼니마다 입에 맞는 찬도 못해 드리다니 朝夕傷無適口珍(조석상무적구진) 상다리 부러지겠네, 어디 가도 산해진미 到處盤中多異味(도처반중다이미) 젓가락 들다가 말고 멀리 계신 엄마 생각 悵然臨箸遠思親(창연임저원사친) *원제: 對案有感(대안유감: 밥상을 마주하고 느낌이 있어서) 이 시를 지은 동계(桐溪) 정온(鄭蘊: 1569~1641). 그는 가을 서리처럼 숙연하고도 강개한 품성의 소유자였다. 예컨대 그는 당시 국왕이던 광해군에게, 광해군 일파의 사주를 받고 영창대군을 죽인 정항을 참수하라는 격렬하기 짝이 없는 상소문을 올렸다. 역린(逆鱗)을 건드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라를 들다 말고 상소문을 읽고 있던 광해군은 수라상을 뒤집어 엎어버렸고, 동계는 머나먼 제주도에서 10년 동안이나 위리안치 당했다. 인조반정으로 정계에 다시 복귀한 그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김상헌과 함께 척화파의 최선봉에 서서, 청나라와 사생결단의 맞짱을 뜨자고 주장했다.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조가 마침내 항복을 결정하자, 동계는 차고 있던 칼로 배를 찔러 자결을 감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격렬하고도 서슬 퍼런 품성을 지녔던 동계도, 어머니 앞에서는 감성의 결이 부드러워지는 착한 아들에 불과하였다. 귀양에서 풀려나 벼슬을 제수받고 서울로 갈 때도 먼저 고향으로 내달려가 어머니의 품에 안겼던 사람이다.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감정을 즉물적(卽物的)으로 토로하고 있는 위의 시를 봐도 역시 그렇다.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을 때, 그는 몹시도 가난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이미 늙으신 어머니의 입에 맞는 음식조차도 제대로 해드리지 못하였고, 그것이 항상 가슴에 사무쳤다. 그런데 그는 지금 가는 곳마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푸짐한 밥상을 받고 있다. 하지만 산해진미가 아무리 가득해도 젓가락을 제대로 들 수가 없다. 찬물에 보리밥을 말아서 들고 계실 어머니 생각에 망연자실의 심회를 금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중(盤中) 조홍(早紅) 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 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 하나이다." 국민 시조인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의 '조홍시가'(早紅柿歌)다. 결국 계실 때 잘 하라는 얘긴데, 그게 도무지 잘 안 되니, 아아!

2018-05-05 00:05:03

옛 강학소 모습.

[내가 읽은 책] 내가 읽은 책/'인생, 너무 어렵게 살지 마세요', 이태형, 국민북스, 2017

과연 그럴까? 이 책은 인생, 너무 어렵게 살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인생을 쉽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말만 들어도 묵직하고 진중함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거나 사표(師表)로 삼을 만한 분이 있다면 그를 마음에 두고 배우려 한다. 저자 이태형은 언론계에서 26년간 활동한 베테랑이다. 이 책은 그가 만난 열두 명의 멘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터뷰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 독자에게 즐거운 사색을 선물한다. 혜민, 김용택, 이어령, 고은, 이철환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멘토들. 이 중에는 내가 만나 본 사람도 있고 꼭 한번 만나고 싶은 분도 있다. 과거에는 존경받는 멘토였으나 지금은 국민적 지탄을 받는 이도 있으니 한 권의 책이 요지경 속 세상 같다. 멘토란 무엇일까? 멘토(mentor)는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오랜 기간 조언과 도움을 주는 경험자라고 나온다. 아직 국립국어원이 멘토를 외래어로 분류하지 않아 오픈사전의 설명을 빌렸다. 참고로 국립국어원은 멘토 혹은 멘터를 '인생길잡이'로 순화하라고 한다. 그렇긴 해도 멘토는 그 나름대로 언중의 입에 정착된 말이다. 많은 출판물이 그대로 쓰고 있다. "당신은 멘토가 있습니까?" 방송인 김제동은 방송에서 "멘토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 누가 누구에게 뭔가를 가르친다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리가 있다. 반면에 '프레임'의 저자 김인철 교수는 "사람은 배우려는 자와 배우지 않으려는 자로 구분된다"고 강연에서 말했다. 배우려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는 게 요지였다. 또한 이치에 닿는다. 오래전부터 '스승이 없는 시대'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안타까워하며 세상에 스승 혹은 멘토가 계속 나타나기를 소망한다. 정녕 우리 주변에 존경할 만한 멘토는 다 사라졌단 말인가. 그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지금은 한 술 더 떠 이런 말이 떠돈다. "스승이 없을뿐더러 학생도 없는 시대이다." 학교가 넘쳐나는데 학생이 없다니. 이 말은 일부 학생들의 무성의한 태도가 낳은 자조 섞인 풍자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딴짓을 해도 쉬이 나무라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는 것. '학생은 곧 고객'이라는 자본주의적 발상이 학교에 스며든 탓이 아닐까. 학생과 선생은 따로 존재할 수 없는 상보적 개념이다. 이 책은 멘토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준다. 세상에 전인적인 멘토는 없다. 멘토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오히려 멘토를 사라지게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저자는 멘토를 일방적으로 미화하거나 포장하지는 않았다. 우리보다 조금 나은, 그래서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길잡이라는 관점으로 멘토 이야기를 풀었다. 그것이 이 책의 독특한 매력이다. 인터뷰를 기사로 읽으면 삭막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단행본으로 접하면 의외의 새로움을 발견한다. 오랜 경륜이 낳은 필자의 문체도 맛볼 수 있다. 읽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고 명상이 된다.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은 대단히 인간적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솔직한 답변이 이어진다. 멘토의 인간적인 가르침, 그것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 아닐까.

2018-04-28 00:05:00

이태수의 15번째 시집 '거울이 나를 본다' 동시 출간

이번 '먼 불빛' 출간 때 이태수의 15번째 시집 '거울이 나를 본다'가 동시에 출판돼 화제를 모았다. 4부에 걸친 66편의 시를 통해 이태수는 역설적 자기 성찰로 '즉자-대자 아우르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자연과 내면을 넘나드는 심상 풍경을 서정의 언어로 떠올리는가 하면 변주를 거듭하며 추구해온 '초월에의 꿈'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시선집 '먼 불빛'이 등단 초기부터 '초월에의 꿈꾸기'로 일관하며 변모해온 문학적 여정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면, '거울이 나를 본다'에서는 역설적 자기 성찰로 심화된 형이상학적 이데아의 세계를 펼쳐보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144쪽, 1만원.

2018-04-28 00:05:00

詩, 45년간의 변주(變奏)…『이태수 시선집 먼 불빛』

시력(詩歷) 45년, 이상 세계 꿈꾸기와 그 변주(變奏)를 추구해온 이태수 시인이 새 시집 '먼 불빛'을 펴냈다. 1974년 등단 때부터 2018년 봄까지 14권 시집의 900여 편 가운데 100편을 엄선해 실었다. 시인은 권두언에서 '매듭 하나를 짓고 나니 적잖이 허탈하다'며 '길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이 걸음으로 가는 데까지 가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적고 있다. 황동규 시인은 그를 '자연과 신(神) 사이 인간의 불편한 진실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래해온 시인'이라고 평했고, 김주연 문화평론가는 '그의 언어는 성스러운 기도이자, 인간의 언어이면서 끊임없이 신성을 환기시킨다'고 평가했다. ◆남루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선친의 오랜 병고와 생활고는 소년 이태수를 내면으로 침잠시켰고, 샤르트르, 카뮈, 키르케고르의 실존주의는 청년 시인을 끊임없는 '삶에의 회의'로 몰아넣었다. 비루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역설적 대응을 모색하던 시절, 이태수는 자신의 초기작 사조를 이렇게 정의한다. "1970년대의 시는 표류하는 현실적 자아와 그림자에 이끌려 어두운 방황을 거듭하는 내면의 그늘을 교차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낮술'에서처럼 진정한 자아 찾기 아픔을 서정적 언어로 그려나갔죠." 무서워요. 눈 뜨면 요즈음은/ 칼날이 달려와요. 낮과 밤/ 꿈속에서도 매일 목 졸리어요./ 누군가 자꾸/ 자꾸 술만 권해요.// 거울을 깨뜨려요./ 구석으로 움츠리며 낮술에 젖어/ 얼굴 버리고 걸어가요. 요즈음은/ 아예 얼굴 지우고, 깨어서도/ 잠자며 걸어가요.// 걸어가요. 한반도의 그늘 속을/ 낮술에 끌리어 낮달처럼/ 희멀겋게 희멀겋게 다섯 잔/ 여섯 잔, 열두 잔-'낮술' 1980년대 들어와 이태수의 시는 말(言)을 비참하게 하는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이를 극복하려는 완강한 몸짓을 보인다. '우울한 비상의 꿈' '물속의 푸른 방'이 이 시기를 대표한다. "이 무렵 저의 시는 비현실적 상황 설정으로 새로운 길 찾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정서적인 꿈에 무게가 실린 건 현실을 도피하려는 게 아닌 극복을 위한 역설적 접근이었던 것이죠." 1980년대 후반부터는 시인은 너와 나의 문제를 축으로 인간관계에 눈을 돌리는 한편 신과 인간의 중간지점에 자리 잡으며 초월에 다다른 존재로서의 '그'를 찾아 나선다.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서 시작된 이런 초월자에 대한 경외는 '꿈속의 사닥다리'에서 본격화된다. ◆삶의 비애를 쓸쓸한 언어로 묘사=낮에는 실용문, 밤에는 시 작업. 매일신문에서 문화부 기자로, 데스크로 30년 넘게 근무하면서 이태수는 항상 이 딜레마에 갇혀 있었다고 말한다. 낮에는 기자로서 팩트(기사)를 써야 했고, 저녁엔 다시 오감에 몰입하는 시인의 숙명에 충실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이태수는 둥글고, 맑은 이데아로서의 '그'를 찾아 나서고,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이 그런 둥근 세계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기원과 초월에의 의지를 집중적으로 노래한다. 그의 집은 둥글다. 하늘과 땅 사이/ 그의 집, 모든 방들은 둥글다./ 모가 난 나의 집, 사각의 방에서/ 그를 향한 목마름으로 눈감으면/ 지금의 나와 언젠가 되고 싶은 나 사이에/ 검고 깊게 흐르는 강./ 모가 난 마음으로는/ 언제까지나 건널 수 없는 강./ 신과 인간의 중간 지점에서 그는 그윽하게,/ 먼지 풀풀 나는 여기 이 쳇바퀴에서 나는/ 침침하게, 눈을 뜬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그의 집은 둥글다. 하늘과 땅 사이/ 그의 집, 모든 방들은 둥글다.-'그의 집은 둥글다' 이 시기 이태수는 삶의 비애와 마주치는 아픔을 신성하고 처연한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문학평론가 오생근은 "이태수에게는 자신의 실존을 자각하고 덧없는 삶에 갇혀 있지 않으려는 의식이 어떤 그리움이나 기다림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음이 분명하다"며 "그것이 바로 시를 쓰는 마음의 원동력이 된다"고 분석했다. 그가 북부본부장으로 근무할 때 펴냈던 '안동 시편'엔 이방인으로서 안동을 다니며 깊게 흐르는 선비정신을 숭앙했고, '내 마음의 풍란'에서는 IMF 사태 등 세기말의 어둠이 우리 사회를 엄습했던 시절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현실 초월을 화두로 이상적 경지 꿈꿔=2007년 신문사를 퇴임하면서 이태수는 시인으로만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2008년 '회화나무 그늘'은 은퇴 후 일상에 내던져진 시인이 생활리듬이 깨지면서 방황하는 흔적들이 잘 나타나 있다. 2010년에 들어서서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나자 말에 대한 외경심이 커졌다. "이 시기에는 침묵과 비우기와 내려놓기가 제 작업의 화두였습니다. '침묵의 푸른 이랑' '침묵의 결'이 이 시기의 흔적입니다. 평소 귀감으로 삼아오던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라는 말의 뿌리까지 한번 내려가 보고 싶었죠." '침묵에 들기'에 집중하던 시인은 '따뜻한 적막'을 펴내며 칩거에서 빠져 나온다. 2016년 무렵 이태수는 대상을 포용하며 '적막'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시인의 마음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그동안 그는 1천 편에 가까운 시를 썼다. 꿈과 현실 사이를 떠돌며 여기까지 왔지만 여전히 꿈은 현실 저 너머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15권 시집 속엔 현실 초월을 화두로 삶의 이상적 경지를 꿈꾸며 내면 탐색을 거듭해온 시인의 실존적 방황이 감지된다. 신성한 세계 꿈꾸기를 통해 절대자에게 귀의하고 자기 성찰, 수신(修身)을 통해 인간으로서 복무에도 충실하지만 그의 모든 시적(詩的) 여정은 '먼 불빛'에서 오히려 뚜렷해진다. 232쪽, 1만2천원.

2018-04-28 00:05:00

몸집 크기가 결정하는 동물의 습성…『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

'동물의 몸 크기는 생존 전략이다.' 일본의 동물생리학자 모토카와 다쓰오 교수가 동물들의 생존 전략과 행동방식을 '몸 크기'를 통해 읽어내는 책이다. 가령 몸무게 3t의 코끼리와 30g의 쥐는 체중 차이가 10만 배다. 동물의 몸 크기가 다르면 수명이 다르고, 민첩성이 다르고, 개체가 느끼는 시간속도가 다르다. 행동권도, 생식 방법도 달라진다. 지은이는 동물의 몸집 크기와 앞에 서술한 여러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생명의 특성으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쥐나 코끼리가 어떤 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가는지 우리가 상상하도록 돕는다. ◆심장 박동수 일정의 법칙이란? 코끼리와 생쥐는 대략 10만 배 몸무게 차이가 있지만, 일생 동안 두 동물의 심장 박동 수는 약 20억 번으로 동일하다. 모든 포유동물은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심장이 4번 고동친다. 몸의 크기와 상관없다. 동물의 수명을 그 동물의 심장이 한 번 박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나누면 포유동물의 심장은 평생 20억 번 박동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호흡을 한 번 할 때 심장이 4번 고동치므로 평생 5억 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리적 시간으로 따지면 코끼리가 생쥐보다 훨씬 오래 산다. 쥐는 몇 년 밖에 못 살지만, 코끼리는 100년 가까이 산다. 그러나 심장 박동 횟수를 척도로 보면 코끼리나 쥐나 비슷한 길이만큼 살다가 죽는다고 할 수 있다. 생물의 생명시간은 '반복 활동'의 시간이다. 즉 심장 박동이 반복이듯, 숨쉬기, 창자 꿈틀거리기, 혈액 속으로 들어온 이물질을 밖으로 내보내기 역시 반복 활동이다. 몸집이 작은 동물이 민첩하게 움직이고(자주 반복 활동하고), 몸집이 큰 동물이 느릿느릿 움직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코끼리와 생쥐는 물리적 수명이 다르지만, 육체적으로 또 심리적으로는 같은 길이의 삶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몸집 크기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 책은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도 사람이라는 동물의 크기를 빼고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크기를 제대로 아는 것이 인류가 성공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비결이듯 각 개인으로서 사람 역시 자신의 크기를 아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작은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패자는 아니다. "작고 잽싸다는 것과 안정감이 있다는 것은 상반되는 성질이지만, 어느 쪽이든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다. 지구 환경은 변화가 전혀 없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천재지변의 연속도 아니었다. 현재 지구상에는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모두 함께 살고 있다." 책은 '몸집이 작은 것이 동물 계통의 조상이 되기 쉬운데, 작은 것일수록 변이가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작은 것은 한 세대의 길이가 짧고, 자손의 개체 수가 많기 때문에 단기간에 새로운 돌연변이가 출연할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물론 작은 동물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약하기 때문에 소수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도태될 가능성도 높다. 변화와 도태 가능성이 높다는 말은 새로운 계통의 조상이 되기 쉽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같은 계통에서 동물은 몸집이 큰 쪽으로 진화했다. 몸이 클수록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작아지므로 외부 환경 변화에 강하고, 천적이 줄어들고, 먹잇감을 얻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집이 크면 개체 수가 적고 한 세대의 수명도 길기 때문에 극복할 수 없는 환경 변화를 마주하면 변이종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멸종하기 쉽다. ◆현대인은 제 몸 크기에 맞게 살고 있나. 생물의 세계에서 몸의 크기와 시간, 구조, 에너지 소비량 등은 그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인간도 동물의 한 종이며 자연의 일부다. 현대인은 과연 전체 생태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제 크기에 맞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을까? 지은이 모토카와 다쓰오 교수는 "일본인의 평균 기초 대사량을 2천200w(와트)라고 볼 때, 그 기초 대사량을 동물에 대입하면 체중 4.3t, 즉 코끼리처럼 거대한 동물에 해당한다. 서식 밀도와 행동권에서 보자면 도시에 사는 현대인은 쥐와 같은 밀도로 살면서 코끼리 수준의 거리를 이동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생활양식은 비슷하다. 두 국민 모두 분명히 자연의 일부이지만 '몸집 크기를 바탕으로 하는 자연법칙'에서 상당히 벗어난, 어쩌면 '본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책은 총14장으로 구성돼 있다. ▷동물의 크기와 시간 ▷크기와 진화 ▷크기와 에너지 소비량 ▷식사량, 서식 밀도, 행동권 ▷달리기, 날기, 헤엄치기 ▷왜 바퀴 달린 동물은 없는 걸까? ▷작은 수영 선수들 ▷호흡계와 순환계는 왜 필요한가 ▷기관의 크기 ▷시간과 공간 ▷세포의 크기와 생물의 건축법 ▷곤충-작은 크기의 달인 ▷움직이지 않는 동물들 ▷극피동물-조금만 움직이는 동물. 280쪽, 1만4천원.

2018-04-28 00:05:00

[책 CHECK] 동시 먹는 달팽이

동시 먹는 달팽이/ 황수대 발행·편집/ 도서출판 심지 펴냄 이 책은 좋은 동시를 발굴하고 다양한 동시 담론을 생산함으로써 한국 동시 문학의 발전과 저변 확대에 기여하기 위해 펴낸 동시 전문 계간지 창간호(봄호)이다. 황수대 씨가 발행인 겸 편집인을, 박방희·이묘신·이옥근·전병호 씨가 편집위원을 각각 맡고 있다. 창간호에는 문삼석·노원호·최춘해·하청호 등 원로시인으로부터 강지인·김개미·박승우·신형건·이정록·박성우·이장근 등 시인 25명의 신작 동시·청소년 시가 각각 2편씩 실려 있다. 또 특집으로 황선열 평론가의 '2018 신춘문예 당선작 분석'과 창간 기획특집 좌담 '동시, 어떻게 하면 국민시가 될 수 있을까'와 같은 비평과 담론, 그리고 동시, 동시집 리뷰, 동시 놀이 활동 자료 등을 실었다. 운영위원장 박방희 시인은 권두언에서 "불편부당하며 출신이나 성분에 따라 차별하거나 홀대하지 않는 잡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잡지, 작가를 존중하고 정당하게 대우하는 잡지"가 될 것을 약속했다. 168쪽, 1만원. 정기구독료 1년 4만원, 2년 7만원, 3년 10만원. 국민은행 740901-01-591686(황수대). 문의 010-5465-4799.

2018-04-28 00:05:00

[책 CHECK] 자유·민주 그리고 삶의 작은 몸부림

자유·민주 그리고 삶의 작은 몸부림/ 장주효 지음/ 정문출판사 펴냄 이 책은 1942년 중국 봉천성 무순에서 태어나 귀국해 고교 2학년 때 2·28민주운동을 시작으로 4·19혁명, 6·3한일회담 반대 시위,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복역하는 등 현대사를 온몸으로 경험한 저자의 생애사 기록이다. 책은 1부 '출생 및 유·소년시절', 2부 '꿈꾸는 청년으로 성장', 3부 '자유의 함성 2·28이 있기까지', 4부 '6·3한일 협정반대와 기자 생활', 5부 '아버님의 별세와 생활인으로 돌아가서', 6부 '노동운동과 시민단체 활동', 7부 '참여정부 참여', 8부 '사회·문화·체육·기타 활동', 9부 '가족 이야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나의 생애사 기록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이었다. 나 개인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기가 정말 싫었다. 나도 모르게 자신을 미화하거나, 어떤 일에는 휘말려 오해 또는 상처를 받거나 상처를 주었던 일들에 대해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면서 "그러나 모든 걸 포기하는 기분으로 그냥 던졌다. 다음은 보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보려고 또 한 번 몸부림쳐볼까 한다"고 썼다. 저자는 기자, 은행지점장, 시민단체 대표 등을 지냈으며, 현재 대구미소금융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332쪽, 1만8천원.

2018-04-28 00:05:00

김남천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김남천 '사랑의 수족관'과 자신의 진정한 의미

푸른 잔디밭과 흰 백사장이 있는 아름다운 운동장, 곱게 다듬은 노가지와 향나무로 이루어진 울타리. 흰 페인트칠을 한 목재 건물의 푸른색 지붕 위로 펄럭이는 만국기, 그 사이로 울려 퍼지는 오르간 음률. 이 낭만적 풍경은 김남천의 소설 '사랑의 수족관'(1940)에서 여주인공 이경희가 조선에 세우려고 구상하는 빈민 탁아소의 모습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경희의 낭만적 구상이 이루어지던 1940년은 일제가 중일 전쟁에 이어 태평양 전쟁 참전을 준비하면서 조선 모든 아이들이 전쟁 물자조달을 위한 솔방울 줍기에 동원되고 있던 때였다. '사랑의 수족관'은 교토제국대학 출신의 토목기사 김광호와 조선 굴지의 재벌 대흥콘체른의 외동딸 이경희, 이들 두 남녀의 연애를 다루고 있다. 이 두 남녀는 서로 호감을 느끼면서도 쉽게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사회개혁의 이상을 품었지만 식민지의 폭력적 현실 속에서 서른의 나이로 죽은 형에 대한 기억을 안고 있는 김광호와 친일자본가를 아버지로 둔 이경희 간에는 극복하기 힘든 거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두 남녀 사이의 거리를 메워주는 것이 이경희가 구상한 '탁아소 운영'이라는 자선사업이다. 이경희의 탁아소 운영 구상을 '순정에 가까운 인도주의'라면서 냉소적으로 비판하던 김광호가 점차 그 실현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경희가 이 구상을 체계적으로 실현해가면서 둘은 마침내 심리적인 거리를 줄이고 사랑을 이룬다. 그러나 해피엔딩의 결말에 이르는 순간 작가 김남천은 왜 연애소설에서 자선사업을 사랑 실현의 해법으로 채택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소설이 발표된 1940년은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향해 나아가던 정치적 시대였으니 의문에 대한 답 역시 정치적 맥락 속에서 찾아도 좋을 것이다. 자선사업 모티프는 '사랑의 수족관'을 포함한 일제말기 대중 연애소설의 단골 메뉴였다. 연애소설에 빠진 수많은 대중들이 소설을 읽으면서 공공을 위해 헌신, 봉사, 희생하는 남녀 주인공의 숭고한 행위를 자신들의 마음에 새겨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연애소설 주인공의 희생적 행위에 동화된 대중의 마음이 국가를 위한 헌신, 희생의식이 절실하게 요구되던 전시 체제 아래에서 어떻게 활용되었을까는 충분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대중소설의 정치적 모티프로서 '자선사업'이 등장한 지 80여 년이 지났다. 오카다 세쓰코라는 칠순이 넘은 일본인이 대구에서 학대받은 한국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그 의도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노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한 끝에 얻은 순수한 결론일 뿐이라고 답하고 있다. 아울러 사재를 털어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 '함께 나눈다면 가난해도 아름답게 살 수 있다'고 답하고 있다. 가난해도 아름다운 삶, 인간의 선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말이다. '자선'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2018-04-28 00:05:00

[반갑다 새책] 최신 정치사회학

최신 정치사회학/ 윤용희 지음/ 책과세계 펴냄 윤용희 경북대 명예교수가 정치현상과 사회현상의 연계 혹은 융합을 설명한 '최신 정치사회학'을 펴냈다. 그는 서문에서 "정치현상은 사회현상의 뿌리요 토대라고 할 수 있으며 정치현상은 사회현상을 발전시키고 키워가는 둥치와 숲의 역할을 한다"고 적고 있다. 현재 세계평화교수협의회와 평화대사협의회 대구시 회장직을 겸임하고 있는 윤 명예교수는 미첼스·마르크스·베버 등 여러 학자의 이론과 핵심 주장을 소개하면서 21세기 들어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정치현상과 사회현상의 상호작용 및 융합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 명예교수는 "최근 들어 특히 사회현상이 정치현상에 미치는 관계가 깊어지고 있다"며 "이 책이 정치학과 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생들과 초보적인 연구자들에게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18-04-28 00:05:00

중견 시인 삶을 향한 시선, 2개 국어로 표현…『산이 피고 있다』

산이 피고 있다/ 박복조 한·영 시선집/ 그루 펴냄. 중견 시인 박복조 씨가 한·영 시선집 '산이 피고 있다'(Mountain is Blooming)를 펴냈다. 지금까지 펴낸 4편의 시집 '차라리 사람을 버리리라' '세상으로 트인 문' '빛을 그리다' '말의 알'에 발표한 작품 중에서 지금 다시 곱씹어 보고 싶은 작품들을 선정하고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한 권의 책을 '푸른색 표지'와 '분홍색 표지' 2권으로 펴냈다. 4편의 시집 중 마지막으로 펴냈던 '말의 알'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가져왔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인은 변했고, 가장 최근에 펴낸 시집에서 '스스로 발견하고 싶은 모습을 자주 발견'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집 '차라리 사람을 버리리라'는 시를 쓴다는 것과 나를 안다는 것이 동의어라고 생각하던 시절 쓴 작품들을 묶은 것이다. 시 그림자만 봐도 좇아가고, 어디서 시향만 나도 혀를 내밀던 때였다. 사람을 버릴지언정 시를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시만 그 자리에 있으면 모든 것이 완전하다고 믿었던 시절이다." 당시 작품은 박 시인의 말대로 "가슴이 뱉어낸 방언"이었다. 그랬는데, 그 시집에서 많은 작품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시를 쓴다는 것과 나를 안다는 것이 같은 말이라고 믿었는데, 이제는 모를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세월이 지나고 보니, 오히려 내가 나를 모르겠다." 두 번째 시집 '세상으로 트인 문'을 쓸 때는 야생화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이었다. 꽃 속에서 신을 만났고, 우주를 보았다. 하루라도 들꽃을 보지 못하면 못 살 것 같았다. 꽃은 자유였고, 꿈이었고,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누가 보아 주든 안 보아 주든 제 목숨, 제 빛깔로 살아가는 그들이 경이로웠다. 꽃에서 보았던 것을 시로 그려내느라, 그 시절 박 시인은 세상을 잊었다. 세 번 째 시집 '빛을 그리다'는 시인이 생활인으로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던 시절 쓴 작품이다. 밤늦도록 약국 문을 열고, 칭얼대는 어린아이를 업고, 엄마로 주부로 약사로 일하는 자신을 보고, 약국을 찾는 손님들을 보았다. 무거운 짐을 지고 휘청거리는 사람들, 삶의 무게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슬퍼했고, 피로해했고, 외로워했다. 그 속에서 박 시인은 사람을 보았고, 세상을 보았다. 각막에 또렷하게 각인된 그네들의 삶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고 종내에는 시상(詩想)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그 시절 쓴 시는 대부분 '이야기 시(詩)'라고 할 수 있다. 네 번 째 시집 '말의 알' 은 세 번 째 시집 뒤 오랜 공백, 약국 은퇴와 늦깎이 공부를 하면서 6년 동안 쓴 62편의 작품을 묶은 것이다. 세 번째 시집과 마찬가지로 역시 사람살이의 애환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전과는 시풍이 많이 다르다. "네번 째 시집 '말의 알'에서는 말을 비틀거나 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낯설지 않고 진실한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말 그 자체에 이미 사람살이와 우주가 온전히 들어가 있는데, 그것을 다시 비틀거나 꼬아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꽃치고는 별로 화려할 것 없는 목련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목련 꽃이 툭 터지는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꽃에 치장을 가하느라 정작 그 꽃송이 터질 때 나는 '툭' 소리를 가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박 시인이 이번 시선집에서 유난히 네 번 째 시집 '말의 알'에서 많은 작품을 가져온 이유였다. "여태 제가 날려 보낸 방언들 중에서 가슴을 먹먹하게 울리는 시, 삶을 더욱 단단히 껴안고 있다고 생각되는 시들을 골랐습니다." 한글로 쓴 시와 함께 굳이 영어로 옮긴 시를 붙인 것은 한 사람의 평범한 시인인 동시에 국제펜 한국본부 대구지역위원장 회장이라는 직함에 조금이라도 충실해 보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물론 혹여 영어만 아는 이웃나라 사람이 있어, 시를 읽어준다면 더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이번 시집에는 모두 82편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한 시와 함께 실려 있다. 김광수 전 동화통신 외신기자가 번역을 해주었다.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문학 평론가)는 시집 해설에서 "박복조 시인의 작품 바닥(bottom/basis)에는 사물과 현상을 잡아채는 첨예한 사유와 감각의 흐름이 있다. 사물과 현상의 고유한 이미지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그것을 선명한 물질적 언어로 바꾸어 간다. 그 안에는 아득한 심연에서 전해져오는 어떤 미적 파동이 담겨 있는데, 시인은 그것을 아름답게 채록해 간다. 박 시인의 시는 삶의 심층에 자리한 심미적 서정에 근접하는 작업인 동시에 근원으로 귀환하려는 탐색이다"고 말한다. 303쪽, 1만2천원.

2018-04-28 00:05:00

[반갑다 새책] 잠시 위탁했다

잠시 위탁했다/ 김은령 지음/ 문예미학사 펴냄 1998년 '불교문예'로 등단한 김은령 시인이 새 시집을 펴냈다. 시집 '통조림' '차경'에 이은 세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권두언에 "특별했던, 무지 안도했던, 2017년 세모에 시집을 정리하다 올해 사자성어가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선정되었음을 알게 되었다"며 "시를 쓰는 일이 내 생의 나날에 묻혀 있는 삿된 것들을 파(破)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적고 있다. 시집은 4부 57편으로 구성돼 있다. 시인이 살아오면서 우연히 만났고, 문득 깨닫고 오래두고 닦은 삶의 편린들을 간결한 시어로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해설을 맡은 시인 고증식은 "시인은 언젠가 살점 한 조각 남지 않은 단단한 뼈로 남기를 소망하고 결국 사람의 형상을 벗어 던지고 훨훨 날고 싶은 염원을 가지고 있다"며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완전한 '이륙'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떨구면서 비워내는 시인의 모습이 선하다"고 적고 있다. 109쪽, 9천원.

2018-04-28 00:05:00

[이종문의 한시 산책] 지는 꽃을 우얄끼고

지는 꽃을 우얄끼고 오경화 술을 앞에 두고 보니 백발이 참 가련한데 對酒還憐白髮多(대주환련백발다) 세월은 물과 같아 멈추는 법이 없네 年光如水不停波(년광여수부정파) 봄이 하마 다 간다고 산새들도 봄이 아파 山鳥傷春春已暮(산조상춘춘이모) 제아무리 울어대 본들 지는 꽃을 우얄끼고 百般啼柰落花何(백반제내낙화하) 원제: 對酒有感(대주유감): 술을 마시다가 느낌이 있어. 이 시를 지은 오경화(吳擎華)는 한시로는 딱 한 수의 시만을 이 세상에 남겨놓은 시인이다. 위의 시가 바로 그 한 수다. 그가 누군지도 잘 모른다. 다만 조선후기 중인(中人)들의 시선집인 '풍요삼선'(風謠三選)에 수록된 이 시의 작자 소개를 통해 자는 자형(子馨), 호는 경수(瓊叟), 본관이 낙안(樂安)이란 것을 겨우 알 수 있을 뿐이다. 중인들의 시선집에 실린 것을 보면, 그도 중인으로서의 신분적 비애를 안고 한 많은 한 세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그래도 오경화는 남다른 감성을 지닌 도저한 풍류시인이었다. 작품 속의 화자는 지금 술을 마시면서 그 검던 머리가 어느새 파 뿌리로 변해버린 자신의 백발을 한탄하고 있다. 한탄하고 있는 그사이에도 세월은 강물처럼 요동을 치며 잠시도 쉬지 않고 흘러간다. 꽃 피는 봄도 이제 곧 와장창 끝장이 난다. 땅이라도 치면서 흑흑 흐느끼며 울고 싶은데, 그의 슬픔을 산새들이 대신해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울어댄다. 하지만 제아무리 땅을 치며 운다고 한들 떨어지는 꽃을 어느 누가 말릴 수 있을 것인가. 에라, 모르겠다, 술이나 한잔! 오경화는 몇 수의 시조도 남겼다. "곡구롱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일어보니/ 작은아들 글을 읽고 며늘아기 베 짜는데 어린 손자는 꽃놀이한다/ 마초아[때마침] 지어미 술 거르며 맛보라고 하더라." 그가 지은 시조 가운데 하나다. '곡구롱'은 꾀꼬리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바야흐로 화자는 팔자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가 곡구롱곡구롱 꾀꼬리의 감미로운 노래 소리에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상태다. 깨어나서 보니, 작은아들은 책상 앞에 가부좌를 틀고 공자왈 맹자왈 책을 읽고 있고, 며늘아기는 베틀 위에 앉아 찰칵찰칵 베를 짜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손자 녀석은 지금 꽃놀이에 얼이 빠져 있다. 집안 식구들이 다들 알아서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흐뭇하고 대견스럽다. 게다가 때마침 아내가 새로 담근 술을 거르고 있다가, 맛 좀 보시라며 한 사발 막걸리를 내어놓는다.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 봐도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이 좀처럼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파란만장의 정치적 부침을 겪으면서 수천 수의 시를 남긴 대시인도 좋기는 하다. 하지만 천지간 산수 속에 고이 엎드려 오순도순 정겹게 살아가면서, 단 한 수의 한시와 몇 수의 시조를 후세에 남겨놓은 오경화의 삶도 참 부럽다. 양자택일을 해보라고 하면, 그의 손을 번쩍! 들어주고 싶다.

2018-04-21 00:05:00

[반갑다 새책] 미모사처럼 나를 여민다

미모사처럼 나를 여민다/ 하정숙 지음/ 그루 펴냄 2005년 '문학예술'로 등단한 수필가 하정숙 씨가 펴낸 첫 번째 수필집이다. 중학교 교사로, 중등문예교육연구회 임원으로, 어머니로, 주부로 바삐 뛰어 다니며 느낀 감상들을 4부 52편의 글에 펼쳐냈다. 저자는 서문에서 "글 쓰는 일은 항상 어렵고 여기 실린 글들도 부족함이 많지만 마른 나뭇가지로 오던 봄이 내 손을 잡아 격려해 주었다"며 "그 북돋움에 용기를 얻어 수필집을 세상에 선보인다"고 적고 있다. 뇌성마비 아들을 둔 올케의 슬픔부터, 베란다에 놓여진 '미모사'(관상용 식물)에서 풀죽어 지내는 자신을 투영시키기도 한다. 교내 글쓰기대회에선 작품마다 일일이 댓글을 달아주며 120명의 아이들과 행간(行間)에서 만난 소감을 적기도 한다. 대구에서 태어난 하 작가는 영남대 국어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대구문인협회, 영남수필문학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원으로 있다. 248쪽, 1만3천원.

2018-04-21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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