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조희길 나이스엔지니어링 대표

조희길 나이스엔지니어링 대표 세계문학상 시부문 대상

'그저 매일이 똑같으면 사는 재미가 있나/ 슬쩍 호미걸이라도 거는 척해줘야지 /걸리는 척이라도 해줘야지 /밋밋하게 매일이 흘러가면 사는 재미가 있나 /짜글짜글 냄비라도 끓어야지.'조희길 나이스엔지니어링㈜ 대표가 (사)세계문인협회가 주최한 '제13회 세계문학상' 시 부문에서 그의 두 번째 시집에 실리 '더러는 물젖어'로 대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18일 서울시 성동구청 대강당에서 열렸다.경주가 고향인 경영학 박사로 30년 넘게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조 대표는 동시에 문단에 등단, 활발한 문학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시인이기도 하다.1987년 '제8회 호국문예' 당선을 통해 문단에 이름을 올린 조 대표는 이후 '문학세계 신인상'과 '한국을 빛낸 문인들 100인'에 4년 연속 선정됐다. 2013년에도 (사)세계문인협회가 주최한 '제8회 세계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조 대표는 등단 전인 1980년 2인시집 '무명기'를 처음 발간했으며 '나무는 뿌리만큼 자란다'(2007년)와 이번에 '시조새 다시 날다'로 두 번째 개인 시집을 발표했다.이번 시집은 기업인으로 30년간 살아온 시인의 세월이 묻어난 작품으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대별로 모두 3부(1부 청년의 노래, 2부 청년의 혼, 3부 아직도 청년)로 나눠 64편의 시를 소개했댜.조희길 대표는 "유난히 무더웠던 올여름, 무더위보다 더욱 치열했던 삶의 현장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가슴속 한 켠의 불덩이를 시로 표출해냈다"며 "이 시집이 자유인을 갈망하는 이 시대의 수많은 직장인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2018-11-20 14:05:12

일러스트 전숙경 (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부문 당선작]노병의 증언②/김길영

◆대공표지판을 메다50년 9월 7일. 새벽 5시, 보현산 쪽으로 북진한다는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내가 맡은 임무는 대공표지판을 메고 맨 앞에 전진하는 것이었다. 대공표지판이란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 크기의 두 장의 천이다. 한 장은 흰색이고 또 한 장은 붉은 색 천을 똘똘 말아서 매고 다녔다. 통신병과 함께 중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임무로 아군 비행기가 공습할 때 재빨리 우리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작업이었다. 내가 맡은 일을 게을리 하면 자칫 아군에게 인명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아군의 최전방 공습을 꾀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나의 임무가 부대 맨 앞에 서는 위치라서 적에게 집중포화를 맞을 수도 있지만, 총검을 들고 싸우는 전투병 못지않게 내가 맡은 임무 또한 작전수행에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처음으로 격전을 치른 곳은 보현산 줄기의 작은 봉우리였다.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차서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고, 가파른 비탈에서 격전이 벌어지다보니 쌍방 간 부상병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인민군 병사 몇 명은 나무 둥치를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퇴각하는 인민군 잔병들도 부상병들을 돌보지 못하고 달아나기 바빴다. 저들의 목숨이 백척간두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전우애를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 석양녘에 고지를 탈환하고 산 정상에서 점호를 해본 결과 중대병력이 소대 병력으로 줄어 있었다. 나는 고향 친구이자 경주중학생이던 박준영을 만났다. 둘이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어느 형제가 이렇게 반갑겠나 싶었다. 같이 징집되어 같은 부대, 같은 소대에 편성된 전우들 중에 박준영을 포함한 몇 명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중대병력이 소대병력으로중대장과 소대장이 전사하고 이등상사가 중대장 임무를 대행했다. 첫날 전투에서 많은 병력이 희생되었다. 조그만 봉우리 하나를 탈환하는데 엄청난 병력의 손실을 입은 것이다. 이렇게 병력 손실을 입으면서 백두산, 압록강까지 전진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낮에 점령한 고지를 사수해야 했기 때문에 최정상을 기준으로 사방 4-50미터의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2인 1조로 야간보초를 섰다. 암호도 하달 받았다. 생면부지 병사와 한 조가 되어 금방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부대에 소속되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전우애 때문일 것이다. 참호 속에서 전우의 나이와 고향, 가족사까지 일일이 묻고 물어 모든 것을 알고 나선 마음이 놓였다.◆보현산 전투영천 보현산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며칠 동안 보현산을 샅샅이 뒤져 인민군 잔당을 소탕한 후에야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진지를 구축하고 정밀수색 중에 능선 아래 골짜기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총상을 입은 인민군 소좌 한 명과 사병 두 명이 발견 되었다. 소좌는 포로로 후송처리하고, 사병 두 명을 심문했더니 포천, 원주가 고향인 중학교 상급생이었다. 그들은 인민군 점령지역에서 단기 훈련을 받고 전투에 참가한 학생들이었다. 두 사병은 포로로 처리하지 않고 부대에서 우리 병력처럼 데리고 다니다가 북진할 때 원주에서 귀가시켰다.50년 9월 11일. 우리 8사단과 3사단의 연합작전으로 인민군 15사단 보병연대를 청송일대에서 섬멸했다. 아군은 단번에 15킬로미터를 북진했다. 이때가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기 며칠 전의 전황이었다.50년 9월 17일. 영천전투에서 기선을 잡은 8사단은 의성을 거쳐 안동 강변에서 야영을 했다. 그날은 추석 전날이었다. 달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고향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입대 며칠 전 결혼한 아내의 얼굴도 떠올랐다. 몽달귀신을 면해주려고 부모님이 부랴부랴 맺어준 인연이었다.야영을 마친 16연대는 영주. 풍기. 죽령까지 북진하여 인민군 주력부대의 퇴로를 차단하는 작전을 폈다. 8사단 3개 연대는 도송산 죽령-소백산을 연결하는 방어선을 구축했다. 우리 16연대는 단양. 21연대는 예천지역에 각각 배치되었다.50년 9월 19일. 밤에는 인민군 1개 사단 규모와 맞닥뜨렸다. 작전이 시작되자 치열한 공방전이 이틀이나 계속 되었다. 완강하게 버티던 적과 싸웠으나 우리의 인명 피해는 미미했다. 이때 생포된 인민군병사들만도 몇 백 명쯤 되었다.◆생포된 인민군안동에서 제천으로 그리고 원주로 가평으로 숨 가쁘게 북진하는 동안 큰 전투는 없었다. 적의 꽁무니를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쫓고 쫓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서울성동중학교에 도착한 8사단 전 병력은 4일간 재정비검열을 받았다. 내가 군에 입대 후 처음으로 소고기 맛을 보았고 술을 마셔봤다.50년 9월 28일. 부대검열이 끝나고 작전수송차량에 승차 했다. 중부전선 동두천을 경유 철원에 입성하면서 시가전이 벌어졌다. 철원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약간 경사진 길이었다. 길 양편으로 띄엄띄엄 경주 봉황대 같은 봉우리마다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환영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환영인파가 도열하듯 계속 늘어났다. 우리 부대는 의기양양하게 환영인파에 손 흔들어 답하면서 걸어 들어갔다.◆철원평야 대 혈전철원시가지 곳곳에는 방공호가 있었다. 상황이 급한 인민군 부대는 민간복장으로 갈아입고 위장하면서 우리를 환영하는 척했던 것이다. 철원시가지를 경유하면서 진격명령이 내려져 마침내 대 혈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마땅히 은폐할 곳이 없었다. 대평원에서 논두렁이나 밭고랑에 몸을 숨겼지만,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져 피아간 엄청난 병력 손실을 입었다. 3대대장이 철원시내 작전 도중 도로에 매설된 지뢰 폭발로 전사하자 부대 병사들은 적개심에 불타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다. 적군도 만만치 않게 대응하고 있었다. 이 전투에서 나와 함께 논두렁을 타고 공격하던 허경행 전우가 관통상을 입고 후송되었다.우리 부대는 전방 고지에 집중포화를 퍼붓고 많은 포로를 잡았다. 생포한 포로 중에는 적군의 사단군악대원 25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병사들은 모두 북한지역 중학생이었다.

2018-11-19 13:03:10

밥상과 책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지은이 윤일현/학이사 펴냄

한국의 교육은 오로지 대학이라는 골을 향해 달려간다. 이 과정에서 불행한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다. 성적 위주로 돌아가는 학교와 사교육 열풍, 가출과 왕따, 학교 폭력, 성적을 비관한 10대들의 자살까지.'밥상과 책상 사이'는 공부만 강조하는 교육이 아닌 '인성교육', '감성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는 행복 교과서'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부모에게는 자녀 교육을 가정의 행복과 연결해 우리나라 교육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자녀에게는 지은이가 교육 현장에서의 얻은 경험을 통한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준다.◆행복한 밥상이 즐거운 책상을 만든다지은이 윤일현은 교육평론가이자 입시전문가로 이 책에서 본인이 체험한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각종 문헌, 설화, 속담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이 시대 부모와 자녀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풍부한 학생 및 학부모 상담 경험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 교육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오로지 공부만을 강조하는 풍조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라는 교육철학을 책에 담았다.지은이는 밥상을 단순히 밥을 올리는 가구가 아니라 말한다. 과거 밥상이 곧 책상이었던시절, 가족들과 즐거운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냈던 밥상에서 공부를 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밥상이 행복해야 책상이 즐겁다'는 그의 철학은 아이들의 교육 성과에 가족의 화목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뜻한다.지은이는 "밥상이 행복해야 책상이 즐겁다. 밥상머리에서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할 즐거운 행사나 자녀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힘, 특히 힘들고 부정적인 상황에서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빠지지 않는 자제력과 인내심은 밥상머리에서 시작된다. 밥상에 앉으면 모든 피로가 풀리고 마음의 위안과 평화, 세상을 버티어 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며 "밥상에 앉아있는 시간을 늘리고 밥을 천천히 먹으며, 보다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자. 밥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나고, 그 시간이 즐거울 때, 온 가족은 더욱 행복해지고, 자녀들은 기쁜 마음으로 책상에 가서 보다 오래 앉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공부보다 중요한 것들지은이는 학생들에게 계절의 흐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문제집이 아닌 좋아하는 책을 읽고, 제 시간에 자고 아침을 챙겨먹고, 밥먹고 설거지를 하라는 등 공부만 하느라 놓치기 쉬운 것들이 오히려 교육 성과를 올리는 비법이라 조언한다.부모에게는 아이와 함께 손잡고 거닐고, 열린 마음으로 아이와 대화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인내심을 가지고 신뢰를 보내주라고 말한다."변화는 무조건 좋고 바람직하며, 안전과 안정은 모두 나쁘고 고루한 것만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있고, 세월과 더불어 더 좋고 나은 것으로 바꾸는 게 바람직한 것도 있다.문제는 열린 마음이다. 대화가 의미를 가지려면 부모자식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부모가 먼저 가슴을 열고 자녀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엄마아빠만 힘든 것이 아니다. 아이들도 밖에 나가면 긴장해야 하고 때론 두렵고 외롭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또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자동화 등으로 가득찰 미래에 대비해서는 '기본'을 강조한다. 급변하는 세상에 대응하기 위한 해법은 기본기라는 것.지은이는 기본기에서 창의력이 나온다며 피카소의 사례를 들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예술가로 손꼽히는 피카소는 어린 시절 미술의 기본기를 철저하게 익혔다. 미술선생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비둘기 발만 반복해서 그리게 했다. 15세가 되어서야 사람의 얼굴과 몸체를 그리게 했다. 한 가지를 오래 관찰하며 제대로 묘사할 수 있게 되면 다른 것은 보다 쉽게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의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피카소는 기본기를 잘 익혔기 때문에 3차원의 형상을 2차원적 평면으로 표현하는 입체파라는 독특한 장르를 창조해 낼 수 있었다." ▷지은이 윤일현은 '올바른 학습법'과 '책읽기를 통한 미래의 길 찾기'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2006년부터 학부모를 위한 인문학 강의인 '윤일현의 금요강좌'를 매달 두 번씩 열어 현재 250회를 넘겼고, 거쳐 간 수강생은 수 천 명에 이른다.오랫동안 교육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통해 사교육에 크게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인성·품성·학력 면에서 아이가 탁월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해 수많은 학생, 학부모, 교육 종사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포항제철고 교사를 거쳐 현재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대구경북작가회의 자문위원, 대구시인협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자녀 교육 관련 저서로는 '부모의 생각이 바뀌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진다', 부모를 위한 인문학 '시지프스를 위한 변명', 교육평론집 '불혹의 아이들'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낙동강' 과 '꽃처럼 나비처럼' 등이 있다.

2018-11-15 11:54:02

향촌동은 읍성이 허물어지고 신작로가 생기면서 근대 대구의 중심지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근대 대구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있는 향촌문화관에서 대만인 관광객이 국내 최초로 대구에서 도입해 운행한 시내버스인 부영버스를 관람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흥] 반나절이면 충분, 대구 중구 '5분 거리 산책 기행'

미세먼지라 곤란하고, 비오는 날이어서 불편하고, 겨울 추위가 코앞이라 바깥 활동에 몸서리친다면 대구 중구 '산책기행'에 나서보자. 박물관(근대역사박물관, 기술예술융합소), 미술관(대구예술발전소, 수창청춘맨숀), 문화관(대구문학관, 향촌문화관)이 걸어서 5분 안팎의 거리에 몰려들 있다. 5분 거리지만 지난 100년의 대구를 따라 움직인다. 어디를 걷든 제각기 이야기 하나씩을 가졌다. 그러고보니 대구근대골목투어 코스와 일부 겹친다. 날씨가 궂어도 큰 무리가 없다는 근대골목투어 홍보 문구가 이해되고도 남는다.근대골목투어 2코스 종점 부근인 약령시장에서 시작해 대구 중구 실내관광 투어에 나섰다. 5분 안팎의 이동 시간도 지루하지 않다. 역사의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음미하노라면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반나절이면 충분한, 걸으며 즐기는 산책기행이다. 운동 효과는 덤이다. 출발지였던 약전골목으로 돌아왔더니 허벅지가 뻐근해온다. 만보기를 보니 1만 보를 살짝 넘었다. ◆향촌문화관, 대구문학관 그리고 녹향산책기행 장소 중 유일하게 입장료가 있는 향촌문화관이다. 1천원이다. 1천원으로 향촌문화관, 대구문학관, 그리고 지하의 녹향까지 이용할 수 있다. 본전은 빼고도 남는다. 콘텐츠 구비가 그만큼 잘 됐기 때문이다.향촌문화관에서는 해방 이후 모습들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 공통의 이야기다. 대구 향촌동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것뿐이다. 1960, 70년대 시가지의 재현이 인기 공간이다. 비단 대구만의 모습으로 치부할 수 없어 공감대 형성도 쉽다.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를 모티브로 추억의 시간여행 공간을 만들어놓은, 군위 화본역 인근 옛 산성중학교와 비슷하다.평일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눈에 띈다. 간단한 인터뷰를 위해 3명에게 말을 걸었더니 모두 대만 관광객이다. 우연치고는 신기해 물었더니 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구를 많이 소개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 대구시는 2016년 대만의 TV여행프로그램 '완락지(玩樂誌)'에, 올 초에는 '여행응원단(旅行應援團)'에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인지도를 높이는 중이었다. 향촌문화관을 대만의 방송이 어떻게 소개했을까 궁금했다. 전형적인 한국의 근현대사인데 이걸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해서였다. 결론은 '여행자들의 창조적 자립 여행에 박수를'이었다. 이 빵, 저 빵 다 챙겨먹고 따로국밥 먹는 장면까지는 나왔으나 '향촌문화관'은 결코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층에서 시작되는 문학관은 대구경북 출신 작가들의 기록과 기억의 집합소다. 4층엔 도서관도 있다. 책에 손때가 거의 없다. 가까이 가니 새 책 냄새가 아직 난다. 그 자리에서 보는 것만 가능하다.지하 음악감상실 녹향으로 간다. 기도를 올리듯 나이 지긋한 여성 두 명이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있다. 클래식 음악이 한창 흐르는 중이다. 필시 음악을 감상하는 중일 것일 테지만 음악감상실 테이블이 교회의 그것과 흡사해 마치 기도하는 느낌이다. ◆근대역사박물관, 기술예술융합소어르신들의 해방구 옛 무궁화백화점을 지나 경상감영공원을 거치면 근대역사박물관이 나온다. 중부경찰서 옆 유럽풍 건물이라고 하면 '거기 안다'며 웬만큼 고개를 끄덕이는 그곳이다.실제로 근대역사박물관은 세대별로 다르게 기억되는 공간이다. 20대 안팎에겐 근대역사박물관, 40대 안팎에겐 아세아극장 근처에 있던 산업은행, 그러나 70대 이상에겐 우체국 앞에 있던 조선은행(실제 이름은 조선식산은행)이다. 이렇게 치자면 향촌문화관도 옛 상업은행, 우리은행 건물이었다. 1930년대 실제 이곳은 지금으로 치면 범어네거리에 버금가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북도청(경상감영공원)이 있었고 무영당백화점(부산비닐상사)이 있었고 조선식산은행(근대역사박물관)이 있었다. 대구부영버스가 가로지르던 코스였다. 돈과 권력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근대역사박물관은 대구의 근대역사를 중심으로 설명, 전시해뒀다. 대구토박이들이 들어도 신기할 얘기들이다.북쪽으로 100미터 남짓 가면 북성로다. 북성로 공구골목의 시작점은 대구역에서 매우 가까운데 때문에 1960, 70년대 북성로 공구골목에 어린 견습공원들이 넘쳐났던 이유와 연결짓는 증언들도 넘친다. 1960년대 초입부터 시작된 산업화 시기 시골에서 올라온 10대들은 지금의 10대와 다소 달랐다.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아니었다. 도시로 나가 돈을 벌어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야 했고, 부모님을 도와 집안의 기둥이 돼야 했고, 입을 덜어야 했다. 청운의 꿈도 싣고 스스로 오른 대구행 기차였다.대구역에 내린 중학생 또래의 아이들은 대구역 앞의 비렁뱅이들을 봤고, 넝마주이를 스쳤고, 대구역사를 벗어나 이런저런 유혹의 손길을 헤치고 쇳가루 냄새가 질펀한 북성로 철공소 단지로 향했다. 운이 좋은 아이들은 미리 자리잡고 있던 친구의 소개로, 연줄이 없는 아이들은 견습공을 자처했다. 급여없이 밥만 먹는 조건으로 기술을 배웠다. 그 당시 견습공 급여는 명절 보너스가 전부였다. 더 엄밀히 말해 '사장님 마음'이었다.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는 이야기가 70대들의 자수성가 성공스토리에 더러 나왔다.그런 이야기들이 골목골목 숨어든 곳이 북성로 공구골목이다. 마침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 2013년 문을 열었던 공구박물관이 최근 확장 이전해 기술예술융합소 '모루'라는 이름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릴 때 받침대로 쓰는 '모루'에서 나온 이름이다.지상 2층(연면적 264㎡) 규모로 전시관, 장인작업장, 창작 공간 등을 갖추고 있다. 전시관에는 기존 공구박물관 전시품과 시민 기증품 등 100여종 등 3천여점이 진열돼 있다. 톱, 칼, 끌, 망치, 스패너, 드라이버에서부터 수동 연마기, 드릴링 머신, 수직 발동기 등 희귀 공구까지 전시돼 있다. 창작공간에서는 장인, 예술가 등과 폐공구를 활용해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대구예술발전소, 수창청춘맨숀북성로공구골목 서쪽으로 벗어나면 근래 대구도심에서 가장 높다는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굳이 이 아파트 단지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걸 지으면서 대구시민들이 얻게 된 것이 바로 '대구예술발전소'라서다.도심 속 미술관 역할을 하는 대구예술발전소는 예술가들의 창작스튜디오 겸 전시장이다. KT&G 연초제조창 별관 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공간이지만 담배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전시실, 예술정보실, 문화공간 등으로 조성돼 있는데 예술도서관 '만권당'이라는 곳에 꼭 들르자. 이곳에 비치된 예술 관련 고가 서적은 여타 도서관에서 쉽게 볼 수 없어 이목을 끈다. 이용객도 많지 않아 유유자적, 통유리 창밖으로 수창공원을 바라보며 책을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4층에 있는, 그 유명한 '억수로 큰 달' 그림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해 존재감을 알린 바 있다. 사람들이 손에 올려놓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고, 밀어보기도 하는 갖가지 자세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달이다.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어느 순간 보니 달 사진의 성지처럼 돼 버렸다. 바로 옆에는 '수창청춘맨숀'이 있다. 겉에서 보면 낡디낡은 3층 높이 아파트다. 1976년 준공돼 1996년 폐쇄됐던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파트형 미술관이 됐다. 청년 예술가들을 위해 KT&G 연초제조창 사택으로 쓰였던 아파트가 변신한 것이다. 안과 밖이 판이해 오해했던 게 미안해질 정도다.이달 3일 개관식을 했다. '수창, 청춘을 리노베이션하다'를 주제로 40여명의 지역 청년작가들이 참여해 작품을 전시해뒀다. 사택 아파트를 개조한 공간이라 작품을 찾는 것이 숨은그림찾기 같기도, 미로찾기 같기도 했다.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추억샷을 남기려는 연인들이 이리저리 명당을 찾는다.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터가 가까이에 있다. 단, 삼성 관련된 상징물이나 기록물은 거의 없다. 아쉽다면 오페라하우스 옆 대구삼성창조캠퍼스로 가길 권한다. 삼성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의 동상과 삼성상회를 재현해놓은 3층 건물이 있다. 원래는 제일모직이 있던 곳으로 사원 숙소도 있던 곳이었다.ㅊㅡㅇ에

2018-11-14 20:00:00

이야기로 풀어보는 대구지명 유래 1, 2/전영권 지음/도서출판 신일 펴냄

"산업화와 문명화가 될수록 소중한 전통문화도 상당 부분 멸실되었거나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깝다. 한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인 것은 마을의 이름, 즉 지명일 수 있다. 지명은 장소에 대한 정체성이이자 문화의 산실이기도 하다."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인 지은이는 서문에서 이렇게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밝혔다. 또 모든 지명이 아니라 인지도가 높고 흥미롭고 실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지명을 골라 묻고 답하는 이야기 식으로 책을 서술했다. 1권은 중·남·서구편이며 2권은 북·동구편이다.대구 중구 첫 번째 지명 계산동의 유래는 어떻게 될까?대구읍성 시절 남쪽 성곽 옆(남성로)에 위치하는 동으로 '계산'은 계수나무가 있는 산을 뜻하며 원래 대구부 서상면 지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당시 동산동 일부와 함께 일본식 지명인 명치정(明治町) 1정목(丁目)으로 개칭되었다가 광복 후 계산동 1가로 바뀌었다.대구 최초의 십자로는 어디일까?경상감영공원 입구에서 서쪽으로 약 20m정도 가면 대구 중부경찰서가 나온다. 바로 이 경찰서 앞 네거리가 대구 최초의 십자로이다.파계사는 풍수의 비보(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 것)사찰로도 유명한데?파계(把溪)라는 의미는 사찰 주변 아홉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물을 한 곳으로 모아 기를 누른 다는 뜻이다.이외에 매여동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 밀양 박씨 문중에서 이곳으로 피란와 살면서 마을 주변 산세가 오목하고 매화나무 꽃이 희다고 하여 매화동으로 불렸다가 나중에 매여동으로 변했다.지은이는 또 해당 지역과 관련된 사진도 함께 첨부함으로써 지명 이야기 가운데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는 재미도 적지 않다. 1권 175쪽 2권 180쪽, 각 권 1만원.

2018-11-14 14:44:09

경주시, 왕의길-신라왕릉 펴내

경주시가 신라 왕릉 이야기를 담은 '2018 왕의길-신라 왕릉'을 발간했다.'경주 신라 왕들의 길을 걷다'라는 부제로 현재 위치가 알려진 무덤들부터 시작해 전성기를 맞이한 6세기 신라시대의 왕릉, 그리고 9세기 중엽 이후 신라 왕권의 몰락과 쇠퇴기까지 왕릉의 다양한 사진과 문헌들을 활용해 신라 왕릉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있다. '신라 왕릉, 재밌게 둘러보기', '신라 상고기 왕릉', '신라 중고기 왕릉과 서악동 고분군', '신라 하대의 왕릉' 등 4개의 챕터로 구분돼 신라의 왕과 왕릉의 형식, 알려진 위치 등과 함께 문헌을 토대로 시대별 왕릉과 추정 위치 등을 소개한다.주낙영 경주시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신라 왕릉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신라 왕릉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에 신라 역사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신라 왕릉 연구는 신라시대 문화상과 그들의 사후세계 관념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2018-11-13 11:28:40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소감]노병의 증언/김길영

나에게도 상복이 돌아왔다.논픽션부문과 시 부문까지 겹상을 받고 보니 여기저기 자랑하고픈 생각이 앞선다. 나이 들어서 상을 받는 다는 게 쑥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기쁘기도 하다. 글쓰기 도반뿐만 아니라 그동안 소원했던 친척에게까지도 알리고 말았다. 칭찬이라는 게 어른 아이 막론하고 좋은 것이다.나는 늦깎이 문학도다. 지난 9년 동안 여러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글 동냥하듯 시와 수필을 배웠다. 그것도 부족하여 지금 나는 문예창작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 상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글쓰기 결과물을 얻은 것 같아 기쁘고 감개가 무량하다.매일신문시니어문학상이 벌써 4회째를 맞는다. 대한민국 시니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시니어문학상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층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거나 6.25전후 세대들이다. 우리들은 광복을 맞고 6.25전쟁을 겪었으며 4.19와 5.16, 12.12 같은 불행한 사건들이 우리 곁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IMF라는 국가부도 사태를 겪으면서도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끌어올린 세대들이다. 이제 매일신문사에서 큰 판을 벌여 놓았다. 굽은 허리를 쭉 펴고 희미해진 정신을 가다듬어 실컷 즐겨볼 일만 남았다.나는 오늘 이 상에 만족하지 않겠다. 늦깎이로 시작한 글쓰기인 만큼 다음에도 다른 장르에 또 도전하여 문학성 있는 작품으로 알찬 열매를 거두고 싶다.이 기쁨을 시와 수필을 지도해주신 여러 선생님과 수필사랑문학회, 텃밭시인학교, 푸른시창작원, 경희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님과 학우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나누고자 한다.대한민국시니어들에게 문학상을 제정해 주신 매일신문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018-11-12 11:52:34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노병의 증언/김길영

이 글은 예비역 하사 이규락의 6.25전쟁 참전기(參戰記)이다. 필자에게 수차례 들려준 이야기를 종합하여 「노병의 증언」이란 제목을 붙이고 글을 완성해서 그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연락이 끊겼다. 6.25전쟁 발발 65년 만에 '판문점선언'으로 종전이 눈앞에 온듯하다. 전쟁의 참상이 어떠했는지 이 시점에 알리고 싶다.◆군 입대내가 군에 입대한 것은 경주공업중학교 3학년 때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중앙학련회 간부들이 내려와 학련회 중심으로 학도병 입영을 독려했다. 나는 학급장이었고 그 땐 학생들도 좌우로 갈라져 갈등을 빚을 때였다. 내가 학도병을 지원하지 않고 징집명령에 따라 입영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앞서 학도병으로 입영한 경주지역 학생들이 안강전투에 참전하여 참패를 당했다. 군인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시상황이 워낙 다급한 나머지 사격연습 몇 번 시켜서 안강전투에 투입시켰던 것이다. 전투에 참여한 학도병들이 안강전투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50년 8월 28일. 나는 할머니를 비롯한 부모형제, 그리고 신혼의 아내와 헤어져 집결지인 경주향교로 갔다. 경주향교강당에는 경주중학생과 경주공업중학생, 경주문화중학생 등,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얼핏 보면 학도병들의 출정식 같았다. 이때 징집에 응해서 작별인사를 나눈다는 것은 사지로 가는 마지막 인사나 다름없었다. 그러기에 보내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 모두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먼 산을 바라만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주먹밥 한 덩이씩 받아먹고 트럭에 분승하여 대구로 갔다. 초행길인 대구는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서 마치 전쟁터로 가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결지가 대구남산초등학교였다. 대부분 학생들이었는데, 모인 숫자가 수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점호를 마친 후에 분산 배치되었다. 경주에서 징집되어 온 우리들은 동인로터리 부근에 있는 제사공장(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가다구라'제사공장)에 수용되었다. 그곳이 임시 훈련소였다. 군대 조직을 편성하고 내무반도 배치 받았다. 교복에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보니 군인이 다된 기분이었다. 내무반에서 내무규율이나 근무요령 등 기초교육만 받고 밤 10시경 소등과 동시에 취침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앞으로 닥쳐올 일들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웠기 때문이다. 전투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느 전선에 배치될 것인지 두려움뿐이었다. 안강전투에서 맥없이 죽어간 학도병들처럼 나도 어느 산천에 묻힐지 모르는 불안감이 잠을 설치게 했다. 앞서 학도병으로 입대한 선배들의 많은 희생을 본 터라 내가 적군과 대치상황에서 총을 겨눠 적을 사살하고 내 목숨을 지켜낼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생각보다 밤은 길었다.◆영천전투50년 8월 29일. 아침 5시에 나는 기상나팔소리를 들었다. 한 번도 긴장상태에서 살아보지 않은 나는 흥분이 되어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신체검사를 받고 하루를 보냈다. 그 다음 날은 왼 종일 제식훈련만 받았다. 9월 1일이 되어서야 봉덕동에 있던 국방군 6연대 사격장에서 M1소총과 실탄을 지급 받고 3일 동안 사격훈련을 받았다.50년 9월 4일. 한 밤중에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우리 부대는 대구역에서 기차를 탔다. 밤중에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기차선로를 확인해보았다. 복선이 아닌 걸로 봐서 경주방향으로 간다고 지레짐작했다. 하양역에서 내려 어느 과수원창고에서 하룻밤을 세우고 아침밥을 먹었다.50년 9월 5일. 하양에서 금호 소재지를 지나 일본군이 경비행기 저장방카로 사용하던 격납고에 분산 배치되었다. 하루 종일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틀간 꼼짝하지 않고 대기하면서 출전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 너머 영천 쪽에서는 포탄 터지는 소리와 총성이 요란했다. 비가 오는 밤하늘엔 전폭기가 떠서 요동을 치고 있었다.50년 9월 6일 새벽. 8사단 16연대는 영천시가지 탈환작전에 돌입했다. 시가지는 모두 피난을 떠난 뒤여서 인기척 없이 주인 잃은 개들만 총소리에 놀라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우리는 첫 전투로 소규모의 적을 만나 접전 끝에 격퇴시키는 데 성공했다. 시내 곳곳에 인민군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부상자들은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저항하던 인민군 잔병들은 보현산 방향으로 물러갔다. 영천 시내를 탈환한 여세를 몰아 고경초등학교 뒷산에 집결해서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2018-11-12 11:52:09

조던 피터슨의 강연 모습. 메이븐 제공

12가지 인생의 법칙/지은이 조던 피터슨/메이븐 펴냄

취업문은 너무 좁고, 일자리를 겨우 구했는데 비정규직이라 매일 불안하다. 월급을 모아도 부모 세대처럼 내집 장만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연애는 꿈도 꿀 수 없고 결혼은 포기해야할 것 같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 부르며 살고 있는 팍팍한 현실이다.미국이나 유럽 청년 세대의 고민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실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조던 피터슨은 어줍잖은 위로 대신 인생은 고통이라 냉소를 날린다. '어깨를 쫙 펴고,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그의 조언에 젊은이들은 피터슨을 '인터넷 아버지'라 부르며 열광하고 있다.◆젊은 층에게 가장 핫한 심리학피터슨이 처음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이름을 알린 건 유튜브를 통해서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150만 명을 넘었고, 누적 조회 수는 7천500만 회에 달한다.그는 하버드대 교수 시절부터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하버드에서 최고의 교수에게 수여하는 '레빈슨 교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토론토대에서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바꾼 교수로 뽑히기도 했다. 피터슨에게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사회의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현실적이고 유용한 지혜를 가르치는 데 실패했다. 피터슨은 그 차이를 메우고 있다"고 분석한다.2018년 1월 출간된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영미권 최고의 질의응답 사이트인 '쿼라'(Quora)에 올라온 질문에 답을 다는 피터슨의 취미에서 시작됐다. '인생에서 누구나 알아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40개의 법칙을 답으로 올린 것. 이 목록은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그 중 12개를 추려 3년 동안 이 책을 집필했다.그가 말하는 인생의 절대적 진리 중 하나는 '인생은 고통'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언젠가 병들어 죽음을 맞게 되고 이를 피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를 외면했을 때 인생의 비극 앞에서 무너지기 쉽다. 따라서 행복보다는 인생의 의미를 찾고 고통에 무너지지 않는 법을 심리학, 생물학, 신화, 종교, 철학 등을 넘나들며 설명한다.◆행복을 찾기 보다는 의미를 찾아라피터슨이 제시한 12가지 법칙은 보수적이고 엄한 말투의 조언들로 가득차 있다.첫번째 법칙은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다. 그는 바닷가재를 통해 인간을 설명한다. 서열싸움에서 패배한 바닷가재는 움츠러 들고 좋은 것들을 전부 빼앗긴다. 인간도 서열구조에서 낮으면 더 나은 삶을 살 기회가 줄어든다. 우울하고, 의욕이 떨어진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피터슨이 제시한 방법이 자세를 바로 잡고 의욕을 찾는 일이다. 신체와 정신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자세를 똑바로 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가짐이 바뀌고 사람들의 시선이 바뀐다는 것. 바로 승리한 바닷가재의 모습을 떠올리라는 것이다.마지막 법칙에서 그는 인생을 고통이라 여기게 된 사연과 함께 고통에서 얻은 교훈을 소개한다.그의 딸 미카일라는 7세 무렵 발이 아파 신발을 신지 못했다. 소아 류머티즘 관절염이었다. 무려 37개 관절에 문제가 있었다. 통증을 견디다 못해 실신하며, 발목 절단 위기까지 겪었다. 10년 넘게 투병하는 과정에서 그는 고통에 무너지지 않는 방법에 대해 깨닫는다.책 에서 그는 "다음 주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면 우선 내일만 생각하고, 내일도 너무 걱정된다면 1시간만 생각한다. 1시간도 생각할 수 없는 처지라면 10분, 5분, 아니 1분만 생각한다. 사람은 상상 이상으로 강인하다. 지금 눈앞에 놓인 문제를 마주할 용기만 낸다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또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면 쓰다듬어 주는 것 같은 작은 기쁨을 발견하라는 조언도 한다. 그는 "아무리 안 좋은 날이라도 주의를 기울이면 그런 작은 기쁨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삶은 살만한 것이다. 어떤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인내하려면 선한 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선한 면을 보지 못하면 삶의 방향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다"고 했다.지은이 피터슨은 춥고 황량한 캐나다 앨버타주 북부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접시닦이, 양봉업자, 건설 인부, 운전사 등 다양한 험한 일을 경험하며 자랐다. 정치학도였지만 임상심리학으로 박사를 땄고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로 있다. 552쪽, 1만6천800원.[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법칙 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법칙 2.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법칙 3.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법칙 4.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법칙 5.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법칙 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법칙 7.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법칙 8.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법칙 9.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을 들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라법칙 10.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하라법칙 11.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법칙 12.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면 쓰다듬어 주어라

2018-11-08 12:13:47

독도 7시 26분/김남일 외 18인 지음/휴먼&북스 펴냄

책 제목에 있는 시각 '7시 26분'은 우리나라에서 해돋이가 시작되는 곳인 독도의 공식적인 1월 1일 일출 시각이다. 이 책은 2005년 일본의 도발에 맞서 경상북도가 발표한 독도 지키기 종합대책(일명 안용복 프로젝트)의 산물로 설립된 '독도지킴이팀' 그리고 그들의 선후배들과 동료들이 독도를 지키기 위해 동고동락하며 보내야 했던 뜨거운 투쟁과 노력, 향후 전망을 기록하고 있다.일본이 불법적으로 독도를 자기네 영토에 편입한 때가 1905년 1월. 그로부터 100년 되는 날인 2005년 3월 16일, 일본은 시마네현의 소위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앞세워 독도 일본령을 내외에 기정사실화했고 자국 교과서에 관련내용을 점차 확대 기술해왔다.책은 경북도 김남일 재난안전실장을 비롯해 모두 19명의 필자가 참여했고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독도의 역사와 한일간 쟁점을 다루고, 2부는 독도의 생태 현황과 보존 방안을, 3부는 독도를 지켜온 이들의 삶과 향후 전망을 다루고 있다.필자들이 현장에서 촬영했거나 국내외에서 발굴한 200여장의 사진들이 기록물로 함께 편집됐다. 현장을 뛰어본 이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긴장감과 생동감이 책 전편에 흐르고 독도의 역사, 자연, 환경과 독도 투쟁에 대한 최신의 실록이자 백서라고 할 수 있다.현재 독도는 중앙과 지방이 손발이 맞지 않아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단적으로 우리나라 경우 총리실 정부합동독도영토관리대책단이 10여개 부처의 참여 아래 정책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회의가 울릉도 현지에서 열린 적은 없고 거기에 참여한 부처 담당국장들 대부분이 독도에 가본 적도 없다. 반면 일본은 내각 영토주권대책 기획조정실과 시마네현이 유기적으로 공조하면서 정부각료급 인사들이 우리 정부 인사의 독도 방문에 일일이 항의하는 등 일관된 대응방침을 유지하고 있다."독도를 포함한 동해바다를 지키는 일은 곧 우리나라를 21세기 세계사를 주도할 해양민국으로 만드는 길입니다"고 외치는 김남일 실장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

2018-11-06 18:50:14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수필 부문 당선소감]최상근 '낮달'

최상근 '낮달' - 당선소감 기억이라는 것. 세월이 흐를수록 희미해지는 추상. 오히려 뚜렷해지면서,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이미지. 수많은 찰나가 엉겨 붙어 이룩된 억겁이 비바람에 씻겨 바랜 것. 그것이 낮달이다.낮달을 올려다보면 처연하게 살다 간 어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번지는 희미한 미소. 이미지의 반은 낡고 닳았다. 그것은 내가 어머니 속을 다 태우고 남은 흔적이다.어릴 적, 특히 어머니를 별나게 애먹인 데는 이유가 있다.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탓이다. 다른 형제에게 무엇을 빼앗긴다는 두려움이 내 마음속에 잠복했다. 속 깊은 곳에 그런 심리적 부담감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을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일로 풀었다. 너무 울어서 동네 울보였던 기억이 새롭다.그러나 이제 울지 않는다. 나를 울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는 사이에 그 옛날 불안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머니가 없어도 제법 앞가림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왠지 서운해서 자꾸만 되돌아보는 것은 왜일까.나는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어머니를 의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어머니'라고 불러 놓고 나서야 제대로 된 고백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도 다 어머니를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시니어 세대에게 기회를 주신 매일신문사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주저앉지 말고 끝까지 완주하라고 주신 기회라 생각됩니다. 이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소중합니다. 심사해주신 위원님에게 감사드립니다.

2018-11-05 13:29:41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수필 부문 당선작]낮달

낮달 낮달이 떠 있다. 간밤을 온통 환하게 비추던 달이다. 무슨 미련이 남아서인지, 아직도 저리 하얗게 떠 있다. 지워지지도 않는다. 태양이 점점 달아오르며 눈치를 주어도 미적거린다. 다 큰 자식들을 언제까지 품으려 했던 내 어머니 같다."내사 마 자식 손톱 밑에 흙 들어가게 하지는 않을란다."어느 날 밤, 어머니는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혼자 말했다. 마치 당신 자신으로부터 다짐이라도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자식들의 앞길을 눈부시게 비추는 보름달이 되었다. 포도송이처럼 올망졸망 매달린 어린 자식들은 그저 어머니의 입만 바라보았다.새록새록 숨 쉬던 자식들이 어느덧 커서 학비를 받으러 꼬박꼬박 집에 들렀다. 어머니는 동네의 이집 저집에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왔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처럼, 자식들은 어머니가 얻어온 빚을 야무지게 받아갔다. 그러나 누구도 어머니가 얻어온 빚의 자초지종을 묻지 않았다.해마다 가을이면 어머니는 수확한 곡식을 팔아 빌려온 동네 빚을 갚았다. 다 갚지 못해 어떤 빚은 해를 넘겨야 했다. 그 위에 새로운 빚이 늘어갔다. 다른 빚을 얻어 묵은 빚을 갚기도 했다. 어머니의 수확은 남의 빚 가리는데 다 들어가 버렸다.굵직한 글자로 된 농협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다. 어머니만 알 수 있는 상형문자로 그 달력에 얻어온 빚을 표시했다. 연필로 쓰인 상형문자는 길고 짧은 막대와 그 위에 다시 사선을 긋는 형태였다. 그래도 그 회계가 한 번도 틀린 적은 없었다.보리타작하던 날에 빚을 얻었다면, 그 날자에 막대 표시와 함깨 우스꽝스러운 도리깨 모양을 그려 넣었다. 모내기를 한 날에는 못단을, 어느 집에 잔치가 있었다면 치알을 함깨 그려 기억하기 수월하게 했다. 막대기와 그림이 어울려 마치 원시인들의 암각화를 보는 듯 했다.해가 바뀌면 새 농협 달력에는 지난해의 빚을 갚을 날에 똑같은 암각화가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새 달력이 연필 칠로 온통 새카맣게 되었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빚 장부가 된 새까만 달력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으나, 가슴은 내려앉았다. 까맣게 된 달력은 고단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날개가 돋아난 자식들이 하나씩 사방으로 날아갔다. 돈 많이 벌어 다시 오마고 하던 뒷말을 한결같이 남겼다. 그러나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소식은 언제나 흐릿하게 들려왔다. 어머니의 마음은 간절함으로 타들어 갔지만, 가뭄의 여우비처럼 설핏 다녀가기만 하는 자식들이었다. 어머니의 강단진 구심력은 오래된 거미줄처럼 느슨해지고 말았다.내 걱정 마라며 손사래를 치는 팔순의 어머니는 시골집을 홀로 지켰다. 평생을 풀어내어 다지고 여민 집이라 구석구석에 애환이 서렸다. 여기서 자식들을 키웠는데 다시 어디를 간단 말고. 지난 일을 돋보기 너머로 내다보면서, 어머니는 자식들의 염려에서 스스로 멀어졌다.고향 집에 들렀다. 동네에 빚 얻으러 갈 일이 더는 없을 텐데, 댓돌 위에는 익숙한 털신이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없으면 책 보따리 내던지며 찾아 나섰다. 세월이 흘러도 버릇은 남는지, 나도 몰래 사립문 밖으로 나서는 것이었다.그날 밤이었다. 뒷간을 다녀오는데, 마당에는 달빛이 내려와 온통 떡을 치고 있었다. 그 적막의 한가운데에 백발의 어머니가 말뚝처럼 서 있었다. 그사이를 못 참고 마중 나왔다. 자식들을 언제까지 품을 작정일까. 마지막 남은 한 가닥 기력마저 자식들에게 내어주고 있었다.어머니의 품은 낡았다. 쭈그러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젖무덤은 수세미처럼 축 늘어져 냉기가 돌았다. 손등에는 험난했던 가족사가 하얀 금으로 새겨졌다. 등골이 빠진 어머니의 몸은 매미 허물 같았다. 버석거리는 몸이 바람처럼 일렁거렸다.시골집에 단단하게 들어앉은 어머니는 앉아서 천 리를 내다보는지 요지부동이었다. 여전히 자식들의 앞을 비추는 보름달이 되고 싶었지만, 달도 차면 기운다. 영원한 보름달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무슨 달인들 어떤가. 자식들을 지켜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저 달이 그달일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낮달이 떠 있다. 어머니의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어느 자식에게 무슨 근심이라도 생겼는지 빌딩 끝에 걸린 채 오도 가지도 않는다. 저렇게 감싸고 도는 마음을 어느 천년에 내려놓을까. 버선발로 달려올 것만 같아 차마 눈을 주지 못하겠다.고향의 밤하늘에는 어머니 안 계시는데도 보름달이 뜨는가. 사립문 마당에는 아직도 달빛이 퍼부을까. 내려진 사랑은 누가 담아가는지. 낮달을 보는데, 마음은 어느새 달빛 비치는 시골집에 가 있다.

2018-11-05 13:29:13

삼한씨원 40년 사사(SAMHAN C1 40YEARS HISTORY)

"가자! 100년 기업도약"…삼한씨원 40년(1978~2018) 사사(社史) 발간

친환경 황토벽돌을 생산 국내외 최고의 기업인 (주)삼한 씨원(회장 한삼화)이 지난 40년의 기업 역사를 집대성한 삼한씨원 40년 사사(SAMHAN C1 40YEARS HISTORY)를 발간했다.1978년 10월 (주)삼한상사로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40년 동안 삼한이 걸어온 '흙으로 빚어 온 친환경 벽돌 40년' 역사를 다양한 사료와 사진자료를 편년체로 정리했다.첫머리에는 주거환경에서 갈수록 각광받는 황토벽돌의 장점과 생산공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또 삼한이 걸어 온 40년의 역사를 사진으로 정리해, 국내외 최고의 친환경 벽돌생산 기업으로 성장해 온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삼한 씨원은 대구에 본사, 경북 예천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총 181,818㎡(55,000평) 부지에는 450여 억원을 투자해 흙 100%의 황토벽돌(건축용)과 황토보도벽돌(바닥용)을 생산하고 있다.1990년 예천공장을 설립하면서 이탈리아의 모란도(Morando)사 설비를, 2003년 제2공장을 증설하면서 독일의 링글(Lingl)사 설비를 도입하는 등 제조공정을 첨단화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시켜 왔다.1997년 ISO 9001 인증 획득 후 품질보증 Q마크, KS, GD, 이노비즈, K마크 등을 인증받았다. 2011년에는 국내 최초 조달청 '자가 품질 보증업체 1호'로 선정되기도 했다.경북 고령 출신인 한 회장은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상'(1997년), 중소기업청 선정 '제1호 신지식인'(2000년), '산업포장'(2004년), '국민훈장 동백장'(2009년)에 이어 '국토교통부장관 표창'(2014년) 등 을 수상했다.창립 40주년을 맞은 삼한 씨원은 대표이사에 한승윤 사장이 취임하며 2세 경영시대를 열고 100년 기업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발행인 한삼화, 303쪽 비매품.

2018-11-01 13:39:5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두 개의 삼베 이불

두 개의 삼베 이불 정순연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고향에 있는 마을회관을 찾았다. 할머니들과 같이 정담을 나누다가 지난 날 길쌈 하던 이야기가 나왔다.내가 결혼을 할 때 어머니는 삼베 이불 두 개를 주면서 한 개는 '니 올케 몰래 준다' 고 하던 말이 생각이 났다. 그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 질녀도 같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사실대로 말을 했다. 그러자 질녀가 '엄마도 삼베 이불 한 개는 할머니 모르게 준다' 면서 하나 더 주더라고 했다. 결혼 35년 만에 처음 말한다고 해서 회관의 방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두 분은 오래 전에 우리들 곁을 떠나갔는데 이제야 비밀이 들어났다. 서로의 노력으로 만든 이불을 각자의 딸에게 더 챙긴 것이었다. 어머니들의 진정한 마음과 끈끈한 자식사랑을 느끼게 했다. 동네 할머니들이 저승에 일러주러 가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길쌈을 할 때는 고부가 같이 일을 했다. 나는 어머니가 나에게만 더 준줄 알았지 큰 올케가 어머니 모르게 질녀에게 줬다는 것은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질녀는 나보다 십 여 년이나 늦게 결혼을 했다. 그때까지 잘 보관 했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챙긴 이불을 주지 않았다면 힘들게 짠 삼베를 판돈은 받아써서 간곳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흔적을 남겼으니 잘 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질녀는 여름이 되면 할머니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삼베 이불을 침대에 깔고 덮는다고 말했다.한 번은 작은 올케가 올케의 친정에서는 길쌈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을 할 때 삼베 이불을 가져오지 못해서 어머니께 하나 달라고 하니 줄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 했다. 몇 번이나 말을 하니 제일 질이 나쁜 것을 하나 주더라고 하면서 섭섭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아마 이불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시집가는 딸은 두 개나 주면서 아들이 덮을 이불인데 하나 챙겨 주지 않은 것은 오랫동안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삼베 이불을 만들기까지는 많은 손길이 간다. 봄이 되면 논에 삼씨를 뿌려서 사람 키만큼 자라면 삼대를 베어와 쪄서 삼 껍질을 벗겨 가늘게 짼다. 삼을 길게 잇고 양잿물에 담구어서 하얗게 바랜 후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베틀에서 베를 짜면 드디어 완성이 된다.집에 도착하자마자 장롱 서랍에 깊이 넣어둔 삼베 이불을 꺼냈다. 흘러가는 시간의 두께 만큼 누르스름하게 빛바랜 이불은 사십 여 년 동안 어두컴컴한 곳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이제야 밝은 세상으로 나왔다. 내가 결혼할 때 어머니가 해준 물건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혼수품이다. 40여년의 세월을 건너 어머니의 숨결이 그려지듯 그때의 그 얼굴이 그대로 겹쳐졌다. 어머니의 삶의 흔적이며 또한 아련한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기도 하다.돌이켜보니 삼베 이불은 용도가 다양하다. 내가 자랄 때 우리 집은 동향이었다. 더운 여름에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따가운 햇볕은 방안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침에 식구들이 모여서 마루에서 식사를 하려고 하면 햇살 때문에 불편했다.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면 생각다 못한 어머니는 높은 곳에 못을 쳐서 삼베이불을 걸어서 햇빛 가리개로 사용을 했다. 그러면 우리는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밤에는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와 함께 하늘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과 희미한 은하수를 쳐다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모기들이 앵앵거리며 살갗을 파고들었다. 그때 삼베 이불을 턱 아래까지 덮으면 모기는 가까이 오지 못했다.삼베 이불은 가을에 참깨나 들깨를 수확 할 때나 씻어서 말릴 때도 사용을 했다. 요즈음이야 비닐이나 부직포 같은 것을 사용을 한다. 그러나 그때에는 말릴 도구가 마땅하지 않아서 거기에 말릴 수밖에 없었다.나는 해마다 여름에는 빨래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화학섬유나 면으로 된 이불만 덮었다. 삼베로 만든 이불은 손질하기 귀찮아서 꺼내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보통이불은 세탁기에 넣어서 돌려서 말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삼베 이불은 삶아 씻어서 밀가루 풀을 끓여 잘 스며들도록 주물러야 한다. 햇볕에 널어서 꾸덕꾸덕하게 마르면 양쪽으로 잡아 당겨 곱게 접어서 발로 꾹꾹 밟거나 다듬잇돌에 방망이로 두들겨서 다시 말려야 된다. 그렇게 하면 삼베 이불의 구겨진 주름들은 곱게 펴진다. 그만큼 번거롭고 손질하기 힘이 든다.몸에 닿으면 달라붙지도 않고 통풍도 잘 되고 시원하다. 까실까실하고 촉감도 참 좋다. 올해같이 찌는 듯한 더위에는 삼베이불의 기능에 감탄했다. 진작 꺼내서 덮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오늘따라 이 세상과 멀어져 간 그분들이 더 생각이 난다. 어머니와 올케가 한 올 한 올을 엮어서 어렵게 길쌈을 하던 모습을 떠 올리면서 삼베 이불을 덮는다. 두 분의 체취가 스며있고 정성이 가득담긴 시원한 이불을.

2018-10-29 11:34:38

인간의 본능

인간의 본능/ 케네스 밀러 지음, 김성훈 옮김/ 더난출판 펴냄

"인간은 그저 행운과 우연이 낳은 운 좋은 생존자에 불과한가?"진화론이 불편한 사람과 진화론이 궁금한 사람은 이를 설명하는 최상의 해설서인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미국과학진흥회의 과학대중참여상, 진화연구학회의 스티븐 제이 굴드 상에 빛나는 지은이가 오래된 진화론 vs 창조론 공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았다.지은이는 "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깊어질수록 세상은 더욱 경이롭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는 진화론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기지 않고, 그들의 불안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이해하려 노력한다. 더불어 진화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유구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류가 차지한 위치가 얼마나 숭고한지 깨닫게 된다고 역설한다.진화론에 대한 거부감은 인간의 우월한 자유의지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예술, 윤리, 사회, 의식 등 인간 본성이 단순히 진화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진화심리학의 주장은 일부 사람들에게 정서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진화의 법칙 속에는 우주에서 인간의 자리를 특별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아무리 봐도 없지만, 지은이는 이 사실이 결코 인간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이는 과학과 종교가 우주와 그 안에 인간의 자리를 이해한다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함께 갈 수 있다는 지은이의 신념과도 이어진다. 사실 이 책의 지은이 케네스 밀러는 생물학 교수인 동시에 가톨릭 신자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는 진화의 역사를 바탕으로 그 속에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자유의지'라는 인문학적 가치를 절묘하게 조화시키고 있다.이 책은 과학도서임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적 언급이 풍부하다. 과거와 현대의 문학작품, 철학고전, 과학 관련 명저 등을 고루 언급하면서 박학다식함과 치우침 없는 지은이의 폭넓은 교양이 돋보인다.제1장 '숭고한 비전'에서는 인간의 자리를 정의해주던 이야기를 잃은 현대인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이야기하며, 다윈의 '종의 기원'이 갖는 특별함을 언급한다. 지은이는 다윈 역시 각각의 생명체가 고유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선형적으로 진화해왔다는 사실에 일종의 숭고함을 부여한다고 해석했다.이 책의 주제와도 맥락을 같이하는 진화론에 대한 반감은 의외로 진화론 자체의 합리성과는 관련이 없는 편이다. 오히려 다윈이 염려한 대로, 그 반감은 인간 존재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에 대한 불편한 감정에 가까운 것이다. 예를 들면, 1925년 7월 21일 미국 테네시주에 있었던 소위 '원숭이 재판'은 지식과 합리성을 갖춘 진화론과 무지하고 미신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의 충돌로 묘사되곤 한다. 당시 과학교사 존 스콥스는 진화론 교육을 금지한 테네시주 법률을 어기고,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인간을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가르칠 수 없다'는 내용의 버틀러법이 정말 막고 싶었던 것 역시 인간이 다른 온갖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생물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었다.지은이의 마무리 멘트. "진화론은 아담의 죽음이 아니라 아담의 승리를 말해주고 있다. 진화론을 통해 우주에서 우리 인간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416쪽, 1만8천원.

2018-10-25 15:23:07

의병과 풍각쟁이/한은희 글'최유정 그림/학이사어린이 펴냄

동화창작에 정진해 온 지은이가 쓴 장편역사동화이다. 스토리의 무대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전인 1900년에서 1910년 사이로 대구 중구가 배경이다.이 책에서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돼 사람들 사이에 '빼스뽈'이라고 불리며 선풍적 인기를 끈 '야구'에 관한 이야기부터 역시 최초로 대구 달성군 화원읍의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들여와 '귀신통'이라 불리면서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을 느끼게 했던 '피아노' 이야기까지 낯설고 신기한 이야깃거리로 담겨 있다.사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교육만으로는 일제의 만행, 그 시대의 아픔을 깊이 알기 어렵다. 이 동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깊이 있게 알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봄직 하다.지은이는 대구문학상, 경북스토리콘텐츠공모전 수상과 함께 대구문화재단 개인예술가 창작지원도 받았으며 동화책 '아기 혼령 려려' '학교를 폭파하라' '명성황후 그 분을 찾아서' 등이 있다. 160쪽, 1만1천원

2018-10-23 16:27:28

사라진 얼굴/하재청 지음/시와에세이 펴냄

야간 자율학습 시간/그 녀석의 책상을 걷어찼다/아무것도 아닌 줄 알고 한 번 걷어찼을 뿐인데/(중략)/텅 빈 그림자에 피가 얼룩진다/책상에 엎드려 매일 자는 줄 알았는데/(중략)/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교실 형광등도/진저리를 치고 있다'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2004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한 시인 하재청의 첫 번째 시집이다. 그의 첫 시집을 펼치면 마주하는 것은 학교라는 무대와 학생이라는 배우들이다. 교단 30년을 정리하고 묶은 시집은 시인이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문이자 우리 교육현실에 대한 직시이다.교사로서 시인은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의 충격으로 안이한 시간을 살아온 자신과 교실, 학생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지은이는 이 시집에서 경쟁과 성적 제일주의, 학벌주의로 일관하는 오늘의 교실에 대한 안쓰러움, 분노 그리고 이에 대한 자학과 연민 등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다. 교사로서 정직성이 시적 언어로 전화돼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준다. 시인은 올해 퇴직 후 고향에서 글을 쓰고 있다. 120쪽, 1만원

2018-10-23 13:24:26

풍선/최경화 지음/문예미학사 펴냄

고단했던 삶 앞에 끝까지 등을 보이지 않으셨던 부모님께 첫 시집 출간의 기쁨을 바친다는 지은이는 마음이 읽은 윤동주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란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았다.'첫 소변은/어제의 나를 성립시킨 모든 것/소변의 농도 빛깔 냄새는/(중략)/꿈은 자기 방식대로 정리한다/꿈의 문법에 서투른 나는/좌변기의 손잡이를 내려버리고/축축한 몸을 또 다른 사막 가운데 옮긴다'지은이는 그동안 소설과 시나리오를 써왔으나 이번에 첫 시집을 펴냈다. 4부 60여편으로 구성된 시집에서 지은이는 현재의 삶을 뛰어넘어 새로운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며 현재의 가난한 삶을 극복하고 존재의 근원에 대한 위안을 통해 새로운 유토피아적 삶을 시를 통해 희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모든 시가 메시지가 좋고 언어구사도 유려해 감동을 준다.119쪽, 1만원

2018-10-23 13:23:59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씨름 혹은 싸움-정경용

딸을 툭! 툭! 건드렸다. "하지마!" 귀찮아 하던 딸이 곧 일어나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엎어놓고 팔을 비틀고 다리를 꺾고 어깨와 등을 흠씬 패고 나서 씩씩거리며 보일듯 말 듯한 웃음을 보였다. 한바탕 장난질이 끝나고 나서 나는 딸을 꼭 껴안았다.미용실을 경영하는 바쁜 시간 속에서 초등학교 4학년의 아들과 새로 입학한 딸의 표정에 나는 민감하게 대처를 하였다.밖에서 싸움을 한 날이나 고민이 있어 보이는 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장만하였다. 저녁상을 차리는 동안 햄이나 계란말이 또는 고기 반찬을 지지고 볶았다. 굳었던 표정이 밝아졌다. 밥을 먹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물어보면 줄줄 풀어 놓았다.오늘은 딸이 지능이 모자라는 저능아 짝꿍에 대하여 하소연을 늘어 놓았다."짝꿍이 화장실을 갈적마다 같이 갔어요. 이쪽인데 자꾸 저쪽으로 갔어요. 왜 그렇게 고집이 센지, 말도 못 알아듣는 것인지, 그래도 다른 때는 손잡고 가면 잘 따라왔는데 오늘은 그만 옷에다 똥을 쌌어요"딸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딸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짝꿍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짝을 바꾸고 싶다고 하였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말해보겠다고 하면서 볼에다 뽀뽀를 해주었다. 짝꿍을 보살피려면 참 힘들겠지만 나보다 약한 친구를 도와주는 것은 공부보다 더 중요하다고 위로해주었다.미용실 손님에 치이고 살림에 부대끼다보니 몸이 많이 지쳤다. 사지가 쑤시고 붓고 저렸다. 만만한 게 딸이었다. 초등하교 입학하기 전에는 허리나 등을 밟아 달라고 부탁하면 잘 해주었다. 딸은 점점 싫증과 부담을 느꼈고, 어느새 훌쩍 자라서 밟히는 나도 아팠다. 딸에게 밟히는 시원한 통증을 잊은 지 오래되었다.딸과 장난을 치다가 딸의 주먹질이 시원했다. 그 후 시원함을 느끼는 쾌감도 있었지만 바쁜 틈새의 오붓한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는 자주 장난을 하였다.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아들과 딸의 숙제를 들여다보고 나서 점포에 딸린 단칸방에 잠자리를 펴는데 딸이 갑자기 달려들어 나를 쓰러트렸다. 허우적거리는 동선을 그리며 이불 위에다 몸을 눕혔다. 나를 엎어놓고 등에 올라탔다. 팔을 뒤로 꺾어서 등에다 붙이고 자근자근 주물렀다. 주먹으로 어깨를 퉁퉁 치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다리를 꺾고 양 다리를 엑스 자로 어긋맞춰 지긋이 눌렀다."엄마! 시원해? 내가 엄마 안마해주려고 목욕관리사 아줌마가 손님에게 하는 것 찬찬히 봤어요. 엄마가 아프면 나에게 장난거는 것 다 알아요"딸이 엎드려 내 귀에 속삭였다. 속내를 들키고 말았다. 울도 담도 없는 난달 가게에서 제대로 거두지도 못하였다. 손님에게 매달려 매일 방치하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돌며 동네 아이들을 때리고 툭하면 저보다 큰 애들하고 싸움을 하는 통에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어느날은 맞고 들어와서 훌쩍거렸다."울긴 왜 울고 다녀? 억울하면 때린 애 집에 가서 울어야지 가서 더 맞던지, 사과를 받던지, 네 선에서 해결하라구. 생각 좀 해봐 손님네 애들하고 싸움이나 하고 어떻게 장사를 하겠어"그렇게 막무가내인 줄만 알았는데 엄마를 읽을 줄 았았다.

2018-10-22 11:17:38

징검다리/박영미 지음/문예미학사 펴냄

대구에서 활동하는 박영미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징검다리'를 펴냈다.대구경북작가회와 삶과 문학 회원으로 활동하며 의성군에서 자두랑 복숭아 농장을 경영하는 지은이는 이번 시집에서 가족, 종교 등 주변 일상들을 아름답고 따뜻한 시어로 풀어내면서 인생의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남편의 얼굴이 어둡다/지난겨울, 혹한과 잦은 눈으로/자두나무 복숭아나무 42그루가/얼어죽어 버렸다/(중략)/올해는 살아남은 나무 둥치에, 도회의 가로수처럼/짚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주는/호강(?)을 시켜야 하겠다'시를 통해 내뱉는 시인의 목소리에 가성은 없다. 생명노동과 기도로 삶을 평화로 가득 채우고자 하는 구도의 길 위에 그의 시는 소박하면서도 새벽이슬 머금은 풀꽃처럼 빛난다.시인은 경북 청도 출신으로 청구중 교사와 매일신문 기자 등을 지냈으며 2007년 '사람의문학'으로 등단했다. 110쪽 9천원

2018-10-18 15:12:04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서혜정 지음/소소담담 펴냄

2012년 장애인 문학상 공모 우수상과 올해 전국 장애인 글쓰기 공모 은상을 받은 지은이가 180여 편의 짧은 글을 수록한 에세이집이다.경력에서 알 수 있듯 지은이는 사고로 다쳐 어릴 때부터 장애인으로 생활했고 독서와 글쓰기는 자신을 지키고 세우는 유일한 길이었다. 육체적 고통에 따른 정신적 충격과 고뇌를 글로 풀어냈던 것이다. 처음엔 숨은 사연과 속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긴 수필을 창작했었는데 결국 긴 글은 자신을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짧은 아포리즘 에세이로 글쓰기를 전환한 작품집이다.책의 특징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 순간과 세련된 아포리즘이 돋보이고 살에 대한 긍정과 자기애를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장애인이지만 사업체를 운영하며 생활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삶의 소중함과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짧은 글 속에서 큰 웅변으로 다가온다. 248쪽, 1만4천원

2018-10-17 10:12:04

세상을 뒤흔든 전투의 역사/유필하 지음/들녘 펴냄

이 책은 고대 카이로네이아 전투부터 제2차 세계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 역사상 기념비적 전투 25장면을 뽑았다. 전투의 원인, 시대적 배경, 전투의 양상, 그리고 그 영향도 정리해 역사적 흐름을 연결해 연대기처럼 서술했다. 특히 고증을 위해 50여컷의 진형도를 첨부해 이해도를 높였다.출판사 자료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21장~25장에서는 기존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동부전선에 집중해 독일과 소련 사이 전쟁의 진상을 파헤친 점 또한 이 책의 큰 특징이다.무엇보다 독서의 재미를 더하는 것은 인물에 대한 묘사로 일개 병졸이나 스파이, 상인과 문지기 등 역사에서 외면했던 인물을 되살려 그 캐릭터를 그려내고 그들의 역사적 의미를 새로이 조명하고 있는 점이다.객관적 사실과 함께 지은이의 주관이 어우러져 책 읽는데 몰입하게 만드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648쪽, 2만2천원

2018-10-17 10:11:34

부키야 놀자 북 페스티벌 행사 사진. 새마을문고 대구광역시북구지부 제공

아이들과 함께하는 '2018 부키야 놀자 북 페스티벌'

아이들과 함께하는 '2018 부키야 놀자 북 페스티벌'이 다음 달 3일 대구 북구 함지공원일대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열린다.이번 행사는 새마을문고 대구광역시북구지부(회장 이승로 수성고량주 대표)가 주최한다. 책읽기의 소중함과 독서 생활 습관정착, 북구 상징 부키를 이용한 그림 그리기를 통해 지역사랑을 고양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문화 행사로 건강한 공동체 만들기에 이바지한다.생명·평화·공경 그림 그리기 대회, 대구전통 활쏘기대회, 초중고 댄스 경연대회가 마련된다. 주최 측은 "작년에 이어 올해는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경연대회와 참여마당을 다채롭게 준비한다"고 설명했다.참여마당에서는 ▷전통예절교실 ▷수준별 책읽기 지도 ▷청소년 진로상담 ▷오피니언리더 도서교환전 ▷시 낭송 체험▷국채보상운동 나라 사랑▷가상현실과학교실▷구암고분해설등 교육적인 부대 행사가 펼쳐진다. 특히 네일아트, 페이스 페인팅, 쥬얼리 체험 등 생활예술체험 아트마켓에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다.이번 행사는 지역의 단체들이 참여해 의미를 더한다. 서부교육지원청과 대구 북구청의 후원 아래 행복북구문화재단, 칠곡향교, 북구청소년회관이 힘을 보탠다. 특히 칠곡향교의 전통예절 교육은 학생들이 한복으로 곱게 갈아입고 손님맞이 예절, 인사하는 법, 차 따르는 법 등을 체험하는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북구 보건소의 아동건강 바로 알기, 어르신 기억 솔솔 바람개비 만들기 참여와 건강 걷기 행사도 병행하여 지역 주민들의 참여도를 높인다.작년 행사 보다 행사 규모가 커졌고, 초·중·고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더 다양해졌다. 사전 신청자에 한해 도시락과 기념품이 무상으로 제공되고 경품 행사도 푸짐하다. 접수는 새마을문고 대구광역시북구지부(053-383-3787).

2018-10-16 14:28:25

[시니어 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소감]달빛상념

창밖은 초록세상이다. 다가오지 않을 것 같은 초하(初夏)가 막 눈앞에 어른거리며 잡히기 시작했다.지금껏 내 글쓰기는 감성이 아닌 팩트(事實)속에 갇혀 있었다. 팩트란 주관성과 감수성 쪽이라기보다는 객관성과 논리성의 편이 아니던가. 팩트의 우산 속에서 밖을 쳐다보지도 쳐다봐서도 안 되는 줄 알고 살아온 것 같다. 팩트 밖은 늘 불안하고 위험한 곳으로 여겨왔다. 마치 나의 작은 우주요 나의 따뜻한 안식처로 여기며 오래 그곳에 머물렀다.학창시절에는 가끔씩 팩트를 넘어서고 싶은 생각들이 나를 꼬드기며 부추긴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수절하는 심정으로 허벅지를 찔렸던 기억이 오롯이 떠오른다. 문학적 DNA를 찾지 않고 걷어찬 셈이다. 그땐 그랬다.간만에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팩트 밖의 새로운 세상을 봤기 때문이다. 밝고 찬란하다. 좁고 얇은 속박의 틀을 벗어나니 새로운 신세계가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온 몸으로 느껴진다.이젠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싱그러운 세상, 내 가슴으로 느껴지는 상큼한 세상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누구의 것을 흉내 내고 싶지 않다. 내 느낌과 감성을 그저 글로 토해내고 싶다.어쭙잖은 글을 예쁜 시선으로 봐준 '매일신문'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인생 2모작에 빛나는 디딤돌이 되어주었으니 말이다.「수필과 지성 」글벗들이 생각난다.새롭게 펼쳐지는 이 길이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절감한다. 전도양양하게 걸어갈 것이다. 새로운 길을 내고 닦는 심정으로 말이다.하안거(夏安倨)로 축 쳐진 어깨에 새로운 서광이 비춰짐이 느껴진다. 내 글쓰기도 창밖의 신록처럼 푸르름이 가득 돋아나길 떨리는 가슴으로 기원해본다.

2018-10-15 11:27:20

일러스트 전숙경 (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달빛상념

달빛 상념/장기성 한가위에 고향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리움일까 설렘일까. 아무래도 달빛에 대한 환상이 폐부 깊숙이 각인 된 탓일 게다.초저녁이 되면 앞산자락에 둥근 달이 나무가지에 걸린다. 한낮에 대지를 뜨겁게 달구었던 햇빛은 온데간데없다. 간간히 길섶과 논두렁에 몸을 숨긴 희뿌연 열기의 흔적만이 햇빛이 다녀갔음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줄 뿐이다.무심한 세월이 흐른 탓일까. 고향엔 길동무가 되어줄 도반(道伴)이 없어진지 오래다. 혼자서 희다 못해 푸르스름한 달빛을 쫒아 바람도 쐴 겸 호젓한 오솔길로 나서본다. 어슴푸레 달빛 속에서 눈대중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이곳이 그곳이고 그곳이 이곳이다.길섶의 벤치 위에 턱을 괴고 앉으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수많은 상념들이 머릿속 언저리를 맴돌며 지금의 나를 잊게 만들고, 잡다한 상념들이 이 틈새를 놓칠세라 먼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우리 동네는 산비탈에 위치해있어, 달빛이 창문을 통해 몰래 들어와 방안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달빛이 너무 해맑고 투명하여 차마 잠자리에 들기가 아쉬울 지경이었다. 이런 밤이면 나는 뒷마당 뜰에 물끄러미 서서 물처럼 출렁이는 달빛 풍경을 탐닉했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서로 사모하듯이, 나뭇잎들 속으로 달빛이 깊게 스며들었다.나무 그림자가 달빛을 받아 들쭉날쭉 땅위에 수묵화를 그려낸다. 그리움이 이 순간을 놓칠세라 빗살무늬를 일으키며 가슴팍으로 내려앉는다. 내친김에 달님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본다."달님은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하나요?""아무래도 달맞이꽃이지요.""왜요?""달맞이꽃은 원래 나를 따르던 요정이었답니다. 그믐이 될 때마다 나를 볼 수 없게 되자, 상심한 나머지 그만 쓰러져 달맞이꽃이 되었지요.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애절한 그리움의 상징으로 간주하기 시작했죠. 지금도 꽃말이 그리움이 아니던가요. 그 꽃을 생각하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답니다.""해님은 달맞이꽃을 좋아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그야 그렇겠지요. 자신을 따르는 꽃이 따로 있으니까요.""궁금하네요. 무슨 꽃입니까?""해바라기 꽃입니다. 그 놈은 해님을 지겹게 따라다니지요. 심지어 해님이 귀찮아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흐린 날에도, 님 향한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답니다.""달님, 혹시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물론이지요. 이태백이 나를 처음으로 낭만적인 사모의 대상으로 만들어 주었지요.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신다는 '월하독작'은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가 경포대와 인연 맺을 것이라고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어요. 한 번 들어보실래요. 거울처럼 맑은 호수라는 뜻의 '경포호'에는 네 가지 낭만의 얼굴이 보인답니다. 첫 번째는 하늘에 뜬 저의 모습이고. 두 번째는 바다에 뜬 모습, 세 번째는 호수에 뜬 모습. 마지막 모습은 술잔 위에 뜬 저의 모습이지요. 하나를 더한다면 해맑은 눈동자에 들어있는 저의 모습이랍니다. 그 당시만 해도 풍류와 해학이 넘칠 시절이라 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답니다."상념이 상념의 꼬리를 물며 심연의 세계에 빠지니, 광음의 촉감이 무디어져 간다. 해님과 달님의 열광적인 팬은 누구일까? 생뚱맞은 쪽으로 생각이 미치기 시작한다. 해님의 팬은 아무래도 '해바라기'가 아닐까. 이글거리는 태양이 아가페적인 사랑을 퍼부으니 말이다. '너무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숨쉬기조차 힘든 폭염 속에서도 맹목적으로 퍼붓는 사랑, 그것은 출세와 소유, 격정과 독선의 이미지와 왠지 닮은 듯하다.하지만 달님의 팬인 달맞이꽃은 새색시 마냥 수줍은 에로스적인 사랑이다. 앞에 나서는 법이 없다. 양보와 인내, 조화와 공존 같은 이미지와 왠지 닮아있다. 해님이 이성이라면 달님은 감성에 가까워 보이고, 해님이 현실이라면 달님은 낭만에 가까워보인다. 해님보다는 달님이 왠지 텅 빈 내 가슴에 포근히 내려앉는다.환영(幻影)적 상념에서 벗어나 다시 의식세계로 돌아오니, 달님은 이미 서녘에 걸려있고 밤이슬은 내 가슴속에 함초롬히 파고든다.

2018-10-15 11:27:03

이종문 계명대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그 사람 오지 않네 -권필

벗 만나 술을 찾아도 술 얻기가 어렵더니 逢人覓酒酒難致(봉인멱주주난치)술 생겨 그리워해도 그 사람 오지 않네 對酒懷人人不來(대주회인인불래)백년 인생살이가 일마다 다 이러하니 百年身事每如此(백년신사매여차)허허허 크게 웃고서 벌컥벌컥 마시노라 大笑獨傾三四杯(대소독경삼사배) "창 밖에 국화 심어 국화 밑에 술을 빚어/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 돋아온다/ 아이야 거문고 청(淸)쳐라 밤새도록 놀리라." "오늘도 좋은 날이요 이곳도 좋은 곳이/ 좋은 날 좋은 곳에 좋은 사람 만나 있어/ 좋은 술 좋은 안주에 좋이 놂이 좋아라." 둘 다 작자 미상의 조선시대 시조다.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둥근 달이 휘영청 돋아 오고, 게다가 거문고를 치며 밤새도록 놀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도 이런 금상첨화는 없다. 좋은 날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술 좋은 안주에 좋이 놀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다시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인생살이에서 이처럼 박자가 척척 맞아 떨어지는 금상첨화가 얼마나 될까.조선중기 시단의 기린아(麒麟兒)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이 지은 위의 시만 봐도 그렇다. 좋은 벗을 만나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을 때는 바로 그 놈의 술이 없다. 좋은 술이 생겨 벗과 한 잔 하고 싶을 때는 같이 마실 그 벗이 없다. 길지도 않은 인생살이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이처럼 엇박자 나기가 일쑤다. 그러니 허허허 헛웃음을 웃으며 혼자서 막걸리를 연거푸 들이키는 수밖에 없다. '그 님이 오마하고 오시지 아니하니(可人期不至)/ 이 푸른 술동이를 어찌하면 좋을까나(奈此綠尊何)'라고 노래했던 퇴계선생의 시구도 석주의 시와 번지수가 같다.이 작품에는 '윤이성이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아서 혼자 몇 잔을 퍼마시고 장난삼아 우스개 시를 지었다'(尹而性有約不來 獨飮數器 戲作徘諧句)는 긴 제목이 붙어 있다. 석주가 강화도의 한 초가집에 살고 있을 때,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동쪽 이웃에 살고 있던 윤이성이 가끔씩 술을 들고 찾아와서 적지 않게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은 그가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아서 장난삼아 이 우스개 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석주는 하는 일마다 엇박자가 났고, 심지어 죽음마저도 난데없는 엇박자로 맞았던 사람. 설사 장난삼아 지었다 치더라도, 덩달아 장난삼아 읽을 수는 없는,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이유다.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8-10-10 17:49:46

현지인이 다니는 진짜 도쿄 맛집을 알려주세요/네모 지음/자기만의 방 펴냄

주말마다 도쿄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취미인 지은이가 관광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로컬 맛집 70곳을 엄선해 소개한 책이다. 지은이 네모(본명 에노모토 야스타카)는 일본 맛집을 한국어로 소개하는 글로 SNS에서 유명인사.신주쿠 사람들의 추억의 맛집, 에비스역 근처 회사원들의 점심 맛집 등 도쿄 사람만이 아는 가성비 맛집을 소개하며 일본 음식에 대한 상식과 스토리도 풍부하게 담아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지은이는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고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서강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인에게 도움 되는 정보를 주고 싶어 인스타그램에 한국어로 도쿄 맛집 탐방기를 연재했고 이 책도 한국어로 집필했다."일본에서는 돈부리를 비벼먹지 않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한일간 음식문화의 차이를 알고 그 과정에서 여행의 색다른 재미를 느껴보라는 지은이의 배려가 참 아름답다.340쪽, 1만4천500원

2018-10-09 17:24:38

ㄱ이 ㄴ에게/김사윤 지음/문학공감 펴냄

시인 김사윤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은 시를 짓는 이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주제어로 내세우고 있다. 시인들의 양심과 지성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얼마나 주효한가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매번 해학적 표현과 미사여구의 관용구들을 깨뜨리는데 주력하는 그의 시어들은 낭송을 하면 할수록 곱씹어보는 감동이 있다. 그의 작품은 잔인하고 혹독하리만치 인간의 치부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희망'을 길어내기 위한 것임을 이르는 일도 잊지 않는다. 시집에는 시인이 시인에게 건네는 간절한 당부로부터 독자에게 건네는 안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수록돼 있다.문단내 성희롱문제를 비롯해 패거리 문학을 꼬집는가 하면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공감하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다소 거친 시어지만 희생을 감내하는 모습도 보여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1만원

2018-10-09 17:24:25

미지의 문/김종진 지음/효형출판 펴냄

미지의 문/김종진 지음/효형출판 펴냄 건축가의 눈으로 본 공간과 예술에 대한 에세이이다. 저자의 시선은 건축 밖 예술 장르를 해석할 때도 '공간'의 그림자를 생각한다. 그에게 공간은 보다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면서 편재해 있는 개념으로 건축과 예술을 보는 근본적 안목을 안내하고 있다.건축가가 쓴 책이니만큼 설계안과 건축물을 소개하고 있지만 설치나 개념미술로 대표되는 현대미술 작품, 심지어 철학과 문학, 음악의 요소를 예로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건축과 예술은 별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대상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이에 저자는 어떤 사물을 볼 때 '그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 될까'에 착안에 '무엇'보다는 '어떻게'를 , '명사'보다는 '동사'를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정해진 답이 아니라 나름대로 답을 찾게 하는 책의 전개방식은 때로는 철저한 과학적 원리에 바탕한 분석을 보여줌으로써 예술의 진정한 본질을 알게 하고 창의적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데 모자람이 없다. 288쪽, 1만8천원

2018-10-09 17:23:19

흔들림에 대하여/김광규 시집/문예미학사 펴냄

흔들림에 대하여/김광규 시집/문예미학사 펴냄 '저마다/무게 중심이 있다고 말하지만/수시로 흔들이는 우리/바람 부는 광야에서 흔들리며 살아온 뒤안길/…(중략)…/내가 흔든 그 사람은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왔을까'시집 제목을 딴 대표시 '흔들림에 대하여'이다. 지은이 김광규는 현재 봉화에 거주하며 영주청년학교 영어 강사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그이 시론은 시집 자서에 쓴 것처럼 '시를 쓰는 작업은 과거의 현상에 대한 기억을 현재에 관조하여 그것을 불멸화시키는 과정'이다. 그에게 시는 기억의 복원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내심 그의 시에 대해 미심쩍은 기분을 지울 수 없는 가보다.'사물의 내면을 파고들어가서 그 사물의 입으로 노래해야 한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에 그는 아직도 시를 붙잡고 있지만 대상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에서만 맴돌다가 어설픈 시를 내어놓은 자신을 자책한다.이 때문에 시집 말미의 시에서 노래한 '두 귀를 쫑긋 세운 기약 없는 불안'은 그로 하여금 시를 계속해서 쓰게 되는 힘인 듯하다. 113쪽, 9천원

2018-10-09 17: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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