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반갑다 새책]아름다움의 진화/리처드 프럼 지음'양병찬 옮김/동아시아 펴냄

이 책은 '성선택'(Sexual Selection)이 새와 인간을 포함한 다른 동물들의 신체와 행동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일깨워준다.수컷 마나킨새들은 무리를 지어 일사불란한 단체공연을 펼치지만 암컷과 짝짓기를 할 수 있는 건 딱 한 마리뿐이다. 게다가 책을 읽다보면 '남성과 여성들이 겨드랑이털을 가지게 된 이유' '다른 포유류들을 죄다 음경골을 갖고 있는데 유독 인간 남성만 그걸 상실한 이유' '에덴의 동산에서 일어난 황당한 사건의 전모'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까닭에 2017년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됐으며 2018 퓰리처상 최종 후보작에도 올랐다.침팬지 암컷은 강압적인 우두머리 수컷을 피해 자신이 고른 수컷과 달콤한 밀월여행을 떠나고, 구애행동을 위해 수컷이 무대를 만드는 바우어새의 경우 비상탈출구가 마련되지 않은 무대에는 암컷이 얼씬도 하지 않는다. 이 모두가 강압적으로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이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이 성적 자기결정권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의 전장에서 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현존하는 동물들의 신체에는 그 지난한 싸움의 역사가 '진화'라는 형태로 아로새겨져 있다.이로 인해 지은이 리처드 프럼이 30여년 간 현장 연구에서 우러나오는 깊이 있는 통찰의 결과는 "동물의 진화사는 젠더 투쟁의 역사이다"라고 한다.예일대학교 조류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지은이는 현존하는 새들의 생태, 서식지, 구애행동만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 이야기까지 다다르며 나아가 유인원과 종래에는 인간 사회의 문화와 섹슈얼리티까지도 두루 섭렵한다. 섬세한 세밀화와 함께 새들이 부르는 세레나데마냥 조곤조곤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이다. 596쪽, 2만5천원

2019-04-18 11:40:49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3회)

◆가을 운동회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은 잔잔한 어느 가을날 오후일광욕을 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 동산에 올랐다.그곳에서는 전찻길 건너 맞은편에 내가 다니던 경남중학교가 보인다.마침 그때 그 학교에서는 가을 운동회가 한창이었다.우레 같은 함성과 북소리 장구 소리와 함께 뛰고 달리는 친구들의 모습들이 선연하게다가왔다.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장교가 되겠다는 꿈이 사라진지 오래일 뿐만 아니라 두 발로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춘기 소년의 가슴 속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었다.내가 잘못한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신은 나에게 이렇게 가혹한 벌을 주셨을까?원망하고 또 원망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신이 인간에게 고통을 줄 때 그가 이겨내지 못할 고통은 주지 않는다.그 고통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다.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 있다''이 깨달음이 내 인생을 어떻게 뒤바꾸어 놓을지는 이때는 미처 몰랐다.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온몸 마비로 인한 욕창으로 네 번의 피부이식수술 후21개월 만에 결국 내 다리로 걷지도 못한 채 휠체어를 타고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무료입원에 부산대학병원 최장기간 입원 기록을 뒤로 한 채. ◆21 개월만의 귀가 일 년하고도 9개월 간의 병원 생활을 마감하고 돌아온 집은 말 그대로 썰렁했다.퇴원을 축하하는 팡파르는 고사하고 아버지의 한숨소리만 가득했다.전혀 난방이 되지 않은 방은 시베리아 벌판이 따로 없었다.이불을 깔고 누웠지만, 장기간 침대 생활을 한 나에게는 마치 바위 위에 누운 느낌이었다.그러나 한기도 불편한 이부자리도 잠시였고 우선 배가 고파도 집 어디에도 먹거리가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의 절망감이 나를 괴롭혔다. ◆성경책과 고구마 방은 온기가 없어 썰렁한데 일어설 수 없다는 자괴감과 절망감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그러나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배고픔이었다.집안에는 물 이외에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그런데 초등학교를 다니던 막내의 제안에 나는 그만 영혼을 빼앗기고 말았다.앞집에 사는 아이가 성경책이 필요한데 성경책을 주면 고구마를 한 개 주겠다는것이었다.결국, 입원 중에 간호사 누나가 준 그 성경책을 고구마와 바꿔 먹었다.이후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이듬해 성당에서 세례를 받을 때 신부님께 고해성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 신부님께서는 "내가 너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라고 말씀해주셨지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몸과 마음속에는 죄로 그리고 빚으로 남아있다.히포크라테스 선서식 때 자신에게 약속한 두 아들 결혼 시킨 후 언제인가 진료실 문을 닫은 후 일 년 간 주님이 허락하는 곳에서 의료봉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가장 무서운 적은 자기 자신이다. 추위와 배고픔도 잠시 어떻게든 일어서야 한다.그리고 내 발로 걸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독기를 품게 되고 자신과의 싸움을 하게되었다.지금처럼 재활의학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병원에 다닐 형편이 되지 못해 혼자서 죽을 힘을 다해 방 안에서 벽을 짚고 걷는 연습을 계속했다.나의 재활 의지를 한기와 허기도 꺾지는 못했다.광안리 백사장에서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끝에 나는 비록 목발에 의지 했지만 걷기를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다.그때 알았다.가장 무서운 적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퇴원 후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나서시던 아버지께서 두고 가신 담배를 가지러 집으로 다시 오셨다.형도 누나도 학교에 가고 없었고 집에는 나 혼자 있었다.안방에 있던 담배를 들고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뒤뚱 걸음으로 담배를 들고아버지에게 다가갔다.그 순간 아버지의 눈물과 나의 눈물이 엉켜 강물을 이루고 있었다.그 때 그 순간의 아버지와의 포옹을 잊을 수 가 없다.그 때 그 감격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버님 전 상서 그립고 그리운 아버지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란세월이 가도 바래지 않는짙고 짙은 물감인가 봅니다 때로는 달 빛 타고 오시고때로는 별 빛 타고 오시네요 생전에 지으시던 그 미소보름달 속에서 보이고 생전에 들려주시던 그 말씀달 빛 타고 들려 주시네요보고 싶은 아버지오늘 밤에는 저와 함께가로등 환한꽃길을 함께 걸어요 꿈속에서라도 함께 걸어요우리광안리 해변 광안리 바닷가는 그리움 가득한 마음의 고향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바라보며절망을 삼키며 한숨짓던 고아 소년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끝내 울음 토하던 그 곳 모든 일을 기도하듯 하라는 깨우침 있어이를 악물고 기듯 걷듯파도소리만 들리는 깜깜한 시각까지모래사장에서 자신과 끝없는 싸움을 하며자살이라는 몹쓸 것을 바다에 던지고목발 짚고 허허로운 웃음으로돌아서던 곳 그리움 가득한 마음의 고향나의 어머니 ◆떡 사세요. 떡! 어느 해 여름방학 때 쌍둥이 동생과 나는 아르바이트 아닌 생존투쟁을 하고 있었다.둘이서 떡 장사를 하는데 까까머리 머슴애 둘이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떡 사세요! 떡"을 아무리 외쳐도 떡은 팔리지 않고 따가운 햇볕에 떡에서 쉰 냄새가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이것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그냥 우리가 먹어버리자는 생각과 그래도 본전은 건져야 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번민하는 사이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더는 지체할 수가 없어서 그 떡판을 들고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누나를 찾아갔다.차비가 아까워서 두 시간을 걸어서 갔다.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떡판을 들고 나타난 쌍둥이 동생을 본 누나는 울면서 우리들의 뺨을 때렸다.이미 떡은 상해서 버려야 하는 지경인데 지체장애인 동생이 그것도 걸어서 거기까지 온 것이 떡이 상한 것보다 누나 속이 더 상했던 것이다." 정 안 팔리면 그냥 먹어버리지 그랬냐! 미련들 하기는."그랬다.정말로 미련했다.그런데 더 큰 문제는 육십하고도 아홉인 지금도 나는 여전히 미련하다는 것이다.하늘나라로 먼저 소풍 가버린 쌍둥이 아우가 너무나 그리워지는 밤이다.하늘나라도 소한인 오늘 밤은 엄청 추울 텐데...아우야!미안하다. 내가 미련해서.(4월23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 4회가 게재됩니다)

2019-04-15 17:30:00

수필과지성창작아카데미 문학 기행

대구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과 지성 창작아카데미(주강 장호병)는 13일 조태일 시문학기념관과 구례 곡성 일원을 돌아보는 문학기행을 했다. 은종일 시인, 석오균 수필가 등 50여 명이 함께했다.

2019-04-14 11:54:14

[책]소년을 위한 재판/심재광 지음/공명 펴냄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 관악산 집단폭행 사건, 인천 여중생 집단강간 사건 등 소년 흉악범죄가 잇따르면서 '소년법 폐지'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소년법이 정말 가해소년과 범죄소년에게 유리한 솜방망이 처벌을 위한 법인지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년법 폐지를 논하기 전에 소년법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팩트체크를 할 필요가 있다.'소년을 위한 재판'은 실제 소년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현직 소년재판부 판사가 소년법을 알기 쉽게 풀어낸 것이다. 소년법에 대한 오해를 풀고 현행제도의 개선에 대한 고민 등을 각종 사례를 통해 풀어냈다.◆소년법의 본 모습은?지은이는 소년법 폐지 목소리가 커지면서 소년보호재판의 실무 최전선에 일하는 사람으로서 의문을 품었다. '혹시 소년법과 제도의 본 모습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제대로 알려지면 소년법에 대한 국민들의 불편한 마음에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실제로 우리는 '소년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형벌이 감형되는 것은 부당하다. 지나치게 범죄 소년을 감싸는 것 아닌가', '형사재판과 소년재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소년재판을 받는 소년들과 보호자들을 위해 필요한 정보는 무엇인지' 등 소년법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요즘 소년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며, 소년보호재판은 형사재판과 어떻게 다른지, 소년법은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를 한눈에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소년법에 불편함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지은이는 소년법에 대한 개념 설명과 함께 소년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소년법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른 소년에게 주어지는 것이 '처벌'이 아니라 '보호처분'이라는 점에서 비판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소년들에게 보호처분이 형사처벌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고 봤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호처분에는 교육이나 봉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6개월 내지 2년 동안 시설에 위탁되거나 소년원에 보내짐으로써 자유를 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소년 범죄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절도, 폭행 등을 성인범죄와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면 대부분이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받고 풀려나게 된다. 소년 재판을 진행해온 지은이의 생각으로는 보호처분이야 말로 소년들을 매우 귀찮게(?) 해서 징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소년법 적용 나이 낮추고, 피해소년 보호조치 강화 필요현재 소년법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대해 지은이는 소년법 적용 나이를 낮추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인터넷이 일상화되고 스마트 기기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소셜 네트워크 구축과 정보 습득 면에서 지나치게 '영악'해진 소년들의 사회적 성장을 반영하자면, 형법상 책임능력을 13세 정도로 낮추어 만 13세 이상 소년이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개정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입법논의라고 생각한다."또 현행 소년법과 제도에서 피해소년에 대한 보호조치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소년보호재판을 통해 가해소년에 대한 보호처분뿐만 아니라 피해소년을 위한 보호처분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 어떨까 싶다. '소년보호'라는 개념 속에 가해소년의 건전한 성장뿐만 아니라 피해소년의 건전한 성장도 목표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책을 읽다보면 소년법과 소년보호제도가 허술하거나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소년들을 위한 각종 필요조치들이 세밀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소년법의 기초적인 개념부터, 소년재판의 절차를 따라가다 보면 소년법이 나와도 연관성이 있는 법임도 깨닫게 된다.지은이는 직접 다룬 사건을 전하면서, 재판을 받는 소년들과 보호자들을 위해 필요한 정보는 무엇인지도 알려준다. 또 흔히 혼동하고, 가장 많이 물어오는 소년법에 관한 질문을 추려 '소년법 Q&A' 코너로 설명하고 있다. 소년법과 소년보호제도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개념은 알기 쉬운 만화로 구성해 어렵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344쪽, 1만7천원. ▷지은이 심재광은 2007년 판사로 임관한 이후 12년 동안 민사, 형사, 가사, 회생파산 등 각 분야의 재판을 두루 맡아왔다. 2017년 서울가정법원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선발됐고, 2019년 현재까지 소년보호재판을 맡고 있다.

2019-04-11 11:30:57

[반갑다 새책]지리산 화개동/최석기 글'김종길 사진/지앤유 펴냄

팍팍한 현실을 벗어나 심신이 편안한 거주지는 없을까? 이른바 무릉도원이 그러하다.이 책은 지리산 화개동을 유람하고, 은거하고, 수도한 한국인들의 흔적은 찾아 나선다. 지리산 화개동과 사랑에 빠져 이곳에 기거한 것으로 전해 내려오는 서산대사와 최치원 그리고 그들이 자연에 남긴 흔적을 찾아 나선 많은 후대의 문인들, 시간을 넘나들며 이곳을 여행하고 그리워한 기록을 이 책에 담았다.1558년 화개동을 찾은 조식은 "나는 물을 보고 산을 보았으며, 그 산수 속에서 고인을 만났고 그들이 살던 세상을 보았다"고 했다.화개동에는 불교음악의 발원지 칠불사, 최치원이 학을 불러 타고 갔다는 청학동, 고려시대 한유한이 속세에 환멸을 느껴 떠나와 은거한 부춘동천 등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 수많은 화개동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의 무릉도원으로 안내해 준다.화개장은 화개동으로 들어가는 동구로서 그 안에 삼신동천, 쌍계동천, 청학동천 등 신선 세계가 펼쳐져 있다. 일찍부터 화개동은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때 묻지 않고 깨끗한 구역이며, 또 신선이 살고 있는 세계며, 권력의 억압이 미치지 않는 낙토(樂土)였다. 이 때문에 꼭 한 번 가서 흉금을 상쾌하게 하고 세속에 찌든 때를 말끔히 씻고 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이뿐 아니라 화개동은 선인들과 승려들의 수도처이기도 했다. 이들의 수도처로는 지리산 주능선 영신봉 밑에 있던 영신사, 의신마을에 있던 의신사, 범왕리에 있는 신흥사 등 세 사찰이 유명했다.지은이는 은거문화, 무릉도원, 신선 세계의 청정한 이미지, 수도처를 화개동의 4가지 문화원형으로 꼽고 이를 지켜나가고 알려 나갈 것을 주장한다. 390쪽, 1만8천원

2019-04-11 11:29:48

마흔, 처음에는 좀 아찔했지만

[책 체크]마흔, 처음에는 좀 아찔했지만/ 알렉산드라 라인바르트 지음/ 유영미 옮김/ 뜨인돌 펴냄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더 잘 알게 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멋진 일은, 객관적으로 멋지게 보이는 것과 자신에게 맞는 것을 잘 구분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지은이는 독일의 광고쟁이이자 에세이스트이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유쾌하게 만드는 다양한 실험을 해본 뒤에 그 경험을 책으로 펴내는 독특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이 책은 마흔이 되면 줄어드는 것과 늘어나는 것, 결혼 서약의 의미, 중년의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등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지은이는 "지금은 어둠 속에 있지만 언젠가는 긴 터널을 지나 밝은 빛에 다다를 것을 아는 데서 나오는 강함이 있다. 가슴 속에 아픔을 지닌 채로도 삶을 충만히 살아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통찰력을 지닐 수 있다면 나이 들어가는 것은 특권이다"고 말한다. 231쪽 1만3천원.

2019-04-11 11:24:16

벌침 교육 전문가 이영기 씨가 벌침과 봉료법에 대한 책자를 냈다. 그는

"대구는 양봉의 메카…양봉박물관 하나 있어야"

"국내에 수많은 종류의 박물관이 있어도 유독 제대로 된 양봉박물관이나 자료관조차 하나 없어요. 우리 나라 양봉의 역사는 삼국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올 정도로 역사가 오래됐지만 조상들의 손때 묻은 각종 양봉 서적이나 자료, 도구, 기구 등은 찾아보기 어렵고 또한 소장하고 계신 분도 거의 없는 현실입니다."달성군 가창에 사는 이영기(71) 씨는 20여 년간 벌침 교육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그가 벌침과 봉료법을 알리고자 2014년에 '벌침과 봉료법으로 무병장수 하는 법' 초판을 발간한데 이어 올해 다양한 자료들을 보충해 개정 증보판을 펴냈다. 개정 증보판에는 한국 근대양봉의 역사 및 전국 각처에서 어렵게 구입한 자료들을 정리했으며 국내 최초로 조사한 귀중한 자료들도 포함돼 있다."대구시와 달성군이 우리나라 양봉과 벌침의 메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전무할 것입니다. 심지어 학계나 역사가, 양봉인들조차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요. 양봉박물관이나 자료관을 하루 빨리 건립하기 위한 디딤돌을 놓는다는 생각에서 이번 책을 발간하게 됐습니다."우리나라 양봉의 역사는 동양종벌은 삼국시대부터 양봉이 시작된것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이 세운 발해국에서 벌꿀과 밀랍초를 일본에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양종벌은 독일인 구걸근 신부가 1911년 일본에서 서양종벌을 가져와 서울 백동수도원에 양봉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보다 1년 전 달성군 논공면에서 1910년 일본인 오까모도 씨가 일본 고치에서 24군을 갖고 와 양봉을 했다는 새로운 기록물을 찾아 서양종벌 도입 역사를 재정립했다."몇년 전 일본 기후시에 있는 일본 최초 양봉장인 와타나베양봉장을 방문하게 됐어요. 이곳에서 1920년 11월 발행한 '양봉지우' 138호 특집호에 '조선의 양봉'이 게재된 것을 발견했죠. 이 책에 달성군 논공면에 위치한 백기농장 주인 오까모도 씨가 1910년부터 과수원을 하면서 양봉 종봉 분양과 벌꿀 및 양봉기구를 판매했다는 기록을 접하게 됐죠. 기록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양봉장으로 사료됩니다."그의 연구실에는 양봉에 대한 희귀 자료가 빼곡하다. 양봉, 봉침, 봉산물 관련 책자만 500권이 넘는다. 우리나라 최초 양봉교과서인 1917년 발간 봉파 윤신영 저 '실험양봉', 우리나라 최초 양봉 잡지인 1967년 동아양봉원 발간 '월간양봉계', 1984년 고려양봉원 발행 '한국봉침요법연구회 기관지' 제1호 등을 소장하고 있다. 또 각국 벌 관련 오래된 우표, 엽서, 배지를 수집해 진열해놓은 액자만 50여 개를 갖고 있다. 또 장수말벌 수천마리로 한반도 지도를 만든 진기한 액자도 있다. 그는 현재 장수말벌독에 관한 약리작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인터넷에 양봉카페도 운영하고 있는 데 회원만 1만5천명이 넘는다."벌은 식물 번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매개체죠. 벌이 없다면 먹거리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벌을 보호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미국 백악관은 물론 일본 아베 총리 관저에도 벌을 키우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미국, 호주, 영국 등은 도시양봉이 발달돼 있다. 미국은 벌 보호를 위해 연간 수백억원의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 벌을 살리기 위한 캠페인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어린이 양봉 체험교육도 실시해 벌은 경계의 곤충이 아니라 친숙의 곤충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심어주고 있다. 일본은 장수말벌자료관을 건립해 각국 벌집 1천여개를 수집, 전시하며 벌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칠곡 등 전국 3곳 정도 벌 체험관이 있지만 자료는 빈약하다.우리나라는 현재 단위 행사로 벌꿀축제가 없다. 그는 양봉의 메카인 대구에 벌꿀축제 개최를 제안하고 있다. 수성못이나 신천에서 10일 기간으로 벌꿀을 판매하고 벌침을 놓고 자료를 전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국에 있는 양봉인이 모여들어 명품 축제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벌 관련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 대구에 양봉박물관 건립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자료들을 기증할 의사를 갖고 있다.증보판 '벌침과 봉료법으로 무병장수 하는 법'에는 한국 양봉의 역사뿐만 아니라 벌꿀, 로얄제리, 프로폴리스, 벌화분, 벌유충, 밀랍, 벌집 성분 및 복용법 등 봉산물요법을 쉽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 벌침요법, 증상별 벌침법, 외국의 봉료법 체험사례 등도 담고 있다. 397쪽 4만원.

2019-04-11 11:23:07

일러스트 전숙경 아트그룬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②]김정곤

◆호떡 장수 아저씨 중2 겨울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하교 후 나는 갈 곳이 없어서 방황하고 있었다.초승달 뜬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삭풍은 허기진 나를 더 허기지게 했다.엄마가 하늘로 가서 별이 되시고 아버지는 돈 벌러 가신다고 집을 나가신 후 소식이 끊긴 터라 4남 1녀는 뿔뿔이 흩어져 이 집 저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학교에 다녔다.형과 누나는 고등학생이라 입주 가정교사라도 할 수 있었지만 어린 나를 선뜻 받아주는 곳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아침에 큰집에서 나올 때 "오늘 오후에 둘째가 제대해서 집에 온다고 하니 학교 끝나면 너의 외갓집으로 가거라"라는 큰어머니 말씀이 있었다.얼마 전에 외갓집에서 나와서 큰집으로 간 터라 다시 외갓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바람은 차고 배는 고프고 신세가 하도 처량하여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밤은 깊어 자정 통금시간이 다 되어가는 시각에 내 눈 속에 반가운 호떡 수레가 들어왔다.무작정 들어간 수레에는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함께 그날 장사를 끝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나는 다짜고짜로 "아저씨! 그 연탄불 끄지 마세요. 저 오늘 여기서 자야 해요"라고 말했다.아저씨는 교복을 입은 채로 울면서 말하는 나를 보더니 " 너, 부모님께 야단맞고 가출을 했지? 이 녀석아! 부모란 다 제 자식 잘되라고 야단도 치고 매도 들고 그러는 거야. 집에서 걱정하고 계실 테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라고 말씀하시면서 팔다가 남은 호떡을 두어 개 주고는 연탄불에 물을 부어버리는 것이었다.울면서 호떡을 먹는 사이에 연탄불은 꺼지고 아저씨는 빨리 집으로 가라고 재촉을하셨다.고아 아닌 고아 신세가 된 나는 대성통곡을 하고 사연을 들은 아저씨는 혀를 끌끌차시면서 내 손을 잡아주셨다.아저씨 집으로 따라 갔더니 단칸방에 애들이 세 명이나 자고 있었고, 나는 자는 둥 마는 둥 웅크리고 있다가 아침에 아주머니가 끓여 주시는 우거지 죽을 맛있게 먹고 등교 준비를 하는데 내 등을 쓰다듬으며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사서도 한단다.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해! "이후 본과 3학년 때까지 가정교사 생활을 하며 간신히 의대를 졸업하게 되었다.인턴을 끝내고 다시 찾아간 그곳에는 호떡 수레도 이미 없어졌고 아저씨는 어디로 이사를 하였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그러나 그토록 따뜻했던 온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자주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투병일지 중2 봄방학을 맞아 중3 진학준비를 하던 중 발끝에서 시작된 마비 증세가 서서히 올라와 며칠 지나지 않아 온몸이 마비되어 목과 양팔 밑으로는 움직일 수도 없고 감각도 없어 대소변 처리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다행히 가출한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시기는 했지만 가난한 아버지가 내 병을 위해 하실 수 있는 것은 다 큰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할 것이 없었다.앉을 수만 있으면 창밖 풍경이라도 볼 텐데 누가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사지가 뻣뻣해지면서 팔도 다리도 만세를 불렀다.그러나 누워서 그냥 죽을 수가 없어서 이 병원 저 병원 심지어는 부산 제3 육군병원까지 찾아 갔었다.그러나 진단 결과 답은 한결같았다.''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습니다.''사춘기 예민한 감성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다.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지 않았다. ◆기적을 만나다 유월 중순 엄마 제사를 지낸 다음 날 새벽에 어디선가 까치가 울고 있었다.엄마가 다녀가시면서 보낸 까치였다.그날 오전에 반갑고 반가운 전보를 받았다.부산대학병원에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외국 유학을 다녀오신 유명한 교수님께서 수술을 해보겠다는 것이었다.대학병원에 입원해 정밀진단을 다시 하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임상시험용 수술이라 일체의 치료는 무료로 한다.단 만일에 수술에 실패할 경우에는 대학병원 해부실습용으로 시신을 기증한다는조건을 달았다.그렇게 운명의 신께 아니 조 성옥 교수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수술대에 올랐다.9시간 만에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을 거쳐서 병실로 돌아왔다.의식이 회복되자마자 이 병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가 내가 두 번째고 내 앞서 수술을 받았던 강원도 아주머니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너무나 충격적이었고 나도 과연 살아 퇴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의과대학 해부실습용으로 남겨지는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닐까?착잡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가 만난 의사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양 팔과 얼굴 뿐, 몸뚱이는 완전 마비라 꼼짝을 못하니 욕창이 생겼다.피부이식 수술을 세 번이나 했었지만 다 실패하고 네 번째 수술을 마치고 나온 며칠 후 간병해주던 누나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그만 침대에다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내가 내놓은 오물이지만 이것이 다시 상처로 들어가면 수술을 또 한 번 더 해야 하는데 이식에 필요한 피부를 떼어낼 수 있는 곳이 더 이상 없는 절박하고 황당한 상황이 되었다.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홍길동 아닌 김의진 선생님이 " 짜자자잔!" 하고 나타났다.간호사도 부르지 않고 장갑도 낄 겨를도 없이 양 손으로 그 오물들을 신문지에옮기는 것이었다.예민하다는 사춘기에 환자가 된 나는 수시로 김 선생님을 괴롭혔다.시도 때도 없이 마치 내 가족인 것처럼 불러댔다.그러나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얼굴 한번 찡그린 적도 없었으며 힘들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참 신기했다.언제나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병실에 나타나는 저 의사는 도대체 잠은 언제자는지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어디 있다가 저렇게 총알같이 나타나는지?항상 콧노래를 부르며 다니는 김 선생님의 인기는 말 그대로 최고였다.환자들한테만이 아니라 병동 간호사들에게서도 선망의 대상이었다.아무리 의사라도 맨손으로 오물을 만진다는 것은 쉽지 않을 터인데 거의 본능적이고 반사적으로 하는 김 선생님의 처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의 은인을 넘어 영웅으로 내 마음 속에 깊이 모시게 되었다.당시 내가 장차 의사가 될 것이라고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그때에 그는 이미 나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가 되셨다.(4월16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 3회가 게재됩니다)

2019-04-08 16:30:00

[내가 읽은 책] 시계가 셈을 세면/최춘해 동시집/ 브로콜리숲 2017

진달래꽃 피었다. 진달래로 산이 홍조를 띠면 대지는 술렁인다. 새봄이 궁금하여 씨앗이 눈을 뜨고, 사방으로 꽃불 번진다. 나뭇잎들도 쏟아져 나와 재잘댄다. 모두가 처음이 아니지만 처음인 듯 새롭다. 진달래꽃 역시 어릴 적 고향 마을 앞산과 뒷산에 피던 진달래와 같은 모양과 빛깔이지만 분명 그때의 그 꽃은 아니다. 작년에도 보았던 바로 앞의 진달래도 오늘 처음 조우하는 새 꽃이다. 봄마다 설렘으로 다가오는 꽃처럼 최춘해 선생님의 첫 동시집 '시계가 셈을 세면'도 오래된 새 책이다.이 동시집은 1967년에 세상에 처음 나왔던 모습 그대로 2017년에 새로 나왔다. 최춘해 선생님께 동시를 배운 제자가 보은의 선물로 복고 판으로 펴낸 것이라 의미가 더 아름답다. 동시는 단순히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누구도 어린이였던 때가 없지 않았음을 상기하게 한다. 결국 어른들도 호기심과 꿈으로 순수했던 동심의 초석을 딛고 오늘을 산다. 동시는 우리 마음 속 순수를 건드리는 들숨이다.그래서일까 시집은 독자를 타임머신에 태워 친구들과 진달래꽃 따 먹던 시골 마을, 산과 들, 학교 운동장과 교실에서 마냥 신나게 뛰놀던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매끄럽지 못한 인쇄술, 오탈자, 한글맞춤법의 변화도 경험하게 한다. '새끼 한 가닥으로/ 기차를 만'들어 달리는 아이들이 보이고, '비가 오는데… 그네가 내 차지다'고 책보를 맨 채 그네를 타는 분이도 있다. '몽당연필', '뻐스' 등의 정다운 시어가 미소 짓게 한다.봄의 대지처럼 시가 살아 움직이며 미래를 꿈꾸던 순수하고 아름다운 때를 기억하게 한다. 섬세하고 다정하게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로 이끌며 나를 반성하게도 한다. '새싹이 눈을 감고/ 강아지처럼 젖줄을' 빠는 '이른 봄'. '쪼록 쪼록/ 가지에 물오르는 소리/ 토독 토독 눈트는 소리를' 듣는 '봄비'. '오월 아침' '지구의 맥박 소리.'는 '산마루에 선 나도/ 한 마리 새가' 되게 하고, '시계'가 셈을 세면 '지구가 돌지 않곤/ 배겨나질 못합니다.'시집은 겨울마저도 힘차고 따뜻하게 한다. 평생 교육자의 삶을 산 작가의 인자한 미소도 보인다. '엎치락 뒤치락 / 뛰고 궁굴고.' '눈치를 살피지 않는… 자라는 교실'이 흐뭇하다. 시인은 천성이 봄의 대지(흙)와 같아서인지 시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어머니와 자라는 아이들로 살아난다. 또, 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병아리가 자라고,/ 아기가 자라고/ 새싹이 자라는 건/ 정말은 시가 자라는 것,//시를 만들려고/ 지구가 돈다,'고 한다.진달래꽃 깨물면 쌉싸래하고 달짝지근한 향기가 입안 가득히 퍼진다. 봄맛이다. 있는 그대로는 향기도 없는 듯 그저 순한 진달래꽃이 떼어져 화전이나 술 등으로 거듭나면 매혹적인 본래의 향을 발한다. 여운이 감미롭다. 흙의 시인 최춘해 선생님의 첫 마음이 담긴 이 책이 진달래꽃 맛과 닮았다. 참 스승의 모습을 동시로, 삶으로 보여주는 작가와 존경을 표현한 제자의 마음에 필자는 저절로 발그레했다.강여울 학이사 독서아카데미회원

2019-04-04 14:39:46

파란하늘 빨간지구/조천호 지음/동아시아 펴냄

2018년 다보스 포럼에서 전문가 74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재해성 날씨'가 대량살상 무기 다음으로 인류가 직면할 가장 영향력 큰 위험으로 꼽혔다. 날씨가 위험이라는 사실은 이제 일상이 됐다. 지난해 살인적인 폭염이 한반도를 덮쳤고, 하늘을 뿌옇게 덮은 미세먼지는 외출조차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이제 기후변화는 다가올 위험이 아니라 눈 앞에 놓인 문제가 됐다. 이 책 '파란하늘 빨간지구'는 기후변화 시대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대중들의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인류가 맞닥뜨린 기후변화의 위기지은이 조천호는 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이다. 대기과학자인 지은이는 기후변화에 대해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찾아오고 있는 위기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책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이 특정한 기후 조건에서 가능했던 '우연의 산물'이라 말하며 시작한다. 빙하기에는 너무 추워서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문명도 탄생할 수 없었다. 간빙기가 되어 약 1만 2천년 전 기온이 안정되고, 약 7천년 전 해수면 변동이 끝나고서야 농경 생활이 가능해지고 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 현대 문명도 마찬가지로, 해수면 상승이나 생태계 파괴 같은 대규모 환경 재앙이 일어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기후변화는 과거에도 있었다. 90만 년 전부터는 약 10만 년 단위로 간빙기와 빙하기가 교대로 나타났는데 그때 기온 차이가 4~5℃ 정도였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약 100년 만에 기온이 약 1도 올랐다. 4~5도가 오르내리는 데 10만 년이 걸렸는데 지금은 단 100년 만에 1도가 오른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는 이번 세기 내에 기온 상승 제한 목표를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했을 때 1.5도 이내로 잡았다. 산업혁명 이전보다 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게 되면, 그 이후에 일어날 일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책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미세먼지의 본질도 언급한다. 현재 미세먼지 문제는, 그 배출원이 어디냐에 과도하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향이 있지만, 오염먼지 때문에 생기는 피해는 산업이 발전하면서 나타난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19세기 스웨덴은 영국에서 날아오는 매연 때문에 검은 장막이 씌워진 듯한 하늘을 보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보다 훨씬 청정한 대기 질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에 대해 근본적인 차원에서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인공강우나 거대 공기청정기처럼 미세먼지 농도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이 제시되지만, 땜질식 처방일 뿐이라는 것.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규제 강화, 대중교통 인프라 개선 등에 힘을 쓰면 미세먼지 발생 자체를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추진하면 비용이 많이 들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논란이 일어나고, 얄팍한 비상 대책으로 대중의 관심을 돌리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지은이는 미세먼지 해결을 둘러싼 시도들은 우리 사회의 수준과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라 말한다.​◆기후변화의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할까​기후변화는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살 수 없다는 식의 생태 문제 만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지은이는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의 차원에서 기후 변화가 변수가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탄소배출이 일으킨 기후변화로 인해 전 지구적으로 큰 비용이 발생해 경제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런던정치경제대학교 니콜러스 스턴 교수가 발표한 스턴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기후변화에 대응을 전혀 하지 않았을 때 이번 세기 중반에 발생하는 비용이 세계 GDP의 5~20%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반면 지금 당장 대응에 나설 경우 기후 비용을 GDP의 1% 정도에서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한다.안보 측면에서도 기후변화가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온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다르푸르 지역에서 인도양 계절풍의 영향으로 강수량이 40% 이상 감소하자, 유목 생활을 하던 아랍계는 사람들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농지를 침범했다. 피부색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두 집단 간의 갈등은, 겉으로 봤을 때는 인종전쟁이나 종교전쟁이지만, 실상은 기후변화로 촉발된 기후전쟁에 가깝다는 것이다.이 책은 기후변화의 현 주소와 그 배경을 분석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 기후변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 주고, 파급효과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기후변화는 이미 많은 것을 바꿔놓았고, 그 피해는 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보고 있다. 온대 지역인 우리나라는 아직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저위도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미 기후변화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나 사회 시스템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아야 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가 분명하게 전하는 메시지다. 292쪽, 1만6천원.

2019-04-04 11:34:24

[책체크] 미디어 크리에이티브/김혜성 지음/학현사 펴냄

제일기획 광고기획팀장, 맥켄에릭슨 한국대표 등을 거쳐 광고홍보업계에서 현장 경험이 풍부한 지은이가 뉴미디어 시대에 변해가는 광고 시장과 변화에서 살아남는 전략을 책으로 펴냈다. 신문과 TV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상호작용이 가능한 쌍방향 미디어가 우리 일상을 장악하면서 광고도 변해가고 있다. 직접 가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보고, 듣고, 대화할 수 있는 시대에 광고는 과거와 어떻게 달라지고 있고,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떻게 변했으며, 광고 제작자는 이런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야할지에 대해 이야기한다.지은이가 다양한 광고 실무 경험과 함께 오랫동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이 책은 광고학도나 광고 시장 관계자 뿐아니라 급격하게 변하는 뉴미디어 시대에 미디어 소비자들에게도 광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은이는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91쪽. 2만3천원.

2019-04-03 17:23:11

[반갑다 새책]통도사 사찰약수/이병인'이영경 지음/조계종 출판사 펴냄

'명산명찰명수'(名山名刹名水)라 했다. 명산엔 명찰이 있고 명수도 있다는 말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영축산에는 큰절인 통도사와 17개의 암자가 있고 곳곳에 40여 곳의 약수가 있다.이 책은 '불지종가'(佛之宗家)로서뿐 아니라 '차지종가'(茶之宗家)로서 통도사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다. 또한 통도사는 사찰의 창건과 중창에 대해 기록한 사적기에 '차샘'(茶泉)과 '다소촌'(茶所村)이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는 우리나라 유일무이한 사찰이다.통도사 방장 성파 큰스님은 '국계이음'(掬溪而飮'두 손바닥으로 계곡물을 움켜쥐고 마신다)이 스님들의 일상사였다고 할 만큼 통도사 계곡물이 맑았었다.지은이들은 이에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간 150여 곳의 전국 약수를 찾아 수질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4대 사찰약수로 영축산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속리산 법주사, 두륜산 대흥사의 약수를 꼽았다. 그리고 이 약수들의 수질 특성을 표로 정리해 책에 함께 실었다.40여 곳의 통도사 약수 중 특히 비로암 산정약수, 옥련암 장군수, 백련암 백련옥수, 안양암 영천약수, 자장암 자장수, 서운암 늪재 석간수 등이 유명하다. 이 중 백련옥수는 인근 한방병원에서 길어다 약을 달릴 정도이고 장군수는 부산과 울산의 차인들이 받아다가 찻물로 사용하고 있다.'모름지기 통도사를 찾아왔다면 큰절의 부처님 진신사리를 참배하고 잠시 틈을 내어서라도 숨겨져 있는 보물 같은 암자들을 찾아가봐야 한다.(중략)그곳에서 청정 약수를 마시며 어떻게 잘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본문 중에서)미세먼지가 판을 치는 요즘, 맑은 약수 한 잔이 문득 그립다. 256쪽, 1만8천원

2019-04-02 18:48:37

[논픽션 "늦깎이 인생" 당선소감] 김정곤

헐벗고 배고픈 시대를 살아온 시니어세대 모두가 숱한 상처를 안고 있으며 적지 않은 절망감에 좌절도 한두 번 경험하지 않았을 터.막상 전기나 다름없는 제 자신의 이야기를 보내놓고 난 후 스스로 발가벗은 것 같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굴곡진 삶을 살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가 같은 시대를 살아온분들께 동병상련이 되고 다음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에 조금이나마 용기를 주는 글이 된다면 제 부끄러움은 감수하기로 했습니다.미흡하고 누추한 글에 당선이라는 영광스러운 옷을 입혀주신 심사위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65세 시인으로 늦깎이 등단 후 끊임없이 격려해주시고 성원해주신 '영남문학예술인협회' 회원님 '문학과시선' 회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지체장애인 남편을 40년 넘게 한결같이 웃음으로 내조해준 내 사랑 그리고 내 희망, 내 등불인 두 아들에게도 고맙고 고맙다고 전합니다.이번 당선에 힘입어 더욱 따뜻하고 포근한 글이 나올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늘 찡그리고 왔다가 웃으면서 돌아갈 수 있는 진료실이 되도록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의 소임도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설령 내일 이승을 떠난다하더라도 후회가 없도록 기도하듯이 일하고 일하듯 기도하는 하루 하루를 살겠습니다.모든 분들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김정곤

2019-04-01 17:30:00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①]김정곤

◆이 세상 모든 신께 넝쿨 장미와 아카시아향이 온 누리에 은은하고 찬란한 아침 해가 환희의 봄을 노래하는 이 시각 이 세상 모든 신께 기도드립니다.저를 질투하지 마십시오.쌍둥이로 태어나 짝을 잃은 슬픔을 겪었습니다.중학교 3학년 때 척추를 다쳐 2급 지체장애자가 되었습니다.절망에 빠져 여섯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의사의 권익을 찾는 의권 투쟁을 하다 수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위암으로 위 절제수술을 받고 얼마 후 장 중첩증으로 소장 절제술을 받기도 했습니다.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어버릴 뻔도 했습니다.키 158cm에 체중이 45kg밖에 되지 않는 자그만 체구로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는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제는 칠순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낍니다.이 늙은이에게 찾아오는 환우들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찡그리고 왔다가 밝은 얼굴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지혜와 건강을 주신 신께 감사드립니다.가정에 평화를 주시고 두 아들이 활기차게 사회인으로서 제 몫을 다 할 수 있게 해주셔서 또 감사드립니다.아내와 40년을 웃으며 바라본 것에 감사드립니다.내년 3월 칠순 잔치 대신 미흡하나마 자그마한 시집 한 권으로 지인들께 그 동안의 은혜 갚게 하옵소서.지금 이 순간 제 일생 가장 행복합니다.신이시여!이제는 더 이상 저를 질투하지 마십시오.지는 해가 떠오르는 해보다 더 아름답다 했습니다.하루를 아니 한 평생을 열정적으로 살다지는 해처럼 아름답게 사라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설령 내일 이승을 떠난다하더라도 밝은 미소와 맑은 눈빛으로 작별하게 하소서!이 세상 모든 신이시여.제발 더 이상 질투만을 하지 말아주시옵소서!◆엄마와의 영원한 이별 신록의 계절 6월을 만끽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무엇인가어두운 기운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한참을 침묵하던 누나는 다짜고짜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교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입으려 하자 그때야 울음을 터트리며 새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엄마가 돌아가셨단다.청천벽력도 유분수지 등교할 때만 해도 건강하시던 엄마가 돌아가셨다니….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고 신입생대표로 '' 신입생은 말 한다''는 글이 학교신문에 실리기도 하고 초등학교 같은 반에서 함께 진학한 친구도 많아서 그야말로 꽃피는 봄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열세 살 꿈 많은 소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그러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장례식을 치르고 와서도 학교를 다녀와서는 무심코 ''엄마''하고 안방 문을 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따뜻한 양지 볕에서 엄마 무릎에 누워 귓밥을 파주는 사랑의 손을 만지며 어리광 피우던 호사는 이제는 내 것이 아니었다.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웃는 일도 시들해지고 등교조차하기 싫어진 즈음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보다 더 큰일이 벌어졌다. ◆골목길 고향 집 골목길을 돌고 돈다어디 정겹지 않은 골목길이 있을까마는반백 년 흐른 후에 찾아온 골목길 자국 자국마다켜켜이 쌓여있는 추억의 편린술래잡기하던 친구들 웃음소리 가득하고싸움박질 하던 친구들 고함에새들은 달아나고 열일 곱 어린 나이에엄마 영정 들고 울먹이며 걷던 형 얼굴어리둥절 뒤따르던 동생 얼굴 아직도 떠날 줄 모르고덩달아 나도 엉거주춤 머무는애잔함이 짙게 묻어나는그 골목길 ◆아버지의 무단가출 엄마가 돌아가시고 미처 숨 고르기도 전에 아버지가 ''돈 벌어 올게''라는 지극히 간단한 메모 한 장을 남기고 무단가출을 하셨다.졸지에 고아가 된 오 남매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오남매가 의논한 결과 각자도생을 위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누나는 명문 여고를 다녀 가정교사로 입주하고 형도 가정교사를 했지만 나와 쌍둥이 동생 그리고 초등학교 다니던 막냇동생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그러나 학업의 끈은 놓을 수 없어 등교는 꼬박꼬박했다.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몇 푼의 생활비로는 언제까지 견딜 수는 없었다. ◆잊지 못할 선생님 중2가 되자 집안 살림은 더 궁색해지고 등록금을 못 내고 결국에는 등교정지 처분을 받았다.그러나 비록 출석을 불리지는 않았지만, 꼬박꼬박 학교는 갔다.수업도 수업이지만 점심시간에 무료급식으로 나오는 식빵 한 조각과 한 통의 우유를 얻어먹기 위해서.연속해서 몇 번의 등교정지를 당하자 더는 배짱을 부릴 수가 없었다.며칠을 결석 아닌 결석을 하자 담임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셨다.집안 사정을 이해한 선생님이 가시면서 선생님 호주머니에 있던 돈을 몽땅 주고 가셨다.''힘내라. 살아 못할 일은 없다. 네 꿈인 육군사관학교를 가려면 일단 중학을 졸업해야지''라는 격려 말씀과 함께.(4월9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 2회가 게재됩니다)

2019-04-01 17:30:00

3월 4째주 베스트셀러

1.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곰돌이 푸'알에이치 코리아)2.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야마구치 슈·다산초당)3.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하완'울진지식하우스)4.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혜민 스님·수오서재)5.인어가 잠든 집(히가시노 게이고·재인)6.아주 작은 습관의 힘(제임스 클리어·비즈니스북스)7.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오프라 윈프리'북하우스)8.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100쇄 기념 스페셜 에디션·김수현·마음의숲)9.팩트풀니스(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김영사)10.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1 (설민석·아이휴먼)

2019-03-29 13:26:30

자유의 여신상. 매일신문DB

[서평]미국을 움직이는 네가지 힘/ 김봉중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미국의 역사는 짧지만 어느 국가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은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 정권이 세 번 교체하는 동안 미국은 9·11테러 이전의 미국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여전히 미국은 세계정세를 좌우하고 있으며 국제 분쟁이나 군사 문제, 경제 협약 등 다양한 국가와 관계를 유지하며 담대한 도약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을 움직이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미처 몰랐던 미국만의 특별함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이 책은 지금의 미국을 만든 특별 의식,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미국의 정체성을 네 가지 역사적 코드로 재발견한다. 서부 불모지를 개척한 '프론티어', 자유와 평등을 주창한 '민주주의', 분열과 연합을 반복한 '지역 정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하나로 수용한 '다문화주의'로 꼽고 있다.◆서부서 시작된 개척의 힘 '프론티어''프론티어'는 1600년대 서부에서 자리잡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했던 영국의 민간인들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1787년 북서부영지법, 1803년 루이지애나주 매입 전까지 무질서했던 사회는 안정을 찾았고 아메리카 드림을 찾아 일확천금을 노린 이민자들, 카우보이들 등이 광활한 대지를 개척하며 그들만의 문명을 만들어냈다. 이런 그들의 노력은 도전과 개척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국인들의 문화와 정신으로 이어졌다. 서부 개척사에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19세기 말 남태평양 철도 건설에 중국인 1만명이 동원됐다. 전체 노동력의 10분의 9를 차지했다.◆자유와 평등의 힘 '민주주의'토크빌은 근대 유럽 민주주의의 여정에서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는 귀족주의의 관습에 대한 식상함에서 미국 민주주의를 발견한다. 미국은 자유스러운 관습이 자유스러운 제도를 만들었지만 프랑스는 자유 제도가 자유 관습을 만들려고 발버둥쳤다고 했다. 또 독립전쟁을 계기로 보편성 속에 개별적인 특수성이 흡수될 수 있는 협약, 즉 연방헌법의 탄생이 미국을 결속시켰다고 봤다. 자연환경에 대한 거친 생활 방식과 습관, 누구나 평등하고 계급없는 자유, 보편화된 실용주의로 인한 지적 평등,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 종교와 정치의 분리, 대중의 참여 민주주의 등 특화된 개인주의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분열과 연합 반복한 '지역 정서'미국 북부는 동적인 진보 활동이 강하다. 사람들은 물질적 충족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며 자연에 도전함으로써 인간의 행복을 추구한다. 반면 남부는 정적인 보수 활동이 강하다. 인간의 목표가 물질적 생산을 증가시키거나 문화의 척도가 물질적인 부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의 지역 정서는 남북전쟁에서 찾고 있다. 건국 초기 남북 갈등은 주로 정치적 문제였다. 해밀턴은 강한 중앙 정부 중심의 연방주의를 주창했고, 제퍼슨은 권력분산과 지방중심적인 주권론을 주창했다. 남북 갈등의 핵심은 노예문제였다. 지식인 개리슨은 남부의 노예제도는 비도덕적인 것이라며 당장 철폐를 주장했다. 변호사 피츠휴는 노예제도는 역사적 흐름에 나타난 자연적 질서로 가장 능동적인 필요한 제도라고 주장했다.◆전 세계 인종 포용한 '다문화주의'신대륙 발견 이후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의 일차적 목적은 개인적 성공이었다.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는 그 정착에서부터 인종, 민족, 종교가 존립한 다문화사회였다. 런던회사에 의해 정착된 최초의 식민지는 버지니아였다. 뉴욕에 가장 먼저 정착했던 국가는 네덜란드였으며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 건너와 인종시장을 이루었다. 1664년 뉴욕이 영국령이 되었지만 거주자들에게 차별정책을 펴지 않았다. 그러면 이주해온 유럽인들이 미국인이라는 동질적 정체성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 신대륙의 광활한 대지, 공동의 적인 인디언, 식민지인들의 경제적 야망을 꼽고 있다. 그러나 히스패닉계 이민자와 흑인의 빈부격차 및 차별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지은이는 미국은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에 있고, 이미 완성된 나라가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미국이 특별했다면 지금까지 동적인 전통을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도 지켜왔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미국을 가장 미국답게 만든, 미국을 특별하게 만든 정체성은 역사의 긍정성을 믿고 부단한 도전과 경계 없는 공존을 동시에 선택한 미국인들의 정신에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428쪽 1만6천원.

2019-03-28 10:18:10

레오나르도 다빈치/월터 아이작슨 지음/아르테 펴냄

한 사람이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과학자, 문학가, 해부학자, 천문학자, 심지어는 요리사로 까지 이름을 남겼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중 하나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2019년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0주기가 되는 해다. 1452년 태어나 1519년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후 500년이 지났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과 그의 삶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월터 아이작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7천200페이지 분량의 노트를 연구한 끝에 그의 작품과 삶을 아우르는 전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내놓았다.◆21세기에도 가장 혁신적인 15세기 인물20여 년간 '타임' 지의 편집장을 역임하고, CNN의 CEO를 지낸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인 월터 아이작슨. 그는 이 시대의 핵심은 '창의성'이며, 다양한 분야 사이의 접점을 찾는 데서 창의성이 비롯한다고 말한다. 창의성에 가장 큰 재능을 보인 인물이 바로 15세기를 살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것.레오나르도는 천재다. 지은이는 그의 천재성을 '인간적 성격'을 띠었다고 말한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초인적인 두뇌를 타고난 게 아니라 학교 교육을 거의 못 받다시피 했고, 라틴어를 읽거나 복잡한 나눗셈을 할 줄 몰랐다. 그는 타고난 천재이기보다는 끊임없는 호기심을 상상력과 노력으로 해결하며 스스로 천재가 된 인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은 그가 작성한 방대한 양의 수첩에 그대로 드러난다.책은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로 전 세계인에게 깊은 감명을 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도 소개한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기는 천재성, 즉 노력 없이 주어지는 능력에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걸작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지치지 않는 관찰과 연구, 그리고 경계 없는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는 많은 미완성작을 남겼는데, 선입견이라는 것이 없었으며 진리는 늘 새로이 발견되는 것이었기에, 작품은 늘 완성으로 가는 과정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연과 인간이 맺는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고, 과학적인 사고를 통해 이성적인 판단을 했으며, 종교적 사유도 거침없이 뒤집었다. ◆인간적인 모습의 레오나르도 다빈치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상상력과 창의력은 자주 요구되는 핵심 자질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개인의 역량인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지은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통해 창의성이 다양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할 때 더욱 크게 발휘되며, 혁신은 바로 그 현장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혼자 작업하기보다는 늘 동료와 제자,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그 분야에 더 박식한 사람을 찾아 질문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살던 시대에는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늘 가까이 일했고, 여유 시간에는 광장으로 몰려가 어떤 주제로든 토론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 이질적인 분야의 아이디어를 융합하고 창의력을 격려하는 분위기가 그를 있게 한 것이다.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재능뿐 아니라 멋진 외모, 근육질 몸매, 다정한 성격 등 매력이 넘쳤고, 동시대를 살았던 저명한 지식인 수십 명의 편지에서 '소중하고 사랑받는 친구'로 언급된다. 하지만 그가 가진 조건은 사랑스럽지만은 않았다. 사생아로 태어났고, 동성애자라는 설도 존재한다. 또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은 후 채식주의자로 살았고, 이성적 사고를 중시하다 보니 종교적 시선에서는 이단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루 사랑과 존경을 받고, 권력자들의 후원을 받았다.지은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천재성이 돋보이는 지점뿐만 아니라 실수나 좌절, 고통의 순간 등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습을 그려냈다. '코덱스 레스터'라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첩을 소장할 만큼 그에게 큰 관심을 가진 빌 게이츠는 "수년간 레오나르도에 관한 상당히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러나 한번도 그의 삶과 작품의 다른 면모에 대해 만족스러울 만큼 잘 살핀 책은 찾지 못했다"며 "독자들에게 레오나르도가 얼마나 인간적인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를 알려줄 것"이라고 서평을 남겼다. 720쪽, 5만5천원.

2019-03-28 10:17:28

왜 마음챙김 명상인가?

[책 체크]왜 마음챙김 명상인가?/ 존 카밧진 지음/ 엄성수 옮김/ 불광출판사 펴냄

'호흡은 한 번에 오랜 시간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호흡을 통해 현재 순간으로 돌아오는 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 전혀 아니며, 집중 대상을 바꾸는 일일 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시간을 조금 들여 매 순간 호흡을 하면서 알아차림의 순간들을 하나로 엮는다면, 당신 앞에 멋진 모험들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지은이는 과학자이자 작가이며 명상 전문가다. 그가 개발한 마음챙김에 의한 스트레스 완화(MBSR) 클리닉은 각국 기업, 병원, 학교, 교도소, 군대, 프로스포츠 팀 등 곳곳에 활용되고 있다.'30초간 품위 있게 앉아보라. 기분이 어떤지 주목하라. 품위 있게 서 있으면서 그렇게 해보라. 당신의 어깨는 어떻게 돼 있는가? 당신의 척추는, 당신의 머리는? 품위 있게 걷는다는 건 무슨 의미이겠는가?'이 책은 스트레스나 통증, 질병같은 당면 문제들이 지배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살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두에게 마음챙김 명상의 핵심과 그 활용법을 쉽게 설명해준다. 352쪽 1만7천원.

2019-03-27 17:36:51

[반갑다 새책]중년 혁명/오채령 지음/바른북 펴냄

"내 삶이 향기 나는 삶이 아니어도 나는 나를 사랑할 의무가 있다." 책 표지에 부제처럼 쓰인 글이다.이 책은 대구가톨릭대 다문화학 박사과정의 만학도로 공부하면서 쉰의 고개를 넘은 지은이가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밥 먹고 살아가는 이야기로 사회 전반의 변화를 자신의 인생에 대입해보는 에세이 형식의 자기계발서이다.100세 시대 재도전을 꿈꾸는 중년들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자신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중후함이 깃든 재창조의 피조물로 탄생할 중년혁명의 비결을 담았다.현재의 중년은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자랐고 20대 사회 초년생 시절에 역사상 처음으로 컴퓨터를 만났고 30대와 40대엔 디지털 문명시대에 살다가 이제 신중년의 인생 3모작을 준비하는 시점에 또 다시금 블록체인이 가져올 문명의 전환기 앞에 서 있다.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이 엄청난 파고 앞에 겁에 질려 주저앉지 말고 당당하게 한몫을 하며 준비된 새로운 시대를 함께 향유할 권리를 찾아 나서야 함을 자각하게 된다. '혁명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으키는 것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이미 당신은 중년혁명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특히 '지금 20대로 되돌아간다면 꼭 해보고 싶은 그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하자'는 장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라지 않다."사랑하는 친구를 만나고 또 함께 일하는 동료를 귀한 존재로 여기고 가족들을 끝없이 보듬고 사랑하자. 우리가 자란 아날로그 시대의 유년시절의 추억을 가끔씩 떠올리며 봄을 맞이하자. 멀리 함께 갈 사람을 마음으로 섬기고 배려하며 축복하자."(본문 중에서)차가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랑'으로 결론을 내리는 이 시대의 '중년혁명'은 귀담아 볼 가치가 충분하다. 281쪽, 1만3천800원

2019-03-27 11:14:28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⑩열망. 김영숙

"그래도 난 앞으로 태어날 내 자식한테만은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버둥거려봤지만 벗어날 수 없었던 가난, 그 중에도 제일 하고 싶던 공부를 맘껏 하지 못해 마음에 한이 됐어. 때론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왜 내가 태어났는지 불만스럽기 그지없던 때도 있었어. 그래서 맘 독하게 먹고 우리자식한테는 대물려 주지 말자, 하고 생각한 끝에 선택한 길이야."나는 마음과는 달리 그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머나먼 월남의 전쟁터로 떠난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나는 잠시 억장이 무너져 입을 딱 벌린 채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진정 내 마음속엔 어디든 가서 돈만 많이 벌어온다면 하는 얄팍한 계산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용병, 그는 드디어 나라를 위해서도 떠나야했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돈을 벌기위해 그 길을 순순히 택했는지도 차마 알 수 없는 일이었다.8. 세월은 흐르고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에 있는 육군 제3사관학교에서 초대장을 보내왔다. 생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취지에서 치러지는 행사였다. 들뜬 마음으로 향했다. 아련한 기억이 머릿속을 채워온다. 언제였던가. 벌써 44년이 흐른 세월이다. 뱃고동소리가 멀어지는 부둣가, 많은 군인들이 몸을 싣고 향하는 곳은 월남의 전쟁터였다. 못내 아쉬운 가족을 뒤로하고 이별의 순간 어금니를 깨물던 당신과 나의 모습,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내 가슴에 머문다."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킵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임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 같은 겨레마음 임의 뒤를 따르리라/ 한결 같은 겨레마음 임의 뒤를 따르리라"귓속을 파고들며 쟁쟁하게 울려오던 서글픈 시간, 나는 몸을 움츠리고 가슴을 떨었다. 과연 살아 돌아올 것인가, 하는 불안함이 엄습해오고 제발 무사귀환을 빌었던 내 작은 소망이 무너지는 그날이 또다시 스멀스멀 내 머릿속을 채워온다.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그는 지키고 싶었겠지만 상황이 여건이 안 됐을 것이다. 나는 그 점을 이해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가끔 눈물짓곤 한다."꼭 살아 돌아오세요.""알았어. 반드시 다시 올게."그는 떠났고 나는 홀로 남았다. 하지만 그는 '살아'만 빼고 약속을 지켰다. 돌아오긴 했으니까. 한줌 재로 그는 국립묘지에 묻혔다. 만 2개월 만에...... 졸지에 유복자가 된 내 아들은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육군 제3사관학교에 입학한 뒤 평생 군인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사관생도들이 씩씩한 걸음걸이로 앞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행진을 한다. 하얀색 상하의에 군모만이 색깔을 달리한 모습들이다. 나는 그 옛날이 자꾸만 떠올라 눈물을 내비쳤다. 어머니는 강하다. 군인의 아내나 어머니는 더더욱 강하다. 그러므로 결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내비쳐서는 안 된다. 이런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결국 소리 내 울고 말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오른 탓이었다. 주변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나는 의식하지 않고 연신 훌쩍였다. 늠름하고 장한 내 아들보다 먼 날 나를 홀로 두고 떠나버린 남편이 사무치게 떠올라서였다. 그는 왜 꼭 월남으로 떠나야만 했던가. 물론 나라의 부름도 있었겠지만 가난이 그를 용병으로 등 떠밀었는지도 모른다. 1960년대 지긋지긋한 가난이 삶도 뒤죽박죽 만들어버렸고 사랑도 결코 온전히 지켜낼 수 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배고픔이 우선이었기에 피폐된 정신은 여러 가지 행태로 나타나곤 했다. 단 돈 몇 푼에 여자는 술집으로 식모로 팔려가기도 했고 남자는 일자리를 찾아 먼 외국으로 즉 사우디 같은 중동으로 노가다현장을 뛰기도 했던 것이다. 이제 정녕 먼 얘기다. 먹을 것이 넘쳐흘러 먹기 싫어 안 먹는다. 부지런한 자에게는 언제나 풍족한 삶이 보장되는 세상, 배우고 싶으면 아무 때고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의 시대가 나는 너무도 좋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그가 내 곁을 떠나고 난 다음 나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마냥 그럴 수만은 없었다. 어느 때는 목숨을 끊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엔 이미 내 뱃속에 죄 없는 한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그래, 한번 살아보자. 이보다 더한 삶도 살아왔는데 못살게 뭐 있겠는가. 모든 거 훌훌 털고 새롭게 일어서보자. 굳은 각오가 내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언젠가 태어날 자식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한 번 용기를 가졌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는 날도 나는 모진 맘으로 세상과 부딪쳤다. 그러다보니 세월은 흐르고 어느새 세상 밖으로 나온 내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나 성장하고 있었다.모든 근심걱정을 접은 뒤 어느 정도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이 평온해지자 나는 다시금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되살아났다. 아들이 군에 입대한 다음이었다. 망설임 없이 학원 문을 두드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전념했다. 그 결과 드디어 나는 정규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모두들 환호를 하면서도 의아한 눈빛을 날렸다. 나이 50이 넘어 대학생이라니, 손자 벌 되는 학생들과 어찌 함께 공부를 한단 말인가. 등록금으로 맛있는 거 사먹고 여행이나 다닐 일이지, 하고 만류하는 친구 이웃 그리고 여러 지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당당하게 강의를 듣고 책을 옆구리에 낀 채 교정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모 대학 강사로 강단에 섰다. 상담학을 전공한 나는 항상 많은 사람들을 접하며 색다르고 즐거운 인생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난날의 서글픈 과거는 잊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내가 한없이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나이가 무슨 문제이겠는가. 배움의 문턱이 조금 높기는 하지만 열심히만 한다면 아무런 걸림이 없다. 그러므로 내 현재의 삶은 평화롭고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이승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만큼 남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남은 생 더욱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죽는 그 순간까지 나는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련다. 100세 시대, 그 절반이상을 살아버린 내가 이제 무엇을 더 바라고 욕심을 부리겠는가. 지금의 나는 진정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 다만 남은 꿈과 희망이 있다면 자식 건강하고 내 생애 최고인 공부만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행복한 시간들이다.〈끝〉(4월2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김정곤의 '늦깎이 인생' 첫 회가 게재됩니다)

2019-03-25 11:25:13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 /와카미야 마사코 지음/가나출판사 펴냄

80대 노인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은 왠지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런데 2017년 7월 애플에서 개최하는 세계개발자회의에 만 82세의 일본 여성이 '세계 최고령 앱 개발자'로 소개됐다. 당시 애플의 팀 쿡 CEO가 직접 인터뷰에 나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이 여성의 이름은 와카미야 마사코. '마짱'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녀는 '노인들도 즐길 수 있는 스마트폰 게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만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6개월간 코딩을 공부한 마짱은 노인들을 위한 스마트폰 게임 앱 '하나단'을 출시했다.와카미야 마사코의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는 82세 컴맹 할머니가 아이폰 게임 앱을 개발하게 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에세이다. ◆컴맹에서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 까지환갑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구입할 정도로 컴퓨터와 무관한 삶을 살았던 지은이는 디지털 기술이 은퇴 이후 자신의 삶에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아이패드로 고전악기 연주를 배우고, 엑셀로 자신만의 액세서리를 디자인하고,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사귀고, 구글 번역기를 들고 자유여행을 떠나는 등 흔히 생각하는 노년의 삶과는 다른 지은이의 인생을 담아내고 있다.지은이는 정년퇴직할 때까지만 해도 컴퓨터를 거의 사용한 적이 없는 '컴맹'이었다. 그러다 정년퇴직 후 어머니의 간병을 하며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가 어려워지면서 컴퓨터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평소 수다떨기를 좋아하던 지은이가 집에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려면 컴퓨터가 제격이었다. '수다 떨기'와 '어머니 간병'을 함께 하기 위해 컴퓨터를 구입하는 그는 3개월의 고군분투 끝에 컴퓨터 설치에 성공,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컴퓨터를 통해 만난 세상은 상상 이상,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날 이후 컴퓨터는 날개가 되어 그의 세상을 넓혀주고 있다.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구글 번역기 도움을 받아 해외여행을 가고, 앱 개발에 도전하고,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지은이의 모습은 호기심을 간직한 노후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유연하고 긍정적 사고로, 활력있는 노년40년을 은행에서 근무하며 성실하게 지냈던 저자가 정년퇴직 후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모험을 즐기며 사는 모습은 나이 듦을 두려워하던 독자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녀가 평범한 노인에서 게임 앱 개발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특유의 유연하고 긍정적인 사고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그의 인생 철학은 ▷싫은 일은 굳이 하지 않기 ▷오전의 실패는 오전 중에 잊기 ▷규칙적으로 지내려 노력하지 않기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일단 시작하기 ▷완벽을 추구하지 않기 ▷'나는 나'라는 생각으로 뻔뻔해지기 등은 이런 유연한 사고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은이는 건강을 위해 지나치게 식단을 조절하거나 잠자는 시간을 준수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무언가 할지 말지를 선택할 때 그저 '자신이 즐거운가'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말한다.비혼인 지은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1인 가구로 살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 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고독'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든이 넘는 나이에 혼자 살고 있지만 외로울 시간 따위 없다. 그녀가 고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왕성한 호기심으로 무장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뛰어드는 것이다. 이때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고 조금 뻔뻔해지는 것도 필요하다.자기 의지 이외의 요인 때문에 주저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지은이는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런 생각을 버리고 어떻게든 한 발 앞으로 나아가보라고, 몇 살이 되었든 누구나 스타트라인에 설 수 있다고 말한다. 시작할지 말지는 자기가 결정할 일이라고, 누군가 비웃거든 같이 웃어넘겨버리라고 말이다. ▷지은이 와카미야 마사코는 1935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교육대 부속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쓰비시 은행에서 60세까지 근무했다. 정년퇴직 후 어머니 간병으로 인해 외출이 자유롭지 않게 된 것을 계기로 집안에서도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컴퓨터를 시작한 뒤 게임 앱까지 개발하게 되고, '일본의 스티브 잡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일본에서 '인생 100세 시대의 롤모델상'을 수상하기도 한 지은이는 노인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코딩 강연을 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9-03-21 11:19:50

[반갑다 새책] 번민-고전에 답이 있다/김가원 지음/해조음 펴냄

살면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마음의 번민, 옛사람들은 그 의미가 어땠을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얻어지는 게 있을 것을 확신한다. 특히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의 갈등이나 번민 등이 문제가 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지은이 자신이 책 서문에서 밝힌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자부심이다. 삶이 힘들고 괴로워질 때, 마음의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 마음을 붙들어주고 돌파구를 찾게 만들어주는 책이라는 것이다.책은 상편 49, 하편 41개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상편이 불교 이치를 중심으로 고전에서 제시하는 마음의 속성과 원리를 다루고 있다면 하편은 그 같은 마음의 원리에 바탕을 둔 이치의 활용을 주역을 기본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지은이는 오랫동안 고전에 몸담고 살아오면서 유교 불교 도교가 지닌 마음의 원리에 주목한 삶을 살아왔다. 이론과 실천을 기본으로 한 책이므로 사회 도처에서 들불처럼 번져가는 인문학 열풍 때문이 아니라도 번민 없는 삶의 평온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귀를 기울여 볼 만한 양서임에는 틀림없다. 336쪽, 1만5천원

2019-03-19 17:21:14

유교 인문학의 이념과 방법/임헌규 지음/파라아카데미 펴냄

유교 인문학은 모두가 선한 본성을 회복하여 기질에 물든 선악의 차이가 없어지고 귀천과 화이의 차별이 없어져서 천하가 정의롭게 운행되는 대동세계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이 책은 유교에 대한 정의와 유교 인문학의 이념과 목표, 인문학적 방법에 대해 서양철학과 비교분석해 그 의의를 분명히 했고 유교의 핵심사상인 인(仁), 인간관계론, 정치이념, 가족주의적 이념 등을 유교의 근본에 근거해 인문학적인 본래의 의의를 드러냄과 동시에 역사적 맥락에서도 살펴보고 있다.지은이는 강남대 철학교수로 "유교는 인간 본성에 따르는 길을 혼자가 아닌 함께 감으로써 지극히 선한 공동체를 건설하려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어 인문학을 "인간이 그 본성으로부터 유래한 길을 따라 아름답고 선하고 빛나는 인간다운 문화세계를 함께 건설하기 위해 널리 배우고 살펴 묻고 신중히 사려하고 밝게 분별하여 돈독하게 실천하는 행위의 총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312쪽, 1만9천800원

2019-03-19 17:20:51

달구벌수필문학회, 강문숙 시인 초청 특강

달구벌수필문학회(회장 신은순)는 18일 대구교육대학교 강의실에서 강문숙 시인 초청 특강을 열었다. 이날 특강에는 은종일, 원용수, 피귀자, 김정호 수필가 등 40여 명이 참가했다.

2019-03-19 10:00:32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⑨김영숙 열망

나는 지화영의 긴 말이 끝나자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일으켜 세우고 문지방을 넘어 방 밖으로 나왔다.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미 신경세포가 모두 죽어버린 느낌뿐이다. 내 등 뒤에서 지화영의 슬픈 목소리가 또다시 귓전을 때린다."하지만 진짜 미안해. 그때 그 순간은 정말로 사랑했는지도 모르는데."나는 휘청거리는 두 다리를 옮기며 술집 밖으로 나오자 먼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그때야 내 얼굴이 온통 눈물로 젖어있다는 걸 알았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이 사건, 과연 누구의 죄일까. 사랑보다 진실보다 가난이 죄인 거 같다. 나는 이렇듯 결론짓고 하늘에서 눈을 뗀 다음 천천히 공장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야학교엔 갈 수 없다. 곧 작업이 시작될 시간이므로. 새벽이 걷혀가는 하늘은 동이 트는지 먼 곳에서부터 밝아오는 거 같았다.7. 이별그해 가을도 다 지나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한겨울 밤, 나는 야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공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눈은 엄청 쏟아져 내렸다. 나는 목도리를 코 위까지 올려 두르고 옷에 묻은 눈을 수시로 털어내며 간신히 공장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공장 문 앞에서 신발을 툭툭 턴 다음 머리에 쌓인 눈을 고개를 세차게 몇 번 흔들어 흩날려버렸다. 그 시간에도 계속 눈은 멈추지 않고 내리는 중이었다. 하얀 눈발 때문인지 주변이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다. 나는 무심코 막 공장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려다 묘한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홱 돌렸다. 누군가 서있다. 덩치가 약간 큰 남자로 보였다.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 눈꼬리를 올리고 자세히 살펴봤다. 남자가 분명했다."누구?"나는 그때야 목소리를 냈다. 엉거주춤 다가오는 남자, 뜻밖에 서강우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밤 야학교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었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여러 사람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 그가 지금 이곳에 우두커니 서있다."웬일?"내 물음은 왜 이 시간에 공장 앞에 서있느냐는 뜻이었다. 대답이 없다. 서강우는 한참동안 내 앞에서 말없이 나를 주시하더니 이내 내 손목을 잡아끌고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뭐야? 왜 이래?" 나는 엉겁결에 서강우에게 끌려 발을 내디디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음을 던졌다. "잠깐이면 돼. 할 얘기가 있어."그는 숨을 헐떡이며 애원하는 어조로 말했다. 순간 의외로 그의 손길이 따사로웠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괜스레 마음도 후들후들 떨렸다. 생각지도 않던 감정이 내 가슴 끝에서 해일처럼 일어났다. 순간, 그가 나를 확 잡아당겨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얼떨결에 나는 아얏,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의 가슴에 안겨 거친 숨을 내뿜었다. 그의 뺨이 내 입술 언저리를 스쳐 지났다. 연이어 뜨거운 호흡이 내 전신을 마비시켰다. 이미 조금은 예감했던 서로의 시작이었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서강우의 눈빛을 읽고 있었다. 나도 별로 거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 탓에 묘한 자존심을 앞세우며 차일피일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거 뿐이었는데 다행히 그가 먼저 다가와 줘 나는 못이기는 척 안겼는지도 모른다. 가슴을 짓눌러오는 격한 감정은 온 누리를 평화롭고 아늑하게 느끼게 했다. 하얀 눈 더미가 싸늘함을 뒤로하고 훈훈하게 적셔온다. 백색의 고운 눈발이 끝없이 휘날리며 코언저리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잠시 후,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를 내 몸에서 떼어냈다. 서강우는 말없이 나를 뒤로했다. 서운한 생각이 잠깐 내 가슴을 휩쓸고 지났다. 저만큼 멀어져가는 서강우의 등 뒤에서 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비밀 지켜줘."나는 뜨끔 뒷일이 걱정됐다. 서강우가 슬쩍 뒤돌아보고 다시 앞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평소 말수가 적은 서강우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밤이었고 더욱이 눈보라치는 날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발길을 돌렸다. 서강우, 그의 모습은 서서히 사라져버린 후였다.또다시 전신이 후끈 달아올랐다. 내 귓불에 대고 서강우가 속삭이던 "사랑해."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까닭이다. 유독 밤하늘이 맑고 곱게 보였다.꿈과 희망에 벅차있던 내 마음은 이제 사랑까지 얻어 세상을 전부 독차지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람에겐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인 거 같았다. 코피를 쏟으면서까지 열심히 했던 내 공부는 빛을 봤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지 않았다. 결혼을 약속했던 서강우가 군에 입대한 뒤 나는 사뭇 들뜬 마음으로 이제 학생을 뛰어넘어 야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한몫 거들고 나섰다. 드디어 중학교조차 가지 못했던 내가 선생이 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거듭되는 검정고시 합격을 거쳐 나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정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의 가시밭길이 있었던가. 눈치를 보며 유독 눈엣가시로 여기던 공장의 감독과 여러 시선들, 나는 한껏 주눅이 들어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늘 기죽어 살아왔다. 거기에 시기질투는 또 어떠했는가. 어느 때는 책이 찢겨져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고 모두들 쑥덕거리며 손가락질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는 의식하지 않고 꿋꿋한 심정으로 오직 한길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현재는 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 어느 날인가는 정규학교에서 제대로 된 모습으로 교단에 설 날이 반드시 있으리라 여기며 나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더욱 열심히 공부에 임했다.그러던 어느 날, 모처럼 첫 번째 휴가를 나왔다는 서강우, 그의 연락을 받고 나는 부리나케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이 자못 들떠 몸은 이미 붕붕 떠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약속한 지하다방으로 들어서자 벌써부터 애절한 음색의 팝송이 내 귓전을 파고들었다. 평소 라디오에서 많이 들었던 '탐 존스'의 '딜라일라'였다. 서강우는 언제 왔는지 먼저 한곳에 자리를 하고 앉아있었다. 나는 얼른 그 앞으로 다가가 맞은편 의자에 몸을 앉혔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커피 잔이 서강우와 내 앞에 각 자 한잔씩 놓였다. 나는 무심코 내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홀짝 마신다음 다시 접시위에 내려놨다. 서강우는 전혀 마실 생각이 없는 듯 계속 커피 잔을 만지작거렸다."무슨 일 있어요? 심각해 보이는데.""......"서강우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답답한 심정에 재차 다그쳤다."말해 봐요, 무슨 일인데?""며칠 후에 나 월남으로 떠나." 그때야 서강우가 입을 열었다."네에?"나는 화들짝 놀라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갑자기 왜?"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다시금 확인 차 물음을 던졌다."어쩔 수 없이 다녀와야만 될 거 같아. 결혼식은 다녀온 다음 하기로 해. 지금으로선 형편이 안 되잖아."침울한 목소리로 이렇듯 말하는 서강우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보였다."형편이 무슨 필요예요. 있는 그대로 하면 되는 거지."내가 울먹이며 말했다.(3월26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열망' 마지막 회가 게재됩니다)

2019-03-18 10:55:54

종전의 설계자들/하세가와 쓰요시 지음/메디치 펴냄

우리가 알고 있는 태평양 전쟁의 끝은 1945년 8월 15일이었다. 그해 8월 6일과 9일 두차례 원폭, 그리고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이 있었다. 9월 2일 미주리호 함상에서 맥아더 연합국 최고사령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 조인식이 있었다. 그렇게 태평양전쟁은 일본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일본 대표단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뒤에 쿠릴열도를 점령하기 위한 스탈린이 작전이 계속됐고, 태평양전쟁이 실제로 종결된 것은 소련이 쿠릴작전을 완수한 9월 5일이라는 것이다.하세가와 쓰요시는 미국과 소련, 일본이 치열하게 싸운 전쟁의 마지막 4개월을 이야기를 '종전의 설계자들'을 통해 담아냈다.◆미국의 원폭 VS 소련의 참전2005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역사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일본을 항복하게 만든 것이 미국의 원폭이었다는 '미국의 종전 신화'를 부정하고, 소련의 태평양전쟁 참전이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책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 항복의 역사를 미국과 소련이 서로 의심하는 가운데 아시아에서 이권을 확대하기 위한 경쟁이라 설명한다.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 세 정상은 1945년 2월 11일 얄타에서 극동 문제를 논의했다.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 대한 보상조건에 대해 미국와 소련은 서로 협의했고, '얄타밀약'으로 알려진 두 정상 사이의 약속은 이후 전쟁 종결 과정에서 벌어진 당사국들 사이의 치열한 각축과 암투를 예고하는 것이었다.1945년 4월 미국에서는 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부통령 트루먼이 제33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소련은 태평양전쟁에 참전할 시기와 방법을 조율하고 있었다. 책은 대일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스탈린과 트루먼이 벌인 복잡한 암투, 전황이 불리해질수록 소련의 중립에 사활을 걸었던 일본의 패착과 그런 일본의 상황을 전쟁 준비 전까지 교묘하게 이용하려 한 소련의 책략, 그리고 일본 내부에서 하루빨리 전쟁을 종결시키려 했던 화평파와 끝까지 적의 침공에 맞서 싸우겠다는 계전파의 각축을 그려내고 있다.◆태평양 전쟁이 남긴 부정적 유산일본의 패전까지 각국의 군사, 외교, 정치 지도자들은 설전을 벌였다. 미국은 일본에 최후통첩을 보내기 전 천황제 폐지까지 함축하는 '무조건 항복'을 주장하는 이들과 전쟁을 빨리 종결짓기 위해서라도 항복 조건을 완화해야한다는 이들이 맞섰다. 소련은 일본과 맺은 중립조약의 구속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얄타밀약의 전제조건인 중국과의 교섭을 어떻게 성사시킬 것인가를 두고 골머리를 앓았다.7월 17일 트루먼, 스탈린, 처칠이 태평양전쟁 종결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포츠담에 모였다. 여기서 일본에 대한 최후통첩인 '포츠담 선언'이 나왔다. 트루먼은 이 때 원폭실험 성공 소식을 듣고, 소련의 참전 없이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고, 선언문 서명을 거부했다.이후 트루먼과 스탈린은 다름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은 소련의 도움없이 원폭만으로 일본에 항복을 받아내길 원했고, 원폭 투하 전 일본이 항복하는 일이 없도록 최후통첩을 했다. 반면 소련은 자신들이 참전하기 전 일본이 항복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치밀한 외교전을 펼쳤다.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다. 이틀 뒤 소련이 선전포고문을 낭독했고, 미국의 두 번째 원폭을 실은 전투기가 이륙했다. 결국 소련은 얄타에서 약속받은 이권을 챙겼고, 미국은 소련의 팽창을 막을 방어막으로 일반명령 1호를 발령해 38도선 이남을 지켰다. 태평양전쟁의 마지막 장이 새로운 전쟁, 즉 냉전의 서막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지은이는 태평양전쟁 종결의 부정적 유산에 대해 언급한다. 인류애 자체를 시험하게 만든 원폭과 북방영토 문제, 그리고 전쟁에 대한 책임 대신 스스로를 피해자화한 일본의 역사의식이 그것이다. 여기에 한반도의 분단도 덧붙여진다. 책 곳곳에서 미국과 소련 사이를 오고 간 한반도의 운명이 등장한다. 720쪽, 3만3천원.▷지은이 하세가와 쓰요시는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 교양학부를 졸업한 뒤 워싱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 캠퍼스 역사학과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러시아사를 전공한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국제정치 관점에서 러시아사와 전후 냉전사를 연구해왔다.

2019-03-14 11:22:57

[반갑다 새책]석재 서병오 필묵에 정을 담다/이인숙 지음/중문 펴냄

"서병오는 20C초까지 지역 화단이나 지역 미술가의 존재가 미미했던 대구에서 이름이 크게 드러난 최초의 대구출신 작가이다."이 책은 미술학 박사로 조선시대와 근현대기 서예와 수묵화, 전각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은이 이인숙이 서'서'화 삼절의 석재 서병오(1862~1936)의 작가상과 작품세계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쓴 것이다.석재 선생은 삼절 중 특히 시짓기를 좋아해 자신의 서재이름을 '유마시루'(維摩詩樓)라 칭했고 최현달은 그의 시를 '거리낌 없이 자유롭고' '타고난 정취가 호탕하며' '가락이 뛰어난' '진(眞)'의 시라고 평했다. 글씨는 짙고 풍성한 농묵을 사용해 무겁고 둔탁하면서도 감정이 물씬 우러나는 천연한 글씨로 파토스가 있는 서예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림은 묵죽과 묵란 등 사군자로 시작해 중국과 일본에까지 유명세를 떨칠 만큼 호쾌한 필력과 정감 있는 창윤한 필묵세계를 이루었다.타고난 총명과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석재는 또한 다재다능했던 풍류객으로 '뜻대로 즐겁고 기쁘게 사는 것이 곧 상류 인생'이라는 시구를 남길 만큼 생애를 풍류와 멋으로 엮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논거로 석재의 시서화에는 22명의 기생 이름이 명시되고 있다.그림이 그려진 화면 위에 화가가 써 넣은 글인 화제(畫題)는 한자문화권 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시서화의 융합, 그 중에서도 작가 자신의 창작시를 써 넣은 그림은 지식층 회화가 고도로 완성된 형식이다.지은이에 따르면 석재의 그림 300여점을 조사해 화제를 확인해 본 결과, 창작시로 화제를 쓴 경우는 15점이다. 이는 특별한 경우에만 화제시를 창작했던 것으로 짐작되는 일이다. 석재의 창작 화제시는 감사의 마음 표현, 만남을 기념한 교유의 산물로 여겨진다.시와 그림이 의미와 이미지로 호응하고 그림과 글씨가 같은 필성으로 혼연히 어울리며 시서화가 융합된 화면이 다름 아닌 석재의 필묵세계인 것이다. 책 제목 '석재 서병오 필묵에 정을 담다'는 곧 이 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온축한 것이다. 193쪽, 1만5천원

2019-03-13 17:47:37

일러스트 전숙경 (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열망']⑧김영숙

번연히 시집가 잘 사는 줄만 알았는데 겨우 인생의 막다른 길, 니나노 집에서 몸을 파는 여자가 돼 있다니. 나는 나도 모르는 순간 악! 하고 비명을 지를 만큼 마음속이 들끓고 분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듯했다.갑자기 눈앞에 안재민이 떠오른다. 죽은 그의 환영이 어른어른 계속해 얼비친다. 숨이 막혀 도저히 제대로 쉴 수가 없다. 나는 멈춰 세운 발을 단 한걸음도 더 이상 떼지 못하고 마치 석고대상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 늦은 밤 찬이슬에 몸을 맡겼다.새벽녘, 남자가 허름한 문을 밀치고 나왔다. 그리고 어디론가 쏜살같이 몸을 감췄다. 덩치가 크고 우람한 체구의 남자였다. 지화영은 여린 몸매에 얼굴이 참 예뻤던 걸로 기억됐다. 마치 계란처럼 타원형에 매끈한 결이 유독 흰 피부와 함께 어우러져 우리 모두는 늘 감탄하며 부러움의 눈초리로 바라보곤 했었다. 안재민이 반할만도 했던 지화영, 그녀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이어지는 궁금증을 견딜 길 없어 무작정 그녀가 몸담고 있는 술집 안으로 쑥 몸을 들이밀었다. 조용했다. 인기척이 들렸을 텐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나는 좀 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안쪽에 있는 허술한 방문을 살며시 열어봤다. 널브러진 옷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화영의 흐트러진 머릿결도 눈 속에 빨려 흡수됐다. 나는 심호흡을 거듭했다. 아직 세상만사 모르고 잠에 취해있는 지화영, 그녀의 꼴이 정말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살며시 방안으로 들어가 그녀 곁에 섰다. 그런 다음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이불도 덮지 않고 완전 나체로 뒤엎어져 자고 있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웠다.부스스 눈을 뜨고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누구? 하는 눈초리다. 나는 또 한 번 숨을 내뿜었다. 그때야 그녀가 눈을 부비고 나를 찬찬히 쳐다본다. 순간 눈이 마주치자 지화영의 표정이 일순 바뀌었다. 자못 놀란 모양이다. 화들짝 몸을 일으켜 이불을 끌어당겨 덮는다. 알몸을 가리고자함인 거 같다. 그렇다고 더러운 사생활이 감춰지겠는가. 곳곳에 속옷이 나뒹군다. 유독 역한 화장품냄새와 술 냄새가 뒤섞여 후각을 파고든다. 나는 일순 상을 찌푸렸다. 그때 지화영이 입을 열고 나를 향해 말을 던졌다. 뜻밖이었다."너, 뭐야?" 눈초리가 매섭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뭐냐고!"갑자기 지화영이 목소리 톤을 높여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는 머뭇거림 없이 대뜸 반문했다."나, 모르겠어?"지화영이 눈망울을 굴렸다. 아무래도 기억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안재민 공장장이 다니던 가발공장, 그래도 모르겠어? 그렇담 '김숙자'하면 생각날까?"내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순간 지화영의 얼굴색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지금 이 순간 뭐라 할 말이 없는 듯 보였다. 입술이 새파랗다. 나는 큰 숨을 다시 한 번 들이 내쉬고 그녀 앞에 몸을 턱 앉혔다. 그녀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몹시 아팠다. 동정과 연민이 함께 믹서 돼 내 가슴 한곳을 마구 흔들어댔다. 나도 따라 울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지화영이 입을 열고 말하기 시작했다. 변명인지 억울함인지 모를 애매한 하소연인 듯싶었다."내가 무조건 배반했을까? 남녀 간의 일은 누구도 모르는 법이지. 물론 난 재민오빠의 덕으로 공부했고 잠시 행복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내 꿈은 어쩌라고. 처음엔 소박했지만 머릿속에 먹물이 들어가고 좀 더 넓은 세상을 접하다보니 난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걸 깨닫게 됐지. 그때부터 벗어나고 싶은 소망이 내 마음 안에 자리하게 됐던 거야. 이보다 더 크고 환한 세상 그걸 꿈꾸며 숨죽이고 살았는지도 몰라.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나도 피해자야. 모두가 돌멩이를 던졌지만 난 묵묵히 참아냈어. 그동안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코자 견뎌낸 거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상대하면 뭘 할까싶어 그랬던 거지. 지금 생각하면 확 쏟아내고 말걸 그게 악영향이 돼 결국 요 모양이 되고 말았지만." 그녀는 계속 울며 말을 멈추지 않고 이었다. "지금은 팔자려니 해. 아님 업보겠지. 다른 사람들은 인과응보라고 할 테고. 하지만 억울해." 지화영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뭐가?" "일방적으로 나한테만 욕하잖아. 진짜 내막은 알지 못하면서."내 물음에 지화영은 코를 씰룩거리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진짜 내막? 그게 뭔데?"나도 콧바람을 날리며 물었다."열네 살에 재민오빠 만나 내 사춘기를 잃었어. 뭐가 억울하고 손해 봤는데? 내 몸 망가진 건 생각 안 해? 그것 땜에 결국 남자로부터 버림받았어. 그 알량한 과거 땜에."그녀가 또다시 흐느꼈다. 자신의 말끝에 감정이 복받친 모양 같았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망연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까지 한쪽 편에서 일방적으로 욕하고 탓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가해자로 알고 있던 지화영이 지금 이 순간 자신도 피해자라고 서러움을 토해내며 말하고 있다. 재삼자인 내 입장에서 어찌 생각해야할까. 망자는 말이 없다. 오직 살아있는 자만이 변명이나마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렇게 오랫동안 멍을 때리고 있었다. 한참 뒤, 다시금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귓전으로 흘러들었다."물론 내 잘못이 더 크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땐 너무 어렸고 삶이 힘들었고 배가 고팠어. 그리고 배우고도 싶었고. 그렇지만 절대로 재민오빠를 이용할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어. 진심이야. 은혜를 저버리면 안 된다는 거쯤 나도 알고 있어. 헌데 많이 배우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보니 정말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 보이지 뭐겠어. 우물 안의 개구리가 그곳이 온 우주고 전 세계인줄 알고 살아가듯 난 그 당시만 해도 재민오빠가 내 전부라고 여겼거든. 그래서 무작정 뛰어들고 품에 안겼는데 후일 되돌아보니 그게 아니었어. 억울한 생각도 들고 이용당했다는 기분도 떨쳐버릴 수가 없더라고. 한창 사춘기 그 시절을 몽땅 재민오빠한테 바쳤다고 생각하니 분하기 그지없었으니까. 밤마다 맘껏 주무르고 핥고 난 마치 노예처럼 아니 받아먹는 돈만큼 대가를 치러야만 했던 거 같아. 나는 뒤늦게 깨달았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거."(3월19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열망' 9회가 게재됩니다)

2019-03-11 19:30:00

뮤지컬 배우 조형균과 차지연이 밀리의 서재가 제작하는 뮤지컬 'HOPE'의 리딩북에 리더로서 참여했다. 밀리의 서재 제공.

밀리의 서재 "카프카 원작, 배우 조형균과 차지연 참여 리딩북으로 뮤지컬처럼 즐겨요"

월정액 독서앱 밀리의 서재가 뮤지컬 '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하 뮤지컬)과 함께 한 카프카의 소설 스페셜 리딩북 '변신'과 '소송'을 지난 8일 공개했다.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는 기존 오디오북과 달리 리딩북은 전문가 또는 유명인이 책의 핵심만 30분 내외로 요약해서 읽고 해설해주는 서비스다. 이번 달 8일 공개된 카프카 소설 리딩북은 뮤지컬 'HOPE'에 출연하는 배우 조형균과 차지연이 리더(Reader)로 참여했다. 뮤지컬 'HOPE'는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프란츠 카프카의 미발표 원고와 소유권을 둘러싼 '카프카 유작 원고 반환 소송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리딩북의 리더로 참여한 차지연과 조형균은 각각 뮤지컬 'HOPE'에서 원고를 지켜 온 인물 호프(차지연 분)와 원고를 의인화한 캐릭터 K(조형균 분)를 맡았다. 녹음에 참여한 차지연은 "카프카 유작 반환 소송을 모티브로 한 'HOPE'에 출연하고 있는 만큼 글로 만난 카프카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조형균 역시 "카프카의 소설을 먼저 읽고 'HOPE'를 관람한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라고 전했다.밀리의 서재에 따르면, 한 리딩북 제작에 2인의 리더가 동시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즉, 2인의 배우 출신 리더가 참여하면서 소설 속 인물들의 대사를 서로 주고받는 연기가 추가된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마치 '라디오 드라마'나 '뮤지컬'처럼 보다 생동감 있게 즐길 수 있다고 밀리의 서재 측은 말했다.밀리의 서재 콘텐츠전략팀 김태형 팀장은 "리더 1인이 읽어주면서 해설해줬던 기존 리딩북과 달리 이번 리딩북은 색다른 변화를 시도했는데, 이용자들께서 만족하니 다행이다"며 "앞으로도 일반 이용자가 읽어주는 리딩북, 한 책을 여러 리더가 본인만의 해설과 요약으로 읽어주는 리딩북 등 서비스 다변화를 시도하겠다"고 말했다.현재 밀리의 서재는 3만여 권의 전자책과 300종의 리딩북을 서비스 중이다. 나아가 밀리 매거진, 밀리 오리지널 등 책을 기반으로 한 2차 콘텐츠 개발과 자체 콘텐츠 제작을 하고 있다.

2019-03-11 14:25:49

우남희 작 '푸른 동해'

[내가 읽은 책] 가슴으로 바다를 읽는다/곽재구의 포구기행/곽재구/열림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운동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 '세상의 모든 것은 책 속에 존재한다.'를 비롯해 독서에 대한 명언은 무수히 많다. 이렇듯 독서를 강조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과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오래 전, 책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삶을 윤택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프로그램이 있었다. MBC! 느낌표'책을 읽읍시다.'이다.'곽재구의 포구기행'은 이 느낌표에 선정된 기행 산문집이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지만 현실에 발목 잡혀 끙끙거린 적이 있었다. 그 때 만난 책이 이 책이다.저자 곽재구는 토착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진지한 서민들의 삶을 표현하는 작가다. 신춘문예 당선작이기도 한 '사평역에서'의 시집을 비롯해 '전장포 아리랑'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등과 동화집 '낙타풀의 사랑' '아기 참새 찌꾸' 산문집으로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등을 냈다. 그의 작품들이 교과서에 많이 실려 교과서 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학기가 시작되고 만물이 소생하는 또 다른 시작점 3월.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이 따뜻한 세상, 차별받지 않는 공평한 세상, 서민들의 삶이 윤택했으면 하는 근원적인 바람을 안고 다시 길 위에 섰다.길이 산을 만나면 고개가 되고, 물을 만나면 나루가 되고, 포구가 된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포구가 많다. 포구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하고 아늑하다. 삶이 고달프거나 외롭고 힘들 때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을 찾고 어머니를 찾듯, 생존의 바다로 나갔던 배들도 포근하고 아늑한 포구에 고단함을 내려놓고 안식에 깃든다.평온한 노동이 어디 있을까. 바다를 터전으로 하는 사람들의 삶은 거칠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비단 갯사람들만은 아니지만 망망대해에서 얼기설기 얽힌 그물에 생을 걸어야 하는 그들의 삶은 고단하면서도 희망차다."나는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멸치배의 그물 터는 풍경 속에 내가 지닌 가장 따분하고 어리석었던 시간들을 날려 보냈다."(p79)" 몇 십 년 혹은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이 어쩌면 우리들의 삶을 영속시키는 힘인지도 모른다. 보리피리를 불며 아이들은 돌아갈 그리움이 있다. 그 그리움이 쌓이고 쌓여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어떤 힘들고 추한 시간들과 부딪쳤을 때 스스로 그것들을 훌훌 털고 일어설 힘을 지니게."(p126)하는 것도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이 책은 작가의 말 '섬에서 보낸 엽서'에 이어, 총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3장으로 이루어졌지만 삼면을 각각 하나의 장으로 분류한 것은 아니다. 1,2장은 지리적 공간을 이웃 지면으로 좁혀 삼면을 아우르고, 3장은 서· 남해뿐만 아니라 제주 대정읍의 사계포와 우도, 조천포구까지 그 영역을 넓힌다.사진으로 바다를 본다. 적멸의 세계, 노을로 인해 활활 타오르는 불바다, 멸치를 터는 역동적인 삶, 달리아 꽃처럼 싱싱한 마을 불빛, 파도의 꽃 이파리, 땅바닥에 순풍순풍 꽃을 피운 동백이 독자들을 길 위에 서게 한다. 길 위에 선 모든 이들은 시인이 된다.우남희 학이사독서아카데미

2019-03-09 0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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