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인협회, 겨울문학제로 한 해 결산
대구문인협회(회장 박방희)가 12일(토)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각종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 시상하는 겨울문학제를 열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를 갖는다.올해 38회째를 맞는 영예의 대구문학상에는 시집 '수성못'을 출간한 이해리 시인과 수필집 '아린'을 출간한 은종일 수필가가 선정됐다.제11회 대구의 작가상은 '편백나무 침대'를 출간한 정경화 시조시인이, 제4회 김성도 아동문학상은 '아기 새를 품었으니'를 출간한 김현숙 아동문학가가 받는다.소설, 시, 시조, 아동문학, 수필 등 전 부문으로 확대해 시상하는 올해의 작품상에는 이화정 소설가, 이진엽 시인, 고영환 시조시인, 김상삼 아동문학가, 고윤자 수필가가 선정됐다. 수상자들은 대구문학상 수상자 500만원 등 소정의 상금과 상패를 받는다.박방희 대구문인협회 회장은 "올해는 코로나19로 여러 행사가 취소되거나 축소되어 함께할 기회가 적었음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창작하고 발표해 올해도 대구 문단은 풍성했다"고 평가했다.
2020-12-09 11:58:02
[책]악당들도 사연 하나쯤은 있잖아요!…히어로(Hero)냐, 빌런(Villain)이냐
국어사전을 뒤적여야하는 수고로움은 없었다. 신조어에 막혀 포털사이트를 검색했을 따름이다. 하긴 포털에서 '빌런 뜻이 뭐예요'라고 버젓이 묻고 있는데, 버젓이 그 표현을 제목으로 삼았다.장르소설 전성시대에 걸맞은 엔솔러지, 소설집 '태초에 빌런이 있었으니'가 나왔다. 괴담, 판타지 등에서 잔뼈가 굵은 장르소설 작가들이 품앗이하듯 하나씩 작품을 내놨다. 김동식, 김선민, 장아미, 정명섭, 차무진 등 다섯 작가다. 엔솔러지, 대중음악으로 치자면 컴필레이션 앨범이다.하나같이 빌런, 히어로에 맞서는 악당들이 주인공이다. 빌런의 눈으로 본 세계와 하소연, 푸념들이 실렸다. 다만, 애써 영웅에 맞서는 악당은 아니다. 만화적 상상으로 차려진 성찬이지만 메인 메뉴는 빌런의 '인간적 고뇌'다. 핍진성 제로를 향해 돌진하는 판타지 장르소설로만 치부하기도 어려운 까닭이다.김동식 작가의 '시민의 협조'가 시작이다. 가수들의 앨범으로 치면 커버곡이다. 사람 쉽게 안 변한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작가의 전작과 흡사하다. 쉬운 글로 던지는 확실한 메시지다. '영웅과 악당의 차이는 타이밍'이라는 메시지 전달만큼은 뚜렷하다.문득 '이거 복붙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라며, 성의없는 소설로 치부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을 돌리는 초인의 이야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지구 대폭발 1분 전이다. 시간을 돌리는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 '블랙 코스모스'가 나선다. 마땅히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쉽잖다. 무려 1천894차례나 시간을 되돌린다. 시급을 다투는데 시민들이 비협조적이다. 처음에는 설명도 해보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시간에 쫓긴다.결국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택한다. 949회쯤부터는 시민들에게 레이저를 쏜다. 지구를 구하는 데 거추장스러운 건 제거한다. 당장 지구가 멸망하게 생겼는데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할 틈은 없다. 948차례의 경험칙이다.여기서 작가는 메시지를 던진다. 영웅과 악당을 가르는 기준은 뭔가. 인간을 수단으로 마구 이용하더라도 결말이 해피엔딩이면 히어로일 수 있을까. 성공한 쿠데타와 실패한 쿠데타의 차이만큼이나 명징한 구분이다. 성공하면 히어로, 실패하면 빌런. 이들의 차이를 만들어낸 건 선한 의도가 아닌 타이밍이다.김선민 작가의 '빌런 주식회사'는 2046년이 배경이다. 히어로 고시를 6년 간 준비해온 주인공 우식이 마침내 히어로 라이선스를 얻은 뒤 삶의 행로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다.히어로가 될 자격을 갖췄는데 웬 고민일까 싶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히어로를 보는 사회적 존경 이면에 있는 단명을 떠올린다. 멋지고 폼이 날 거 같지만 존재적 생명력이 짧다는 딜레마다. EBS '모여라 딩동댕'의 번개맨 못지않게 나잘난, 더잘난이 인기 있고 오랫동안 캐릭터로 살아남았던 걸 떠올리면 비슷하다.실제로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초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된 마당에 엔터테인먼트 업계, 특히 선악의 경계가 허상으로만 존재하는 업계에서 히어로와 빌런은 각자의 역할일 뿐이고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는 판단에 이른다. 이쯤 되면 재능을 경제적 발산으로 연결시키려는 소시민적 고뇌와 닮아 처연하기까지 하다."빌런이든 히어로든 내가 볼 때는 똑같은 쫄쫄이 입은 사람들이 나와서 투닥거리는 거로 보이는데 월급 안 밀리고 계약사항 잘 지키는 쪽이 히어로지"라는 아내의 응원에 '빌런과 히어로의 차이가 뭘까'라며 회의하던 우식은 짧고 굵게 활동하다 사라지는 히어로 대신 수익이 더 많은 빌런 역할을 택한다.아파트 중도 대출금을 한 번에 갚을 수 있고, 월 1천만원 이상의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어느 위치에 서든지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같은 능력에 같은 초인이었지만 서있는 위치가 바뀌면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었다.이 밖에도 장아미 작가의 '촬영은 절대금지', 정명섭 작가의 '후레자식맨', 차무진 작가의 '경자, 날다'까지 다섯 작품이 소설집 한 그릇에 꽉꽉 눌려 차 있다. 체하지 않도록 꼭꼭 씹어먹을 것까지는 없다. 가벼운 스낵처럼 즐길 수 있는 책이다. 294쪽, 1만4천원
2020-12-05 06:30:00
[반갑다 새책]장벽의 문명사
4천여 년 전에 세워진 고대 시리아의 장벽에서 출발해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중국, 로마, 몽골, 아프가니스탄, 미시시피강 하류, 중앙아메리카를 거쳐 오늘날의 미국-멕시코 국경에 이르기까지 '장벽'을 키워드로 한 인류 문명사 전체를 조망하고 있다.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사이에 놓인 놀라운 연결고리를 점진적으로 드러내고 흥미로우면서도 심오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장벽이 문명을 가능하게 했는가?" "우리는 벽 없이 살 수 있는가?" "오늘날 장벽을 쌓은 사람들은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온 벽의 양면성, 즉 안전을 보장하는 폐쇄성과 교류를 촉진하는 개방성을 두루 강조한다.책이 가리키고 있는 고대로의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성벽 안에서 남성들은 허약해졌다. 수메르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조차도 도시 바깥에서 온 엔키두의 야성을 꺼렸다. 성벽 밖은 위험으로 가득했다. 청동기 시대 어느 왕은 자기 신세가 '새장에 갇힌 새'와 같다고 한탄했다. 스파르타인들은 성벽을 가리켜 '여성의 처소'와 다를 것이 없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벽 안에 웅크린 채 불안에 떨었던 사람들이 바로 문명을 만든 사람들이었다.최초의 문명을 건설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도시를 토벽으로 둘러쌌다. 진흙은 점토판을 만드는 데는 유용했지만 벽돌을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 벽돌에서 진흙이 흘러내려 배수로를 막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벽 쌓기를 멈추지 않았다. 벽 쌓는 일이 고단하기로는 중국도 만만치 않았다. 한 여인이 사흘 밤낮을 통곡해 만리장성을 무너뜨린 뒤에도 중국인들은 건설을 멈추지 않았다.한편 로마인들도 벽을 쌓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장벽으로 인해 로마 제국은 학문과 미술, 과학의 낙원이었다. 과장이기는 했어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장벽에는 큰 수고를 들일만 한 가치도 있었던 것이다.현대에 들어서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들어 새로운 장벽이 솟아나고 있다. 난민 유입, 테러, 전염병, 마약 등에 대한 두려움이 장벽건설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각국이 유무형의 장벽을 쌓아 올림으로써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 책이 보여주는 통찰력은 인문학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408쪽, 2만원.
2020-12-05 06:30:00
[유홍준의 시와 함께] 걸어가는 길/이위발(1959~ ) 作
장날 제사상 차릴 제물 사러 가는 날, 신작로를 따라가던 어메는 아베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멀찌감치 뒤처져 걷는데 "퍼뜩 안 오고 뭐하노?" 아베의 지청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늘 먼저 앞서가던 아버지, 잠시, 기다린다. 어메가 "뭔 걸음이 그리 빠르니껴?" 아베의 눈빛이 흔들린다. 아베가 폐렴으로 저 세상 먼저 가던 날, 눈물 한 방울 없이 발인에도 들어오지 않고, 영정 앞에 초점 없이 앉아 계시던 어메, 상여가 장지로 올라갈 때도 뒤처져 오시던 어머니, 봉분을 쌓고 아베 옷가지를 태우며 부지깽이를 들었던 손이 힘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질 때 "느그 아베는 맨날 앞에서 빨리 오라 카디만 저래 먼저 가네" 시인의 고향인 경상북도 영양은 오지 중의 오지. 장례문화며 이런저런 것들이 급속도로 바뀌어 갈 때도 비교적 늦게까지 옛 풍습이 그대로 남아 있던 곳이다. 1980년대 후반 나는 그곳에서 만 3년을 살았다. 연탄공장 사장이랬나, 출향 사업가 중 한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고 어쩌다 나도 일당을 받고 상여꾼으로 그 장례에 참가하게 됐다. 영양초등학교 뒷산, 장지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고 좁았다. 결국 상여에서 관을 분리해 영차영차 네 사람이 목도를 해서 올라갔다. 그것은 그냥 일당을 받은 자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노동일 뿐. 나는 주검이 든 관을 목도해 올라가는 그 목도꾼 중 하나였다. 경건이며 애도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 멀었다. 영양에서의 그 경험은 세월이 한참이나 흘러갔어도 여전히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55세를 일기로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다. 어머니는 장지를 정하는 일부터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쁘기만 했다. 백관들이 양쪽으로 나누어 서서 관을 들고 나가고, 내 아버지의 주검이 모셔져 있던 고향집 안방엔 굵고 흰 소금이 뿌려졌다. 나는 소금을 뿌리는 그 소리와 행위가 매우 서럽고 무섭게 느껴졌다. 그 기억은 잊히지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다.내 고향 마을 뒤 개울가에는 망자의 옷가지며 이불이며 유품들을 태우던 자리가 있었다. 사람 죽지 않는 해는 없어 그곳은 늘 시커멓게 그슬려 있었는데 나는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늘 고개를 돌리고 딴 곳을 보려고 애를 썼다.죽음의 흔적이란 무얼까?시인의 아버지나 내 아버지나 다 걸음이 빨랐던 분들인 것 같다. 걸음이 빨라 아내들을 남겨두고 일찌감치 이곳을 떠나가신 것 같다. 십이월이다. 겨울이다. 춥다. "느그 아베는 맨날 앞에서 오라 카디만 저래 먼저 가"버렸다는 어머니들의 깊고 외롭고 쓸쓸한 삶을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시인 유홍준: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20-12-02 10:57:49
대구펜문학 창립 20주년 기념 특집호 발행
국제펜 한국본부 대구지역위원회가 발행하는 '대구펜문학 창립 20주년 기념 특집호'가 최근 나왔다.이번 특집호는 제19회 대구펜문학상을 수상한 이창은 시인의 작품과 심사평, 수상 소감을 시작으로 이수남(소설가) 고문과의 인터뷰, 박주엽·유가형 시인의 '나의 삶, 나의 문학' 등으로 꾸몄다.특집 '재중, 재미 문인 작품' 코너에는 미국과 중국에 거주하는 남영전, 이정강, 황미강 시인의 작품이 실려 있다.이번 호에는 특히 문학의 세계화 시대에 맞춰 한글 문학의 우수성을 지구촌으로 전파하기 위해 '대구펜 향기를 지구촌으로' 코너를 마련해 시와 동시, 동화, 에세이, 평론 등을 영문도 함께 실어 눈길을 끈다.박복조 국제펜 한국본부 대구시지역위원회장은 권두언에서 "국제펜 대구시지역위원회가 창설된 지 20년이 됐다. 이제 대구 펜 특유의 향기, 빛깔, 개성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앞으로 세계를 향해 영어로 소통하며 한글 문학을 세계로, 세계의 문학을 한국에 들여오는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뚜벅뚜벅 걸어가겠다"고 말했다.국제펜 대구시지역위원회는 대구펜의 코로나19에 대한 기록을 담은 '암흑 뒤 통트는 저쪽'도 함께 펴냈다.
2020-11-30 14:14:21
[책]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 송계 한덕련 선생의 일대기를 재조명하다
송계 한덕련(竦溪 韓德鍊, 1881~1956) 선생의 삶과 학문을 이야기 방식으로 엮은 책이다. 실존 인물 송계의 행적과 일화를 바탕으로 저자의 상상을 덧붙여 재조명했다.송계 한덕련 선생은 한말 영남동남부 지역의 마지막 유학자요, 실천 도학자였다. 선생은 주리적 퇴계학에 근간을 두고 가학으로 입지한 이후 전국의 선현지를 탐방하면서 호남의 간재 전우를 스승으로 모셔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 군위의 화산, 산성과 영천의 임고에서 학당을 열고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으며 '세심시동지'를 비롯한 1천여 편의 유학적 시와 문적을 남겼다.성현의 도에 이르고자 하는 수신자로서 송계 선생은 '자나 깨나 도를 구하다 죽고서야 그친다'는 한결같은 심지로 학행을 돈독하게 쌓아 나갔다. 사후, 대구경북 유림과 영천 지역민들은 선생을 연계서원에 모시고 선생이 남긴 학덕과 세심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있다.이 책은 조선이 쇠락해 가던 격변기에 태어나 국권을 상실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광복 등 격변의 시대를 살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한평생 유학자의 길을 걸었던 송계 선생의 고뇌와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다.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제1부에서는 장례식을 마치고 귀후재에서 송계를 추모하는 이야기로 시작해 송계의 삶에 안겨진 고민과 갈등을 다뤘다. 유학이 쇠퇴해져 가는 사회 변동을 겪으면서 송계는 자신이 선택해 나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고 그 위에 자신의 목표를 설정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제2부에서는 앞에서 던져진 고민의 해법을 찾기 위해 떠나는 긴 여정에서 도산서원 등에 깃든 선현들의 영혼은 물론 부안의 전간재와 거창의 곽면우를 비롯한 여러 도학자와 만나 학문적 소통을 하며, 그 과정에서 송계가 사색하고 직간접으로 깨달은 바를 보여 주고 있다.마지막 제3부는 순례를 통해 결심한 바를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과정을 다루었다. 순탄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도학 교육의 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송계 자신의 교육정신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스토리텔링은 역사 콘텐츠의 가치를 실현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인물과 스토리텔링을 결합해 자연스럽게 주인공과 함께 여정하며 감정이입하게 한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흥미롭게 풀어낸 이야기로, 당파를 초월한 송계의 올곧은 선비정신을 느낄 수 있다.저자는 "고민이 적지 않았다. 실존에 무게를 두자니 연구논문이 될까 걱정이었고 상상으로 송계를 그리자니 본래의 모습에서 너무 벗어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실존적인 인물 송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면서 선생이 고뇌하고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보다 흥미롭게 들려주기 위해 상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312쪽, 1만5천원.▷저자 김정식은2011년부터 스토리텔링 제작 및 문화콘텐츠 컨설팅 전문 대마문화콘텐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예술행정(행정학 박사)을 전공한 저자는 1983년부터 2019년까지 육군3사관학교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 및 전주대학교대학원 강사를 역임했고, '나를 디자인합니다', '은빛 목걸이', '청리 가는 길', '화살을 이긴 영천 대마', '이야기로 찾아가는 하회마을' 등 15권의 에세이 및 스토리텔링집을 발간했다.
2020-11-27 14:30:00
[내가 읽은 책] 웬디 수녀의 나를 사로잡은 그림들
"홀로 기도하는 고독한 생활에서 벗어나 떠난 이번 여행에서 나는 영국 내 여섯 군데의 훌륭한 미술관을 방문했다. 그동안 복사화로만 볼 수 있었던 작품의 진면목을 그곳에서 직접 확인했으며, 그 순간의 기쁨을 이 글을 통해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책장을 넘기면 첫 페이지에 오롯이 적혀있는 문장이다.웬디 수녀는 BBC 방송의 텔레비전 시리즈 '웬디 수녀의 모험'과 '웬디 수녀와 함께 떠나는 미술 여행'을 통해 잘 알려져 있으며, '예술에 관한 한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저자는 '현대 여성 예술가', '예술과 신성'을 비롯한 예술잡지와, '인디펜던트', '선데이 타임스' 등의 일간지에 글을 쓰고 있다.웬디 수녀는 "예술에 대한 애정은 나에게 있어 신을 사랑하는 한 방법"이라고 했다. 리버풀,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솔즈베리 근교의 윌턴 하우스, 버밍엄, 에든버러로 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시간과 소박함과 개방적인 마음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기적이지 않은 삶의 태도 '삶 한 잔에 예술 한 조각' 감미로운 차 향기와 같은 살뜰한 이야기가 펼쳐진다.니콜라 푸생의 '포키온의 재가 있는 풍경'에 잠시 머문다. 전쟁에서 졌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화형을 당했던 아테네의 장군. 영혼마저 쉴 수 없게, 시신을 묻을 수 없게 했으므로 아내는 죽음을 무릅쓰고 재를 모으고 있다. 그렇게 모은 재를 물에 타서 마셨고, 포키온은 무덤을 가지게 되었다. 아내의 몸이 그의 무덤이 된 셈이다.진정한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창살보다 더 지독하게 우리를 가두는 것은 바로 스스로가 부여한 욕망의 감옥이 아닐까? 구에르치노의 '감옥에 갇힌 성 요한을 방문한 살로메' 그림을 보고 있으면 커다란 재앙만이 두 사람 앞에 남아 있음을 느낀다. 책장을 좀 더 넘기니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바람'이 흐르는 시간 속에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불고 있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가 무엇인지 완벽하게 보여준다.15세기에 발견된 원근법은 실로 새로운 것이었다. 파울로 우첼로의 '숲속의 사냥', '새'라는 의미를 가진 우첼로라는 작가의 이름도 깊은 뜻을 지녔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새만 볼 수 있는 사슴,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의 소실점이다. 삶 속에 숨겨진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중심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한곳을 향해 달려가는 그림 속 다양한 표정들이 흥미롭다.사볼드의 '피리 부는 소년'은 "소년이 불고 있는 피리는 키츠(Keats)의 시 '아무 음조도 없는 소곡에 맞추어'를 생각나게 한다. 들리지 않는 피리소리를 배경으로 누군가를 응시하는 소년은 지나가는 우리를 붙잡고 삶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듯하다."(101쪽) 웬디 수녀는 어디에서 주워들은 말들은 염두에 두지 말고 솔직하게 작품을 대하라 한다.영화 '아메리칸 퀼트'에 보면 할머니들이 모여 지나온 삶을 회상하며 조각보를 만들어 간다. 진심을 다해 걸어온 발자국이 모여 무늬가 되고 사랑이 머무는 퀼트가 된다. 예술 또한 삶을 벗어날 수가 없고,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만이 진정 예술을 이해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삶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충만하다. 예술을 감상한다는 것은 마음 벅찬 일이다. 한 폭, 한 폭의 그림들이 현실 너머의 무한한 곳까지 데려다 준다.정화섭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20-11-27 14:30:00
100세 시대 행복 키워드는 “마음·행복·운동·치매·노인·우울증·식습관·요양”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행복'을 원한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수명이 늘어나면서 관심은 결국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는지에 집중된다. 박언휘 내과 의사가 들려주는 건강백과 '청춘과 치매'는 그런 쉽고도 어려운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행복한 노년을 맞는 방법 소개나이 든 사람에 대한 시선은 나라마다 다르다. 서양에서는 노인을 늙은 사람(Older Person), 나이 든 사람(the Aged), 연장자(the Elderly) 등으로 부르는 대신 '원로시민'(Senior Citizen)·'황금 연령층'(Golden Age) 등으로 높여서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제3세대층', 스위스에서는 '빨간 스웨터', 유럽에서는 50세 전후부터 75세까지는 생애관점에서 새로운 중년기라는 뜻으로 '서드 에이지'(Third Age)라고 부른다. 또 중국에서는 50대를 숙년(熟年), 60대를 장년(長年), 70대 이상을 존년(尊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노인들이 흰 머리카락이 많은 것을 비유해 '실버'라는 말을 사용한다. 다르게는 '노년'으로 불리기도 하며, 노령 인구의 사회적 공헌에 대한 감사를 내포한 '고년자'(高年者)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이처럼 각 나라마다 나이듦에 대한 시선을 다양하지만 관심은 '행복'에 모아진다. 행복은 인간 누구에게나 바람직한 것이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고령화 시대의 마음가짐과 행복에 대해 고찰하고, 적절한 운동과 식습관을 통해 행복한 노년을 맞는 방법을 소개한다. '마음', '행복', '운동', '치매', '노인', '우울증', '식습관', '요양'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적절한 운동을 통해 건강을 지키고, 바람직한 식습관을 유지해 치매와 우울증을 예방하며 치매가 왔을 때 장기 요양을 받는 방법까지를 구체적이고도 실용적으로 설명하고 있다.이 책의 장점은 건강 전방에 관해 백과사전적 해박한 지식과 치매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불편한 손님 치매에 대한 모든 것사람은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외형적으로 누구는 젊어 보이기도 하고, 누구는 나이가 더 들어 보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신체적 나이보다 기능적 나이가 젊기도 하고, 늙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는 일상생활의 차이 때문이다. 또한 스트레스는 어느 한 시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전생애에 걸쳐 나타난다. 특히 중년기에는 심장병, 위궤양, 고혈압, 당뇨병 등 성인병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노년기에는 신경증 등을 초래해서 우울하게 만든다.이 책은 건강 유지의 비법을 세상살이의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50대는 본격적으로 치매와의 전쟁에 돌입하는 시기다. 그래서 실천 사항도 더욱 구체적이다. 저자는 5년 주기로 건강검진 때 뇌 사진을 찍어 두기를 권한다. 치매는 암처럼 조기 발견 여부가 치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통증이 없고 초기 증상에서 치매 여부를 확실히 알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뇌 사진 비교는 치매를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이 책은 치매 가족으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치매 환자는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 수밖에 없다. 별안간 식기를 집어 던지고 난폭한 행동을 보이는 것도 가족 간 의사소통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족이 환자를 돌볼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점이 바로 환자와의 '소통법'이다. 조바심 대신 인내를 갖고 환자와 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환자와 소통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 있고, 대화가 이뤄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은 환자를 대할 때 예민함을 덜고 감정적인 면은 다스릴 수 있는 '둔감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252쪽, 1만7천800원.◆저자 박언휘는경북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언휘 종합내과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의료봉사 활동과 지속적인 기부를 통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의사상을 구현하고 있다. '박언휘 원장의 건강이야기', '안티에이징의 비밀', '미래를 향하는 선한 리더십', '내 마음의 숲' 등의 저서가 있다.
2020-11-27 14:30:00
[책] 구글, 애플, 페이스북…글로벌 IT 기업의 사옥은 어떻게 생겼을까
도시는 한 권의 책이다. 세상의 모든 장르를 총망라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스케일이 무척 큰 책이다. 도시는 인류가 만들어낸 수많은 발명품 중에서 인간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삶의 무대다. 멈출 줄 모르고 달려온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도시에는 인간의 역사와 삶이 집약되어 있다.◆역사, 예술, 미래로 풀어낸 도시건축가 부부 노은주·임형남이 13개국의 21개 도시를 여행하며 도시에 담긴 역사·예술·미래의 풍경을 풀어내 신간 '도시 인문학'을 펴냈다.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베니스, 터키 이스탄불처럼 유명한 도시부터 미국 벨뷰, 일본 시가현 고카, 네덜란드 스헤인덜, 오스트리아 바트블루마우 등 약간은 생소한 도시까지, 도시의 이야기가 대표 건축물을 중심으로 생생하게 묘사된다.책은 역사, 예술, 미래라는 주제로 총 3장으로 구성된다. 제1장은 '역사가 만든 도시'에서는 홀로코스트의 아픔을 새긴 유대인박물관이 있는 독일 베를린을 비롯해 로마의 마지막 영광인 하기아 소피아 성당이 있는 터키 이스탄불, 슬픔과 불안이 새겨진 홍콩 상하이 은행이 있는 홍콩을 여행한다. 제2장은 예술이 만든 도시들을 찾아가본다. 자연과 예술을 존중한 지추 미술관이 있는 일본 나오시마, 예술의 향연이 펼쳐지는 산 마르코 성당을 품은 이탈리아 베니스를 탐구한다. 제3장은 '미래가 만든 도시'를 통해 도시와 건축의 미래를 전망한다. 유연한 사고가 만들어낸 하이테크 건축 퐁피두센터가 있는 프랑스 파리, 21세기 문명의 상징이자 정보의 왕국 페이스북 사옥이 있는 미국 멘로파크, 인간의 욕망이 담긴 부르즈 칼리파가 있는 아랍에미리트연방 두바이를 둘러본다.'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도 만나볼 수 있다. 미국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사옥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1989년 수상), 일본 가가와현 나오시마의 지추 미술관을 설계한 안도 다다오(1995년), 미국 시애틀의 시애틀 공공 도서관을 설계한 렘 콜하스(2000년), 일본 효고현 고베의 종이로 만든 집을 설계한 반 시게루(2014년)가 주인공이다.◆유대인박물관부터 구글·애플사옥까지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박물관은 홀로코스트의 참담한 기억을 기록한 곳이다. 아연과 티타늄으로 둘러싸인 유대인박물관의 표면에는 사선으로 그어진 선들이 할퀸 상처처럼 아프게 다가온다. 유대인박물관에는 납작한 철로 제작된 가면 1만 개가 깔린 메나셰 카디슈만의 설치 작품 '공백의 기억'이 있는데, 이는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을 상징한다. 또한 기울어진 49개의 콘크리트 기둥으로 구성된 '추방의 정원'은 유대인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삶을 표현하고 있다.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유대인박물관은 과거에 인류가 저질렀던 죄악에 대한 강력한 건축적인 기록이다.'베니스의 상인' '베니스에서의 죽음' 등 여러 작품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베니스는 감각의 도시이자 예술의 도시이자 건축의 도시다. 120여 개의 섬을 400여 개의 다리로 연결해놓은 물 위의 도시인 베니스는 촘촘하게 붙어 있는 작은 섬들이 정교하게 꿰매놓은 천 조각 같다. 베니스의 중심에 있는 산 마르코 성당은 11세기에 재건되면서부터 동방을 침략할 때 가져온 그리스 시대의 조각 등 여러 가지 장식품으로 가득하다. 예술은 인류의 자산이며, 베니스는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매혹적인 도시다.21세기 전세계에서 지배력을 높여가고 있는 글로벌 IT 기업의 사옥은 어떻게 생겼을까.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애플 사옥은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 모양으로 거대한 우주선을 연상시킨다. 미국 멘로파크에 있는 페이스북 사옥은 축구장 7개를 합친 규모로 단층의 오픈 플랜 형태 사무실로 지어졌다. 직원 2천800명이 칸막이 없이 열린 채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며 일하고 있다. 구글이 2018년 발표한 캘리포니아 서니베일 캠퍼스 계획안은 직원들이 일하거나 거주할 수 있는 공동체 친화적인 공간을 구성해 주택과 교통이라는 삶의 큰 이슈를 해결하고자 했으며, 2021년 이전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인 환경이나 시스템으로만 돌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시간이 중첩되며 만들어진 시간의 무늬 위에 다시 새로운 무늬가 더해지며 생기는 그림과도 같다. 저자들은 "많은 이미지가 파편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고, 파편 위로 빛들이 난반사되어 일정한 형상을 인식하기 힘들다"며 "그래서 우리는 도시라는 책을 천천히 읽으며 그 모습을 이어 붙여야 한다"고 말한다. 308쪽, 1만6천원.
2020-11-27 14:30:00
[내가 읽은 책] 가나다라마바사(문무학 지음/ 학이사/2020)
우리 고유의 문자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일반 백성들은 문자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어려운 한문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에 편지는 물론, 간단한 기록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세종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누구나 쉽게 자신의 의사를 문자로 표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한글을 창제했다. 이런 한글의 자모를 시로 쓴 시집이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시로 표현하지 않은 소중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시로 표현한 시집이다. 시인은 "우리 한글 자모는 패션과 디자인, 그림과 무용,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지만, 정작 문학에서는 우리 말 자모를 시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한글자모를 시화하는 작업을 감행했다."고 했다.문무학 시인은 지금까지 여러 권의 시조집을 통해 그의 정체성을 확인해 주었으며, 최근 낱말에 대한 근원적인 원리를 찾아가는 그의 시적 행보는 문단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 결과가 낱말과 홑소리 글자를 통해 삶을 바라본 시를 담은 시집 『낱말』과 『홑』을 통해 낱말의 의미와 세상을 통찰하는 시세계를 선보인 것이다.이 시집에서는 한글 자모를 바라보고, 써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한다. 그 위에 새로운 상상력을 더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시집에서는 닿소리 14자와 모음인 홑소리 10자, 복자음인 겹닿소리와 이중모음인 겹홀소리 16자, 사라진 자모 4자, 겹받침 글자의 풍경을 그린 겹받침 11자 등 55자를 소재로 한 시조 55편을 담았다. 수록된 시를 읽으면 그 누구도 발견해 내지 못한 우리 한글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한 시인의 시각에 감탄하게 된다. 또 한글 자모를 시의 주제로 끌어와 우리 인간사의 기쁜 삶을 자모 속에 담아내고 때로는 가슴이 저미도록 아픈 삶을 자모 속에 녹여내어 3장의 행간 속에 담백하게 풀어냈다."'ㄴ은'은 한글 자모 두 번째 자리지만/ 세상 제일 먼저인 '나'를 쓰는 첫소리/ 첫자리 비워주고도 첫째가 될 수 있다" (-닿소리 ㄴ)이 시집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단순한 한글 자모의 나열이 아니라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인이 즐기는 언어의 유희 속에는 단순한 유희가 아닌 우리말의 깊은 어원을 찾아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즉 '나'라는 1인칭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 속에는 최고만을 고집하는 우리들에게 그 어떤 것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삶의 철학을 가르쳐준다. 이처럼 시인은 한글과 언어를 다채롭게 변주한 실험적인 시집을 발표해 주목을 받아 일정한 문학적 성취를 이뤘음에도 교만하지 않고, 몸을 더욱 낮춰 "삶의 바다에서 낚싯대 하나 걸쳐놓고 괜찮은 시 한 편 낚아 올리려 아등바등하고 있다."고 '시인의 말'에서 말한다. 유네스코문화유산에까지 등재된 한글의 귀함이 이 시집으로 더욱 빛나기를 기대한다.김용주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20-11-19 13:55:43
[책] 전태일 50주기 … 책으로 그를 만난다
노동운동가 전태일(1948~1970) 열사의 50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조명하는 책이 잇따라 나왔다.지난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지 5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전태일 열사는 이날 "근로기준법을 지켜주고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아, 전태일!안재성 소설가와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맹문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 박광수 영화감독, 윤중목 시인 등 5명은 '아, 전태일!'(목선재)을 함께 출간했다.이들은 전태일을 주제로 4개 분야를 정하고, 이를 나눠 집필했다.1부 '전태일 약전'(안재성)은 전태일의 삶을 그려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2부 '전태일과 한국사회'(이병훈)는 전태일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오는 과정을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다.이 교수는 전태일의 분신 직후 노동자의 인권 보장과 근로조건 개선 등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에 주목한다. 그는 전태일의 분신이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에 희생돼 온 노동자 삶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함으로써 사회적 관심을 널리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한다.3부 '전태일과 한국문학'(맹문재)에선 "만약 전태일이 기회가 되어 문학 공부를 했다면 분명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었을 것"이라며 그의 일기 등에 나타난 문학적 글들을 소개한다. 이후 한국 문학에 나타난 노동 소설과 시 등을 살핀다. 4부 '전태일과 한국영화'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연출자인 박광수 감독과 시인이자 영화평론가인 윤중목의 대담을 정리한 내용으로 이뤄진다.지은이들은 서문에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똑 50년이 됐다. 그의 50주기를 기리기 위해 사명을 다해 만든 이 책이 전태일을 사랑하고 기억하는, 그러므로 전태일의 친구인, 이 땅의 가슴 뜨거운 사람들 모두에게 부디 아름다운 책으로 오래오래 읽히기를 소망해 본다"고 했다. 344쪽, 1만8천원.◆왜 전태일인가이 책은 전태일 분신 50주기에 출간된 새로운 전태일 평전이다.송필경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이사는 평전 '왜 전태일인가'에서 '전태일 정신'을 '어린 여성 노동자를 향한 연민'이라고 표현한다.전태일이란 존재는 우리 시대 지혜의 원천이었고, 도덕적 사유의 모범이었고, 시대의 희망이었고, 불가능을 희망으로 바꾼 사랑의 실천가였다고 저자는 강조한다.전태일을 노동운동가나 노동 투사로 한정한다면 그의 정신 크기를 과소평가하게 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책에는 저자가 전태일의 막내 동생 전태리 씨를 올해 2월 인터뷰한 내용도 담겼다. 전씨는 "오빠는 너무 큰 존재였어요. 모든 걸 전부 얘기하면 제 요구를 다 들어줬어요"라고 했다.저자는 전태일이 살았던 대구 남산동의 집을 전태일 기념관으로 만들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저자는 "전태일은 깊고 넓은 마음에 따뜻함을 가득 담은 인간이었다"며 "전태일의 연민과 무차별적인 이타심은 이기심만 존재하는 정글 자본주의와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바보 행위 그 자체였다"고 적었다. 236쪽, 1만7천원.
2020-11-19 11:19:33
조선시대 여성들은 억울함을 법적으로 어떻게 호소했을까?
정의의 감정들/ 김지수 지음 /김대홍 옮김/ 너머북스 펴냄 조선시대 여성들은 자신의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어떤 방식의 소원과 서사 전략을 활용하였을까? 이 책의 저자는 여성 소지(所志: 관에 제출한 탄원서 일종)에 주목한다. 단조로운 어조로 된 이야기만을 담은 심리록이나 검안 같은 형사기록과 달리 소지는 송자의 성별, 나이, 사회적 신분에 따라 다면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며, 다양한 서사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젠더와 신분, 법 감정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조선시대 여성, 억울함 호소하는 소지 써 관에 제출이 책은 현존하는 600여 건의 조선시대 여성의 소원과 관련된 기록(155건은 조선후기 군현과 도에 제기한 여성 소지)에 있는 수많은 노비·평민·양반 여성들의 사연과 법적 공방을 소개한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여종 말금의 소원에서처럼 그녀들의 서사는 원통함이나 원의 감정으로 시작되었고 또 끝을 맺는다. 저자는 조선시대 법적 담론과 법적 서사의 핵심이 '억울함'이며, 억울함의 감정을 잘 풀어주는 것이 정의를 확보하는 하나의 기제였고, 평범한 민이 사법제도에 기대도록 만든 주된 동기였다고 주장한다. 백성들이 북을 치며 억울함을 공개적으로 표출함으로써 원통함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한 신문고의 등장은 국가 입장에서 각 개인의 목소리가 권력구조의 정점에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허용한 첫 조치였다. 백성은 소원을 했고, 국가는 원이 풀어지도록 힘쓰는 것이 법적 관행의 근본이었다. 이렇듯 조선시대 사법제도는 신분과 젠더를 차별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차별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자기 모순적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저자는 젠더나 신분에 관계없이 법적 주체라는 권한을 부여했던 이면의 국가 역할과 논리를 인식하는 것이 전근대의 사법관행을 이해하는 핵심이라 강조한다. ◆젠더, 글쓰기, 법적 퍼포먼스억울함을 호소하는 방법에는 서면 소원(상언)과 구술 소원(격쟁) 등 두 가지가 있었다. 상언은 소지로 청원하는 것이고, 격쟁은 문자 그대도 '징을 치다'는 뜻으로, 임금이 행차할 때 그 길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서면 소원은 글쓰기, 구술 소원은 몸짓, 말투, 표정이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기능했다. 여성과 남성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다. 남성의 경우 억울함과 관련된 분노를 표출한 반면, 여성들은 고통과 고난을 강조했다. 여성들은 여성 젠더를 강조하기 위해 사회 내에서 자신들의 연약함과 취약함, 종속적인 지위를 강조하는 연민의 내러티브를 활용해 억울함을 표상했지만, 동시에 국가에 자신들의 억울함을 해소해줄 수 있는 국가 본연의 권한을 따르라고 과감하게 요구했다. 특히 한글로 작성된 여성들의 소지는 여성의 젠더 정체성이 어떻게 고유의 글쓰기로 드러났는지 보여준다.신분에 따라서 소원의 내용이 달랐다. 양반 여성은 주로 가족의 신원과 입양, 재산 분배, 노비 소유 등이었는데 비해 하층민 여성들은 세금, 토지, 채무, 묘지, 혼인, 구타 등 훨씬 더 다양했다.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었다는 관념이 지배적인 이유는?20세기 이전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법적 주체로 인식되었으며, 남성에 비해 열등하지 않은 권리능력을 행사하였다. 그런데 왜 남성에게 종속된 조선시대 여성이란 관념이 지배적으로 남아 있을까? 저자는 일제 강점기 조선민사령과 해방 이후 한국법제사 연구의 경향성 이 두 가지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조선민사령의 근거가 된 조선 관습조사보고서에서 일본인들은 조선에서 아내의 권리능력을 잘못 이해해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었다고 보고 아내가 권리능력을 행사하려면 '전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했다고 보았다. 이는 전근대에서 근대적 사법제도의 근본적인 구조변경의 틀이 되었다. 해방 이후 학계에서는 일본의 조사보고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고, 실증 연구보다는 추정에 따라 조선시대 여성의 법적 '무능력'을 사실처럼 받아들여 논의하였다.저자는 조선에서 권리와 연관될 수 있는 민법이나 사법의 서구적 개념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하게 되면,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 사회의 사법 관행을 잘못 이해하게 된다고 말한다. "조선의 법사를 연구할 때 서구법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단지 무의미한 논쟁만 불러일으킬 뿐이기에 역사 속으로 들어가 실제 적용된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08쪽, 2만원.
2020-11-19 11:16:48
[책] 서울은 천재를 품었고, 천재는 서울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시인들의 시인 백석,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나목의 화가 박수근,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현대의 신화 정주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모두 1910년대에 태어났으며,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꿈을 이루고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신간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은 서울에서 활동한 다섯 명의 천재를 통해 천재들의 삶과 업적뿐만 아니라 그들의 무대가 되어준 도시, 서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다섯 인물의 평전이자 여행의 기록조성관 작가의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시리즈가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로 완결을 맞았다. 저자는 지난 15년간 9개 도시에서 각자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살았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천재' 54명을 만났다. 그 대미를 장식한 이는 서울이 사랑한 백석, 윤동주, 박수근, 이병철, 정주영이다.천재들이 살고 사랑한 곳들을 순례하며 그들의 삶과 예술세계, 업적을 되짚어본 이 책은 다섯 인물의 평전이자 역사서이며, 저자의 여행 기록이다. 저자는 천재들의 결실과 그들의 인생을 복기하면서 사생활이나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곁들여 천재들의 삶을 더욱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저자가 천재들의 발자취를 따라 도시 곳곳을 순례한 감상평도 어우러져있다. 백석이 기자로 일하던 시절 묵었던 종로구 통의동 하숙집과 길상사를 시작으로, 윤동주의 서촌 누상동 하숙집과 윤동주 기념관, 박수근의 일터와 집터, 박수근미술관, 이병철의 생가와 호암미술관, 정주영의 청운동 집과 하남의 묘지가 사진으로 수록돼 현장감을 살렸다.혼돈의 시기, 서울은 천재들을 품었고, 천재들은 서울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사후 빛나는 이름을 지니게 된 그들의 현실에서의 삶이 평탄하고 행복하기만 했을까. 천재들의 삶은 결코 행복한 것만도, 영광스러운 것만도 아니었다. 때로는 궁핍과 시기, 혹평과 비난, 질병과 고독에 시달려야 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고통과 기쁨, 영광과 좌절, 강렬한 예술에의 투혼을 읽어낼 수 있다.◆대한민국과 서울을 바꾼 5명의 천재시인이자 소설가이자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백석. 그가 서울에서 기자로 일하던 시절 묵었던 종로구 통의동 하숙집과 길상사를 둘러본다. 길상사는 백석의 연인이었던 '자야' 김영한이 자신의 전 재산을 부처님에게 시주해 짓게 된 사찰이다. '모던 보이' 영어 교사로도 유명했던 그는 분단과 함께 재북 시인이 되었다. 그의 신산했던 삶의 여정을 좇는다.'서시'의 시인 윤동주는 35년을 산 모차르트보다도 짧은 생을 살다 갔다. 그의 27년 생애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기간은 서울의 연희전문에 다닐 때였다. 연세대 교정, 윤동주 기념관, 서촌 누상동의 하숙집뿐만 아니라 윤동주가 유학했던 교토와 도쿄의 대학, 체포되어 죽음을 맞은 후쿠오카 형무소까지 돌아본다. 엄혹한 시절, 윤동주의 유고를 고이 간직해 세상에 나오게 한 감동적인 사연도 읽을 수 있다.'빨래터', '나무와 두 여인' 등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 박수근은 천재 예술가의 전형이다. 변변한 아틀리에 하나 없이 가난 속에 살다 간 박수근이지만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조선미전에 여러 번 당선되어 화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생업을 위해 미8군 PX 초상화 가게에서 일해야 했다. 초상화 가게가 있던 곳, 창신동과 전농동 집터, 박수근미술관 등을 순례한다. 더불어 박수근의 대표작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한국 경제를 이끌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주역, 이병철과 정주영의 일대기도 흥미롭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두 경제인은 성장 배경은 아주 달랐지만 '삼성'과 '현대'를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의령의 이병철 생가와 삼성의 모체가 된 옛 삼성상회, 호암미술관, 승지원 등을 둘러보고, 정주영이 젊은 시절 공사장 인부로 일했던 고려대 본관, 울산 현대중공업 현장, 청운동 집과 하남의 묘지 등을 찾는다.저자는 "서울에 태를 묻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만개한 곳은 서울이었다. 이들이 세상에 왔다 가고 나서 서울과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뀌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1910년대생인 다섯 사람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312쪽, 2만3천원.※저자 조성관은천재 연구가이자 작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해 '월간조선' 기자를 거쳐 '주간조선'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시리즈인 '빈이 사랑한 천재들', '파리가 사랑한 천재들', '뉴욕이 사랑한 천재들' 등 9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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