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er Script 문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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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눈이집증후군/박윤배 시집/북랜드 펴냄

'날이 가물자, 지붕 배수구 물받이에 새가 짓는 집/여기저기 지푸라기 물어다가 울긋불긋/꽃 울타리도 만든다/…중략…/내가 너의 눈을 닮아가니/너도 내 눈을 닮아갔다' 시집의 타이틀이 된 '오목눈이집증후군'이란 시다. 현실이란 땅에서 발을 떼지 못하면서 눈은 항상 비현실적인 이상의 세계로 향하는 것은 호모사피엔스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현실과 그 너머의 세계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시어를 매개로 한 자유로운 의식의 공간이동은 시인의 특권이다. 그러나 현실초월은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부터 갈등과 아픔을 동반한다. 박윤재 시인이 추구하는 서정시의 외양에 긴장감이 감도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녹을 날 기다려 몰래몰래 건네는 물 한 모금' '그녀 얼마만치 떠오를까' 등의 사건들이 의외의 결별을 겪는 것도 서정적 심상의 전이와 확산이다. 강원도 평창 출신으로 198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겨울판화'로 등단했다. 124쪽, 1만원.

2018-07-25 16:51:13

조성연 씨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조성연 '자작나무 훈민정음'

자작나무 훈민정음 인제군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에 가면 닥티눈 점점 박힌 설화지雪花紙가 천진데요 못하는 먹 글씨라도 한 번 쓰고 싶어지죠 색깔에 눈 빠지고 내음에 씻긴 마음이 티눈으로 써 내려간 해례본을 읽는데요 집현전 모필 넋들이 수천 자루 일어나요 허파를 활짝 열면 가슴 차는 니은 디귿 반포 시절 떠오르는 흥분과 밝은 해가 빛나는 글자 사이에 맑은 공기 널리 붓죠 시 – 조성연 '자작나무 훈민정음' - 당선소감 내겐 기쁜 소식을 듣고, 잠시 뒤에 갖는 버릇이 하나 있다. 이후에 나는 어디에 사용 될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쓸 만한 걸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이번 시니어작품 공모전에도 이순(耳順)의 세대가 그나마 감성의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곳이구나 싶어 응모를 했다. 당선 통지를 받고 나서 잠시 뒤에, 이 만년의 감성이 어디를 향해서 어떻게 전달되는 것일까. 그리고 어느 현실에 적용되는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인공지능이 더 멋진 글을 쓰는 시대에 시니어의 감성과 정신이 어떻게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회의가 앞서는 투지를 느꼈다.뭐니뭐니해도 시니어 감성을 눈여겨보는 매일신문사에 경의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저녁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 가는 땅거미를 지면으로 불러내어 서쪽 하늘에 개밥바라기 반짝이게 독려하는 것 같다.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는 불쏘시개를 모아 전등불 아끼는 부엌에 쌓는 것 같다. 어려운 시각을 맞춰 준 선자께 감사를 드리며 유월의 녹음 짙은 가로수 아래를 활기차게 걷는다.

2018-07-25 16:47:21

노을을 울리는 풍경소리/김술남 시집/해드림출판사 펴냄

하루해가 꼬박 지난 후 나타나는 진한 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서산 넘기 전 대낮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83세의 평범한 할머니 김술남 시인이 '거역할 수 없는 세상 순응하면서 오늘 여기 있음을 감사하며' 두 번째 시집을 냈다. 초교 2학년 때 겨우 한글을 깨치고 학교를 그만 둔 이후 닥치는 대로 독서량을 쌓으며 박상옥 시인의 지도로 시에 눈을 떴다. 2015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에 '까치똥'이 당선됐고 3년 전 첫 시집 '찔레꽃 하얀 꿈'을 냈다. 시집 속 '외로운 기러기' '책읽는 노고지리' '꽃신' 등 시는 흐트러짐 없이 삶을 꾸러가는 성찰의 또 다른 언어들이다. 팔순의 나이에 시를 쓰며 감성을 풍성하게 지켜나간다는 게 쉽지만은 아닐 터. '뻐꾸기 힘찬 노래 산천을 울리고'란 시어처럼 만년의 맑은 노을이 풍경소리로 공명을 울려 지난 세월에 대해 그리움을 대신하고 있다. 160쪽, 1만2천원

2018-07-25 16:40:23

여호진 씨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여호진 '햇반의 온도'

햇반의 온도 어둠과 형광불빛이 통성명을 하는 늦은 저녁 식탁은 벼랑도 없는 사막을 펼쳐놓았다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유령처럼 흘렀다 나의 취항이 끼어들 틈이 없는 완벽한 레시피 뜨거움 속에 없는 온기를 찾아, 돌아서면 허기가 부풀어 오른다 풍경을 밀어낸 편의점 뒤쪽에서 면벽하는 내일이 된 시간 몸을 있는 대로 구겨 넣은 가파른 등에 방부된 푸른 불빛이 그렁그렁 파문을 그린다 허기의 집은 텅빈 유곽처럼 밤과 함께 깊어진다 피가 따뜻해지는 골목이 있었다 자꾸만 거짓말이 되어가는 오늘의 온도 말고 집밥이라는 말을 따라 조팝꽃처럼 퍼지던 식구들 기억 속의 집은 너무 멀어 발목을 내놓은 채 갇혀버렸다 입김처럼 흩어지는 만개한 적막 온몸에 오돌토돌 열꽃을 피운다 제풀에 익은 꽃이 물집처럼 터지고 늘 공복인 그림자가 뜯겨나간 손톱으로 밤을 할퀴며 선회 한다 꾸역꾸역 나를 파먹고 있다 한 세계를 욱여넣고도 속일 수 없는 허기로 밀폐된 바깥이 너무 멀다 시 – 여호진 '햇반의 온도' - 당선소감 문득, 여고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고 가슴 설렜던 그때 그 시간이 먼 길 돌아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왔습니다. 늦깎이로 시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갈등과 방황으로 몇 번이고 접을까도 생각 했지만, 어느덧 詩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벌써 하반기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뜻 있는 한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며 힘이 된 문우들께도 고마움을 보냅니다. 길을 열어 주신 대구매일 신문사와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07-25 16:25:30

심상숙 씨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심상숙 '사과를 깎는 시간'

사과를 깎는 시간 사과를 깎습니다 둘레를 깎습니다 붉은 껍질은 꽃이 흔들리며 망설였던 거리입니다 피울까 말까, 시간의 굴레가 영글었습니다 씨앗의 일가들이 칼날을 지나 흩어집니다 푸른 그림자 속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사과를 깎습니다 우리의 둘레를 깎습니다 향기는 공감각적 두께로 앉은 벌레소리입니다 잎사귀 사이로 내린 별빛이 고스란히 부서집니다 대롱거리던 표정과 비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린 시간이 잘립니다 사각사각 일가들은 잘도 헤어집니다 사과를 깎습니다 귀에 익은 발자국 하나가 멀어집니다 칼날이 스쳐간 자국, 그 아래로 멍의 둘레를 따라 나는 고요히 걸어 내려가 봅니다 아주 사소한 이파리 하나가 붉어가는 사과의 볼 위로 나볏이 스쳐 내린 길입니다 시 – 심상숙 '사과를 깎는 시간' - 당선소감 < 내 안의 타자他者를 환대歡待하다 > "매일신문사입니다. 심상숙씨께서 「사과를 깎는 시간」 시로 이번 매일 시니어 문학상에 당선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새해벽두, 광남 일보 신춘문예당선소식에 이어 2018년 초여름 올해의 두 번째 소식이다. 투고를 망설였던 곳이다. 초등교원으로 퇴직한지 몇 해, 『시와 소금』 계간지등단으로 지면발표가 잇달아 계속 시를 썼다. 재직당시에는 계간 『서울교육』 1998. 봄호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시가 게재된 적이 있을 뿐이다. 그간에 누군가 내게 시집을 건네 준 적이 있었던가, 시집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교원생활은 정신없다. 출근하랴, 살림하고 가족들 챙기랴, 대학원을 다니고 또 다니랴, 해마다 현장논문 써내랴. 늘 공문과 교육계획서 및 보고서작성, 수업발표에 세월을 잊고 있었다. 보육내지 아동교육의 창의성과 다양한 활동의 요구는 체력을 바닥냈다. 숨 가빴던 어느 날, 청으로부터 정년퇴직명령공문이 떨어졌다. 그때 까지도 내가 시를 쓰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퇴직을 하면서 수도권으로 이사를 나왔을 때, 낯선 거리의 백일장에 산문을 한편 써낸다. 정을 붙여보려던 때문이던가. 장원을 통보받게 되고, 그로부터 시를 쓰게 된다. 이태 후 「흰 이마가 단단하구나」 외7편으로 목포문학상 신인문학상수상으로 김현문학제에 목포문학관을 다녀오게 된다, 다음해 2013년 봄에 시 두 편으로 진주 이형기문학제에 일박으로 다녀오게 되고, 그해 여름 광화문 조선일보사에서 여성조선 문학상수상으로 시 부문 최우수, 「목련근처에서」로 여성조선 8월호에 게재된다. 그해 가을에 「명중」 으로 김장생문학상 본상수상으로 계룡을 다녀온다. 2014년 인사동소재 계간문예지 『시와 소금』 봄 호에 「물푸레나무 그늘 」외 4편으로 등단하게 된다. 『시와 소금』 등단 지와 엔솔로지에 신작시를 몇 번 발표하게 된다. 해마다 문인협회 연호지紙와 시냇물 창작동인지紙에 작품발표를 해 오고 있다. 이곳에 왔기에 시를 쓴다고 생각한다. 내 속을 꺼내 보이는 일, 얼굴 뜨겁다. 결코 쓰고 싶은 대로 써지지 않는다. 타고난 시인처럼 수월하지 않다. 시도 배워서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간의 수상실적으로 바우처 혜택을 받아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한 학기 해보고, 지난 이태동안 학사편입으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시집이나 시론, 철학과 미학에 관하여 읽었다. 여전히 시는 어렵고, 쓸수록 더 난해하다.한창때 빛나는 젊은 시인들은 가히 아름답다. 기대 또한 무한하다. 나는 평생 주어진 일에만 매진했으나, 비로소 시를 쓸 여유, 세계를 바라다보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유思惟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처음 운전을 배워 올림대로를 달릴 때의 불안을 극복한 통쾌함처럼. 시를 쓰는 일 또한, 고통을 극복한 기쁨이다. 시 한 편의 환희歡喜는 오래간다. 그간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써나갈 것이다. 내안에 있을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수많은 어릿광대 타자他者들을 환대歡待할 것이다. 시를 써도 발표할 기회는 쉽지 않다. 올해 신춘문예당선이후 원고청탁으로 계간문예지 『다층』 2018.봄 호에 신작시, 「맞선」 과 「배경」, 그리고 시 전문 계간문예지 『예술가』 2018.여름 호에 신작시 「지난겨울이 깊었던 까닭은,」과 「바라나시*」 시 두 편씩을 발표했다. 계간문예지 『시와 소금』 가을 호 원고를 준비 중이다. 또한 올 7월 간행물로 「흰 이마가 단단하구나」를 출간할 예정이다. 첫 시집에 넣을 시인의 말을 적어본다.-대기오염이 심각합니다. 대기의 오염으로 삶의 질이 뜻 밖에 좁아졌습니다. 지구를 관찰하고 기록해 나갈 인류의 종種을 보전하고자, 통계자료들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연환경의 보존과 인류의 보전에 뜻을 둡니다. 새로운 의식으로 작은 실천을 찾아 떠납니다 보편적 개념에 의해 억압된 개별자들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해방시키고자 돌아봅니다. 보편적 개념에서 동일성의 사유로부터 물러선 것들, 상처받기 쉬운 것들, 그러나 스스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자 합니다. 나의 의식이 나의 존재라는 것을. 우리의 존재가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자연의 오묘한 비밀, 앞으로의 과학으로 반드시 규명될 지구 한 구석의 비밀을 찾아, 오늘도 새롭게 떠납니다. 꼭 시詩가 아니어도, 시詩 이상으로 살아가는 분들은 더 많이 있다. 내가 쓴 시가 나 자신을 구원시키는 일은 물론, 누군가를 위로받게 하고 견디게 하는 살만하게 하는 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6년 째 구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식사준비와 몸 수발, 병원 입 퇴원과 간병을 해드린다. 지병으로 병원진료가 잦다. 어느 때는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고 서둘러 모셔놓고 나가기도 한다. 오늘아침에도 침대문제로 걱정되어 회수여부를 문의하고 있다. 늘 기도하시는 어머니가 계셔 힘이 된다. 저의 시를 눈여겨 손들어 주신 매일시니어 문학상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매일신문사 관계자 여러분께 덕분에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시를 쓰기 위해 만나 뵌 아름다우신 선생님들, 함께한 문우님들께 감사말씀 전해 드립니다. 나의 힘이고 응원자인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진정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07-25 16:22:34

박윤우 씨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박윤우 '전화번호를 지우는데'

전화번호를 지우는데 우리 집에는 고양이 한 마리와 묵은 이명씨(耳鳴氏)가 산다 오늘따라 내가 흔하다 나는 계단참이고 우산이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풍경이다 우스운 일에만 웃는다 인적 드문 내소삿길, 인중 긴 꽃을 내려다보며 눈으로 만졌다 무슨 계획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꽃 풀 먹인 모시 적삼 같은 녀석에게 안녕하세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다 거기, 매발톱 꽃은 폭발이 아니라 함몰이다 사월의 허리를 부축하는 미나리아재빗과 누두채(漏斗菜) 대궁 위의 푸른 뿔, 안으로 안으로 구부리는 저 푸른 화판 저희끼리 붐비며 함몰 중이다 잎도 안 난 노루귀가 매발톱 따라 고개를 꺾는, 매발톱과 노루귀 사이 너를 묻으며 비를 맞았다 돌아와, 식은밥에 물 말아먹고 수첩을 꺼내 전화번호를 지우는데, 이명씨(耳鳴氏)가 어딜 그렇게 쏘다니느냐며 속삭인다 시 – 박윤우 '전화번호를 지우는데' - 당선소감 접는다 해도 억울할 것 없는 나이, 이 나이에도 가만가만 찾아오는 기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귀한 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해 몇 발짝 들여놓았다가 그만 길을 잃은 골목 같은 것, 길을 잃을수록 환해지는 불빛 같은 것, 제겐 그게 시였습니다. 쓸모없는 짓 좀 하며 살자고 마음먹은 후 가장 쓸모 있는 일이었던 셈입니다. 제대로 한 줄을 쓰지 못해 자괴감이 앞서면서도 걷다 보면 도달할 곳이 생길 거라는 믿음, 그 믿음에 한발 다가선 기분입니다. 자신을 다그치라는 격려와 충고로 알고 더 열심히 읽고 생각하겠습니다. 벙긋벙긋 입모양은 보이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거기 유리가 있고 창밖이 생기듯이, 창 너머에 네가, 혹은 내가 서 있듯이, 너머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의 삶의 모습일 텐데요. 삶의 어떤 국면을 쓰는 게 시일 텐데요. 삶에 다가서면 시가 되질 않고, 시에 다가서면 삶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이 제 시의 모양새였습니다. 발표도 하지 않을 시를 왜 쓰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마다 누군가 뒤에서 내 시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그 누군가가 매일신문사의 시니어문학상이 된 셈이라 더욱 기쁩니다. 자란 곳이고, 젊어 일한 곳이고, 아픔을 나눈 곳이어서 받은 상이 제겐 더 값지게 생각됩니다.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시가 아니라는 말씀, 세상은 표면, 표면이 아름다운 거라는 말씀, 쓰지 말고 쏟아내라는 말씀, 말씀들이 다 과제였습니다. 더 깊이, 멀리 말씀 속을 헤매보겠습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을 버려 아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기뻐해 줄 딸이 둘이나 있어 행복합니다. 가르쳐주신 여러 선생님들 뵙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시의 길로 이끌어준 황 시인 고맙습니다. 함께 고민하는 종각 문우님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심사위원님 감사드립니다. 시니어문학상의 의미를 되새기며 매일신문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18-07-25 16:17:45

장기성 씨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수필-장기성 '달빛 상념'

'달빛 상념' / 장기성 한가위에 고향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리움일까 설렘일까. 아무래도 달빛에 대한 환상이 폐부 깊숙이 각인 된 탓일 게다. 초저녁이 되면 앞산자락에 둥근 달이 나무가지에 걸린다. 한낮에 대지를 뜨겁게 달구었던 햇빛은 온데간데없다. 간간히 길섶과 논두렁에 몸을 숨긴 희뿌연 열기의 흔적만이 햇빛이 다녀갔음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줄 뿐이다. 무심한 세월이 흐른 탓일까. 고향엔 길동무가 되어줄 도반(道伴)이 없어진지 오래다. 혼자서 희다 못해 푸르스름한 달빛을 쫒아 바람도 쐴 겸 호젓한 오솔길로 나서본다. 어슴푸레 달빛 속에서 눈대중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이곳이 그곳이고 그곳이 이곳이다. 길섶의 벤치 위에 턱을 괴고 앉으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수많은 상념들이 머릿속 언저리를 맴돌며 지금의 나를 잊게 만들고, 잡다한 상념들이 이 틈새를 놓칠세라 먼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우리 동네는 산비탈에 위치해있어, 달빛이 창문을 통해 몰래 들어와 방안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달빛이 너무 해맑고 투명하여 차마 잠자리에 들기가 아쉬울 지경이었다. 이런 밤이면 나는 뒷마당 뜰에 물끄러미 서서 물처럼 출렁이는 달빛 풍경을 탐닉했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서로 사모하듯이, 나뭇잎들 속으로 달빛이 깊게 스며들었다. 나무 그림자가 달빛을 받아 들쭉날쭉 땅위에 수묵화를 그려낸다. 그리움이 이 순간을 놓칠세라 빗살무늬를 일으키며 가슴팍으로 내려앉는다. 내친김에 달님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본다. "달님은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하나요?" "아무래도 달맞이꽃이지요." "왜요?" "달맞이꽃은 원래 나를 따르던 요정이었답니다. 그믐이 될 때마다 나를 볼 수 없게 되자, 상심한 나머지 그만 쓰러져 달맞이꽃이 되었지요.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애절한 그리움의 상징으로 간주하기 시작했죠. 지금도 꽃말이 그리움이 아니던가요. 그 꽃을 생각하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답니다." "해님은 달맞이꽃을 좋아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야 그렇겠지요. 자신을 따르는 꽃이 따로 있으니까요." "궁금하네요. 무슨 꽃입니까?" "해바라기 꽃입니다. 그 놈은 해님을 지겹게 따라다니지요. 심지어 해님이 귀찮아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흐린 날에도, 님 향한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답니다." "달님, 혹시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물론이지요. 이태백이 나를 처음으로 낭만적인 사모의 대상으로 만들어 주었지요.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신다는 '월하독작'은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가 경포대와 인연 맺을 것이라고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어요. 한 번 들어보실래요. 거울처럼 맑은 호수라는 뜻의 '경포호'에는 네 가지 낭만의 얼굴이 보인답니다. 첫 번째는 하늘에 뜬 저의 모습이고. 두 번째는 바다에 뜬 모습, 세 번째는 호수에 뜬 모습. 마지막 모습은 술잔 위에 뜬 저의 모습이지요. 하나를 더한다면 해맑은 눈동자에 들어있는 저의 모습이랍니다. 그 당시만 해도 풍류와 해학이 넘칠 시절이라 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답니다." 상념이 상념의 꼬리를 물며 심연의 세계에 빠지니, 광음의 촉감이 무디어져 간다. 해님과 달님의 열광적인 팬은 누구일까? 생뚱맞은 쪽으로 생각이 미치기 시작한다. 해님의 팬은 아무래도 '해바라기'가 아닐까. 이글거리는 태양이 아가페적인 사랑을 퍼부으니 말이다. '너무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숨쉬기조차 힘든 폭염 속에서도 맹목적으로 퍼붓는 사랑, 그것은 출세와 소유, 격정과 독선의 이미지와 왠지 닮은 듯하다. 하지만 달님의 팬인 달맞이꽃은 새색시 마냥 수줍은 에로스적인 사랑이다. 앞에 나서는 법이 없다. 양보와 인내, 조화와 공존 같은 이미지와 왠지 닮아있다. 해님이 이성이라면 달님은 감성에 가까워 보이고, 해님이 현실이라면 달님은 낭만에 가까워보인다. 해님보다는 달님이 왠지 텅 빈 내 가슴에 포근히 내려앉는다. 환영(幻影)적 상념에서 벗어나 다시 의식세계로 돌아오니, 달님은 이미 서녘에 걸려있고 밤이슬은 내 가슴속에 함초롬히 파고든다. ◆ 당선소감 창밖은 초록세상이다. 다가오지 않을 것 같은 초하(初夏)가 막 눈앞에 어른거리며 잡히기 시작했다. 지금껏 내 글쓰기는 감성이 아닌 팩트(事實)속에 갇혀 있었다. 팩트란 주관성과 감수성 쪽이라기보다는 객관성과 논리성의 편이 아니던가. 팩트의 우산 속에서 밖을 쳐다보지도 쳐다봐서도 안 되는 줄 알고 살아온 것 같다. 팩트 밖은 늘 불안하고 위험한 곳으로 여겨왔다. 마치 나의 작은 우주요 나의 따뜻한 안식처로 여기며 오래 그곳에 머물렀다. 학창시절에는 가끔씩 팩트를 넘어서고 싶은 생각들이 나를 꼬드기며 부추긴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수절하는 심정으로 허벅지를 찔렸던 기억이 오롯이 떠오른다. 문학적 DNA를 찾지 않고 걷어찬 셈이다. 그땐 그랬다. 간만에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팩트 밖의 새로운 세상을 봤기 때문이다. 밝고 찬란하다. 좁고 얇은 속박의 틀을 벗어나니 새로운 신세계가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온 몸으로 느껴진다. 이젠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싱그러운 세상, 내 가슴으로 느껴지는 상큼한 세상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누구의 것을 흉내 내고 싶지 않다. 내 느낌과 감성을 그저 글로 토해내고 싶다. 어쭙잖은 글을 예쁜 시선으로 봐준 '매일신문'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인생 2모작에 빛나는 디딤돌이 되어주었으니 말이다.「수필과 지성 」글벗들이 생각난다. 새롭게 펼쳐지는 이 길이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절감한다. 전도양양하게 걸어갈 것이다. 새로운 길을 내고 닦는 심정으로 말이다. 하안거(夏安倨)로 축 쳐진 어깨에 새로운 서광이 비춰짐이 느껴진다. 내 글쓰기도 창밖의 신록처럼 푸르름이 가득 돋아나길 떨리는 가슴으로 기원해본다.

2018-07-25 14:02:28

박용운 씨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당선작 - 박용운 '물의 과외공부'

어둠에 잠긴 청계호수 저녁 한 권을 다 읽은 촉촉한 물의 알갱이들이 호수를 빠져 나온다 소리 없이 주변을 다 암기하는 물안개 호수를 딛고 일어나 허공 한 귀퉁이를 펼친다. 주변을 감싸는 자욱한 물의 필체들 무지개로 날고 싶은 꿈 뼈가 없어 흐느적거리며 산자락을 휘감고 계곡을 오르지만 하루도 살지 못하는 헐렁한 물방울들 수없이 날갯짓을 하여도 하늘에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가만히 걸어오는 아침 어둠을 살펴 조심조심 걷지만 햇살에 녹아내리는 물의 손가락 풀잎의 겉장이 다 젖었다 호수를 빠져나와 날마다 주변을 복습하는 물의 과외공부 또 새벽을 기다린다. 시 – 박용운 '물의 과외공부' - 당선소감 -하늘을 날고 싶은 물고기- 보이지 않는 벽은 뚫기도 어렵다, 만 리길도 아닌 한 길속에 있다는 언어를 잡기위해 손바닥보다 작은 낚시대 가냘픈 손잡이에 숨어있는 언어를 부르며 낚시 끝에 쉽게 모습을 주지 않는 시어를 찾아 멀고 깊은 하늘에 낚시를 던진다. 별빛아래 까만 피를 흘리며 시리도록 눈을 끌고 점점 깊이 빠져들어 낚시 대와 나란히 하얀 바다를 걸어가고 있다, 고기야 차라리 낚시 대로 나를 낚아가라, 진한 커피향의 구수함 같은 연륜이 있고 중후하며 깊이 있는 노년의 향기를 같기 위해 글을 쓰면서 중도에서 좌절의 벼랑을 닥칠 때 마다 도망하고픈 날이 많았지만 안개를 벗은 태양은 더 맑고 찬란하다는 학교 선배님 위로에 용기를 내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길, 점심시간에 걸려온 시니어 문학상 당선 소식은 귀를 자꾸만 후벼봅니다. 혹시 잘못 들었나 하고 멍하게 귀에 남은 여운을 확인하고서 가슴이 뛰기 시작 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글을 쓴다는 것은 끈기와 집념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느끼며 오기에 가까운 투지로 젊은 시니어가 되기 위해 새벽 별빛을 보며 뛰어 온길, 시니어 문학상은 고기가 하늘을 날 것 같습니다.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에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큰상을 주셔서 뒤늦게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이 점점 잃어가는 노후를 뜻있고 보람을 가질 수 있는 글쓰기는 건강과 자부심을 불어넣는 맑은 샘물 같아 다시 한 번 매일신문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용기를 주시며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꾸준히 지도를 해주신 마경덕 선생님, 그리고 좀 더 깊고 세심한 글을 강조하시는 맹문재 교수님과 시는 시어가 쉽고 감동할 수 있어야 하는 새로운 발견이라고 말씀을 늘 해 주시는 공광규 선생님께 진심으로 큰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많이 부족한 저의 글에 빛을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오래토록 남을 수 있는 글을 쓰도록 힘쓰겠습니다.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2018-07-25 13:53:16

신송우 씨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당선작-신송우 '이름 짓기'

이름 짓기 / 신송우 며느리가 임신하였다는 기쁜 소식이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였다. 며느리가 빙판길에서 넘어지면서 한 차례 실패가 있고 난 뒤라 너무 서두른다고 나무랐다. 내심으로는 손자를 얻는다는 반가움에 좋은 이름을 지어보려고 궁리를 하였다. 본관의 같은 항렬자에 부르기 쉽고 적기 쉬운 것으로 짓기로 하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름을 지으려고 노력하였다. 오래전 N 학교에 도서관을 신축하고 이름을 공모하였다. '한울'이라고 응모를 한 결과 그 이름이 채택되어 현판식을 했다. 그때 특정 종교 신자로부터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중학교 동기생들이 모여 산악회를 조직하고 이름을 지었다. 학교가 자리한 곳이 높은 산이기도 했고 높은 산을 오른다는 뜻으로 고산회(高山會)라고 지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둘레길이나 공원을 산책하는 정도이니 어울리지 않은 명칭이 되고 말았다. 학교 관리자가 되고 운동장 동편에 다목적 건물을 지었다. 개관을 앞두고 이름을 공모하였다. 고심 끝에 제출한'미래관'이 채택되었다. 그곳을 가끔 지나가다 현판을 보며 학생들이 저마다 미래의 꿈을 갖고, 가꾸어 간다고 여기니 가슴이 뿌듯하였다. 퇴직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하여 파크골프를 배웠다. 클럽에 가입하고 첫 모임을 했다. 임원에 선정되지 않았으나 클럽을 상징하는 이름을 '한마음'이라고 정하였다. 골프 회동 시 가끔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우리 클럽 이름이 뭐냐고 들먹이면 이내 수그러들기도 한다. 내 이름에는 항렬자 외에 소나무 송자가 들어간다. 백부님께서 나무 목(木)에 귀족의 작위를 일컫는 공(公)을 합하여 만든 글자로 지었단다. 한학을 공부한 대구의 K 교육장은 나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란다. 그때마다 백부님에게 감사했다. 그렇지만 내 이름을 소개할 때 제대로 듣거나 쓰는 사람은 별로 없어 아쉬움이 있다. 어릴 때 동네 여자 이름 끝 자가 대부분 숙, 순, 옥, 자이었다. 그네들이 시집을 가더니 고상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나는'보람','아라'등으로 이름을 지었다. 우리 반 출석부를 작성하다 깜작 놀랐다. 이름이'아라'인데 하필이면 성이 박씨가 아닌가. 그가 어른이 되었을 때 놀림감이 될까 염려가 되었다. 학생 어머니와 의논하여 개명 절차를 밟아 주었다. 그 학생의 어머니가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 이름을 족보의 항렬자에 맞게 지었다. 가운데 한 글자만 짓다 보니 쉽사리 해결되었다. 딸 이름 짓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부르기 쉽고 쓰기 쉬운 이름으로 지었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 때의 일이다. 딸은 자기 반에 같은 이름이 셋이나 있다며 몇 날을 뽀로통했다. 시집을 가서 딸이 태어나자 직접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자, 아들은 연일 독촉을 하였다. 지금까지 여러 이름을 짓는데 자부심을 가졌다. 막상 내 손자 이름을 짓는 일에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평소에 본인의 사주와 맞는 이름에 복을 더하기 위하여 짓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너희 부부가 의논하여 짓든지 아니면 철학관을 방문하여 상담하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아들은 할아버지가 지어야 한다며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출산일은 수도꼭지 틀어 놓은 양동이에 물이 차오르듯 다가오는데 그럴듯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 중에는 이름을 이태나 늦게 지어 두 살이나 적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짓겠다고 서점에 가서 작명에 관한 책을 모두 샀다. 산책을 하나하나 정독을 해봐도 기준이 제각각이었다. 읽은 책 내용의 공통점을 나름대로 정리하였다. 먼저 본관에 돌림자가 같은 훌륭한 사람을 찾아보았다. 고심 끝에 선대에 훌륭하신 분의 이름으로 내정하고 여러 사람에게 자문했다.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드디어 손자의 이름을 '신채호'라고 지었다. 아들과 며느리를 집으로 불러 앉혔다.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차근차근 설명해주면서 그분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훌륭하게 키우라고 당부하였다. 아들과 며느리가 마주보더니 이내 얼굴이 보름달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았다. 손자가 자라서 반드시 이름값을 하리라 기대해 본다. ◆당선 소감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에 당선 소식을 접했다.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던 터라 지하철 바퀴 구르는 소리보다 더 가슴에서 쿵쾅 소리가 나는 듯 했다. 중학교 때였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내 기행문이 교내 방송으로 나갔다. 그때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문학도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누구나 꿈을 꾼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문학도의 꿈을 접고 현실에 충실해야만 하였다. 퇴직을 앞두고 고향 가는 길에 동생이 "형님! 퇴직하면 무엇 하며 지내시렵니까?" 그동안 학교 일에 전념하며 지내던 터라 "이제 좀 쉬어야지" 통상적인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그때부터 퇴직 후에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세상을 등질 때까지 행복한 삶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 용기 내어 늦깎이로 문학에 발을 들여놓았다. 문학아카데미 개강식 날,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부분 나보다는 젊은 사람들이라 놀라며 머뭇거리다 겨우 용기를 내어 뒷자리에 앉았다. 문학 분야에 초보인 나는 그들에게 뒤질세라 강의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 문학에서 나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안전한 레일 위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지하철과 같은 삶이었다면, 이제는 버스를 타고 부대끼며 전후, 좌우, 사방을 두루 살피면서 쉬지 않고 나아가리라. 끝으로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과 매일신문사에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글쓰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를 아껴주신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여기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2018-07-25 13:53:03

류재홍 씨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수필 당선작-류재홍 '지심도 동백'

지심도 동백 / 류 재 홍 불현듯 눈을 떴습니다. 시계가 네 시를 막 지나고 있습니다.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하다 결국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직 깜깜합니다. 창문을 열려다 밀려오는 바람에 놀라 얼른 닫고 맙니다. 봄이라지만, 아직은 바람이 차갑습니다. 양팔을 벌려가며 스트레칭을 합니다. 어떤 이는 글쓰기로 새벽을 밀어내고 누구는 독서로 하루를 연다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몸부터 풀어야 합니다. 한 번 망가진 몸은 좀체 돌아오지 않아서 어르고 달래가며 쓸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 동반으로 지심도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낮부터 따뜻할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남편이 봄옷을 꺼냅니다. 조금 이른 게 아닌가 싶지만, 모른 체했습니다. 일찌감치 세탁해서 넣어둔 겨울옷을 꺼내기도 싫었거니와, 추운 것보다 더운 걸 더 못 견디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남편은 집을 나서자마자 어깨를 웅크립니다. 차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버스 안을 아무리 훈훈하게 해 놓아도 자꾸만 웅숭그립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는 쉼 없이 달려 거가대교 휴게소에 다다랐습니다. 모두 전망대로 올라간 틈을 타 휴게소에 있는 옷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오리털 조끼를 본 남편이 반색하며 입어봅니다. 시중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르고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가 조금은 낯설어 보입니다.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더니, 나이는 못 속이나 봅니다. 지심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하늘에서 본 섬 모양이 마음 심(心)을 닮아서 지심도라 한다는데 마음에 와닿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이름인 동백섬이 더 정감 있게 다가옵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도 동백이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이 왔는지 섬은 사람들로 만원입니다. 모두 봄바람에 신명이 나 있습니다. 우리도 콧노래를 부르며 둘레 길을 올랐습니다. 섬 전체를 둘러보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니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작년 이맘때 보았던 사량도 동백이 생각납니다. 사량도에는 온갖 종류의 봄꽃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곳을 지나다 무엇에 끌린 듯 멈춰 섰습니다. 나무도 땅도 온통 검붉게 물들어 있는 게 묘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수많은 동백꽃이 한데 어우러져 아우라를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달렸거나 누웠거나 한결같은 색이었는데, 조석으로 변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 같기도 해 섬뜩함마저 들었습니다. 이곳에서도 그런 동백꽃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렬한 힘으로 나를 잡아당기는 꽃을 볼 수도 있을 거야. 여기는 말 그대로 동백섬이 아닌가. 마음은 벌써 부풀어 오른 풍선입니다. 둘레길 초입에 조그만 카페가 보입니다. 많은 이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이 있어 나도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한 무리의 붉은 꽃이 하트 모양으로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카페주인이 손님을 끌려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아무려면 이것뿐일까. 인위적인 것에 코웃음 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군데군데 동백꽃은 피어있었습니다. 땅에는 더 많은 꽃이 서로를 껴안고 누워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붉은빛도 분홍도 아닌 희멀건 색은 내 마음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비수처럼 꽂히는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허망했습니다. "날씨 탓인가 아니면 끝물이라 그런가, 꽃이 왜 이래." 지나가는 사람들도 투덜거렸습니다. 맛도 멋도 잃어버려 휘적휘적 걷기만 했습니다.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하트 모양의 동백꽃 앞에 섰습니다. 아직도 선홍색 그대로 환합니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지막하고 여린 아기 동백이 몇 개의 꽃을 달고 바람에 하늘거립니다.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지심도 동백은 수백 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라고 말한 것을. 이곳은 원래 국방부 소유의 땅이라 오래된 나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늙을 대로 늙은 몸에서 청춘의 힘을 맛보려 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새삼 지나온 산을 뒤돌아봅니다. 장대한 거목들이 손에 손을 잡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꽃은 그저 꽃일 뿐인데 미우니 고우니 하며 호들갑 떨게 무어냐며 일갈하는 것 같습니다. 희미하거나 선명하거나 다 같은 동백꽃이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당선 소감 수필 밭에 이름을 올린 지 내년이면 십 년입니다. 돌이켜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 동안 해 놓은 게 별로 없습니다. 작가다운 프로 근성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아예 손 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치열하게 매달리지도 못했으니까요. 몸이 따라주지 못한 점도 있겠지만, 타성에 젖어버린 마음 탓이 더 크리라 봅니다. 마냥 주저앉고 싶던 차에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좀 망설였습니다. 내 주제에 무슨, 자괴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때 책 한 권 내겠다며 덤벼들었던 '책 쓰기 포럼'의 열정이 떠올랐고, 다시금 그 맛을 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밑바닥까지 내려간 정신력을 끌어올릴 무언가가 절실했다고 봐야 더 옳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며칠을 글과 씨름했습니다. 덕분에 일어설 힘을 얻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수필다운 글에 매진하라는 채찍으로 여기겠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 보렵니다. 내 안의 틀을 깨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 꿈이 한낱 욕심으로 끝나더라도 너그럽게 봐 주십사 미리 부탁드립니다. 내 글의 근간이 되어준 가족과,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뭉친 여세주 교수님을 비롯한 수요반 문우들께 이 공을 돌립니다. 늘 아껴주시는 달구벌수필 선생님과도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시니어 문학상'을 제정한 매일신문사에 경의를 표합니다.

2018-07-25 13:42:00

민윤숙 씨.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당선작 - 민윤숙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창이 큰 찻집에서 가스등 마주하고 차를 마신다. 창 밖에는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다 하지 못한 사랑 녹색 등 호롱 속에 가두어 놓고 여인은, 짐짓 아무 일도 없는 듯 단단한 미소로 창가에 비켜 앉아 있다. 시 – 민윤숙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 당선소감 68년 전, 우리들은 6.25전쟁으로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했었다. 학생들은 거주지에 속한 학교에 편입되었다. 나는 구덕산 밑 부산여중으로 갔다. 전국에서 모여든 학생을 다 수용하기에는 교실이 턱도 없이 부족했다. 천막으로 교실을 짓고 피난 학생들은 천막에서 수업을 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무릎 위에 책을 놓고 수업을 했다. 얼마 후 당국에서는 부산으로 피난 온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학교를 시작하라고 했다. 우리 피난 학생들은 모두 본교로 돌아갔다. 하지만 30~40평, 일본식 건물에 전교생이 다 들어가야 하니 비좁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집은 집대로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살았으니 그 답답함은 다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진해로 소풍을 갔고, 답답했던 모든 것을 다 털어내고 마냥 즐거워서 학교로 돌아왔고, 소풍 기행문을 썼다.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다 모인 자리에서 최우수작품 낭송이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작품을 또박또박 읽어나가며 그 때, 내 마음에 자긍심을 심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때, 문학에 대한 열망의 씨앗이 심겨지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그 보다 앞서 6.25전쟁이 나기 전,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때는 좌익 우익이 딱 갈라진 시대가 아니었다. 프로레타리아의 이상론에 심취되어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그 이론에 매료되어 있던 사람들도 많은 때였었다. 당국과 학교에서는 반공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반공 표어를 지어 오라고 자주 숙제를 내 주었다. 하얀 칼라에 귀 밑, 1cm의 머리를 찰랑 거리면서, 나는 당당하게 학교 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 중앙 맞은편에 "무궁화를 좀 먹는 붉은 벌래 없애자"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아니 저건 내가 써서 낸 내 표어잖아' 그 순간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붓글씨 앞에서 나는 감격하여 경직된 모습으로 한 참을 서 있었다. 그 감격은 아침마다, 현관을 들어설 때마다 더 해 갔었다. 아마도 정말 내게 씨앗이 심겨진 때는 그 때가 아닌가 싶다. 진해 소풍 기행문 사건은 그 씨앗이 발아된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서울로 환도한 나는 그 싹을 꽃 피우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많은 형제에 맏딸인 나는 대학 국문과에 합격은 했으나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바로 위에 오빠가 의용군에 갔다, 온 관계로 대학 입학이 늦어졌다. 그러므로 나와 같은 해에 대학을 가게 되었고, 내가 양보를 해야 했고, 밑에 동생이 다섯 명이나 있으니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집안 형편이었다. 일찍 결혼을 했다. 아이 셋을 낳고 기르느라 작가의 꿈은 꾸지도 못했고, 또 남편 사후, 남편 사업을 대신 하느라 문학에 대한 열망은 접어 두었었다. 회사 일이 어는 정도 안정 되자, 늦은 나이임에도 공부를 시작했다. 문화 쎈타에서 시 창작 수업을 듣고, 수필반에서 수필을 쓰고, 드디어 학교로 갔다. 중앙 대학교 문예 창작과에서 육년 동안 단편을 썼다. 교수님이 이번에는 장편을 한 번 써 보자고 했다. 장편 첫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가장 감명 깊은 장면, 이렇게 세 장을 써오라고 했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썼다. 다음 시간, 선생님은 많은 작품 중 소설이 될 만한 작품은 내 작품 하나뿐이라고 했다. 나는 그 날부터 2년에 걸쳐 장편을 썼다.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고무되어 용기를 얻고, 힘을 내어 열심히 썼다. 70이 넘은 나이에 밤을 새우면서 썼다. 쓰면서 선생님과 문우들의 합평을 토대로 개작을 해 가면서 썼다. 그리고 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하기를 아홉 번째, 제 7회 혼 불 문학상 응모 전에 응모 했다. 핸드폰 문자에 혼불 문학상에서 문자가 왔다. 혼불에서? 혼불에서? 이것은 분명 보통 일이 아니다. 다급한 마음에 손이 벌벌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려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다. 힘겹게 열어 본 화면에는 '혼불 문학상 수상자 발표' 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내게 이런 문자가? 내게? 눈물이 앞을 가려 화면을 볼 수가 없다. 잠시 진정하고 다시 열어보았다. '282명 응모자 중,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예선 17편 안에 들었다' 고 한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내가 대가들의 인정을 받았다. 이만하면 족하다. 그런데 또 매경 시니어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논픽션과 시, 두 부문에서 상을 받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더 열심히 쓸 것이다. 2013년도 노벨 문학상, 여성 수상자, 앨리스 먼로도 나와 같은 나이인 83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도 있다. 하면 된다!!! 하면 된다!!!

2018-07-25 13:25:54

김현숙 씨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김현숙 '내 영혼의 까치발'

내 영혼의 까치발 / 김현숙 쉰의 중반을 넘던 때는 꽁꽁 동여맸던 허리띠를 잠시 풀어놓고 싶었다. 여유와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지만 그마저도 사치였을까.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내 목숨은 갑자기 벼랑으로 추락했다. 나는 호소할 틈도 없이 뉘누리는 큰 입을 벌리고 날 향해 달려들었다. "대장암입니다. 위치도 몹시 나쁜, 횡행 결장암입니다." 눈을 감았다. 그때 바람이 불었던가. 눈앞에 있던 창이 흔들리고 나무가 흔들리고 사람들 옷자락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긴장으로 손에 땀이 흥건했다. 눈을 떴을 때 컴퓨터 화면에는 내 몸의 일부인 내장 부위가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둥근 통로를 막고 있는 대롱들, 피고름이 엉겨 붙은 붉은 형체를 나는 무심히 바라보았다. "영상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3기로 추정되는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됐다면 수술도 불가능합니다." 그 순간, 날 붙잡고 있던 어떤 끈이 툭,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편치 않았던 지난날 삶의 조각들이 물거품처럼 바위에 산산이 부서졌다.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은 수시로 날 향해 날아들었다. 어느 날, 남편의 폭력과 인권유린에 길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내 존재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자유를 찾게 했다. 하지만 자유에 대한 대가는 처절했다. 거기엔 절망이란 단어가 찍혀 있었다. 대장 내시경 검사 전날, 무엇에 이끌리듯 나는 도깨비 시장으로 향했다. 깊은 어둠 속을 몇 시간째 정신없이 헤맸는지 모른다. 걸음을 멈추고 보니 내 손에는 겨우 몇 가지 찬거리가 들려 있었다. 오래 살았던 만큼 많은 추억이 스며있는 동네였다. 낡은 집들이 사라진 곳에 새로운 빌라가 들어서고 있었다. 골목을 돌아 나오다 폐가를 만났다. 불에 탄 듯 폐가는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다. 텃밭에 타다 남은 개나리 가지 앞에서 나는 서성였다. 손을 뻗어 개나리 가지를 쓸어내리는데 가지가 내 손을 꼭 붙들었다. 어차피 폐가와 함께 사라질 생명에 대한 애착이었을까. 난 무작정 개나리 몇 뿌리를 파헤쳐 까만 봉지에 주섬주섬 담았다. 검게 그을렸지만 가지 끝은 마치 사위어가는 내 모습 같아 신들린 듯 창가 화분에 심었다. 대장암 선고를 받던 날은 한숨도 못 자고 뜬눈으로 뒤척였다. 겨우 새벽녘에 잠이 들 무렵, 독서실에서 돌아온 아들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요즘 암은 웬만하면 다 치료가 된대요. 아무도 엄마를 못 데려가게 수술실 밖에서 내가 지킬게요. 그렇게 큰소리치던 아들은 겨우 대학생일 뿐이었다. 수술 전날 아들은 쪽 침대에서 노트북에 코를 박고 졸고 있었다. 검색창에는'대장암'이란 글씨가 떠올라 있었다.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신에게 매달렸던 순간에 아들은 훌쩍 커버린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아들은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병은 그렇게 우리에게 각자의 길을 알려주었다. "지금부터 마취제가 들어갑니다. 천천히 하나, 둘, 셋을 세어보세요."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내 의식은 서서히 무의식으로 이동했다. 그때 온몸을 파고드는 경쾌한 리듬이 있었다. 급박한 수술실 안에 울려 퍼지는 요한슈트라우스의'봄의 소리 왈츠'는 무엇을 의미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그건 내가 꼭 붙잡아야 할 삶의 끈이었던 것도 같다. 얼마쯤 지났을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온몸에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지독한 한기와 함께 통증이 몰려왔다. 아들이 덮어준 푸른 담요 한 장의 온기로 나는 죽음과 싸웠다. 아들은 내게 온기였고, 아들에게 난 울타리였다. 수술 후 회복 기간은 죽음과 맞닥뜨린 후 찾은 또 다른 평안이었다. 비로소 영혼의 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창가에 심어 둔 개나리도 겨울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얼굴을 가까이 대자 파릇한 숨이 느껴졌다. "피~움!!" 한밤중 어디선가 새털같이 가냘픈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난 무심코 창문을 열어보았다. 어둠 속에서 노랗게 반짝이는 등불을, 부러질 듯 깡마른 시커먼 나뭇가지 끝에 생명의 환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생사를 넘나들던 시간이 그 작은 꽃잎에 맺혀 있음을 알았다. 십 년이 지났다. 해마다 개나리를 보면, 아니 봄기운이 느껴지면 가슴이 뛴다. 마취 직전, 수술실 안에 흐르던 요한 슈트라우스의'봄의 소리 왈츠' 그것은 죽음의 문턱에서 서성이던 내 영혼의 까치발이었다. ◆당선 소감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둡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비틀대다 상처입고 주저앉기도 했습니다. 빛이라곤 없는 어둠속은 깊은 수렁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을 때 어떤 외로움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만 멈춰서도 난 혼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한 발짝 한 발짝, 어둠의 속살을 밟고 가느다란 빛을 찾아 손을 내밀었습니다. 빛은 조금씩 환하게 바뀌었고 어둠은 어느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메말라 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 지금 우리 조선은 이렇게 어두컴컴한 삶 속에 놓여 있습니다. 제발 저에게 밝은 학문의 길을 열어 주셔서 이 나라를 학문의 등불로 밝히게 해주세요." 문득 하란사가 이화학당에 입학할 때 프라이 교장에게 간곡히 부르짖었던 절규가 생각났습니다. 살아있다는 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을 가졌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수필 은 대장암 선고를 받았을 때의 절망을 그렸습니다. 그때 제게 세상은 온통 암흑이었습니다. 외로움이 오히려 친구였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졌던 이들도 죽음을 예측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습니다. 세상 눈빛이 모두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오직 아들만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함께 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형식적인 위로를 앞세우는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홀로 방황하던 약한 영혼은 죽음의 문턱에서 필사적으로 까치발을 들고 세상과 맞섰습니다. 아무도 제게 문학이 천명(天命)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고독한 글쓰기였지만 손에서 놓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매달렸습니다. 우연히 방송대 선배인 장미숙 작가와의 만남에서 저는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웅크리고 있던 제 의식이 졸탁(啐啄)으로 깨어지던 날. 저를 가두었던 두려움도 깨졌습니다. 인간에 대한 진실한 사랑만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당선작으로 올려주신 매일신문 관계자분들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고개 숙입니다. 예순이 훨씬 넘은 나이는 글쓰기에 장애가 될 줄 알았는데 그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껍질을 벗고 나온 애벌레의 마음으로 묵묵히 수필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07-25 12:02:30

김철순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김철순 '매화 향기를 배다'

매화 향기를 배다 / 김철순 베개를 밴다. 수면에 좋다고 해서 만든 매실베개다. 딱딱하면서도 안정된 촉감이 목 언저리에 전해온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다글다글 구르는 소리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약간 거북했지만 길들이니 이제 솜을 채운 베개보다 편안하다. 고향 집 마당에는 매화나무가 있었다. 십여 년 자란 나무는 함박눈에도 혹독한 추위에도 끄떡없었다. 겨울 삭풍에 서 있는 매화나무는 움츠려 있지만은 않았다. 한 해 동안 꽃 피우고 열매 맺느라 굽어지고 상처 난 가지는 햇살을 모아 추스르고 다독였다. 연명할 만큼의 물만 빨아올리며 삼동을 건너온 매화나무는 눈보라 속에서 향기를 머금으면 그 자태가 선연했다. 꽃샘바람까지 이겨내고 꽃이 만발하면 마당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매화나무는 철철이 색다른 풍경을 그렸다. 꽃 진자리에 매실이 열렸다. 매실은 이가 시리도록 상큼하고 붉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다. 매실은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고 갈증이 가셨다. 잘 익은 매실은 살구 맛이 났다. 하지가 되면 어머니는 매실을 따서 항아리에 넣었다. 상큼한 향기는 집안에 며칠 동안 머물렀다. 매실청은 배앓이 상비약으로 보관했다. 더부룩한 속을 달래주는 속청이었다. 매실청으로 차를 만들었다. 여름날은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끈하게 몸을 다스렸다. 양념으로 나물 무침과 조림요리에 엿물 대신 넣으면 향긋한 맛이 났다. 백일 동안 숙성된 매실 향은 매화 향보다 진했다. 나이든 매화나무는 곡선이 부드럽다. 이른 봄 묵은 가지에 매화 한두 송이 툭툭 터지면 고요한 선율이 흐른다. 꽃이 지면 그 자리가 허전해질까 봐 새순이 금방 돋아 어느새 무성해진다. 꽃이 피어 열매 맺기까지 매화나무의 절정기를 지나면서 휘어지고 부드러워져 그 모양새도 낮게 갖추어진다. 산고를 거친 여인의 완숙한 매력이듯. 매실 속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다. 한여름 번개와 천둥의 놀람이 새겨지고. 나무에 둥지를 튼 참새의 지저귐과 곤줄박이의 울음도 들어있다. 매실 알알이 겨울의 인내와 봄의 정취와 여름의 번성도 들어있으리라. 씨앗 한 알을 들여다보면 점점이 박힌 숨구멍이 있다. 바람, 이슬, 눈, 비, 까지 마신 흔적이다. 단단한 껍데기로 싸고 있는 씨앗은 겹겹이 주름이 잡힌 입을 꽉 오므리고 있다. 그 속에는 생명 하나가 잉태되어 있다. 한 알의 씨앗이 자라 세상을 푸르고 생기롭게 한다. 매실을 모아 베개를 만든다. 육즙을 우려낸 말캉해진 매실은 푹 삶아내어 대소쿠리에 박박 문질러 육질을 벗겨낸다. 그러고는 여름 볕에 널어 이리저리 굴린다. 바싹 말린 씨앗은 눈부시도록 뽀얗게 또록또록해진다. 씨앗의 뾰족한 침은 무딘 칼로 다듬으면 동글동글하게 얌전해진다. 씨앗을 베개 속통에 넣으면 매실베개가 된다. 매실베개를 흔들면 딸각거리는 소리가 정겹다. 꿈같은 신혼, 원앙금침 속에는 신랑과 내가 머리를 뉘이고도 남을 구봉침 베개가 들어있었다. 양 베갯모에는 암수 봉황 한 쌍과 새끼 일곱 마리가 명주실로 수 놓였다. 부귀와 다복 그리고 장수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문양이었다. 그 기억의 집합이 내 가슴속에 진한 매화 향기로 남아있다. 친정어머니는 신랑과 다투더라도 잠은 꼭 한 베개를 배고 자라고 당부했다. 서로 생각의 높이를 같이하라는 깊은 마음이었으리라. 중매로 만나 낯가림도 있었지만 한 베개에 머리를 뉘이며 정이 들었다. 불같은 남편과 물 같은 나는 베갯머리에서 밀고 당기며 서로를 맞추어갔다. 어머니는 베개를 꿈을 꾸는 자리라고 함부로 밟거나 던지지도 말라고 했다. 살면서 늘 꿈을 꾸었다. 매화나무가 이름다이 꽃을 피우듯 예술을 향한 소망들이 자꾸만 돋아났다. 그것은 내 삶을 지탱하는 줄기였기에 잘 가꾸고 싶었다. 하지만 팍팍한 현실 앞에서 자꾸만 시들어갔다. 삶이 나아지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나는 지천명 고개를 훌쩍 넘고 있었다. 틈틈이 글공부를 했다. 못다 읽은 책을 읽으며 감성을 가다듬었다. 펜을 들고 써내려갔다. 서툴지만 한 줄기 두 줄기 써내려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열매도 맺었다. 자랑거리는 아니라도 가슴에 영근 알맹이들이 지금은 밀알이 되어 또 다른 발아를 꿈꾼다. 다음 해에 싹 틔울 매실 씨앗처럼. 어언 수많은 계절을 순환했다. 따뜻한 봄날인가 하면 어느새 폭염의 여름이고 서늘한 가을인가 하면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그 숱한 계절을 지나오는 동안 나는 얼마나 향기롭게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은 나무로 성장했을까. 가끔 고향 집에 들러 매화나무를 볼 때마다 내 삶의 향기를 생각한다. 잘 익은 삶에는 발효된 희로애락이 들어있다. 인내, 눈물, 슬픔, 외로움 같은 것들은 나를 단단하게 했고 그 안에는 물과 바람과 하늘과 내가 사는 세상의 모든 소리까지 들어있다. 매실 베개에 머리를 누이면 인생의 사계를 배는 기분이다. ◆당선 소감 동네 솔밭을 들어서는데 당선소식을 받았다. 풋풋한 솔향이 묻어 싱그럽고 흡족한 마음이었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힘을 생기게 한다. 부단한 노력은 아니지만 꾸준히 즐긴 덕분이라 믿고 싶다. 글쓰기에서 멀어지고 싶을 때도 있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허전해졌다, 일상이 되어버린 친구 같은 존재다. 수필을 알고 지내면서 사색을 자주 한다.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남다른 느낌이나 감정,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은 내 감흥을 일으키고 설레게 한다. 그것들이 나를 인내하게 하고 지탱하게 해주는 원천이다. 잘 익은 삶에 발효된 희로애락이 들어있듯이 내게도 그런 성찰이 기다려진다.

2018-07-25 11:54:11

김선중 씨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당선작 - 김선중 '수제 양복점에서'

수제 양복점에서 일생을 행사로 끌고 왔거나 끌고 갔거나 하는 일들로 의복들은 다 헤졌다. 갈수록 허물어지던 누추를 한 벌 정장으로 지탱해왔던 것이다. 수제 양복점에서 양복을 맞췄다. 그 어떤 의식도 없는 무료한 양복 한벌을 맞췄다. 자꾸 색상에서 버려진 듯 또는 신세진 듯 주변의 색과 나는 점점 구별된다. 이것은 철저한 소임인 듯 은폐술이거나 소외의 풍이다. 단추들은 인심이 후하게 바뀌었다. 주머니는 그 어떤 일탈의 비상금도 필요 없음으로 형식적이어도 무방하다. 등판은 여분의 치수를 조금 앞쪽으로 구부려야 할 것이다. 그에 맞춰 어깨는 더 이상의 상승의 힘을 주문하지 않기로 한다. 왼쪽 젖 가슴 위의 견장들, 이젠 흙냄새 좀 맡으라고 바지통을 널찍하게 잡았다. 잘 삭힌 몸, 녹이 많이 슨 몸 가봉(假縫)이 끝나고 잘 맞춤된 옷은 관(棺)을 닮았다. 당선인 소감 - 폐정(廢井)이 될 때 까지 우물을 파려면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말을 듣고 한 우물을 파는데 반세기 동안 삽질을 하였지만 늘 푸석거린 먼지 뿐이었다. 내가 파는 우물은 원래 물이 없고 이렇게 먼지만 나는 곳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지내 왔다. 그래도 한 우물을 파는 일을 시지프스의 산을 오르는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해 왔다. 그동안 갈등이 많았다. 괜히 헛고생하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고, 여기 저기에서 다른 사람이 보이는 눈총이 곱지 않아 자포자기하는 날도 많았다. 그래도 다음 날 눈을 뜨면 삽을 들고 마당으로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오늘도 마당으로 나가서 삽질을 하는데 물기가 보인 것이었다. 마중물이 슬쩍 비친 것이다.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닌가 어리둥절하였다. 이제까지 먼지만 나는 곳을 파왔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두렵기도 하였다. 그동안 마중물 없는 삽질의 일들이 아스라이 머리에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참 고생이 많았다, 하는 마음도 들었다. 어떻게 하든 이제 문턱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내 마음 속에 그동안의 앙금과 응어리를 풀어 주는 오솔길의 입구에 드는 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면서 먼길을 보지 못한 우(遇)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아픈 마음을 같이 아파해주고 보듬어 주는 곡비(哭婢)의 길로 이길을 가야 한다는 순수한 마음의 길이 옳을 것 같아서이다. 여하튼 지난 일들은 나의 앞 여정에 밑거름의 역할을 하면서 더 고된 삽질의 일들이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첫 마중물이어서 구정물도 많고 엉성한 삽자국이 많이 있음에도 선택을 해주신 심사위원님께 넙죽 큰절을 올리고 싶다. 그리고, 옆에서 뒤에서 때로는 앞에서 지켜 봐 주신 분들께도 같은 절을 올리고 싶다. 늘 투덜거리지만 뒤로는 밀어 준 아내, 아빠는 영원한 우상이라고 믿는 큰딸 선영 작은 딸 선경 아들 선범이 모두가 나의 디딤돌이었다. 때로는 구박을 하고 눈총을 주고 무시를 할 때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었는데 오늘부로 그런 마음들을 모두 씻어 버리고 그런 것이 모두 나의 밑거름이었다 정말 감사하다라고 다시 절을 올리고 싶다. 이제는 이 과정은 그냥 작은 통과의례이다. 처음에 먹었던 정말 먼지만 있는 우물파기의 마음을 한 순간도 버리지 않고 나의 우물파기에 진력할 일만 남았다. 그리고, 파여진 우물을 늘 관리하고 손질을 하면서 항상 맑은 물이 넘치는 우물이 되도록 노력할 일만 남았다. 이제 시작이다. 조금은 늦은 나이지만 그 때가 제일 빠른 때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말 일찍 시작한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삽질을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너무 늦어버린 때에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말할 것이다. 마지막 그날까지 나의 삽을 놓지 않을 명분이 생겼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하고 되물을 것이다. 아마 내가 삽을 놓는 날은 세상을 바꾸어 타는 날일 것이다. 그때 가서는, 내가 팠던 우물은 폐정이 될 것이다. 그런 길을 가기 위해서는 서둘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먼 길을 갈 수 있는 기초공사를 차근차근 잘하여 아무리 험하고 어려운 길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게 하여 탄탄한 삽질 길이 되게 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마중물 역할을 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그분들의 바램에 무색하지 않는 삽질 작가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2018-07-25 11:50:25

김정래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김정래 '고급 노숙자'

고급 노숙자 / 김정래 어느 늦은 봄날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 떠돌이 개 한마리가 들어왔다. 개는 머리털이 텁수룩한 것이 앞으로 길게 내려 한 쪽 눈을 가렸고 크기는 어미 고양이만 했다. 몇 날 며칠을 굶었는지 배는 등가죽에 붙었고 바싹 마르고 꾀죄죄한 것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평소에 개를 좋아하는 아내는 불쌍하다면서 밥을 국에 말아다 주었다. 개는 멀찍이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면서 가까이 오지 않고 사람을 몹시 경계하였다. 아내는 개 밥그릇을 개가 보는 한쪽에다 놓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얼마 후 나가보니 개는 밥그릇에 입도 대지 않았다. 주변을 의식하여 밥그릇에 가까이 오지 않는 것으로 짐작하고 그냥 놓아두고 하룻밤을 지났지만 그대로였다. 아내는 작전을 달리하여 식구들이 먹다 남은 고깃덩이를 갖다 주었다. 개는 여전히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고기가 담긴 그릇을 두고 자리를 피해주니 설설 닥아 와서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먹기 시작했다. 개는 떠돌이 신세로 여러 날을 굶었음에도 불구하고 굶으면 굶었지 아무 것이나 먹지 않는 입맛은 고급이었다. 아마도 어느 돈푼이나 있는 집에서 귀여움과 사랑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쓰라린 배신을 당하여 쫓겨난 것 같았다. 이웃 주민들도 우유를 갖다 주고 외식하고 남은 고기도 가져다주면서 보살펴 주었다. 잠자리는 정문 가까이 베란다 밑 화단에다 정해놓고 기거하였다. 저층 아파트에, 노년층이 많이 사는 곳이라, 이웃 간에 인심도 그리 박절하지 않았다. 굴러 들어온 개라 신고를 하자는 주민도 있었지만 한 울타리 동거를 싫어하는 이는 없었다. 아내는 우유와 고기를 구해다 주면서 개를 거두는 성의가 보통이 아니었다. 개도 그 정성을 아는지 우리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아파트 출입문 입구에 앉아 기다리다가 꼬리를 흔들면서 주위를 빙빙 돌다가 발딱 뒤집어 누워 네 다리를 흔들면서 재롱을 피웠다. 그리고는 집안까지 따라 들어오려는 것을 억지로 떼어 놓곤 했다. 아내의 신조는 개는 어디까지나 밖에서 키우고 집안에 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 맘을 놓이게 했다. 나는 사실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다 애완견이 진열되어 있는 거리를 지나갈라치면 개 특유의 노리끼한(노리착지근한) 냄새가 비위를 몹시 뒤틀리게 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개에게 고급 천으로 옷을 입혀가지고 안고 다니는 것을 보면 지성으로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개 주둥이에다가 연신 입을 맞추면서 엄마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개를 어르는 것은 꼴불견이다. 한술 더 떠 죽은 개를 화장시켜 납골당에 안치하는데 수백만 원이 드는데 대구에는 화장장이 없어 부산까지 가서 화장을 한다고도 했다. 주변에서 개를 부모형제보다 더 챙기고 정성을 쏟는 사람들을 보면 인간이 누려야할 사랑과 행복을 애완견이 앗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에 개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어머니를 따라 동네 입구에 있는 과수원집에 간적이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마당에 있던 송아지만한 개가 정면으로 뛰어와 달려드는 바람에 엉겁결에 고함을 지르며 뒤로 돌아섰는데 개는 내 어깨위로 확 뛰어올라 머리를 물었다. 개 주인이 빗자루를 들고 쫓아 나와서 개를 후리 쫓지 않았으면 더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개 주인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개털을 잘라 주는 것을 볶아서 기름에 개 가지고 물린 상처에 발랐지만 별 효험도 없이 쉽게 아물지 않아 한 동안 고생을 했다. 그로부터 개를 만나면 물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 피하게 되었다. 아내가 개를 너무 좋아해서 오래전 단독 주택에 살적에 개를 키운 적도 있었다. 이웃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 받아서 아내가 바둑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지극정성으로 거두니까 개도 식구들을 잘 따랐다. 다 자랐는데도 고양이 크기만 한 것이 어린아이들과 장난을 치면서 잘 어울려 놀았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걸음으로 마당에 들어서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반가이 맞이하여 무덤덤하게 대해주던 내 마음도 돌려놓았다. 온 식구들의 귀여움을 재롱으로 보답하여 주던 바둑이가 어느 날 사람을 물 듯 한 표정으로 마당을 정신없이 몇 바퀴 돌더니만 마루 밑 컴컴한 구석에 들어가 나오지를 않는다. 이웃집 할머니가 쥐약을 섞어놓은 음식물을 먹은 것 같았다. 말은 못하고 사경을 해매이고 있는 것이 너무 애처롭고 안타까워 약이라도 먹여 보려고 마루 밑을 들여다보고 손짓으로 불러내어도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짖어 대면서 식구들이 접근을 못하게 했다. 마당에 똥 한번 눈 적이 없는 영리하고 순한 것이 배속에 창자가 녹아 내려가고 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생각하니 내 마음도 녹아 내렸다. 그렇게 가족들의 가슴을 졸이고 애태우던 바둑이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개에게는 정을 주지 않기로 했다. 베란다 밑에서 노숙하는 것이 안쓰러워서(안슬프서) 이곳저곳 수소문을 해서 아담한 개집을 구해다가 말끔히 청소와 소독을 하여 이부자리까지 깔아서 뒷담벼락 밑에 호텔처럼 마련하여 자리를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밥그릇까지 그 앞에 가져다 놓았지만 개는 안에 들어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개집 안에 입맛 당기는 음식을 차려 놓고 유인을 했지만, 들어가서는 그릇만 비우고 다시 나와 버렸다. 제 의지를 쉽게 바꾸지 않는 주관이 뚜렷한 면모를 가졌다고 할까, 아니면 고집불통이라고나 할까? 끝내 개는 고급 호텔에는 들어갈 생각도 않는다. 그날로부터 아내는 개에게 "고급 노숙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고급노숙자의 입맛은 변함없이 고급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고급노숙자가 때 물을 좀 벗고, 털에는 윤기가 돌 즈음부터 밤에는 가끔씩 "컹컹" 하고 짖기 시작하였다. 풍신에 비해서 목소리는 우렁차고 듣기에 부드러웠다. 제 비위에 거슬리는 것이 지나가면 한 번씩 영역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늦잠으로 일관하던 나도 고급노숙자가 둥지를 틀고 부터는 밤새 안녕을 문안하는 아침이 잦았다. 낙엽이 한잎 두잎 쌓여 가을이 깊어 가던 날, 아침이 되어도 고급노숙자가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주변과 골목길을 둘러보아도 흔적도 없고, 외출을 했나 해서 저녁까지 기다려 보았지만 그 날 이후로는 영영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 올 때면 어디에 있다가 조르르 달려와서 재롱을 피우던 것이 보이지 않으니 가슴 한 구석이 허전했다. "고급 노숙자"는 첫 만남부터 내안에 잠재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자아내게 했는데, 떠나면서는 애잔한 그리움을 남기는구나! 몇 달 동안이나마 우리들 가슴에 따스한 정을 일깨워 준 "고급 노숙자"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더 따사롭게 보살펴 주는 새 주인을 만나 귀여움을 받고 있을까? 아니면 굶주리고 지친 모습으로 어느 골목을 해매고 있지나 않을까? 우연히 닥아 와서 홀연히 가버린 "고급노숙자"의 재롱이 못내 애련한 흔적으로 아롱아롱 겹쳐진다. ◆당선 소감 당선 전화를 받고 가슴 두근거리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30여년의 공직을 퇴직하고 제2막의 인생을 보람 있게 보내기 위해 탁구와 싸이클로 건강과 취미생활을 겸한 활동을 하면서 향교에 나가 인문학 고전 공부에 취미를 붙여 심신이 여유로운 윤택한 삶을 누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삶을 반추하고 그 자취를 기록해 보려고 뒤늦게 수필에 입문 하였습니다. 평소에 글 읽는 것을 좋아 했는데, 생각을 글로 옮겨 보려니 의지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좁은 시각으로 쓴 부족한 제 글을 수상의 반열에 올려 분에 넘치는 영광을 안겨 주신 대구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님들의 노고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이른 장마로 흐린 하늘이 내려 앉아 마음조차 가라 않는 날씨였는데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이 환하게 밝아져서 하늘로 가뿐히 솟아오를 것 같이 상쾌해 지면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또 다른 삶과 사물에 의미를 부여 하였습니다. 원고를 보내고 수상 소식을 기다려 보다가 이건 주제 넘는 욕심임을 깨닫고 혼자 웃어 보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작품이랄 것도 없는 부끄러움이 앞을 가립니다. 지난해에 이어 또 한 번의 수상은 차츰 앞으로 나아가라는 채찍으로 받아 드리고 증진에 노력 하겠습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삶이 녹아있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삶의 가치들이 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가꾸어, 읽는 이의 가슴마다에 공감을 주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글다운 글을 한편이라도 남기고 싶습니다. 글의 완성은 분명 힘들고 어렵지만 그기에 이르는 과정을 소중히 쌓아 보려 다짐해 봅니다. 수필의 길을 걷도록 조리 있고 체계적인 조언과 격려를 하여준 권영철 형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부족한 저를 격려하고 이끌어 주신 한국수필문학관 문우님들과 늘 곁에서 욕망과 번뇌로부터 자제와 자숙을 일깨워준 사랑하는 아내 김창숙을 비롯하여 가족 친지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또한 매일신문의 무궁한 발전과 시니어문학상이 더욱 내실 있게 무게가 실리기를 소망합니다.

2018-07-25 11:45:31

대구문인협회 강문숙 시인 초청 특강

대구문인협회(회장 박방희)는 20일 대구문학관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 강좌로 강문숙 시인 초청 특강을 했다. 이날 행사에는 황인동·김숙이·한규천·이규석·최태준·천영애·방종현 문인 등 60여 명이 함께했다.

2018-07-22 07:17:34

혁명은 변두리 시골 빵집에서 시작된다

[책 체크2] 혁명은 변두리 시골 빵집에서 시작된다/류호성 지음 / 책과 나무 펴냄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사회주의보다 우월한 체제로 인식되었던 자본주의가 자본의 불평등과 불공정성의 면모를 드러내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미래대 교수였던 저자는 경북 청송오지 시골 빵집에서 빵을 굽던 어느날, 와타나베 이타루가 쓴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을 만난 이후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천연균, 발효라는 두 역할을 조화롭게 접목시켜 부패한 우리 사회를 바꾸어 보려는 간절한 소망이 담긴 빵을 굽는다. 자신의 자본주의를 이젠 잊고 살려던 다짐을 접고, 다시 '혁명의 빵'을 만들기로 한 것. 저자는 적은 돈을 받고 사는 서민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할 기회도 없지만, 수백, 수천억씩 버는 재벌들은 더 많이 못 벌어 '억울하다'고 말하는 기막힌 모순을 꼬집는다.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폐단과 역작용, 그리고 정치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혁명적 변화를 위해서 소명의식과 사명감으로 완벽한 형태의 돌덩어리가 다 드러날 때까지 깎아 내어야 한다"며 "이 모든 변화는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212쪽, 1만3천원.

2018-07-18 17:37:04

늦귀

[책 체크1] 늦귀

서상만 지음 / 책만드는집 펴냄 이 시집에는 표제 시 '늦귀'를 비롯한 82편의 시가 담겨 있다. 서 시인은 마음을 움직여 시로 드러내는 과정에 충실한 시인이다. 시와 삶을 분리하지 않는다. 시는 팔순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저자는 시인의 말에서 "나는 절필하지 않으려/지금껏 살아 있다//가물대는/ 저, 노란 불빛/신과의 면회도//팔질(八耊)이 가까우니/겨우, 알 듯도 하여서"라고 말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서 시인의 시는 노경의 청담(淸淡)을 지향한다.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어온 유년의 푸른빛이 노년의 맑음으로 생성하고 있다. 그는 이미 저항과 체념 사이의 노년을 넘어서 유기적인 생명의 흐름을 체화했다. 몸의 질량을 이겨내고 삶과 사물을 민활하게 공감한다. 머무르면서 기다리는 시간은 이제 자신의 것이 되었다"고 평했다. 포항 호미곶 출신인 저자는 1982년 '한국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시간의 사금파리', '그림자를 태우다', '모래알로 울다', '적소'(謫所), '백동나비', '분월포'(芬月浦), '노을 밥상', '사춘'(思春), 동시집으로 '너, 정말 까불래?', '꼬마 파도의 외출', '할아버지, 자꾸자꾸 져줄게요' 등이 있다. 152쪽, 1만원.

2018-07-18 17:36:30

소확행

[책 체크] 소확행/배연국 지음 / 글로세움 펴냄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기분이 드는 상태'를 뜻한다. 흐뭇한 기분을 가지려면 먼저 기쁜 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살면서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소확행의 자세가 필요하다.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는 삶을 말한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집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를 맡는 기분' 등을 행복의 사례로 열거하면서 유행한 말이다. 당신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의 커트라인을 너무 높게 설정한 까닭이다. 커트라인만 낮추어 작은 일상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인다면 행복하지 않은 일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느끼는 소소한 삶의 아름다움,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삶의 자세에 관한 짧지만 힘이 되는 글을 담았다. 나 자신과 가족, 친구, 동료, 나아가 이 세상을 향한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따스하게 채워준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삶에 있어 나는 누구인가를 돌아보게 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구하게 한다. 256쪽, 1만4천원.

2018-07-11 18:19:22

애플은 왜 제품이 아니라...

[책 체크] 애플은 왜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텔링에 집중했을까?/ 염승선 지음 /책들의 정원 펴냄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애플 노트북을 펴 놓고 앉아 있으면 디지털 시대의 크리에이티브 노마드라고 느끼고, 현대카드를 사용하면 돈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문화를 즐기기 위한 가치를 지급하는 문화 향유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그 브랜드의 물건이나 서비스의 사용이 곧 자신을 표현한다고 느낀다. 이러한 현상은 브랜드가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되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브랜드가 출시되지만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그 가치를 알리지 못하고 소비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 특별한 차별점도 없는 제품들로 어떻게 해야 소비자와 소통하는 제3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그 방법이 '브랜드텔링'임을 역설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브랜드텔링(Brand+telling)이란 브랜드와 사람이 마주보고 이야기할 수 없는 한계를 넘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글꼴, 단어, 메시지, 숫자, 공간 등을 활용해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소비자와 소통하는 브랜드텔링 방법을 설명하고, 역사적 사실, 인문학적 사례를 들어가며 브랜드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220쪽, 1만3천원.

2018-07-11 18:17:33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 대구 두류도서관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 대구 두류도서관 공간 부족, 시설 노후화로 개선 요청이 많았던 대구두류도서관!내부를 전면 리모델링해 무인전자식별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대구 공공도서관으로는 최초로 24시간 무인도서반납기가 도입돼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3층 야외휴게실에서는 높은 하늘과 푸르른 나무 사이로 83타워를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새단장한 대구시립두류도서관이 시민들에게 보다 좋은 독서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영상뉴스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매일신문 디지털 시민기자 권영훈 제작

2018-07-11 08:17:35

휴가지에서 읽기 좋은 책 BEST 3

휴가지에서 읽기 좋은 책 3권 ▷글쓰기 좋은 질문 642 ▷언어의 온도 ▷호텔 선인장 이 카드뉴스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매일신문 디지털 시민기자 이미나 제작

2018-07-10 09:41:12

일러스트 전숙경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대상-논픽션]뒤로의 여행②

첫 번째 산 고개를 넘는데 사방이 온통 까맣게 물들고 있었다. 밤마다 돌을 던진다는 늑대들이 이쪽저쪽 숲속에서 나와 앞을 가로막을 것 같았다. 고무신은 어디로 갔는지 맨발에 돌부리가 밟힐 때마다 휘청거렸다. 두 번째 산 고개에 도착하자 까맣게 덧칠을 한 나무들은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길 양쪽에 빽빽이 늘어선 소나무들은 열병식을 치르는 군인들로 변해있었다. 거총을 한 군인들 사이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다리가 움직여 주지 않았다. 울음소리도 목 안에서 맴돌았다. 몽당 빗자루 귀신이 나온다는 뫼 등을 지나다 오금이 저려 결국, 주저 않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꿈을 꾸는 것처럼 호롱불이 다가왔다. 엄마였다. 빤짝이는 별이 보였다. 뒤이은 영상은 고난에 맞선 엄마와 나의 전학증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자식들 잘 먹이고 공부시켜 보겠다는 일념으로 비탈밭을 팔아 부산 달동네 판잣집 방 한 칸을 얻어, 출발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뒷산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한낮을 알리자 엄마는 밭고랑 끝에서 흙을 툭툭 털며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막냇동생을 업고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 오대조 할아버지 뫼 등으로 따라갔다. 엄마는 머리에 두른 누런 무명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바가지에 싸 온 보리밥을 따로 덜어주며 말했다. "큰아버지 큰어머니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라." 보리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학교 졸업 때까지 큰아버지 집에서 지내기로 했지만 동작이 느리고 눈치가 없어 가끔 큰아버지로부터 꾸중을 들어야 했다. 그때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빨리 부산으로 가고 싶었다. 우는 날이 많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기별했다. 데려가 달라고,…… 드디어 육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전학을 가게 되었다. 부산으로 떠나던 날 큰어머니는 책 몇 권을 싼 검정 보자기 매듭 끝에 박 바가지 세 개를 달아 주시며 일렀다. 도회지에선 물바가지가 귀하니 바가지가 깨어지지 않도록 꼭 옆에 붙어있으라고. 담임선생님은 반 친구들을 데리고 여객선 부두까지 나와 교가도 불러주고 잘 가라는 작별인사로 반 친구 한 사람 한 사람 손도 잡도록 해주셨다. 몇몇 친구들은 낯선 곳으로 가는 걱정스러운 내 마음과는 달리 도청 소재지인 부산으로 전학 가는 걸 부러워했다.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돌아가자 통영에서 부산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한 오촌 당숙은 보따리를 잘 지키라는 말을 남기고 길 건너 술집으로 가셨다. 나는 보따리에 앉아 있는 것이 지루했다. 여객선 부두는 사람도 많고 구경거리도 많았다. 주위 구경에 한걸음 한 걸음 빠져있을 즈음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했다. 승선 차례 줄을 서려는 사람들이 한곳으로 몰려 갑자기 부두는 소란스러워졌다. 오촌 당숙이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얼굴에 술기운이 완연한 당숙이 물었다. "보따리 어쨌어?," 보따리가 없었다. 누군가가 가져간 것이 분명했다. 승선표 검사는 시작되고 오촌 당숙은 주위를 살피다 혀를 껄껄 차며 나의 손을 끌고 여객선에 올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보따리 속에는 나의 전학 증명서가 들어 있었다는 걸, 통신시설이 열악한 당시엔 전학증을 잃어버리면 다시 전학증을 발급받아 와야 했다. 하지만 엄마는 엉덩이도 다 얹지 못하는 난전 계단에 올망졸망 채소를 담은 함지박을 놓고 오르내리는 발길에 애원의 눈길을 주며 종일 앉아있었지만 우린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았다. 엄마는 쉬는 날이 없었다. 감기몸살로 몸을 가누기 힘들 때도 쉬면 자리를 빼앗긴다며 그곳을 지켰다. 가끔 엄마는 늦은 저녁 밥상 앞에서 한숨 섞인 넋두리로 나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달리 방도가 없었다. 나는 이침이면 판자로 얼기설기 엮은 대문 안에서 산동네 아이들이 왁자지껄 등교하는 모습을 문틈으로 내다보고 있어야 했다. 삼 개월이 훌쩍 지나고 나뭇잎이 물들기 시작하자 엄마는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난전 계단에 놓아야 할 함지박을 부뚜막에 놓아두고 아침 일찍 여객선을 타고 통영 충렬초등학교로 가셨다. 엄마는 전학증을 발급받아 우리가 잠든 늦은 밤에 돌아오셨다. 나는 부산 남부민 초등학교에서 졸업할 수 있었다. 다음 영상실 앞에서 난 한참 동안 주춤거렸다. 내 운명의 갈림길 이야기였다. 열네 살 때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진학을 못 한 나는 아침 일찍 난전에 장사 가신 엄마 대신 동생들을 돌보고 있을 때였다. 머릿속에 돌덩이가 짓누르는 것 같아 힘겹게 눈을 떴다. 병원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는지 의아했다. 간호사가 이마를 짚으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 적산가옥 지붕에서 떨어진 기왓장에 머리를 맞아 아스팔트 길에 쓰러져 있는 나를 지나던 군인이 업고 병원으로 왔다는 것이었다.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강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막내가 낮잠을 길게 자고 있었다. 갑자기 적산가옥 일 층에 있는 만화방 가게 유리문에 붙은 만화 그림이 보고 싶었다. 그 적산가옥은 삼층으로 다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비가 올 것 같아 빨리 만화 그림을 구경하고 돌아올 욕심에 나는 신작로를 뛰었다. 숨을 몰아쉬며 만화방 유리문 앞에 서서 그림 두 장을 본 것까지가 기억의 끝이었다. 그런데 묘했다. 가만히 눈을 감자 꿈속 같은 기억 한 점이 가물가물 거렸다.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볼 수도 없었지만 웅성거림 속에서 한마디 말이 아침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처럼 귀에 닿아다 멀어지길 반복했다. "역시 군인이 최고네," 일주일이 지났다. 머리 상처도 나아지고 어지럼증도 회복되었으나 왼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며칠 지나면 서서히 나아질 거라며 퇴원을 허락했다. 집에 온 나는 열흘이 지나도록 앉은뱅이였다. 바깥출입이 불가능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난전 계단 귀퉁이를 지켜야 하는 엄마에게 내 다리마저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었다. 엄마는 어느 비 오는 날 나를 업고 수소문해둔 부평동에 있는 침술원을 찾아갔다. 집에서 침술원까지 약 한 시간이 걸렸다. 낡은 우산을 내가 받쳐 들었지만, 엄마와 나는 머리 부분만 빼고 비에 흠뻑 젖었다. 침술원 미닫이문을 밀 던 엄마는 멈칫 안으로 들어서지를 못했다. 꽤 넓은 다다미방엔 배에 대침을 꽂고 누워 있는 환자가 빽빽했다. 그들이 숨을 쉴 때마다 긴 침 머리가 나룻배의 노처럼 끄떡끄떡 거렸다. 두 번째 방의 미닫이문을 밀었다. 그 방에는 더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손에 침을 꽂은 사람, 발에 꽂은 사람, 무릎에 꽂은 사람, 머리에 꽂은 사람, 등등이 저마다 편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 들고, 뻗고, 엎드리고, 기대고, 있었다. 나는 겁이 나 도망치고 싶었다. 엄마는 완력으로 나를 잡아끌며 진료실이 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몇 사람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침술사는 나의 눈에도 혈색이 좋고 풍채가 뛰어난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내 앞 남자환자의 코에 한 뼘이 넘는 긴 침을 밀어 넣곤 침 머리를 비볐다. 남자의 코에서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죽은피'라는 할머니 말대로 피 색깔이 검은색이었다.

2018-07-10 05:00:00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책 체크]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성폭력 폭로 이후 피해자가 겪는 문제, 여성의 입대를 둘러싼 논쟁, 성매매 여성의 소비, 10대 가출 여성의 자기 보호, 걸 그룹을 바라보는 대중의 심리, 10대 여성의 디지털 노동, 저출산 담론의 접근 방식, 이주 여성의 이름 등 다양하다. 글들은 모두 한국 사회의 젠더 정치에 대한 기존 사유 방식과 문제화의 틀 변화를 요구한다. 1장 '성폭력 폭로 이후의 새로운 문제, 피해자화를 넘어'에서 권김현영은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어떻게 인식되었는지 분석한다. 저자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고, 오직 피해자의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는 현실을 비판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고통이 만들어진 상황과 조건을 개선하자고 제안한다. 정희진은 2장 '여성이 군대 가면 평등해질까:신자유주의 시대의 병역과 젠더'에서 성 평등을 병역과 연결하는 남성 중심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밖에 저출산 문제를 인구 위기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정책의 맹점을 드러내는 서정애의 '저출산 담론과 젠더: 여성주의 비판과 재해석' 등 이 책에는 한국의 로컬 페미니즘 연구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236쪽, 1만4천원.

2018-07-04 16:09:29

나도 내 감정과 친해지고 싶다

[ 책 체크] 나도 내 감정과 친해지고 싶다

감정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많다. 또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고 표현하는 사람도 의외로 드물다. 사람은 슬플 수도 있고, 화가 날 수도 있고, 창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누군가로부터 "화가 나도 괜찮아"라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은 없다. 그래서 사람이 화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정작 나 자신이 화나고 슬프고 우울해도 괜찮은지 헷갈린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우리에게 감정은 왜 중요한지, 내 감정은 지금까지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들여다본다. 2~6장에서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상적 감정들인 화·공허함·부끄러움·불안·우울에 대해 들여다본다. 우리에겐 여러 감정들이 있지만 이 책에서 특별히 화·공허·부끄러움·불안·우울로 추린 것은 다른 감정들보다 이 감정들이 더 문제시되기 때문이다. 분명 화가 났는데, 외로운데, 공허한데, 수치스러운데, 죄책감이 느껴지는데, 불안한데, 우울한데 어디다 떳떳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감정들이다. 그런 감정들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7장에서는 사랑이라는 치유법을 제시한다. 296쪽, 1만5천원.

2018-07-04 16:09:15

4차 산업혁명과 인간의 미래

[책 체크]4차 산업혁명과 인간의 미래

많은 부모들은 아이의 진로에 대해 고민한다. 이제는 '진학'이 아닌 '진로'의 시대가 되었기에 단순히 '어떤 학교, 무슨 학과'가 아니라 자녀가 '어떤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세상에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걱정한다. 그러한 고민의 중심에, '4차 산업혁명'이 있다. 이 책은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덕목과 역량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저자가 다보스 포럼을 통해 발표한 21세기 학생에게 필요한 스킬 16가지를 제시하고, 그 세부적인 직업군까지 이야기한다. 저자는 학생들이 이 16가지 스킬을 모두 갖춘 인재가 될 것이 아니라 한 분야에서 남보다 탁월한 인재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미래 인재는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전문가와 소통하고 협력할 줄 아는 능력과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시각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환영받는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파리7대에서 정치사회학 석사학위, 마른 라 발레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204쪽, 1만3천원.

2018-06-27 21:13:18

역사의 역사

[ 책 체크] 역사의 역사/ 유시민 지음 / 돌베개 펴냄

이 책은 역사에 남은 역사서와 역사가, 그 역사가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이 서술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추적한 유시민의 역사 르포르타주다. 저자 역시 서문에서 "독자들이 이 책을 '역사 르포르타주'(reportage·르포)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란다"면서 "르포는 저널리즘(사실 보도), 역사 서술(과거 사건에 대한 이야기), 문예 창작(예술적 감정 표현)을 넘나드는 문학 장르"라고 썼다. 이 책에는 저자가 탐사한 동서양의 역사가 16인과 그들이 쓴 역사서 18권이 담겨 있다. 사마천의 '사기', 이슬람 문명의 발생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귀한 길잡이가 되어준 '역사서설' 등의 역사서를 고대부터 현재까지 시대 순으로 9장으로 나뉘어 구성했고, 각 장에서 때로는 한 명의 역사가와 한 권의 책을, 때론 복수의 역사가와 여러 권을 함께 살펴본다. 저자는 역사가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 속에 스민 메시지와 감정에 공감하는 데 집중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해석하고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는지 살펴보며, 위대한 역사가들이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던 생각과 감정을 듣고 느껴봄으로써 역사가 무엇인지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실마리를 제공한다. 336쪽, 1만6천원.

2018-06-27 21:12:48

김규련 수필문학상 제3회 시상식

김규련수필문학상 운영위원회(회장 정혜옥)는 25일 한국수필문학관(관장 홍억선)에서 제3회 시상식을 개최했다. 정성화 수필가가 수상한 이날 시상식에는 박방희 대구문인협회장, 장호병 전 문협 회장, 허창옥·김상립·손숙희·박기옥·이숙희 수필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2018-06-26 10:26:32

19세기 귀스타프 도레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 중 하나인 '푸른 수염'

[내가 읽은 책]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하성란, 창비, 2002.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는 탁월한 묘사로 '정밀 묘사의 여왕'이란 별명을 가진 작가, 하성란(河成蘭)의 세 번째 작품집의 표제작이다. 11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으로 꼽은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는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을 기반으로 한다. 많은 이본이 있음에도 밝혀지지 않은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가 왜 살해당했는지에 대한 상상을 현대적으로 채워 넣은" 것이 이채롭다. 동화 '푸른 수염'은 '빨간 모자,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로 유명한 샤를 페로가 설화를 바탕으로 지어 1697년에 발표하였다. 프랑스의 한 지역에 사는 잘 생기고 부유한 군주 푸른 수염은 여러 번 결혼했지만 이상하게 아내들이 모두 죽는다. 새로 결혼한 아내에게 모든 방문을 열어도 되지만 지하의 작은 방은 열지 말 것을 경고하며 열쇠 꾸러미를 준다. 원작에서는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아내가 작은 방을 열어 본 것을 안 푸른 수염이 그녀를 죽이려는 순간 오빠들이 달려와 구해 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반면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에서 나는 22살 때 약혼을 파혼하고, 10년 만에 결혼을 하는 32세의 약사이다.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살아오신 아버지가 첫딸 시집 갈 때 오동나무 장롱을 해주려 심은 수령 32년 오동나무를 베어 열두 자짜리 장롱을 만든다. 3개월 알았지만 연애는 1개월도 되지 않은 스물아홉의 제이슨과 19개월 동안의 결혼 생활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구식 면도칼로 매일 수염을 깎아 턱이 푸르스름한 제이슨은 뉴질랜드에서 학교에 노란 스포츠카를 타고 다닌다. 그는 학비와 생활비 같은 돈을 벌어본 적 없다. 몸집은 왜소하지만 성격이 좋은, 학교 후배 챙과는 매일 무슨 연구랍시고 복도 맨 끝 방에서 살다시피 한다. 제이슨은 내게 다 내 맘대로 해도 좋지만, 단 하나 자신의 방에는 오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굳이 궁금해 하지 않다가, 어느 날 새벽 두 시 제이슨의 방문을 열고 만다. "방문을 열어보지 않았다면 우린 아무 일 없었을 거야. 안 그래? 이게 다 네가 자초한 거야. 알아?" 판도라의 상자와 아담과 이브, 그리스 신화의 큐피드와 프시케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나는 제이슨에 의해 오동나무 장롱 안에 갇힌다. 요지부동의 오동나무 장롱 안에서 살려 달라 죽는 힘을 다해 소리치지만 오동나무 장은 역시 튼튼했다. 제이슨이 방심한 틈에 탈출한 뒤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열 두 자짜리가 제일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혼 후 여덟 자짜리가 더 좋았다는 아쉬움 가득한 회한을 남기며 이야기는 끝맺는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을까." 작가는 오동나무 장롱을 결혼의 실패와 연관시킨다. 제이슨의 조건만 보고 선택한 결혼이 오동나무 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동나무처럼 단단한 결혼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사랑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마주한 순간 바로잡을 기회가 없었느냐는 물음이 남는 것이다. 제이슨은 계속 결혼 할 것이다. 반복될 비극의 예고편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가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푸른 기대를 조심스레 품어 본다. 서미지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18-06-23 05:00:00

교보문고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곰돌이 푸(원작)·알에이치코리아)2. 모든 순간이 너였다(하태완·위즈덤하우스)3.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기파랑) 4.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곰돌이 푸(원작)·알에이치코리아)5. 고양이 1(베르나르 베르베르·열린책들)6.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정문정·가나출판사)7. 어디서 살 것인가(유현준·을유문화사)8.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김수현·마음의숲)9. 82년생 김지영(조남주·민음사) 10. 좀비고등학교 코믹스 7(배아이·겜툰)

2018-06-22 11: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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