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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불교의 역사/다케무라 마키오 지음/산지니 펴냄

인도불교의 역사/다케무라 마키오 지음/산지니 펴냄 인도 북동부 광대한 옥토를 가로지르는 강이 있다. 갠지스강이다. 이 갠지스강의 한 지류로 그 옛날 '네란자라'라 불렸던 강이 흐르고 강의 유역 근처에 높이 52m의 석탑과 그 안쪽에 무화과 나무 한 그루가 큰 가지를 드리우고 서 있다. 바로 석존이 그 아래서 좌선해 무상의 깨달음을 얻은 덕택에 이 무화과 나무를 '보리수'라 일컫는다. 하지만 그 보리수 근처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절도, 불상도, 보살도 없다. 여기서 질문 하나. 그렇다면 불교는 최초 출현 이후 어떻게 전개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은 걸까? 그 해답이 이 책에 있다. 책은 주로 인도에서 석존이후부터 밀교이전까지 불교의 사상적 전개를 추적하고 있다. 석존의 생애부터 입멸 후 부파불교의 전개, 대승불교의 출현, 공(空)의 논리, 유식의 체계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특히 우리나라에 들어온 대승불교의 출현에 대해서 보다 심도 있게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불교의 분열, 부파불교의 전개 '하여튼 상당히 다른 불교가 같은 불교라는 이름으로 묶여진 이상, 거기에는 무엇인가 입장이나 공통의 사상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18쪽) 깨달음을 최대 목표로 삼는 불교의 가르침도 석존 입멸 100년쯤(BC283년경)에 이르면 하나의 교단으로 존속해 왔던 승가에서 의견의 대립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를 해결하고자 교단은 1차 결집에서 석존이 제정한 계율은 고수되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지만 이른바 혁신파들은 여기에 납득하지 않고 새로운 분파를 형성, 혁신파인 '대중부'와 보수파인 '상좌부'로 나뉘게 된다. 이렇게 분열될 무렵 제2차 결집이 이어지나 다시 한 번 교단이 분열되면서 20개 정도의 교단이 형성되고 이를 '부파불교'라고 부른다. 부파불교는 본래 석존의 생존 때의 간명한 가르침과 사후 경전에 대해서 개념을 정확히 하여 불교 교의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점차 복잡한 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들은 석존의 언어를 해석하고 또 깊이 천착해 감에 따라 세계와 자아에 대한 인식을 극도로 자세하고 치밀한 논리로 규명해 나갔다. 한 예로 대표적 부파불교인 설일체유부파는 세계를 5범주로 나누고 또 이를 75법에 따라 분류하는 복잡성을 갖추기도 했다. ◆불교의 개혁, 대승불교의 출현 '석존의 설법은 아함경으로 정리되어 각 부파에 전해져 유지되었다. 그러나 부처님 입멸 3, 4백 년가량 지나서 새로운 불설(佛說)이 천연스럽게 확장되고 있었다.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 무량수경과 같은 경전이 석존의 설법으로서 선포되었던 것이다.'(129쪽) 이것은 새로운 불교의 출현이었다. 부파불교에서 전혀 생각도 못했던 불교의 '신흥종교' 탄생이었다. 새 불교의 주체들은 자신들을 '대승불교'(위대한 교의)라 부르고 종래의 불교를 '소승불교'(저열한 교의)로 비난했다. 이때 불교문학 운동도 유입됐다. 대승불교 수행의 핵심이 되는 육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은 불전문학에 나오는 것들이다. 그리고 대승불교에 귀의하여 보리심(깨달음을 추구하는 구도의 마음)을 발한 자는 모두 보살로 불렸다. 오늘날 우리네 절에서 자주 듣는 '보살님'도 이때부터 생겨난 용어이다. 원래 종교라는 세계에서는 확실히 객관적 사실이나 역사적 진실만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가령 신화든 설화든 중요한 것은 오로지 그 종교적 의미이며 진실이다. 대승불교는 문학을 통해 석존을 해석하고 깊이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종교적 진실을 체험하고 있는 불타를 만나고 그 핵심을 널리 전하고자 했던 것 같다. 대승불교도들은 선정 속엣 이루어지는 깨달음의 체험에 근거를 두고 그 과정에서 자아와 존재일체가 공(空)임을 밝히기 위해 연기설이나 유심(唯心)과 같은 다양한 언어들을 주도면밀하게 표현했다. 흔히들 알고 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본체를 가지지 않는 공의 존재방식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현상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공의 논리와 유식의 체계 대승 경전을 기반으로 불교의 철학적 사상체계가 정리되어 가던 중 불교는 이제 중관파와 유가행파의 2대 학파로 확립된다. 중관파는 나가르주나를 조사로 하는 학파이며 유가행파는 마이트레야, 아상가 바수반두가 이 사상의 대성가들이다. 다만 중관파는 일체의 언어를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부정하고 있었던 반면 유식행파는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이 다 같이 하나의 식(識) 속에 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마치 궤변을 갖고 우롱하는 것과 같은 중관파의 '중론'은 모순율을 구사하는 형식논리학을 고수하는 한편 유식행파의 유식론은 깨달음을 실현하면 어떤 길을 걷고 성불하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 가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는 게 서로의 다른 점이다. 이후 인도불교는 1203년 이슬람의 침공으로 파괴되어 갔지만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 전해져 계속 생존했다. 288쪽, 2만원. ▷지은이 다케무라 마키오… 1948년 도쿄에서 출생. 도쿄대학교 문학부 졸업. 문화청 전문 직원. 미에대학 조교수와 쓰쿠바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도요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승불교사상을 전공했으며 저서로 '유식의 구조' '대승불교 입문' '성유식론을 읽다' 등 다수가 있다.

2018-09-12 17:57:28

인생의 밀도/강민구 지음/청림출판 펴냄

인생의 밀도/강민구 지음/청림출판 펴냄 매주 월·화요일이 되면 전국의 크고 작은 출판사에서 펴낸 신간 200여권이 문화부로 배달된다. 쪽수와 판형도 다양하지만 배달 목적은 단 하나, '날 좀 소개해주세요'이다. 그러나 지면에 소개되는 도서는 열 권 안팎이 고작이다. 이번 주도 간택(?)을 기다리는 책들을 정리하던 중 눈에 띄는 책이 손에 잡혔다. 지은이 이름이 낯익었다. '인생의 밀도'란 제하에 부제가 '날마다 비우고 단단하게 채우는 새로 고침의 힘'이었다. 지은이는 강민구. '어랏! 혹시 내가 아는 사람?' 약력을 보니 맞다. 그렇다고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기자와의 인연은 이렇다. 2014~2015년 그가 창원지방법원장이었던 시절, 딱딱하기만 했던 법원 인테리어를 그림과 서화로 장식, 세간에 관심을 모으면서 전화통화와 이메일로 그를 인터뷰해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 카카오톡으로 그는 관심사나 강연내용 등을 기자에게 수시로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기자가 늘 답변을 하는 편은 아니다. 한때 대법관 물망에 올랐고 현재 서울고법 부장판사(전 대법원 법원도서관장)인 그가 쓴 '인생의 밀도'는 2017년 유튜브를 통한 화제의 명강 '혁신의 골목에 선 우리의 자세'를 엮은 것이다. 영상은 1시간이 넘는 분량이었음에도 조회 수는 금세 100만을 넘어 150만 건에 이르렀다. 책은 올 2월 출간됐지만 다시 '신간'이란 이름으로 배달됐다. ◆60대 법조인의 강연이 회자되는 이유 '현대 생활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은 확장된 외뇌(外腦)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몸을 깨우는 새벽에, 스마트를 리부팅하면서 나의 뇌를 깨운다. 새로운 날의 시작을 맞는 나만의 의식이다.'(29쪽) 60대 현직 법조인의 유튜브 강연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뭘까? 적지 않은 나이의 남성이 낯선 디지털 툴을 능숙하게 다루고 시연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각성의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으리라 짐작된다. 또 한 분야서 오래 천착한 전문가가 보여준 변화에 대한 자세와 인생론이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랬다. 그는 자기만의 의식을 통해 변화의 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섬세함의 소유자다. 흔히 나이 들수록 생소함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걸 그는 해내고 있고 왜 그래야 하는 지를 자신의 삶에 비추어 답을 제시하고 있다. ◆깊은 통찰은 분야를 넘어 두루 적용 한국 사법정보화의 틀을 마련한 인물 중 한 사람이기도 한 저자는 경험에 비추어 정체되지 않는 인생과 변화를 맞이하는 자세에 대해 7가지로 요약된 개념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첫째, 리부팅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관성에 의해 살아지는 힘겨운 삶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정한 순간마다 지나온 길을 복기하며 스스로를 정비할 리부팅의 순간이 필요하다. 리부팅을 않으면 삶에 찌꺼기가 쌓이고 그 찌꺼기는 삶 곳곳에 스며들어 인간을 마모시킨다. 둘째, IT감수성이다. 외부 변화에 반응하며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글로벌 IT환경을 유연하게 이용할 줄 안다면 어떤 변화도 맞닥뜨렸을 때 당당할 수 있다. 셋째, 적자생존(기록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이다. 경험을 정리해 통찰하는 글쓰기 습관을 들인다. 넘치는 정보도 기록이라는 과정을 거쳐 정리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넷째, 생각근육이다. 외부 반응인 IT감수성과 내부 갈무리인 적자생존과 아울러 통찰의 힘을 배양한다. 생각근육은 다양한 독서와 꾸준한 글쓰기, 명상과 사고실험의 생활화, 용기 있는 질문 등으로 길러진다. '생각의 근육은 육체의 근육과 같아 점점 단련이 될 수도 있고 퇴화될 수도 있다. 한 군데만 집중적으로 단련할 수 있고 여러 부분의 근육을 균형 있게 단련시킬 수도 있다'(75쪽) 수집과 사유를 통해 축적되는 단단한 생각의 힘은 웬만한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다섯째, 디지털 디톡스다. 사람은 저마다 내면에 두 마리의 개를 키운다. 바로 편견과 선입견이며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이 둘을 적용하곤 한다. 만약 매일 모든 디지털 기기를 꺼두고 명상에 잠기는 시간을 가진다면. 현대의 디지털 문명이 주는 피로감을 씻고 디지털 기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여섯째, 적자생존(積者生存)은 자신이 노력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을 나눔으로써 선을 쌓는 변주이다.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닌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삶의 블루오션인 '적선'인 셈이다. 마지막은 조각모음이다. 하루를 마감하기 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고요히 나를 돌아보고 하루의 오류를 찾아내고 여전히 빈 공간을 채움으로써 다가올 내일의 새벽을 준비하는 것이다. ◆논리와 설득의 만만찮은 내공 저자는 책을 통해 농밀한 인생의 밀도를 어떻게 축적하며 또 이를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를 경험과 많은 독서 분량으로 설득하고 있다. 글을 전개하는 논리 또한 적절한 인용과 경구를 사용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주목을 이끌어 낸다. 간절한 공부와 치열한 성찰로 충실히 채워진 삶의 밀도. 그 밀도가 껍질을 비집고 나와 청자(聽者)의 심금을 울린다. 268쪽, 1만5천원 지은이 강민구 구미 출신으로 1988년 판사로 임명해 창원지방법원장, 부산지방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함께하는 법정' '손해배상 소송실무'(공저) 등이 있다.

2018-09-05 14:29:47

어느 물리학자의 세상 보기/김찬주 지음/ 우리교육 펴냄

어느 물리학자의 세상 보기/김찬주 지음/ 우리교육 펴냄 인류가 만든 가장 충격적인 이론은 뭘까?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다. 인류가 이룩한 현대 문명의 거의 모든 것이 이 두 이론에서 나왔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책은 물리학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나'라는 개인인 대학교수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보고 느낀 것을 모은 것이다. 필자 김찬주 교수는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우주론과 초끈이론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의 간략한 역사와 성과, 그 가치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최근의 중력파 발견 등 최신 물리학을 소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는 우주선 뉴허라이즌스호와 영화 '인터스텔라' 등을 소재로 과학의 가치와 과학 교육에 대해 생각하고 과학과 종교, 진화와 창조의 관계를 과학자의 입장에서 소개하고 여운을 던지기도 한다. 또 본질적으로 전혀 실용적이지 않는 과학이란 학문의 위대함을 설명하면서 우주의 약 75% 넘게 존재하는 암흑물질을 통해 세상에 보이지 않는 힘의 작동을 역설한다. 196쪽, 1만2천원

2018-09-04 15:24:15

불교의 탄생/미야모토 케이이치 지음/한상희 옮김/불광출판사 펴냄

불교의 탄생/미야모토 케이이치 지음/한상희 옮김/불광출판사 펴냄 기원전 6세기 쯤 인도는 사회'사상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밀의 수확량과 수공업이 번성하면서 출신 계급보다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게 됨에 따라 전통 종교 베다에 반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불교 역시 이 시기에 베다에 반발해 생겨난 많은 사상 중 하나였다. 이 책은 불교 성립 이전부터 붓다 입멸까지를 다루며 실용주의자 붓다는 원칙을 고집하는 것을 엄격히 경계한 인물로 불교의 긴 생명력의 원천을 역설하고 있다. 더불어 초기 불교 문헌을 중심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해설을 덧붙이면서 붓다 생존 당시와 가장 가까운 초기 불교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례로 붓다를 칭하는 명칭 가운데 '타타가타'(Tathagata)라는 용어도 '이와 같이 온 분'이라는 뜻의 여래(如來)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와 같이 건너간 분'이란 뜻의 여거(如去)로 이해해야 하며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세상의 무상함이나 찰나멸이 아니라 인간은 그리 오래 사는 존재가 아니므로 수행에 몰두해야 한다는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240쪽, 1만6천원

2018-09-04 15:23:34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고급 노숙자/김정래

어느 늦은 봄날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 떠돌이 개 한마리가 들어왔다. 개는 머리털이 텁수룩한 것이 앞으로 길게 내려 한 쪽 눈을 가렸고 크기는 어미 고양이만 했다. 몇 날 며칠을 굶었는지 배는 등가죽에 붙었고 바싹 마르고 꾀죄죄한 것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평소에 개를 좋아하는 아내는 불쌍하다면서 밥을 국에 말아다 주었다. 개는 멀찍이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면서 가까이 오지 않고 사람을 몹시 경계하였다. 아내는 개 밥그릇을 개가 보는 한쪽에다 놓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얼마 후 나가보니 개는 밥그릇에 입도 대지 않았다. 주변을 의식하여 밥그릇에 가까이 오지 않는 것으로 짐작하고 그냥 놓아두고 하룻밤을 지났지만 그대로였다. 아내는 작전을 달리하여 식구들이 먹다 남은 고깃덩이를 갖다 주었다. 개는 여전히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고기가 담긴 그릇을 두고 자리를 피해주니 설설 다가 와서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먹기 시작했다. 개는 떠돌이 신세로 여러 날을 굶었음에도 불구하고 굶으면 굶었지 아무 것이나 먹지 않는 입맛은 고급이었다. 아마도 어느 돈푼이나 있는 집에서 귀여움과 사랑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쓰라린 배신을 당하여 쫓겨난 것 같았다. 이웃 주민들도 우유를 갖다 주고 외식하고 남은 고기도 가져다주면서 보살펴 주었다. 잠자리는 정문 가까이 베란다 밑 화단에다 정해놓고 기거하였다. 저층 아파트에, 노년층이 많이 사는 곳이라, 이웃 간에 인심도 그리 박절하지 않았다. 굴러 들어온 개라 신고를 하자는 주민도 있었지만 한 울타리 동거를 싫어하는 이는 없었다. 아내는 우유와 고기를 구해다 주면서 개를 거두는 성의가 보통이 아니었다. 개도 그 정성을 아는지 우리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아파트 출입문 입구에 앉아 기다리다가 꼬리를 흔들면서 주위를 빙빙 돌다가 발딱 뒤집어 누워 네 다리를 흔들면서 재롱을 피웠다. 그리고는 집안까지 따라 들어오려는 것을 억지로 떼어 놓곤 했다. 아내의 신조는 개는 어디까지나 밖에서 키우고 집안에 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 맘을 놓이게 했다. 나는 사실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다 애완견이 진열되어 있는 거리를 지나갈라치면 개 특유의 노리끼한(노리착지근한) 냄새가 비위를 몹시 뒤틀리게 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개에게 고급 천으로 옷을 입혀가지고 안고 다니는 것을 보면 지성으로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개 주둥이에다가 연신 입을 맞추면서 엄마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개를 어르는 것은 꼴불견이다. 한술 더 떠 죽은 개를 화장시켜 납골당에 안치하는데 수백만 원이 드는데 대구에는 화장장이 없어 부산까지 가서 화장을 한다고도 했다. 주변에서 개를 부모형제보다 더 챙기고 정성을 쏟는 사람들을 보면 인간이 누려야할 사랑과 행복을 애완견이 앗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에 개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어머니를 따라 동네 입구에 있는 과수원집에 간적이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마당에 있던 송아지만한 개가 정면으로 뛰어와 달려드는 바람에 엉겁결에 고함을 지르며 뒤로 돌아섰는데 개는 내 어깨위로 확 뛰어올라 머리를 물었다. 개 주인이 빗자루를 들고 쫓아 나와서 개를 후리 쫓지 않았으면 더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개 주인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개털을 잘라 주는 것을 볶아서 기름에 개 가지고 물린 상처에 발랐지만 별 효험도 없이 쉽게 아물지 않아 한 동안 고생을 했다. 그로부터 개를 만나면 물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 피하게 되었다. 아내가 개를 너무 좋아해서 오래전 단독 주택에 살적에 개를 키운 적도 있었다. 이웃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 받아서 아내가 바둑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지극정성으로 거두니까 개도 식구들을 잘 따랐다. 다 자랐는데도 고양이 크기만 한 것이 어린아이들과 장난을 치면서 잘 어울려 놀았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걸음으로 마당에 들어서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반가이 맞이하여 무덤덤하게 대해주던 내 마음도 돌려놓았다. 온 식구들의 귀여움을 재롱으로 보답하여 주던 바둑이가 어느 날 사람을 물 듯 한 표정으로 마당을 정신없이 몇 바퀴 돌더니만 마루 밑 컴컴한 구석에 들어가 나오지를 않는다. 이웃집 할머니가 쥐약을 섞어놓은 음식물을 먹은 것 같았다. 말은 못하고 사경을 해매이고 있는 것이 너무 애처롭고 안타까워 약이라도 먹여 보려고 마루 밑을 들여다보고 손짓으로 불러내어도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짖어 대면서 식구들이 접근을 못하게 했다. 마당에 똥 한번 눈 적이 없는 영리하고 순한 것이 배속에 창자가 녹아 내려가고 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생각하니 내 마음도 녹아 내렸다. 그렇게 가족들의 가슴을 졸이고 애태우던 바둑이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개에게는 정을 주지 않기로 했다. 베란다 밑에서 노숙하는 것이 안쓰러워서(안슬프서) 이곳저곳 수소문을 해서 아담한 개집을 구해다가 말끔히 청소와 소독을 하여 이부자리까지 깔아서 뒷담벼락 밑에 호텔처럼 마련하여 자리를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밥그릇까지 그 앞에 가져다 놓았지만 개는 안에 들어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개집 안에 입맛 당기는 음식을 차려 놓고 유인을 했지만, 들어가서는 그릇만 비우고 다시 나와 버렸다. 제 의지를 쉽게 바꾸지 않는 주관이 뚜렷한 면모를 가졌다고 할까, 아니면 고집불통이라고나 할까? 끝내 개는 고급 호텔에는 들어갈 생각도 않는다. 그날로부터 아내는 개에게 "고급 노숙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고급노숙자의 입맛은 변함없이 고급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고급노숙자가 때 물을 좀 벗고, 털에는 윤기가 돌 즈음부터 밤에는 가끔씩 "컹컹" 하고 짖기 시작하였다. 풍신에 비해서 목소리는 우렁차고 듣기에 부드러웠다. 제 비위에 거슬리는 것이 지나가면 한 번씩 영역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늦잠으로 일관하던 나도 고급노숙자가 둥지를 틀고 부터는 밤새 안녕을 문안하는 아침이 잦았다. 낙엽이 한잎 두잎 쌓여 가을이 깊어 가던 날, 아침이 되어도 고급노숙자가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주변과 골목길을 둘러보아도 흔적도 없고, 외출을 했나 해서 저녁까지 기다려 보았지만 그 날 이후로는 영영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 올 때면 어디에 있다가 조르르 달려와서 재롱을 피우던 것이 보이지 않으니 가슴 한 구석이 허전했다. "고급 노숙자"는 첫 만남부터 내안에 잠재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자아내게 했는데, 떠나면서는 애잔한 그리움을 남기는구나! 몇 달 동안이나마 우리들 가슴에 따스한 정을 일깨워 준 "고급 노숙자"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더 따사롭게 보살펴 주는 새 주인을 만나 귀여움을 받고 있을까? 아니면 굶주리고 지친 모습으로 어느 골목을 해매고 있지나 않을까? 우연히 닥아 와서 홀연히 가버린 "고급노숙자"의 재롱이 못내 애련한 흔적으로 아롱아롱 겹쳐진다.

2018-09-03 11:33:36

위험한 미래/김영익 지음/한스미디어 펴냄

위험한 미래/김영익 지음/한스미디어 펴냄 고속 성장하던 한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충격타를 맞았고, 수많은 서민들의 피눈물을 자양분 삼아 겨우 위기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10년만인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또 한 번 글로벌 경제 체제를 뒤흔들어 놓았고 이에 각국 정부는 적극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을 운용해 지금의 세계 경제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마구잡이식 통화 팽창 정책은 개인과 기업이라는 경제주체를 부실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로 글로벌 경제의 성장 한계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경제주체들을 그저 손 놓고 바라보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다가올 10년의 글로벌 경제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세워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야말로 '생존경제학'이 됐다.지은이 김영익 교수(서강대 경제학부)는 2014년 '3년 후 미래'에서 중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위협할 것임을 경고했고 정확히 1년 후 현실화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글로벌 경제가 심상찮다2008년 주택을 담보로 한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론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주요 국가들은 이른바 '양적완화'란 이름으로 천문학적 돈을 찍어내는 재정'통화정책을 운용했다. 이로 인해 풀린 유동성자금 때문에 각종 자산 가격에 거품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자 이 거품은 실물경제에까지 전이돼 각국은 성장의 한계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지출의 증가로 일시적인 소비와 투자가 늘면서 경기가 회복되는가 싶었는데 결국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면서 선진 각국의 정부재정이 부실해지고 신흥국에선 기업마저 부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게 된 것.이 여파로 주요 국가의 채권과 주식시장은 거품이 빠지면서 경제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명목금리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도화선을 붙인 것은 최근 미중 무역마찰의 조짐이다. ◆미중 무역마찰, 금융전쟁으로 확산?'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말이 있다.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기존 지배 세력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위협해 올 때 전쟁과 같은 극심한 긴장이 발생하는 상황을 의미한다.현재 글로벌 시장은 신흥세력인 중국이 기존 지배 세력인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2017년 미국의 대중무역적자는 3천752억달러로 2001년부터 2017년까지 누적적자로는 4조3천793억달러에 달한다. 만약 중국이 자국의 경제구조조정을 명분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엄청난 액수의 미국 국채를 내다 팔 경우 미국에 미치는 경제적 충격은 가히 쓰나미급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중국의 경제성장과정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국가는 한국이다. 2000년부터 2017년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누적흑자는 5천535억달러로 만약 중국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자국 경제의 구조조정에 나선다면 상대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경제의 현실 진단1958년생 개띠인 지은이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한국 경제의 과거와 미래를 진단한다. 1958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81달러. 지은이가 대학을 진학할 무렵인 1977년엔 1인당 국민소득이 갓 1천달러를 넘어섰다. 이후 1988년까지 우리나라는 연평균 10%의 고속성장을 하는데 그 바탕엔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라는 '3저 현상'이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IMF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그중 하나가 실물경제에 비해 돈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소위 마샬케이(총통화/경상 GDP)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다른 하나는 국민소득 가운데 가계비중은 낮아지고 기업 몫은 증가했다는 점이다. 임금상승률이 기업이익증가율에 미치지 못했고 자영업자가 어려움을 겪게 됐고 이자소득이 줄었다. 이러 이유로 IMF이후 우리나라 가계는 가난해지기 시작했다. 대신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돈을 모아 저축이 많아져 점점 부자가 됐다. 현재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문제도 가계가 가난해져 물건을 살 돈이 점차 줄고 있다는 데 있다. '가계가 신발을 사주지 않으면 신발공장도 망한다. 가난해진 가계가 소비를 할 수 있도록 기업이 임금인상이나 고용증대를 통해 먼저 나서야 한다. 더불어 조세 등을 통한 정부의 소득분배 역할이 더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책 151p)이 논리가 바로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소득주도성장이론의 배경이다. ◆미래 위기 대비 10가지 조언지은이가 예측하는 미래 글로벌 경제의 주요 관점은 ▷달러는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원화는 지속적인 상승 추세에 있다 ▷0% 금리시대 도래한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잠재성장률의 저하와 정부 재정적자가 확대된다 등으로 요약된다.이에 따라 지은이는 에필로그에서 미래 생존경제학의 위한 10가지 조언을 들려준다.1)향후 10년은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 혹은 디스인플레이션의 시대다. 가능한 한 부채를 줄여야 한다. 2)갈수록 부동산은 유동성이 떨어진다. 고정소득이 나오는 임대 부동산에는 자산의 일부를 투자해도 좋다. 3)집은 투자재가 아니라 소비재다. 전세제도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4)금리는 장기적으로 0%대로 떨어질 것이다. 금융자산의 30% 이상은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5)주가는 일정 범위 내에서 조정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변동성이 작고 배당금을 많이 지급하는 기업을 사라. 6)해외주식도 포트폴리오에 담아라. 7)자산 가격변동에 대비할 수 있는 해지펀드에 투자비중을 늘려라. 8)달러 가치 하락으로 금 가격은 상승한다. 금 투자를 늘려라. 9)거래 금융회사를 잘 선택해야 한다. 금융회사들이 많이 사라질 것이다. 보험회사도 구조조정될 것이다. 10)자산 배분을 잘 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라. 252쪽, 1만6천500원 지은이 김영익현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한국금융연수원 겸임교수와 LG하우시스 사외이사로 활동 중. 자신만의 '주가예고지표'를 바탕으로 9'11 테러 직전의 주가 폭락과 그 후 반등, 2004년 5월 주가 하락, 2005년 주가 상승 등을 맞춰 '족집게' 애널리스트로 떠올랐다.

2018-08-30 11:12:2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파도

파도(波濤)/최병길 구부러지는 길목을 두고 떠다니는 것들 날을 간다, 벼린 날을 갈며 그늘에 벼리고 베인 물이랑들이 한없이 거세어진다 물줄기의 향방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몸 상처로 물결을 이끌고 내몰아서 지느러미를 이루어 낸다 어차피 밀물과 썰물의 교대는 공간너머 시간의 터울 속에 이루어지는 원리니까, 수평선을 깔고 오는 붉어짐 속에서 벼랑어깨 위 축축한 것들이 말라가는 것을 지켜보며 곡선의 부유(浮遊)권을 암시하듯 해송 옆, 가지들 되돌아온 해풍에 추적추적거리며 파도의 노도(怒濤)를 집요하게 지새우며 지켜보았다. 서둘러 낮달의 낯빛을 비추는 무렵 길목을 거스르는 파도 휘두르고 있는 연유다 오후는 저물어지고 새벽의 항로는 정처 없이 깊어져서 곡선의 눈부심이 되었다. 물살에 박힌 가벼운 날로 귀밑머리 무늬에 묻혀 삼켜진 것들은 투명하지만 차갑고 날카롭지만 처량하다 이제 파도라 밑줄 긋고 나면 켜켜이 풀어놓는 숨비소리가 들숨과 날숨의 표류하며 소용돌이친다 비수를 품은 엽선들이 숨줄을 틔우고 있다

2018-08-27 11:43:00

[시니어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파도 당선소감

파도/최병길 당선소감 저에게 이런 큰 상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시를 쓴지 거의 20십여 년 만에 이런 상을 받으니 과연 이 상을 받아도 될지 무안한 마음만 듭니다. 제가 이 상을 타기에는 저의 시는 좀 진부하고 낡았지만 이렇게 좋게 보시고 뽑아주신데 대해 무엇보다도 심사의원이하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 분들이 없었으면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했겠지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며칠 전 갑작스레 이런 귀하고 영예로운 연락을 주시니 제겐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아마 이것은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앞으로도 열심히 시를 쓰겠습니다. 언제나 시는 제게는 오랜 갈증이었고 늘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시에 대한 애착이 있었으나 어느 순간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시를 놓았습니다. 뒤늦게 쉰이 넘어서야 조금씩 시를 쓰게 되고 특히 문학상을 탄 시들을 즐겨 읽었고 언어의 놀라움을 깨닫곤 했습니다. 늘 어려울 때나 힘들 때 제게 알 수 없는 큰 힘이 되어주었던 시가 이렇게 무한한 영광까지 주니 무어라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저보다 훌륭한 시를 쓰신 분들에게 죄송스럽지 않도록 앞으로도 시를 계속 쓸까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 손자 그리고 사위들에게 자랑하게 되어서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시를 쓸까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08-27 11:42:46

사본_[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천(千)의 손

천(千)의 손 / 우옥자 장갑만 파는 가게가 있다면 저마다 다른 설명서가 붙어있을까 뒤처리가 버거워질 땐 빨간 고무장갑을 낀다 기름 때 비린내 그의 타액 까지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쿨한 이별이라고 가끔 빼내기 어렵고 잘 찢긴다는 걸 주의하라고, 사각의 갑에 천 개의 손을 상비한 보살의 손, 크리넥스 뽑아 쓰듯 톡! 하고 비닐 손을 꺼내 나물을 조물거리다 홀랑 뒤집어 버린다 손가락 끝에 코팅된 눈이 반짝! 장미를 꺾을 땐 바닥이 단풍든 목장갑을, 달아오른 손을 잡을 땐 누군가는 가죽장갑을 추천한다 손뜨개 벙어리장갑이 눈덩이를 굴린다 아기를 안아 올린 산파의 피 묻은 장갑, 죽음을 닦는 장의사의 장갑, 추운 장날 마디 잘린 장갑을 끼고 지폐를 세던 장꾼들, 장갑만 끼면 알통과 근육이 솟는 공사판 남정네들, 삶아 빨아 걸어놓은 푸줏간의 목장갑들…그들은 모두 손의 전신 가장 오래된 戰士는 저기 바닥에 굳은 살 박히고 물때 낀, 슬픔조차 맛깔스런 맨손이라는 장갑을 낀 어머니 손 뜨거운 것 번쩍 들었다 귓불에 대고 호 불던 마지막까지도 벗지 못한 저승꽃 흐드러진 저 장갑이다

2018-08-27 11:41:29

21세기에 새로 쓴 인간불평등사/이선경 지음/프리스마 펴냄

21세기에 새로 쓴 인간불평등사/이선경 지음/프리스마 펴냄 2017년 크레디트 스위스의 데이터를 인용한 옥스팜에 따르면 지구촌 부(富)는 상위 1%가 이미 전체 부의 50%를 넘게 차지해 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이 나타나고 있다. 더 실감나게 말하자면 지구촌 약 37억 명의 부를 합한 것과 맞먹는 부를 소유한 부자는 2000년 388명, 2013년 85명, 2017년엔 다시 42명으로 부의 집중도가 점점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 7월 현재 세계 최고 부자 순위 1, 2위인 제프 베조스(아마존 창립자)와 빌 게이츠의 재산은 각각 1천490억달러와 938억달러로 매일 1억원씩 아낌없이 써도 대략 4,600년과 2,900년이 걸린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IMF이후 '88만원 세대'와 같은 책이 회자되면서 불평등 문제가 어렴풋이나마 사회문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책은 생물학, 역사, 철학, 사회학, 경제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불평등에 관한 모든 것을 망라한 역작(무려 696쪽)으로 평가된다. 놀라운 건 저자가 교수나 학자가 아닌 평범한 시민으로 6년에 걸친 끈질긴 연구와 놀라운 통찰력이 돋보인다. ◆평등한 세상은 유토피아에 불과? 인간을 폭력성과 욕망의 덩어리로 일단 규정하면 인류 역사는 불평등의 피라미드를 유지'강화하려는 자와 이를 허물려는 자의 투쟁으로 점철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 인간은 호혜적 협력과 상호 관심, 자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집단지성을 발휘할 줄 아는 존재이다. 또 이러한 인간의 양면적 특성은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적 불평등과 정의에 관한 본질적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 같은 모순의 근거로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헌법과 법률에 정의에 관한 보편적 개념을 담고 있으나 정의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실현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오히려 세상이 아직도 충분히 정의롭지 않다면 그 이유는 뭘까? 그것은 불평등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연 생태계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뱀, 소, 돼지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 불의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식인행위'는 또 어떠한가? 자연의 눈에서 보면 동종살해나 전쟁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선악이나 시비의 개념으로 부자연스럽다고 잘못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판단은 독자의 몫인 것 같다. 결국 정의란 것도 인간 사회 내에서의 '상호생존'이라는 토대위에서 요구될 수밖에 없는 필요조건이다. ◆왜 우리는 불평등한가? 생물의 시각에서 인간을 보면 크게 3가지 특성이 있다. 물질대사, 환경적응, 후손 복제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성은 생태계의 맨 밑바닥을 차지하는 단세포 생물인 박테리아의 작동원리와 다르지 않다. 또 역사의 기원을 거슬러 가면 도덕성이나 정의를 전제로 하는 사회는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후 첫 복제가 일어난 그 순간부터 존재하기 시작하고 사회 속의 생물은 이때부터 경쟁과 협력이란 두 바퀴를 굴리며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그리고 생물은 그들이 선택한 생존전략에 따라 ▷각자도생형 ▷진사회성형 ▷사회적 동물형을 구분된다. 진사회성은 독립된 개체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하나의 유기체처럼 살아가는 형태를, 사회적 동물형은 동종의 혈연이나 비혈연 개체와 조직적인 사회를 형성해 살아가는 동물을 의미하며 인간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이 경우에 독립적인 개인플레이형(호랑이)의 세계가 지배하는 원리가 '경쟁'이고 팀플레이형(개미) 진사회성 동물의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가 '협력'이라면 사회적 동물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는 개체들 간 '경쟁'과 '협력'이 묘하게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공존한다. 또 사회적 동물 사회는 상호 이기성의 충돌과 상호 의존이라는 딜레마가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면서 사회 내에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존재하고 또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사회 속 질서와 집단 유지라는 명목으로 서열이 생겨나고 이 서열이 결국은 불평등의 기원으로 작용하게 된다. ◆보다 높은 수준의 정의는 가능한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든 간에 때때로 나 자신이나 나의 행위는 선에 부합하고 타인이나 타인의 행위는 악에 부합하는 것처럼 꾸미는 속임수를 발명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본문 중에서) 인류의 역사의 단계에서 노예제, 봉건제, 공산주의, 자본주의의 공통점을 꼽으면 소수로 하여금 다수에 대해 구조적 기생을 가능하게 해주는 피라미드 구조임을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다. 저자가 책에서 든 다양한 사례처럼 역사는 피라미드와 반(反)피라미드의 얼개로 짜여져 있다. 왕과 귀족은 전 국민을 도구로 사용하려 했고 평민은 노예를 도구로 사용하는 피라미드형 권력을 형성한 대신, 고통스러운 불평등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한 하층민과 노예들의 저항 또한 다른 역사의 물줄기를 형성해 왔던 것이다. 이러던 것이 근현대에 이르러 불평등 피라미드 구축원리인 자본주의와 평등을 전제로 한 민주주의가 묘한 동거를 시작하면서 정의라는 개념은 흥정과 협상의 산물로서 역사의 전면에 떠오르게 된다. 그럼 보다 높은 수준의 정의는 가능할까? 저자는 사회적 신뢰가 구축된다는 전제로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그 일례로 열린 정보와 초공간적 소통이 가능한 블록체인을 든다. 개체는 분산하되 집단지성과 비슷한 상호 작용으로 모든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블록체인 같은 효율성을 보장한다면 '정의구현'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지은이 이선경은 한양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 예술디자인대학 석사과정을 중퇴했다. 현재 원스탑잉글리쉬 대표이자 유튜브 채널 '알아둘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의 운영자이다

2018-08-23 14:50:42

사마천의 마음으로 읽는 사기/이승수 지음/돌베개 펴냄

책을 읽음에 글자에 매달리지 말고 글쓴이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가히 독서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사기열전' 70편 중 30편의 열전을 뽑아 새로 번역했고 여기에 평어를 덧붙였다. 선정기준은 서사가 지닌 박진감과 문장의 구성미에 있다. 또한 사마천의 입장과 판단이 강하게 드러나는 글들을 대상으로 했다. 저자에 따르면 사마천은 '사기' 속에 자신의 기쁨과 슬픔, 조소와 신음을 숨겨놓았는데 이는 명백히 인물과 사건에 대한 주관적 태도이자 감성적 작용으로 갈등이 첨예하게 묘사되기도 하고 사실로 인정하기 어려운 사건을 제시하고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기'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사마천의 문심(文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기'가 시대를 넘어 책장 속에만 머물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사기' 독법에서 저자는 각 편마다 네 글자의 한자 어구로 읽기를 제안한다. 마치 길안내 표지판처럼 말이다. 역사가 사마천이 아닌 소설가 사마천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인 셈이다. 504쪽, 2만2천원

2018-08-22 14:47:41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김세진 글/호밀밭 펴냄

12세기부터 막부체제 아래 병영국가의 모습을 지켜오던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면서 제국주의의 기틀을 마련했다. 메이지 유신을 주도했던 인물의 절반 이상은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 현)의 하기(萩)에서 태어났다. 이토 히로부미, 명성황후 시해의 배후 이노우에 가오루와 시해 주범 미우라 고로,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이 모두 하기 출신이다. 왜 그런가? 조슈번은 19세기 서양세력의 등장과 함께 존왕양이 사상과 융합돼 젊은 사무라이들을 움직이게 한 중심지로 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이가 바로 요시다 쇼인이다. 젊은 시절부터 쇼인은 일본전역을 돌아다녔고 많은 학자를 만나 토론하며 시야를 넓힌 후 26세 때부터 조슈번 하기에 '쇼카손주쿠'(松下村塾)라는 개인학교를 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책은 이런 요시다 쇼인의 일대기와 독특한 수업방식 및 쇼카손주쿠 출신의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쇼인은 "만권의 책을 읽어야만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스스로 노력한 것을 가볍게 여겨야 만민의 안위를 지킬 수 있다"는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조선을 침략하고 합병시켜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232쪽, 1만5천원.

2018-08-22 14:47:15

[내가 읽은 책]기성세대로의 연착륙 『호밀밭의 파수꾼』, J. D. Salinger, 민음사, 2018

 누구나 한번은 겪었던 시절, 자기가 속한 세계만 옳다고 생각하는 질풍노도의 시기. 마치 미국판 ‘중2병’을 겪는 주인공을 소재로 한 이 책은 J. D. Salinger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며 존 레논과 케네디 대통령의 살해범이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김광웅 작 ‘가파도 보리밭’ 명문 사립 팬시고등학교 3학년인 홀든 콜필드는 4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아 퇴학당한다. 수요일인 크리스마스에 맞춰 뉴욕에 있는 집에 돌아가려 했으나 룸메이트와 싸우는 바람에 토요일에 학교를 나선다. 그리고 집에 바로 가지 않고 3일 동안 뉴욕에서 경험한 것을 1인칭 시점으로 말하고 있다. 16세, 우리 나이로 18세 즉 청소년기의 마지막이자 막 어른이 되려고 하는 시절에 있는 홀든은 세상을 순수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눈다. 시종일관 냉소적으로 얘기하면서도 순수한 대상인 동생 엘리와 피비, 여자 친구 제인, 수녀들을 생각하면 행복감을 느낀다. 반면 다른 세상은 모두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고 여긴다. 팬시고등학교 홍보물에는 말을 타고 폴로게임을 하는 학생들의 사진이 있지만 정작 학교에는 말이 없다거나 어른들의 세계를 경험하지만 매춘부에게 5달러를 빼앗기거나 믿었던 선생님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기도 한다. 홀든은 여동생 피비가 보고 싶어 몰래 집에 들어간다. 피비는 홀든이 퇴학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도대체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다. 홀든은 한참 생각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호밀밭에서 노는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주겠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순수성을 지켜주려는 것이다. 세상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는 인간이 마지막에 선택하는 것은 대개 도피나 자살이다. 처음에 홀든은 도피를 선택한다. 즉 서부로 떠나려고 결심하지만 피비 때문에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물론 이러한 결정은 피비의 말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3일 동안 방황하면서 겪은 내적 갈등과 성찰의 결과물이다. 피비가 다니는 학교에 낙서가 쓰여진 것을 보고 처음에는 지우려 했으나 너무 많이 쓰여진 것을 보고 지우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회전목마를 타는 피비를 보며 ‘아이들이 황금의 링을 잡으려 할 때는 아무 말도 하면 안 된다. 그러다가 떨어져도 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즉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기를 포기한 것이다. 소설은 정신병원에 입원한 홀든이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방황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려 하면서 끝이 난다. 이 책은 1940년대 미국경제가 호황이던 시절에 만연했던 물질주의, 성공지상주의를 비판하고 가족·세대 간 소통부재, 개인의 고립 등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제기한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비속어와 저속한 표현 등 피상적인 이유 때문에 금서로 지정되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 권장도서가 되었다. 홀든 같은 문제아도 방황하다 결국 ‘컴백 홈’하여 현실로 돌아온다는 내용이 많은 청소년과 학부모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홀든의 패배’라고 말하지만 기성세대로의 연착륙을 잘 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할리우드에서 Salinger에게 이 책을 영화로 만들자고 수차례 권유했지만 Salinger는 그때마다 이렇게 말하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홀든이 싫어할 것 같아서’.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표현될지 상상해 본다.  김광웅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8-08-21 16:17:16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사과를 깎는 시간/당선소감

그간에 누군가 내게 시집을 건네 준 적이 있었던가, 시집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숨 가빴던 초등교원생활 어느 날, 정년퇴직 공문이 떨어졌다. 그때 까지도 내가 시를 쓰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내 속을 꺼내 보이는 일, 얼굴 뜨겁다. 결코 쓰고 싶은 대로 써지지 않는다. 타고 난 시인처럼 수월하지 않다. 시도 배워서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간의 수상실적으로 바우처 혜택을 받아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한 학기 해보고, 지난 이태동안 학사편입으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시집이나 시론, 철학과 미학에 관하여 읽었다. 여전히 시는 어렵고, 쓸수록 더 난해하다. 한창때 빛나는 젊은 시인들은 가히 아름답다. 기대 또한 무한하다. 나는 평생 주어진 일에만 매진했으나, 비로소 시를 쓸 여유, 세계를 바라다보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유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처음 운전을 배워 올림대로를 달릴 때의 불안을 극복한 통쾌함처럼. 시를 쓰는 일 또한, 고통을 극복한 기쁨이다. 시 한 편의 환희는 오래간다. 그간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써나갈 것이다. 내안에 있을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수많은 어릿광대 타자(他者)들을 환대할 것이다. 꼭 시詩가 아니어도, 시詩 이상으로 살아가는 분들은 더 많이 있다. 내가 쓴 시가 나 자신을 구원시키는 일은 물론, 누군가를 위로받게 하고 견디게 하는 살만하게 하는 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8-08-20 11:28:16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햇반의 온도/당선소감

문득, 여고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고 가슴 설렜던 그때 그 시간이 먼 길 돌아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왔습니다. 늦깎이로 시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갈등과 방황으로 몇 번이고 접을까도 생각 했지만, 어느덧 詩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벌써 하반기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뜻 있는 한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며 힘이 된 문우들께도 고마움을 보냅니다. 길을 열어 주신 대구매일 신문사와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08-20 11:25:45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자작나무 훈민정음/당선소감

내겐 기쁜 소식을 듣고, 잠시 뒤에 갖는 버릇이 하나 있다. 이후에 나는 어디에 사용 될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쓸 만한 걸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이번 시니어작품 공모전에도 이순(耳順)의 세대가 그나마 감성의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곳이구나 싶어 응모를 했다. 당선 통지를 받고 나서 잠시 뒤에, 이 만년의 감성이 어디를 향해서 어떻게 전달되는 것일까. 그리고 어느 현실에 적용되는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인공지능이 더 멋진 글을 쓰는 시대에 시니어의 감성과 정신이 어떻게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회의가 앞서는 투지를 느꼈다. 뭐니뭐니해도 시니어 감성을 눈여겨보는 매일신문사에 경의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저녁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 가는 땅거미를 지면으로 불러내어 서쪽 하늘에 개밥바라기 반짝이게 독려하는 것 같다.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는 불쏘시개를 모아 전등불 아끼는 부엌에 쌓는 것 같다. 어려운 시각을 맞춰 준 선자께 감사를 드리며 유월의 녹음 짙은 가로수 아래를 활기차게 걷는다.

2018-08-20 11:23:39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자작나무 훈민정음

자작나무 훈민정음 조성연 인제군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에 가면 닥티눈 점점 박힌 설화지雪花紙가 천진데요 못하는 먹 글씨라도 한 번 쓰고 싶어지죠 색깔에 눈 빠지고 내음에 씻긴 마음이 티눈으로 써 내려간 해례본을 읽는데요 집현전 모필 넋들이 수천 자루 일어나요 허파를 활짝 열면 가슴 차는 니은 디귿 반포 시절 떠오르는 흥분과 밝은 해가 빛나는 글자 사이에 맑은 공기 널리 붓죠

2018-08-20 11:19:5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사과를 깎는 시간/당선소감

그간에 누군가 내게 시집을 건네 준 적이 있었던가, 시집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숨 가빴던 초등교원생활 어느 날, 정년퇴직 공문이 떨어졌다. 그때 까지도 내가 시를 쓰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내 속을 꺼내 보이는 일, 얼굴 뜨겁다. 결코 쓰고 싶은 대로 써지지 않는다. 타고 난 시인처럼 수월하지 않다. 시도 배워서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간의 수상실적으로 바우처 혜택을 받아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한 학기 해보고, 지난 이태동안 학사편입으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시집이나 시론, 철학과 미학에 관하여 읽었다. 여전히 시는 어렵고, 쓸수록 더 난해하다. 한창때 빛나는 젊은 시인들은 가히 아름답다. 기대 또한 무한하다. 나는 평생 주어진 일에만 매진했으나, 비로소 시를 쓸 여유, 세계를 바라다보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유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처음 운전을 배워 올림대로를 달릴 때의 불안을 극복한 통쾌함처럼. 시를 쓰는 일 또한, 고통을 극복한 기쁨이다. 시 한 편의 환희는 오래간다. 그간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써나갈 것이다. 내안에 있을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수많은 어릿광대 타자(他者)들을 환대할 것이다. 꼭 시詩가 아니어도, 시詩 이상으로 살아가는 분들은 더 많이 있다. 내가 쓴 시가 나 자신을 구원시키는 일은 물론, 누군가를 위로받게 하고 견디게 하는 살만하게 하는 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8-08-20 11:19:18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사과를 깎는 시간

사과를 깎는 시간 심 상 숙 사과를 깎습니다 둘레를 깎습니다 붉은 껍질은 꽃이 흔들리며 망설였던 거리입니다 피울까 말까, 시간의 굴레가 영글었습니다 씨앗의 일가들이 칼날을 지나 흩어집니다 푸른 그림자 속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사과를 깎습니다 우리의 둘레를 깎습니다 향기는 공감각적 두께로 앉은 벌레소리입니다 잎사귀 사이로 내린 별빛이 고스란히 부서집니다 대롱거리던 표정과 비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린 시간이 잘립니다 사각사각 일가들은 잘도 헤어집니다 사과를 깎습니다 귀에 익은 발자국 하나가 멀어집니다 칼날이 스쳐간 자국, 그 아래로 멍의 둘레를 따라 나는 고요히 걸어 내려가 봅니다 아주 사소한 이파리 하나가 붉어가는 사과의 볼 위로 나볏이 스쳐 내린 길입니다

2018-08-20 11:19:0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햇반의 온도/당선소감

문득, 여고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고 가슴 설렜던 그때 그 시간이 먼 길 돌아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왔습니다.   늦깎이로 시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갈등과 방황으로 몇 번이고 접을까도 생각 했지만, 어느덧 詩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벌써 하반기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뜻 있는 한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며 힘이 된 문우들께도 고마움을 보냅니다.   길을 열어 주신 대구매일 신문사와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08-20 11:18:47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햇반의 온도

햇반의 온도 여호진 어둠과 형광불빛이 통성명을 하는 늦은 저녁 식탁은 벼랑도 없는 사막을 펼쳐놓았다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유령처럼 흘렀다 나의 취항이 끼어들 틈이 없는 완벽한 레시피 뜨거움 속에 없는 온기를 찾아, 돌아서면 허기가 부풀어 오른다 풍경을 밀어낸 편의점 뒤쪽에서 면벽하는 내일이 된 시간 몸을 있는 대로 구겨 넣은 가파른 등에 방부된 푸른 불빛이 그렁그렁 파문을 그린다 허기의 집은 텅빈 유곽처럼 밤과 함께 깊어진다 피가 따뜻해지는 골목이 있었다 자꾸만 거짓말이 되어가는 오늘의 온도 말고 집밥이라는 말을 따라 조팝꽃처럼 퍼지던 식구들 기억 속의 집은 너무 멀어 발목을 내놓은 채 갇혀버렸다 입김처럼 흩어지는 만개한 적막 온몸에 오돌토돌 열꽃을 피운다 제풀에 익은 꽃이 물집처럼 터지고 늘 공복인 그림자가 뜯겨나간 손톱으로 밤을 할퀴며 선회 한다 꾸역꾸역 나를 파먹고 있다 한 세계를 욱여넣고도 속일 수 없는 허기로 밀폐된 바깥이 너무 멀다

2018-08-20 11:18:09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물의 과외공부-당선소감

-하늘을 날고 싶은 물고기- 보이지 않는 벽은 뚫기도 어렵다, 만 리길도 아닌 한 길속에 있다는 언어를 잡기위해 손바닥보다 작은 낚시대 가냘픈 손잡이에 숨어있는 언어를 부르며 낚시 끝에 쉽게 모습을 주지 않는 시어를 찾아 멀고 깊은 하늘에 낚시를 던진다. 별빛아래 까만 피를 흘리며 시리도록 눈을 끌고 점점 깊이 빠져들어 낚시 대와 나란히 하얀 바다를 걸어가고 있다, 고기야 차라리 낚시 대로 나를 낚아가라, 진한 커피향의 구수함 같은 연륜이 있고 중후하며 깊이 있는 노년의 향기를 같기 위해 글을 쓰면서 중도에서 좌절의 벼랑을 닥칠 때 마다 도망하고픈 날이 많았지만 안개를 벗은 태양은 더 맑고 찬란하다는 학교 선배님 위로에 용기를 내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길, 점심시간에 걸려온 시니어 문학상 당선 소식은 혹시 잘못 들었나 하고 멍하게 귀에 남은 여운을 확인하고서 가슴이 뛰기 시작 했습니다. 시니어 문학상 당선소식은 고기가 하늘을 날 것 같습니다.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에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큰상을 주셔서 뒤늦게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이 점점 잃어가는 노후를 뜻있고 보람을 가질 수 있는 글쓰기는 건강과 자부심을 불어넣는 맑은 샘물 같아 다시 한 번 매일신문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용기를 주시며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꾸준히 지도를 해주신 마경덕 선생님, 그리고 좀 더 깊고 세심한 글을 강조하시는 맹문재 교수님과 시는 시어가 쉽고 감동할 수 있어야 하는 새로운 발견이라고 말씀을 늘 해 주시는 공광규 선생님께 진심으로 큰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많이 부족한 저의 글에 빛을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오래토록 남을 수 있는 글을 쓰도록 힘쓰겠습니다.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2018-08-14 05:00:00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민윤숙 창이 큰 찻집에서 가스등 마주하고 차를 마신다. 창 밖에는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다 하지 못한 사랑 녹색 등 호롱 속에 가두어 놓고 여인은, 짐짓 아무 일도 없는 듯 단단한 미소로 창가에 비켜 앉아 있다.

2018-08-13 15:32:03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민윤숙 창이 큰 찻집에서 가스등 마주하고 차를 마신다. 창 밖에는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다 하지 못한 사랑 녹색 등 호롱 속에 가두어 놓고 여인은, 짐짓 아무 일도 없는 듯 단단한 미소로 창가에 비켜 앉아 있다.

2018-08-13 11:52:01

레드팀/마이카 젠코 지음/강성실 옮김/스핑크스 펴냄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적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손자병법에 나오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탁월한 전략가적 기질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현재 나의 상황을 누구보다 냉철하게 분석해 나의 약점이 무엇인가를 콕 집어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구도 속에서 국가, 기업, 조직은 살아남을 뿐 아니라 더 나아지기위해서는 이쪽의 쇄신만이 아닌 저쪽의 입장도 함께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예측하고 행동할 것인가? 국제 안보 전문가인 저자 마이카 젠코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레드팀'(Red Team) 활동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즉 레드팀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의 여부는 기업들에 경쟁에서의 우위를 가져다주며, 중요한 정보 판단의 허점을 찾아주고, 위험한 군사작전에서 그것을 실행하기 이전에 문제점을 찾아준다. 덧붙여 레드팀을 조직하고 그 권한을 부여하는 방법과 그들이 찾아낸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까지 보여주고 있다. ◆레드팀이란 무엇인가 레드팀의 역사적 연원은 13세기 로마교황청에 가 닿는다. 로마가톨릭교회 초창기 1천여 년 간은 성인 추대에 다소 무계획적이었다. 그 결과 지역마다 성인의 수가 넘쳐났다. 이에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성인추대의 신성화와 정통성 확보를 위해 시성과정에 개입, 성인 후보자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권한이 있는 조직이 필요했다. 일명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임무는 성인으로 추대된 후보자들의 덕행과 '기적을 행했다'는 평가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악마의 변호인 개념을 이어받아 냉전시기에 미국 군조직에서 자생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 레드팀이다. 레드팀은 1960년대 초 워게임 이론에 적용되는 접근법과 랜드(RAND)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으로 미 국방부가 전략적 결정을 평가하기 위해 활용한 시뮬레이션에서 점점 구체화됐다. ◆레드팀의 활동 사례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로 2천996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있었다. 이 테러 이전에 미 연방항공국 산하에서 활동했던 레드팀은 민간 항공사에서 보안상 결함을 발견하고 수차례 개선점을 건의했다. 그 전에 레드팀은 1996년 '마르코 폴로 작전'으로 불린 취약점 평가를 실시한 바 있다. 이 작전은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서 미국행 항공기에 폭탄을 밀반입하는 가상실험으로 모두 44건의 폭탄 밀반입 시도 중 단 한 건도 걸리지 않았다. 또 톱니 모양 칼날의 사냥용 칼을 바지에 넣고 뉴올리언스 국제공항 3곳의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등 약 1년간에 걸쳐 주요 공항 보안구역에 접근하는데 95%의 성공률을 보이기도 했지만 미 연방항공국 관료들은 이 정보들을 묵살하고 말았다. 그 결과 9'11테러범들을 미국 내 항공사들과 공항들의 전반적인 보안체계를 자신들에게 이롭게 이용, 대참사를 일으켰다. 2002년 미군 역사상 최대 규모로 기획된 가상합동훈련인 '밀레니엄 챌린지 2002'. 육군 중장 벨이 지휘하는 350명의 미국 블루팀(아군)과 퇴역 해병대 중장 폴 밴 라이퍼가 지휘한 적국을 모델로 한 90명의 레드팀과의 한판 전투에서 레드팀은 상상도 못할 다소 기만적인 기습작전으로 10분 만에 블루팀을 초토화시켰다. 미사일 공격을 추적해 요격해야 할 항공모함전투단의 이지스 레이더망은 마비돼 제 기능을 못했고 항공모함과 여러 척의 순양함, 5척의 양륙함정을 포함한 19척의 미 함선들을 침몰했다. 결국 가상 적군의 놀라운 위력에 밀레니엄 챌린지 2002 참가자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자는 이외에도 15건의 사례를 더 분석해 다양한 레드팀의 활동을 보여준다. ◆레드팀은 만능키인가 제아무리 뛰어난 전략과 무기체계, 용병술일지라도 이를 운용하고 결정하는 리더가 얼마만큼 그 유용성을 취사선택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고금의 교훈이다. 마찬가지로 레드팀도 조직의 이익, 목적, 능력을 시뮬레이션, 취약점 조사, 대체 분석 등의 기법을 통해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체계화된 과정일 뿐이다. 그것이 외국 군대든 경쟁업체나 악의적 해커든 각각의 결정을 내리는 데 고려해야 할 변수는 너무나 많다. 자기만족, 집단적 사고의 오류, 타성, 편협한 시각은 정치와 정부, 전쟁, 비즈니스에서 큰 실패가 발생했을 때 가장 흔히 진단되는 문제점들이다. 따라서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 '레드팀에 대한 오해와 전망'에서 레드팀의 잘못된 활용, 즉 ▷임시 변통적 접근방식 ▷레드팀 조사결과를 정책으로 오인하기 ▷프리랜스 레드팀의 잘못된 활동 ▷나쁜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 화풀이하기 ▷무엇인가를 밝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레드팀을 잘 이용하기 등에 대해 경고하고 있으며 레드팀 활동을 보다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서 의사결정권자들은 영리하면서 정교하고 통찰력 있는 선택이 요구된다고 했다. 392쪽 1만7천원. ▷지은이 마이카 젠코 미국외교협회 선임 연구원으로 레드팀 전문가로 활동. 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뉴욕에 거주. 다른 저서로 '위협과 전쟁 사이'가 있다.

2018-08-08 13:41:22

둔황의 채색 조형/류융정 지음/판진스 편집/임광순'김태경 옮김/동국대학교 출판부 펴냄

고대 비단길의 중심이자 상업무역의 집산지였으며 4대 문화, 6대 종교, 10여 민족이 하나로 융합된 곳인 둔황(敦煌). 이곳의 모가오(莫高)굴에는 지금까지 735개의 석굴, 4만5천㎡의 벽화, 2천여기의 채색소상, 5좌의 당송시대 처마가 보존돼 있다. 무릇 유적이나 유물은 전쟁, 천재, 인재로 인해 소실이 불가피하지만 이곳 절벽에 조성된 둔황 석굴사찰만은 온갖 풍파 속에서, 그것도 화려한 채색의 미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4세기에서 14세기까지 1천 년간 이어진 중국 불교미술을 대표한 둔황 석굴 채색소상들의 오묘한 비밀을 밝히기 위해 거의 매 페이지마다 둔황 석굴의 화려한 채색을 살린 사진을 싣고 있다. 특히 420번 모가오굴에 있는 세 개의 벽감으로 구성된 전당석굴의 사진은 푸른 빛과 황금 빛의 두 조화로 인해 성스러운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책장을 뒤로 넘기다 보면 당나라 후기 고승상(高僧像)에 이르면 둔황의 채색 조형물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236쪽 1만8천원.

2018-08-08 13:34:46

위대한 식재료/이영미 지음/민음사 펴냄

'현명한 소비가 위대한 식재료를 낳는다'. 이 책의 결론이다. 저자는 내용물의 신선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대형마트의 깔끔한 랩 포장을 경계하고 원산지와 제철을 생각하며 공장 가공품은 앞면보다 뒷면을 살피라고 주장한다. 부계가 개성출신이고 모계가 전북출신이라 음식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혈통과 절대미각의 남편을 만나 팔도음식을 섭렵한 저자는 음식전문가가 아니라 대중예술 평론가이다. 이 때문에 전국을 발로 뛰며 취재도 했다. 덕분에 겨울을 짱짱하게 버티고 자란 포항초가 두껍고 맛과 향이 진하지만 병충해에 약해 겨울철에 재배될 수밖에 없는 시금치라는 것도 알려준다. 첫머리엔 한국인에 가장 기본 식재료인 소금, 쌀, 장을 다루고 이어 채소류와 축산물, 수산물, 과일과 술을 담그는 것까지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먹방과 쿡방이 대세인 요즘, 맛과 색에 천착하기보다 음식의 기본이 되는 식재료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는 저자의 발상전환이 신선하다. 376쪽 1만6천원

2018-08-08 13:34:0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수제 양복점에서

수제 양복점에서 -김선중 일생을 행사로 끌고 왔거나 끌고 갔거나 하는 일들로 의복들은 다 헤졌다. 갈수록 허물어지던 누추를 한 벌 정장으로 지탱해왔던 것이다. 수제 양복점에서 양복을 맞췄다. 그 어떤 의식도 없는 무료한 양복 한벌을 맞췄다. 자꾸 색상에서 버려진 듯 또는 신세진 듯 주변의 색과 나는 점점 구별된다. 이것은 철저한 소임인 듯 은폐술이거나 소외의 풍이다. 단추들은 인심이 후하게 바뀌었다. 주머니는 그 어떤 일탈의 비상금도 필요 없음으로 형식적이어도 무방하다. 등판은 여분의 치수를 조금 앞쪽으로 구부려야 할 것이다. 그에 맞춰 어깨는 더 이상의 상승의 힘을 주문하지 않기로 한다. 왼쪽 젖 가슴 위의 견장들, 이젠 흙냄새 좀 맡으라고 바지통을 널찍하게 잡았다. 잘 삭힌 몸, 녹이 많이 슨 몸 가봉(假縫)이 끝나고 잘 맞춤된 옷은 관(棺)을 닮았다.

2018-08-06 11:26:3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대상-논픽션]뒤로의 여행⑥

"살아 있어 고맙다." 그날 장모님은 전남 광양군 진월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순천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강릉까지 종일 달려오면서 차멀미로 물 몇 모금으로 버티시고도 누워서 인사하는 자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뒤로의 여행 후기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먼저 나의 후회는 어떤 것들인가를 살폈다. 첫 번째는 효도였다. 효도는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그동안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효도란 부모님께 산해진미를 대접하는 것도, 화려한 옷을 사다 드리는 것도, 외국 여행을 시켜드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부모님의 말씀을 살갑게 들어주고, 소찬의 밥을 함께 먹고,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는 작은 일들에 부모님은 더 행복해하신다는 걸 몰랐다. 그런 효도를 내일 해야지, 이다음에 해야지, 하고 미루고 미루다, 어머님이 먼 길 떠나고 나서야 효도를 생각한다는 건 후회막급이었다. 두 번째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는' 어느 신문 칼럼에서 읽었던 글이 여행 후에야 진하게 마음에 새겨졌다. 그동안 나는 곁눈질 하지 않고 열심히 가족을 위해 노력하면 가장의 의무도 가족에 대한 사랑도 일정 부분 달성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변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의식이었다. '표현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을 대입해보니 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은 밑바닥이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의 말을 주고받아야 행복이 싹트는 비결임을 모르고 지냈다. 세 번째는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말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았다. 소확행은 복잡하고, 다양하고, 물질만능주의인 현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삶의 방식임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소확행은 삶 속에서 사랑을 키우고 표현력과 적극성을 갖게 해준다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바로 내 마음을 적응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첫날 세 가지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문 앞에서 작은 연초록 잎 사이로 담회색의 꽃대를 밀어 올려 연분홍 꽃을 세 송이나 피운 앵초 꽃이 앙증맞은 얼굴로 아침 인사를 했다. 평소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일이었지만 소확행을 적극적으로 살핀 결과였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자 아침 기분이 상쾌했다. 낮이었다. 책을 읽다 말고 문득 생각났다. 엊그제 손녀가 주고 간 생일축하 손 편지를 꺼냈다. 초등학교 육학년인 외손녀의 편지를 반복해 읽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생신 축하드려요.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소중한 분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아프면 제일 먼저 달려와 병원도 가고 또 위로해주셨지요. 얼마 전에는 엄마 아빠 사이가 안 좋다고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안타까워하시며 바로 해결해주셨지요. ……중략…… 할아버지가 항상 강조하시는 웃어른께 인사 잘하기, 나쁜 말 쓰지 않기, 공공장소에서 예의 지키기, 친구에게 양보하기, 등을 실천하면 어른이 되었을 때 큰 장점이 된다는 할아버지 말씀 잊지 않을게요. 할아버지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가끔 길게 말씀하실 때가 있는데 짧게 말씀해주세요. 햇살 좋은 날에 사랑하는 손녀 올림' 초등학생 육학년 손녀의 솔직한 편지를 읽으며 흐뭇함이 가슴 한가득 밀려들었다. 특히 편지 끝에 '햇살 좋은 날'이라는 봄날을 표현한 편지를 들고 나는 한참 동안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오후였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약은 먹었느냐고, 그리고 덧붙인다. 컴퓨터 그만 좀 하라고,…… 얼마 전 안과에서 망막 정맥 폐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말했다. 계속 치료를 해도 완치보다는 병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데 불과하다고. 그 말을 들은 딸이 며칠 후 눈에 좋다는 영양제 두 종류를 사다 주곤 복용 여부를 챙기는 것이었다. 이 또한 소확행의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여 생각했다. 딸이 두 아이를 키우는 바쁜 와중에도 약을 고르고 약의 복용 여부를 챙기는 마음이 고마웠다. 가족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알뜰살뜰 챙겨주겠는가 싶었다. 나는 오늘도 가족에 대한 사랑 표현을 딸로부터 배우며 소확행 하나를 보탰다. 뒤로의 여행 후 나의 결론은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삶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판단했다. '삶은 주문을 외우며 헤쳐 나가는 가시덤불'이라고.

2018-08-06 11:26:09

왼쪽부터 한강 '소년이 온다', 김성동 '국수', 진천규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출판사 제공

문 대통령이 휴가 중 읽은 책 '국수' '소년이 온다' '평양의 시간은…' 베스트셀러 될까?

문재인 대통령이 여름 휴가 중 읽은 책들을 보면 대통령이 고민하는 국가 현안을 알 수 있다. 청와대가 3일 밝힌 도서 목록은 소설 '소년이 온다'와 '국수', 방북취재기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이다. 각각 근현대사 문제와 민중의 삶, 북한의 현재 모습을 화두로 삼고 있다. ◆ 한강 '소년이 온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미권의 권위 있는 문학상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작가 한강은 철저한 고증과 취재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전면으로 다뤘다. 참혹한 상황 속에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2017년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말라파르테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폭력의 문제를 천착하면서 인간성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216쪽, 1만2천원. ◆ 김성동 '국수' 김성동 소설가의 여섯 권 분량의 장편소설 '국수'는 1991년 문화일보 창간호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27년 만인 지난달에 완결을 낸 작품이다. '국수(國手)'는 바둑에서 쓰는 말로 알려졌지만 애초 소리, 무예, 글씨, 그림 등 나라 안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작가는 전했다. 임오군변과 갑신정변 무렵부터 동학농민운동 전야까지 각 분야 예인과 인걸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충청도 예산·덕산·보령을 중심으로 바둑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소년,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름난 화적이 되는 천하장사 천만동 등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조선 말기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풀어냈다. 6권 2천328쪽, 9만원. ◆ 진천규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재미언론인 진천규 기자가 작년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네 차례 단독 방북 취재를 통해 포착한 평양의 모습을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안에 담았다. 진 기자의 방북 취재는 2010년 천안함 사건 후 우리 정부가 취한 대북제재 조치인 5.24 조치 이후 처음이다. 평양은 물론 원산, 마식령스키장, 묘향산, 남포, 서해갑문 등을 돌아보고 지난 10여 년간 숨겨져 있던 북한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평양냉면 붐을 일으킨 평양 옥류관 주방, 려명거리 73층 아파트 내부, 단둥-평양 여객열차에서 찍은 평안도 평야지대 추수 장면, 실제 평양지도 등을 처음 공개한다. 316쪽, 2만원.

2018-08-03 20: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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