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백석이 사랑한 여인 기생 '진향'…『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승은/ 책이 있는 마을 최근 한 예능 프로에서 시인 백석이 지극히 사랑했지만 말 한마디 못 걸어 보고 친구의 아내가 된 '난'이라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첫눈에 반한 여인을 보고 싶어 경남 통영에 세 차례나 갔었고, 실연의 아픔을 술과 시로 달래던 그가 남긴 시는 통영 충렬사 앞 '백석 시비'로 남아있다. 뚜렷한 이목구비, 긴 목, 큰 키로 뭇 여성을 설레게 하던 당대 최고의 모던보이 백석이 사랑한 여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 불을 지핀 셈이다. 한편 이 여성만큼이나 백석의 여인으로 유명한 이가 바로 길상사가 된 요정 대원각을 법정 스님께 시주한 기생 진향(眞香)이다. 그는 자신이 나타샤라고 주장하는 여러 여성 가운데 가장 유명한 여인으로, 자야(子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소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문학인과 대중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시인 백석과 그가 사랑했다고 알려진 여인 기생 진향의 달달하고 애절하고 비극적인 로맨스 소설이다. 작품은 시인과 사랑을 나누었던 기생 진향의 시각에서 서술됐다. 지은이는 특별한 작품발표 경력이 없는 신진 작가 이승은이다. 저자는 자야의 자전적 에세이 '내 사랑 백석', 안도현의 '백석평전' 등을 참고해 시인과 기생의 사랑을 풀어냈다고 한다. 소설은 이들의 사랑이 끝난 뒤, 만주로 간 백석과 5년간 연락이 끊긴 진향이 대원각을 찾아온 송지영으로부터 두루마기를 돌려받으며 시인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명 진향의 어린 시절 집에서 부르던 이름은 하늬, 본명은 김영한이다. 1916년 서울 관철동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잃고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 속아 알거지 신세로 기생이 된다. 기명 진향은 그의 스승 금하 하규일 선생이 붙여준 이름이다. '자야'라는 아호(雅號)는 훗날 백석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또 생전 김영한 여사는 자신이 나타샤라고 주장했으니,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나타샤=진향=자야'라는 공식을 기억해야 한다. 소설 속 진향은 기생이 되기 전, 하늬일 때 그의 집에서 소년 백기행을 만난다. 이때 기행이 집에 두고 간 '테스' 책은 두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신여성인 진향의 꿈을 대변하는 장치다. 가난 때문에 결혼한 남편이 초야도 치르지 않고 우물에 빠져 생을 마감하면서 과부(寡婦)가 된 영한은 조선권번(券番)으로 간다. 이후 금하 선생으로부터 국악의 바탕을 전수받아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리고 예기로 인정받는다. 소년과의 만남이 기억으로 남을 무렵, 재능을 높이 여긴 해관 신윤국의 도움으로 그는 1935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하지만 그해 해관이 홍원형무소(함흥)에 투옥됐다는 소식을 듣고 유학을 포기하고 함흥으로 나선다. 이곳에서 국수를 먹으러 온 백석을 우연히 또 보게 된다. 한편 진향은 면회가 금지된 해관을 만나게 해 줄 '높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권번에 다시 찾아간다. 이곳에서 이들의 세 번째 만남이 이뤄진다. 극적 재회는 운명적 만남을 강조한다. 실제 이들의 첫 만남은 영한이 기생이 된 뒤인 1936년이다. 당시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있던 백석이 동료교사 송별회를 하러 함흥관에 갔을 때다. "오늘부터 진향 당신이 내 몸을 맡아주오." 성급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로 파격적으로 시작된 이들의 연애는 3년간 이어진다. 백석이 만주로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지만 백석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다. 결국 자야는 자신을 두고 두 번의 결혼식을 올린 백석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운명으로 여기고 청진동으로 이사한다. 다시 자야를 찾아온 백석은 청진동 집에 함께 살며 살림을 차린다. 백석은 만주에 함께 가자고 하지만 자야는 류춘기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며 끝내 그를 혼자 떠나보낸다. 1939년, 이렇게 이들의 3년은 끝이 난다. 북방의 작은 방에서 시인과 기생이 나누던 애틋한 추억과 사랑싸움, 고난과 반대에도 백석이 자야를 택하고 다시 서울로 간 이야기, 청진동 집에서 키운 사랑 등은 소설이기에 가능한 문학적 재구(再構)다. 이 연인의 뜨거운 사랑은 대범하고 낯뜨겁기까지 하다. 대담한 사랑과 동거생활에 대한 묘사는 사랑한 연인이었지만 헤어져야 했던 두 남녀, 특히 자야의 슬픔과 기다림은 더욱 극대화했다. 이 밖에 책은 실존 인물, 지명, 역사적 사건, 작품 등을 언급해 이야기를 더욱 촘촘하게 만든다. 책 마지막 부분 소개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백석의 작품 가운데 마지막으로 발표된 시다. 독립 이후 그는 북한으로 가 두 번 결혼하고 1996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월북시인이 아니라 평안도 정주가 고향인, 분단 전에 북한에 머무르고 있었던 재북시인이다. 1987년 해금으로 그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높아질 무렵 자야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진향은 그가 자전 에세이를 펴내면서 '백석이 사랑한 여인'으로 주목받았다. 광복 이후 각계 인사들과 교분을 쌓고 영향력을 펼쳐오던 그는 대원각이라는 요정의 주인이 된다. 대원각의 원래 주인에게 대원각을 돌려주겠다고 했던 진향은 별안간 '무소유'에 감동해 1987년 갑자기 법정 스님에게 희사한다. 길상사와 대원각이 애틋한 사랑의 표상처럼 인식된 것도 이때부터다. 기생 진향은 '길상화'라는 법명을 얻었고, 길상사에는 길상화 공덕비와 사당이 자리 잡았다. 백석 평전을 쓰고 자야 여사와 한동안 왕래했던 영남대 이동순 교수는 추천글에서 "기생과 시인, 승려를 엮으려는 세간의 시도는 비속하고 무리한 엮어내기"라며 "백석이 알았다면 착잡하고 만감이 교차하며 거기서 이름을 빼라고 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는 콘서트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번에는 소설이다. 사실 관계를 떠나, 백석 시인,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이때, 문학적 상상으로 백석을 다시 만나보는 건 어떨까. 416쪽, 1만5천원.

2017-09-09 00:05:01

[반갑다 새책] 동해안 민속을 기록하다

포항지역의 민속학자이자 전 청하중 교장인 박창원(60) 씨가 30년 동안 동해안 지역의 민속을 조사해 정리한 '동해안 민속을 기록하다'라는 역사'민속 책을 출간했다. 저자가 민속학에 입문한 것은 국어교사였던 1990년대 중반. 대학원에서 민요 연구로 논문을 쓰면서부터다. 이후 근 20년 동안 한국민속학보를 비롯한 학회지에 민요, 설화, 민속놀이, 민간신앙, 풍수설화에 관한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해왔고 올 8월 교장 퇴임을 기념해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저자는 교직생활 틈틈이 지역을 답사하면서 조사한 포항지역의 세시풍속과 민속놀이를 집대성했다. 동해안 지역 민속을 풍속, 민속놀이, 공동체신앙, 기우제, 별신굿, 풍수, 신화, 전설 등 8가지 영역에서 접근하고 있다. 지역민들의 정서 속에 녹아 있는 민간신앙의 원리와 거기에 담긴 지역민의 의식세계를 섬세한 필치로 들여다보고, 신화와 전설 속에 투영된 상징과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별신굿의 유래와 각종 풍속, 연오랑과 세오녀, 쌀바위 전설 등 신화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327쪽, 2만9천원.

2017-09-09 00:05:01

[반갑다 새책] 나쁜 남자가 즐기는 유머 돈 되는 건배사

기업체 관공서에서 연 150여 회의 강연과 축제,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는 행복충전사 이상국이 힐링 토크북을 펴냈다. '낙하산과 얼굴은 펴져야 살고 그래야만 인생도 활짝 펴진다'는 이 씨의 지론처럼 책에는 긍정 에너지와 사랑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미소를 얻는 유머 스피치, 분위기를 상큼 달달하게 만드는 소통 유머, 위트와 재치로 무장하는 섹시한 대화법이 빼곡하다. 이 책의 코드는 유머다. 유머는 '흐르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말'이라는 정보가 흐른다. 어떤 말은 상대를 끌어당기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반면 또 어떤 말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렇게 상처를 주는 말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인상을 쓰게 하지만, 상대를 끌어당기는 말은 호감을 갖게 하고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 책의 두둑한 보너스는 건배사 요령. 사회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건배사에 대해 저자는 '건배사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기회의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재치 있는 건배사를 통해 자신을 알릴 중요한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306쪽, 1만3500원.

2017-09-09 00:05:01

[이종문의 한시 산책] 돌아선 남자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절규

치마를 걷고[褰裳(건상)] 작자 미상 그대 날 사랑하고 생각해 주신다면 子惠思我(자혜사아) 치마 걷고 강을 건너 따라 가겠어요 褰裳涉溱(건상섭진) 하지만 그대 나를 생각지 않는다면 子不我思(자불아사) 어찌 다른 사람, 다른 사람 없겠어요 豈無他人(기무타인) 저 미치광이, 완전 돌았구나, 흥. 狂童之狂也且(광동지광야차) 그대 날 사랑하고 생각해 주신다면 子惠思我(자혜사아) 치마 걷고 강을 건너 따라 가겠어요 褰裳涉洧(건상섭유) 하지만 그대 나를 생각지 않는다면 子不我思(자불아사) 어찌 다른 총각, 다른 총각 없겠어요 豈無他士(기무타사) 저 미치광이, 완전 돌았구나, 흥. 狂童之狂也且(광동지광야차) *溱(진), 洧(유): 강의 이름. 그 음란성으로 소문이 파다하게 나 있는, 하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은 '시경'(詩經) 정풍(鄭風)의 연애시다. 보다시피 작중 화자인 여인의 사랑은 조건부 사랑이다. 애인이 만약 사랑해주면 치마를 걷고 큰 강물이라도 건너 애인을 따라나서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른 남자 품에 확, 안겨버리겠다고 은근히 공갈을 치고 있다. 이 세상에 남자들은 하늘의 별보다도 더 많으니까. 그 많은 남자들이 죄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 속의 가정(假定)이 현재 상황 속의 가정이란 점이다. 지금 사랑하는 그 사람이 돌아선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대놓고 상대방을 미치광이라고 규정하면서, '지금이라도 돌아오라고, 돌아오면 치마를 걷고 큰 강물이라도 건너서 따라나서겠다고' 절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가 치마를 걷는다는 것은 하라는 대로 뭐든지 죄다 하겠다는 뜻. 그러니까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뜨겁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뜨겁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으면 '다른 남자 품에 확 안겨버릴 거라고' 어름장을 놓으며 밀당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여인의 가슴속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같이 멋진 여인을 배반한 남자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뒤범벅이 되어 격렬하게 들끓고 있을 뿐이다. 특히 각 연의 마지막 구절은 이러한 여인의 미묘한 심리를 내용으로 뒷받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호흡과 리듬을 통해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넉 자로 이어지던 각 구절의 글자 수가 여섯 자로 돌변하면서 호흡과 리듬이 아주 급박하게 휘몰아치고, 바로 그 급박한 호흡과 리듬 속에 격한 분노로 치를 떨고 있는 여인의 아픈 몸부림까지 아주 또렷하게 포착되어 있다. "단 한순간만이라도/ 그대와 내가/ 서로 뒤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대가 알게 될 테니까요./ 내가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요." 도나 뽀쁘헤의 시 '한순간만이라도'의 전문이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여자를 걷어차고 딴 여자 좇기에 여념이 없는 미치광이여! 부탁한다, 제발 그러지 마라. 그러다가 난데없이 한여름에 서리가 내리고 한겨울에 돌연 우르르 쾅쾅 천둥이 칠라.

2017-09-09 00:05:01

대구동구문화재단 문무학 대표가 자신의 문학 인생을 돌아보는 여덟 번째 시집 '누구나 누구가 그립다'를 펴냈다.

시인의 天刑 88개의 그리움…『누구나 누구가 그립다』

'오늘을 사는 건 내일의 그리움을 만드는 일/ 내일, 나는 그 어떤 일이 아니라 그 누구를 그리워하고 싶다.' 가을 서정과 남자의 우수가 짙게 밴 서시 한 편이 눈길을 끈다. 우리 정형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무학 대구동구문화재단 대표가 시집을 펴냈다. 1983년에 첫 시집 '가을 거문고'가 나온 지 34년 만이고 문학 인생 40년을 돌아보는 여덟 번째 시집이다. 지난해 발간한 시집 '홑'에 이어 1년 만에 나온 이 시집은 2004년 이후 계속돼 온 그의 실험적인 시조 작업과 다르게 이번엔 삶의 보편적인 모습들을 담은 서정시로 구성돼 있다. 시조 작법(作法)과 거리를 두었다고 말하면서도 대부분 작품들이 시조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차용(借用)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작가는 시집 말미에 '한국 정형시의 주소를 검색하다'를 통해 이 책이 시와 시조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시조의 위기에 대한 고민도 풀어놓는다. "시조는 한국 정형시의 대표인데 정형성 틀에 갇혀 스스로 제약하고 있어요. 시조가 형식을 다양화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장르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이 시집엔 88편의 작품이 5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작품들은 '삶=그리움'이란 등식을 만들며 그리워하는 삶을 일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일반화하고 있다. 시집 제목과 시인의 권두시는 '그리움'이란 고리를 만들어 시집 전체 흐름을 규정하고 있다. 2부 '예술을 읽다'에서 저자는 음악, 미술 작품에서도 그리움을 꺼내 시어로 변주하고 있다. '그리움을 던지다'의 3부에 이르면 그의 그리움은 더 짙은 향을 발하고 '그 여자' 연시(聯詩)에서 시인의 '가을 타기'는 절정을 이룬다. 4부 '자연을 듣다'에서 작가의 관심은 잠시 자연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리움의 끈은 여전히 이어진다. '감나무에 대한 기억'에서는 소쩍새 울음소리에 그리움을 풀어놓기도 하고 '가을 구상화'에서는 귀뚜리 울음소리를 그리움에 얹기도 했다. 그의 그리움과 관심은 5부(삶을 만지다)에서 물상(物象)과 공간으로 향한다. 휴게소에서 라면을 먹으며 '꾸불꾸불 걸어온 내 길'을 유추하고 시장 돼지국밥 집에서는 '씹어도 씹힐 것 없는' 자신의 삶을 발견하기도 한다. 시인은 눈에 비친 모든 것들을 삶에 비유함으로써 그 크기에 맞는 그리움을 산뜻한 시어로 입히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최근 칼럼집 '왜 문화인가'를 펴냈다. 저자가 그동안 일선 문화현장에서 문화 행정가로서 느낀 소감이 담겨 있다. 정부, 지자체가 문화예술가를 왜 지원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거시적 관점에서부터 우리 일상 속 미시적 사안까지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다. 시민들의 문화 향유 방식에 대해서도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시민들이 문화를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인식하거나 어렵고 고급스러운 대상으로 여겨 스스로 문화를 멀리하고 있다는 것. 가을을 많이 타느냐는 질문에 시인은 단락과 장(章)에 그리움을 나열했지만 사실 그 행간엔 '아쉬움'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놓아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많아지고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그리움으로 전이(轉移)된다는 것. "시인들의 행위는 따지고 보면 모두 '그리움을 만드는 일'과 관련되어 있어요. 시작(詩作) 자체도 그리움을 형상화해가는 과정이죠, 나이가 들면 아쉬움과 친해지고 그리움에도 익숙해지겠지요. 시인에게 그리움은 '천형'(天刑)이자 평생 화두죠."

2017-09-09 00:05:01

[반갑다 새 책] 1인 가구 살림법

1인 가구 살림법/ 공아연 지음/ 로고폴리스 펴냄 '혼술' '혼밥' '혼영' '혼공'…. 1인 가구 500만 시대다. '1인 가구 살림법'은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스마트한 살림 지식을 전해온 트위터리언 '세송'이 그간 트위터로 공유해왔던 살림 노하우와 혼자 살기 필수 기술, 정보를 엮어 쓴 책이다. 저자가 13년간 혼자 살림을 통해 체득한 요령을 150가지로 담았다. 저자는 집 알아보기, 계약하기, 집주인과 갈등 해결하기 등 집 구하기부터 청결한 생활을 위한 청소와 세탁 방법, 건강한 혼밥을 위한 주방기구와 살림살이 장만, 장보기와 요리법,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 정리와 수납 그리고 인테리어까지. 기본 살림 기술은 물론 건강하고 안전하게 1인 가구로 살아가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또 불안과 공포 등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해결책도 알려준다. 몸도 마음도, 돈도 시간도 혼자 관리해야 하는 이들에게 자기관리는 필수다. 원하는 대로 생활을 설계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지칠 수 있는 것이 혼삶이다. 의지든 아니든 1인의 삶을 선택한 이들의 '살림템'이 여기에 모두 실렸다. 384쪽, 1만5천800원.

2017-09-02 00:05:01

[반갑다 새책] 독심술·염동력·텔레파시와 뇌

최근 급상승 중인 뇌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 주고자 저자 마리오 마르쿠스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익힌 지식을 풀어냈다. 막스플랑크는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신예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가 몸담았던 곳이기도 하다. 뇌과학자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뇌과학 연구는 교양 부문에서도 '핫'한 주제가 됐다. 쏟아져 나오는 질문은 그러한 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인간의 고유한 능력과 한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있다.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내는 독심술, 생각만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염동력, 생각만으로 의사소통하는 텔레파시와 같은 초능력 행위가 학문적으로 인정받고 과학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명백한 기술적 성과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여전히 적다. 책은 보지 않고 카드 뒷면을 맞추기, 유리겔라의 '숟가락 휘기'의 비밀, 감각기관을 거치지 않고 뇌와 뇌를 직접 연결해 소통하는 방법, 뇌와 외부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 등 최첨단 뇌과학 영역을 초심리학적 현상에 대응시키며 소개한다. 뇌과학 입문자들도 알기 쉽게. 360쪽, 1만5천800원.

2017-09-02 00:05:01

최근 밀가루 음식이 각종 현대 성인병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식단에서 빵을 '축출'하는 '글루텐 프리'(gluten free)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매일신문 DB

밀가루와 결별 7일, 몸이 달라집니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사증후군, 당뇨, 불면증, 생리불순을 호소한다. 의사들은 시원한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틈틈이 운동하십시오'라는 말로 얼버무린다. 이 책은 이런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값비싼 약, 건강식품을 권유하는 것도, 비싼 수강료를 무는 강의도 아니다. 저자는 단지 한 가지 음식을 끊고 2주만 버텨 보라고 말한다. 그 음식은 바로 '빵'이다. ◆밀가루와 결별한 지 1주일 만에 호전='You are what you eat.' 격언처럼 무엇을 먹느냐가 자신의 몸, 마음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 책은 글루텐 프리 라이프 협회를 설립해 '밀가루 제로' 식습관을 전파하고 있는 저자가 '빵 중독자' 남편을 만나 밀가루 음식을 끊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변화한 과정을 알려준다. 글루텐 프리(gluten free)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저자에게는 심신의 변화가 나타났다. 10년간 그를 괴롭히던 잔병들이 1주일 새 뚜렷한 호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통해 글루텐 중독의 무서움과 증상들을 소개하고 글루텐이 어떻게 각종 병의 원인이 되는지 설명한다. 글루텐 프리 라이프 협회를 찾아온 사람들은 프로그램을 따라하면서 빠르면 3일, 대부분은 2주 만에 마음과 몸의 안정을 되찾는 경험을 한다. ◆라면'파스타'우동에도 글루텐 범벅=최근 밀에 포함된 글루텐이 뇌에 염증을 일으키고 장(腸)에 구멍을 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밀가루 없는 식생활'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크게 늘고 있다.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조코비치가 밀가루 없는 글루텐 프리를 실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골프선수 미셸 위, 빌 클린턴, 슈퍼모델 미란더 커, 여배우 귀네스 팰트로도 '밀가루와의 결별'을 실행하고 있다. 꼭 빵이 아니더라도 유사식품인 케이크, 라면, 파스타, 우동 등 밀가루 음식들은 우리 생활에 깊이 침투해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글루텐을 섭취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식생활 속으로 들어와 버린 밀가루를 배제시킨 외식이나 식사가 가능할까? 대부분 '현실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현미밥, 강황, 된장 등 대체식품을 추천한다. 이 음식들은 비타민B, 커큐민, 무기질 등 영양도 뛰어나지만 진통 완화, 항산화, 항염증 효과가 있어 약리(藥理)식품으로 으뜸이다. ◆글루텐 프리 협회 설립 건강 캠페인=이 책은 과거 '빵 마니아'였던 저자가 글루텐 불내증(不耐症)을 앓고 있는 남편과 2주간 밀가루 끊기에 도전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의 남편은 소화불량, 불면증, 설사 등 지병을 달고 다녔다. 뚜렷한 효과를 체험한 저자는 '빵끊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캠페인 단체를 설립했으며, 이제까지 1만 명에게 그 '복음'을 전했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 식사를 한다. 그러나 그 섭생이 오히려 질병을 초래하기도 한다. 우리가 그토록 즐기던 음식들이 어느새 우리 몸에 '반격'을 시도하는 것이다. 특히 글루텐의 주범으로 불리는 빵이 그 대표다. 저자의 권유대로 지금부터 당장 빵을 끊어보자. 어느 순간 놀라울 정도로 건강해지고 날씬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17-09-02 00:05:01

김동인이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순문예지 '창조' 창간호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김동인을 기억하며…최초 순수문학잡지 '창조'

요즘엔 서점에서 문학잡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문학잡지는 애써 찾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점 한쪽에 조용히 모습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서점 중심에 비치된 잡지 코너에서 선 채로 문학잡지를 읽는 사람들이 흔하게 눈에 띄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시와 소설을 즐겨 읽으면서 시대를 읽고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휴식을 취하곤 했다. 그 풍경의 중심에는 언제나 '문학사상' '창작과 비평' 같은 문학잡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는 지난 역사의 한 부분이 되어가는 문학잡지가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100년 전이었다. '창조'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문학잡지이다. '창조'가 창간된 1919년 2월은 삼일운동을 한 달 앞둔 시점으로, 이 시기 조선의 젊은이들은 독립을 향한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4년이나 계속된 제1차 세계대전이 1918년 11월에 마침내 끝나면서 전 세계는 전쟁의 긴 어둠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전쟁 뒤처리를 위한 승전국 중심의 회의가 개최되었고, 이 회의에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피지배 민족에게 자유롭고 공평하고 동등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결권(自決權)을 인정해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이 소식은 바다를 건너 아시아의 작은 나라, 조선에도 들려왔다. 일단, 2월 8일 동경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제국의 수도 동경에서 조선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독립을 향한 기대와 열정과 희망이 일제 식민지, 가난한 조선 땅에 흘러넘쳤다. '창조'는 바로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창간되었다. 창간을 주도한 사람은 일본 유학 중이던 두 명의 열아홉 살 청년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조선 건설에 부응하는 새로운 문학을 창조해내고자 하였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 '불놀이'와 최초의 단편소설 '약한 자의 슬픔'이 '창조'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문학적 전통이 '창조'에서 시작된 것이다. '창조'를 발행한 두 젊은이 중 한 사람이 김동인이다. 김동인은 평양 대부호의 아들로, 물려받은 유산 일부를 내어서 '창조'를 발행하였다. 이윤을 내기는커녕 당연히 심한 적자였다. 기대와 달리 삼일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독립이 요원해지면서 절망과 무기력이 조선 사회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래도 김동인은 적자투성이의 '창조'를 그해 말까지 계속해서 발행하였다. 그것은 문학에 대한 애정을 넘어, 식민 상태로 전락한 조선 사회 개조를 향한 신념과 의지였다. 식민지 말기 김동인이 일제의 폭력에 굴복하여 친일 대열에 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 그가 지녔던 사회 개조를 향한 신념과 열정, 문학을 향한 애정까지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고 삶에 대한 빛나는 열정을 지녔던 한 젊은이가 폭력적 사회와 직면하면서 마모되어 간 과정은 '식민지'라는 한 시대를 넘어 삶 일반의 차가운 일면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삶의 그런 차가움을 이해하고 차분하게 응시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시선을 우리 사회도 이제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대구대학교 기초교육대학 초빙교수

2017-09-02 00:05:01

[책 CHECK] 속담, 심리학과 만나다

속담, 심리학과 만나다 손영화 지음/ 학지사 펴냄 심리학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은 심리학의 이론과 원리를 배우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속담, 심리학과 만나다'는 심리학의 이론과 원리를 속담을 통해 독자들에게 설명함으로써 심리학에 대해 보다 친숙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 펴낸 책이다. 심리학개론서의 내용을 재구성하고 친근한 우리 속담과의 의미적 연결을 통해 설명함으로써 심리학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 일반인, 중'고생들이 심리학이란 학문 분야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우리가 자주 경험하게 되는 주제를 중심으로 정리한 심리학 개론의 일부 내용과, 심리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경제 관련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속담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하면 심리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현재 계명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소비자광고심리학회 홍보위원장, 한국심리학회 재무이사, 광고학회 학술위원을 역임했으며, 한국소비자광고심리학회 상임이사, 소비자학회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52쪽, 1만6천원.

2017-09-02 00:05:01

[책 CHECK] 산처럼 바위처럼

산처럼 바위처럼 영암추모집 발간위원회 지음/ 삼우애드컴'아르코 펴냄 대구경북의 대표적 경제인인 영암 황대봉 선생의 추모집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삶의 족적과 교육'문화에 대한 식견,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치인 영암의 면모를 재조명한 책이다.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장은 포항 호미곶면 대보리에서 태어난 사연부터 그려진다. 제2장에서는 버스 7대에서 256대의 포항 시내버스 사업을 일군 그의 노력과 일본, 중국 뱃길을 열어 국제적인 사업을 확장해 가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또 교육 불모지인 포항에 기업 이윤 사회 환원 차원의 학교법인 영암학원과 장학사업을 펼친 것을 정리했다. 제3장에서는 국회의원으로서 영암이 보여준 지역민에 대한 사랑과 서민을 위한 대정부 질문 등이 실려 있다. 제4장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영암의 업적을 기록했다. 제5'6장에는 지역 사업 유치와 청암 박태준을 추모하는 글, 제7'8'9장에서는 순리를 따라 살아온 팔십 평생 영암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부록에는 사진으로 보는 영암 선생의 생애, 조사 모음, 연보 등이 수록돼 있다. 232쪽, 054)221-5656.

2017-09-02 00:05:01

작가는 왜?…의문에서 시작하는 명화 감상법

손바닥 위 미술관/ 동요우요우 지음/ 남은성 옮김/ 티핑포인트 펴냄 젖가슴을 드러낸 여자가 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연상케 하는 S자 곡선이 두드러지는 자세를 하고 있다. 여자의 옆에는 하의를 벗은 남자가 있다. 영화 '엑스맨'이나 '어벤져스'의 울버린이나 헐크처럼 근육질 몸매를 뽐내려는 남성이 흔히 상반신을 노출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하반신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남자는 단추를 반쯤 풀어헤친 흰 셔츠를 입고 한쪽 발에만 양말을 신은 채 누워 있다. 얼굴이 붉어질 묘사다. 하지만 이것은 '19금' 영화나 성인만화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1) 이야기다. 의회 해산, 선거권 박탈에 이어 출판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 샤를 10세에 항거한 프랑스의 1830년 7월 혁명을 표현한 그림이다. 그렇다면, 들라크루아는 시민군의 모습을 왜 이렇게 그렸을까. ◆배경을 알면 더 재미있는 명화 미술 작품을 적극적으로 감상하려면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화가의 재치, 도상,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인으로 프랑스에서 미술사와 고고학을 공부한 미술 전문 칼럼니스트 동요우요우가 명화가 재미있어지는 감상법을 제시한다. 동요우요우는 '손바닥 위 미술관'에서 "명화를 해석하려면 그림을 관찰하라"고 제시한다. 저자는 "작품의 세부적인 부분과 인물 표정을 하나하나 따져 '왜?'라고 묻기 시작하면 그림이 흥미로워진다"고 말한다. 우선 그가 권하는 작품은 18점이다. 그리고 '권력' '사랑' '태도' '대도시'라는 키워드로 묶어 명화를 구석구석 뜯어본다. 그림에 관심이 있었다면 한 번쯤 봤을 작품부터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여럿 품은 작품까지.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는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라는 '루브르 3대 유물' 말고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 수없이 많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도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와 황후 조세핀의 대관식' 등과 함께 박물관 드농관 77번 전시실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모으는 명작 중 하나다. 그림 속 여자는 왜 가슴을 훤히 드러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모자는 해방과 자유를, 맨발과 노출된 가슴은 신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남자는? 마찬가지다. 저자는 "바지가 벗겨진 채 죽은 남성은 약탈을 당했고, 아군'적군을 가리지 않고 마구 자행된 약탈은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게 한다"라고 해석한다. 이외에도 이 그림엔 다른 비밀이 숨어 있다. 그림을 마주 봤을 때 '자유의 여신'의 왼쪽에 있는 세련된 정장을 입고 총을 들고 서 있는 남자가 들라크루아 자신이며, 그는 동조의 뜻을 자신을 등장시킴으로써 표현했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 레미제라블에 들라크루아의 이 그림에서 본 구두닦이 소년('여신'의 오른쪽에 있는 소년)을 등장시킨다. ◆비밀을 알려면 숨은 그림을 찾아라 명화는 보기만 해도 좋지만 숨은 뜻을 알면 더 재미있다. 그래서 이 책은 객관적 정보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이미 아는 그림이라도 '샅샅이 관찰'하고 '꼼꼼히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래야 그림 속 인물들이 자신들만의 비밀을 공유한다고.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도 마찬가지다. 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이 그림에서 나폴레옹은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워주러 하고 있다. 하지만 다비드가 처음 완성한 밑그림은 나폴레옹이 스스로 왕관을 쓰는 모습이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유럽 대관식의 전통대로 왕관을 씌우려던 교황 비오 7세로부터 왕관을 뺏어 들고 자신이 스스로 썼고, 이를 지켜본 다비드는 자신이 본 그대로 직접 관을 쓰는 모습을 스케치했다. 하지만 권력지향적인 화가 다비드는 나폴레옹이 지나치게 오만해 보이는 최초의 드로잉 대신에 들어 올린 팔을 황후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워주려는 모습으로 바꿨고, 논란을 피하면서 나폴레옹의 권위를 더욱 강조했다. 나폴레옹의 뒤에 무기력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교황이 주교관 대신 주케토를 쓰고, 밑그림에서보다 작게 그려진 것도 같은 이유다. 우아한 기품을 지닌 20대 아가씨로 보이는 조세핀은 당시 아이를 둘 낳은 40대 이혼녀였다. 이 그림에는 그날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이 여럿 있다. 그중 한 사람은 그림 중앙 귀빈석에 흰 드레스를 입고 앉아 있는 여인이다.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지아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과 조세핀을 탐탁지 않게 여겨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새 황제의 집안이 화목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그려 넣었다고 한다. 카프라라 추기경과 나폴레옹 사이에 서 있는, 짧은 머리카락에 눈빛 레이저를 쏘는 남자는 고대 로마의 명장 율리우스 카이사르(B.C. 100~B.C. 44)다. 이쯤이면 이 그림에서 '진짜'는 무엇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작가 미상의 그림 중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녀의 여동생 빌라르 공작부인의 초상'은 연작이다. 붉은 장막이 드리운 욕조에 들어앉은 두 여인이 걸친 건 귀고리뿐이다. 더 당황하게 하는 건 그림 왼쪽 여동생이 언니의 젖꼭지를 만지는 모습이다. 당시 성행한 동성애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란 해석도 있지만, 저자는 동생의 행위를 통해 가브리엘이 임신 중이라는 것을 유추한다. 가브리엘은 앙리 4세의 정부(情婦)였다. 가브리엘이 보란 듯이 든 반지도, 이후 그려진 시리즈물에서 차례로 등장하는 아이들도 이들의 관계를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빗장'에서 한 손으로 여인을 안고 다른 손으로는 빗장을 걸어 잠그려는 '멀티플레이'를 하는 남자와 상남자의 힘에 못 이겨 휘둘려 안긴 여자는 어떤 사이일까? 얼핏 보면 난폭하고 강압적인 범죄현장 같은 이 그림이 사실은 스릴있는 연애라는데. 책은 명화에 구석구석 질문을 던지면서도 함께 보면 좋을 추천작, 그리고 화가의 항변까지 담았다. 그저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숨겨진 또 다른 의미는 없는지' ' 다른 해석은 없는지' 찾아보게 하는 마력이 있다. 명화를 감상할 준비가 다 된 것 같은 기분에 아는 그림을 '폭풍 검색'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416쪽, 1만8천원.

2017-09-02 00:05:01

최수남 작 '커뮤니케이션'

[내가 읽은 책] 세계의 변화를 보여주다

세계의 변화를 보여주다 『필립 코틀러의 마켓 4.0』 필립 코틀러, 허마원 카타자야, 이완 세티아완 지음/이지원 옮김/ 더퀘스트/ 2017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평생직장을 갖기가 어렵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대인들은 교육을 위하여 몇 번이나 이사를 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맞는 적성이나 여건으로 여러 번 직업을 바꾸기도 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에 폭넓은 정보는 앞으로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켓 4.0'은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고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사상가 6인에 포함된 필립 코틀러, 인도네시아 마케팅 컨설팅 회사 마크플러스의 창업자이며 '마케팅의 미래에 영향을 준 50인의 구루'로 선정된 허마원 카타자야, 온라인 마케팅 잡지인 '마케티어스'의 편집장인 이완 세티아완 세 사람이 쓴 책이다. 1부 4차 산업혁명이 변화시킨 새로운 마켓 트렌드, 2부 디지털 시대에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끌 새로운 전략, 3부 디지털 시대에 마케팅의 전략적 활용 방법 등, 총 3부 11장으로 구성되었다. 1부는 세계에 대한 관찰의 결과를, 2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3부는 우리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시대에 필요한 전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미래 소비자의 자화상이다. 그들은 연결되어 있지만 산만하다…. 인간이 주의를 지속하는 시간이 2000년에는 평균 12초였지만 2013년에는 8초로 줄었다고 밝혔다…. 모바일 기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면서 즉각적인 관심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어마어마해졌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변화하는 사회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변화도 볼 수 있다. 단순히 마케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접하는 내용이다. 길을 걸어가다가 고개를 들어보라. 주변보다 휴대폰에 시선을 집중하는 사람을 쉽게 찾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서점 운영 회사인 보더스와 비디오 대여 회사인 블록버스터 같은 대형 소매 업체는 디지털의 힘을 빌린 신생 기업들의 혁신으로 전복당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자주 보이는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예컨대, 대표적 예가, 사례로'뿐만 아니라 예시나 사례를 말해주기 위한 것들이 많다. 과거의 사건을 예시로 들고, 현대로 오며 변화를 예시로 설명하고, 그 사례와 적절한 다른 예시들을 여러 가지 준비하여 이해를 돕고 있다. "마케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임 체인저(어떤 일에서 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바꿔 높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나 사건-옮긴이)는 연결성이다." 이처럼 마케팅 용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옮긴이가 용어들을 설명해주고 있어 막힘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다. 프랑스의 동화작가인 다니엘 페타크가 '독자의 권리'를 밝힌 적이 있다. 그중에서 책을 건너뛰며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찾으라는 듯 각 장의 끝마다 요약이 있다. 독서에 시간투자가 힘들면 요약 부분을 읽고, 이론을 정리한 그림만 보더라도 얻을 것이 많다. 또 요약 뒤의 '생각해 볼 질문들'을 통하여 스스로 접근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렇게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변화해가는 세상을 보여주고 그런 세상에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질문하는 책이다. 앞으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질문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 질문의 답을 이 책이 준비하게 한다.

2017-09-02 00:05:01

세상에서 나를 지운다…실패 속에서 '자기실종' 택한 일본인

인간증발/레나 모제 글/스테판 르멜 사진/이주영 옮김/책세상 펴냄 1989년 주가 급락을 시작으로 부동산 가격 폭락, 경기침체, 디플레이션이 이어지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의 늪에 빠졌고 이후 매년 1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중 8만 5천 명 정도가 스스로 실종을 택한 사람들이었다. '자기실종'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1990년대에 그 숫자가 급증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매년 12만 명이 사라졌다. 그들은 빚, 파산, 이혼, 실직, 낙방 같은 각종 실패에서 오는 경제적 어려움과 수치심,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어느 날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자기실종을 택한 사람들은 신분을 숨긴 채 혹은 다른 신분으로 위장한 채 도쿄의 슬럼 지역인 산야나 오사카의 가마가사키 등에 숨어 산다. 한국 사회가 시차를 두고 일본을 따라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일본 사회에 만연한 자기실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야반도주 사무소를 운영하는 사람들 1990년대 말, 일본에서는 '야반도주 사무소'라는 제목의 TV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됐다. TV프로그램 안내 코너에 이 드라마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재정난에 빠지셨나요? 빚더미에 앉았나요? 컨설팅 회사 라이징선이 여러분을 도와드립니다. 대책을 세우기엔 너무 늦었나요? 도망치거나 자살하는 길밖에는 없나요? 역시 라이징선에 맡겨보세요.' 드라마 '야반도주 사무소'는 1990년대 일본 사회 '야반도주' 현상을 드라마로 제작한 것이다. 야반도주를 돕는 업체들은 외견상 이삿짐센터이지만 은밀하게 도주를 돕는다. 하토리 쇼 씨는 야반도주 사업으로 꽤 돈을 번 사람이다. 그는 야반도주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평범한 이삿짐센터를 운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인으로부터 '자신의 인생을 망친 남편의 빚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야반도주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새 사업에 뛰어들었다. 야반도주 서비스 비용은 대략 40만엔(약 400만원)으로 일반 이사보다 세 배나 비쌌다. 도망치려는 사람의 상황이 심각할수록, 그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대비 역시 철저하다. 야반도주에 성공하기 위해 하토리 쇼 씨는 도주를 신청한 고객과 머리를 맞대고 지도를 그려가며, 가장 좋은 은신처를 찾고, 예상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꼼꼼하게 작성했다. ◆빚뿐만 아니라 수치심도 실종 큰 이유 세계 어느 나라에나 빚 때문에 야반도주를 택하는 사람들은 많다. 일본인들의 자기실종도 대부분 빚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자기실종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수치심이다. 빚에 눌린 사람들뿐만 아니라 시험을 망친 대학생, 남편이 바람난 여자, 자신이 바람난 여자, 회사에서 해고된 사람들이 '실패했다'는 손가락질이 두려워 실종을 택한다. 노리히로 씨는 마흔 살까지 잘 나가는 엔지니어였다. 그는 어느 날 해고됐다. 해고를 당했지만 평소와 똑같이 생활했다. 여느 때처럼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했고, 예전에 다녔던 직장 앞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길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집에 돌아갔는데, 아내와 아들이 의심하는 것 같더군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가져다줄 월급도 없었고요." 원래 같았으면 월급을 받았을 날, 노리히로 씨는 말끔히 면도를 하고, 아내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 후 평소 타던 지하철을 탔다. 회사의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열차였다.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사카에 씨는 스무 살에 증발해버렸다. 회계시험을 보러 간다던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그의 부모는 아들의 친구와 학교에 연락한 것은 물론이고, 탐정들을 고용해 아들을 찾아 나섰다. 탐정들은 운 좋게도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사카에 씨를 찾아냈다. 사카에 씨는 시험에 불합격해 가족들에게 실망을 안겨줄까 두려워 시험을 치지도 않았다. 자살을 생각했지만 어떻게 목숨을 끊어야 할지 몰라 거리를 배회하던 중에 탐정들에게 발견됐던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일본인 일본 사회는 실패나 실수에 관대하지 않다. 남들과 다른 특징에 대해서도 싸늘하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반듯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스스로 큰 강박을 느낀다. 지은이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인들을 연구하기 위해 미국 전시정보국이 인류학자 루스 베딕트에게 의뢰해 쓴 책 '국화와 칼'을 인용하며, 일본인들의 심리상태를 설명한다. '일본인들은 넓은 의미에서 윗사람들(조상, 부모, 교수, 심지어 일왕)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진다. 이 빚을 갚는 것은 체면과 관련된 문제다. 대부분 일본인들은 가능한 한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지 않으려고(심리적이든 물질적이든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빚을 지고 있다는 이 독특한 감정은 의무를 요구한다. 그중 첫 번째 의무는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 의무는 너무도 강렬해서 조그만 실수에도 일본인들은 크게 자책한다. 결국 예의를 지키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증발이나 자살을 선택한다.' 성인이 스스로 실종을 택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체면과 관련한 문제이므로 가족들도 대부분 체념하듯 가족의 실종을 받아들인다. 가족의 실종을 '운명'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심지어 가족의 실종 사실을 이웃, 동료,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기까지 한다. 실종자 가족들이 사립 탐정을 고용해 사라진 가족을 찾아나서기도 하지만, 실종자를 찾는다는 보장도 없고, 하루 비용이 5~6만엔(50~60만원)에 달해, 탐정을 고용했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자 찾기를 포기하고 만다. ◆지도에도 없는 장소 산야(山谷) 도쿄의 미나니 센주 지하철역에서 북쪽으로 10분쯤 걸어가면 산야(山谷)에 닿는다. 이곳은 지도에도 표기가 없다. 범죄자와 부랑자, 노숙자, 빈민들이 득실대는 곳이다. 일본 정부는 산야를 지워버리기 위해 '산야'라는 지명을 지도에서 지웠다. 하지만 산야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의 택시기사들은 "산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없는 사람, 모두에게 잊힌 사람 혹은 잊히기를 바라는 사람, 이름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휘황찬란한 도쿄의 여타 지역과 달리 산야는 어둡고, 불길하며, 골목마다 쓰레기가 넘치고 지린내가 진동한다.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의 규범과 질서가 통하지 않는 곳이다. 사라진 사람들은 건설현장, 시골마을, 산속 외딴곳으로 숨어들거나 유흥업소 말단 종사자로 살아가기도 하며, 야쿠자가 되거나 2011년 쓰나미로 원전사고가 발생해 방사능에 오염된 후쿠시마로 숨어들기도 한다. 실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민등록이 소멸돼 사회보장 혜택이 말소된다. 사실은 실종 순간부터 그들은 제도의 혜택을 포기한다. 위치가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종자의 자식은 학교에 다닐 수도 없다. 숨어 지내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지만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실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스스로 실종을 택했던 노리히로 씨는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새로운 삶이 자리를 잡으면 다시 본명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일 죽는다 해도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저를 찾았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부모님이 건강히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이미 돌아가셨을 수도 있고요." 255쪽, 1만5천원.

2017-09-02 00:05:01

영화 '사자왕 형제의 모험' 캡처.

[내가 읽은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창비/ 김경희 역. 2015년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한 청춘이 왜 사람들은 비굴하고 용감하지 못한지를 물었다.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단다. 너도 곧 적응하게 될 거야"라고 얼버무린 적이 있다. 그 말에 청춘은 소리 내어 울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면 그게 더 슬픈 일이라고.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에 힘주어 대답한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옳지 않음을 보고도 눈감아주고, 내 일이 아니면 방관하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어느 날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찾아왔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은 만년에도 손수 집안일을 하고, 어린이 독서클럽을 돌보며 동화까지 썼다. 아흔다섯 살로 지구별을 떠날 때까지 삐삐 시리즈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긴박한 스토리와 악에 대결하는 사자왕 요나탄과 스코르판 형제의 모험을 다룬 이야기다. 기사의 농장 벽난로 앞에 앉아 편안히 살면 안 될 까닭이 뭐란 말입니까? 그러나 형은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되는 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째서 그래?" 내가 다그쳤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78P) 그렇다.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진실한 말, 사람답게 사는 것. 지도자답게, 국민답게, 어른답게, 젊은이답게, 선생답게, 학생답게, 부모답게, 자식답게…. 답게 사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참된 내일을 열어준다는 것을 어린 요나탄은 익히 알았다. 형 요나탄이 죽음을 통과하여 낭기열라로 간 뒤 병약했던 동생 스코르판도 형을 뒤따라가 눈물의 해후를 한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낭기열라에서 형제는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독재자 텡일의 등장으로 낭기열라는 억압과 약탈로 피폐해지고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 텡일에 맞서 저항하지만 무시무시한 악마 '카틀라'를 등에 업은 텡일의 폭력을 당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사자왕 형제는 소피아, 마티아스 할아버지, 오르바르 등과 함께 용감하게 텡일 일당을 쓰러뜨린다. 나는 정말 그럴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해내지 못한다면 나는 하잘 것 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굳세고 언제나 착한 일만 해 온 형과 함께라면 걱정할 게 없을 것 같았습니다.(319P) 스코르판은 약하고 겁이 많은 아이였다. 텡일에 맞서는 형을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해 좌절한다.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치 우리 자신을 마주한 듯 안타깝다. 불의를 거부하고 사람다움을 지킴으로써 마침내 낭기열라를 평화의 안식처로 만들었던 사자왕 요나탄, 그를 바라보며 스코르판은 매 순간 자신을 채찍질한다. 마침내 스코르판도 사자왕 칼로 거듭나며 형 요나탄과 함께 낭길리마의 햇살을 맞이한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을 바꿀 힘도 없고,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조차 버거운 스코르판에 머물러 있다. 이제 용감한 사자왕 칼을 꿈꾼다. 우리 사는 이곳에 낭기열라의 빛이 가득할 때까지.

2017-07-29 00:05:22

이광만·소경자 씨 부부.

[책과 사람] 나무를 사랑한 공학도 부부 "동백꽃·진달래 유래 들어볼래요"

한국의 조경수 1, 2/ 이광만'소경자 공저/나무와문화연구소 펴냄 '한국의 조경수'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경수 251종에 관한 책이다. 수종별로 나뭇잎, 열매, 겨울눈, 수피, 뿌리 사진을 싣고, '조경수 이야기' '조경 포인트' '재배 포인트' '병충해 포인트' '전정 포인트' '번식 포인트'로 구분해 설명한다. 이 책은 조경수 251종을 28개 범주로 분류하고 있는데, 학술적인 근거에 따른 분류는 아니다. 나무의 특징을 중심으로 분류해 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조경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전자 관련 직장인에서 조경수 농부로 지은이 이광만 씨는 1982년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금성사(LG전자)를 비롯해 전자 관련 분야에서 20년 동안 일했다. "시골에서 자란 덕분에 자연과 더불어 살았어요.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하다 보니 전자공학과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전자공학과 인기가 대단했어요. 결혼을 했고, 직장생활도 충실히 했습니다. 늘 창의적으로 일하려고 노력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도 어쩐지 새 옷을 입었을 때처럼 어색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어요. 40대 중반쯤 되니까 전자계통의 일을 더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두고 조경수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지은이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나무가 좋아서, 나무를 키워보겠다고 덤벼들었다. 숱한 실패와 좌절을 맛보면서 이 일을 왜 시작했나 후회도 했다"며 '자연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자신을 여기까지 걸어오게 한 힘이라고 말한다. ◆각 나무마다 흥미로운 이야기 실어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나무마다 실려 있는 '조경수 이야기 편'이다. 나무에 얽힌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떤 나무가 그 이름을 얻게 된 배경이 등장하는가 하면 역사와 전설이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문화재와 관련한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가령 동백나무의 '조경수 이야기'에는 '18, 19세기 유럽에서는 동백꽃의 인기가 대단했다. 파티에는 늘 동백꽃 코르사주(corsage: 가슴이나 앞 어깨에 다는 꽃다발)가 등장했다.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였던 알렉상드르 뒤마 필스(1824~1895)는 파리의 사교계에서 만난 고급 매춘부 마리 뒤플레시스와 나눈 사랑을 되살려 연극 '동백꽃 여인'을 썼다. 이 연극을 원작으로 나온 오페라가 주세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이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공연에서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언제나 가슴에 동백꽃을 달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진달래 편에는 '진달래의 중국 이름은 두견화다. 두견새, 즉 소쩍새가 울기 시작할 무렵 꽃이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두견화에는 슬픈 전설이 전한다. 촉나라 망제 두우가 위나라에 망한 후, 다시 나라를 찾으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 그 넋이 두견새가 되었다고 한다. 한 맺힌 두견새가 피를 토하며 울었는데, 그 피가 진달래 꽃잎에 떨어져 꽃잎이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또 두우가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어서 "귀촉(歸蜀) 귀촉" 하며 피를 토하듯 운다고도 전해진다. 두견새는 봄이 되면 더욱 슬프게 울어대는데, 한번 우는 소리에 진달래꽃이 한 송이씩 떨어진다고 한다'고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조경수 이야기 편'을 통해 "나무가 꼭 조경이나 생물학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로도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공학도로 만난 부부, 나무꾼으로 해로 이 책은 이광만 씨와 소경자 씨 함께 썼다. 두 사람은 부부다. 남편 이광만 씨는 조경수 농장을 운영하며, 문화재 조경 일을 한다. 아내 소경자 씨는 대구 송현여중 진로진학상담 교사로 근무하면서 원예치료복지사로 활동하고 있다. 남편은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아내는 화학을 전공했다. 두 사람은 교내 붓글씨 동아리에서 만난 캠퍼스 커플이었다. 둘 다 공학도였지만 자연에 애착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무를 좋아한다는 것과 조경수를 재배하기 위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남편 이광만 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조경수를 재배하고 싶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가장 강하게 반대한 사람이 아내였다. "노후를 나무와 함께 살자고, 그러자면 지금부터 준비하자고 오래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무와 관련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소경자 씨는 복지원예사(이전 명칭은 원예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원예활동을 통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일을 하고 있다. 소경자 씨는 "학생들이 원예수업을 무척 좋아합니다.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성격이 밝거나 어둡거나 간에 원예시간만큼은 모든 학생이 수업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내가 이 분야를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때때로 병원에서 암환자들과 함께 원예수업을 하기도 하는데, 어르신들이 정말 즐거워하셔서 오히려 제가 더 위로받고, 치유받는다는 느낌이 듭니다"라고 말한다. ◆늦은 출발, 노력과 창의성으로 극복 지은이는 전자 관련 업계에서 20년 동안 일한 뒤 조경업에 뛰어들었다. 보통 사람들과 비교할 때 좀 늦게 나무 관련 일을 시작한 셈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또 좋아서 택한 일인 만큼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2008년 경북대 조경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해 아들 또래의 젊은 학생들과 같이 공부해 2011년 조경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 경험에 의존해 나무를 재배하는 관행과 달리 각종 서적(외국 전문서적도 포함)을 섭렵했다. 그렇게 얻은 지식과 자료를 바탕으로 책도 썼다. 확보한 지식과 자료를 혼자 가지기보다는 조경수를 재배하는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 조경수 이야기' '전원주택 정원 만들기' '나뭇잎 도감' '겨울눈 도감' '그림으로 보는 식물용어사전' 등이 그런 책이다. 모두 부부가 함께 쓴 책이다. 책에 자연물을 좀 더 생생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자연물을 스캔해서 데이터화하는 방법을 발굴했다. 이 방법으로 특허도 받았다.(특허 출원번호 10-2012-0101853) 또 2015년부터는 나무와 인문학을 접목한 '나무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나무를 재미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나무와 관련된 역사, 문화, 에피소드 등을 소개한다. ◆나무와문화연구소 설립한 부부 "식물 관련 책 20권 쓰겠다" 두 사람은 식물 관련 책을 20권 쓰겠다는 각오로 '나무와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남편이 조경수를 재배하고 싶다는 뜻을 처음 밝혔을 때 격렬하게 반대했던 아내는 지금 '나무와문화연구소' 부소장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은 현재 '성경식물 이야기' '나무 스토리텔링'을 준비하고 있다. 이광만 씨는 "지구환경을 살리고 지키는 데 나무심기만큼 좋은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나무를 많이 심겠다고 합니다만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심어야 합니다. 나무가 너무 많다 싶을 정도로 심어도 결코 많은 게 아닐 것입니다"라고 나무심기를 강권한다. 1권 392쪽, 2권 391쪽, 각권 3만원.

2017-07-29 00:05:22

[책 CHECK] 물욕 없는 세계

물욕 없는 세계 스가쓰케 마사노부 / 현선 옮김 / 항해 펴냄 이 책은 '물질적 욕망'이 팽배한 세계에서 점차 시간, 체험, 질 같은 비물질적 영역의 가치를 중시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오늘날 세계를 진단한다. 가령 무자비한 이윤 추구만을 일삼던 기업 집단에 사회적 공헌이 필수 요소가 된다든지, 오직 쇼핑을 위한 관광을 하던 사람들이 체험에 비중을 둔 여행을 즐기기 시작한다든지, 혹은 평생직장 개념이 붕괴하면서 일에서 안정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하려는 사람이 늘어난다든지 하는 일련의 세태를, 저자는 '물욕 없음'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소비에서도 마찬가지다. 과잉 생산, 과잉 소비사회의 폐해를 체감한 사람들은 더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찾기 시작했고, 이는 '가치 소비'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유기농 먹거리의 부상, 공유경제의 일상화, 골목 상권 회복을 통한 지역 공동체의 복원 같은 움직임은 모두 이런 흐름의 연장이다. 이에 저자는 미국 포틀랜드와 중국 상하이, 일본 도쿄를 넘나들며 백화점업계의 거물, 유기농 매장의 점주,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의 편집장, 싱크탱크의 학자 등을 만나서 물음을 던졌고, 그 과정을 기록했다. 256쪽, 1만5천원.

2017-07-29 00:05:22

[책 CHECK] 왜! 문화인가

왜! 문화인가 문무학 지음/ 학이사 펴냄 이 책은 문화행정가 문무학 씨가 문화 현장에서 느낀 점을 엮은 문화 칼럼집이다. 저자는 문화가 정치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문화 예술을 지원할 수 있는 모든 주체는 문화 예술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는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적극적으로 지원하라고 한다. 문화는 오늘을 즐겁게 하지만 오늘보다 내일이 더 즐거워지게 만든다며, 모두가 함께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문화라고 강조한다. 책은 4부로 나누어져 있다. '문화 예술, 왜 지원해야 하는가?'에서는 미국예술연합이 정리한 문화 예술을 지원해야 하는 열 가지 이유를, '문화가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와 '문화가 제시하는 소통의 길은?'에서는 문화로 즐기는 삶이 무엇인가를 살펴본다. 저자는 "인간의 가슴을 데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문화뿐이다. 문화를 통해 개인은 가슴의 평수를 넓히고 영혼의 근육을 튼튼히 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며, 국가는 문화를 진흥시켜야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192쪽, 1만1천원.

2017-07-29 00:05:22

흙과 공생하는 동식물·미생물·사람의 생태 경쟁…『흙의 시간』

흙의 시간/ 후지이 가즈미치 지음/ 염혜은 옮김/ 눌와 펴냄 지구의 역사는 약 46억 년이다. 암석은 40억 년 전에 형성됐고, 단세포 박테리아가 출현한 건 38억 년 전 정도로 추정된다. 암석이 풍화침식 작용과 미생물의 분해를 거쳐 흙이 된 것은 5억 년 전이다. 46세 된 지구가 5년 전에 텃밭을 만들었고, 1년 반 전부터 반년 전까지 그곳에서 공룡이 놀았으며 호모에렉투스는 5.5일 전에 태어났다는 얘기다.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석기를 1만 년 전이라고 하니 인류가 그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본격적으로 활동한 건 1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바윗돌 깨트려 돌덩이/ 돌덩이 깨트려 돌멩이/ 돌멩이 깨트려 자갈돌/ 자갈돌 깨트려 모래알'이 흙이 되기까지 35억 년이 걸렸다. '흙의 시간'은 그 뒤의 이야기다. 흙의 탄생부터 현재, 그리고 적응과 파멸의 갈림길에서 선택할 미래를 아우른다. 5억 년간 흙과 생물이 주고받은 대화의 기록이다. 일본 삼림종합연구소 연구원 후지이 가즈미치가 일본,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열대 우림에서부터 캐나다 영구동토 등을 돌아다니며 그의 손을 거친 흙을 풀어냈다. 책은 흙을 주제로 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필사적으로 흙과 공생해 온 식물, 동물, 미생물과 인간이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흙은 지구에만 있다. 달과 화성에도 '레골리스'(regolith)라는 퍼석퍼석한 돌가루가 있지만, 이건 흙이 아니다. 흙은 부스러진 바위가루인 무기물과 동식물이 썩으면서 생긴 유기물이 섞여 상호작용한 결과다. 생물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기에 흙과 생명은 불가분의 관계다. 5억 년 전 바위에 붙어 있던 이끼와 지의류가 양분을 얻고자 방출한 유기산이 모래와 점토를 만들었고, 이들이 섞여 흙이 만들어졌다. 이끼와 지의류의 '고군분투'는 1억 년 동안 계속된다. 양치식물이 땅에 자리 잡을 때까지. 4억 년 전 축축한 지대를 주름잡던 양치식물은 죽어서 흙 속에 파묻혀 쌓여 석탄의 원형인 이탄토를 만든다. 식물과 미생물의 노력은 대지를 만들었다. 습지를 중심으로 번성한 양치식물이 쇠퇴하고 겉씨식물이 등장한다. 단단한 줄기를 가진 나무가 생기면서 '리그닌'이 축적된다. 딱딱하고 맛없는 식물 유해의 등장에 미생물은 분해를 포기한다. 분해속도를 뛰어넘은 퇴적 속도에 대규모 석탄 축적 시대, 석탄기가 도래한다. 하지만 맛없는 리그닌을 먹고사는 버섯이 진화하면서 석탄기는 종언을 고한다. 2억 년 전 쥐라기 초식공룡의 밥상에는 침엽수가 올랐다. 온난 습윤한 환경 덕에 아열대 침엽수림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번성한 아열대 숲 식물은 물을 흡수하며 칼슘'칼륨 이온을 흡수하는 대신 수소 이온을 방출해 이때부터 흙은 급속도로 산성화된다. 흙이 식물을 변화시키듯, 식물도 흙을 바꿨다. 산성비, 질소비료 사용이 토양 산성화를 촉진한다고 한다. 저자는 다른 시각에서 산성토양을 본다. 산성토양에서 생물이 적응하는 방식이 그들의 생존을 결정하고, 토양환경을 다시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예컨대 산성토양이나 양분이 극히 적은 토양에 사는 식충식물인 벌레잡이통풀은 곤충을 포획'소화'흡수해 영양 결핍을 보충한다. 흙의 양분을 가져가려고 나뭇잎을 잘라다가 버섯을 키워 그 균사를 먹고사는 가위개미나 흰개미도 있다. 특수한 소화기능이 생기고, 종이 다양해진 것도 적응의 결과다.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흙을 먹고사는' 인류의 출현은 흙에 위기를 가져왔다. '닫힌계'에서 순환하는 다른 생태계와 달리 인류는 식물과 미생물이 저장해둔 흙 속 양분을 빠른 속도로 소비했다. 산성토양을 중화하고자 화전농법을 개발했고, 몬순기후에 적응한 벼를 재배하며 흙을 최대한 이용한다. 토양 양분의 고갈과 비료 자원의 결핍 문제를 똥'오줌으로 해결한 것도 인간이었다. 자꾸 용출되는 질소를 보충하려는 노력은 대기 중 질소에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하버-보슈법'을 발명하게 했다. 하버-보슈법은 천둥번개나 콩류에 의존해 고정되던 질소를 비료로 고정해 토양에 대거 공급할 수 있게 했다. 인간이 물과 석탄과 공기를 가지고 빵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저자는 식량 증산과 인구 증가가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하면서 조심스레 경고한다. 에너지 소비량의 증가는 화석연료를 고갈시키고 지구 온난화를 앞당긴다. 인공림 조성 속도보다 빠른 벌채, 달콤한 차와 맛있는 우유를 먹으려고 뿌린 비료는 땅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저자가 흙 이야기를 꺼낸 건 이 때문이다. 흙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가혹한 시간을 견뎌낸 생물들의 생존전략과 선조의 지혜를 빌려야 한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지면, 모래 대신 우레탄으로 포장된 놀이터, 깨끗하게 씻겨 포장돼 진열된 채소가 말해주듯 우리는 흙과 점점 멀어졌다. 흙에 묻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는 흙과 생명의 연결고리를 다시 확인하는 데서 시작한다. 268쪽, 1만3천원.

2017-07-29 00:05:22

[반갑다 새책] 늦어서 고마워

늦어서 고마워/ 토머스 프리드먼 지음/ 장경덕 옮김/ 21세기북스 평생 한 번 받기도 어려운 퓰리처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세계는 평평하다', '코드 그린: 뜨겁고 평펴아고 붐비는 세계' 등 저서 대부분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린 뉴욕타임스 인기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새 책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인공지능로봇, 화성식민지… 상상이 현실이 됐다. 프리드먼은 세계는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변화하는 '가속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국가와 기업, 개인이 각자 이 시대에 어떻게 적응하고 번영할지 고민해야 할 때라는 대전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약속시간에 늦은 상대방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잠시 멈춰 생각할 여유가 생긴 데서 이 책 제목을 '늦어서 고마워'라고 붙였다. 그는 가속의 시대에 적응하는 힘은 낙관주의라고 말한다. 그의 낙관은 정치, 지정학, 윤리, 공동체로 이뤄진 세상을 다양성과 상생, 신뢰를 기반으로 새롭게 설계하고 상상하는 데서 출발한다. 틀을 깬 사고로 그리는 빅픽쳐만이 세상을 바꾸고 우리를 바꾸게 한다. 결국, 혁신이다. 688쪽, 3만8천원.

2017-07-29 00:05:22

[반갑다 새책] 고향땅 자연풍수

고향땅 자연풍수/ 류재형 지음/ 대구출판사 펴냄 대구경북 지역의 풍수지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경북 의성 출신 풍수지리'명리학 연구가인 류재형이 대구'경북 지역을 두루 답사하고 펴낸 책이다. 지역의 풍수지리를 살피는 데만 그치지 않고 마을, 절, 서원, 종택, 묘에 얽힌 이야기도 담았다. 책은 2부로 구성됐다. 1부는 대구 편으로 달성공원과 녹동서원, 모명재와 두사충 묘, 망우당 곽재우 장군 묘,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도동서원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 2부는 경북 편으로 경산 난포고택, 경주 양동마을, 고령 대가야 왕릉 고분군, 군위 김수환 추기경 생가, 안동 하회마을, 영주 소수서원과 부석사, 영천 임고서원, 울릉도 성인봉 등을 소개한다. 부록으로 이장(移葬)과 관련한 풍수지리'명리학 정보도 실었다. 397쪽, 4만원.

2017-07-29 00:05:22

세계 최대 역사기록물 상세 안내서…『승정원일기』

승정원일기 김종렬 지음, 노준구 그림/ 사계절 펴냄 현존 세계 최대 규모의 역사책으로 평가받는 '승정원일기'의 자수는 대략 2억4천만 자. 888책 5천400만 자라는 조선왕조실록보다 4배가량 많고 중국 역사서를 모두 모아놓았다는 '25사'(4천만 자)의 6배다. 명나라의 역사가 모두 들어 있는 '명실록'도 1천600만 자에 지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승정원일기의 방대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세계 최대의 역사기록물 승정원일기를 상세하기 들여다보는 안내서다. 이 일기가 쓰인 역사적 배경부터 지면의 짜임, 주요 내용까지 삽화를 곁들여가며 알기 쉽게 구성했다. 임금의 '혀와 목구멍'(喉舌)이라는 승정원은 지근에서 왕을 보필하던 관서로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에 해당한다. 주 업무인 왕명 출납 외에도 왕의 국정자문과 외국 사신 접대 등 다양한 일을 담당했는데 '일기' 작성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예문관 소속 사관(史官)들이 왕조 전반 역사를 기술한 데 비해 승정원은 왕의 동선에 밀착해 입시(入侍)기록을 맡았다. 조선시대 대부분 관청들이 대부분 궁궐 밖, 광화문 6조 거리에 모여 있었지만 승정원만큼은 궁궐 안에 있었을 정도로 역할이 막중했다. 승지들이 왕명 출납과 국정자문 등 정무업무에 주력했다면 일기 작성의 주체는 '주서'(注書)였다. 주서는 승지를 도와 승정원으로 들어온 모든 문서를 정리하고 왕의 업무처리 과정을 옆에서 기록했다. 주서들은 왕과 신하의 대화를 즉석에서 한문으로 번역하여 기록했기 때문에 한문은 물론 속기에도 뛰어나야 했다. 보통 주서는 15개월이 임기로 정해져 있지만 기간을 채우는 사람은 거의 없고 3, 4개월 만에 자리를 옮기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하고 힘든 자리였다. 주서는 3D 업무에 직급도 정7품으로 낮았다. 그럼에도 과거급제 엘리트들에게 선망의 자리이기도 했다. 힘든 자리인 만큼 장래에 '도승지'로 진출할 인재로 여겨졌고, 주서를 거친 관원은 승진이나 보임(補任)에서 우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인 일기 사초(史草)는 승지(承旨)의 결재, 감수를 거쳐 국정자문, 경연, 대언(代言)의 자료로 쓰였다. 일기는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고 내용을 적는 순서도 대략 정해져 있다. 첫 줄에는 날짜와 날씨가 들어갔다. 특이한 것은 날씨를 기록하는 방식이 100가지가 넘을 만큼 다양하다는 것. 하루 사이 기상이 변해가는 과정을 소상히 기록했다. 바로 옆에는 '좌목'이라는 칸이 있어 그날 업무를 맡았던 승지와 주서 이름이 들어갔다. 여기엔 직원들의 출결사항, 당직, 휴가(병가), 출장기록부터 지각 여부까지 기록돼 조선 관원들의 일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쓰인다. 이런 의전기록이 모두 끝나면 왕이 하루 동안 살핀 국사와 각 관청에서 올라온 문서와 여기에 대한 해결, 결재사항이 모두 기록된다. 이 기록들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궁궐 속으로 들어온 듯 실감 나는 사실과 만나게 된다. 군신(君臣) 간에 의견이 맞지 않아 불같이 화를 내는 왕과 기개를 꺾지 않고 당당하게 논지를 펴나가는 신하의 목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아주 생생하다. 3천245책, 288년의 기록. 조선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역사서를 편찬하는 데 기본자료였다. 조선시대 왕들은 사관이나 주서 없이는 누구와도 독대하지 않았다. 정치는 숨길 것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온 것이다. 오늘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기록물이 사라지거나 은폐되는 현실에 비추어 승정원일기는 존재만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134쪽, 1만2천500원.

2017-07-29 00:05:22

다산 정약용

[이종문의 한시 산책] 불볕 더위에 소낙비…통쾌함이 두 배

아무렴 통쾌하지, 통쾌하고 말고 그럼 정약용 지루한 긴 여름날 불볕 같은 더위 먹고 支離長夏困朱炎(지리장하곤주염) 등골에 흐르는 땀 삼베 적삼 축축할 때, 濈濈蕉衫背汗沾(즙즙초삼배한첨) 시원한 바람 불며 소낙비가 쏟아져서 洒落風來山雨急(쇄락풍래산우급) 느닷없이 높은 벼랑 하얀 폭포 걸린다면 一時巖壑掛氷簾(일시암학괘빙렴) 아무렴 통쾌하지, 통쾌하고 말고 그럼 不亦快哉(불역쾌재) *원제: 不亦快哉行(불역쾌재행: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노래. '行'은 노래를 뜻함.)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빼어난 비평가로 불의에 끝까지 저항하다 처형을 당했던 성탄(聖嘆) 김인서(金仁瑞'?~1661). 그는 '不亦快哉'(불역쾌재)라는 제목 아래, 서른세 가지의 통쾌한 일들을 짤막한 산문으로 표현한 바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병 속에 가득한 물 콸콸 쏟아놓듯, 등 뒤에서 자제들이 책을 좔좔 외워댄다면, 그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겨울밤에 술을 마시고 있는데도 추위가 점점 더 심하기만 하여, 이상하다 싶어 창문을 열자 손바닥만 한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서 이미 서너 치나 쌓여 있으니, 그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여름날 시퍼렇게 날 선 칼을 뽑아서 새빨간 소반 위의 새파란 수박을 쪼갠다면, 그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김성탄의 '불역쾌재'가 바다를 건너와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읽히자, 조선의 선비들이 주체적 입장에서 이를 수용하여, 제 나름의 통쾌한 일들을 표현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도 자신이 생각하는 통쾌한 일들을 스무 수의 한시로 읊은 바가 있는데, 위의 시는 그 가운데서 아홉 번째 작품이다. 보다시피 작품 속의 상황은 지루한 여름일 뿐만 아니라, 기나긴 여름이기도 하다. 게다가 직각으로 떨어지는 뜨거운 햇살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여름이다. 콩죽 같은 땀방울이 등골에 줄줄 흘러, 베적삼이 온통 흥건하다. 만약 죽었다가 다시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잠깐 죽어 있고 싶은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여름이다. 그때다. 돌연 시원한 바람이 쏴아~ 쏴아~ 불어오더니, 아닌 밤중 홍두깨처럼 난데없이 장쾌한 소낙비가 쏟아진다. 바로 그 흔쾌한 소낙비로 아찔한 벼랑에 호쾌한 폭포가 대번에 걸린다. 이른바 금상첨화(錦上添花)의 상황이다. 반전 중에서도 너무나도 돌발적인 반전이기 때문에, 설상가상과 금상첨화가 아주 극명하게 대조되면서, 그 통쾌함이 곱빼기의 곱빼기로 솟구쳐 오른다. 그러니 어찌 통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일찍이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참말로 무더운 여름이다. 애간장을 죄다 태우기로 아주 작심을 했는지, 다른 데는 대중없이 내리는 비도 도통 죽어라고 오지 않는다, 우와 짜장 짜증이 난다. 이럴 때 선풍기를 강풍으로 돌려놓고, 냉장한 해병대 얼룩무늬 수박에다 시퍼런 칼을 들이대는 순간, 수박이 깜짝 놀라 두 동강이 나며 시뻘겋게 이글대는 마그마 속에서 새까만 씨 대여섯 개가 한꺼번에 투두둑 튀어나와, 그 가운데 서너 개가 내 얼굴에 떡 들러붙는다면, 그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아무렴 통쾌하지, 통쾌하고 말고 그럼!

2017-07-29 00:05:22

[책 CHECK] 익은 봄날

익은 봄날 문차숙 지음 / 학이사 펴냄 문차숙 시인이 다섯 번째로 펴낸 이 시집에는 '봄', '길', '강', '돌'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나온다. 시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의 시인과 꼭 빼닮았다. 그의 생각이 길 위에 널브러져 있기도 하고, 강물을 따라 흘러가기도 하며 돌처럼 굳어지기도 한다. 시인의 방황이 어디에 가서 충돌하고 어디에 가서 정착하는지를 솔직하게 그리고 거침없이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문무학 시인은 "그의 시에는 거침없음이 일궈내는 시적 묘함이 있다.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시의 미학과 손잡게 하는 흔치 않은 솜씨를 문차숙 시인이 갖고 있는 듯하다"며 "어느 시인이 제 삶을 제쳐두고 시를 쓸 수 있으랴만 그의 시에는 시편마다 문차숙이 서 있다. 굳이 어색하게 꾸미지 않는 문차숙의 당당함이 있다"고 평했다. 저자는 경북 성주에서 출생, 계명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영남대 행정대학원에서 문화행정 석사를 받았다. 1990년 시문학지에 '수양버들'외 9편이 당선돼 데뷔했다. 시집으로는 '사랑은 저지르는 자의 몫이다'를 비롯해 '앞지르기', '빈 집에 돌아오다', '나는 굽 없는 신발이다' 등 네 권이 있다. 120쪽, 9천원.

2017-07-22 00:05:01

[책 CHECK] 새로운 대한민국의 구상 포용국가

새로운 대한민국의 구상 포용국가 성경륭 외 지음 / 21세기 북스 펴냄 나라다운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런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정책 제안집으로 풍부한 이론적 고찰, 방대한 경험적 분석, 탁월한 정책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책에서 추구하는 나라다운 나라는 약자를 포용하고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포용국가'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포용성'혁신성'유연성의 원리를 바탕으로 고용, 경제, 복지, 교육 등을 아우르는 포용국가 모델을 설계했다. 저자들은 사회경제 제도를 설계하고 공공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사회보장과 소득 분배, 노동의 경영 참가 등을 통해 포용성을 확대하고, 교육과 연구 개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활성화를 통해 혁신성을 끌어올린 북유럽 국가를 새로운 국가 모델로 제안한다. 이들 국가의 발전 사례를 바탕으로 현재의 낮은 포용성 수준과 혁신성 수준을 끌어올린다면 대한민국도 지속 가능한 혁신적 포용국가로 '거대한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될 때 국민들은 비로소 "이것이 국민들이 오랫동안 소망해온 국가다"라며 새 정부의 새로운 국가 건설 노력에 동의와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말한다. 384쪽, 2만7천원.

2017-07-22 00:05:01

건강식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고?…『식탁의 비밀』

식탁의 비밀/ 케빈 지아니 지음/ 전미영 옮김/ 더난출판 펴냄 한 남자가 아내와 함께 캠핑카 여행을 떠났다. 2년 반 동안. 그가 무작정 떠난 건 건강 때문이었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니었다. 진짜 건강법을 찾아서였다. 처음 그가 건강법에 몰두한 건 가족력 때문이다. 두 살 때 아버지를 뇌종양으로 여의고, 고교 졸업 후엔 어머니마저 유방암으로 투병했다. 자신도 심각한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그렇게 건강해지려고 독하게 살았다. 미국의 건강 블로거 케빈 지아니가 현실적인 건강법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비고 건강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식탁의 비밀'이라는 제목보다 '건강한 음식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 건강해지려고 먹었는데 병이 든다니? 저자는 자연건강법 전문가다. 사실은 병마와 사투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건강에 집착하게 된 파워블로거였다. 대학원 시절 자연건강법에 관심을 두고 조사하고 연구하다가 건강, 식품, 영양에 대한 허황한 속설을 파헤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면서 일약 스타가 됐다. 그쯤 되니 생식, 클로렐라, 생명력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생식과 채식, 그중에서도 꿀이나 달걀조차 먹지 않는 비건(Vegan)으로 살았다. 커피, 설탕, 육류를 끊고 그린스무디를 마시기 시작했다. 지방을 줄이고 단백질과 채소를 먹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3년이 지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더 건강해질 줄 알았던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아침에 눈 뜨기조차 어려울 만큼 무기력증이 심해졌다. 블로그, 유튜브, 방송에서 건강법을 이야기하던 그의 말이 거짓말이 된 셈이다. 완전히 잘못됐다고 깨달았고, 그 길로 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이 책은 건강서이면서 동시에 탐사기다. 그는 자연주의 식생활을 고수하는 문화권, 전통 식생활이 장수의 비결인 문화권을 찾아다니며 공부한다. 페루의 안데스산맥. 멕시코의 소금광산. 미국 캘리포니아 돼지농장을 돌아다닌다. 스트레스에 찌든 자신의 뇌를 스캔하며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보고, 5일간 물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는 단식으로 장을 치유하기도 한다. 가시철조망을 기어가고, 전기충격까지 받는 '터프머더'라는 극한의 스포츠까지 병행하며 건강해질 방법을 찾는다. 그러다가 만난 한 자연요법 한의사가 혈액검사 결과를 보며 "부신에 이상이 있으니 동물성 단백질을 좀 먹어야 돼"라고 야박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비건식을 포기한다. 곧바로 유기농 단백질을 섭취한다. 이번엔 폭식이다. 깡마른 채식주의자가 28㎏이 더 쪄 살찐 블로거가 되기까지는 1년 반이 걸렸다. 양극단을 오간 저자가 그가 방문했던 곳, 만난 사람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에 다시 집중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잡식동물이다. 전 세계 어느 문화권에도 채식만 하는 곳은 없다. 저자는 이런 이유로 비건식은 일상식이 아니라 치유식이라고 주장한다. 현대화된 육류 생산체계가 건강에 해로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고기를 멀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붉은 살코기가 몸에 좋지 않다는 말도, 내장은 버려야 한다는 믿음도 모두 거부하면서 필요한 만큼 먹기를 제안한다. 그는 술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사케를 즐기는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이 장수하는 것을 보고 장수의 비결에 의문을 품는다. '글루텐 프리' 열풍에 던지는 질문도 같다. 글루텐 민감증의 원인을 다른 음식과의 조합으로 돌리기도 한다. 유당불내성이 있는 사람, 카페인 대사 속도 조절 효소가 부족한 사람은 그만의 식이가 필요하다는 것. 독소가 없는 음식을 먹고, 유전자조작식품(GMO)을 피하고, 덜 짜게 먹고, 소금을 먹으려면 바닷소금을 먹으라고 한 그는 마지막 장에서 명민하고 젊고 호기심에 찬 상태로 뇌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후의 비밀이다. 자연건강법 전도사인 그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식단도 내키는 대로, 와인도 적당히, 운동은 설렁설렁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어난 체중이 줄었고, 일과 건강은 균형을 잡았다. 스트레스 없는 일상생활이 그의 '식탁의 비밀'이 됐다. 책의 원제는 '케일과 커피'(Kale and Coffee)다. 케일로 만든 그린스무디에 빠졌고, 부신을 망친다는 말에 15년 전에 커피를 끊었던 저자는 커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핀란드 한 연구에 따르면 커피가 제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을 낮춘다고 하고,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파킨슨병 발병률을 낮춘다고 한다. 커피에 포함된 폴리페놀이 질병과 노화를 유발하는 활성산소를 공격한다는 것도 꽤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커피는 주의해야 한다. 잔류 농약과 카페인, 그리고 가공 과정에서 늘어나는 곰팡이독소 때문이다. 밤잠을 설치거나,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것도 커피지만, 커피가 몸에 잘 맞는 사람도 있다. 카페인 대사 속도를 조절하는 효소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다. 케일도, 커피도 결국은 먹는 사람에게 적당하고 적합해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레몬디톡스, 덴마크다이어트, 슈퍼푸드, 고단백질식사요법…. 좋은 음식은 넘치는데 건강은 걱정이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먹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가? 그의 답은 어쩌면 뻔하다. 비건식은 왜 안 되고 독이 되는 운동이 무엇인지, 커피는 왜 골라 마셔야 하는지를 늘어놓은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예로 든다. 평생 화학물질에 노출된 곳에서 일하고 월마트에서 산 가공식품만 먹었던 그의 할아버지는 누구보다도 두뇌 회전이 빨랐다고 한다. 결국,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 344쪽, 1만6천원.

2017-07-22 00:05:01

인간 이전에, 곤충이 먼저 세상을 통제했다…『곤충의 통찰력』

곤충의 통찰력/ 길버트 월드바우어 지음/김홍옥 옮김/에코 리브르 펴냄 현재 지구에는 30만 종이 넘는 식물과 120만 종이 넘은 동물이 살고 있다. 120만 동물 종 가운데 90만 종이 곤충이다. 이 90만 종 중 2% 미만이 인간이 재배하는 곡물과 채소를 먹어치우거나 질병을 옮긴다. 이 책은 모기'파리'진딧물'조명나방 등 해충 20종을 '곤충계의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리고, 집중 해부한다. '해충'이라는 말은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규정한 것이다. 곤충들은 선한 의지도 악한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모든 해충 역시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과정을 거치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승자일 뿐이다. ◇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한 변신 이 책 '곤충의 통찰력'은 20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은 곤충들이 진화의 3가지 명령(▷열심히 먹고 성장할 것 ▷어떻게든 잡아먹히는 사태를 피할 것 ▷성년기까지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릴 것)을 수행하기 위해 개발한 기묘하고 다양한 생존전략을 짚어본다. 영국 맨체스터 인근 숲에 사는 얼룩나방은 색깔이 연했다. 따라서 밝은색 나무껍질에 붙어 있으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함께 석탄을 때는 공장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공장 부근의 나무줄기가 매연으로 검어졌다. 밝은색 얼룩나방이 검은 나무 줄기에 붙어 있으면 금방 눈에 띈다. 1848년 검은색 얼룩나방 한 마리가 산업도시 맨체스터 인근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1898년경에는 맨체스터에 서식하는 얼룩나방 개체 중 약 95%가 검은색 얼룩나방으로 대체되었다. 이 외에도 적을 피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밤에 날아다니는 나방은 박쥐가 반향 위치 측정을 하면서 내는 울음소리를 듣고 회피 작전을 쓴다. 꿀벌은 침입자를 쏘아 자기 군체를 보호한다. 검은제비꼬리나비의 유충은 마치 새똥처럼 위장해 새들이 무심히 지나치게 만든다. 검은제비꼬리나비의 번데기도 변색 왕이다. 여름에는 초록색으로, 겨울에는 갈색이나 회색으로 환경과 어우러지는 위장술을 구사한다. 검은제비꼬리나비 성충은 독성 나비를 의태함으로써 새들의 공격을 피한다. 그러나 어떤 방어 기제도 완벽하지는 않다. 따라서 끝까지 살아남아 번식에 성공하는 곤충은 극소수다. 덕분에 특정 종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 ◇ 곤충들은 겨울을 어떻게 넘길까 곤충의 생존에 또 하나의 관건은 겨울나기다. 북극 지방과 온대지방에 사는 곤충 대다수는 휴면이라 일컫는 동면 비슷한 상태로 무시무시한 겨울을 견딘다. 그들은 휴면하는 동안 발달을 멈추고, 지독한 추위를 견디며, 몸에 비축해 놓은 지방으로 겨우내 살아남기 위해 신진대사율을 낮춘다. 휴면은 어느 발달단계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도롱이벌레는 진딧물이나 매미나방처럼 알 단계에서 휴면한다. 그런가 하면 코들링나방과 알풍뎅이는 유충 단계에서, 배추흰나비와 큰담배밤나방은 번데기 단계에서, 긴노린재와 몇몇 모기 종은 성충 단계에서 휴면한다. 이 모든 곤충들은 휴면을 종료하면 그때가 봄이든 여름이든 가리지 않고 발달을 재개한다. 물론 각종 곤충들은 자신에게 가장 우호적인 때에 맞춰 휴면을 끝낸다. 이를테면 교미하기에 가장 좋은 때, 온도가 알맞을 때, 자신들이 꿀을 빨아먹는 식물의 꽃이 만발할 때, 혹은 기생 곤충이라면 기주를 이용하기 가장 좋을 때 휴면을 끝낸다. ◇ 자손을 퍼뜨리기 위한 다양한 전략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 임무는 번식이다. 자연 선택의 검열을 통과한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한 곤충들의 구조적'생리적'행동적 적응은 천태만상이다. 어떤 종의 수컷은 암컷을 부른다. 예를 들어 도롱이벌레나 매미나방 등을 비롯한 수많은 종은 성페로몬으로 교미 상대를 꼬드긴다. 그런가 하면 광대파리 수컷은 암컷이 산란하는 장소에, 또 체체파리 수컷은 암컷이 먹잇감을 구하는 장소에 미리 숨어서 암컷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후손 잇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진딧물과 체체파리는 각각 상반된 전략을 택한다. 진딧물은 숫자로 밀어붙인다. 즉 수많은 2세를 낳은 다음 그중 일부가 운 좋게 살아남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진딧물뿐만 아니라 큰담배밤나방, 도롱이벌레, 밀혹파리 등도 수많은 알을 낳고, 방치하다시피 한다. 반면 체체파리는 극소수의 2세를 낳지만 애지중지 돌봄으로써 생존율을 높인다. 체체파리, 양파리를 비롯해 박쥐의 털에 붙어살면서 피를 빨아 먹는 4, 5종의 작은 무시(날개 없는) 파리는 임신 기간 내내 유충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유충이 다 자라서 번데기 단계로 탈바꿈할 채비를 마치면 출산한다. 또 어떤 곤충은 알을 낳지만 번데기화 할 태세를 갖출 때까지 먹잇감과 돌봄을 제공한다. ◇ 해충과 인간의 끝없는 전투 해충이란 인간 활동을 간섭하는 곤충 종을 말한다. 인간과 몇몇 종의 곤충은 같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투쟁하며, 그 투쟁이 치열한 것은 인간과 곤충이 얻고자 하는 바가 양쪽 모두에게 더없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우리 인간은 흔히 스스로를 자연의 주인이자 정복자라고 여기지만,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기 훨씬 이전부터 곤충들은 세상을 통제하고 장악해왔다. 그들은 인간이 그들 고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려 할 때마다 집요하고 능란하게 저지해왔다. 지금도 그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이 곤충을 상대로 어떤 중요한 우위를 점했다고도 우쭐대기는 힘든 처지다"고 말한다. 인간은 독한 살충제를 살포함으로써 해충을 박멸하려고 했다. 가령 말라리아를 근절하기 위해 살충제를 살포해 모기 개체를 줄이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지만, 모기가 DDT에 내성을 키우자 실패로 돌아갔고 이내 대대적으로 재발했다. 그런 사례뿐만이 아니다. 사과나무 과수원에 DDT를 비롯한 여러 살충제를 살포하자, 사과나무 식자곤충을 제어하는 포식자와 기생 곤충마저 죽어버려 새로운 해충과 진드기가 창궐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독한 살충제는 인간 삶의 터전인 자연에 씻기 힘든 큰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지은이는 "곤충은 식물의 수분과 죽은 동식물의 사체 재순환에 이르기까지 지구 상에 없어서는 안 될 서비스를 제공한다. 만약 곤충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농업을 비롯한 생태계 전반이 무너질 것이고, 생명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존속하지 못할 것이다"고 말한다. 더불어 지은이는 "곤충을 박멸하려는 시도보다는 살충제 없이 혹은 살충제를 분별력 있게 사용함으로써 곤충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진다. 이 책은 인류를 공격하거나 약탈하는 동시에 인류의 공격을 받는 곤충들을 집중 탐구함으로써, 곤충과 인류의 관계,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살펴본다. 또한 해충과 싸우는 과정에서 인류가 자연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다양한 영감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338쪽+화보 8쪽, 2만원.

2017-07-22 00:05:01

최현배의 '우리말본' 표지.

[내가 읽은 책] 자장면이 아니고 짜장면이다/ 민송기/ 학이사 2016

자장면이 아니고 짜장면이다/ 민송기/ 학이사 2016 연일 폭염이다. 늦은 저녁, 자장면을 시켜놓고 책을 펼쳤다. 표지에는 '민 선생의 우리말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인 민송기는 실제로 국어선생이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말이라고 하니, 먼저 표준말, 바른말, 고운 말이 떠오른다. 이런 여타의 책들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게 만든 건 제목이었다. 자장면이 아니고 짜장면이라고 했으니, 말을 만든 사람보다 말을 쓰는 사람을 배려하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은 쉽고, 가볍게 우리말에 담겨 있는 삶을 '생각해' 보는 책이다. 독자들이 우리말을 통해 지식과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소개했다. 정말로 어려운 주제도 쉽게 읽혔다.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하고 적확한 예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단숨에 1부를 읽었다. 아차, 싶었다. 삶을 '생각해' 보는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2부는 의도적으로 쉬어가며 읽었다. 듣기만 하려고 해도 어느새 우리말을 가운데 두고 저자와 독자는 대화를 나누게 된다. 더 천천히 읽었다. 이 책은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바른말 고운 말에 대한 고정관념을 짚어준다. 사람들이 왜 '짜장면'이라는 말을 더 즐겨 쓰는지, 저우룬파를 주윤발이라고 부르는지, '수고하세요'라고 말하면서 가책을 느껴야 하는지, '너무 좋다'는 댓글을 달면서 틀린 답안을 뻔뻔하게 내미는 것처럼 불편해하는지, 명확하게 떠올리게 된다. 한마디로 '국어선생도 헷갈리는' 말이 있음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2부는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말을 소개해 준다. 1부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놓고, 전문가의 시선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두루두루 언급하고 있다. 수능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찾는 문제는 있지만,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을 찾는' 유형은 없다는 것, 빌린 사람과 빌려 준 사람을 모두 빚쟁이라 부르는 것, 논리에 맞지만 덜 쓰는 말과 논리에는 안 맞지만 두루뭉술하게 계속 쓰는 말이 있다. 특히 '남침'과 '불혹'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인상 깊었고, 자장면으로 쓰고 짜장면으로 읽는 이유도 명쾌하다. 무릎을 치게 만든다. 3부의 소제목은 '문학 읽기의 즐거움'이다. 말 그대로 말의 즐거움을 문학에서 찾고 있다. 시와 고전을 읽고 '독자들은 타당한 해석과 자신만의 기발한 해석 사이를 오가며 작품을 즐긴다'(178쪽)고 한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타당한 해설에 딴죽걸면서 기발한 해석을 해보는 즐거움을 누려 보리라. 4부에서는 한글과 훈민정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국어 공부 잘하는 법을 묻기 전에 "노력이 고민을 해결한다"(209쪽)는 어느 야구선수의 말을 전해준다. 그 외에 고3의 받아쓰기 시간에 대한 일화가 짤막하면서도 묵직하게 소개되어 있다. 말은 곧 삶이다. 삶을 '생각해' 보자고 한 것은 바로 말을 생각해 보는 것과 같다. 말 한마디가 생사를 가르기도 하고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말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 자신의 입말을 자주 살피는 것이다. 말에도 맵시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이 알려주고 있다. 폭염에도, 폭우에도, 읽기 좋은 책이다.

2017-07-22 00:05:01

[반갑다 새책] 유리벽화

유리벽화/ 이선영 지음/ 그루 펴냄 이선영 시인이 새 시집 '유리벽화'를 펴냈다. 시집은 동시적인 발상과 동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예민한 감각이 두드러지는 마음의 그림들을 그려낸 시 75편으로 채워졌다. 그의 시는 낯선 대상과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고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해 깨달음을 얻게도 한다. 추억과 향수를 되뇌며 가족에 대한 사랑과 연민, 화해와 베풂, 효도와 부덕의 덕목들을 소중하게 떠받드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태수 시인은 "현실과 마주치면서 어둡고 우울하게 정한과 체념, 상실감과 무상감, 그리움과 연민의 정서를 떠올릴 때에도 이를 따스하고 포근한 서정적 언어로 감싸 완만한 반전을 읽을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삶의 애환들마저도 너그럽고 부드럽게 변용되고 승화된다"고 했다. 저자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동서문학'(1983) 시, '한글문학'(1994), '아동문학평론'(1995) 동시 신인상으로 등단, 제25회 영남아동문학상, 제42회 한정동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대구문학아카데미 회장, 대구여성문인협회 회장,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사)색동회 대구경북지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반짇고리문학회 회장이다. 142쪽, 1만원.

2017-07-22 00:05:01

[반갑다 새책] 목력

목력/ 조경선 지음/ 책만드는 집 펴냄 지난해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조경선 시인이 첫 시집을 냈다. 시집 '목력'에는 '목력' '옆구리 증후군' '씨앗' '별꽃을 읽다' 등 시조 문단에 새로운 목소리의 출현을 예고하는 시 65편이 담겼다. 그의 시는 자연친화적이고 개성이 뚜렷하다. 첫 시집이지만 이미 그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시는 수선화 향기처럼 은은하게 여운을 남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이의 성숙한 내면세계, 생태적 삶을 영위하려는 열망을 보여준다. 동시에 시상을 녹여낸 그의 삶의 온기도 느껴진다. 이정환 시조시인은 해설에서 "언어예술의 새로운 미학적 성취를 여실히 보여준다"면서도 "관조의 세계나 침잠의 언어에 머물기보다 예언자적 자세로 정신의 위의를 세울 것"을 당부했고, 정진규 시인은 "그는 언어 속 살결을 대패질하는 목수다"라며 "대패질의 비결은 '맞아떨어짐'의 율려에 있다"고 했다. 108쪽, 1만원.

2017-07-22 0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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