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반갑다 새책] 구석기인에 대한 환상 반박

"구석기인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더 이상 과거를 미화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 한때 미국을 중심으로 구석기 다이어트가 큰 화제를 모았다. 이는 인간은 구석기 시대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 당시 방식으로 돌아가면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농사 이전의 사냥 시절 식습관을 차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제품과 가공식품은 건강에 반하는 음식으로 치부하고, 특히 곡물에 있는 녹말이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이라고 지목하고 구석기인들처럼 육류와 채식, 과일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를 구석기에 대한 환상이라고 단언한다. 이는 진화에 대한 잘못된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 이 책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구석기 시대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깨주고, 선사시대 생활방식을 현재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 알려주는 동시에 진화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선사인식 식습관 추종 같은 구석기 시대의 착각들을 과학에 입각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구석기 시대에 대한 맹신은 진화에 대한 착각이 만들어낸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463쪽, 1만8천원.

2018-01-06 00:05:00

[이종문의 한시 산책] 동문의 노래

동문의 노래[東門行] 작자미상 동문을 나서며 出東門(출동문)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나 不顧歸(불고귀) 다시 와서 문에 들어와 보니 來入門(래입문) 슬픔이 북받쳐 오르는구나 悵欲悲(창욕비) 항아리엔 쌀이 다 떨어졌고 盎中無斗米儲(앙중무두미저) 시렁엔 걸려 있는 옷도 없구나 還視架上無懸衣(환시가상무현의) 칼을 뽑아들고 동문으로 가려는데 拔劍東門去(발검동문거) 아이 엄마 옷을 잡고 흐느껴 우네 舍中兒母牽衣啼(시중아모견의제) 다른 사람들은 부귀를 원하지만 他家但願富貴(타가단원부귀) 저는 당신과 죽을 먹더라도 함께 살래요 賤妾與君共餔糜(천첩여군공포미) 위로는 저 푸른 하늘의 뜻이고 上用倉浪天故(상용창랑천고) 아래로는 이 어린 것 생각하셔야죠 下當用此黃口兒(하당용차황구아) 지금 이렇게 가시면 안돼요 今非(금비) 쯧쯧 咄(돌) 가야 해 行(행) 갈 때가 이미 늦었어 吾去爲遲(오거위지) 백년해로는 다 글렀어 白髮時下難久居(백발시하난구거) 여기 절대적인 가난에 시달리는 한 가장이 있다. 그는 참다못해 칼을 빼들고 범행 장소로 나서다가, 윤리와 도덕이 떠올랐는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굶주리고 헐벗은 처자식의 모습을 보는 순간, 다시 눈이 까뒤집혀서 칼을 빼들기로 결단을 내린다. 강도질을 하려고 칼을 빼들고 나가는 남편과 이를 말리는 아내, 아내를 뿌리치고 기어이 나가는 남편 사이의 극적 갈등이 아주 생생한 대화체로 전개된다. 그야말로 한편의 단막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한(漢)나라 시대의 시가인 이 작품의 묘미를 더해주는 것은 내용에 상응하는 격한 호흡과 리듬이다. 보다시피 이 작품은 각 구절의 글자 수가 변화무쌍하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글자 수가 같게 구성된 한시의 보편 리듬이나 호흡과는 느낌이 하늘과 땅 차이다. 때로는 '今非/ 咄/ 行/ 吾去爲遲'처럼 급박한 상황에 걸맞게 스타카토로 짧게 툭툭 끊기기도 한다. 촉급한 리듬과 호흡을 통해 작품내적 상황을 더욱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래서 가슴이 더욱더 아프다. "한 대학생 누나/ 너무 배고파/ 메추리알, 우유, 김치, 핫바/ 6,650원어치 훔쳤다고 한다./ 설 때도 고향집에/ 아무도 없는 누나/ 누나의 가난을/ 누가 훔쳐 갔음 좋겠다./ 누나의 슬픔을/ 누가 훔쳐 갔음 좋겠다." 이화주의 '누가 훔쳐갔음 좋겠다'라는 동시다. 이 세상 사람들의 극한 가난, 극한 슬픔을 누군가가 몽땅 훔쳐가면 참 좋겠다. 만약 그런 도둑이 있다면, '참 착한 도둑 상'을 주고 싶다.

2018-01-06 00:05:00

함께 떠나는 문학관 여행…앉아서 전국 38개 문학관 탐방

수필가이자 경기도 안양 문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지은이가 1년 동안 전국의 문학관을 탐방한 여행기다. 전국 38개 문학관과 44명 작가들의 삶과 문학을 담고 있다. 서울, 경기, 충청, 강원, 전라, 경상까지 지역별로, 또 작가들의 출생 연도순으로 정리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문학관은 대부분 우리나라 문학사에 한 획을 긋거나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을 기리는 곳이다. 대충은 알고 있지만, 속속들이는 모르는, 그래서 알고 나면 더 애틋한 마음이 일어난다. 가령 서정주 시인, 하면 '훌륭한 시와 친일'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서정주 시인은) 1924년 줄포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30년 광주학생운동의 여파로 시위가 일어나자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돼 퇴학당한다. 이듬해 고창고등보통학교로 편입했으나 자퇴를 강요당한다. 그래서 상경한 시인은 경성부립도서관 종로분관에서 일어판 서양문학작품을 탐독하며 지내기도 하고, 간도 한 양곡회사에 취직한 적도 있으며, 호구지책으로 한문소설을 번역하기도 하며 팍팍한 생활을 이어간다.' -207쪽- '1950년 6'25전쟁 때 정신분열 증세가 심해 대구와 부산 등에서 요양했고, 1'4 후퇴 때는 피란 가서 전주고 교사, 조선대 부교수, 환도 후에는 서라벌 예술대, 동국대 교수를 지낸다.' -208쪽- 통영 앞바다가 보이는 김춘수 유품전시관(경남 통영시 해평 5길 142-16)은 특이하게도 이름이 문학관이 아니라 유품전시관이다. 다른 작가들의 문학관에도 일정한 정도의 유품이 있다. 그러나 김춘수 유품전시관에는 유난히 작가의 유품이 많다. 1층 전시관에는 각종 문예지와 작가의 저서 관련 자료, 육필원고, 연필통과 도장 등이 있다. 2층 전시관에는 이부자리가 덮인 대형 침대와 간이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가지, 탁자와 소파, 도자기가 놓여 있는 장식대, 다기 세트, 서재 등 작가의 생전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자료들이 많다.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이다. 호 '육사'는 일제 강점기 수감번호 '264'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17번이나 감옥에 갇혔고 독립운동단체에 가입해 일본과 중국에서 항일운동과 학업을 병행했다.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감옥에서 마흔의 나이로 순국했다. 안동시 도산면 이육사 문학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은이는 이육사가 어째서 그처럼 철저한 저항시인이 되었는지를 되새긴다. 이육사는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6형제 중 4형제가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외가는 의병장 집안으로 만주지역 독립운동에 이바지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이중직에게 글을 배워 선비정신이 몸에 뱄다. 옳고 그름, 사람의 도리, 자신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바를 자라는 환경 속에서 체득한 것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문학관은 다음과 같다. 윤동주 문학관, 한무숙 문학관, 김수영 문학관, 노작 홍사용 문학관, 황순원 문학촌, 박두진 자료실, 조병화 문학관, 심훈 기념관, 정지용 문학관, 오장환 문학관, 신동엽 문학관, 만해마을, 김동명 문학관, 이효석 문학관, 김유정 문학촌, 월하 문학관, 박인환 문학관, 목포 문학관, 채만식 문학관, 석정 문학관, 김환태 문학관, 미당 시 문학관, 조태일 시문학 기념관, 순천 문학관, 최명희 문학관, 청마 문학관, 이원수 문학관, 이병주 문학관, 김춘수 유품전시관, 박경리 기념관, 박재삼 문학관, 이육사 문학관, 요산 문학관, 오영수 문학관, 동리목월 문학관, 구상 문학관, 지훈 문학관, 권정생 동화나라. 전국 문학관 기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떠나기 전에 작가의 책 한두 권을 읽는다면 금상첨화겠다. 352쪽, 1만7천원.

2018-01-06 00:05:00

[책 CHECK] 어른 수업

하쿠호도 새로운어른문화연구소 지음/ 오선이 옮김/ 어른의 시간 펴냄 어느덧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향해 가는 고령화 사회에서 50, 60대는 예전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보다 앞서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50, 60대는 인생의 말년이 아니라 인생의 절반을 지나는 시기이자, 앞으로 30, 40년을 충실하게 보내기 위해서 새로운 활동을 해나가는 무대가 된다. 그들은 자녀의 양육 의무에서 벗어나고 회사 일에서도 해방되어 경제적인 여유와 자유로운 시간을 손에 쥔 새로운 어른들이다. 그중에서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취미와 여가활동을 즐기는 활동적인 집단이 있다. 같은 세대에게 영향을 끼치며 라이프 스타일을 이끌어가는 이들을 가리켜 일본에서는 '어른 이노베이터'라 부른다. 어른 이노베이터는 같은 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와도 교류하며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모든 세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 책은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멋진 어른의 모습과 함께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가정과 직장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상세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248쪽, 1만4천원.

2018-01-06 00:05:00

[책 CHECK] 문득 그대

구활 지음/눈빛 펴냄 "저승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띠리르릉 띠리르릉…' 두 번쯤 신호가 가더니 '이 전화는 없는 번호이니 헛짓 그만하고 끊어 주세요'라는 녹음된 음성이 영어로 들려왔다. 그럴 줄 알았다. 내 전화기에 친구의 번호는 멀쩡하게 살아 있었지만 친구는 가고 없다."('저승 전화' 중에서)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써온 여행과 음식이란 주제에서 벗어나 새롭게 쓴 산문집이다. 먼저 저승으로 간 저자의 어머니를 비롯해 옛 선비, 어른, 친지, 친구들에 대한 추모의 글들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시골 예배당의 종지기처럼 살아야겠다. 그러나 요즘 성당과 교회에는 종지기가 없다. 주민들의 새벽잠을 깨운다며 종소리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어릴 적 듣던 종소리가 듣고 싶으면 인터넷에 들어가 프랑스 솔렘수도원에서 검은 옷을 입은 늙은 수사가 치는 종소리를 듣는다. '뎅 데엥 데엥…' 그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귀와 눈이 열리고 마음까지 열린다"고 썼다. 신문기자 출신인 저자는 그동안 고향 이야기, 문화유산 답사, 절집 탐방, 옛 선비들의 풍류, 어머니의 손맛, 여행, 바닷가 음식 등 30여 년 동안 14권의 책을 냈다. 272쪽, 1만2천원.

2018-01-06 00:05:00

임진왜란 때 조선이 약해진 건 인플루엔자 때문?

판데믹 히스토리/ 장항석 지음/ 시대의창 펴냄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한 이래 인류는 '바이러스'의 공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1347년 유럽으로 전파된 아시아 내륙 페스트균은 유럽 인구 절반을 앗아갔다. 유럽을 초토화한 이 역병은 767년이 지나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졌다. 어떻게 사라졌을까? 아무리 강한 페스트균이라도 감염이 계속되려면 병을 옮길 숙주가 있어야 한다. 학계는 감수성 있는 숙주가 사라지면서 페스트도 사라졌다고 추정한다. 이후에도 역병은 계속됐다. 스페인독감(1918~1920), 아시아독감(1957~1958), 홍콩독감(1968~1969)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사스(SARS), 메르스(MERS), 에볼라. 지카, AI 등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콜레라나 뇌수막염 등 세균성 질병은 어느 정도 잡혔지만, 바이러스성 질병은 아직 속수무책이다. 에이즈는 여전히 공포 그 자체다. 이 책 '판데믹 히스토리'는 인류의 역사를 끊임없이 조정했던 질병에 대한 문명사적 기록이다. 현직 의사인 저자는 방대한 역사 자료 연구와 임상체험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문명사를 해부했다. 그리고 그만의 독창적인 관점과 다방면에 걸친 지식으로 질병 연대기를 깔끔하게 봉합했다. ◆침입의 역사 침입이 반드시 질병을 일으키진 않는다. 인류도 침입에서 비롯됐다. 핵도, 세포질 구분도 없지만, 독자적인 DNA를 가진 한 생물체가 우리 몸에 우연히 들어왔다. 미토콘드리아의 침입으로 시작된 기적은 생명을 탄생시켰다. 침입과 공생이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면역력이 없는 집단은 감염에 취약했다. 문명사는 그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람세스 2세가 즉위하고서 강제노역에 시달린 유대인은 역병의 도움으로 이집트를 탈출했다. 천재지변으로 나일강이 범람하고 하늘이 어두워졌으며 해충이 들끓고 가축과 사람에 전염병이 번졌다. 히타이트와의 전쟁은 천연두로 추정되는 질병이 창궐하던 이집트에 더 큰 타격을 주었다. 패퇴하지는 않았지만, 국력이 급속도로 쇠퇴한 이집트의 지배력이 약화하면서 유대인은 탈출에 성공했다. 아즈텍 문명은 스페인 군대와 함께 침입한 천연두로 파괴됐다. 트로이 전쟁 때도 아폴론 신은 제사장인 크리세스의 딸 크리세이스를 붙잡아 간 그리스군에 저주를 내려 질병의 화살을 쏴대면서 그리스군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동로마 제국을 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게 만든 것도 페스트로 설명한다. 2014년 의학 학술지 '란셋'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541년 콘스탄티노플을 덮치고 750년까지 유행했던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으로 동로마와 난공불락의 요새 콘스탄티노플은 멸망의 길로 치달았다. 논문은 이 역병이 잠복하고 있다가 흑사병으로 나타났고, 19세기 남중국과 홍콩을 중심으로 판데믹(Pandemic)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임진왜란의 배후에도 유럽발 인플루엔자가 있었다는 주장도 흥미롭다. 16세기 전국을 강타한 역병에 조선은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우리나라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건 전염병 때문이라는 것.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창궐한 스페인독감은 전사자 수의 3배에 달하는 5천만 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렇듯 생명 탄생의 순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를 감염시키고 파괴하면서 새로운 문명과 질서를 만들었다. 수천 년간 세계사는 질병에 걸렸다. ◆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하다 저자는 인류 역사를 감염과 내성의 변증법적 역사로 본다. 생태계 교란종인 우리나라 '황소개구리'처럼, 오스트레일리아에 들어간 '영국토끼'가 생태계를 위협하자 토끼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사례를 든다. 1년 만에 토끼는 거의 절멸했지만 7년이 지나자 내성을 가진 토끼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멸종되지 않은 집단은 질병과 균형을 이루며 번성, 번영한다. 저자는 천연두가 몰락시킨 아즈텍 문명의 후예나, 흑사병이 훑고 간 뒤 살아남은 사람들처럼 감염과 면역, 침투와 내성의 역학관계에서 승리한 생명체로부터 문명은 시작한다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는 동물-인간, 인간-인간의 전파 여부와 속도에 따라 전염병을 6단계로 구분한다. 4단계는 세계적 전염의 초기 단계, 5단계는 동일 권역 2개국 이상에 퍼져 대유행에 접어든 상태로 에피데믹(Epidemic), 마지막 6단계는 여러 대륙의 국가에 퍼져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판데믹(Pandemic)이라고 한다. 최근 발생한 에볼라와 신종인플루엔자는 5단계까지는 갔으나 판데믹을 형성하진 않았다. 현대적 사회구조와 시스템 덕분이었다. 몇 해 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생소한 병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다. 같은 공간에만 있어도 전염이 된다는 공포가 대한민국에 퍼졌다. 증상이 있으면 가족으로부터, 회사로부터, 사회로부터 격리됐다. 병원이 감염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병원 근처에 얼씬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정부는 근거 없는 지침을 내놨다. 낙타와의 접촉을 피하고 멸균되지 않은 낙타유나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 낙타는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던가. 결국, 격리된 서울대공원의 낙타는 중동이 어딘지도 모르는 '한국 태생'이었다. 심지어 이 낙타는 중동이 어딘지도 모르는 몽골지역 쌍봉낙타였다. 질병을 모르는 데서 벌어진 촌극이다. 질병은 얼마나 위험하고,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408쪽, 1만8천500원.

2018-01-06 00:05:00

양성애 작, '별마당 도서관'

[내가 읽은 책] 너무 시끄러운 고독

한타가 그랬던 것처럼…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문학동네. 2016 쫓기듯 앞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면서도 우리는 늘 누군가보다 못하다고 느낀다. 순간순간을 고군분투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보통의 우리들. 그렇게 우리는 살고 있다. 진정으로 원했던 삶은 까맣게 잊은 채…. 자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한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이것이 바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다. 그리고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삶 자체이기도 하다. 체코의 작가 보후밀 흐라발은 2차 세계대전, 공산주의 치하에 살면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없는 처지였지만 끝까지 체코어로 글을 쓰며 체코를 지켰다. 그 시대의 많은 체코 작가들이 고국을 떠나버렸으나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애썼다. 그 이유로 인해 그의 작품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빛을 발하고 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란 제목을 대하는 순간 고독해지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될 준비를 마친 후 읽기 시작한 책에서 난 고독의 심연에 빠졌다. 시끄럽게 말이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9, 21, 35쪽) 8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이 문장 안에 주인공 한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고스란히 들어 있다. 늘 고독한 주인공 한타는 오랜 세월 젖어온 시 같은 문장과 아름다운 글귀들의 소란스러움을 고스란히 안고 고독을 즐기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써내려 간 이야기는 길진 않지만 담담하게 가슴속에 새겨지는 아주 긴 이야기였다. 오랜 시간 책을 압축하는 일을 하면서 그는 아름다운 문장이 담긴 책을 차마 버릴 수 없었다. 그는 그 아름다운 책들을 하나하나 모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가 모은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만은 그는 외롭지도 고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오롯이 그만을 위해 펼쳐진 또 다른 세상이었다. "가치 있는 무언가가 담긴 책이라면 분서의 화염 속에서도 조용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11쪽) 하지만 그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새로운 세상이 다가왔다. 그가 삼십오 년째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평생을 함께하려 한 그 일은 기계화에 밀려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과 앞으로의 삶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걸 느꼈다. 어쩌면 그가 다가올 세상에 절망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이루어놓은 세상에 온전히 혼자 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와 책을 떼어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영원히 그 아름다운 문장과 오래된 책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빨아 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10쪽) 한타만큼 강렬히 책을 사랑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쏜살같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들은 늘 초조해하며 그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 삶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어떠한가? 맞서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고 또한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내가 추구했던 삶과는 다른 삶에 동조하지 못하는 합리성을 찾아내고 만다. 하지만 한타를 만나고 난 뒤의 내 삶은 바뀌리라. 진정으로 내가 추구하는 삶을 위해 내 온몸을 바치리라. 오롯이 내 삶을 사랑하리라. 한타가 그랬던 것처럼….

2018-01-06 00:05:00

'청년 vs 기성세대' 프레임 만들어 정치적 수익 노리는 세력들

인종, 젠더, 지역… 이제 문제는 '세대'다. '부자 아빠가 가난한 아들의 밥그릇을 훔친다'는 표현처럼 세대 갈등은 최근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오랫동안 세대론을 연구해온 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이 책에서 오늘날 세대 갈등 문제를 '세대 게임'이라는 틀로 해석하며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고 있다. '세대 게임'이란 그에 참가한 사람들이 세대를 이뤄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활동과, 게임의 판을 짠 집단들이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세대를 활용해 사람들의 경쟁이나 갈등을 부추기는 움직임을 말한다. 해묵은 지역 갈등이나 계층'계급 대립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세대 갈등, 청년 대 기성세대의 대결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레스터 서로 교수 '세대 대결' 예측="가까운 미래에 계급 전쟁은 빈자와 부자의 대결이 아니라 젊은이와 노인의 싸움으로 다시금 정의될 것이다." MIT 경제학 교수 레스터 서로는 1996년 '뉴욕 타임스 매거진' 칼럼에서 '어떤 혁명적 계급의 탄생'을 알렸다. 그의 예견은 초고령'저출산 시대를 맞아 국제 흐름은 물론 특히 한국의 현 상황과도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16년 19~75세 국민 3천66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사회통합 실태 및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가 '10년 후 고령자와 젊은이 간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인구가 감소하면 사회적 긴장도는 높아지게 되는데 특히 정치적 긴장이 커진다. 정치는 재화의 분배를 결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계층 간, 세대 간 이해가 부딪칠 수밖에 없다. 저자는 기득권, 노인들의 정치적 성향을 '시니어 권력 모델'로 정의한다. 이들은 막강한 득표력으로 자신들의 몫(연금, 의료 혜택 등)을 챙기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들에 유리한 정책을 수립하도록 압박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젊은 층들이 조직적 반발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 언론의 보도, 학교, 직장, 가정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세대 갈등은 위험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말이 안 통하는 꼰대' '젊은 애들은 이래서 문제'라고 서로 비난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세대 게임'이란 틀로 사회 현상 진단=저자는 일상적, 혹은 학술적으로 혼재해 쓰이는 '세대' 개념을 알기 쉽게 정의하고, 한때 청년의 전유물이던 '세대' 개념이 변화해온 배경과 과정을 살피고 있다. 또 청년과 기성세대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세대 전쟁론'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펼쳐 보이며, 새롭게 대두된 세대 연구의 최신 성과들을 대입해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다. 전 교수는 우리 사회 도처에 널려 있는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세대 게임'이라는 틀로 분석하고 있다. 보통 세대 게임은 게임에 참여하는 '세대 당사자'와 게임을 고안하고 설계하여 그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세대 플레이어'라는 두 집단으로 나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세대 플레이어'와 그들이 게임을 통해 얻는 '정치적 수익'에 주목한다. 세대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사회 현안을 세대의 문제로 해석하는 '세대 프레임'을 통해 온갖 사회문제를 '세대'의 부호로 변환한다. 즉 사회문제들이 세대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원인들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치 촛불과 태극기가 대립했던 지난 광장의 소란을 법치와 민주주의의 틀이 아닌, 세대 대립의 문제로 몰아가 사회 갈등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세대 게임 플레이어는 대체 누굴까. 저자는 명확히 '용의자'를 지목하고 있지는 않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누군지 특정하지 않았지만 시민들의 정치적 소외와 차별을 숨기려는 위정자일 수도 있고, 부의 불균등한 분배'불평등 모순을 감추려는 기업 집단일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세대 프레임으로 사회 갈등을 바라보면 문제의 해결책은 특정 세대에게 책임을 묻고 그들로 인해 손해를 입은 다른 세대에게 보상하는 식이 된다. 이 결과 이기적인 기성세대가 청년의 현재를 빼앗고 미래를 '탕진'하기 때문에 (불공정한 처사를 일삼는) 기성세대를 벌해야 한다는 식의 사회 분열적, 소모적 논리가 성립된다. ◆'세대 프레임' 허구에 속지 말아야=전 교수는 '정말 세대들의 싸움이 시작된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한다. 누군가 현재 사회의 갈등을 세대 갈등으로 비치도록 기획하는 세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취객과 경관의 일화'로 지금의 상황을 비유한다. 가로등 불빛 아래 취객과 경관이 열쇠를 찾고 있다. 여기서 열쇠를 잃어버린 게 맞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취객은 "여기가 아니라 저긴데, 저긴 가로등이 없어서 못 찾는다"고 답한다. 저자는 우리가 '세대 프레임'이라는 가로등의 강렬한 불빛에 현혹된 것은 아닌지를 되물으며 그 나름의 손전등으로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아보자고 말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의거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혹시 우리도 세대 프레임의 강렬한 불빛에 현혹되어 엉뚱한 곳만 주시하는 것이 아닐까." 책은 이런 세대 프레임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게임 플레이어들이 짜놓은 틀을 항상 '의심하라'고 말한다. 세대 플레이어들이 아직 건재하고 쉽게 조작이 가능한 세대 프레임 탓에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갈등이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저자는 "갈등은 모든 사회에 상존하고 필요악으로 존재한다"며 "중요한 것은 여러 사회 갈등들이 중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무의미한 세대 갈등들을 여러 겹으로 겹쳐 놓으면, 갈등이 더욱 선명해져 소모적 싸움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 전상진은=서강대학교 사회학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 시대의 다양한 현상들을 사회학이라는 '도구'로 해석하고 진단하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세대 문제, 음모론, 자기계발 붐 등의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음모론의 시대' '세대 게임―세대 프레임을 넘어서'가 있다.

2018-01-06 00:05:00

존 에버렛 밀레이 작 '오필리아'

[내가 읽은 책]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 지성사)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5) "참 이상하지? 당신을 생각하면 밤새워 일을 해도 잠을 못 자도 안 피곤해"라는 말, 혹은 비슷한 말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렵지 않게 들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직접 들었거나 해본 말일 수도 있다. 사랑의 힘을 아주 쉽게, 아주 일상적으로 설명해 주는 말이 아닐까? '에로스의 종말'은 이러한 위력을 가진 사랑이 오늘날 여러 요소로 인해 위협받고 있음을 설파해 놓은 책이다. '피로사회'로 잘 알려진 저자 한병철은 한국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가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일에서 철학과 문학, 신학을 공부했으며, 2010년과 2012년에 각각 출간한 '피로사회' 와 '투명사회'가 독일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가장 주목받는 문화비평가로 떠오른 그가 '에로스의 종말'을 일곱 개의 장으로 나누어 진단했다. 1장에서 저자는 에로스와 우울증의 대립적 관계를 꿰뚫는다. 에로스는 자신의 주체를 타자를 향해 내던지는 반면, 우울증은 자기 속으로 주체를 추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멜랑콜리아'를 예로 들며, "에로스는 우울증을 제압한다"(22쪽)고 규정한다. 주체를 깨뜨리는 완전한 타자의 침입이라는 파국적 재난이 뜻하지 않은 구원으로 연결됨을 말한다. 2장과 3장에서는 자본과 생산성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사회에서 에로스를 품지 못하는 현대인을 느낄 수 있다. "할 수 있음이 지배하는 성과사회, 모든 것이 가능한 사회, 주도권과 프로젝트가 전부인 사회는 상처와 고뇌로서의 사랑에 접근하지 못하"(44쪽)고, "벌거벗은 삶을 지키려는 경향은 더욱 첨예화되어 건강의 절대화와 물신화로 치닫고 있"(53쪽)다고 파악하고 있다. 4장과 5장은 "그저 따뜻함, 친밀함, 안락한 자극을 넘어서지 않는 오늘의 사랑은 신성한 에로티즘이 파괴"(71쪽)된 포르노이며, 너무 많이 보여주는 과다한 정보로 인해 환상이 없다고 토로한다. 타자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므로 에로스도 소멸한다는 것이다. 6장 '에로스의 정치'는 "실천과 참여로 점철된 삶과 사랑 특유의 강렬함"(84쪽)이 만나는 접점이 용기라고 언급한다. 7장은 엄청난 데이터의 활용으로 이론적 모델이 불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크리스 앤더슨의 '이론의 종말'에 대한 반박이다. 데이터가 동력인 사유란 존재하지 않고,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펼치는 담론은 그 자체가 에로틱한 유혹이라 한다. "에로스의 힘을 동반하지 못하는 로고스는 무기력하다"(96쪽)는 말로 에로스가 사유에 미치는 절대적 영향력을 피력한다. 철학서는 어렵다. 그러나 익숙하던 인식의 겉가죽을 한 꺼풀 들추어보는 것은 한 해의 끝자락에서 해볼 만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저명한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서문을 보탠다. 그는 '한병철의 주목할 만한 에세이를 읽는 것은 고도의 지적 경험이며, 그것은 사랑의 수호, 혹은 사랑의 재발명을 위한 투쟁에 명확한 의식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 했다.

2017-12-09 00:05:15

음식의 새 역사 쓴 보존 식품 '통조림'…『통조림의 탄생』

통조림의 탄생/게리 앨런 지음/문수민 옮김/ 재승출판 펴냄 맥주, 치즈, 포도주, 햄, 김치, 된장, 잼, 통조림 과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보존 식품이다. 계절에 따라 풍요와 빈곤을 번갈아 겪었던 인류는 제철에 생산되는 한정된 식재료를 좀 더 오래 먹기 위해, 겨울철 부족한 식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보존 식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대의 냉장, 냉동, 저온 살균, 방사선 처리, 화학적 방부 처리 등의 방법이 개발되기 전, 그러니까 생화학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선조들은 음식을 오래 보존할 뿐만 아니라 풍미를 더해주는 나름의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 책은 전 세계의 '변형되거나 변형한 음식들'과 그런 음식들을 탄생시킨 보존법과 보존 식품의 역사를 훑는다. 기후, 지역, 재료에 따라 음식이 어떻게 발전(변화)되어 왔는지, 보존 식품에 어떤 가치와 의미가 숨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오래 먹기 위해 보존했는데, 다양한 맛 얻어 인류는 제철이 아닌 때에도 해당 음식을 먹겠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음식 보존법을 찾아 나섰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새롭게 탄생한 보존 식품은 전 세계 사람들의 식생활을 바꾸기도 하고, 통일시키기도 했으며, 조리법을 다양화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같은 재료를 갖고도 얼마든지 다른 맛, 다른 영양 상태의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의 첨단 식품보존법은 원재료의 영양을 보존하고, 신선도를 유지해 본래의 풍미와 식감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옛사람들은 화학이나 물리, 생물학적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갖가지 기대에 걸맞은 성공과 기대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통해 식품을 오래 보존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맛이 깃든 음식을 창조했다. 식품 고유의 영양을 지키면서 새로운 풍미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현대의 첨단 기술이 먼저 나왔더라면, 그처럼 다양한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포도를 묵혀 만든 와인, 찻잎을 말려 오래 보관하던 중에 '반쯤 썩는 바람'에 탄생한 보이차, 우유를 발효해 만든 치즈는 현대의 첨단 보존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탄생한 것들이다. ◆상금을 노린 요리사의 발명으로 통조림 탄생 현대적인 식품보존기술은 1795년에 개발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총재정부(總裁政府'1795년 10월 26일~1799년 11월 9일까지 존속한 정부)가 전투식량 조달을 위해 새로운 식품보존법 개발에 1만2천프랑의 상금을 내걸자, 프랑스 요리사 니콜라 프랑수아 아페르가 도전했다. 그는 새로운 식품보존법을 개발하려면 2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깨달았다. 음식 안의 모든 생물을 사멸하고, 새로운 미생물이 침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페르는 14년 동안 갖가지 방법으로 가열, 밀봉을 시도했고 마침내 성공했다. 그가 고안한 방식은 고압증기멸균기를 이용해 식재를 멸균하는 것이었다. 멸균을 위해 그는 음식을 넣은 유리병 마개를 헐겁게 봉하고 고압증기멸균기의 물에 병을 담그고 가열했다. 음식은 끓는점보다 더 높은 온도로 가열되면서 멸균되었고(멸균 완료), 음식물 병 속에 든 증기와 공기는 헐거운 마개를 통해 빠져나갔다. 음식물이 든 병이 고압증기멸균기의 뜨거운 물 가운데 있었으므로 다른 미생물은 병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처리가 끝나면 병마개를 단단히 박고 주둥이를 철사로 묶은 뒤 밀랍으로 봉했다. 아페르는 이 과정에서 소금의 일반 포화용액은 끓는점이 108℃이지만, 특정 염화칼슘을 넣으면 끓는점이 170℃까지 올라가 멸균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맥주 집에서 짭짤한 땅콩을 공짜로 주는 까닭 보존 음식은 인류의 식문화 변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식사 시간에만 먹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일하면서도, 영화나 연극을 보면서도 무엇인가를 먹는 문화가 발생한 것이다. 말린 다음 채썰어 짭짤하게 간한 오징어는 태평양 연안 지역에서 사랑받는 간식이다. 홍콩, 필리핀, 일본, 하와이 사람들은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말린 오징어를 주전부리 삼아 씹어 먹는다. 쫄깃하고 짭짤한 오징어채를 술안주로 먹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보존 음식은 음식물 영업과 수익 확대에도 기여한다. 한국을 비롯한 서구의 술집에서는 흔히 공짜 땅콩을 내놓는다. 갈증을 유발해 맥주를 더 많이 팔기 위한 상술이다. 스페인의 타파스(tapas)나 프랑스의 올리브도 마찬가지다. 영화관에서는 소금을 듬뿍 뿌린 팝콘을 이용해 이익이 많이 남는 탄산음료를 좀 더 사 마시도록 유도한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장 보존 식품의 위험, 제2장 과거의 보존법, 제3장 현대의 보존법, 제4장 주요 보존 식품, 제5장 음식보존법이 지역색을 띠는 까닭, 제6장 지리적 여건과 처리 과정을 거쳐야 하는 식재료와 양념, 기타 재료 등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과거의 보존법'에는 ▷건조법 ▷염장법 ▷훈연법 ▷공기차단법 ▷염지법과 발효법 ▷초절임법 ▷당절임 ▷산지방 등이 있고, '현대의 보존법'에는 ▷통조림법 ▷19세기의 기술적 혁신 ▷농축법 ▷저온살균법 ▷냉동법 ▷화학적 방부제의 이용 ▷방사선처리법 ▷고압처리법 ▷허들기술 등이 있다. 302쪽, 1만6천원. ▷지은이 게리 앨런은… 게리 앨런(Gary Allen)은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엠파이어 스테이트 칼리지 부교수로 음식의 역사 및 문화를 가르친다. 더 컬리너리 인스티튜트 오브 아메리카(CIA)에서 만든 '리마커블 서비스'(Remarkable Service)를 공동 편집했으며, 음식과 관련된 글을 잡지에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전 세계 허브의 역사'(Herbs: A Global History)와 '전 세계 소시지의 역사'(Sausage: A Global History) 등이 있다. ▷옮긴이 문수민은… 문수민은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을 전공했으며, 글밥 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디자이너 브랜드 시작하기' '리스크 판단력' '인생의 끝에서 다시 만난 것들' '독한 충고' '마우이 섬으로 가는 길' '1분 협상수업' '초콜릿 초콜릿' '워런 버핏의 위대한 유산' '이사의 채식 백과' '에브리데이 슈퍼 푸드' '제이미 올리버의 15분 요리' 등이 있다.

2017-12-09 00:05:15

[책 CHECK] 거문고, 여섯 줄의 조화

거문고, 여섯 줄의 조화 견일영 지음/ 학이사 펴냄 이 책은 여든을 훌쩍 넘긴 작가가 오랜 세월을 산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내용과 문체로 수필문학에 대한 정열과 완성도를 잘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는 저자의 작품 경향을 바탕으로, 한 편 한 편의 작품에서 서정적이고 감동적인 정서가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잘 나타난다. 저자가 이 수필집에 쏟은 정성은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나는 거문고 여섯 줄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본다. 내가 얼마나 빨리 달리기에만 정신을 빼앗겼던가. 아직도 속도감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슴의 여섯 줄은 조율이 맞지 않아 어설픈 소리만 내고 있다." 저자는 예술이 우리 마음의 중심을 잘 잡는 데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고 말한다. 누구든 삶을 성실하고 정직하고 충실하고 겸손하게 살았다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전달한다. 거문고의 줄이 6개인 것도, 가장 안정된 음을 내는 줄 수가 정해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시험을 거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북 선산 출신인 저자는 대구문학상과 원종린 수필문학상을 받았으며, 수필집 '산수화 뒤에서'와 장편소설 '탁영금' 등이 있다. 216쪽, 1만3천원.

2017-12-09 00:05:15

[책 CHECK] 시옷 씨 이야기

시옷 씨 이야기 박방희 지음 / 고요아침 펴냄 이 책은 동일한 제목의 연쇄로 쓰여진 일종의 연작 시조집이다. 시집은 1부 '남자는 받침이 필요하다', 2부 '진지함은 지진을 일으킨다', 3부 '극비를 뒤집으면 비극이 된다', 4부 '어물전 아줌마 가라사대', 5부 '껍데기는 언제 행복한가?' 등 총 5부로 구성돼 있으며, 70여 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시인은 스스로 "시옷 씨란 '생각하는 모든 사람의 이름'"이라고 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존재자의 깊은 사유를 통해 기억과 예기(豫期)라는 서정의 원리를 동시에 충족해가는 속성으로 수미일관(首尾一貫)하게 짜여져 있다. 그 안에는 오랫동안 흔들려온 시간이 녹아 있고, 새로운 희망을 마련해가려는 시인의 의지가 배어 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이처럼 박 시인은 경험적 직접성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기억의 현재적 구성력과 삶의 보편적 형식을 암시하는데 진력해간다. 이러한 형상이 바로 '시옷 씨' 곧 '생각하는 사람'의 다른 이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주 출신인 저자는 시조는 물론 시, 동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쓰고 있다. 저서로 '너무 큰 의자', '붉은 장미', '꽃에 집중하다' 등 시조집과 시집, 동시집 등이 있다. 108쪽, 1만원.

2017-12-09 00:05:15

재미있단 마리오, 계속하잔 마리오…『81년생 마리오』

81년생 마리오/ 인문학협동조합 엮음/ 요다 펴냄 "어머니, 저는 그냥 100원만 주십시오. 100원만 있으면 올림픽 영웅과 함께 하루종일 놀 수 있습니다." 지난해 초 종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대입 7수생 정봉(안재홍 분)이 엄마(라미란 분)에게 용돈을 달라고 한다. 입시는 뒷전이고 우표수집, 전화번호부 외우기 등 '덕질'(좋아하는 분야에 빠져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는 것)만 골라 하는 그가 100원을 들고 향하는 곳은 동네 오락실. '하이퍼올림픽' '갤러그' '보글보글'을 정복한 그는 8비트 게임 세계에서만큼은 '최고'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쌍문동 '최강자'였다. 최고의 바둑기사 최택(박보검 분)도 정봉과 최고 좌를 두고 일전을 치른다. 그 시절 정봉에게 전자오락은 대입 7수의 좌절감을 극복하고 스트레스를 풀 유일한 낙이자 존재감을 확인하는 매개물이었다. 어디 정봉이와 택이만 그랬을까. ◆슈퍼마리오에서 애니팡까지 방송가에서는 30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돌풍을 일으키더니 서점가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이 올해 최고 판매량을 기록,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그래서 '81년생 마리오'는 제목만 봐도 낯설지가 않다. 게임이라면 한 가닥씩 하는 12인이 40년을 거쳐 간 수십 가지 게임을 소개한다. 8비트 게임을 술술 읊게 하는 이 책은 끝판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동전을 쌓아놓고 쇠자를 튕기며 시간을 보내던 오락실의 추억을 상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주전쟁 시리즈의 시초격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이어 나온 슈팅게임의 제왕 '갤러그'(정식명칭은 '갈라가'), '보글보글'(정식명칭은 '보블보블'), 자욱한 담배연기, 단순한 8비트 음악, 옹기종기 모여 구경하는 아이들로 가득했던 추억의 공간은 2000년대 들면서 점차 자취를 감춘다. 술자리를 1차에서 2차로 옮기는 동안 또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 잠시 들르는 곳이 됐다. 그렇다면 왜 1981년일까. 1981년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 슈퍼마리오가 '동키콩'으로 데뷔한 해다. 닌텐도사가 개발한 슈퍼마리오는 배관공 마리오가 납치된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 있다. 마리오는 동전을 먹고, 점프해서 벽돌을 깨면 나오는 버섯을 먹고 키가 커진다. 마리오의 주 무기인 점프와 중독성 강한 배경음악은 게임 대중화의 일등공신이 됐다. 1990년 비슷한 시기에 가정용 게임기가 보급되면서 현대슈퍼컴보이는 중산층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닌텐도사는 급성장한다. 아케이드 게임은 콘솔 게임으로 무대를 옮겨간다. 스트리트파이터나 KOF(The King of FIghters) 시리즈는 아케이드 게임을 콘솔 게임으로, 파이널판타지는 콘솔 게임을 플레이스테이션과 온라인 게임으로 옮겨가며 대중화한 대표적인 게임이다. PC의 보급으로 게임 덕후(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들은 신세계를 경험한다. 더불어 IMF사태와 교육열기는 가정용 게임기의 쇠퇴를, 동시에 PC시장의 성장을 이끈다. '난세의 영웅이 되어 천하를 평정한다'는 꿈을 꾸게 한 전략 시뮬레이션게임의 원조 '삼국지', 전국 모든 10대 소년을 양육의 늪에 빠트린 '프린세스메이커', 개발 시대의 전유물을 그대로 투영해 누구나 도시계획가의 꿈을 꾸게 한 '심시티' 등이 아이들을 방에 가둔다. PC게임의 전성기는 대전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정점을 찍는다. 온라인 게임 대전이 게임시장을 지배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온라인 대전은 롤플레잉게임 '디아블로' '라그나로크'와 '포트리스'로 이어진다. 빠른 속도와 팀 운영의 맛을 본 1981년생들은 집 밖에서도 게임을 즐긴다. 이렇게 생겨난 것이 PC방. '방' 문화는 '플스방'과도 연결된다. 2002년 월드컵을 필두로 한 축구 열기에 힘을 받은 '위닝일레븐'은 이들을 플스방으로 안내한다. 게임은 계속 변했다. 스마트폰이 일반화하면서 온라인 PC게임은 모바일 게임에 권좌를 양보한다. 2012년, 회사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전 국민을 사랑에 빠트린 게임이 등장하면서다. 연락이 뜸했던 지인에게까지 '카톡'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하트'를 잊어버릴 수 없다. 이제는 한물간 '애니팡'까지. 책은 우리가 사랑한 게임을 총망라한다. ◆게임과 사회사 게임에 대한 추억은 조이스틱, 패드, 키보드, 8비트 전자음으로 대표되는 하드웨어 게임기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저자들은 플랫폼의 변화가 가져오는 사회상의 변화, 대중문화의 양적'질적 성장에도 주목한다. 대학입시에서는 낙오자였던 정봉이 쌍문동 게임장에서는 '장학생'이고 '수석'이자 꼬마들의 우상이었던 것처럼, 가정용 게임기는 아이들에게도 '권력'을 부여했다. 게임기를 가진 집에 초대받는 친구가 생기고, 같은 게임을 하면서도 컨트롤러를 가진 '주인' 권력과 '한 게임' 하러 놀러 온 '객'을 구분하게 하였다. 게임세계는 '사이버공간'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상 물정 모르던 이들은 게임에서 경쟁을 배우고 원리를 익혔다. 충성'지력'무력'정치'병사 등 개인의 능력치를 수치화해 현대 사회의 '스펙'을 대신하고(삼국지), 기품있는 옷을 걸치고, 비싼 음식을 먹은 딸을 고급 학원과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아버지가 돼야(프린세스메이커) 한다는 부담도 생겼다. 끊임없이 자원을 채취하고, 빠르게 남의 땅을 먹고, '멀티'를 늘리는 종족경쟁(스타크래프트)이 냉혹한 현실을 대변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현실과 차이가 있다면 게임 속 캐릭터는 출발점이 같다는 점이다. 공평한 조건에서 시작하기에 열심히 하다 보면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놀이문화 속에서 자본주의, 계급, 젠더를 경험했던 세대가 자라 장기불황과 저성장, 인구절벽의 시대에 직면했다. 장애물을 뛰어넘고 끝판을 내던 용기를 끄집어 내기 위해서라도 추억 소환이 필요한 때다.

2017-12-09 00:05:15

[반갑다 새책] 수화로 속삭이다

수화로 속삭이다/ 정표년 지음/ 학이사 펴냄 지역 대표 여성 문인 정표년 시인이 네 번째 시조집 '수화로 속삭이다'를 펴냈다. 6부로 구성된 시조집은 '서성이는 가을' '동백꽃 때문에' '구름이 산허리 잡고' '일흔 오솔길' '잠자코 웃는 이유' '무심코 지난 일들'로 이뤄졌다. 우리 시조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시인이 지난했던 삶 속에서 찾은 평온을 소재로 '한 방울 눈물이 되어' '그렇게 되기까지' 등 110편의 시조를 실었다. 요란한 기교를 걷어낸 그의 시는 깊은 감동을 전한다. 정 시인은 꾸준한 활동으로 제1회 민족시가 대상과 2017 대구시조문학상을 수상했다. 136쪽, 1만원.

2017-12-09 00:05:15

[반갑다 새책] 가자미식해를 기다리는 동안

가자미식해를 기다리는 동안/ 조성순 지음/ km 펴냄 조성순 시인이 두 번째 시집 '가자미식해를 기다리는 동안'을 펴냈다. 2013년 '목침'에 이어 두 번째로 펴낸 이번 시집에는 총 66편 시가 실렸다. 시인 조성순은 길 위의 방랑자다. 그가 걷는 길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아 안과 밖이 이어져 있다. 진실에서 벗어나 도망치고 감추려 할수록 세상과 통하는 통로를 찾게 된다. 행장을 짊어지고 떠난 여행자의 시선은 다가올 시간과 나아갈 길에 희망을 담았다. 덮고 가리고 벗어나려 하지만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는 어쩔 수 없이 앞마당에 뿌리내린 늙은 감나무일 수밖에 없다. 그의 시에서 사물은 독립된 객체가 아니라 관계를 맺는 매개물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정대호는 "그의 시 '감꽃'과 '고등어'는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게 하는 특별한 존재이다. 또 '무지개'가 유년기의 낭만이면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꿈과 같은 것이라는 시인만의 문제 제기는 재미있는 탐색이 될 것"이라고 해설했다. 경북 예천에서 나고 자란 조 시인은 대건고, 동국대를 졸업했다. 1989년 이광웅'김춘복'김진경'도종환'윤재철'안도현'조재도 등과 교육문예창작회를 창립하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몽골 고비사막, 실크로드와 고산 트레킹을 즐겼던 그는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920㎞ 도보 여행을 끝내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160쪽, 1만원.

2017-12-09 00:05:15

[이종문의 한시 산책] 아내가 꿈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일세

아내가 꿈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일세 진도 오랑캐 소탕을 위해 몸을 아니 돌보다가 誓掃匈奴不顧身(서소흉노불고신) 오천 정예병이 일망타진 당했다네 五千貂錦喪胡塵(오천초금상호진) 가련타, 전쟁터에 나뒹구는 저 해골들 可憐無定河邊骨(가련무정하변골) 아내가 꿈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일세 猶是深閨夢裡人(유시심규몽리인) *원제: 隴西行(농서행)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한반도 주변의 각국 지도자들이 꼭 읽어보시라고 소개하는, 당나라의 시인 진도(陳陶, 812?-885?)의 시다. 보다시피 오랑캐들을 일망타진(一網打盡)하기 위해 출정을 했던 무려 5천 명의 병사들이 도리어 일망타진을 당해버렸다. 전쟁터에는 그들의 해골이 참혹하게 나뒹굴고 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병사들의 아내는 아직도 자나 깨나 전쟁터의 남편을 그리워한다. 그 넓은 품에 안겨 한바탕 회포를 진하게 풀 날을 애가 다 타도록 기다리고 있다. 읽는 순간에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터져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바로 쿵, 하고 떨어진다. 1950년 8월 10일 목요일, 포항의 하늘은 쾌청하였다.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학도병 이우근은 그날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2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머님!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님!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머님!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이!" 하고 부르며 어머님 품에 덜썩 안기고 싶습니다……. 어머님!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이 저희를 살려두고 그냥은 물러갈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을 재검스럽게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벌컥벌컥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어머님! 놈들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뿔싸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이따가 또……." 학도병 이우근은 살아서 돌아가 어머니 품에 '덜썩' 안기기를 이토록 뜨겁게 갈망하였다. 하지만, 그의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안녕이 아니라고 했지만 바로 그것이 안녕이었다. 이 편지를 쓴 다음 날 그는 피묻은 편지를 호주머니 속에다 남겨둔 채 48명의 동료와 함께 처절하게 전사를 해버렸으니까.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자나 깨나 기도하고 있었으리라. 5천 병사의 아내들이 이미 해골로 나뒹굴던 남편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자나깨나 기도했던 것처럼!

2017-12-09 00:05:15

박선주 영남대 생명과학과 교수가 독도의 야생화를 연구한 생태서적 '독도를 지키는 우리 야생화'를 펴냈다. 영남대 제공

"야생화, 거기 있어줘 고맙다"…『독도를 지키는 우리 야생화』

사람, 식수, 그리고 나무. 독도가 국제법상 '바위'가 아닌 완벽한 '섬'의 지위를 갖게 하는 필수 조건이다. 울릉읍 독도리에 김성도 이장이 살고 '물골'이라는 식수원도 있으니 남은 것은 식생(植生)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도의 나무, 풀, 야생화는 우리의 영토주권을 확보하는 마지막 관건이다. 독도 야생화들의 생태를 그대로 옮긴 '독도를 지키는 우리 야생화'가 책으로 나왔다. 이 책은 영남대 박선주 교수와 마산대 정연옥 교수가 수년간 조사해온 독도 야생화에 대한 모든 기록이다. 작년 4월부터 10월까지 3차례에 걸쳐 가파른 동도와 서도를 오르내리며 독도의 생태계를 모니터링 했다. 박 교수팀은 조사를 통해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무당벌레 '사임너스' (Scymnus) 등 곤충류 10종, 조류 6종을 새로 발견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 현장에서 채취한 샘플 DNA 분석을 통해 독도와 울릉도, 강원 양양, 일본 서해안에만 서식하는 해국(海菊)이 한국 고유의 종(種)임을 입증했다. 한국 고유의 종을 찾았다는 것은 우리만의 유전자원을 확보했다는 의미로, 전 세계적으로 '생물자원 전쟁'이 전개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박 교수는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별로 독도의 야생식물들을 구분하고 야생화 57종에 대해 현지 촬영 사진을 수록하는 한편 생태적 특성, 식물학적인 여러 기작과 서식지 천이(遷移) 과정을 상세히 정리했다. 섬초롱꽃, 섬기린초에서부터 쇠무릎, 쇠비름, 흰명아주, 강아지풀, 별꽃 등 흔히 '잡초'라고 알려진 야생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 새 이름 모를 잡초의 존재가 묘하게 '나라 사랑'이나 '애국 코드'와 만난다. 책갈피를 넘기는 독자들은 '거기 있어줘 고맙다'며 꽃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된다. 생태학적으로 독도는 육지와 한 번도 연결된 적이 없는 대양섬으로 보고되고 있다. 식물학적으로 분화와 식물특성을 파악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학계에서는 '제2 갈라파고스'라고도 부른다. 이런 활동과 독도의 생태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팀은 우리의 생태주권 활동이 아직은 미흡하다고 말한다. 현재 일부 기관에서 벌이고 있는 독도 생태 연구는 생물 모니터링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 이제 큰 틀에서, 정부 정책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현재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매년 독도의 생태주권에 대한 유전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가장 절실한 프로젝트"라며 "여기에 우리 팀처럼 몇몇 학술단체가 나름의 애국심과 학구적 목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는 정도"라고 말한다. 또 이런 학술행사 상당수가 독도 분쟁이 발발할 때마다 이벤트식 행사로 진행되거나 대부분이 보여주기에 그치고 있다는 것. 최근 중일(中日)의 패권화와 일본의 간헐적인 독도 도발로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당장은 정부 차원에서 배타적 국토주권을 바로 세우는 일이 절실한 과제지만 민간, 학계에서도 사료 수집이나 생태주권을 위한 노력을 하나씩 쌓아간다면 영토주권은 더욱 선명하게 우리 앞으로 다가올 것이다. 박선주 교수는 고려대 생물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고 뉴욕 텍사스주립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영남대 생명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64쪽, 1만5천원.

2017-12-09 00:05:15

손인석 작, 흥덕왕릉의 소나무

[내가 읽은 책] 여행의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열린책들 1998

여행의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열린책들 1998 늦가을은 우리네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거리에 뒹구는 낙엽들, 이 또한 우리네 삶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 달력에 눈이 자꾸 간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털어내듯 스스로 자꾸만 위로한다. 두꺼운 옷을 찾아 입듯 삶도 바꿔줘야 할 것 같은, 감정의 슬픈 무질서 안에서 방황하게 된다. 196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난 베르베르는 일곱 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1년 120여 회의 개작을 거친 「개미」를 발표함으로써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여행의 책」은 새로운 자기 내면으로 안내하는 한 권의 벗이다. '공기의 세계, 흙의 세계, 불의 세계, 물의 세계'가 조급하고 메마른 세상을 걷는 우리에게 생각의 길을 열어준다. '공기의 세계'에서 우리는 투명한 신천옹(信天翁)으로 당당히 날개를 펴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어디든지 갈 수도 있다.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는 구름의 언어를 읽으며, 굴곡을 따라 흐르는 삽상한 공기를 마시며 온갖 재주를 부리면 된다. '그대의 길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길이고, 그 길로 그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대뿐이기 때문에.'(58쪽) 정신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여행의 자유를 느낄 수 있다. '흙의 세계'는 각자의 상상과 재능으로 집을 지으면 된다. 무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없애 버리고 잠시 눈만 감기를 원한다. 사소한 것을 버릴 줄 알게 됨으로써 먼지 낀 창문을 닦아내듯, 자기 생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잘 안 되는 일이 있을 때는 그대의 상징을 불러내어 그대의 심장 속에서 다시 빛을 발하게 하라.'(73쪽) 한겨울에도 내면에 움트는 신비로움을 불러오면 된다. '불의 세계'에서는 마음속의 온갖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주어진 싸움터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다양한 방법을 예시한다. 투쟁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싸움, 개인적인 적과 싸우기, 체제나 조직에 맞서 싸우기, 질병과 싸우기, 불운과 싸우기, 죽음과 싸우기, 자신과 싸우기 등등 숨 가쁘게 달려와 멈춘다. 그러면 '죽음보다 강한 해학을 잡고' 멈춰선 자리를 북돋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물의 세계에서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허파 속에서 살랑대는 물결을 느낄 수 있다. 하나의 시공간 속에서 새로운 탐사로 인해 숨결이 넉넉해진다. 가슴 밑바닥에 숨어 있는 고요와 신비를 맛보면 된다. '생명은 우주의 모든 차원을 아우르는 위대한 힘이다. 그대 안에서 꿈틀대는 생명의 충동을 느껴보라.'(149쪽)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 갔다 하며 나를 위해 쓰인 문장을 품어도 좋으리라. 여행의 책과 작별한 지금, 늦가을 비가 웅얼웅얼 겨울로 가는 길목을 쓰다듬는다. 이것 또한 잿빛 단조로움을 넓게 퍼뜨리는 열애라는 것을 안다. 그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깊숙이 빠져버린 내면의 침잠 속에서 풍요롭기를….

2017-12-02 00:05:01

중국의 농촌 풍경. 픽사베이 이미지

공유재산의 사유화, 중국 사회 욕망을 끄집어내다…『흥분이란 무엇인가』

흥분이란 무엇인가/장웨이 지음/임명신 옮김/문학과 지성사 펴냄 중국 작가 장웨이(張煒, 1956~)는 개혁개방과 고도성장기 중국사회의 시대상과 대자연의 아름다움, 인간의 욕망에 대한 작품을 주로 썼다. 은유와 풍자, 해학이 넘치며 때로는 우화, 미스터리 방식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이 책은 표제작 '흥분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20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것이다. ◆연못이 있는 수박 밭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 두 노인의 일은 수박 밭을 지키는 것이다. 달이 없는 밤이면 수박 도둑들이 나타난다. 한번은 화가 난 쉬바오처가 엽총을 쏘아 그들을 쫓아버리기도 했다. 사람을 겨냥해 쏘지는 않는다. 그럴 때면 라오류거는 "뭘 그렇게까지 정색을 하나. 훔쳐가라면 훔쳐가라지. 어차피 내 것도 아닌데…"라고 말한다. 두 노인의 수박 원두막에는 단골손님이 있다. 샤오린파라는 열두세 살짜리 소년이다. 부모를 잃고 숙부 집에 산다. 숙부도 교육에 관심이 없고, 샤오린파 역시 공부에 별 흥미가 없다. 대여섯살 때부터 바닷가에서 놀며 자랐다. 녀석은 물고기처럼 헤엄을 잘 친다. 바다에 들어가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고, 수박 밭에 물을 주기 위해 밭 가운데 파놓은 맑은 연못에서 수영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는 수박을 무척 좋아한다. 잘 먹고 많이 먹는다. 그래서 두 노인은 아이를 '수박귀신'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공짜로 먹는 것은 아니다. 바다 가물치, 문어, 소라, 게 같은 것들을 잡아오기도 하고, 고구마나 땅콩을 갖고 오기도 한다. 햇볕이 뜨거운 날에도 한번 일을 하기 시작하면 반나절 쉬지 않고 두 노인의 일을 돕는다. 아이는 수박 밭과 연못, 두 노인을 좋아한다. 노인들 역시 아이를 좋아한다. 아이는 며칠에 한 번씩 수박 밭에 들러 수박을 먹고, 물고기를 잡아오고, 노인들의 일을 거들고, 생선찌개를 끓여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두 노인이 하루는 수박을 수확하다가 검은색 껍질에 흰 무늬가 난 수박을 발견하고, 아이가 오면 같이 먹자며 생산대 경운기에 실려 내보내지 않고 따로 감춰둔다. 이전에도 검은 껍질에 흰 무늬가 난 수박을 발견했는데, 무척 맛있었기 때문이다. 두 노인과 소년은 수박 밭 원두막에서 그처럼 행복했다. 어느 날 사람이 와서 "책임 도급제가 시작될 테니 마을 회의에 참가하라"고 말한다. 회의에서 두 노인은 수박 밭을 도급받게 되었다. 책임 도급을 맡았으니 수박 밭이 자기들 것이나 다름없이 된 것이다. 연말쯤이면 최소 500위안은 벌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두 노인은 덩실덩실 춤을 춘다. 두 노인이 "이제 수박 밭은 우리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에 아이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두 노인은 날이 밝자마자 수박 밭 둘레로 가시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자기네들 것이 됐으니 도둑을 철저히 막기 위해서다.) 오전 일을 끝내고 점심을 먹고 평소처럼 수박을 먹을 차례였지만 라오류거는 수박을 따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쉬바오처가 수박 두 개를 따와 먹는 동안에도 라오류거는 담배만 피웠다. 라오류거는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아이가 돌아간 뒤 쉬바오처가 물었다. "류거, 어디 몸이 안 좋으신가?" "꽈모(아이의 별명) 녀석, 반듯한 녀석은 아니라고!" "아닐세, 꽈모는 좋은 녀석이야." "까맣게 뺀들뺀들하게 생겨가지고, 물에 들어가면 물고기 같고, 수박을 먹었다하면 사방 군데 튀겨 범벅을 만들고…. 착실한 녀석이 그런가?" "류거, 속이 좁아터졌구먼. 큰일 하는 사람답지 않게시리!" "나도 자네 무슨 큰일 하는 거 못 봤구먼." 이전에는 두 노인이 그처럼 서먹한 적은 없었다. 며칠 뒤 다시 놀러온 아이가 수박을 한 개 먹고, 또 한 개를 먹겠다고 했을 때 라오류거는 못 먹게 했다. 그날 이후 아이는 원두막에 발길을 끊었다. 두 노인은 이전처럼 매일 수박 밭에 물을 주고, 밤에는 종전처럼 불침번을 섰다. 그러나 더 이상 즐겁게 할 이야기가 없었고, 웃을 일도 없었다. 쉬바오처는 시무룩했고, 기운이 없어진 듯했다. 그리고 종내에는 다른 일을 찾겠다며 수박 밭을 떠났다. 훗날 쉬바오처는 포도밭을 지키는 일을 시작했고, 아이는 포도밭으로 놀러 왔다. 아이는 쉬바오처에게 말한다. "수박이 그리워요. 그 연못이 그리워요. 그 연못의 맑은 물이 그리워요." -어느 맑은 연못-요약 ◆산둥성 해안 지방에 대한 체험과 이해 돋보여 앞의 작품 '어느 맑은 연못'은 중국 사회가 공유재산에서 사유화로 바뀌면서, '사유'에 대한 욕망과 '공유'의 기존 체질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표제작 '흥분이란 무엇인가'는 10대 시골 소년들의 하루를 그린다. 아이들이 놀이 중에 나누는 잡담(떠도는 소문)을 통해 당시 중국의 사회 모순을 보여준다. '음성'에서는 새 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지식과 자기실현에 대한 동경과 젊은이들의 순수한 욕구가 서정적으로 펼쳐진다. '해변의 눈'에서는 해변 마을에 사는 두 나이든 어부의 가난한 삶과 돈벌이에 열을 올리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과 생활 태도를 대비시킨다. 두 노인의 삶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은 장웨이 문학의 휴머니즘을 구성하는 주요소다. '겨울 풍경'은 산업사회와 무관하게 대자연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한 늙은 어부의 불우하고 처연한 삶을 담담히 전한다. 휴머니즘, 권력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작가의 산둥성 해안 지방에 대한 깊은 체험과 이해가 돋보인다. '나 홀로 전쟁'은 일본 패망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까지 국공 내전기에 국민당, 공산당, 비적, 3자의 틈새에서 어영부영 공산당 영웅이 된 어느 젊은이의 행적을 서늘하고 코믹하게 그려낸다. 400쪽, 1만5천원. ▷지은이 장웨이는… 중국 산둥성 룽커우시에서 태어났다. 고교 진학 대신 고무공장에서 일했으며, 나중에 중등교육 과정을 이수한 뒤에도 농업과 어업에 종사했다. 그의 작품에 바닷가 마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고향이 바닷가인데다 어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다. 개혁개방과 현대 산업화를 우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아마 룽커우시 앞바다가 1990년대 급격하게 오염되어가는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장웨이는 문화대혁명과 고도성장기 중국의 사회모순과 천민자본주의적 시대상을 비판하고 '인간에 대한 성찰'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중국 현대문학의 한 축을 보여준다. 1984년 '어느 맑은 연못'으로 중국작가협회 주최 전국우수단편소설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2017-12-02 00:05:01

[책 CHECK] 현대사회를 읽는 질문 8

현대사회를 읽는 질문 8 오카모토 유이치로 지음 / 지비원 옮김 / 글담출판 펴냄 이 책은 급변하는 현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책이다. 저자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민주주의, 감시 사회, 로봇, 뇌 과학, 정체성, 의사소통, 복제, 환경 등 8가지 키워드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현대 철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해 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우리가 상식처럼 여기던 편견들을 속속들이 들춰보고 이에 대한 기존의 생각들을 비틀어 버린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서라기보다 사회 강의 같다. 각각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들을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의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회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현대 철학을 다룬다고 어려워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저자는 기존의 사고방식에 물들지 않은 청소년이라면 이 책을 더욱 잘 이해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240쪽, 1만3천원.

2017-12-02 00:05:01

[책 CHECK] 발에 차이는 돌도 경전이다

발에 차이는 돌도 경전이다 김윤현 지음 / 푸른사상 펴냄 시인 김윤현은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묵묵히 가는 구도자와 같은 작품 세계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세상을 관조하는 돌탑과 바위, 들꽃에 실어 노래한다. 그의 시를 음미하고 있으면, 좋은 시가 품고 있는 어떤 구도(求道)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작위성을 보이지 않는다. 도(道)에 결핍되거나 결여된 것을 애써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반드시 추구해야 한다거나 꽉 채워야 한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그의 시에서 만날 수 있는 구도는 대상이 품고 있는 자연스러움 자체로부터 생성되는 것이지 자연스러움을 일부러 비틀거나 낯설게 하는 어떤 왜상(歪像)으로부터 촉발된 심상과 거리를 둔다. 고명철 문학평론가는 그가 추구하는 구도의 길에 대해 "그가 바라는 삶은 '어디에 자리한대도 변함없는 표정'을 지닌 채 '여러 길을 품고 있는 사람 만나서 해가 떠서 달이 이슥하도록 걷고 싶은 삶"이라고 말했다. 의성 출신인 김 시인은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다시 그리워질까' '적천사에는 목어가 없다' '들꽃을 엿듣다' '지동설' 등의 시집이 있다. 현재 '사람의 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28쪽, 8천800원.

2017-12-02 00:05:01

"자본주의=불평등" 피케티의 주장은 옳았는가…『애프터 피케티』

애프터 피케티/토마 피케티 외 25인 지음/유엔제이 옮김/율리시즈 펴냄 벌써 4년이다. 2013년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을 발표한 지. 30개국에서 220만 부가 넘게 팔린 '21세기 자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평등'과 '분배'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아서 부의 불평등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게 책의 골자다. 책이 출간되기 전 '피케티 열풍' '피케티 신드롬'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학계는 물론 출판계에서조차도 최근 경제학계에 광범위한 논쟁의 불을 붙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사회적 지위에 대한 열망, 부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은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을 경제사나 계량경제학이라는 낯선 분야에 뛰어들게 했다. 프랑스 출신 한 젊은 학자가 몰고 온 파장에 허를 찔린 상당수 (특히 미국) 경제학자와 학제적, 통시적인 데이터에 의한 생소한 접근에 매료된 사회과학자에겐 새로운 담론의 장이 열렸다. ◆25인이 묻고 피케티가 답하다 피케티는 옳았는가. 글로벌 베스트셀러 출간으로 논쟁의 진원지가 된 하버드대가 한차례 열풍이 지난 지금 피케티 이후의 세계를 조망할 특별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과연 위기인가' '피케티의 불평등은 제대로 진단되고 분석됐는가'에 대한 광범위한 지적 토론을 책으로 완성했다. 이 책 '애프터 피케티'는 25명의 내로라하는 학자가 피케티 현상을 논증하고 평가한 성과물이다. 여기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로버트 솔로, 마이클 스펜스도 가세했으며, 경제학을 넘어 지리학, 법학, 역사학까지 총동원해 불평등에 대해 피케티가 예측한 불편한 진실을 파고든다. 그리고 이들의 지적이나 옹호에 피케티가 답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책은 5부로 돼 있다. '21세기 자본'의 영문판 번역자인 아서 골드해머가 책의 이례적 성공을 거둔 이유를 논평하고, 출간 후 3년간 책에 쏟아진 환대와 반론을 정리했다. 이어 로버트 솔로와 폴 크루그먼이 피케티 현상에 대한 관점을 보여준다. 이어 2부에서는 피케티가 제시한 '자본'의 개념을 계량경제학, 정치경제학적 측면, 노예제도, 인적자본, 기술변화 등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본다. 3부는 피케티식 분배의 전제를 이루는 '불평등'에 대한 분석이 주를 이룬다. 자본소득의 증가가 불평등을 형성'심화하는 과정, 불평등의 공간적 확대, 정부정책이 불평등의 형성과 완화에 주는 영향, 거시경제와 불평등의 상호작용, 페미니즘과의 연관성을 따져본다. 4부에서는 분석틀을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으로 확장한다. 경제 부문에서 불평등을 유지하는 제도적, 정치적, 법적 장치를 분석한다. 마지막은 피케티 차례다. 지난 3년간 제기된 문제와 지적에 대해 해명하고 보충 설명한다. 불평등과 착취의 배경에 있던 '공간'의 작용에 대한 연구가 빠졌다는 가레스 존스의 비평이나, 국외 자산에 대한 분석이 서구 중심적이며 개발도상국 사례에 대한 연구가 소홀했다는 엘로라 드르농쿠르의 지적을 수용한다. 불평등을 유발한 사회적 규범과 정치적 상황이나 소유 형태가 바뀔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점도 인정한다.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조장하는가 피케티는 인구가 줄거나 증가가 멈추면 축적된 자본의 힘이 증가하고, 저성장은 부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고 봤다. 부는 분배되지 않고 세습돼 세습자본주의가 능력주의를 지배하고 불평등이 고착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쟁에 의한 파괴나 누진세 같은 조세 부과만이 불평등을 완화한다면서 최고 수준의 소득에 대해 더 높은 수준의 한계세율을 부과하고 누진적 글로벌 부유세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노동으로 돈을 벌기보다, 자본으로 돈을 그러모으기가 더 쉽다는 그의 확신은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책은 "세습자유주의자와 세습 중산층이 주축이 된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그 증거"라며 피케티의 주장을 검증한다. 로버트 솔로는 "소득의 원천을 노동과 자본으로 분리되며 부는 노동소득에 비해 사람들 사이에 훨씬 집중적으로 분배돼 있다"면서 "노동소득이 감소하면서 자본소득의 비율이 늘어난다는 것이 피케티 이론의 핵심이고 그의 주장이 대체로 옳다"며 누진자본세의 전 세계적 시행을 주장한다. 또 다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도 "'21세기 자본'은 대단한 책"이라며 "경제 성장, 자본과 노동 간의 소득 분배, 개인 간의 부와 소득의 분배 문제를 하나의 틀 안에서 통합한 불평등에 관한 논의의 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실적과 성과로 소득 상위 1% 그룹을 형성하는 초고액 연봉자, CEO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제2차 도금시대의 도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돈이 돈을 번다." 틀렸다고도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시대다. 소득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하는 요즘엔 더욱 와 닿는 말이다. 피케티가 내놓은 대담하면서도 비관적인 전망, 다소 급진적인 대안은 3년이 넘도록 경제학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 왔다. 하지만 정치적 결정이나 부와 소득이 상위 1%, 0.1% 또는 0.01%에 집중되는 상황을 지켜만 볼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피케티가 던진 화두에 대해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780쪽, 3만8천원.

2017-12-02 00:05:01

[반갑다 새책]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왕즈홍 외 지음/ 곽규한'한철민 외 옮김/ 산지니 펴냄 스린 야시장은 대만 여행을 계획하는 여행자이라면 꼭 방문하는 핫플레이스지만 이곳이 과거 제지공장 노동자들의 투쟁 중심지였다는 것을 아는 여행자는 거의 없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는 도시 거버넌스를 연구하는 타이완대 건축과 왕즈홍 교수가 타이베이 뒷골목의 묵혀진 이야기, 잊힌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이다. 왕즈홍은 아기자기한 맛과 따뜻한 감성으로 사랑받는 여행지, 타이베이의 불편한 사실을 들춰내고 있다. 타이베이 지역을 7곳으로 나누고 이곳에 있었던 52개 이야기를 통해 쉽사리 지나쳤던 이름없는 거리와 건물에서 날것 그대로의 타이베이 모습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책은 타이베이가 청나라와 일본 식민지라는 씨줄과 날줄로 얽힌 한 폭의 옷감이라면 이 책은 이 옷감에 행동으로 수놓았던 사람들의 저항에 관한 이야기다. 다크 투어리즘에 대한 논란이 가시지 않는 요즘 조금 불편한 여행을 통해 화려한 불빛의 이면에 가려 잊힌 도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303쪽, 2만원.

2017-12-02 00:05:01

주인공 P가 구입한 25전짜리 값비싼 담배 마코(앵무새).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과 인문학의 위기

1934년 조선의 봄은 겨울보다 추웠다. 1929년 세계 전체를 휩싼 뉴욕발(發) 대공황의 광풍이 가난한 식민지 땅 조선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쳤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거리에 흘러넘쳤다. 잡지와 언론에서는 '취직 운동하는 방법'에서부터 '소(小)자본 창업항목' 등 대량 실업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법을 다룬 기사를 속속 실었다. 청년 엘리트들도 이 광풍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일본 유학생이라는 빛나는 훈장을 가슴에 달고 귀국했지만, 고학력 엘리트는 흘러넘치고 일자리는 없는 조선 현실 속에서 그들이 몸을 둘 만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1934)은 바로 이들 '레디메이드, 즉 문화예비군'이라 불리는 고등 실직자의 삶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P'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이지만 대량 실직난이 휘몰아친 조선에서 취업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고전하는 인물이다. 가진 돈이라고는 이틀 전 전당포에서 겨울 외투를 저당 잡히고 받은 4원이 전부인데 그나마도 싸구려 담배를 내미는 담배 가게 주인에게 '욱'해서 고급 담배를 사는 바람에 3원 75전밖에 남지 않은 상태이다. 생존을 담보할 금쪽같은 3원 75전까지 친구들과 함께 간 싸구려 술집에서 '욱'하는 기분에 단번에 탕진해버린다. 이처럼 '욱'하는 심리적 불안정성은 P의 삶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이제 겨우 아홉 살 된 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 인쇄공으로 취직시켜버리는 것 역시, 한 끼 밥도 만들어주지 못하는 무용한 지식에 '욱'해서이다. 소설은 P라는 인물이 왜 이처럼 쉽게 '욱'하면서 자포자기의 삶을 살게 된 것인지 그 원인을 찾아간다. '바가지를 쓰고 벼락을 막으려고 했던'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에서부터, 일제의 잘못된 식민정책, 마침내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한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인이 원인으로서 제시된다. 그러나 원인은 물론 해결방안까지 안다고 한들, 일제 식민지에 불과한 조선이 주체적으로 선택할 방안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원인도 알고, 해결 방법도 알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이보다 인간을 '욱'하도록 만드는 것이 있을까. 뉴욕발 대공황이 없었다고 해도 조선 청년 엘리트들은 고단한 삶을 피할 수 없었다. 식민지의 척박한 현실에서 과연 누가 편안할 수 있었을까. 경제적으로 일제에 종속된 가난한 조선이었던 만큼 문과 출신 고학력자들 경우, 그 삶은 참으로 신산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월호 잡지 판매라든가 1개 신문 구독료로 5, 6개의 신문을 서로 돌려 읽는 신문윤독사업이 인기 창업 종목이었을 정도로 책과 신문이 삶의 중심에 있던 시대이기도 했다. 최근 청년실업이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문과' 전공 졸업생의 위기가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무거운 미래 전망까지 나오는 이 시대에 인문학마저 자취를 감춘다면 인간들은 어디에 마음을 둘 것인가. 1960, 70년대 국가가 나서서 중화학, 철강 같은 기초 산업을 유치산업으로 보호하고 육성했듯이 인문학 분야를 유치학문 분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때이다.

2017-12-02 00:05:01

베이비부머 드레스 코드는 등산복?…『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

일본의 인구구성 중 '단카이(團塊) 세대'가 있다.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전후 세대들을 일컫는 말이다. 약 800만 명에 이르는 이들 세대는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진학, 취업, 결혼, 주택 문제 등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수요(需要) 활성화로 일본 고도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됐지만 동시에 버블경제를 일으켜 20년 장기 불황을 가져온 '주범'이기도 하다. 비슷한 용어로 한국엔 '베이비부머'(Baby boomer)가 있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그룹을 말한다. 빠르면 60세를 넘겼거나 그 언저리에 있는 나이다. 직장을 다닌다면 임금피크제 대상이거나 퇴직을 앞둔 세대로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 연령이다. 이들은 '참혹한 전쟁'은 겪지 못했지만 대신 '혹독한 경쟁'을 겪어야 했다. 중'고교 때 입학시험에 시달리다 1960, 70년대엔 산업화 시기를 온몸으로 맞았다. 1980년대 민주화와 IMF 외환위기, 대통령 탄핵 등 격동의 한국사 소용돌이 속을 헤쳐 왔다. 이 책은 베이비부머로 태어난 시인 장석주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며 지금까지 잘 버텨온 '동지'들과 나누는 치유의 메시지다. 행간마다 작가 개인의 슬픈 에피소드가 내레이션처럼 흘러간다. 간혹 다른 친구들의 사례를 빌려 전후 세대의 삶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1부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에선 저자 개인의 삶을 박정희, 전태일, 배일호 같은 인물과 골목길, 구로공단, 피에로, 떠돌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 있다. 이들 세대는 유독 '집'에 집착하는데 이는 가난 때문에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던 가족 수난사가 투영된 것이며, 변두리 골목길에서 가끔씩 회한에 젖어드는 것은 번잡하고 고달픈 이사의 슬픈 기억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박정희 정권의 애국주의 세뇌 교육에 내몰렸지만 민주화의 신념을 굳게 지켰고 IMF 외환위기의 구조조정 속에서 직장은 잃었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잃지 않았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격랑 속에서 신념과 기억이 왜곡되고 비대화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사회를 보는 시각이나 정치 참여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한쪽에서는 박근혜 탄핵을 지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태극기집회의 행렬에 서기도 한다. 2부 '베이비부머의 고백'은 저자의 고교 친구 5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온 가족이 '생존'에만 급급했기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가족의 빚을 대신 갚거나 부친의 '두 집 살림' 같은 복잡한 가계에 속을 끓이기도 했다. 5명의 60년 인생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았던 세대들에게 묘한 공감대를 자극하며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 베이비부머 중 매년 100만 명이 퇴직자로 나온다고 한다. 나라를 빈곤에서 구했지만 자신들은 명퇴, 해고, 실직을 겪으며 우울한 노년을 맞고 있다. 울분'고독을 혼자 삼켜야 했기에 이들 세대에 등산이 유행했다. 아웃도어 패션을 6조원 시장으로 키운 것도 이들의 공로다. 이 세대의 숱한 모임에 드레스 코드는 여전히 '등산복'이 주종을 이룬다고 한다. 편하다는 장점 외에 시대의 우울이 옷으로 내화(內化)된 흔적인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베이베부머의 또 하나의 짙은 그늘을 읽어낸다. 등산복 패션은 이들이 감당하는 생의 나날이 여전히 '산'같이 가파르고 힘들다는 무의식적인 암시라고. 219쪽, 1만4천원.

2017-12-02 00:05:01

[책 CHECK] 11명의 인생 멘토 이야기 『응원』

'응원' 오창섭 지음/ 북촌 펴냄 취업의 최전선에서 자원봉사 현장까지 청년들을 비롯해 수많은 인생 멘토들과 함께 고군분투하며 해법을 모색해 온 지은이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키워드를 '응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20대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에 속한 11명의 인생 멘토들이 자기만의 노하우와 강점으로 성공의 길을 개척하는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풀어냈다. 이 책은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몰려 경제적'사회적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11명의 인생 멘토들이 전하는 응원이다. 11명 멘토들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서희태), 스타트업 멘토(권도균), 아이템 인큐베이터(구덕모), 창업 멘토(박희광), 사진가(나종민), 음악가(권순동)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무척 다양하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멘티들을 향한 '응원'이다. 지은이 오창섭은 서라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회봉사센터장으로 학생들의 교육과 상담, 멘토링, 자원봉사활동을 이끌어 왔다. 현재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응원'이 자원봉사와 인생의 마중물임을 전파하며 일상 속에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224쪽, 1만6천 원.

2017-11-30 18:40:41

[책 CHECK] 나의 글쓰기 산책

조규택 지음/ 시간의 물레 펴냄 이 책은 20여 년간 글쓰기에 천착해 온 저자의 흔적이자 산물이다. 글쓰기 이론을 비롯해 문화칼럼, 군사'안보칼럼, 천안함 칼럼, 수필, 기행문 등을 망라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쉽고 평이한 글쓰기를 거쳐 대상에 깃들거나 거리를 축소해 미약한 존재의 본질, 생명의 힘을 발견해낸다. 충무공 이순신과 어린 학도병의 일기, 휘트만의 시와 산문을 예로 들며 좋은 글쓰기를 제시하면서 불신을 이겨내고 구시대적 사고를 청산하고 충무공 이순신의 필사즉생(必死卽生) 리더십과 호국정신을 이어받아 선진 강국이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교육자로서 상처와 치유의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저자는 인간과 인간관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아픈 현실에서 신뢰와 믿음을 보여야 하는 성숙한 인식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저자는 또한 끊임없는 내면 탐구와 현실 사회에 대한 규명이 인간과 사회의 간극을 좁힌다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계명대 영문과와 동 대학원(석사'박사)을 졸업했다. 해군 장교로 복무한 뒤 현재 계명문화대 군사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교수 독서클럽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272쪽, 1만5천원.

2017-11-25 00:05:01

[책 CHECK] 3×4

조명선 지음/ 고요아침 펴냄 "나는 늘 위태로워서 자꾸 팔을 뻗습니다." 시조시인 조명선 씨가 두 번째 시조집을 펴냈다. 우리가 관계를 맺고 공감하고 식사를 함께하고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아이 생일을 챙기는 이 모든 행위는 팔을 뻗는 행위다. 시인은 우리가 팔을 뻗는 까닭, 우리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들을 '위태롭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구 남산여고 시절 시조 동아리에서 문학 활동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30여 년 문학 이력(履歷)을 짧은 어휘로 간결하게 녹여냈다. 꿈 많은 여고시절엔 이름을 드날리는 시인이 되겠다는 포부가 있었지만 지금은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 뻗친 팔을 당기지 못하고 있다고 자신의 처지를 비유한다. 그러나 시인에게 창작은 존재 이유요, 삶의 지향이다. 이번에 펴낸 시조집은 시인의 자전적 기록을 담고 있다. '3×4'는 자신의 대명사 격인 명함을 상징하지만 이 12㎠의 공간이야말로 자신을 세상과 '내통' 시키는 수단으로 은유(隱喩)하고 있다. 저자는 서평에 "펄떡이는 고기를 그렸다고 자부했는데 천장에 매달린 굴비가 되고 정물화가 되어 움직임 없는 시로 내 발목을 잡고 있다"며 "앞으로 나의 시가 푸닥거리처럼 숨결을 넣어주고 스며들어 사람 사이에 그윽하게 놓이기를 희망한다"고 쓰고 있다. 97쪽, 1만원.

2017-11-25 00:05:01

이탈리아 피렌체 전경

19세기 폐허의 로마, 21세기 여행자에 말 걸다

누구나 일탈을 꿈꾸지만 모두가 모두에게서 벗어날 순 없다. 우리는 이럴 때 여행을 계획한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 서게 될 때의 설렘, 두려움, 그리고 새로운 발견을 위해. 하지만 여행지는 쉬어가는 이방인에게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새롭고 화려하고 매력적이기에 여행은 즐겁다. 그러나 한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시가지의 뒷골목에도, 노동의 현장에도, 가정의 일상에도 눈을 돌리는 여유가 생긴다. 셰익스피어 이후 영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 찰스 디킨스에게는 이탈리아가 그런 곳이었다. '이탈리아, 물에 비친 그림자의 기억'은 1844년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한 1년 동안의 기록이다. 소박한 평민이나 교양있는 사람들, 빈민이나 여왕을 막론하고 호소력을 가져 폭넓은 인기를 누린 디킨스가 남긴 소설 같은 작품으로, 여행에세이의 전형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찬란한 문명의 뒤안길에는 디킨스의 이탈리아 여정은 영국에서 출발해 프랑스 리옹-아비뇽-마르세유를 거쳐 제노바에서 시작한다. 이어 볼로냐-베네치아-베로나-밀라노-피사-시에나-로마-나폴리-폼페이를 거쳐 피렌체에서 끝난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탈리아의 역사나 정치'행정'예술'종교 등에 대한 언급을 피하겠다고 했다. 그림과 조각, 건축물에 대해 쓰인 파묻힐 만큼 많은 연구보고서를 대신해 이탈리아 주변 풍경이 만들어낸 아름다움과 과거의 영광을 잃고 쓰러져가는 건축물을 보며 참된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옛 영광이 지나간 자리에는 허무만 남았다. 그중에서도 가난과 무질서는 그에게 큰 충격을 준다. "질서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이 어떤 집의 지붕 위에 또 다른 집을 지은 지저분한 주택들.(중략) 가도가도 끝없이 올라가는 길들, 하수구 주변에서 얼음물을 파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열이 날 듯 어지럽다." 저자가 전한 제노바의 첫인상은 금방 바뀐다. 여행을 끝낼 때쯤 그는 이곳의 돌멩이마저도 애착이 가고, 행복과 평온의 시간이었노라고 고백한다. "반쯤은 벗은 아이들과 지저분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고, 악취가 뿜어져 나오는 지독하게 불결한 미로로 이어지는, 정말 아름답고 웅장한 성당과 위풍당당한 건물들이 밀집한 대로에서 벗어난 가파른 샛길. 생기가 넘치면서도 죽어 있고, 떠들썩하면서도 조용하고, 요란하면서도 수줍게 움츠러들고, 잠에서 깨어난 듯하면서도 깊은 잠에 빠진 이곳은 이방인에게 계속 걸으며 보고 싶게 만드는 일종의 도취 같은 것이다." 그의 문명(文名)을 떨치게 한 '골동품 상점'이나 '크리스마스 캐럴' 등에서 보여줬듯 체험으로 알게 된 밑바닥 생활상과 애환에는 위트를 섞었다. 골목으로 들어간 그의 눈에 가장 자주 띈 것은 부랑자와 거지였는데, 아무 데서나 방문객을 불러 세우고 에워싸면서 낡고 쇠퇴한 도시의 이미지를 심화시키는 거지를 표현하는 데도 재치와 유머가 살아있다. "피사가 탑으로 세계에서 일곱 번째 불가사의가 됐다면, 거지로는 적어도 두 번째나 세 번째 불가사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중략)거지들은 피사의 모든 무역과 산업을 몸소 보여주는 듯하다." 디킨스는 곳곳에서 종교 다툼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고, 어린 아이들의 묘지를 보며 쓸쓸히 고개 돌린다. 여행지의 겉모습보다 이면에 깃든 고통을 어루만지는 모습에서 대문호의 면모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생생한 묘사 웅장하고 눈부신 곳과 쇠락해 황량한 곳이 뒤섞인 곳에서 이 여행자는 기쁨과 슬픔, 안정과 혼란을 동시에 느낀다. 새로운 것을 마주한 현장에서 그 느낌을 고스란히 담은 편지를 집에 부쳤고 책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공상적이고 나른한 느낌은 낯선 곳에 흠뻑 빠진 소설가의 맛깔스런 묘사와 통찰로 독자를 자극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안 되는 베네치아 여행기가 그렇다. 디킨스는 스스로 이탈리아에서의 기억을 물에 비친 그림자에 비유한다. 직접 보고 듣고 겪고 쓴 에세이임에도 그림자일 수밖에 없는 건 그가 이방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탓인지 여행을 소개하면서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어디에서도 물을 거칠게 휘저어 그림자를 망치지 않았기를 바란다고 한 그의 말이 대번에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섬세한 표현과 극적인 서술 탓에 아비뇽에서 만난 도깨비 노파. 살인을 한 어느 청년이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장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여관과 저택, 뒷골목의 스산한 분위기, 길거리 사람들의 표정은 함께 도시를 누비는 듯 생생하게 전달된다. 예컨대 콜로세움에 대한 그의 묘사는 피와 흙먼지가 자욱한 경기장에 그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이끼로 뒤덮인 벽과 아치들, 햇살이 드는 복도, 현관에서 자라는 잡초'와 더불어 조금씩 무너져가는 콜로세움은 그의 마음을 크게 흔든다. 위풍당당한 모습 대신 폐허의 들판이 된 고대 로마를 접한 뒤, 그가 느낀 씁쓸함은 '영원의 도시' 로마의 기억을 새롭게 쓰게 한다. 170년도 더 된 리뷰이기에 책에 등장하는 도시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 책이 특별할 것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여행 리뷰지만 '시내로 이동하는 법' '미술관에서 봐야 할 작품' 또는 '패키지 여행사 고르는 법' 등과 같은 팁은 없다. 요즘 블로그에서 보이는 여행 리뷰보다 자세하거나, 전문적이지도 않은 이 책이 여행 에세이의 바이블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건 소설 같은 묘사와 더불어 대문호의 날카로운 통찰과 철학적 고찰이 담겼기 때문이다. 292쪽, 1만3천원.

2017-11-25 00:05:01

손인선 작 '산굼부리의 갈대'

[내가 읽은 책] 독립운동·한국전쟁 이토록 따뜻한 시선

이 소설은 대한제국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경술국치로부터 인천상륙작전까지를 살았던 한국인 가족 4대의 이야기다. 한국을 소재로 한 이 책을 쓴 작가 펄벅은 1930년에 소설 『동풍 서풍』으로 데뷔하였으며, 1938년 『대지』 3부작으로 미국에서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가 한국에 왔을 때, 경주를 여행하는 차 안에서 가을 녘 시골집 마당의 감나무 끝에 달린 감 여남은 개를 보고는 "따기 힘들어 그냥 두는 거냐?"고 물었다. 동행한 기자가 "까치밥이라고 해서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두는 것"이라고 하자 "바로 그거예요, 내가 한국에서 보고자 한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이것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라며 탄성을 질렀다는 일화가 있다. 작가는 서문에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던 날 일어난 일들까지 모두 사실이며, 미국과 한국을 포함하여 모든 외교상의 인물은 실제의 인물들을 구상하였다고 밝혔다. 조선시대와 전쟁기의 세대 갈등, 농민의 성장 등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하였다. 주인공 일한은 '그는 민족의 역사를 새로 공부하면서, 날마다 그 전날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간추려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작가는 시대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남녀 불평등을 꾸짖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며, 소작료를 올려주고자 하는 일한의 결심에서 다가올 농지개혁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 일한은 양반이나 당시의 당쟁에 지쳐가고 오직 바른 정치를 갈구하는 실천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전반부를 이끄는 일한이 현재의 스스로를 되돌아보고자 떠올린 아버지의 말씀은 작가의 충고이다. 그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지적이다. "현재를 이해하고 흔들림 없이 미래를 맞으려면 과거에 있었던 일을 충분히 알아두어야 하느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한도 성장한다. 고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은 당대의 지식인을 대변한다. 산수와 역사, 문학, 유교경전 등을 가르치기 위해 배우고 익힌 것을 가르치는 반복 속에서 일한이 영어를 익히는 장면에서는 급박함도 느껴진다. 아들 연춘은 '살아있는 갈대'라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고, 중국과 만주를 종횡무진 누비며 독립운동을 계속한다.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하며 살아가는 인물로 성장한다. 연춘은 미군이 인천에 상륙할 때 일본 경찰의 손에 죽고, 끝내 북으로 떠나는 연춘의 아들 사샤와 미국인 병원에서 의사가 되어 서울에 남는 연환의 아들 양이 남긴 여운은 21세기의 후손들에게 민족정신을 되새겨보게 한다. 우리 역사서 중 이 시기를 이만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 책이 또 있을까? 흔하지 않을 것이다. 옛 기억 속, 보석 같은 나라의 소중한 사람들은 등장인물로 남아 그 나라 사랑의 정신을 듬뿍 보내준다. 받아 안고 보니 새삼 이 나라에 태어나 행복하다.

2017-11-25 0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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