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생각하는 사람 - 프랑스 국립박물관

[내가 읽은 책] 상상으로 창조하기

'책과 양심은 얇을수록 좋다'는 신념(?)을 가진 독자라면, 잠시 신념을 흔들어 보자. 두껍고 '흥미진진'과도 180도 방향이지만, 상상력에 약이 되는 책이 있다. 원제목 'SPARK OF GENIUS'를 '생각의 탄생'으로 다소 거창하게 번역했으나, 내용을 고려하면 '창의성이 번뜩이는 순간'으로 의역할 수 있다. 부제목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에서 드러나듯, 창조성을 이끌고 상상력을 학습하는 생각도구가 책 알맹이다. '도구'라는 용어로 봐서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은 독자들이 다루어야 할 연장이다. 저자는 무용, 체스, 물리학, 군사작전 등 세부 분야 30여 곳에서 자료를 수집했고, 이를 근거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상상력으로 창조성을 탁월하게 발휘한 이유와 그 바탕에 있는 생각도구를 탐색한다. 도구 중 하나를 보자. 유전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바버라 매클린턱은 옥수수 염색체를 연구할 때 '옥수수 체계의 일부'로 존재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이 탐구하는 대상이 되어 상상하기, 감정이입이다. 매클린턱은 뛰어난 발견을 어떻게 떠올렸을까? "과학적 방법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내가 직관적으로 알아낸 어떤 것을 과학의 틀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흔히들 과학이라면 논리를 이루는 사고와 실험을 떠올리지만, 매클린턱은 먼저 직관으로 느끼고 이것을 해당 분야 기호 체계로 표현했다. '생각하는 사람'을 창작한 오퀴스트 로댕 역시 점토로 형을 뜨기 전에 대상을 여러 번 그리면서 눈으로 보는 것을 손이 어느 정도까지 느끼는가를 측정했다. 이처럼 거장들은 생각도구를 활용하기에 앞서 대상을 직관으로 받아들이거나 느끼는 과정을 거친다. 책의 또 다른 축은 '통합적 이해력'이다. 감각과 이성, 실제와 상상, 여러 생각도구를 통합해서 이해하고 적용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상상력이 풍부한 만능인(generalist)'으로 본다. 지식과 학문이 파편화되고, 공부와 실제 생활이 동떨어질수록 이 능력은 절실히 요구된다. 무엇을 생각하는가에서 '무엇으로' 생각하는가로 관점을 전환할 때다. 상상하고 창조하기 위해 생각도구가 필요하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폴 호건의 말에 필자도 공감! 상상하면 창조한다. 함께 읽기 좋은 책으로 '열정과 기질'(하워드 가드너), '상상력에 엔진을 달아라'(임헌우)를 소개한다. '생각의 탄생'이 여러 분야를 폭넓게 조망한다면, '열정과 기질'은 창조성을 뛰어나게 발휘한 일곱 명(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 그레이엄, 간디)을 삶의 궤적에 따라 조명한다. '상상력에 엔진을 달아라'는 제목처럼 상상력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안하는 데 힌트를 준다.

2017-09-30 00:05:00

평양 출신 탈북인 소원 "그리운 가족 품으로…"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김련희 지음/ 도서출판 615 펴냄 평양 출신 탈북인 김련희 씨가 책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를 펴냈다. 책 제목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에서 보듯, 김련희 씨는 대구에 살고 있지만, 자신을 평양시민이라고 칭한다. 어떤 사정으로 대구에 살고 있지만 자신은 평양시민이며, 한국행이 '자의'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조선족 브로커에 속아 남한에 왔다"며 "꼭 돌아갈 것이다. 나의 어머니 조국에.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라고 말한다. 김련희 씨는 2011년 9월 한국에 왔다. ◆친절한 조선족 브로커에 속아 한국행 돼지고기 전골을 먹고 난 뒤 육중독(보툴리누스중독)에 걸렸다. 김책공업종합대학 병원에서 일주일 동안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몸은 천근처럼 무거웠고,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저녁에 퇴근할 무렵이면 손과 다리가 부어 신발을 신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진단 결과, 전신 간복수였다. 간복수로 입원한 지 6개월쯤 지났고, 어느 정도 진정 기미를 보일 무렵 중국에 있는 사촌을 방문하게 되었다. 기차로 평양역을 출발해 중국 단둥에 도착했다. 중국 땅은 넓어 입국한 당일 바로 목적지로 출발하는 경우가 드물다. 일단 여관에 짐을 푼 뒤 사촌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은 사람은 사촌 언니가 아니었다. 북한에서는 국제통신사를 통해서만 국제전화가 가능하고, 해외에 연락할 때는 대체로 편지를 하는데, 중국과 조선 간 편지 연락은 보통 20일~한 달이 걸렸다. 북한에서 중국에 있는 사촌 언니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출발했는데, 그 사이에 언니의 핸드폰 번호가 바뀌었던 것이다. 언니에게 연락할 방법을 몰라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조선말로 '속상한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친절하게도 사촌 언니의 바뀐 전화번호를 찾아내 알려주었다. ◆두세 달 돈 벌어 돌아갈 수 있다고 믿어 사촌 언니 집에서 한 달을 즐겁게 지냈다. 어느 날 감기 증세가 있어 병원에 갔더니 다시 간복수였다. 소변도 나오지 않았다. 그대로 평양으로 돌아가자니, 매일 병상에 누워 앓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볼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중국에서 돈을 벌어 병을 말끔히 치료하고 돌아갈 결심을 했다. 사촌 언니에게는 평양으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선양으로 가서 한달에 1천300위안을 받고 식당에서 일했다. 그러나 그렇게 벌어서는 어느 세월에 간복수를 치료할까 막막했다. 일하다가 간복수로 쓰러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컸다. 좀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사촌 언니에게는 평양으로 간다고 말했던 터라 다시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그때 마침 단둥에서 친절하게 자신을 도와주었던 조선족 남자가 생각났다. 그에게 전화를 냈다. "바보냐? 한국에 두 달만 갔다 오면 몇 배는 번다." 한국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는 (김련희 씨가) 실정을 너무 모른다며, 중국 사람들도 여기서 돈 벌기 어려워 한국에 간다고 말했다. 자기 옆집 사람도 두 달 동안 한국에 가서 많은 돈을 벌어왔다고 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조선 북쪽과 중국 국경 마을 사이에 하루에도 몇 번씩 식량을 구입하러 다니고, 밀수가 이루어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배로 중국과 한국을 조용히 오가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착각했다. 그렇게 믿고 여권을 그 남자에게 넘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 나온 북한 사람들을 한국으로 유인하는 전문 브로커였다. 그는 한국에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한국은 북-중 국경처럼 몰래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한국에 도착한 후 각종 조사를 받고, 한국 사회 적응교육도 받았다. 두세 달이면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밀항'여권 위조'자살'간첩 행세까지 대부분의 탈북인들은 한국에 입국한 후 신분 조사와 한국 사회 적응교육을 받고 일정한 정착금을 지원받는다. 그리고 보통 6개월~1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고, 해외 여행도 가능하다. 김련희 씨는 자신도 그렇게 여권을 받고 중국으로 가서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권은 나오지 않았다. 다른 탈북인들은 다 받는 여권을 자신은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국가정보원에 문의했다. "처음부터 북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기에 '신원 특이자'로 분류돼 여권을 발급할 수 없다"는 답이 왔다. 평양으로 돌아가려는 일념으로 밀항을 시도했고, 위조 여권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김련희 씨를 속였고, 분노한 그녀는 위조 여권을 제공하겠다는 사람을 신고했고, 그녀 역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밀항과 위조 여권에 실패한 그녀는 낙담해 자살을 시도했다. 수면제를 대량으로 삼켰으나 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났고, 손목 혈관을 끊고 피를 철철 흘렸으나 이튿날 지인에게 발견돼 자살에 실패했다. 최후의 선택은 스스로 간첩이 되는 길이었다. 간첩으로 분류되면 일정 기간 감옥살이를 하고 북으로 강제 추방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기대를 했던 것이다. 간첩이 되기 위해 그녀는 탈북인 17명의 정보를 수집해 휴대폰에 저장하고, 경찰에 스스로 신고했다. 2014년 6월 2일이었다. 그렇게 대구구치소에 수감됐고, 9개월간의 수감 생활과 두 번의 재판 끝에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으로 출소했다. 강제 추방의 꿈마저 좌절됐다. ◆고급 가구 갖춰진 아파트에서 생활 김련희 씨는 1969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북에 있을 때 김책공업종합대학 양복점 소속 양복사였고, 남편은 군의관이었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투쟁하다가 1941년 일제에 잡혀 희생됐다. 아버지는 대동강 텔레비전 수상기 공장 부문 당비서였고, 어머니는 평양시 동대원구역 병원 의사였다. 시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전해 부상을 당한 일류 영예군인으로 김일성종합대학 중어 교원으로 일했다. 어린 시절에는 본채(방 2칸과 부엌)와 사랑채, 60평 정도의 텃밭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았다. 그녀가 만 16세 되던 해인 1985년 국가로부터 현대식 새 아파트를 배정받아 이사했다. 20층짜리 아파트의 14층이었으며, 거실과 방 3칸, 부엌, 위생실, 창고가 갖추어져 있고, 입주했을 때 방마다 고급 가구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책에 "북에서는 돈 한 푼 내지 않고 국가로부터 살림에 필요한 고급 가구들이 들어 있는 새집을 배정받는다. 단지 전기, 수도, 난방비를 조금만 내면 되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 정면에서는 평양 고려호텔과 윤이상 음악당이 있고, 왼쪽에는 평양역, 김책공업종합대학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오른쪽에는 평양대극장이 바라보이고, 뒤쪽에는 대동강이 흘렀다"고 쓰고 있다. ◆"제도 미비하다면 인도적 송환해야" 김련희 씨의 북한 송환을 돕는 장경욱 변호사는 "국가정보원은 김련희 씨의 북송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그녀의 북송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분단체제상 법에 따른 제도의 미비를 이유로 북송을 거부하며 가족 간 생이별을 강요하는 것이다. 제도가 미비하다면 정부 당국은 김련희 씨의 인도적 송환에 앞장서야 한다. 선례도 있다. 1993년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씨를 비롯해 2000년 9월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북송했다. 또 바다에서 표류하던 북한 어부들이 북으로 되돌아간 사례는 부지기수다. 정부 당국은 김련희 씨 북송을 위한 제반 인도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련희 씨는 이렇게 말한다. "남쪽 사람들은 그런다. 가난하고 배 곪는 북쪽에 왜 가고 싶냐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여기서 살고 싶지 않냐고. 그러나 나는 단연코 이야기하고 싶다. 북에서의 생활이 남쪽보다 더 풍요롭지 않더라도, 비록 풀죽을 먹더라도 가족과 함께 부대끼며 살고 싶다." 그녀가 북으로 돌아가야 할, 이보다 더 분명한 이유가 있을까. 이 책은 김련희 씨가 한국으로 오게 된 과정을 비롯해, 그녀의 어린 시절, 일, 결혼과 출산, 고난의 행군 시절 등을 담고 있다. 부록 '김련희에게 묻다'는 한국의 대학생들이 북한 생활에 대해 묻고, 김 씨가 답하는 형식의 대담이다. 303쪽, 1만5천원.

2017-09-30 00:05:00

[반갑다 새책] 자동차, 한길만 달려왔다

자동차, 한길만 달려왔다 이헌원 지음 / 천금출판사 펴냄 이 책은 저자가 2017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특선으로 입상한 수기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저자는 1968년 12월 신진자동차에 입사해 버스 생산, 1980년 자동차 '르망' 생산'정비'판매, 필리핀 자동차 건설, 그리고 1998년 퇴임 후 2000년부터 시작한 중고차 수출사업 등 대우자동차 30년과 개인사업 20년 등 50년 자동차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저자는 평생 좋아하는 한 가지 일을 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버스 증산 프로젝트와 르망 생산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면서 과다한 업무로 협심증을 얻어 숱한 고생을 했고, 여러 부서를 전전하면서 고달프고 힘겨웠지만 보람이 있었다고 했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인생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필리핀 자동차 건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회사를 떠난 것이 못내 아쉽지만 50년 자동차 인생을 뒤돌아보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한결같은 열정으로 세계를 뛰어다닌 것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한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철학과 창조, 도전 희생의 정신이 밑바탕이 됐다. 김 회장께 감사한다"고 했다. 271쪽, 1만8천원.

2017-09-30 00:05:00

[반갑다 새책] 우리는 모두 무엇을 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무엇을 하고 싶다 박방희 지음 / 그루 펴냄 '창문은 열리거나 닫히고 싶고/피아노는 소리 내고 싶어 뚱땅거린다/운동화는 나랑 걷고 싶고/벌써 두 시간째나 꼼짝없이/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내 엉덩이는/나가서 뛰놀고 싶어 들썩거린다' - '우리는 모두 무엇을 하고 싶다'에서 청소년 시집인 이 책은 제1부 '고분고분', 2부 '때리지 마!', 3부 '배추학교', 4부 '참 알 수 없는 일' 등 4부 총 52편의 시로 구성돼 있다. 부록으로 청소년을 위한 우화 15편도 실려 있다. 저자는 "시와 동시 사이에 청소년시가 있다. 시에도 청소년적인 시가 있고, 동시에도 그런 시가 있다. 이 시집도 마찬가지이다. 동시와 청소년시, 시가 뚜렷한 경계 없이 공존한다. 유일한 기준은 청소년들이 읽고 이해하고 나아가 공감할 수 있는가에 두었다"고 말했다. 저자는 1985년 무크지 '일꾼의 땅1'과 '민의', 1987년 '실천문학' 등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으며, 2001년 '아동문학평론'에 동화, '아동문예'에 동시가 당선됐다. 현재 한국동시문학회 부회장 및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로 있다. 104쪽, 9천원.

2017-09-30 00:05:00

김동인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김동인 '감자'와 복녀 이야기

우리 근대문학에서 매춘을 소재로 한 최초의 소설은 무엇일까. 대략 김동인의 '감자'(1925)가 거론되겠지만, 누구도 '감자'를 매춘소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매춘소설이라는 불경스러운 명칭 대신 '감자'는 우리 문학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이라는 멋진 명칭을 지니고 있다. 1970, 80년대 한국에서 중등교육 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대부분 '감자'와 자연주의를 한 묶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주의라는 관념적인 단어에서 벗어나는 순간 '감자'를 이해할 수 있는 수만 가지의 새로운 길이 우리 앞에 열린다. '감자'는 스무 살 연상의 홀아비에게 팔십원에 팔려간 복녀의 몰락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윤리의식을 마음에 익히고 있던 정직한 농사꾼의 딸 복녀는 무능하고 게으른 남편 탓에 칠성문 밖으로 밀려나 마침내 매음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복녀와 남편이 가난 때문에 밀리고 밀려 정착하게 되는 칠성문은 어떤 곳이었을까. 1925년 평양역에서 을밀대, 부벽루, 청류벽 등 경승지가 모여 있는 대동강 상류지역으로 간다고 가정해보자. 평양역에 내리는 순간 우체국, 학교, 병원 등 근대적으로 멋지게 정비된 일본인 거주지인 신(新)시가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 상쾌함도 잠시, 일본인이 거주하는 신시가지를 넘어서면 곧 조선인이 거주하는 낙후된 구(舊)시가지에 들어선다. 정비되지 않은 도로, 전근대적 가옥, 곳곳에 쌓인 분뇨 등 비위생적인 구시가지를 지나 인적 없는 농지를 계속 걷다 보면 일본 신사가 위치한 칠성문, 칠성문을 넘어서면 노송으로 유명한 기자림, 기자림을 넘어서면 대동강 상류에 도착한다. 복녀 부부가 떠밀려 정착한 칠성문이란 정확하게 말해서 칠성문 밖에서 기자림에 이르는 도시 외곽 지역이다. 일제의 식민지 도시구획정리로 도시 중심부에서 쫓겨난 걸인과 부랑자 등 빈민층이 이 지역에 밀집해 있었다. 1925년을 전후한 시기 평양시에서는 이들 최하층 빈민을 위한 구제사업을 시행했는데 노송으로 유명한 기자림의 '송충이 잡기'가 그것이다. 복녀는 바로 이 '송충이 잡기' 사업에서 처음으로 매음을 하게 된다. 순진한 농사꾼의 딸 복녀의 몰락과정은 일제의 식민지 도시정비사업과 아주 묘하게 얽혀 있었던 것이다. 최근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 문학작품 이해지침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문학작품을 역사적으로 과잉되게 해석하거나, 단편적으로 분석하고, 암기 위주로 이해해왔던 우리나라 국어교육의 문제점이 인제 와서 터진 것이다. 성장과 효율을 최고 가치로 치부해온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문학작품 이해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문학작품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사조' 분석이나 주제 찾기가 아니다. 문학은 특정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는 그 기록을 읽으면서 시대와 사람을 이해하고 배운다. 특히 우리 근대문학의 발전과정이 식민지 시기라는 폭력적인 시대와 겹치는 만큼 거기에는 시대를 살아낸 많은 사람의 치열한 삶이 담겨 있다. 자연주의와 '감자'를 연관시키는 일은 복녀라는 인물이 살던 시대의 삶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나서 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다.

2017-09-30 00:05:00

왕릉 돌며 풀어가는 신라 1천년 역사…『왕의 길을 걷는 즐거움』

왕의 길을 걷는 즐거움/ 이재호 지음/ 힐링아트 펴냄 BC 57년에 건국된 신라의 존속기간은 992년. 그 사이 시조 박혁거세에서 마지막 경순왕까지 56명의 왕이 거쳐 갔다. 이 중 37왕의 능묘가 확인 또는 추정되고 19왕의 능묘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기행작가이자 시민운동가인 저자 이재호 씨는 신라의 왕릉을 11개 코스로 나눈 뒤 여러 해 동안 구간을 답사하며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소감을 책으로 기록했다. 제1장 '신라의 건국과 패망'은 박혁거세왕릉에서 지마왕릉 코스와 삼릉에서 경덕왕릉으로 오르는 길을 소개하고 있다. 혁거세가 동해 바닷가에서 한 사제(司祭)의 도움을 받아 고대왕국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이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일성왕릉-포석정-지마왕릉을 돌아본 작가는 삼릉-경덕왕릉을 거치며 1장을 마무리한다. 미약했던 신라를 연합국가로 이끈 아달라왕과 신라문화의 절정기를 수놓은 경덕왕, 그리고 쓰러져 가는 신라를 끌어안고 마지막까지 몸부림친 신덕, 경명, 경애왕릉을 돌아보고 있다. 2장은 경주 남산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불국토의 염원, 경주 남산 편'. 남북으로 10㎞, 동서로 4㎞를 길게 뻗은 남산은 곳곳에 많은 유적을 품고 있다. 저자는 오릉-천관사지-화백정-보리사를 거쳐 헌강왕릉으로 향한다. 천관사는 신분 차이로 김유신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누었던 천관녀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사당. 젊은 시절 과오를 뉘우친 김유신은 용맹정진하여 통일의 주역이 되고 여승이 된 천관녀는 유신을 위해 기도하다 죽었다. 눈 덮인 헌강왕릉 앞에서 저자는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글읽기를 좋아했다'는 왕의 재능을 애도한다. 재위 11년 동안 경주는 노랫소리와 피리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나 헌강왕 이후 신라는 본격적인 권력투쟁이 시작되고 농민 반란이 시작돼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제3장은 반도의 동쪽에 치우쳐 지리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있던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넘어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원동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5길' 입구에서 저자는 경주 최부잣집 앞을 지난다. 권력을 버리고 명예를 얻었던 처세법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최 씨 가문의 도덕성에 경의를 표한다. '6길'은 아버지 복수 쿠데타로 왕이 된 신무왕, 6세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안정적으로 국정을 꾸려간 효소왕, 36년 재위기간 제도의 정비와 문물 발달을 이룬 성덕왕 스토리를, '7길'에서는 지금의 신라적 분위기를 완성한 효공왕릉을 돌아본다.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왕위를 물려받은 효공왕이 신라 말기 궁예, 견훤에 휘둘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적고 있다. 제4장은 덕(德)의 정치를 펼쳐 마침내 통일 꿈을 이루고 후손들에게 빛나는 유산을 남긴 '찬란한 신라의 꿈'을 찾아가는 길이다. 반월성-봉황대(8길), 태종무열왕릉-민애왕릉(9길)을 걸으며 삼국통일의 주역들을 만난다. 한반도 최초 통일국가를 이루었지만 로마처럼 정복국가로 행세하지 않고 덕을 펼쳤던 군주들의 통합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10길'에서는 김유신묘-흥덕왕릉, '11길'에서는 반월성-문무왕릉 코스를 걷는다. 구국의 명장 김유신묘 앞에서 저자는 흠모의 눈길을 아끼지 않는다. 박혁거세에서 문무왕릉까지 이어진 신라왕들에 대한 모든 평가는 대왕암 앞에서 맑은 소주 한잔을 부으며 끝난다. 저자는 신라왕조 1천 년 56왕의 역사를 왕릉과 왕릉을 연결해 그나름의 시각으로 풀어가고 있다. 영웅, 위인들의 능(陵)이나 묘 앞에서 저자는 경의와 존경을 나타내고, 시대를 잘못 만난 지도자나 혼란기의 군주에게도 애정 어린 시선은 이어진다. 치적, 덕업이나 과오, 실정이 모두 역사를 이루는 벽돌이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재 울산문화재연구원 이사, 반구대사랑시민연대 대표, 경주 왕의길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359쪽 2만원.

2017-09-30 00:05:00

임동남 작 '소매물도'

[내가 읽은 책] 갈매기의 꿈, 리처드 바크 지음, 공경희 옮김, 현문미디어, 2015

갈매기의 꿈, 리처드 바크 지음, 공경희 옮김, 현문미디어, 2015 갈매기가 돌아왔다. 모든 이의 내면에 깃든 진정한 갈매기 조나단이 세 번째로 내게 날아들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한두 번 읽어 보지 않은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갈매기의 꿈'은 비행으로 꿈을 이루고자 하는 한 갈매기의 이야기이다. 획일화된 전체 속에서 자기 생각을 가진 개인이 마침내 자유와 사랑을 찾아가는 스토리이기도 하다. 1970년 처음 출간되었으니 갈매기 조나단은 무려 48년째 하늘을 날고 있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독자들의 내면을 날아다닐지.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명언이 되어 버린 장려한 문구가 띠지에 인쇄되어 있다. 블루 커버에는 하얀색 갈매기가 날고, 한복 속치마 같은 뽀얀 속표지엔 은색으로 날고 있다. 그 밑에 그의 이름이 은박으로 박혔다. Jonathan Livingston Seagull. 아마 역대 '갈매기의 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이 아닐까. 시간이 많이 흘렀다. 조나단이 첫 비행을 한 이후 우리 사회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어느덧 다양성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독창적인 개인의 생각들도 존중받기 시작했다. 비상시에는 전체의 규약을 깨며 주관적 행동을 해도, 때에 따라서는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리처드 바크는 어떤 연유에서였는지 2015년 판에 이전에 없던 4장을 덧붙였다. 그리고 완결판이라고 이름 붙였다. 30대에 쓴 우화소설에 70대에 가필을 한다는 것. 예전에 쓴 원고를 찾아 덧댄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아쉽다. 거장의 원고를 조금 더 맛본다는 즐거움은 크지만, 명작은 이미 공공재가 되어 버린 것을. "유선형의 고속 낙하를 하면 수심 3미터 깊이에 몰려 있는 맛 좋은 물고기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낚싯배와 상한 빵 부스러기에 의지해 연명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갈매기들은 땅바닥에 서 있었다. 조나단은 강풍을 타고 육지 깊이 들어가 그곳에서 맛 좋은 벌레들을 먹었다."- 37~38쪽 무릎을 탁 쳤다. 예전에는 이 내용을 왜 읽지 못했을까? 명작은 보는 만큼 보인다고 하더니. 이 대목의 발견으로 '갈매기의 꿈'을 세 번째 읽은 보람을 찾았다. 이 책에 대한 해석과 이해는 편향되었는지도 모른다. 전체와 다른 개인의 잘잘못과 먹이와 비행이라는 이분법적 어젠다에 과하게 매몰되었던 것은 아닐까. 조나단은 실은 책의 앞부분에서 이미 먹이 문제를 해결해 두고 있었다. 사람들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천착해 있는 동안, 조나단은 잉여 생산의 문제는 가볍게 초월했는지도 모른다. 만약 조나단이 비행 기술을 밥벌이에 적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엄청난 양의 밥을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갈매기는 잉여 생산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상과 현실이 조화하며 살기를 원한다. 어느 쪽으로 날아갈 것인가? 진로 문제는 청소년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어른들도 사실 늘 길을 찾고 있다. 두렵고 불안하지만 쉬이 내색도 못한다. 바로 이럴 때 '갈매기의 꿈'을 다시 읽어 보자. 갈매기 조나단에게 배우는 마음, 그것이 어른의 지혜 아닐까.

2017-09-23 00:05:00

만학도 어르신 글 몰라 겪었던 불편, 배운 뒤의 행복…『처음 쓰는 편지』

처음 쓰는 편지/2017 대구내일학교 졸업시화 작품집/만인사 펴냄 대구내일학교(교장 우동기 대구시교육감) 2017년 졸업생 259명이 졸업기념 시화집 '처음 쓰는 편지'를 펴냈다. 시화작품은 총 6개 주제이며, 1부 늦게 피는 꽃, 2부 눈치백단, 3부 학교는 나의 놀이터, 4부 조잘조잘 수다꽃, 5부 선생님의 향기, 6부 엄마의 장독대로 구성돼 있다. ◆처음 쓰는 편지 눈물부터 앞서네 '칠십 넘어 처음 쓰는 편지/ 누구에게 쓸까 무슨 말부터 쓸까/ 가슴에 꽉 차 있건만/ 겨우 배운 실력으로 내 마음 전달하려니/ 눈물부터 앞서네/ 칠십 넘어 처음 쓰는 편지/ 선생님 감사합니다/ 요만큼 내 마음 전달하고 보니/ 늦게 시작한 공부 힘들고 어렵지만/ 시작하기를 잘했네.' -처음 쓰는 편지-전옥분(70) 글을 배운 뒤의 감상과 고마움, 그러나 아직 마음에 든 말을 모두 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수준급의 은유를 자랑하는 작품도 있다. 이영희(70) 내일학교 졸업생은 자신을 '몽땅연필'에 비유하고, 그 짧은 연필에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담아내는 한편 앞으로 맞이할 날들을 희망적으로 그려낸다. '새로 산 연필/ 얼마 쓰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닳고 닳아/ 몽땅 연필이 되어 있네/ 필통 속에 섞여 있는/ 몽땅 연필/ 나를 서글프게 쳐다보네/ 몽땅 연필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나랑 같이 새롭게/ 다시 시작하며 살자.' -몽땅연필- '후일에 만난 남매들/ 자수정 동굴 구경하고/ 공연을 관람했네/ 중국 어린이 재주를 부리는데/ 보는 내 마음이 아프네/ 어린 나이에 공부는커녕/ 이국만리에서 돈을 벌려고/ 고생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 그 옛날 없던 시절/ 배움 놓친 나를 보는 것 같아/ 눈시울이 붉어지네.' -옛날 내 모습-장춘자(72) 오늘날 우리나라 20, 30대가 높은 학력과 세련된 매너, 국제인의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장춘자 선생님 같은 선배세대들이 공부는커녕 밤잠 자지 않고 일을 하고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한 덕분이다. 어린 시절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중국 어린이들의 돈벌이'를 선배세대들은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늦게 시작한 공부, 학교생활의 즐거움 '이 세상에서 나 하나만/ 글을 모르는 줄 알았네/ 어릴 적엔 부모님 원망을 많이 했네/ 내일학교 입학하던 날/ 못 배운 원망도 서러움도 모두 씻었네/ 글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네/ 교실에서 글도 배우고/ 운동장을 걸을 때마다/ 진짜 학생이 되었다는 것이 꿈만 같네/ 하루하루가 너무 고맙고 행복하네.' -진짜 학생-최필선(63)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봄꽃보다 학교에 가기 위해 거울 앞에 앉고, 가방을 멘 자신이 더 예쁘다며, 학교생활의 기쁨과 설렘을 노래한 시도 있다. '뜰에 핀 진달래 철쭉/ 봄이면 곱게도 피는구나/ 등교하는 나에게 인사하는 듯/ 활짝 핀 네가 예쁘구나/ 늙지도 않는 네가 참 부럽구나/ 학교 간다고 꾸민 나만큼 예쁠까?/ 책가방 맨(멘) 금녀만큼 예쁠까?/ 학생으로 활짝 핀 금녀꽃이 최고란다!' -활짝 핀 꽃-성금녀(76) '내일은 소풍 가는 날/ 평생 처음 가는 소풍/ 꿈에만 그리던 소풍/ 소풍 간다니 아이처럼 좋아하며/ 김밥 싸 갈까 사이다 사 갈까/ 옷은 무엇을 입을까/ 선생님 김밥 내가 싸 갈까/ 마음이 둥둥 떠서 잠 오지 않아/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즐거운 소풍 가는 날.' -소풍 가는 날-임말내(74) ◆글자 알고 나니 은행'관공서 안 두려워 '못 배운 탓에/ 은행과 관공서에서 일 볼 때/ 죄인마냥 겁나고 가슴 두근거렸네/ 이제는 내일학교 덕분에/ 더 이상 겁먹지 않아도 되니/ 공부하는 재미 하루하루 즐겁네/ 그러나 나이 탓에/ 배운 것 자주 자꾸 잊어버려/ 걱정이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할 것이네.' -내일학교-최노미(65)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처음 내일학교 설립을 고려할 때는 간단한 영어회화나 컴퓨터 등을 주교과목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태조사를 해보니 '가전제품 사용 설명서를 읽고 싶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관공서와 은행을 구별하고 싶다'는 응답이 많아 문해와 산수, 악기 등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앞 작품은 내일학교 학생들이 감당해야 했던 어제의 고민과 오늘의 즐거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내일학교 학생들이 평소 수업시간에 쓴 시와 그린 그림으로,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 삶의 애환, 글을 몰라 겪었던 불편과 글을 배운 뒤 느끼는 행복, 학교생활을 통해 배운 공동체에 대한 느낌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일학교 졸업생들의 시화집 '처음 쓰는 편지'는 아름답고 위대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한 선배세대들의 삶을 담고 있다. 오래 지난 옛일 같지만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20, 30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285쪽, 1만5천원. ▷대구내일학교는… 대구내일학교는 학령기에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성인을 위해 대구시교육청이 운영하는 초등'중학 학력인정 문해교육기관이다. 대구에는 명덕초등학교, 달성초등학교, 성서초등학교, 금포초등학교, 중앙도서관, 제일중학교 등 6곳에 설치되어 있다. 2011년 첫 입학생을 받은 대구내일학교는 지금까지 918명(초등 647명, 중학 27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올해는 초등 과정 123명, 중학 과정 148명이 9월 21일 졸업했다. 9월 22일 현재 재학생은 386명(초등 127명, 중학 259명)이다. 재학생 평균연령은 초등 과정 67세, 중학 과정 65세로 60대 이상이 81%를 차지하고 있다. 내일학교는 매년 7월에 신입생을 모집하고, 9월 입학식과 졸업식을 연다. 교육 과정은 초등 주당 3회 6시간, 중학 과정 주당 3회 10시간이다. 수업 과목은 국어'수학'사회'과학'영어'재량활동 등으로 편성돼 있다. 교육기간은 입학 때 진단평가를 거쳐 초등 1년, 중학 2년 과정으로 운영하며 교육비는 무료다. 2015년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우리나라 국민 중 초등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163만여 명이고, 중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354만1천여 명이다. 대구에는 초등졸업 미만이 6만8천500여 명, 중학졸업 미만이 18만1천300여 명이다. 경북에는 초등졸업 미만이 15만6천400여 명, 중학졸업 미만이 29만1천여 명이다.

2017-09-23 00:05:00

[책 CHECK] 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

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 장현갑 지음 / 불광출판사 펴냄 이 책의 저자는 한국 심리학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장현갑 선생이다. 국내 뇌심리학의 선구자로서 세계 3대 인명사전(마르퀴즈 후즈 후, 영국국제인명센터, 미국인명협회)에 모두 등재된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러나 학자로서의 화려한 경력 뒤에는 남모를 고통이 숨겨져 있다. 어린 시절 공부만 잘하던 왕따에 외톨이였으며, 이로 인한 극심한 트라우마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우울증과 의존성 성격장애를 앓았다. 또한 지병인 고혈압과 심장질환에 시달리며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끔찍했던 사건은 미국 애리조나대학교 객원교수로 있을 때 일어났다.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들이 미국에 왔다. 차를 빌려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마주오던 차량과 정면충돌했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사망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잊고 싶은 인생 경험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76년간의 세월 속에서 수많은 응어리진 고통에 맞서 터득한 지혜, 이 순간에도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이들에게 들려주는 진짜 조언이 빼곡히 들어 있다. 부록으로는 저자가 직접 개발한 '한국형 MBSR(K-MBSR)' 명상 안내문을 실었다. 304쪽, 1만6천원.

2017-09-23 00:05:00

[책 CHECK] 황홀한 적막

황홀한 적막 김락기 지음/ 청색시대 펴냄 이 책은 시조와 자유시를 함께 짓고 있는 김락기 시인이 1970년대 문청시절부터 40여 년간 창작해온 자유시 작품 중에서 67편을 골라 따로 묶어 출간한 시집이다. 김 시인의 시는 요즘 문단에서 유행하는 화려하고 세련된 시와는 품격이 다르다. 그 주제부터 세간의 유행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의 시는 낙원사상에 기반한다. 그 낙원은 인간 이성에 의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지는 근대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소박하고 아름답게 욕심 없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다. 최서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시인)는 "김 시인의 시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다소 투박하고 어눌할 정도로 졸(拙)해서 서툰 맛이 난다. 서툰 맛 이것이 바로 진국의 맛"이라고 평했다. 표지 제자(題字)와 표지 그림도 김 시인의 작품이다. 저자는 '시조문학'과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했으며 저서로는 '삼라만상' '바다는 외로울 때 섬을 낳는다' '독수리는 큰 나래를 쉬이 펴지 않는다' 등이 있다. 현재 한국시조문학진흥회 명예이사장으로 있다. 116쪽, 8천원.

2017-09-23 00:05:00

유대인이 고발한 '유대인의 종족 청소'…『팔레스타인 비극사』

팔레스타인 비극사/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열린책들 펴냄 "그자들은 우리를 한 명씩 끌어냈다. 할아버지 한 명이 총을 맞았고, 그 딸이 울부짖자 딸도 총을 맞았다. 그러고는 내 형 무함마드를 불러내서 우리 앞에서 총을 쐈다.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면서-아직 젖먹이였던 여동생 후드라를 안은 채로-쓰러진 형을 끌어안자 그자들은 어머니한테도 총을 쏘았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도 아니다. 나치 폭압으로 뼈아픈 시련을 겪은 유대인들이 저지른 '종족 청소'에 대한 회고다. 1948년 4월 9일 유대 군대는 예루살렘 서쪽 언덕 위 '데이르야신'이라는 마을을 점령했다. 시온주의자가 '이스라엘 땅'을 되찾으려는 학살과 강탈, 그리고 추방은 계속됐다. 기관총을 난사해 주민을 죽이고, 나머지 마을 사람들은 한 장소에서 냉혹하게 살해했다. 한쪽에서 시체를 훼손하는 동안 다른 쪽에선 여성을 강간하고 죽였다.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이 3년 만에 저지른 일이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국가는 시온주의 운동이 본격화한 지 1년이 채 안 돼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새로운 나라가 탄생했다. 이스라엘이다. 세계의 암묵적 동조 또는 적극적 외면으로 사라지고 만들어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비극적 운명에 대해 용감하고 강직하게 비판한 일란 파페 교수가 '팔레스타인 비극사-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The Ethnic Cleansing of Palestine)를 펴냈다. 제목만 봐도 팔레스타인의 운명이 얄궂다. 이스라엘 하이파 출신인 저자는 이스라엘의 비윤리적인 건국 과정을 고발하며 추방당한 팔레스타인 난민의 조건 없는 귀환을 주장했다. 이 탓에 하이파 대학에서 파면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역사의 이면을 드러내며 '가장 용감하고 강직하고 날카로운 이스라엘 역사가'로 평가받고 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이 책은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을 '종족 청소'라는 관점에서 파헤친 역사서다. 저자는 종족 청소를 '특정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종교'종족'민족 등에서 유래하는 근거에 따라 주어진 영토에서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명확한 정책'이라고 정의한다. 폭력을 수반하며 군사작전과 연결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차별에서 절멸에 이르기까지 한 집단의 역사를 지울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세력은 섞여 살던 땅에서 다수를 차지하던 아랍인을 쫓아내고 유대인을 다수로 만드는 '플랜D'(플랜 달렛)라는 계획을 체계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주택과 재산에 불을 내고 사람들을 몰아냈으며, 쫓겨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곳곳에 지뢰를 묻었다. 13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몰아내고 60만 유대인의 왕국을 건설하는 '대청소'는 1년도 채 걸리지 않아 끝났다. 팔레스타인인의 85%가 난민이 돼 이집트, 레바논 등을 떠돌고, 일부는 요르단강 서안 일부와 가자지구에 남았다. ◆세계가 눈감은 범죄 홀로코스트 이후 대규모 반인도적 범죄를 감추기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하나의 범죄'는 전 세계 대중의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팔레스타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주도로 영국의 지지, 아랍의 분열과 외면, 그리고 다른 국가들의 방조나 묵인에 의해 체계적으로 부정됐다. 유대인이 처음부터 이 계획을 완벽하게 구상한 건 아니었다. 이들의 막연한 꿈이 실현된 것은 1917년 영국 외무장관 벨푸어가 '영국 통치령인 팔레스타인땅에 유대민족의 나라를 세우게 해주겠다'는 선언을 하면서다. 절대다수인 팔레스타인인은 반발했다. 하지만, 1936년 반란에서 영국군에 의해 지도부가 해산하고 전투조직이 와해하면서 팔레스타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신세가 됐다. 이즈음 유엔도 엉뚱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멀쩡하게 가꿔온 땅 절반을 시온주의에 넘겨야 한다는 것. 전체 인구의 3분의 1, 전체 면적의 6%를 차지했던 유대인에게 영토 절반을 할양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이 1947년 11월 유엔총회 결의안 제181호로 채택됐다. 그 뒤 배타적인 유대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시온주의자들은 거리낌 없이 플랜달렛을 실행에 옮겼다. ◆비극은 계속… 종족 청소 이후는 더 잔혹하다. 그래서 이곳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전투가 잦아든 틈에 돌아온 피란민을 포로로 가둬 강제노역을 시켰고, 이슬람 성지를 레스토랑이나 상점으로 바꿔 팔레스타인의 정신에도 상처를 입혔다. 전체 영토의 3%밖에 안 되는 곳에 살게 했고, 130만 명에게서 1억파운드를 몰수했다. 여성은 겁탈당했고, 빈민가로 강제 이주당했다. 아랍어로 된 마을 이름조차 히브리어로 바꿨다. 팔레스타인인을 내쫓은 마을 위에는 국립공원과 녹색 생태 휴양지를 조성했다. '유대민족기금'은 그렇게 팔레스타인의 흔적과 역사를 지워나갔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교과서에는 학살과 추방 대신 '유대 쪽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냥 남으라고 설득했다'는 거짓 역사가 기록됐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가자지구 무장 정파 하마스는 평화를 해치는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썼고, 중동 분쟁의 불씨가 됐다. 가자지구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사상자 수와 피해 정도가 압도적인데도 팔레스타인 동정론은 이스라엘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국가들에 밀렸다. 2012년에야 UN 비회원 옵서버 단체에서 비회원 옵서버 국가 단계로 격상됐다. 파페는 불모의 땅을 녹음이 우거진 풍요의 땅으로 바꿨다는 이스라엘의 건국 신화를 꼬집는다. 이스라엘이 법적'도덕적 책임을 지고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한다면 분쟁의 땅에도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가깝지만 먼 나라'에도 통하는 제언이다.

2017-09-23 00:05:00

[이종문의 한시 산책] 그리운 아내에게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

언제 그날 일을 이야기할까 이상은 돌아올 날 언제냐고? 돌아갈 기약 없고 君問歸期未有期(군문귀기미유기) 파산에 내린 밤비 가을 못물 붇고 있소 巴山夜雨漲秋池(파산야우창추지) 언제 만나 안방의 등불 심지 잘라가며 何當共剪西窓燭(하당공전서창촉) 도리어 밤비 내리던 그날 일을 얘기할까 却話巴山夜雨時(각화파산야우시) * 원제: [夜雨寄北(야우기북): 밤비 속에서 북쪽으로 부침]. 이 작품은 북쪽 장안(長安)에 있는 아내에게 부치는 시임. 당나라 말기를 대표하는 시인인 이상은(李商隱, 812~858). 몰락한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 일생 불우하게 지냈던 그에게 아내는 언제나 캄캄한 어둠 속의 따뜻한 등불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사랑하는 아내에게 부치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첫 대목의 내용으로 보아 이 시를 짓기 전에 작자는 아내가 보내온 편지를 받았고, 그 편지 속에서 아내는 시인에게 '돌아올 기약이 아직도 없느냐'고 물었다. 제발 좀 빨리 돌아와 달라는 간절한 촉구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시인은 지금 도저히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창밖에는 밤비가 하염없이 추적거리고 있다. 머나먼 타향에서 어서 돌아오라는 아내의 편지를 받은 가을밤 비마저 추적거려 못물이 불어나고 있다니, 이 시는 정말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 분위기 속에서 태어났던 셈이다. 보편적으로 추억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시에는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를 회상하는 특이한 형식의 추억이 등장한다. 돌아가고 싶지만,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므로 시인은 문득 아내와 만나 촛불의 심지를 함께 잘라가면서, 오히려 파산에 밤비 내리던 그해 그 가을 그 어느 날 밤을 오순도순 이야기하고 있을, 아득한 미래 어느 날의 상황을 눈을 감고 떠올려보는 것이다. 아내에 대한 애잔한 정이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처럼 나지막하고도 정감 어린 화자의 어조 속에 잔잔하게 배어 있다. 훗날 그들이 다시 만나 촛불의 심지를 잘라가면서 오순도순 나눌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상상력의 방향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대강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여보! 그해 가을 당신이 보낸 편지를 받던 날, 파산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어." "알아요, 여보. 당신이 그때 지어 보낸 시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 못물이 붇는다고 하셨잖아요." "여보! 그때 당신 참 많이 보고 싶었어." "저도요, 저도 참 많이 보고 싶었어요." "여보! 나 정말 당신을 엄청 사랑하고 있나 봐." "저도요. 저도 당신을 엄청…사랑하나 봐요." "여보!" "왜요?" "그냥, 그냥 한번 불러보았어." "여보오!" "왜 그래?" "저도 한번…불러보았어요. 그냥요, 그냥!" "밤이 벌써 많이 깊었네. 우리 인제 그만 잘까?" "그냥요? 그냥 자려고요?"

2017-09-23 00:05:00

[반갑다 새책] 커피인문학

커피인문학/ 박영순 지음/ 유사랑 그림/ 인물과 사상사 펴냄 커피를 향한 인류의 사랑은 성별, 연령, 국가, 종교를 초월한다. 그만큼 콩알 하나의 위세가 대단하다. 신문 기자 시절 커피에 빠져 커피인문학 강의를 시작한 박영순 커피비평가가 인류의 모든 것을 커피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커피인문학'이다. 저자는 커피가 써내려간 세계사, 다방'믹스커피에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로 대표되는 커피가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살펴본 뒤 커피 문화와 산지를 돌아본다. 커피나무가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했지만, 인류역사에서 커피나무를 처음 경작한 나라는 예멘이다. 커피의 기원이 어딘지를 놓고 다투는 이 논쟁의 기원은 커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유럽으로 건너간 커피는 문화가 됐다. 17세기 영국'프랑스'미국 등에선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강대국들은 엄청난 이익을 남겨주는 커피를 확보하는데 혈안이 됐다. 노예와 식민지도 여기에 기인한다. 카페인이 가득 든 커피는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보스턴 차 사건을 계기로 티는 커피로 대체된다. 심지어 남북전쟁의 승패를 갈랐다. 또 바흐, 베토벤, 브람스는 독일이 낳은 명작곡가이자 커피 애호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커피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커피가 바꾼 일상은 어떻게 축적되고 기록됐을까. 368쪽, 1만9천원.

2017-09-23 00:05:00

[반갑다 새책] 프로메테우스의 언어

프로메테우스의 언어/허상문 지음/ 수필과 비평사 펴냄 문학평론가'수필가'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허상문 영남대 영문과 교수가 프로메테우스 언어의 기초적이고 전반적인 내용을 학습하는 이론서 '프로메테우스의 언어'를 펴냈다. 문학의 한 장르면서 시나 소설과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수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겼다. 책은 5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 수필이론과 문학장르로서 수필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하고, 2'3부에서는 수필 비평을 통해 작가별 수필세계와 그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 4부에서는 우리 수필문학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방법론을 재정립하는 형식이다. 마무리를 통해 수필의 주제와 내용을 중심으로 한 방법론적 시도를 통해 수필문학의 이론과 창작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 항거해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것처럼 순응과 안주가 아닌 전복과 위반으로 삶과 문학을 가르친다"면서 수필이 다른 장르와 소통해 상생하고 그 입지를 다질 방향을 모색한다. 382쪽, 2만6천원.

2017-09-23 00:05:00

대가야 중심으로 가야 역학관계 풀어내…『가야사 새로 읽기』

지난 7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이 포함되면서 학계, 문화계의 관심을 모았다. 고령을 주요 기반으로 했던 대가야는 신라와는 적대관계, 백제와는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외교 관계를 기반으로 대가야는 백제 영역인 섬진강, 하동, 남원까지 진출했고 이를 기반으로 중국에까지 교류를 확장할 수 있었다. 5, 6세기 '대가야(영남)와 백제의 역사적 밀월'은 새 정권이 출범하면서 영호남의 화합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가야문화권 조사사업이 국가과제로까지 대두되면서 각 자치단체나 연구단체의 행보도 바빠졌다. 우선 지자체 간 역사'문화교류가 활성화되었고 연구기관들은 가야문화권 문화재 발굴조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게 가야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가 펴낸 '가야사 새로 읽기'가 주목을 끌고 있다. 주 교수는 한반도 남부의 주요 정치세력으로 가야를 주목하고 가야사를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가야 연맹체 중 특히 대가야를 주목하고 있다. 광개토왕비, 송서(宋書), 일본서기 등 문헌과 사료가 대부분 대가야에 집중돼 있고 고고학적 사료들로 고령가야의 국력이 가장 컸던 정치세력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료를 근거로 저자는 '전기 가야는 금관가야 중심, 후기는 대가야 중심'이라는 통설을 부정하고 대가야를 중심으로 가야사의 역학관계를 이해하는 학설을 펼치고 있다. 주 교수는 가야사를 새로 정리하면서 새로 기본 방향을 설정했다. 첫째 금관국을 중심으로 한 전기 가야는 가야의 모태이기는 하지만 실상은 가야사라기보다는 직전 단계인 변한사(弁韓史)로 다루는 것이 적절하고, 둘째 낙랑군과 대방군이 망하고 그 유민들이 한반도 남부로 남하하면서 가야사회가 큰 변동을 겪었고 이런 혼란이 가야 사회 성립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셋째 5세기 광개토왕 병력의 낙동강 진출에 대한 새로운 이해 즉, 이 사건이 낙동강 유역권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지만 가야사를 전후기로 나눌 만큼 큰 비중은 아니라는 점, 넷째 가야는 외교에 있어 대부분 기간을 백제와는 우호적 관계로 신라와는 치열한 경쟁관계로 일관했다는 점, 다섯째 가야권의 영토, 공간적 영역이 고정적이지 않았으며 가야가 존속한 기간 내에 구성 세력 간에는 상당한 이합집산이 진행되었다는 점을 연구의 틀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시각을 기본으로 저자는 한반도 남부에서 소국(小國)을 넘어 고대국가 수준으로 발전한 대가야 역사를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 대가야가 가야연맹의 맹주로 부상하던 시기를 기존 '5세기 설'에서 1세기 이상 끌어올렸다. 즉 4세기 전반 이미 대가야를 중심으로 가야 연맹이 만들어졌다는 것. 새 정부에서 가야사가 국민통합의 화두로 떠오르며 복원 방향을 놓고 학계에 의견이 갈리고 영호남 관련 시군들도 협력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 교수의 이런 주장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복원사업을 주도해온 김해시와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주 교수는 "문헌과 고고자료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며 가야사의 흐름을 추적했지만 대가야를 중심에 둔 서술이 불가피했다"며 "그 이유는 사료, 고고학적 발굴 성과가 모두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2017-09-23 00:05:00

야코프 요르단스 작 '아담과 이브'(1640년경). 지은이 다니엘 S. 밀로는 인간이 '내일'을 생각하게 됨으로써 '오늘만 사는 동물의 낙원'에서 추방됐다고 말한다.

인류의 발전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생각했기 때문…『미래 중독자』

미래 중독자/다니엘 S. 밀로 지음/양영란 옮김/추수밭 펴냄 지구 상의 모든 동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위해 이미 존재하는 현재를 포기할 줄 안다. 인간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유보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거나, 반대로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내일을 두려워해 일찌감치 미래를 포기한 채 오늘을 즐기기도 한다.(카르페 디엠) 어느 날 문득 내일을 떠올리고, 내일을 오늘의 삶으로 끌어들이게 된 인류는 위대하고도 위험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간은 삼성 핸드폰을 만들었고, 핵폭탄도 만들었다. 동물은 생각하지 않는 '내일'을 생각함으로써, 인류는 지구 생태계의 정점에 설 수 있었다. 그런 한편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 때문에 '오늘만 사는 동물의 낙원'에서 추방당했다.(창세기) 결국 내일은 인류를 번영으로 이끈 동력이자, 인류를 옭아맨 속박인 것이다. 이 책 '미래중독자'는 미래(내일)에 대한 기대가 이루어낸 성과와 내일 때문에 만성적인 불안과 공포, 끝없는 노동에 시달리는 인간의 모습을 진화생물학, 고고학, 문화인류학, 역사학, 언어철학을 동원해 하나씩 짚고 있다. ◇오늘을 버리고 내일만 사는 별종 "다음에 같이 밥 한번 먹자." 한국의 직장인들이 가장 자주 하는 빈말 1위다(〈SBS뉴스〉 2012년 1월 11일 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문제 상황을 막연한 미래로 미룬다. 사람들은 '다음에 보자'는 막연한 말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처럼 막연한 약속 안에 인류를 이끈 위대한 힘과 사피엔스를 인간으로 만든 위험한 특성이 숨어 있다'며 '인류가 발명한 도구나 불, 언어보다 내일이 훨씬 혁명적인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지은이는 5만8천 년 전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난 이유'에 주목한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 인류가 언제 아프리카를 떠났으며 어떻게 전 세계로 흩어졌는지에 대해 규명해왔다. 그러나 왜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시원하게 규명하지 못했다. 어떤 종이 거주지를 포기한다는 것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상황과 맞닥뜨렸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이주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각오하는 특수한 행위다. 지구 상의 모든 동물들 가운데 오직 인간 일부만이 소말리아 반도라는 비옥한 환경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북극까지 지구 전역으로 퍼졌다. 그러나 이주의 근거가 될 만한 기후 조건이나 자원의 부족, 또는 다른 종과의 경쟁이나 내부적인 갈등 등 어떤 생태학적 근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지은이는 '별다른 이유 없이' 말 그대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기 위해' 인류는 아프리카를 떠났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지은이는 바로 이 점, '오늘을 버리고 내일을 사는 특징'을 인간만의 특징이라고 규정한다. ◇내일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축복과 저주 내일을 생각하기 시작한 뒤부터 인류는 불확실한 미래를 염두에 두느라 만성적인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그리고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준비와 계획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내게 됐다. 그 과정에서 축적과 잉여가 생겨났고, 이윽고 호모 사피엔스는 '상상의 과잉'에 빠지게 되었다. 이를 불행 혹은 번뇌라고 칭한다. 지은이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짓는 인간다움이란 오직 내일이라는 상상과, 그 상상에서 비롯된 과잉이라는 현상뿐이다. 모든 것이 과잉으로 치닫는 현대사회의 모습은 이미 수만 년 전부터 예정되었던 셈이다"고 말한다. 이에 더해 지은이는 "과거 인류가 멸종 직전의 위험한 지경에 빠졌던 것은 뇌의 비약적인 성장 때문이다"고 말한다. 인류의 최대 장점으로 꼽는 뇌의 성장을 약점으로 꼽은 것이다. 지은이는 "뇌 부피가 커지면서 인류가 불을 통제하고 언어로 정교하게 소통하며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번성은 곧 정체를 맞는다. 뇌의 크기는 여전히 성장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에 반해 기술과 문화는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뇌 용적이 1천100㎤까지 늘어났지만 400㎤의 뇌 용적을 가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석기 기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뇌의 과도한 성장이 인류에게 만성적인 영양 부족과 난산, 그리고 특별하게 긴 유년기에서 비롯된 생존 위협이라는 요소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물론 뇌의 성장으로 인류세가 개막했다는 결과를 부인할 수는 없다. ◇내일을 모르던 시절로 돌아가면 행복할까 내일에 대한 기대와 공포는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가지 거대한 힘이다. 인류의 역사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미래에 대한 기대로 광야를 40년간 헤맨 '모세의 탈출기'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식들을 잡아먹은 '크로노스' 사이 어디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은이는 '현대인들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인들은 미래에 중독된 채 살고 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미래만 포기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내일을 전제로 하는 결혼, 출산, 노후 대비에 대한 기대를 놓기만 하면 오늘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내일과 관련해 가장 극단적 선택과 과잉 반응을 보이는 사회가 한국 사회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일'이 발명되기 이전으로 돌아가면, 우리를 사로잡는 근거 없는 기대와 불안의 과잉에서 벗어나게 될까? 지은이는 "내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오늘에 만족하는 존재는 짐승이거나 해탈한 부처다. 그러니 우리는 내일에 사로잡혀 더 많이 불안해하고 초조한 채 더욱 과잉을 추구함으로써 더 깊은 번뇌의 지옥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과잉이야말로 인간다움이다"라고 저주처럼 말해버린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양영란 박사는 "지은이의 연구 방식이나 그가 내린 잠정적 결론에 대해 논리 비약이라는 논란이 있을 수 있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 그것은 독자들에게 주어지는 권리이자 숙제다"고 말한다. 옮긴이가 이런 말을 덧붙인 것은 지은이의 주장이 흥미로우면서도 과격하고, 현재까지 정설로 자리 잡고 있는 이론들과 대치되는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324쪽, 1만6천800원. ▷지은이 다니엘 S. 밀로는…. 다니엘 S. 밀로(Daniel S. Milo)는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진화생물학자로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교수로 있다. 삶에서 언제나 '과잉'에 대한 과잉된 강박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과잉된 감정을 실험적 역사 연구로 승화시켜 '시간을 배반하다'(Trahir le temps), '역사 총서'(Histoire)와 '또 다른 역사'(Alter histoire) 등을 집필했다. 지구의 역사 속 생명체들이 보여준 '삶에 대한 힘'에 관심을 가지고 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다.

2017-09-16 00:05:05

강종진 작 '감포 촛대바위'

[내가 읽은 책] '자전거 여행' 김훈 /문학동네

'자전거 여행' 김훈 /문학동네/2014 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하늘은 파랗고 벼는 누렇게 익어간다. 제각기 위치한 자리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살피며 시골길을 달린다. 그것도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낭만적인가. 실제로 자전거를 타고 우리나라 산하를 누비듯 생생히 보여주는 책이 있다. 바로 김훈의 '자전거 여행 1'이다. 여러 여건상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멋진 가을 선물이 될 책이다.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김훈은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자전거 라이더이다. 신문기자 시절 에 '문학기행'이라는 평론을 연재했으며 창간호에 으로 데뷔했다. 이때 그의 나이 47세였다. 이 책은 작가 김훈의 산문작품 정수다. 작가가 밝혔듯이 '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히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라는 말처럼, 그의 아름다운 언어를 책 전체에서 읽을 수 있다. 미사여구나 군더더기 없이 정확한 사실만을 구사하는 문장의 아름다움 때문에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텍스트가 되기도 한다. 작가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본 사실만을 그대로 실은 책 속에는 우리 모두의 삶이 녹아있다. 바닷가에서는 물고기를 고르는 법을 어부에게 배우고, 그들이 권하는 '도다리' '오징어 피데기' '멸치회'를 선보인다. 좋은 소금을 채취하는 방법도 일러준다. 농촌에서는 농사일을 배우는 소의 애환을, 산골에서는 소박한 아이들의 생활을 그림처럼 보여준다. 중부전선 태풍전망대에서 넓은 시계 안이 산과 강으로 가득 차서 출렁거리는 산하의 모습, 수평의 삶을 수직의 삶으로 바꾸어 놓는 일산 신도시, 폐허 속의 여주 고달사, 하늘재 고갯길에서 보는 고려 초기의 불상과 탑들을 통해 산골과 도시,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여준다. 또 도산서당에서는 퇴계의 삶의 모습과 태도를 집약하고, 하회마을에서는 우리들의 감추어진 삶과 드러나는 삶의 꿈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게 한다. 가평의 설악면 산골에서 자연의 유순한 보편성 속으로 바퀴를 굴려 설악면을 다 돌 때까지도 작가의 자전거는 지치지 않는다. "몸의 힘은 체인을 따라 흐르고, 기어는 땅의 저항을 나누고 또 합쳐서 허벅지에 전한다. 몸의 힘이 흐르는 체인의 마디에서 봄빛은 빛나고, 몸을 지나온 6시간이 바퀴로 퍼져서 흙속으로 스민다. 허벅지의 힘이 흙 속으로 깊이 스밀 때, 자전거를 밀어주는 흙의 힘은 몸속에 가득찬다."(11~12쪽) 자전거 여행의 동력이 생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처럼 전편의 글이 우리 삶의 진지한 성찰을 보여준다. 전편이 몸과 마음의 상호 작용 속에서 나온 글이기에 더욱 애착이 간다. 우리의 산하를 두루 섭렵하면서 민중들의 삶과 문화답사, 역사적인 면을 설명하고 작가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시적인 문체로서 글 속에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독자들 특히 여행하는 이에게 권하고 싶다.

2017-09-16 00:05:05

[책 CHECK] 웅크린 호랑이

웅크린 호랑이 피터 나바로 지음/ 이은경 옮김/ 레디셋고 펴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후진국이라 불리며 온갖 멸시와 무시를 당하던 중국이 어느새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자국 방어'라는 목적 아래 군사력도 빠르게 증강해왔다. 최근에는 등한시했던 해군력 강화에 힘쓰며 '해양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는 중이다. 중국은 더 나아가 우월한 힘으로 다른 국가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덧붙여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타국의 영토를 탈취하고 국제 규범과 국제법을 무시하며 21세기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지정학, 경제학, 역사, 국제관계, 군사 교리, 정치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나눈 인터뷰를 토대로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아시아 내 권력 이동, 영토 분쟁과 같은 불안정한 현실을 다룬다. 또한, 중국을 중심으로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냉철하게 분석한다. 이를 통해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들의 군사력 강화가 세계 평화를 어떻게 위협하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416쪽, 2만2천원.

2017-09-16 00:05:05

[책 CHECK] 통합 생태론의 혁명

통합 생태론의 혁명 정홍규 지음/ 학이사 펴냄 이 책은 그동안 대안적 성격의 사회운동으로 간주돼온 공유경제 성공의 요체를 일상생활과 현장 경험을 토대로 제시하고 있다. 에너지를 아끼고 덜 쓰는 것은 문명인의 도리이며 세계시민의 필수 덕목으로,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야만 비로소 '탈원전' 정책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말한다. 1부 '사회적 경제와 통합 생태론'에서는 청년들이 지닌 창의력, 용기,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해법을 제시한다. 2부 '대학자 힐데가르트 성녀와 통합 생태론'에서는 힐데가르트 수녀의 우주론을 통한 통합생태론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3부 '에밀 타케 신부와 통합 생태론'에서는 제주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하고 제주에 원조 밀감을 들여온 에밀 타케 신부의 식물학자로서의 통합 생태론을, 4부 '프란치스코 교종과 통합 생태론'에서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통합 생태론을 통해 성주의 사드나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삼척과 경주에서의 탈핵, 4대강 사업 등 현시국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저자 정홍규 신부는 현장 중심의 실천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 생태평화운동가로 '오산에서 온 편지' '마을로 간 신부' '한국가톨릭교회의 생태의식' 등의 저서가 있다. 224쪽, 1만3천원.

2017-09-16 00:05:05

한 해 700만명 죽이는 '은밀한 살인자'…『미세먼지 극복하기』

미세먼지 극복하기/ 김동식'반기성 지음/ 프리스마 펴냄 여름이 지나간다. 찬바람이 불면 찾아올 불청객,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가 고개를 들고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미세먼지 문제를 종합해 다룬 책이 나왔다. MIT 출신의 기상기업인 김동식 케이웨더 대표와 기상 분야 연구와 강의로 이름을 알려온 반기성 케이웨더 센터장이 함께 쓴 '미세먼지 극복하기'다. 제목처럼 미세먼지의 모든 것, 미세먼지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인체, 기후,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본 뒤 토털 솔루션까지 제시한다. ◆미세먼지 어떻게 만들어지나 입자상 물질이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상태를 에어로졸(aerosol), 보통 먼지라고 한다. 먼지는 0.001~1,000㎛까지 크기가 다양하지만 50㎛ 이상일 때는 바로 가라앉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건 지름 10㎛ 이하의 미세먼지(PM10)다. 모래의 9분의 1, 머리카락 지름의 7분의 1에서 5분의 1 정도 크기다. 이보다 작은 초미세먼지(PM2.5)는 지름 2.5㎛ 이하 먼지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아 더욱 위험하다. 먼지는 오염원이 대기로 직접 배출하는 토양, 금속성분, 이산화황, 일산화탄소 등 1차 입자와 이들이 공기 중 산소'오존'수증기와 화학 반응해 만들어지는 이산화질소, 황산염 등 2차 입자로 나뉜다. 난방'실내활동'기타 이유로도 미세먼지가 만들어진다. 초미세먼지는 불완전 연소, 자동차 배기가스, 화석연료 연소, 산업 공정, 도장용재, 농림축산업 등 발생원이 다양하다. 이 때문에 화력발전과 대규모 산업단지, 소각 농업 등으로 미세먼지 배출 기여도가 높은 중국에서 배출한 미세먼지의 양과 경로 추적에 관심이 쏠린다. 여기에 대규모 개간으로 급속도로 진행된 중국 내륙 사막화는 황사 발생 빈도와 강도를 높이고 있다. 황사가 이동할 때 묻어오는 중국 내 대기오염물질과 미생물이 미세먼지의 농도를 더한다. 먼지의 이동을 돕는 상층 풍향은 서풍(50%)과 북풍(24.5%)으로, 국가별 발생원에 대한 측정이나 실험이 없이도 중국을 원망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람 죽이는 미세먼지 뱃고동이 울리고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인천 앞바다에 가면 깨끗한 바닷바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정반대다. 초미세먼지 배출원 가운데 도로'비도로 오염원이 30%를 넘게 차지한다. 비도로 오염원의 절반은 선박이다. 발전소와 선박이 모여 있는 울산'인천'부산은 해풍과 함께 들어오는 선박이 미세먼지의 농도를 높인다. 미세먼지는 호흡기에 치명적이다. 기도 깊숙이 들어와 침착하는 분진은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부작용을 일으킨다. 염증반응은 천식, 호흡기 질환뿐만 아니라 심혈관'순환기 질환에도 영향을 준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10㎛/㎥ 증가하면 심장질환자 사망률은 1.2배, 심부정맥 혈전증이 70%, 폐암 위험도는 1.22배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밖에서 흡연 후 바로 실내에 들어가면 미세먼지가 50배가 된다고 한다. 이 '은밀한 살인자'는 흡연보다 더 위험하다. 2014년 세계보건기구 보고서는 한 해 미세먼지로 조기 사망하는 인구가 700만 명에 이른다고 했는데, 이는 흡연으로 사망하는 사람 수(600만 명)보다도 많다. 임신 중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저체중아 출산과 37주 이내 조기출산 위험이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가로세로높이 30㎝ 공간에 0.1㎍ 먼지입자 1개만 허용될 정도로 먼지에 민감한 반도체 산업도 먼지와의 전쟁에 들어갔다. 조선'자동차 산업현장에서는 미세먼지 농도가 짙으면 도장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미세먼지는 일조량을 감소시키고 기공을 막아 광합성을 방해해 농작물 생장에 장애를 준다. ◆미세먼지 저리 가라 미세먼지는 창문을 꼭꼭 닫아도 소용없다. 화석연료 연소가 미세먼지 발생의 주원인이지만 난방과 조리 등 일상생활에서도 먼지는 생긴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자 실내공간은 점점 밀폐화하고 환기가 부족한 만큼 실내 공기질은 나빠진다. 실내 공기질부터 제대로 측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기업은 어린이집'도서관'학교'병원에 실내공기측정기를 설치해 공기질을 모니터링하고 개선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백화점, 영화관. 대형마트는 쾌적한 실내공기 관리로 손님을 사로잡는다. 미세먼지는 가전제품 회사, 주식시장의 판도도 바꾸고 있다. 공기청정기, 진공청소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도 필터 기능이 강화됐고, 제습기, 건조기, 의류관리기, 전기레인지의 매출도 증가세다. 애완견 마스크 등 관련 상품도 등장했다. 공기컨설턴트라는 직업도 생겨났다. 책은 미세먼지를 피할, 미세먼지를 떨칠 모든 방법을 소개한다. 황사철 삼겹살의 효과는 제한적이나 녹차'양파'마늘'미역'굴'전복 등을 즐겨 먹고, 물이나 차를 충분히 마셔 유해물질의 배출을 도우라고 한다. 새집증후군 예방을 위해 베이크아웃(입주 전 5일 이상 난방을 가동해 화학물질을 방출하고 환기를 시키는 방법)을 하고, 새 차를 사면 비닐 커버를 바로 떼라는 조언도 담았다. 또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에도 환기를 시키고, 가습기나 분무기로 습도를 높여 바닥에 가라앉은 먼지를 닦을 것을 권한다. 정책 제언도 담았다. 석탄정책을 수정하고, 친환경 차와 녹지를 늘리는 방법으로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면서 인공강우, 물안개 같은 지구공학 기술로 제거할 수 있다. 국제적 합의도 중요하지만, 중국에 미세먼지 감축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아끼지 않았다. OECD는 대기오염이 개선되지 않으면 2060년까지 한국인 900만 명이 조기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세먼지 불똥은 고등어에 튀었다. 지난해 5월 고등어구이가 미세먼지를 발생시킨다고 했던 환경부의 성급한 발표에 미세먼지 주범이라는 누명을 쓴 고등어 소비는 뚝 떨어졌고, 소비량은 30~40% 떨어진 상태에서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세먼지, 그래서 올바로 알고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 "고등어야 미안해." 280쪽, 1만8천원.

2017-09-16 00:05:05

[반갑다 새책]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 게르하르트 슈뢰더 지음/ 김소연(감수)'엄현아'박성원 옮김/ 메디치 펴냄 독일의 제14대 연방총리를 지낸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입지전적 삶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반전의 연속이었던 그의 정치 인생 중 수많은 위기와 역경의 갈림길에서 고뇌했던 격정의 순간을 담은 첫 회고록이다. 책은 '미디어 총리'라 불릴 만큼 자기 연출에 강한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담담하게 그려내 센세이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6년간 집권한 헬무트 콜 총리로부터 정부를 이어받은 슈뢰더가 취임할 당시, 독일은 500만 명이 넘는 기록적 실업자와 갑작스러운 통일에 따른 혼란, 전범 국가 낙인, 50년간 한 번도 손보지 않은 사회보장제도 등으로 '유럽의 병자'로 취급받을 정도였다. 이런 독일 사회를 위해 대대적으로 개조하고자 연방총리직을 내걸고 과감한 개혁 방안을 실행했다. 일자리'외교'안보'의료'연금'사회보장제도 등 '캐치 올'(catch all) 전략을 내세운 그의 스마트한 리더십은 국가 대개혁 과제를 앞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464쪽, 2만6천원.

2017-09-16 00:05:05

[반갑다 새책]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트리스탄 굴리 지음/ 김지원 옮김/ 이케이북 펴냄 자연은 말없이 자신의 특성을 드러낸다.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동물과 식물, 땅과 하늘, 해와 달과 별, 바다와 강과 호수, 심지어 도시까지도 제각각이 가진 신호와 단서로 상황을 예측하거나 추론할 수 있게 해준다.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의 저자 트리스탄 굴리는 야외탐험 20년 경력의 영국 탐험가로, 850가지의 자연현상을 예로 들며 관찰을 통해 보는 세상이 얼마나 더 넓어질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귀뚜라미는 13℃에서 1초에 한 번 정도 운다. 하지만 온도가 높아지면 더 빨리 운다. 울음소리로 온도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바람에 노출된 나무는 '바람 터널 효과' 때문에 형태가 달라진다. 바람을 맞는 면은 계속 강풍에 견디며 자동차 보닛처럼 유선형으로 발달하지만,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의 나무는 펑퍼짐하고 수직 형태를 보인다. 일상에서 흔히 보고 지나치는 '쇠뜨기'는 금의 위치를 알려준다. 금을 비롯한 중금속을 흡수하고 축적하는 능력이 뛰어나 금광맥을 찾는 데 활용된다. 저자가 제시하는 '자연 내비게이션'으로 무심코 지나쳤던 자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감수성을 되찾아보는 건 어떨까. 504쪽, 1만9천800원.

2017-09-16 00:05:05

약,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위험한 제약회사』

2차 세계대전 당시 페니실린은 인류를 각종 감염 질병에서 구한 '명약'이었고. 2001년 출시된 글리벡은 혈액암 환자들에게 생명연장의 희망을 안겨준 '신의 선물'이었다. 약이 인류를 각종 질병에서 구하고 음습한 죽음의 그늘을 걷어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약물 오남용이나 제약회사의 비뚤어진 상술은 인류를 정반대의 길로 이끌기도 한다. 최근 미국인과 유럽인의 주요 사망원인을 조사한 결과 1위는 심장질환, 2위는 암이었다. 3위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약'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인류를 질병에서 구하기 위해 고안된 약이 한편으로 인류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약의 오남용 때문이 아니라 제약회사들이 약품의 심각한 부작용을 은폐하거나 조작한 결과다. 제약회사의 영향력이 언론에까지 미치면서 그들에게 불리한 정보는 차단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약에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다. 약은 당연히 적법한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약이라면 의사가 처방해 줄 리 없다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 피터 괴체 교수는 제약회사의 영업이사로 오랫동안 일한 경험과 생물학과 화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제약회사가 어떻게 의사와 환자를 속여 유해하거나 쓸모없는 약을 팔아 돈을 버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심지어 저자는 제약회사의 사업 방식이 갱단이나 마피아의 조직범죄와 다름없다고까지 말한다. 제약회사의 부정은 터무니없이 높은 수익구조, 환자 건강 침해, 유력 집단에 대한 뇌물 공세가 대표적이다. 그 결과 약은 천사의 얼굴을 한 죽음으로 환자들에게 다가간다. 느슨한 규제와 너무 복잡한 경고들, 과잉 의료, 다중약물요법 등이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주된 원인이다. 이 책은 900여 건의 검증된 문헌과 자료에 기초하여 실명과 팩트(fact)로 무장한 제약회사 탐사 리포트다. 저자는 제약업계, 의학계, 보건의료계, 정계의 많은 문제점을 파헤쳐서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현 가능한 합리적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대표적인 그릇된 믿음 10가지를 소개하며 제약회사가 꾸며내서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그릇된 믿음을 타파하려고 한다. 또 일반 독자들이 환자 입장에서 의사에게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응책까지 소개하고 있다.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비용을 제약회사가 낸 세금을 이용해 정부가 지원하고, 그 결과를 전부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의사, 의약전문가단체, 환자단체, 학술지, 제약회사 사이의 금전적 연결고리를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자가 제약회사를 '살인적인 조직범죄'라고까지 규정하지만 '의약품 무용론자'는 아니다. 의사로서 일부 의약품의 혜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이 책은 이미 잘 알려진 약의 유익함에 대한 책이 아니라 약의 개발, 제조, 마케팅, 규제를 비롯한 시스템 전체의 부실함에 대한 고발이다. 지은이는 약에 대한 '그릇된 믿음'을 청산하고 보건의료 시스템의 적폐를 청산할 획기적 대안들도 제시한다. 저자는 '탈의료화'를 해결책으로 꼽는다. 정말 필요한 약은 얼마나 되고,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 따져본 뒤 영리 추구가 아닌 '필요 중심'의 신약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 제약회사 리베이트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고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사망사고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우리도 제약회사에 대한 규제와 감시, 국민들의 약에 대한 인식 전환이 시급한 때가 아닌가 한다. 사후에 '약방문'(藥方文)하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 589쪽, 2만5천원.

2017-09-16 00:05:05

창랑정기 1회(동아일보 1938. 4. 19)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유진오의 '창랑정기', 순정(純正)한 정신을 향한 열망

'향수(鄕愁)란 거칠 대로 거칠어진 정서의 거친 벌을 다시 곱게 빗질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유진오 소설 '창랑정기'(滄浪亭記)에 나오는 말이다. 고향을 갖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향수'라는 용어는 이미 시효가 지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년기, 혹은 소년기나 청년기를 겪으면서 기억에 박힌 감성적 풍경 정도는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것은 여름날 이른 아침 대문 앞에 서 계시던 아버지 모습일 수도 있고, 가을 무렵 외갓집 가는 길에 맡은 낙엽 태우는 냄새일 수도 있다. 내 안에 남아있는 오래되고도 따뜻한 그 기억이 바로 '향수'이다. 유진오의 '창랑정기'(1938)는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딱히 고향이라고 지칭할 만한 것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도 '마음이 고달플 때, 그 마음을 가져갈' 따뜻한 추억의 한 지점이 있다. 바로 어린 시절 방문한 '창랑정'과 관련한 기억이다. 물이 찬 정자라는 뜻에 걸맞게 창랑정(滄浪亭)은 한강 서쪽, 즉 서강(西江)이 눈앞에 펼쳐지는 곳에 있는 웅장한 고택이다. 여덟 살 무렵, 아버지를 따라간 그 고택에서 '나'는 일명 '서강대신'으로 불리는 삼종 증조부를 만난다. '서강대신'은 대원군 집정기에 이조판서를 지내다가 쇄국의 꿈이 무너지고 대원군이 세력을 잃게 되자 스스로 벼슬을 내놓고 창랑정에 틀어박혀 말년을 보내는 인물이다. 주인공 '나'는 왜 몰락한 왕조와 운명을 함께한 완고한 인물 서강대신을 따듯한 향수의 주역으로서 떠올린 것일까. 주인공 나의 기억 속, 서강대신은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해 세상 밖으로 밀려난 우울한 뒷방 늙은이가 아니다. 그는 충(忠)의 유교이데올로기를 따르고, 조선의 우아한 상층 문화를 향유한 조선왕조의 마지막 귀족이다. 신선을 그린 병풍, 사방탁자와 화류문갑, 한문서적들, 범을 새긴 대리석 도장, 벽에 걸린 명필 글씨 액자, 용을 새긴 붓꽂이, 흰 말 꽁지로 만든 총채 등 신비롭고도 호화로운 서강대신의 방 분위기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하여 버린 전통적 조선 귀족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고 '창랑정기'가 소멸한 조선문화에 대한 애도에서 이루어졌던 것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서강대신의 순정(純正)한 정신에 대한 존경과 존중의 마음이 소설 한 편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유진오가 '창랑정기'를 창작한 것은 본격적 친일로 나아가기 일 년 전이었다. 이십 대의 유진오는 일제의 식민지 경제정책을 비판했고 식민지 빈곤현실을 고발한 소설을 발표하였다.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한 조선 최고 엘리트답게 식민지 조선현실과 미래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이 그의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1938년, '창랑정기'를 창작하며 유진오는 그 '순정한 정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던 듯하다. 이미 친일로 선회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힘겹게 그 정신을 떠올리고 있었던 듯하다. 그 '순정한 정신'이야말로 지식인, 특히 식민지 최고 엘리트로서 유진오가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진오는 '창랑정기' 이후, 그 '순정한 정신'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었다.

2017-09-16 00:05:05

그림: 김을련 작 '마을 쉼터'

[내가 읽은 책] '나목'(裸木) (박완서/세계사/2017)

계절을 입은 나무 박완서, '나목'(裸木) 세계사(2017) 부끄러운 계절에는 나무도 옷을 벗는가. 전쟁이 설움이요 가난이 죄이던 시절이었다. 6'25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민족의 비극을 한 여인의 사연으로 풀어 마음자리를 더듬어나간 박완서의 처녀작 '나목'(1970년 여류 장편소설에 당선하며 등단)은 그렇게 헐벗고 앙상한 첫인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잎이 다 지고 가지만 남은 처연한 나무를 우리는 기억한다. 박수근 화백의 '나무와 여인'에서 보았던 바로 그 이미지다. 1'4후퇴 후의 서울에서, 그 빈 들에서 살아내었던 한 예술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박수근 화백의 모습 속에서 그렇게 옥희도 씨(소설 속 화백)라는 인물은 탄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경아는 누구인가. 전쟁의 참상을 겪었던 작가 자신의 거울(鏡)인가. 혹은 전쟁을 겪은 그 시대의 젊은이를 대표하는 인물인가? 그러나 필자는 상상할 수도 없다. 포탄을 맞아 피 범벅된 붉은 홑청 위에 해체된 형제의 몸. 끈적한 여름의 공포처럼 잔혹한 그 경험 속에서 경아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죽고 싶다. 죽고 싶다. 그렇지만 은행나무는 너무도 곱게 물들었고 하늘은 어쩌면 저렇게 푸르고 이 마당의 공기는 샘물처럼 청량하기만 한 것일까. 살고 싶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죽고 싶다."(p.304) 전쟁과 가족의 죽음이 주는 극한의 충격 속에서 생사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경아의 아슬아슬한 마음을 보라. 보이지 않는가? 아직도 전쟁을 '쉬고 있는' 이 나라는 무엇을 할지 고민할 게 아니라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PX 초상화부에서 일하는 경아와 초상화부에 새로 온 화가 옥희도 씨의 꿈길 같은 짧은 만남은 노오란 은행잎처럼 찬란하지는 못했다. 갓 스무 살의 순수한 경아에게 아내와 다섯 아이를 거느린 옥희도 씨는 행복을 꽃피우기에 버거운 상대였을 테니까. 그들의 동행은 장난감 가게의 인형만큼이나 슬프다. 이렇게 작가는 겨울 속 여름과 노오란 은행나무의 가을로 이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훌쩍 세월을 뛰어넘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경아와 마주한다. 경아는 남편과 함께 옥희도 씨 유작전을 찾아 한 그루의 커다란 나목 앞에 선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중략)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p.376) 필자는 얼마 전 이모의 화실에서 한 그루 커다란 나무를 보았다. 굵다란 나무둥치 위에 막 돋아나듯 잎사귀가 한 잎 한 잎 그려지고 있었다. 박완서가 보았던, 그리고 자신의 필치로 다시 그려낸 나목에는 이제 잎이 돋기 시작한다. 이 시대의 작가는 봄을 확신하고 확신한다. 암울했던 시기에 꿈꾸었던 그 봄을 이제는 두 팔을 펼쳐 맞이하고자 함이다.

2017-09-09 00:05:01

조조 통과: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크게 패한 뒤 달아나다가 관우에게 막혔다. 그러나 관우는 옛날 조조가 자신을 잘 대접해주었던 날들을 기억하고, 조조를 놓아주었다. 오른쪽 말 탄 남자가 조조다.

三國志 영웅호걸, 240장 그림으로 읽다…『원본그림 삼국지』

원본그림 삼국지/김협중 그림/강병국'차정식 편역/진한 엠앤비 펴냄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를 그림 중심으로 다시 쓴 '원본그림 三國志(삼국지)'가 출간됐다. 삼국지연의는 중국 4대 기서(奇書)의 하나로 수백 년 동안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역사소설이다. 나관중이 삼국지를 쓴 이래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다른 버전의 삼국지를 펴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종류의 번역서가 있으며, 역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삼국시대와 당시 인물을 평가한다. 이 책 '원본그림 삼국지'는 중국 채색화의 거장 김협중 화가가 11년에 걸쳐 그린 삼국지의 주요장면 그림에 우리나라 생태학자 강병국 박사, 중국 4대 기서 번역가 차정식 씨가 각 그림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압축해 묶은 것이다. 책에는 총 240장의 그림이 있다. 중국 청(淸)나라 강희제(1654~1722) 때의 문인이자 문학평론가였던 모종강이 나관중 '삼국지연의'를 개작(改作)하면서, 그림으로 삽입했던 120장면에 120장면을 더했다. 화가 김협중은 청나라 강희제의 넷째 아들인 옹정제의 9대손이기도 하다. 책에 실린 모든 그림은 붓과 먹을 사용하고 채색한 것이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 읽지 않은 사람 이 책은 삼국지를 이미 읽어본 사람들에게는 삼국지 전체 이야기를 생생하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할 듯하다. 장판교에서 교란작전을 펼치는 장비와 우왕좌왕하는 조조군의 모습. 여포가 뇌물에 눈이 멀어 자신의 양부 정원을 살해하는 장면,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도 장강(長江)의 대선(大船)에 앉아 시를 짓는 당대 최고의 시인 조조, 조조에게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관우가 조조를 놓아주는 장면, 제갈량이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리는 장면 등 삼국지 속 장면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삼국지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삼국지를 읽어보고 싶도록 만드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그림과 압축된 이야기만으로 삼국지 전체를 머릿속에 그리거나 앞뒤 상황을 짐작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삼국지 전체를 다 읽어보기 어렵다면, 요약본이라도 함께 읽어야 그림을 더 재미있고 실감 나게 이해할 것 같다. 그림과 관련해 배경 이야기를 조금 더 상세하게 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세밀하고 생생한 배경 그림 그림은 매우 세밀하고, 색감 역시 뛰어나다. 한양대 유성호 교수(국문학)는 "고전적 텍스트의 중요한 장면을 아름답고 개성적인 채색화로 재현함으로써 입체적으로 삼국지의 스케일과 디테일을 동시에 경험하게 해준다"며 "삼국지 역사에 또 하나의 도약이자 장관"이라고 평가한다. 중문학자 홍광훈 전 서울여대 교수는 "그림 속의 사람과 말, 칼 등이 마치 살아서 꿈틀대는 듯하고 글과 그림의 절제미가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시조시인이자 수필가인 윤경희 씨는 "살아있는 듯한 터치와 압축적인 장면묘사가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림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중요한 상황과 그 상황과 맞닥뜨린 인물들을 그렸으나 전체적으로 인물의 표정보다는 몸짓과 배경, 자세, 말의 진행 방향 등으로 인물의 심정이나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삼국지 주역들이 사용했던 무기 역자들이 삼국지의 주요 인물들이 사용했던 무기를 부록으로 소개해 흥미를 더한다. 단순히 무기 종류를 나열하지 않고 무기의 특징과 주인이 바뀌게 된 사건 등을 실어 이해를 돕는다. 가령 '청룡언월도'는 관우가 사용했던 칼이다. 관우는 이 칼로 하북의 명장 안량과 문추를 베었다. 청룡 한 마리가 새겨져 있고, 쓰러질 언(偃)에, 달 월(月), 칼 도(刀)라고 쓰는데, '청룡이 그려져 있는, 반달처럼 생긴 칼'이라는 뜻이다. 이 칼은 냉염거(冷艶鋸)라고도 불렸는데, 설원에서 계속되는 싸움으로 붉은 피로 된 얼음 막이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 백벽도(百辟刀)는 조조가 5자루 칼을 만들도록 지시한 후 3년 만에 완성한 칼이다. 조조는 이 칼에 용, 호랑이, 곰, 말, 참새 등을 기호로 새겼다. 이 칼을 만든 의도는 날카로운 무기를 수백 번 정련해 불길한 것을 물리치고, 악인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다소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외에도 조자룡이 썼다는 '애각창', 조조 휘하의 명장 전위가 썼던 무게 80근의 '쌍철극', 여포가 사용한 '방천화극', 남만왕 맹획의 부인 축융부인이 썼던 '비도' 등을 소개한다. 축융부인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아주 드문 여장수로 등에 다섯 개 비도를 꽂고, 손에는 던지는 긴 창을 들고 다녔다. ◆승패를 가른 다양한 계략 삼국지에는 수많은 계략이 등장한다. '이일대로계'(以逸待勞計)는 상대가 피로할 때까지 기다렸다는 치는 계략이다. 상대가 지치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군은 힘을 적게 쓰면서 상대가 많은 힘을 쓰도록 작전을 짰다. 이릉전투에서 병력 면에서는 촉의 유비 군이 오나라 육손 군에 비해 우세했지만, 육손이 '이일대로지계' 전략으로 촉군을 섬멸했다. 이외에도 삼국지에는 전투의 승패를 가른 계략이 많았다. 미끼를 던져 적의 대오를 흔드는 '이적지계', 일부러 져주어 적을 교만하게 한 뒤 격파하는 '교병지계', 상대편의 계책을 미리 알아채고 그것을 역이용하는 '장계취계', 자신의 재능이나 큰 뜻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도회지계' 등. 책은 계략 그 자체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어떤 전투에서, 어떻게 적용됐는지 상세하게 소개한다. 이 역시 역자들이 전문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실은 것이다. 530쪽, 4만5천원.

2017-09-09 00:05:01

[책 CHECK] 신약성경

신약성경 박아청 지음/ 교육과학사 펴냄 구약성경이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교과서라면 신약성경은 세계의 모든 인간들이 가져야 할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교육지침서이다. 그런 면에서 신약성경은 세계 만민의 인간교육을 위한 예수 교육학의 교과서인 셈이다. 이 책은 교육학적 관점에서 구약성경을 분석해 본 그 시점에서 신약성경을 들여다본다. 신약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교육의 목적은 무엇이며, 여기에서 사용되었던 방법은 어떠한 교육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고 그 효과는 어떻게 나타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갈 것인가를 살펴본다. 신약성경이 이루어진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서 주인공 예수의 등장과 그의 교육활동(사역)의 전개, 그리고 그의 사역을 이어받은 제자, 사도들의 행적을 추적했다. 아울러 인간교육학적인 요소를 골고루 지니고 있는 신약성경이 시사하고 있는 어느 인간에게나 적용 가능한 보편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것이 갖는 현대적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저자는 계명대 교육학과, 연세대 대학원 교육학과, 일본 국립오사카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계명대 사범대학 학장'교육대학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계명대 명예교수로 있다. 478쪽, 1만8천원.

2017-09-09 00:05:01

[책 CHECK] 외딴집

외딴집 김숙자 지음/사진 강태길/비따북스 펴냄 '오늘은 맑음, 파란 가을 하늘입니다. 휘몰아치던 비바람이 꿈인 것만 같습니다. 우리네 삶도 이렇지요. 때론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두움의 터널을 지나기도 하고, 맑고 따스한 햇살 아래 행복하다 할 때도 있고…. 자연은 우리에게 삶은 이런 것이다…말해주고 있군요.'-2007년 9월 22일 18시 33분 51초에 쓴 '파랗게 파랗게'란 글 중에서. 이 책은 저자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제주특별자치도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2리에 있는 자신의 집이자 작업 공간 '외딴집'에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일상사를 일기체 형식으로 쓴 글이다. 전업작가로서의 생활을 비롯해 사계절에 대한 소회, 그곳 사람 이야기,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때그때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작가이자 남편인 강태길 씨의 꾸밈없는 사진도 눈길을 끈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저자는 사진작가인 동갑내기 남편 강태길 씨와 2000년부터 제주 외딴집에 둥지를 틀고 자연의 법칙대로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는 외딴집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해 질 무렵 외딴집엔 나지막한 햇살의 노래가 들립니다. 낮 동안의 분주함이 물러가고 빛도 공기도 소리도…모든 것이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368쪽, 1만8천원.

2017-09-09 00:05:01

백석이 사랑한 여인 기생 '진향'…『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승은/ 책이 있는 마을 최근 한 예능 프로에서 시인 백석이 지극히 사랑했지만 말 한마디 못 걸어 보고 친구의 아내가 된 '난'이라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첫눈에 반한 여인을 보고 싶어 경남 통영에 세 차례나 갔었고, 실연의 아픔을 술과 시로 달래던 그가 남긴 시는 통영 충렬사 앞 '백석 시비'로 남아있다. 뚜렷한 이목구비, 긴 목, 큰 키로 뭇 여성을 설레게 하던 당대 최고의 모던보이 백석이 사랑한 여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 불을 지핀 셈이다. 한편 이 여성만큼이나 백석의 여인으로 유명한 이가 바로 길상사가 된 요정 대원각을 법정 스님께 시주한 기생 진향(眞香)이다. 그는 자신이 나타샤라고 주장하는 여러 여성 가운데 가장 유명한 여인으로, 자야(子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소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문학인과 대중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시인 백석과 그가 사랑했다고 알려진 여인 기생 진향의 달달하고 애절하고 비극적인 로맨스 소설이다. 작품은 시인과 사랑을 나누었던 기생 진향의 시각에서 서술됐다. 지은이는 특별한 작품발표 경력이 없는 신진 작가 이승은이다. 저자는 자야의 자전적 에세이 '내 사랑 백석', 안도현의 '백석평전' 등을 참고해 시인과 기생의 사랑을 풀어냈다고 한다. 소설은 이들의 사랑이 끝난 뒤, 만주로 간 백석과 5년간 연락이 끊긴 진향이 대원각을 찾아온 송지영으로부터 두루마기를 돌려받으며 시인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명 진향의 어린 시절 집에서 부르던 이름은 하늬, 본명은 김영한이다. 1916년 서울 관철동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잃고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 속아 알거지 신세로 기생이 된다. 기명 진향은 그의 스승 금하 하규일 선생이 붙여준 이름이다. '자야'라는 아호(雅號)는 훗날 백석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또 생전 김영한 여사는 자신이 나타샤라고 주장했으니,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나타샤=진향=자야'라는 공식을 기억해야 한다. 소설 속 진향은 기생이 되기 전, 하늬일 때 그의 집에서 소년 백기행을 만난다. 이때 기행이 집에 두고 간 '테스' 책은 두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신여성인 진향의 꿈을 대변하는 장치다. 가난 때문에 결혼한 남편이 초야도 치르지 않고 우물에 빠져 생을 마감하면서 과부(寡婦)가 된 영한은 조선권번(券番)으로 간다. 이후 금하 선생으로부터 국악의 바탕을 전수받아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리고 예기로 인정받는다. 소년과의 만남이 기억으로 남을 무렵, 재능을 높이 여긴 해관 신윤국의 도움으로 그는 1935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하지만 그해 해관이 홍원형무소(함흥)에 투옥됐다는 소식을 듣고 유학을 포기하고 함흥으로 나선다. 이곳에서 국수를 먹으러 온 백석을 우연히 또 보게 된다. 한편 진향은 면회가 금지된 해관을 만나게 해 줄 '높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권번에 다시 찾아간다. 이곳에서 이들의 세 번째 만남이 이뤄진다. 극적 재회는 운명적 만남을 강조한다. 실제 이들의 첫 만남은 영한이 기생이 된 뒤인 1936년이다. 당시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있던 백석이 동료교사 송별회를 하러 함흥관에 갔을 때다. "오늘부터 진향 당신이 내 몸을 맡아주오." 성급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로 파격적으로 시작된 이들의 연애는 3년간 이어진다. 백석이 만주로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지만 백석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다. 결국 자야는 자신을 두고 두 번의 결혼식을 올린 백석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운명으로 여기고 청진동으로 이사한다. 다시 자야를 찾아온 백석은 청진동 집에 함께 살며 살림을 차린다. 백석은 만주에 함께 가자고 하지만 자야는 류춘기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며 끝내 그를 혼자 떠나보낸다. 1939년, 이렇게 이들의 3년은 끝이 난다. 북방의 작은 방에서 시인과 기생이 나누던 애틋한 추억과 사랑싸움, 고난과 반대에도 백석이 자야를 택하고 다시 서울로 간 이야기, 청진동 집에서 키운 사랑 등은 소설이기에 가능한 문학적 재구(再構)다. 이 연인의 뜨거운 사랑은 대범하고 낯뜨겁기까지 하다. 대담한 사랑과 동거생활에 대한 묘사는 사랑한 연인이었지만 헤어져야 했던 두 남녀, 특히 자야의 슬픔과 기다림은 더욱 극대화했다. 이 밖에 책은 실존 인물, 지명, 역사적 사건, 작품 등을 언급해 이야기를 더욱 촘촘하게 만든다. 책 마지막 부분 소개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백석의 작품 가운데 마지막으로 발표된 시다. 독립 이후 그는 북한으로 가 두 번 결혼하고 1996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월북시인이 아니라 평안도 정주가 고향인, 분단 전에 북한에 머무르고 있었던 재북시인이다. 1987년 해금으로 그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높아질 무렵 자야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진향은 그가 자전 에세이를 펴내면서 '백석이 사랑한 여인'으로 주목받았다. 광복 이후 각계 인사들과 교분을 쌓고 영향력을 펼쳐오던 그는 대원각이라는 요정의 주인이 된다. 대원각의 원래 주인에게 대원각을 돌려주겠다고 했던 진향은 별안간 '무소유'에 감동해 1987년 갑자기 법정 스님에게 희사한다. 길상사와 대원각이 애틋한 사랑의 표상처럼 인식된 것도 이때부터다. 기생 진향은 '길상화'라는 법명을 얻었고, 길상사에는 길상화 공덕비와 사당이 자리 잡았다. 백석 평전을 쓰고 자야 여사와 한동안 왕래했던 영남대 이동순 교수는 추천글에서 "기생과 시인, 승려를 엮으려는 세간의 시도는 비속하고 무리한 엮어내기"라며 "백석이 알았다면 착잡하고 만감이 교차하며 거기서 이름을 빼라고 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는 콘서트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번에는 소설이다. 사실 관계를 떠나, 백석 시인,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이때, 문학적 상상으로 백석을 다시 만나보는 건 어떨까. 416쪽, 1만5천원.

2017-09-09 00:05:01

[반갑다 새책] 동해안 민속을 기록하다

포항지역의 민속학자이자 전 청하중 교장인 박창원(60) 씨가 30년 동안 동해안 지역의 민속을 조사해 정리한 '동해안 민속을 기록하다'라는 역사'민속 책을 출간했다. 저자가 민속학에 입문한 것은 국어교사였던 1990년대 중반. 대학원에서 민요 연구로 논문을 쓰면서부터다. 이후 근 20년 동안 한국민속학보를 비롯한 학회지에 민요, 설화, 민속놀이, 민간신앙, 풍수설화에 관한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해왔고 올 8월 교장 퇴임을 기념해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저자는 교직생활 틈틈이 지역을 답사하면서 조사한 포항지역의 세시풍속과 민속놀이를 집대성했다. 동해안 지역 민속을 풍속, 민속놀이, 공동체신앙, 기우제, 별신굿, 풍수, 신화, 전설 등 8가지 영역에서 접근하고 있다. 지역민들의 정서 속에 녹아 있는 민간신앙의 원리와 거기에 담긴 지역민의 의식세계를 섬세한 필치로 들여다보고, 신화와 전설 속에 투영된 상징과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별신굿의 유래와 각종 풍속, 연오랑과 세오녀, 쌀바위 전설 등 신화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327쪽, 2만9천원.

2017-09-09 0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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