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er Script 문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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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수필 부문 당선작]낮달

낮달 낮달이 떠 있다. 간밤을 온통 환하게 비추던 달이다. 무슨 미련이 남아서인지, 아직도 저리 하얗게 떠 있다. 지워지지도 않는다. 태양이 점점 달아오르며 눈치를 주어도 미적거린다. 다 큰 자식들을 언제까지 품으려 했던 내 어머니 같다."내사 마 자식 손톱 밑에 흙 들어가게 하지는 않을란다."어느 날 밤, 어머니는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혼자 말했다. 마치 당신 자신으로부터 다짐이라도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자식들의 앞길을 눈부시게 비추는 보름달이 되었다. 포도송이처럼 올망졸망 매달린 어린 자식들은 그저 어머니의 입만 바라보았다.새록새록 숨 쉬던 자식들이 어느덧 커서 학비를 받으러 꼬박꼬박 집에 들렀다. 어머니는 동네의 이집 저집에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왔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처럼, 자식들은 어머니가 얻어온 빚을 야무지게 받아갔다. 그러나 누구도 어머니가 얻어온 빚의 자초지종을 묻지 않았다.해마다 가을이면 어머니는 수확한 곡식을 팔아 빌려온 동네 빚을 갚았다. 다 갚지 못해 어떤 빚은 해를 넘겨야 했다. 그 위에 새로운 빚이 늘어갔다. 다른 빚을 얻어 묵은 빚을 갚기도 했다. 어머니의 수확은 남의 빚 가리는데 다 들어가 버렸다.굵직한 글자로 된 농협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다. 어머니만 알 수 있는 상형문자로 그 달력에 얻어온 빚을 표시했다. 연필로 쓰인 상형문자는 길고 짧은 막대와 그 위에 다시 사선을 긋는 형태였다. 그래도 그 회계가 한 번도 틀린 적은 없었다.보리타작하던 날에 빚을 얻었다면, 그 날자에 막대 표시와 함깨 우스꽝스러운 도리깨 모양을 그려 넣었다. 모내기를 한 날에는 못단을, 어느 집에 잔치가 있었다면 치알을 함깨 그려 기억하기 수월하게 했다. 막대기와 그림이 어울려 마치 원시인들의 암각화를 보는 듯 했다.해가 바뀌면 새 농협 달력에는 지난해의 빚을 갚을 날에 똑같은 암각화가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새 달력이 연필 칠로 온통 새카맣게 되었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빚 장부가 된 새까만 달력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으나, 가슴은 내려앉았다. 까맣게 된 달력은 고단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날개가 돋아난 자식들이 하나씩 사방으로 날아갔다. 돈 많이 벌어 다시 오마고 하던 뒷말을 한결같이 남겼다. 그러나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소식은 언제나 흐릿하게 들려왔다. 어머니의 마음은 간절함으로 타들어 갔지만, 가뭄의 여우비처럼 설핏 다녀가기만 하는 자식들이었다. 어머니의 강단진 구심력은 오래된 거미줄처럼 느슨해지고 말았다.내 걱정 마라며 손사래를 치는 팔순의 어머니는 시골집을 홀로 지켰다. 평생을 풀어내어 다지고 여민 집이라 구석구석에 애환이 서렸다. 여기서 자식들을 키웠는데 다시 어디를 간단 말고. 지난 일을 돋보기 너머로 내다보면서, 어머니는 자식들의 염려에서 스스로 멀어졌다.고향 집에 들렀다. 동네에 빚 얻으러 갈 일이 더는 없을 텐데, 댓돌 위에는 익숙한 털신이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없으면 책 보따리 내던지며 찾아 나섰다. 세월이 흘러도 버릇은 남는지, 나도 몰래 사립문 밖으로 나서는 것이었다.그날 밤이었다. 뒷간을 다녀오는데, 마당에는 달빛이 내려와 온통 떡을 치고 있었다. 그 적막의 한가운데에 백발의 어머니가 말뚝처럼 서 있었다. 그사이를 못 참고 마중 나왔다. 자식들을 언제까지 품을 작정일까. 마지막 남은 한 가닥 기력마저 자식들에게 내어주고 있었다.어머니의 품은 낡았다. 쭈그러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젖무덤은 수세미처럼 축 늘어져 냉기가 돌았다. 손등에는 험난했던 가족사가 하얀 금으로 새겨졌다. 등골이 빠진 어머니의 몸은 매미 허물 같았다. 버석거리는 몸이 바람처럼 일렁거렸다.시골집에 단단하게 들어앉은 어머니는 앉아서 천 리를 내다보는지 요지부동이었다. 여전히 자식들의 앞을 비추는 보름달이 되고 싶었지만, 달도 차면 기운다. 영원한 보름달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무슨 달인들 어떤가. 자식들을 지켜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저 달이 그달일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낮달이 떠 있다. 어머니의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어느 자식에게 무슨 근심이라도 생겼는지 빌딩 끝에 걸린 채 오도 가지도 않는다. 저렇게 감싸고 도는 마음을 어느 천년에 내려놓을까. 버선발로 달려올 것만 같아 차마 눈을 주지 못하겠다.고향의 밤하늘에는 어머니 안 계시는데도 보름달이 뜨는가. 사립문 마당에는 아직도 달빛이 퍼부을까. 내려진 사랑은 누가 담아가는지. 낮달을 보는데, 마음은 어느새 달빛 비치는 시골집에 가 있다.

2018-11-05 13:29:13

삼한씨원 40년 사사(SAMHAN C1 40YEARS HISTORY)

"가자! 100년 기업도약"…삼한씨원 40년(1978~2018) 사사(社史) 발간

친환경 황토벽돌을 생산 국내외 최고의 기업인 (주)삼한 씨원(회장 한삼화)이 지난 40년의 기업 역사를 집대성한 삼한씨원 40년 사사(SAMHAN C1 40YEARS HISTORY)를 발간했다.1978년 10월 (주)삼한상사로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40년 동안 삼한이 걸어온 '흙으로 빚어 온 친환경 벽돌 40년' 역사를 다양한 사료와 사진자료를 편년체로 정리했다.첫머리에는 주거환경에서 갈수록 각광받는 황토벽돌의 장점과 생산공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또 삼한이 걸어 온 40년의 역사를 사진으로 정리해, 국내외 최고의 친환경 벽돌생산 기업으로 성장해 온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삼한 씨원은 대구에 본사, 경북 예천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총 181,818㎡(55,000평) 부지에는 450여 억원을 투자해 흙 100%의 황토벽돌(건축용)과 황토보도벽돌(바닥용)을 생산하고 있다.1990년 예천공장을 설립하면서 이탈리아의 모란도(Morando)사 설비를, 2003년 제2공장을 증설하면서 독일의 링글(Lingl)사 설비를 도입하는 등 제조공정을 첨단화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시켜 왔다.1997년 ISO 9001 인증 획득 후 품질보증 Q마크, KS, GD, 이노비즈, K마크 등을 인증받았다. 2011년에는 국내 최초 조달청 '자가 품질 보증업체 1호'로 선정되기도 했다.경북 고령 출신인 한 회장은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상'(1997년), 중소기업청 선정 '제1호 신지식인'(2000년), '산업포장'(2004년), '국민훈장 동백장'(2009년)에 이어 '국토교통부장관 표창'(2014년) 등 을 수상했다.창립 40주년을 맞은 삼한 씨원은 대표이사에 한승윤 사장이 취임하며 2세 경영시대를 열고 100년 기업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발행인 한삼화, 303쪽 비매품.

2018-11-01 13:39:5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두 개의 삼베 이불

두 개의 삼베 이불 정순연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고향에 있는 마을회관을 찾았다. 할머니들과 같이 정담을 나누다가 지난 날 길쌈 하던 이야기가 나왔다.내가 결혼을 할 때 어머니는 삼베 이불 두 개를 주면서 한 개는 '니 올케 몰래 준다' 고 하던 말이 생각이 났다. 그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 질녀도 같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사실대로 말을 했다. 그러자 질녀가 '엄마도 삼베 이불 한 개는 할머니 모르게 준다' 면서 하나 더 주더라고 했다. 결혼 35년 만에 처음 말한다고 해서 회관의 방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두 분은 오래 전에 우리들 곁을 떠나갔는데 이제야 비밀이 들어났다. 서로의 노력으로 만든 이불을 각자의 딸에게 더 챙긴 것이었다. 어머니들의 진정한 마음과 끈끈한 자식사랑을 느끼게 했다. 동네 할머니들이 저승에 일러주러 가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길쌈을 할 때는 고부가 같이 일을 했다. 나는 어머니가 나에게만 더 준줄 알았지 큰 올케가 어머니 모르게 질녀에게 줬다는 것은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질녀는 나보다 십 여 년이나 늦게 결혼을 했다. 그때까지 잘 보관 했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챙긴 이불을 주지 않았다면 힘들게 짠 삼베를 판돈은 받아써서 간곳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흔적을 남겼으니 잘 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질녀는 여름이 되면 할머니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삼베 이불을 침대에 깔고 덮는다고 말했다.한 번은 작은 올케가 올케의 친정에서는 길쌈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을 할 때 삼베 이불을 가져오지 못해서 어머니께 하나 달라고 하니 줄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 했다. 몇 번이나 말을 하니 제일 질이 나쁜 것을 하나 주더라고 하면서 섭섭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아마 이불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시집가는 딸은 두 개나 주면서 아들이 덮을 이불인데 하나 챙겨 주지 않은 것은 오랫동안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삼베 이불을 만들기까지는 많은 손길이 간다. 봄이 되면 논에 삼씨를 뿌려서 사람 키만큼 자라면 삼대를 베어와 쪄서 삼 껍질을 벗겨 가늘게 짼다. 삼을 길게 잇고 양잿물에 담구어서 하얗게 바랜 후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베틀에서 베를 짜면 드디어 완성이 된다.집에 도착하자마자 장롱 서랍에 깊이 넣어둔 삼베 이불을 꺼냈다. 흘러가는 시간의 두께 만큼 누르스름하게 빛바랜 이불은 사십 여 년 동안 어두컴컴한 곳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이제야 밝은 세상으로 나왔다. 내가 결혼할 때 어머니가 해준 물건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혼수품이다. 40여년의 세월을 건너 어머니의 숨결이 그려지듯 그때의 그 얼굴이 그대로 겹쳐졌다. 어머니의 삶의 흔적이며 또한 아련한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기도 하다.돌이켜보니 삼베 이불은 용도가 다양하다. 내가 자랄 때 우리 집은 동향이었다. 더운 여름에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따가운 햇볕은 방안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침에 식구들이 모여서 마루에서 식사를 하려고 하면 햇살 때문에 불편했다.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면 생각다 못한 어머니는 높은 곳에 못을 쳐서 삼베이불을 걸어서 햇빛 가리개로 사용을 했다. 그러면 우리는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밤에는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와 함께 하늘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과 희미한 은하수를 쳐다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모기들이 앵앵거리며 살갗을 파고들었다. 그때 삼베 이불을 턱 아래까지 덮으면 모기는 가까이 오지 못했다.삼베 이불은 가을에 참깨나 들깨를 수확 할 때나 씻어서 말릴 때도 사용을 했다. 요즈음이야 비닐이나 부직포 같은 것을 사용을 한다. 그러나 그때에는 말릴 도구가 마땅하지 않아서 거기에 말릴 수밖에 없었다.나는 해마다 여름에는 빨래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화학섬유나 면으로 된 이불만 덮었다. 삼베로 만든 이불은 손질하기 귀찮아서 꺼내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보통이불은 세탁기에 넣어서 돌려서 말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삼베 이불은 삶아 씻어서 밀가루 풀을 끓여 잘 스며들도록 주물러야 한다. 햇볕에 널어서 꾸덕꾸덕하게 마르면 양쪽으로 잡아 당겨 곱게 접어서 발로 꾹꾹 밟거나 다듬잇돌에 방망이로 두들겨서 다시 말려야 된다. 그렇게 하면 삼베 이불의 구겨진 주름들은 곱게 펴진다. 그만큼 번거롭고 손질하기 힘이 든다.몸에 닿으면 달라붙지도 않고 통풍도 잘 되고 시원하다. 까실까실하고 촉감도 참 좋다. 올해같이 찌는 듯한 더위에는 삼베이불의 기능에 감탄했다. 진작 꺼내서 덮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오늘따라 이 세상과 멀어져 간 그분들이 더 생각이 난다. 어머니와 올케가 한 올 한 올을 엮어서 어렵게 길쌈을 하던 모습을 떠 올리면서 삼베 이불을 덮는다. 두 분의 체취가 스며있고 정성이 가득담긴 시원한 이불을.

2018-10-29 11:34:38

인간의 본능

인간의 본능/ 케네스 밀러 지음, 김성훈 옮김/ 더난출판 펴냄

"인간은 그저 행운과 우연이 낳은 운 좋은 생존자에 불과한가?"진화론이 불편한 사람과 진화론이 궁금한 사람은 이를 설명하는 최상의 해설서인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미국과학진흥회의 과학대중참여상, 진화연구학회의 스티븐 제이 굴드 상에 빛나는 지은이가 오래된 진화론 vs 창조론 공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았다.지은이는 "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깊어질수록 세상은 더욱 경이롭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는 진화론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기지 않고, 그들의 불안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이해하려 노력한다. 더불어 진화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유구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류가 차지한 위치가 얼마나 숭고한지 깨닫게 된다고 역설한다.진화론에 대한 거부감은 인간의 우월한 자유의지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예술, 윤리, 사회, 의식 등 인간 본성이 단순히 진화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진화심리학의 주장은 일부 사람들에게 정서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진화의 법칙 속에는 우주에서 인간의 자리를 특별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아무리 봐도 없지만, 지은이는 이 사실이 결코 인간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이는 과학과 종교가 우주와 그 안에 인간의 자리를 이해한다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함께 갈 수 있다는 지은이의 신념과도 이어진다. 사실 이 책의 지은이 케네스 밀러는 생물학 교수인 동시에 가톨릭 신자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는 진화의 역사를 바탕으로 그 속에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자유의지'라는 인문학적 가치를 절묘하게 조화시키고 있다.이 책은 과학도서임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적 언급이 풍부하다. 과거와 현대의 문학작품, 철학고전, 과학 관련 명저 등을 고루 언급하면서 박학다식함과 치우침 없는 지은이의 폭넓은 교양이 돋보인다.제1장 '숭고한 비전'에서는 인간의 자리를 정의해주던 이야기를 잃은 현대인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이야기하며, 다윈의 '종의 기원'이 갖는 특별함을 언급한다. 지은이는 다윈 역시 각각의 생명체가 고유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선형적으로 진화해왔다는 사실에 일종의 숭고함을 부여한다고 해석했다.이 책의 주제와도 맥락을 같이하는 진화론에 대한 반감은 의외로 진화론 자체의 합리성과는 관련이 없는 편이다. 오히려 다윈이 염려한 대로, 그 반감은 인간 존재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에 대한 불편한 감정에 가까운 것이다. 예를 들면, 1925년 7월 21일 미국 테네시주에 있었던 소위 '원숭이 재판'은 지식과 합리성을 갖춘 진화론과 무지하고 미신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의 충돌로 묘사되곤 한다. 당시 과학교사 존 스콥스는 진화론 교육을 금지한 테네시주 법률을 어기고,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인간을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가르칠 수 없다'는 내용의 버틀러법이 정말 막고 싶었던 것 역시 인간이 다른 온갖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생물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었다.지은이의 마무리 멘트. "진화론은 아담의 죽음이 아니라 아담의 승리를 말해주고 있다. 진화론을 통해 우주에서 우리 인간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416쪽, 1만8천원.

2018-10-25 15:23:07

의병과 풍각쟁이/한은희 글'최유정 그림/학이사어린이 펴냄

동화창작에 정진해 온 지은이가 쓴 장편역사동화이다. 스토리의 무대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전인 1900년에서 1910년 사이로 대구 중구가 배경이다.이 책에서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돼 사람들 사이에 '빼스뽈'이라고 불리며 선풍적 인기를 끈 '야구'에 관한 이야기부터 역시 최초로 대구 달성군 화원읍의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들여와 '귀신통'이라 불리면서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을 느끼게 했던 '피아노' 이야기까지 낯설고 신기한 이야깃거리로 담겨 있다.사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교육만으로는 일제의 만행, 그 시대의 아픔을 깊이 알기 어렵다. 이 동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깊이 있게 알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봄직 하다.지은이는 대구문학상, 경북스토리콘텐츠공모전 수상과 함께 대구문화재단 개인예술가 창작지원도 받았으며 동화책 '아기 혼령 려려' '학교를 폭파하라' '명성황후 그 분을 찾아서' 등이 있다. 160쪽, 1만1천원

2018-10-23 16:27:28

사라진 얼굴/하재청 지음/시와에세이 펴냄

야간 자율학습 시간/그 녀석의 책상을 걷어찼다/아무것도 아닌 줄 알고 한 번 걷어찼을 뿐인데/(중략)/텅 빈 그림자에 피가 얼룩진다/책상에 엎드려 매일 자는 줄 알았는데/(중략)/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교실 형광등도/진저리를 치고 있다'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2004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한 시인 하재청의 첫 번째 시집이다. 그의 첫 시집을 펼치면 마주하는 것은 학교라는 무대와 학생이라는 배우들이다. 교단 30년을 정리하고 묶은 시집은 시인이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문이자 우리 교육현실에 대한 직시이다.교사로서 시인은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의 충격으로 안이한 시간을 살아온 자신과 교실, 학생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지은이는 이 시집에서 경쟁과 성적 제일주의, 학벌주의로 일관하는 오늘의 교실에 대한 안쓰러움, 분노 그리고 이에 대한 자학과 연민 등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다. 교사로서 정직성이 시적 언어로 전화돼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준다. 시인은 올해 퇴직 후 고향에서 글을 쓰고 있다. 120쪽, 1만원

2018-10-23 13:24:26

풍선/최경화 지음/문예미학사 펴냄

고단했던 삶 앞에 끝까지 등을 보이지 않으셨던 부모님께 첫 시집 출간의 기쁨을 바친다는 지은이는 마음이 읽은 윤동주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란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았다.'첫 소변은/어제의 나를 성립시킨 모든 것/소변의 농도 빛깔 냄새는/(중략)/꿈은 자기 방식대로 정리한다/꿈의 문법에 서투른 나는/좌변기의 손잡이를 내려버리고/축축한 몸을 또 다른 사막 가운데 옮긴다'지은이는 그동안 소설과 시나리오를 써왔으나 이번에 첫 시집을 펴냈다. 4부 60여편으로 구성된 시집에서 지은이는 현재의 삶을 뛰어넘어 새로운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며 현재의 가난한 삶을 극복하고 존재의 근원에 대한 위안을 통해 새로운 유토피아적 삶을 시를 통해 희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모든 시가 메시지가 좋고 언어구사도 유려해 감동을 준다.119쪽, 1만원

2018-10-23 13:23:59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씨름 혹은 싸움-정경용

딸을 툭! 툭! 건드렸다. "하지마!" 귀찮아 하던 딸이 곧 일어나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엎어놓고 팔을 비틀고 다리를 꺾고 어깨와 등을 흠씬 패고 나서 씩씩거리며 보일듯 말 듯한 웃음을 보였다. 한바탕 장난질이 끝나고 나서 나는 딸을 꼭 껴안았다.미용실을 경영하는 바쁜 시간 속에서 초등학교 4학년의 아들과 새로 입학한 딸의 표정에 나는 민감하게 대처를 하였다.밖에서 싸움을 한 날이나 고민이 있어 보이는 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장만하였다. 저녁상을 차리는 동안 햄이나 계란말이 또는 고기 반찬을 지지고 볶았다. 굳었던 표정이 밝아졌다. 밥을 먹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물어보면 줄줄 풀어 놓았다.오늘은 딸이 지능이 모자라는 저능아 짝꿍에 대하여 하소연을 늘어 놓았다."짝꿍이 화장실을 갈적마다 같이 갔어요. 이쪽인데 자꾸 저쪽으로 갔어요. 왜 그렇게 고집이 센지, 말도 못 알아듣는 것인지, 그래도 다른 때는 손잡고 가면 잘 따라왔는데 오늘은 그만 옷에다 똥을 쌌어요"딸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딸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짝꿍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짝을 바꾸고 싶다고 하였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말해보겠다고 하면서 볼에다 뽀뽀를 해주었다. 짝꿍을 보살피려면 참 힘들겠지만 나보다 약한 친구를 도와주는 것은 공부보다 더 중요하다고 위로해주었다.미용실 손님에 치이고 살림에 부대끼다보니 몸이 많이 지쳤다. 사지가 쑤시고 붓고 저렸다. 만만한 게 딸이었다. 초등하교 입학하기 전에는 허리나 등을 밟아 달라고 부탁하면 잘 해주었다. 딸은 점점 싫증과 부담을 느꼈고, 어느새 훌쩍 자라서 밟히는 나도 아팠다. 딸에게 밟히는 시원한 통증을 잊은 지 오래되었다.딸과 장난을 치다가 딸의 주먹질이 시원했다. 그 후 시원함을 느끼는 쾌감도 있었지만 바쁜 틈새의 오붓한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는 자주 장난을 하였다.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아들과 딸의 숙제를 들여다보고 나서 점포에 딸린 단칸방에 잠자리를 펴는데 딸이 갑자기 달려들어 나를 쓰러트렸다. 허우적거리는 동선을 그리며 이불 위에다 몸을 눕혔다. 나를 엎어놓고 등에 올라탔다. 팔을 뒤로 꺾어서 등에다 붙이고 자근자근 주물렀다. 주먹으로 어깨를 퉁퉁 치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다리를 꺾고 양 다리를 엑스 자로 어긋맞춰 지긋이 눌렀다."엄마! 시원해? 내가 엄마 안마해주려고 목욕관리사 아줌마가 손님에게 하는 것 찬찬히 봤어요. 엄마가 아프면 나에게 장난거는 것 다 알아요"딸이 엎드려 내 귀에 속삭였다. 속내를 들키고 말았다. 울도 담도 없는 난달 가게에서 제대로 거두지도 못하였다. 손님에게 매달려 매일 방치하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돌며 동네 아이들을 때리고 툭하면 저보다 큰 애들하고 싸움을 하는 통에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어느날은 맞고 들어와서 훌쩍거렸다."울긴 왜 울고 다녀? 억울하면 때린 애 집에 가서 울어야지 가서 더 맞던지, 사과를 받던지, 네 선에서 해결하라구. 생각 좀 해봐 손님네 애들하고 싸움이나 하고 어떻게 장사를 하겠어"그렇게 막무가내인 줄만 알았는데 엄마를 읽을 줄 았았다.

2018-10-22 11:17:38

징검다리/박영미 지음/문예미학사 펴냄

대구에서 활동하는 박영미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징검다리'를 펴냈다.대구경북작가회와 삶과 문학 회원으로 활동하며 의성군에서 자두랑 복숭아 농장을 경영하는 지은이는 이번 시집에서 가족, 종교 등 주변 일상들을 아름답고 따뜻한 시어로 풀어내면서 인생의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남편의 얼굴이 어둡다/지난겨울, 혹한과 잦은 눈으로/자두나무 복숭아나무 42그루가/얼어죽어 버렸다/(중략)/올해는 살아남은 나무 둥치에, 도회의 가로수처럼/짚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주는/호강(?)을 시켜야 하겠다'시를 통해 내뱉는 시인의 목소리에 가성은 없다. 생명노동과 기도로 삶을 평화로 가득 채우고자 하는 구도의 길 위에 그의 시는 소박하면서도 새벽이슬 머금은 풀꽃처럼 빛난다.시인은 경북 청도 출신으로 청구중 교사와 매일신문 기자 등을 지냈으며 2007년 '사람의문학'으로 등단했다. 110쪽 9천원

2018-10-18 15:12:04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서혜정 지음/소소담담 펴냄

2012년 장애인 문학상 공모 우수상과 올해 전국 장애인 글쓰기 공모 은상을 받은 지은이가 180여 편의 짧은 글을 수록한 에세이집이다.경력에서 알 수 있듯 지은이는 사고로 다쳐 어릴 때부터 장애인으로 생활했고 독서와 글쓰기는 자신을 지키고 세우는 유일한 길이었다. 육체적 고통에 따른 정신적 충격과 고뇌를 글로 풀어냈던 것이다. 처음엔 숨은 사연과 속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긴 수필을 창작했었는데 결국 긴 글은 자신을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짧은 아포리즘 에세이로 글쓰기를 전환한 작품집이다.책의 특징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 순간과 세련된 아포리즘이 돋보이고 살에 대한 긍정과 자기애를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장애인이지만 사업체를 운영하며 생활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삶의 소중함과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짧은 글 속에서 큰 웅변으로 다가온다. 248쪽, 1만4천원

2018-10-17 10:12:04

세상을 뒤흔든 전투의 역사/유필하 지음/들녘 펴냄

이 책은 고대 카이로네이아 전투부터 제2차 세계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 역사상 기념비적 전투 25장면을 뽑았다. 전투의 원인, 시대적 배경, 전투의 양상, 그리고 그 영향도 정리해 역사적 흐름을 연결해 연대기처럼 서술했다. 특히 고증을 위해 50여컷의 진형도를 첨부해 이해도를 높였다.출판사 자료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21장~25장에서는 기존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동부전선에 집중해 독일과 소련 사이 전쟁의 진상을 파헤친 점 또한 이 책의 큰 특징이다.무엇보다 독서의 재미를 더하는 것은 인물에 대한 묘사로 일개 병졸이나 스파이, 상인과 문지기 등 역사에서 외면했던 인물을 되살려 그 캐릭터를 그려내고 그들의 역사적 의미를 새로이 조명하고 있는 점이다.객관적 사실과 함께 지은이의 주관이 어우러져 책 읽는데 몰입하게 만드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648쪽, 2만2천원

2018-10-17 10:11:34

부키야 놀자 북 페스티벌 행사 사진. 새마을문고 대구광역시북구지부 제공

아이들과 함께하는 '2018 부키야 놀자 북 페스티벌'

아이들과 함께하는 '2018 부키야 놀자 북 페스티벌'이 다음 달 3일 대구 북구 함지공원일대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열린다.이번 행사는 새마을문고 대구광역시북구지부(회장 이승로 수성고량주 대표)가 주최한다. 책읽기의 소중함과 독서 생활 습관정착, 북구 상징 부키를 이용한 그림 그리기를 통해 지역사랑을 고양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문화 행사로 건강한 공동체 만들기에 이바지한다.생명·평화·공경 그림 그리기 대회, 대구전통 활쏘기대회, 초중고 댄스 경연대회가 마련된다. 주최 측은 "작년에 이어 올해는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경연대회와 참여마당을 다채롭게 준비한다"고 설명했다.참여마당에서는 ▷전통예절교실 ▷수준별 책읽기 지도 ▷청소년 진로상담 ▷오피니언리더 도서교환전 ▷시 낭송 체험▷국채보상운동 나라 사랑▷가상현실과학교실▷구암고분해설등 교육적인 부대 행사가 펼쳐진다. 특히 네일아트, 페이스 페인팅, 쥬얼리 체험 등 생활예술체험 아트마켓에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다.이번 행사는 지역의 단체들이 참여해 의미를 더한다. 서부교육지원청과 대구 북구청의 후원 아래 행복북구문화재단, 칠곡향교, 북구청소년회관이 힘을 보탠다. 특히 칠곡향교의 전통예절 교육은 학생들이 한복으로 곱게 갈아입고 손님맞이 예절, 인사하는 법, 차 따르는 법 등을 체험하는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북구 보건소의 아동건강 바로 알기, 어르신 기억 솔솔 바람개비 만들기 참여와 건강 걷기 행사도 병행하여 지역 주민들의 참여도를 높인다.작년 행사 보다 행사 규모가 커졌고, 초·중·고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더 다양해졌다. 사전 신청자에 한해 도시락과 기념품이 무상으로 제공되고 경품 행사도 푸짐하다. 접수는 새마을문고 대구광역시북구지부(053-383-3787).

2018-10-16 14:28:25

[시니어 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소감]달빛상념

창밖은 초록세상이다. 다가오지 않을 것 같은 초하(初夏)가 막 눈앞에 어른거리며 잡히기 시작했다.지금껏 내 글쓰기는 감성이 아닌 팩트(事實)속에 갇혀 있었다. 팩트란 주관성과 감수성 쪽이라기보다는 객관성과 논리성의 편이 아니던가. 팩트의 우산 속에서 밖을 쳐다보지도 쳐다봐서도 안 되는 줄 알고 살아온 것 같다. 팩트 밖은 늘 불안하고 위험한 곳으로 여겨왔다. 마치 나의 작은 우주요 나의 따뜻한 안식처로 여기며 오래 그곳에 머물렀다.학창시절에는 가끔씩 팩트를 넘어서고 싶은 생각들이 나를 꼬드기며 부추긴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수절하는 심정으로 허벅지를 찔렸던 기억이 오롯이 떠오른다. 문학적 DNA를 찾지 않고 걷어찬 셈이다. 그땐 그랬다.간만에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팩트 밖의 새로운 세상을 봤기 때문이다. 밝고 찬란하다. 좁고 얇은 속박의 틀을 벗어나니 새로운 신세계가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온 몸으로 느껴진다.이젠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싱그러운 세상, 내 가슴으로 느껴지는 상큼한 세상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누구의 것을 흉내 내고 싶지 않다. 내 느낌과 감성을 그저 글로 토해내고 싶다.어쭙잖은 글을 예쁜 시선으로 봐준 '매일신문'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인생 2모작에 빛나는 디딤돌이 되어주었으니 말이다.「수필과 지성 」글벗들이 생각난다.새롭게 펼쳐지는 이 길이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절감한다. 전도양양하게 걸어갈 것이다. 새로운 길을 내고 닦는 심정으로 말이다.하안거(夏安倨)로 축 쳐진 어깨에 새로운 서광이 비춰짐이 느껴진다. 내 글쓰기도 창밖의 신록처럼 푸르름이 가득 돋아나길 떨리는 가슴으로 기원해본다.

2018-10-15 11:27:20

일러스트 전숙경 (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달빛상념

달빛 상념/장기성 한가위에 고향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리움일까 설렘일까. 아무래도 달빛에 대한 환상이 폐부 깊숙이 각인 된 탓일 게다.초저녁이 되면 앞산자락에 둥근 달이 나무가지에 걸린다. 한낮에 대지를 뜨겁게 달구었던 햇빛은 온데간데없다. 간간히 길섶과 논두렁에 몸을 숨긴 희뿌연 열기의 흔적만이 햇빛이 다녀갔음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줄 뿐이다.무심한 세월이 흐른 탓일까. 고향엔 길동무가 되어줄 도반(道伴)이 없어진지 오래다. 혼자서 희다 못해 푸르스름한 달빛을 쫒아 바람도 쐴 겸 호젓한 오솔길로 나서본다. 어슴푸레 달빛 속에서 눈대중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이곳이 그곳이고 그곳이 이곳이다.길섶의 벤치 위에 턱을 괴고 앉으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수많은 상념들이 머릿속 언저리를 맴돌며 지금의 나를 잊게 만들고, 잡다한 상념들이 이 틈새를 놓칠세라 먼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우리 동네는 산비탈에 위치해있어, 달빛이 창문을 통해 몰래 들어와 방안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달빛이 너무 해맑고 투명하여 차마 잠자리에 들기가 아쉬울 지경이었다. 이런 밤이면 나는 뒷마당 뜰에 물끄러미 서서 물처럼 출렁이는 달빛 풍경을 탐닉했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서로 사모하듯이, 나뭇잎들 속으로 달빛이 깊게 스며들었다.나무 그림자가 달빛을 받아 들쭉날쭉 땅위에 수묵화를 그려낸다. 그리움이 이 순간을 놓칠세라 빗살무늬를 일으키며 가슴팍으로 내려앉는다. 내친김에 달님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본다."달님은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하나요?""아무래도 달맞이꽃이지요.""왜요?""달맞이꽃은 원래 나를 따르던 요정이었답니다. 그믐이 될 때마다 나를 볼 수 없게 되자, 상심한 나머지 그만 쓰러져 달맞이꽃이 되었지요.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애절한 그리움의 상징으로 간주하기 시작했죠. 지금도 꽃말이 그리움이 아니던가요. 그 꽃을 생각하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답니다.""해님은 달맞이꽃을 좋아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그야 그렇겠지요. 자신을 따르는 꽃이 따로 있으니까요.""궁금하네요. 무슨 꽃입니까?""해바라기 꽃입니다. 그 놈은 해님을 지겹게 따라다니지요. 심지어 해님이 귀찮아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흐린 날에도, 님 향한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답니다.""달님, 혹시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물론이지요. 이태백이 나를 처음으로 낭만적인 사모의 대상으로 만들어 주었지요.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신다는 '월하독작'은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가 경포대와 인연 맺을 것이라고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어요. 한 번 들어보실래요. 거울처럼 맑은 호수라는 뜻의 '경포호'에는 네 가지 낭만의 얼굴이 보인답니다. 첫 번째는 하늘에 뜬 저의 모습이고. 두 번째는 바다에 뜬 모습, 세 번째는 호수에 뜬 모습. 마지막 모습은 술잔 위에 뜬 저의 모습이지요. 하나를 더한다면 해맑은 눈동자에 들어있는 저의 모습이랍니다. 그 당시만 해도 풍류와 해학이 넘칠 시절이라 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답니다."상념이 상념의 꼬리를 물며 심연의 세계에 빠지니, 광음의 촉감이 무디어져 간다. 해님과 달님의 열광적인 팬은 누구일까? 생뚱맞은 쪽으로 생각이 미치기 시작한다. 해님의 팬은 아무래도 '해바라기'가 아닐까. 이글거리는 태양이 아가페적인 사랑을 퍼부으니 말이다. '너무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숨쉬기조차 힘든 폭염 속에서도 맹목적으로 퍼붓는 사랑, 그것은 출세와 소유, 격정과 독선의 이미지와 왠지 닮은 듯하다.하지만 달님의 팬인 달맞이꽃은 새색시 마냥 수줍은 에로스적인 사랑이다. 앞에 나서는 법이 없다. 양보와 인내, 조화와 공존 같은 이미지와 왠지 닮아있다. 해님이 이성이라면 달님은 감성에 가까워 보이고, 해님이 현실이라면 달님은 낭만에 가까워보인다. 해님보다는 달님이 왠지 텅 빈 내 가슴에 포근히 내려앉는다.환영(幻影)적 상념에서 벗어나 다시 의식세계로 돌아오니, 달님은 이미 서녘에 걸려있고 밤이슬은 내 가슴속에 함초롬히 파고든다.

2018-10-15 11:27:03

이종문 계명대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그 사람 오지 않네 -권필

벗 만나 술을 찾아도 술 얻기가 어렵더니 逢人覓酒酒難致(봉인멱주주난치)술 생겨 그리워해도 그 사람 오지 않네 對酒懷人人不來(대주회인인불래)백년 인생살이가 일마다 다 이러하니 百年身事每如此(백년신사매여차)허허허 크게 웃고서 벌컥벌컥 마시노라 大笑獨傾三四杯(대소독경삼사배) "창 밖에 국화 심어 국화 밑에 술을 빚어/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 돋아온다/ 아이야 거문고 청(淸)쳐라 밤새도록 놀리라." "오늘도 좋은 날이요 이곳도 좋은 곳이/ 좋은 날 좋은 곳에 좋은 사람 만나 있어/ 좋은 술 좋은 안주에 좋이 놂이 좋아라." 둘 다 작자 미상의 조선시대 시조다.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둥근 달이 휘영청 돋아 오고, 게다가 거문고를 치며 밤새도록 놀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도 이런 금상첨화는 없다. 좋은 날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술 좋은 안주에 좋이 놀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다시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인생살이에서 이처럼 박자가 척척 맞아 떨어지는 금상첨화가 얼마나 될까.조선중기 시단의 기린아(麒麟兒)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이 지은 위의 시만 봐도 그렇다. 좋은 벗을 만나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을 때는 바로 그 놈의 술이 없다. 좋은 술이 생겨 벗과 한 잔 하고 싶을 때는 같이 마실 그 벗이 없다. 길지도 않은 인생살이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이처럼 엇박자 나기가 일쑤다. 그러니 허허허 헛웃음을 웃으며 혼자서 막걸리를 연거푸 들이키는 수밖에 없다. '그 님이 오마하고 오시지 아니하니(可人期不至)/ 이 푸른 술동이를 어찌하면 좋을까나(奈此綠尊何)'라고 노래했던 퇴계선생의 시구도 석주의 시와 번지수가 같다.이 작품에는 '윤이성이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아서 혼자 몇 잔을 퍼마시고 장난삼아 우스개 시를 지었다'(尹而性有約不來 獨飮數器 戲作徘諧句)는 긴 제목이 붙어 있다. 석주가 강화도의 한 초가집에 살고 있을 때,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동쪽 이웃에 살고 있던 윤이성이 가끔씩 술을 들고 찾아와서 적지 않게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은 그가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아서 장난삼아 이 우스개 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석주는 하는 일마다 엇박자가 났고, 심지어 죽음마저도 난데없는 엇박자로 맞았던 사람. 설사 장난삼아 지었다 치더라도, 덩달아 장난삼아 읽을 수는 없는,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이유다.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8-10-10 17:49:46

현지인이 다니는 진짜 도쿄 맛집을 알려주세요/네모 지음/자기만의 방 펴냄

주말마다 도쿄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취미인 지은이가 관광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로컬 맛집 70곳을 엄선해 소개한 책이다. 지은이 네모(본명 에노모토 야스타카)는 일본 맛집을 한국어로 소개하는 글로 SNS에서 유명인사.신주쿠 사람들의 추억의 맛집, 에비스역 근처 회사원들의 점심 맛집 등 도쿄 사람만이 아는 가성비 맛집을 소개하며 일본 음식에 대한 상식과 스토리도 풍부하게 담아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지은이는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고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서강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인에게 도움 되는 정보를 주고 싶어 인스타그램에 한국어로 도쿄 맛집 탐방기를 연재했고 이 책도 한국어로 집필했다."일본에서는 돈부리를 비벼먹지 않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한일간 음식문화의 차이를 알고 그 과정에서 여행의 색다른 재미를 느껴보라는 지은이의 배려가 참 아름답다.340쪽, 1만4천500원

2018-10-09 17:24:38

ㄱ이 ㄴ에게/김사윤 지음/문학공감 펴냄

시인 김사윤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은 시를 짓는 이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주제어로 내세우고 있다. 시인들의 양심과 지성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얼마나 주효한가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매번 해학적 표현과 미사여구의 관용구들을 깨뜨리는데 주력하는 그의 시어들은 낭송을 하면 할수록 곱씹어보는 감동이 있다. 그의 작품은 잔인하고 혹독하리만치 인간의 치부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희망'을 길어내기 위한 것임을 이르는 일도 잊지 않는다. 시집에는 시인이 시인에게 건네는 간절한 당부로부터 독자에게 건네는 안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수록돼 있다.문단내 성희롱문제를 비롯해 패거리 문학을 꼬집는가 하면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공감하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다소 거친 시어지만 희생을 감내하는 모습도 보여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1만원

2018-10-09 17:24:25

미지의 문/김종진 지음/효형출판 펴냄

미지의 문/김종진 지음/효형출판 펴냄 건축가의 눈으로 본 공간과 예술에 대한 에세이이다. 저자의 시선은 건축 밖 예술 장르를 해석할 때도 '공간'의 그림자를 생각한다. 그에게 공간은 보다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면서 편재해 있는 개념으로 건축과 예술을 보는 근본적 안목을 안내하고 있다.건축가가 쓴 책이니만큼 설계안과 건축물을 소개하고 있지만 설치나 개념미술로 대표되는 현대미술 작품, 심지어 철학과 문학, 음악의 요소를 예로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건축과 예술은 별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대상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이에 저자는 어떤 사물을 볼 때 '그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 될까'에 착안에 '무엇'보다는 '어떻게'를 , '명사'보다는 '동사'를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정해진 답이 아니라 나름대로 답을 찾게 하는 책의 전개방식은 때로는 철저한 과학적 원리에 바탕한 분석을 보여줌으로써 예술의 진정한 본질을 알게 하고 창의적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데 모자람이 없다. 288쪽, 1만8천원

2018-10-09 17:23:19

흔들림에 대하여/김광규 시집/문예미학사 펴냄

흔들림에 대하여/김광규 시집/문예미학사 펴냄 '저마다/무게 중심이 있다고 말하지만/수시로 흔들이는 우리/바람 부는 광야에서 흔들리며 살아온 뒤안길/…(중략)…/내가 흔든 그 사람은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왔을까'시집 제목을 딴 대표시 '흔들림에 대하여'이다. 지은이 김광규는 현재 봉화에 거주하며 영주청년학교 영어 강사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그이 시론은 시집 자서에 쓴 것처럼 '시를 쓰는 작업은 과거의 현상에 대한 기억을 현재에 관조하여 그것을 불멸화시키는 과정'이다. 그에게 시는 기억의 복원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내심 그의 시에 대해 미심쩍은 기분을 지울 수 없는 가보다.'사물의 내면을 파고들어가서 그 사물의 입으로 노래해야 한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에 그는 아직도 시를 붙잡고 있지만 대상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에서만 맴돌다가 어설픈 시를 내어놓은 자신을 자책한다.이 때문에 시집 말미의 시에서 노래한 '두 귀를 쫑긋 세운 기약 없는 불안'은 그로 하여금 시를 계속해서 쓰게 되는 힘인 듯하다. 113쪽, 9천원

2018-10-09 17:23:04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이름짓기

며느리가 임신하였다는 기쁜 소식이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였다. 며느리가 빙판길에서 넘어지면서 한 차례 실패가 있고 난 뒤라 너무 서두른다고 나무랐다. 내심으로는 손자를 얻는다는 반가움에 좋은 이름을 지어보려고 궁리를 하였다. 본관의 같은 항렬자에 부르기 쉽고 적기 쉬운 것으로 짓기로 하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름을 지으려고 노력하였다.오래전 N 학교에 도서관을 신축하고 이름을 공모하였다. '한울'이라고 응모를 한 결과 그 이름이 채택되어 현판식을 했다. 그때 특정 종교 신자로부터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중학교 동기생들이 모여 산악회를 조직하고 이름을 지었다. 학교가 자리한 곳이 높은 산이기도 했고 높은 산을 오른다는 뜻으로 고산회(高山會)라고 지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둘레길이나 공원을 산책하는 정도이니 어울리지 않는 명칭이 되고 말았다.학교 관리자가 되고 운동장 동편에 다목적 건물을 지었다. 개관을 앞두고 이름을 공모하였다. 고심 끝에 제출한 '미래관'이 채택되었다. 그곳을 가끔 지나가다 현판을 보며 학생들이 저마다 미래의 꿈을 갖고, 가꾸어 간다고 여기니 가슴이 뿌듯하였다.퇴직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하여 파크골프를 배웠다. 클럽에 가입하고 첫 모임을 했다. 임원에 선정되지 않았으나 클럽을 상징하는 이름을 '한마음'이라고 정하였다. 골프 회동 시 가끔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우리 클럽 이름이 뭐냐고 들먹이면 이내 수그러들기도 한다.내 이름에는 항렬자 외에 소나무 송자가 들어간다. 백부님께서 나무 목(木)에 귀족의 작위를 일컫는 공(公)을 합하여 만든 글자로 지었단다. 한학을 공부한 대구의 K 교육장은 나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란다. 그때마다 백부님에게 감사했다. 그렇지만 내 이름을 소개할 때 제대로 듣거나 쓰는 사람은 별로 없어 아쉬움이 있다.어릴 때 동네 여자 이름 끝 자가 대부분 숙, 순, 옥, 자였다. 그네들이 시집을 가더니 고상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나는 '보람' '아라' 등으로 이름을 지었다. 우리 반 출석부를 작성하다 깜짝 놀랐다. 이름이 '아라'인데 하필이면 성이 박씨가 아닌가. 그가 어른이 되었을 때 놀림감이 될까 염려가 되었다. 학생 어머니와 의논하여 개명 절차를 밟아 주었다. 그 학생의 어머니가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리던 모습이 떠올랐다.아들 이름을 족보의 항렬자에 맞게 지었다. 가운데 한 글자만 짓다 보니 쉽사리 해결되었다. 딸 이름 짓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부르기 쉽고 쓰기 쉬운 이름으로 지었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의 일이다. 딸은 자기 반에 같은 이름이 셋이나 있다며 몇 날을 뽀로통했다. 시집을 가서 딸이 태어나자 직접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다.출산 예정일이 다가오자, 아들은 연일 독촉을 하였다. 지금까지 여러 이름을 짓는데 자부심을 가졌다. 막상 내 손자 이름을 짓는 일에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평소에 본인의 사주와 맞는 이름에 복을 더하기 위하여 짓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너희 부부가 의논하여 짓든지 아니면 철학관을 방문하여 상담하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아들은 할아버지가 지어야 한다며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출산일은 수도꼭지 틀어 놓은 양동이에 물이 차오르듯 다가오는데 그럴듯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 중에는 이름을 이태나 늦게 지어 두 살이나 적은 이도 있었다. 이름을 짓겠다고 서점에 가서 작명에 관한 책을 모두 샀다. 산책을 하나하나 정독을 해봐도 기준이 제각각이었다. 읽은 책 내용의 공통점을 나 나름대로 정리하였다.먼저 본관에 돌림자가 같은 훌륭한 사람을 찾아보았다. 고심 끝에 선대에 훌륭하신 분의 이름으로 내정하고 여러 사람에게 자문했다. 모두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드디어 손자의 이름을 '신채호'라고 지었다.아들과 며느리를 집으로 불러 앉혔다.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차근차근 설명해주면서 그분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훌륭하게 키우라고 당부하였다. 아들과 며느리가 마주 보더니 이내 얼굴이 보름달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았다. 손자가 자라서 반드시 이름값을 하리라 기대해 본다.신송우

2018-10-08 10:39:24

멍서방과 똑서방/서정오 글'신병근 그림/토토북 펴냄

멍서방과 똑서방/서정오 글·신병근 그림/토토북 펴냄 세상이 메말라 갈수록 모두가 자기 이익 챙기느라 바쁠 때일수록 우리는 어쩌면 바보가 그리울 줄도 모른다. 이 책은 안동출신으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지금은 교직에서 물러나 우리 옛이야기 다시 쓰기와 되살리기에 힘을 쏟고 있는 서정오의 신간이다.책 '멍서방과 똑서방'에 나오는 15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대개 바보스럽다. 아니 바보가 맞다. 내용은 전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바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만 골라 다시 썼다. 그러나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개 바보가 똑똑해져서 복받는 게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 도리어 그 바보짓의 결과로 복을 받는다는 것은 곱씹어 볼 만하다.또 매 쪽수 마다엔 신병근이 글에 맞는 그림을 큼직만하게 그려 넣어 어린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읽도록 배려했다.저자의 말대로 이런 생각 그런 생각 다 그만두고 그저 재미나게 읽고 즐기기만 해도 좋다. 하하 호호 깔깔, 한 바탕 시원스레 웃어가면서 말이다. 114쪽, 1만1천원

2018-10-03 13:12:46

누가 선생 아니랄까봐/박정곤 지음/글과 그림 펴냄

누가 선생 아니랄까봐/박정곤 지음/글과 그림 펴냄 국어교사 생활 18년 6개월, 대구시교육청서 교육행정과 연구 생활 12여년 등 교직에 발을 들여 놓은 지 35년이 된 저자가 2006년부터 9년 동안 대구 언론사에 쓴 교육칼럼 150여 편 중 100편을 뽑아 편집한 책이다.칼럼들은 뽑고 나니 책으로 묶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했다. 왜냐고? 우선 시의성이 없어 재미없는 글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과 더불어 글 쓸 당시 생각과 철학이 지금도 가슴 속에 오롯이 남아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현직 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인 저자가 보기에, 미래 사회 대비를 외치면서 수능이 그대로 있고, 역량 평가를 주장하면서 객관식 평가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교육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출판사 사장과 후배 교사들의 조언과 수고로 칼럼집 '누가 선생 아니랄까봐'을 낸 저자는 교육현장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에 대한 반성과 향후 교육이 나아갈 길에 대한 전향적 고민 등 글에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242쪽, 1만5천원

2018-10-03 13:12:34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지심도 동백/류재홍

지심도 동백류재홍 불현듯 눈을 떴습니다. 시계가 네 시를 막 지나고 있습니다.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하다 결국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직 깜깜합니다. 창문을 열려다 밀려오는 바람에 놀라 얼른 닫고 맙니다. 봄이라지만, 아직은 바람이 차갑습니다. 양팔을 벌려가며 스트레칭을 합니다. 어떤 이는 글쓰기로 새벽을 밀어내고 누구는 독서로 하루를 연다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몸부터 풀어야 합니다. 한 번 망가진 몸은 좀체 돌아오지 않아서 어르고 달래가며 쓸 수밖에 없습니다.부부 동반으로 지심도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낮부터 따뜻할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남편이 봄옷을 꺼냅니다. 조금 이른 게 아닌가 싶지만, 모른 체했습니다. 일찌감치 세탁해서 넣어둔 겨울옷을 꺼내기도 싫었거니와, 추운 것보다 더운 걸 더 못 견디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남편은 집을 나서자마자 어깨를 웅크립니다. 차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버스 안을 아무리 훈훈하게 해 놓아도 자꾸만 웅숭그립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는 쉼 없이 달려 거가대교 휴게소에 다다랐습니다. 모두 전망대로 올라간 틈을 타 휴게소에 있는 옷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오리털 조끼를 본 남편이 반색하며 입어봅니다. 시중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르고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가 조금은 낯설어 보입니다.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더니, 나이는 못 속이나 봅니다.지심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하늘에서 본 섬 모양이 마음 심(心)을 닮아서 지심도라 한다는데 마음에 와닿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이름인 동백섬이 더 정감 있게 다가옵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도 동백이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이 왔는지 섬은 사람들로 만원입니다. 모두 봄바람에 신명이 나 있습니다. 우리도 콧노래를 부르며 둘레 길을 올랐습니다. 섬 전체를 둘러보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니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작년 이맘때 보았던 사량도 동백이 생각납니다. 사량도에는 온갖 종류의 봄꽃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곳을 지나다 무엇에 끌린 듯 멈춰 섰습니다. 나무도 땅도 온통 검붉게 물들어 있는 게 묘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수많은 동백꽃이 한데 어우러져 아우라를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달렸거나 누웠거나 한결같은 색이었는데, 조석으로 변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 같기도 해 섬뜩함마저 들었습니다.이곳에서도 그런 동백꽃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렬한 힘으로 나를 잡아당기는 꽃을 볼 수도 있을 거야. 여기는 말 그대로 동백섬이 아닌가. 마음은 벌써 부풀어 오른 풍선입니다. 둘레길 초입에 조그만 카페가 보입니다. 많은 이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이 있어 나도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한 무리의 붉은 꽃이 하트 모양으로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카페주인이 손님을 끌려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아무려면 이것뿐일까. 인위적인 것에 코웃음 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군데군데 동백꽃은 피어있었습니다. 땅에는 더 많은 꽃이 서로를 껴안고 누워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붉은빛도 분홍도 아닌 희멀건 색은 내 마음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비수처럼 꽂히는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허망했습니다. "날씨 탓인가 아니면 끝물이라 그런가, 꽃이 왜 이래." 지나가는 사람들도 투덜거렸습니다. 맛도 멋도 잃어버려 휘적휘적 걷기만 했습니다.한 바퀴 빙 돌아 다시 하트 모양의 동백꽃 앞에 섰습니다. 아직도 선홍색 그대로 환합니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지막하고 여린 아기 동백이 몇 개의 꽃을 달고 바람에 하늘거립니다.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지심도 동백은 수백 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라고 말한 것을. 이곳은 원래 국방부 소유의 땅이라 오래된 나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늙을 대로 늙은 몸에서 청춘의 힘을 맛보려 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새삼 지나온 산을 뒤돌아봅니다. 장대한 거목들이 손에 손을 잡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꽃은 그저 꽃일 뿐인데 미우니 고우니 하며 호들갑 떨게 무어냐며 일갈하는 것 같습니다. 희미하거나 선명하거나 다 같은 동백꽃이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2018-10-02 05:00:00

느긋하게-홋카이도/남자휴식위원회 지음/생각정거장 펴냄

느긋하게-홋카이도/남자휴식위원회 지음/생각정거장 펴냄 '최근 몇 년 사이 일본에서 편집숍이 대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편집숍은 주인장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흥미로운 물건들을 찾아내고 매력적으로 진열하여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들인다. 그 덕에 소비자는 힘들게 발품을 팔 필요 없이 한 가게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다양한 제품을 만나 볼 수 있다. 이런 형태의 쇼핑 방식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삿포로에서 유명한 편집숍 디앤디파트먼트가 생겼다는 말을 듣는 순간 무조건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일부러 매장 오픈 시간에 맞춰 찾아가 휴일의 한적함을 맘껏 즐겼다.'여행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풍광이 좋은 곳이나 환경이 쾌적하고 힐링이 가능한 곳을 찾거나 이색적인 멋과 맛이 공존하는 장소에 들러 평소와 다른 호사를 누리는 게 보통이다.하지만 이 책은 이방인의 시선에 걸린 낭만적인 홋카이도의 일상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있는 주제별 컬러 사진과 길지 않은 텍스트로 인해 오히려 잔잔한 영상을 훑어보듯 홋카이도의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지은이 '남자휴식위원회'도 이색적이다. 휴식이란 말은 좋은데 도대체 휴식에 뭘 가리고 거를 것이 있어 위원회를 둔 걸까?◆남자휴식위원회의 정체여행기획과 글쓰기를 담당하며 현재 온라인 음원사이트와 잡지 등에 책과 음악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다토(DATO), 웹 디자이너이자 SNS와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다양한 사진과 영상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카이, 유일한 여자 멤버로 출판 기획과 진행을 맡고 있으며 현재 인터넷 미디어사이트 편집장으로 활동 중인 아요나.남자휴식위원회는 이들 3인으로 구성된 대만의 창작집단이다. 이들은 '삶이 곧 여행'이라는 모토 아래 휴일을 주제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잡지 '꽁치'를 발간해 여행소식을 전하고 홍콩 에어비앤비와 협업을 기획하고 일본 무인양품과 이벤트를 여는 등 대만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첫 저서로 '교토감성'에 이어 '느긋하게-홋카이도'가 두 번째이며 지금은 홍콩에서 휴식여행을 주제로 세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홋카이도의 일상 풍경 속으로남자휴식위원회 이들 3인의 여행은 홋카이도에 사는 누군가의 일상과 닮아 있다. 화려하게 포장된 관광지를 훑어보는 대신 골목골목 느긋하게 걸으며 도시의 숨은 매력을 들여다본다. 삿포로 니시주핫초메(西18丁目)의 고르고 골라 찾은 편집숍에선 충동구매를 유도하지 않은 정갈한 진열에 놀라고, 편집숍을 나서자마자 문득 배가 고프던 차에 코를 자극하는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카페에선 입에 딱 맞는 음식과 홍차 맛에 한껏 매료되기도 한다.평범한 외관의 아파트이자 지금은 다양한 상점이 들어선 건물 스페이스 1-15에 들러 찾은 501호 가게 '타케차스 레코즈'에선 음악에 관심이 많은 다토가 레코드가게 주인과 음악에 대해 한참 수다를 떤다. 그 모양새가 외국을 여행 중인 타국사람 같지가 않다.이들 3인은 또 어느 도시를 여행하든 그곳 소재 대학 캠퍼스를 꼭 방문한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이유인즉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공놀이를 하고 연못가에 앉아 음악을 듣고, 책을 보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떠들며 지나가는 모든 장면이 아름답고 활기 넘치기 때문이다.이뿐 아니라 삿포로 시내 브루클린 파라의 따끈따끈한 3단 팬케이크 맛에 반해 사진 캡션에 '삿포로에 가면 꼭 들려야 할 곳 중 1순위로 등극할 만큼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핫케이크'라고 인쇄돼 있어 얼마나 그 맛에 반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커피를 곁들인 팬케이크 점심 한정세트 값이 850엔으로 가성비갑임을 빠뜨리지도 않았다.◆여행도 잠깐 쉬어가야 할 때'지하철과 연결된 지하상가에서 생화 두 다발을 고르고 숯불구이 돼지고기 도시락과 미소 된장국을 샀다. 슈퍼마켓 마감특가세일을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절대 놓칠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다.'(94쪽)물 설고 땅 낯선 타국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이 또한 여행의 즐거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다. 이들 3인은 홋카이도로 오기 전 일본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의 소개로 현지 지인을 소개받았다. 이들이 일본의 유행문화에 대해 꿰뚫고 있듯 소개받은 일본 친구도 대만 마니아라서 그동안 SNS로 충분한 교분을 쌓아두었던 터였다. 당연히 함께 만나 멋진 식사와 술, 노래 그리고 우정의 시간을 보낸다.◆홋카이도 여행, 더 깊숙한 곳으로일부러 토요일 아침 일찍 삿포로에서 전차를 이용, 오타루로 간 이들 3인은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무농약 채소시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산지 직거래 장터를 체험하고 더 나아가 홋카이도 생활 속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어서 여행 중에 숙식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농장 아르바이트를 일정에 집어넣는다.오타루 도착 후 다시 버스로 이동해 찾아간 샤코탄 반도에 있는 농장. 여기서 그들은 황무지 정리, 잡초 뽑기, 신선한 계란 닦고 포장하기, 마늘종 정리 등 실제 농장일을 모두 소화해내는 가운데 농장주 아주머니와 때때로 파스타와 스키야키 등 일본요리를 만들며 일본인처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농장에서 며칠을 보낸 후 이들은 다시 하코다테로 와서 휴식을 위한 그 나름의 관광모드를 모색, 포장마차, 수제햄버거, 커피향과 음악 등 다양한 문화체험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이 책은 또 단락마다 그들이 들렀던 가게나 장소의 전화번호, 홈페이지, 쉬는 날 등 정보를 빼놓지 않고 기록, 여행가이드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다. 336쪽, 1만5천800원.

2018-09-27 13:45:52

무라카미 하루키. 매일신문DB

[잠깐상식] 소확행(小確幸) 뜻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20여년 전 주장한 행복론, 21세기 들어 인정 받은 셈?

소확행(小確幸)의 뜻을 궁금해하는 네티즌이 적잖다. 정부에서 관련 정책을 언급하며 쓰고도 있어 정부에서 만들었거나 언론에서 만든 조어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나온 용어 또한 아니다. 바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1986)가 원조다. 물론 이 책이 나온 후 대중적으로 널리 쓰인 것은 아니고, 최근 이 책에서 발췌돼 유행하게 된 셈이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와 워라밸(Work Life Ballance, 일과 삶의 균형) 등의 용어가 유행하면서 소확행 역시 필요에 의해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소확행은 욜로와 워라밸과는 또 다른 의미 및 느낌의 단어이다. 한자어 그대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한다.

2018-09-17 14:18:08

일러스트 전숙경 (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내 영혼의 까치발

내 영혼의 까치발 쉰의 중반을 넘던 때는 꽁꽁 동여맸던 허리띠를 잠시 풀어놓고 싶었다. 여유와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지만 그마저도 사치였을까.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내 목숨은 갑자기 벼랑으로 추락했다. 나는 호소할 틈도 없이 뉘누리는 큰 입을 벌리고 날 향해 달려들었다. "대장암입니다. 위치도 몹시 나쁜, 횡행 결장암입니다." 눈을 감았다. 그때 바람이 불었던가. 눈앞에 있던 창이 흔들리고 나무가 흔들리고 사람들 옷자락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긴장으로 손에 땀이 흥건했다. 눈을 떴을 때 컴퓨터 화면에는 내 몸의 일부인 내장 부위가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둥근 통로를 막고 있는 대롱들, 피고름이 엉겨 붙은 붉은 형체를 나는 무심히 바라보았다. "영상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3기로 추정되는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됐다면 수술도 불가능합니다." 그 순간, 날 붙잡고 있던 어떤 끈이 툭,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편치 않았던 지난날 삶의 조각들이 물거품처럼 바위에 산산이 부서졌다.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은 수시로 날 향해 날아들었다. 어느 날, 남편의 폭력과 인권유린에 길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내 존재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자유를 찾게 했다. 하지만 자유에 대한 대가는 처절했다. 거기엔 절망이란 단어가 찍혀 있었다. 대장 내시경 검사 전날, 무엇에 이끌리듯 나는 도깨비 시장으로 향했다. 깊은 어둠 속을 몇 시간째 정신없이 헤맸는지 모른다. 걸음을 멈추고 보니 내 손에는 겨우 몇 가지 찬거리가 들려 있었다. 오래 살았던 만큼 많은 추억이 스며있는 동네였다. 낡은 집들이 사라진 곳에 새로운 빌라가 들어서고 있었다. 골목을 돌아 나오다 폐가를 만났다. 불에 탄 듯 폐가는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다. 텃밭에 타다 남은 개나리 가지 앞에서 나는 서성였다. 손을 뻗어 개나리 가지를 쓸어내리는데 가지가 내 손을 꼭 붙들었다. 어차피 폐가와 함께 사라질 생명에 대한 애착이었을까. 난 무작정 개나리 몇 뿌리를 파헤쳐 까만 봉지에 주섬주섬 담았다. 검게 그을렸지만 가지 끝은 마치 사위어가는 내 모습 같아 신들린 듯 창가 화분에 심었다. 대장암 선고를 받던 날은 한숨도 못 자고 뜬눈으로 뒤척였다. 겨우 새벽녘에 잠이 들 무렵, 독서실에서 돌아온 아들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요즘 암은 웬만하면 다 치료가 된대요. 아무도 엄마를 못 데려가게 수술실 밖에서 내가 지킬게요. 그렇게 큰소리치던 아들은 겨우 대학생일 뿐이었다. 수술 전날 아들은 쪽 침대에서 노트북에 코를 박고 졸고 있었다. 검색창에는'대장암'이란 글씨가 떠올라 있었다.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신에게 매달렸던 순간에 아들은 훌쩍 커버린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아들은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병은 그렇게 우리에게 각자의 길을 알려주었다. "지금부터 마취제가 들어갑니다. 천천히 하나, 둘, 셋을 세어보세요."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내 의식은 서서히 무의식으로 이동했다. 그때 온몸을 파고드는 경쾌한 리듬이 있었다. 급박한 수술실 안에 울려 퍼지는 요한슈트라우스의'봄의 소리 왈츠'는 무엇을 의미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그건 내가 꼭 붙잡아야 할 삶의 끈이었던 것도 같다. 얼마쯤 지났을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온몸에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지독한 한기와 함께 통증이 몰려왔다. 아들이 덮어준 푸른 담요 한 장의 온기로 나는 죽음과 싸웠다. 아들은 내게 온기였고, 아들에게 난 울타리였다. 수술 후 회복 기간은 죽음과 맞닥뜨린 후 찾은 또 다른 평안이었다. 비로소 영혼의 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창가에 심어 둔 개나리도 겨울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얼굴을 가까이 대자 파릇한 숨이 느껴졌다. "피~움!!" 한밤중 어디선가 새털같이 가냘픈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난 무심코 창문을 열어보았다. 어둠 속에서 노랗게 반짝이는 등불을, 부러질 듯 깡마른 시커먼 나뭇가지 끝에 생명의 환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생사를 넘나들던 시간이 그 작은 꽃잎에 맺혀 있음을 알았다. 십 년이 지났다. 해마다 개나리를 보면, 아니 봄기운이 느껴지면 가슴이 뛴다. 마취 직전, 수술실 안에 흐르던 요한 슈트라우스의'봄의 소리 왈츠' 그것은 죽음의 문턱에서 서성이던 내 영혼의 까치발이었다.

2018-09-17 11:29:06

인도불교의 역사/다케무라 마키오 지음/산지니 펴냄

인도불교의 역사/다케무라 마키오 지음/산지니 펴냄 인도 북동부 광대한 옥토를 가로지르는 강이 있다. 갠지스강이다. 이 갠지스강의 한 지류로 그 옛날 '네란자라'라 불렸던 강이 흐르고 강의 유역 근처에 높이 52m의 석탑과 그 안쪽에 무화과 나무 한 그루가 큰 가지를 드리우고 서 있다. 바로 석존이 그 아래서 좌선해 무상의 깨달음을 얻은 덕택에 이 무화과 나무를 '보리수'라 일컫는다. 하지만 그 보리수 근처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절도, 불상도, 보살도 없다. 여기서 질문 하나. 그렇다면 불교는 최초 출현 이후 어떻게 전개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은 걸까? 그 해답이 이 책에 있다. 책은 주로 인도에서 석존이후부터 밀교이전까지 불교의 사상적 전개를 추적하고 있다. 석존의 생애부터 입멸 후 부파불교의 전개, 대승불교의 출현, 공(空)의 논리, 유식의 체계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특히 우리나라에 들어온 대승불교의 출현에 대해서 보다 심도 있게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불교의 분열, 부파불교의 전개 '하여튼 상당히 다른 불교가 같은 불교라는 이름으로 묶여진 이상, 거기에는 무엇인가 입장이나 공통의 사상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18쪽) 깨달음을 최대 목표로 삼는 불교의 가르침도 석존 입멸 100년쯤(BC283년경)에 이르면 하나의 교단으로 존속해 왔던 승가에서 의견의 대립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를 해결하고자 교단은 1차 결집에서 석존이 제정한 계율은 고수되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지만 이른바 혁신파들은 여기에 납득하지 않고 새로운 분파를 형성, 혁신파인 '대중부'와 보수파인 '상좌부'로 나뉘게 된다. 이렇게 분열될 무렵 제2차 결집이 이어지나 다시 한 번 교단이 분열되면서 20개 정도의 교단이 형성되고 이를 '부파불교'라고 부른다. 부파불교는 본래 석존의 생존 때의 간명한 가르침과 사후 경전에 대해서 개념을 정확히 하여 불교 교의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점차 복잡한 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들은 석존의 언어를 해석하고 또 깊이 천착해 감에 따라 세계와 자아에 대한 인식을 극도로 자세하고 치밀한 논리로 규명해 나갔다. 한 예로 대표적 부파불교인 설일체유부파는 세계를 5범주로 나누고 또 이를 75법에 따라 분류하는 복잡성을 갖추기도 했다. ◆불교의 개혁, 대승불교의 출현 '석존의 설법은 아함경으로 정리되어 각 부파에 전해져 유지되었다. 그러나 부처님 입멸 3, 4백 년가량 지나서 새로운 불설(佛說)이 천연스럽게 확장되고 있었다.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 무량수경과 같은 경전이 석존의 설법으로서 선포되었던 것이다.'(129쪽) 이것은 새로운 불교의 출현이었다. 부파불교에서 전혀 생각도 못했던 불교의 '신흥종교' 탄생이었다. 새 불교의 주체들은 자신들을 '대승불교'(위대한 교의)라 부르고 종래의 불교를 '소승불교'(저열한 교의)로 비난했다. 이때 불교문학 운동도 유입됐다. 대승불교 수행의 핵심이 되는 육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은 불전문학에 나오는 것들이다. 그리고 대승불교에 귀의하여 보리심(깨달음을 추구하는 구도의 마음)을 발한 자는 모두 보살로 불렸다. 오늘날 우리네 절에서 자주 듣는 '보살님'도 이때부터 생겨난 용어이다. 원래 종교라는 세계에서는 확실히 객관적 사실이나 역사적 진실만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가령 신화든 설화든 중요한 것은 오로지 그 종교적 의미이며 진실이다. 대승불교는 문학을 통해 석존을 해석하고 깊이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종교적 진실을 체험하고 있는 불타를 만나고 그 핵심을 널리 전하고자 했던 것 같다. 대승불교도들은 선정 속엣 이루어지는 깨달음의 체험에 근거를 두고 그 과정에서 자아와 존재일체가 공(空)임을 밝히기 위해 연기설이나 유심(唯心)과 같은 다양한 언어들을 주도면밀하게 표현했다. 흔히들 알고 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본체를 가지지 않는 공의 존재방식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현상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공의 논리와 유식의 체계 대승 경전을 기반으로 불교의 철학적 사상체계가 정리되어 가던 중 불교는 이제 중관파와 유가행파의 2대 학파로 확립된다. 중관파는 나가르주나를 조사로 하는 학파이며 유가행파는 마이트레야, 아상가 바수반두가 이 사상의 대성가들이다. 다만 중관파는 일체의 언어를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부정하고 있었던 반면 유식행파는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이 다 같이 하나의 식(識) 속에 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마치 궤변을 갖고 우롱하는 것과 같은 중관파의 '중론'은 모순율을 구사하는 형식논리학을 고수하는 한편 유식행파의 유식론은 깨달음을 실현하면 어떤 길을 걷고 성불하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 가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는 게 서로의 다른 점이다. 이후 인도불교는 1203년 이슬람의 침공으로 파괴되어 갔지만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 전해져 계속 생존했다. 288쪽, 2만원. ▷지은이 다케무라 마키오… 1948년 도쿄에서 출생. 도쿄대학교 문학부 졸업. 문화청 전문 직원. 미에대학 조교수와 쓰쿠바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도요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승불교사상을 전공했으며 저서로 '유식의 구조' '대승불교 입문' '성유식론을 읽다' 등 다수가 있다.

2018-09-12 17:57:28

인생의 밀도/강민구 지음/청림출판 펴냄

인생의 밀도/강민구 지음/청림출판 펴냄 매주 월·화요일이 되면 전국의 크고 작은 출판사에서 펴낸 신간 200여권이 문화부로 배달된다. 쪽수와 판형도 다양하지만 배달 목적은 단 하나, '날 좀 소개해주세요'이다. 그러나 지면에 소개되는 도서는 열 권 안팎이 고작이다. 이번 주도 간택(?)을 기다리는 책들을 정리하던 중 눈에 띄는 책이 손에 잡혔다. 지은이 이름이 낯익었다. '인생의 밀도'란 제하에 부제가 '날마다 비우고 단단하게 채우는 새로 고침의 힘'이었다. 지은이는 강민구. '어랏! 혹시 내가 아는 사람?' 약력을 보니 맞다. 그렇다고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기자와의 인연은 이렇다. 2014~2015년 그가 창원지방법원장이었던 시절, 딱딱하기만 했던 법원 인테리어를 그림과 서화로 장식, 세간에 관심을 모으면서 전화통화와 이메일로 그를 인터뷰해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 카카오톡으로 그는 관심사나 강연내용 등을 기자에게 수시로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기자가 늘 답변을 하는 편은 아니다. 한때 대법관 물망에 올랐고 현재 서울고법 부장판사(전 대법원 법원도서관장)인 그가 쓴 '인생의 밀도'는 2017년 유튜브를 통한 화제의 명강 '혁신의 골목에 선 우리의 자세'를 엮은 것이다. 영상은 1시간이 넘는 분량이었음에도 조회 수는 금세 100만을 넘어 150만 건에 이르렀다. 책은 올 2월 출간됐지만 다시 '신간'이란 이름으로 배달됐다. ◆60대 법조인의 강연이 회자되는 이유 '현대 생활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은 확장된 외뇌(外腦)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몸을 깨우는 새벽에, 스마트를 리부팅하면서 나의 뇌를 깨운다. 새로운 날의 시작을 맞는 나만의 의식이다.'(29쪽) 60대 현직 법조인의 유튜브 강연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뭘까? 적지 않은 나이의 남성이 낯선 디지털 툴을 능숙하게 다루고 시연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각성의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으리라 짐작된다. 또 한 분야서 오래 천착한 전문가가 보여준 변화에 대한 자세와 인생론이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랬다. 그는 자기만의 의식을 통해 변화의 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섬세함의 소유자다. 흔히 나이 들수록 생소함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걸 그는 해내고 있고 왜 그래야 하는 지를 자신의 삶에 비추어 답을 제시하고 있다. ◆깊은 통찰은 분야를 넘어 두루 적용 한국 사법정보화의 틀을 마련한 인물 중 한 사람이기도 한 저자는 경험에 비추어 정체되지 않는 인생과 변화를 맞이하는 자세에 대해 7가지로 요약된 개념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첫째, 리부팅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관성에 의해 살아지는 힘겨운 삶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정한 순간마다 지나온 길을 복기하며 스스로를 정비할 리부팅의 순간이 필요하다. 리부팅을 않으면 삶에 찌꺼기가 쌓이고 그 찌꺼기는 삶 곳곳에 스며들어 인간을 마모시킨다. 둘째, IT감수성이다. 외부 변화에 반응하며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글로벌 IT환경을 유연하게 이용할 줄 안다면 어떤 변화도 맞닥뜨렸을 때 당당할 수 있다. 셋째, 적자생존(기록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이다. 경험을 정리해 통찰하는 글쓰기 습관을 들인다. 넘치는 정보도 기록이라는 과정을 거쳐 정리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넷째, 생각근육이다. 외부 반응인 IT감수성과 내부 갈무리인 적자생존과 아울러 통찰의 힘을 배양한다. 생각근육은 다양한 독서와 꾸준한 글쓰기, 명상과 사고실험의 생활화, 용기 있는 질문 등으로 길러진다. '생각의 근육은 육체의 근육과 같아 점점 단련이 될 수도 있고 퇴화될 수도 있다. 한 군데만 집중적으로 단련할 수 있고 여러 부분의 근육을 균형 있게 단련시킬 수도 있다'(75쪽) 수집과 사유를 통해 축적되는 단단한 생각의 힘은 웬만한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다섯째, 디지털 디톡스다. 사람은 저마다 내면에 두 마리의 개를 키운다. 바로 편견과 선입견이며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이 둘을 적용하곤 한다. 만약 매일 모든 디지털 기기를 꺼두고 명상에 잠기는 시간을 가진다면. 현대의 디지털 문명이 주는 피로감을 씻고 디지털 기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여섯째, 적자생존(積者生存)은 자신이 노력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을 나눔으로써 선을 쌓는 변주이다.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닌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삶의 블루오션인 '적선'인 셈이다. 마지막은 조각모음이다. 하루를 마감하기 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고요히 나를 돌아보고 하루의 오류를 찾아내고 여전히 빈 공간을 채움으로써 다가올 내일의 새벽을 준비하는 것이다. ◆논리와 설득의 만만찮은 내공 저자는 책을 통해 농밀한 인생의 밀도를 어떻게 축적하며 또 이를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를 경험과 많은 독서 분량으로 설득하고 있다. 글을 전개하는 논리 또한 적절한 인용과 경구를 사용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주목을 이끌어 낸다. 간절한 공부와 치열한 성찰로 충실히 채워진 삶의 밀도. 그 밀도가 껍질을 비집고 나와 청자(聽者)의 심금을 울린다. 268쪽, 1만5천원 지은이 강민구 구미 출신으로 1988년 판사로 임명해 창원지방법원장, 부산지방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함께하는 법정' '손해배상 소송실무'(공저) 등이 있다.

2018-09-05 14:29:47

어느 물리학자의 세상 보기/김찬주 지음/ 우리교육 펴냄

어느 물리학자의 세상 보기/김찬주 지음/ 우리교육 펴냄 인류가 만든 가장 충격적인 이론은 뭘까?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다. 인류가 이룩한 현대 문명의 거의 모든 것이 이 두 이론에서 나왔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책은 물리학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나'라는 개인인 대학교수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보고 느낀 것을 모은 것이다. 필자 김찬주 교수는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우주론과 초끈이론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의 간략한 역사와 성과, 그 가치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최근의 중력파 발견 등 최신 물리학을 소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는 우주선 뉴허라이즌스호와 영화 '인터스텔라' 등을 소재로 과학의 가치와 과학 교육에 대해 생각하고 과학과 종교, 진화와 창조의 관계를 과학자의 입장에서 소개하고 여운을 던지기도 한다. 또 본질적으로 전혀 실용적이지 않는 과학이란 학문의 위대함을 설명하면서 우주의 약 75% 넘게 존재하는 암흑물질을 통해 세상에 보이지 않는 힘의 작동을 역설한다. 196쪽, 1만2천원

2018-09-04 15:24:15

불교의 탄생/미야모토 케이이치 지음/한상희 옮김/불광출판사 펴냄

불교의 탄생/미야모토 케이이치 지음/한상희 옮김/불광출판사 펴냄 기원전 6세기 쯤 인도는 사회'사상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밀의 수확량과 수공업이 번성하면서 출신 계급보다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게 됨에 따라 전통 종교 베다에 반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불교 역시 이 시기에 베다에 반발해 생겨난 많은 사상 중 하나였다. 이 책은 불교 성립 이전부터 붓다 입멸까지를 다루며 실용주의자 붓다는 원칙을 고집하는 것을 엄격히 경계한 인물로 불교의 긴 생명력의 원천을 역설하고 있다. 더불어 초기 불교 문헌을 중심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해설을 덧붙이면서 붓다 생존 당시와 가장 가까운 초기 불교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례로 붓다를 칭하는 명칭 가운데 '타타가타'(Tathagata)라는 용어도 '이와 같이 온 분'이라는 뜻의 여래(如來)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와 같이 건너간 분'이란 뜻의 여거(如去)로 이해해야 하며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세상의 무상함이나 찰나멸이 아니라 인간은 그리 오래 사는 존재가 아니므로 수행에 몰두해야 한다는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240쪽, 1만6천원

2018-09-04 15: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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