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상화' 창간호

'상화'를 펼치다…이상화기념사업회 창간호 발간

"3·1운동 100주년이 되었고, 상화가 떠난 지 76년이 흘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38년 동안 살았던 대구의 생가 터가 복원되지 않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관련자료들이 더 이상 소실되기 전에 체계적으로 수집해 생가 터에 작은 문학관이라도 만드는 것이 우리 사업회가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사)이상화기념사업회(이사장 최규목)가 최근 '상화' 창간호를 발행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창간호는 도광의 '이상화', 조영일 '상화의 봄', 오탁번 '상화와 목우', 박방희 '상화', 구석본 '그날, 그때' 등 대구의 대표적 시인들이 상화에게 바치는 헌시로 시작한다.본문은 상화의 정신과 시세계를 돌아보는 '상화논단'으로 서막을 연다. '이상화 시의 영원한 현재성(이기철 영남대 명예교수)' '봄날 성모당에서 이상화를 불러 보고 싶지만(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허무적 관능주의에서 민족적 저항시로의 도약(천영애 시인)' 등의 글이 실려 있다.특히 상화의 손자인 이재철 씨와 대구에서 학교를 함께 다닌 오양호 인천대 명예교수는 '내 문학 기억공간의 전설'에서 달성공원에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인 상화시비를 건립하게 된 사연과 그에 얽힌 각종 이야기, 어릴적 에피소드 등을 담고 있어 흥미를 끈다.달성공원에 상화시비를 세운 사람은 언론인이면서 수필가였던 김소운이다. 특이한 것은 그가 상화와는 아무런 특별한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상화를 모르면서 상화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상당한 규모의 사비를 털어 비를 세웠다. 오양호 교수는 달성공원 상화시비 제막식에 당초 오기로 했던 박종화 대신 카프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박노아(본명 박영진)가 와 축사를 한 것은 다행이라고 했다. 일제 강점기 막바지에 변절한 박종화가 어떻게 감히 상화시비 제막식에 와서 축사를 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상화는 생전에 시집 한 권도 내지 않은 채 42세에 타계했다. 친구이면서 함께 독립운동을 한 시인 백기만이 해방 이후 상화의 시 16편을 발굴해 1951년 청구출판사에서 첫 시집을 발간했다. 그후 김학동 서강대 명예교수가 41편을 추가로 발굴했고, 여기에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가 10편을 추가함으로써, 현재 상화의 작품은 제목만 남아 있는 '서러운 조화' '먼 기대'를 포함해 시 67편과 문학평론 12편, 창작소설 2편, 번역소설 5편, 수필 및 산문 14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학계에서는 상화가 활동하던 당시 발간된 인쇄본 문예지 '거화' 발견될 경우 상화의 시를 추가로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상화' 창간호에는 또 역대 상화시인상 수상작과 대표작품, 수상소감, 심사평 등이 정리되어 수록돼 있고, 상화 현창 관련 글로 '향기 따라 걷는 길(심후섭)' '3·1운동 100주년 우국문인 현창문학제 관람기(설준원)'가 실려 있다.최규목 이사장은 "향후 상화가 쓴 각종 작품을 추가 발굴할 뿐만 아니라, 상화 관련 논문·학술세미나 자료, 상화 관련 문인·학생의 흠모시 등을 지속적으로 수집해 매년 '상화'를 발간하고, 이들 자료를 모아 상화 생가가 복원될 때 아카이브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341쪽, 비매품.

2020-02-05 11:43:29

신간 '우리 어느 둑길에서 다시 만나리'

[책체크] 우리 어느 둑길에서 다시 만나리/강현국 엮음/학이사 펴냄

시인 김춘수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났다. 많은 학자들이 선생의 문학을 연구하고 그의 삶과 시를 기리는 글을 써왔지만 선생의 삶과 문학에 대한 해명을 한곳에 모아 볼 수 있는 책이 없어 아쉬웠다. 신간 '우리 어느 둑길에서 다시 만나리'는 이러한 아쉬움을 달래주는 책으로 선생의 삶과 문학을 총체적으로 담아냈다.책은 선생의 시세계에 대한 이론적 접근인 1부 김춘수 문학의 주춧돌, 시인으로서의 선생의 삶과 그 내면을 엿본 2부 내가 만난 김춘수, 선생의 대표작 몇 편에 대한 젊은 시인들의 감상 에세이인 3부 내가 읽은 김춘수의 시 한 편, 선생의 문학과 삶의 안팎, 그 궁금함을 들여다본 4부 우리 시대의 큰 시인, 예술의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선생의 육성으로 들어보는 5부 나의 예술인 교우록 등으로 구성됐다.엮은이는 선생과 독자들이 다시, 그리고 오래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이 책을 엮었다. 352쪽. 1만8천원.

2020-02-01 06:30:00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

[책체크]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카르멘 G. 데 라 쿠에바 지음/을유문화사 펴냄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오늘날의 젊은 여성들은 왜 페미니즘에 대해 어느 시대보다 더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것일까? 여성들은 여전히 하지 못한 말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스페인의 30대 여성 작가 카르멘 G. 데 라 쿠에바는 여성을 암묵적으로 배경에 머물게 하는 사회적 명령이 얼마나 많은지, 여성이 자기 생각을 표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기 경험담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다.30년간의 여정 끝에 찾은 행복은 바로 증조할머니, 외할머니, 이모할머니, 어머니 등 자기 주변 여성과의 따뜻한 연대라고 작가는 말한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학문이나 운동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자기답게,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쓰는 사상이라며, 작가 또한 이러한 생각을 지닌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다짐한다.스페인 밀레니얼 세대인 작가는 솔직하고 유쾌한 화법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 던지지 못했던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길었던 침묵을 깨뜨린다. 260쪽. 1만3천800원.

2020-02-01 06:30:00

세습 중산층 사회

[책]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 지음/생각의힘 펴냄

오늘날의 90년대생, 즉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은 소위 말해 잘나가는 50대 부모가 교육에 대한 경제적 투자, 인적 네트워크 등을 총동원해 자녀에게 고학력과 소수의 번듯한 일자리를 세습하는 데에 기인한다. 의사인 부모가 자녀를 의사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스카이캐슬' 역시 우리 사회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신간 '세습 중산층 사회'은 '중산층'을 전통적인 의미의 중산층이 아닌 기득권층으로 정의한다. 이 책은 20대들 가운데 부모로부터 기득권을 세습받은 선택받은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 사이의 불평등 문제를 분석하고 진단한다. 저자는 구체적이고 방대한 연구자료를 인용하고 그 속에서 발견한 명확한 분석을 통해 현재의 20대가 마주하는 불평등 사회의 핵심을 파헤친다.◆586세대가 만들어낸 '세습 중산층'20대의 불평등 사회를 파헤치기 위해선 부모세대인 60년대생을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흔히 '586세대(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학번으로 대학생활을 보낸 50대)'라 불리는 이들은 명문대 정원 확대, 일자리 황금기 시절의 취업, 수출 대기업의 약진 등 눈부신 경제 성장의 특혜를 누리며 '세습 중산층 1세대'를 이룬다. 이들이 '학번 없는 고졸 60년대생'과의 경제적·사회적 격차를 벌리면서 사회에는 어느 정도 계층 구조가 형성됐다.기득권 세습은 인간의 본능인걸까. 세습 중산층 1세대들은 자신의 능력과 재력을 활용해 90년대생 자녀 세대에게 동일한 지위를 물려주면서 '세습 중산층 2세대'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현 20대가 마주하는 불평등 사회의 핵심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세습 중산층 1세대를 거쳐 2세대로 내려오면서 계층 구조는 훨씬 더 공고해진다. 이는 부모 세대에 비해 자녀 세대에 양질의 일자리가 줄면서 '성(城·기득권)'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훨씬 좁아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기업 정규직 등 초임 월 300만원 이상의 일자리를 '1차 노동시장',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월 300만원 이하 일자리를 '2차 노동시장'으로 구분하는데, 취업 인구 가운데 1차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들의 비중이 2010년 이후 10% 수준으로 과거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는 사실이 '좁은 문'을 증명한다.이에 따라 오늘날의 20대는 10%의 성 안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을 이전 세대보다 더 치열하게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런 현실에서 세습 중산층 1세대는 자녀가 명문고·명문대를 졸업해 10%에 해당하는 번듯한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결국 그들의 자녀들이 고급 일자리를 독식하는 결과를 낳는다. 쉽게 말해 '기득권 부모가 기득권 자식을 만든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 부모를 갖지 못한 많은 20대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경쟁에서 뒤처지고 만다.◆20대 생애 전반을 지배하는 불평등출생에서 시작돼 취업으로 이어진 상위 10%와 하위 90%의 격차는 결혼과 주택 구입 등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요즘 20대를 정의하는 말로 N포세대(연애·결혼·취업·출산 등 N가지를 포기한 세대)가 자주 쓰이는데, 저자는 N포세대가 20대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닌 부유하고 유능한 부모를 두지 못한 이들을 칭하는 말이라고 강조한다.남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집을 가질 수 있는지는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능력에 달린 사회가 되면서 정상가족(4인 단위 핵가족)을 꾸리는 일이 이제는 성 안에 진입한 소수의 특권이 된 것이다.오늘날 20대는 극도로 계층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으며, 따라서 계층별로 인생 전반에 걸친 경험 또한 현저히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아가 공평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은 '기회의 평등'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회의 평등이란 단순히 공정한 입시제도를 확립하는 일이 아니라 하위 90%도 상위 10% 수준의 기회를 갖도록 제도를 바꿔야 함을 말한다. 2020년, 문제는 '세습 중산층'이다. 312쪽. 1만7천원.

2020-02-01 06:30:00

[책] 앞서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책] 앞서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앞서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알렉스 비어드 지음/ 신동숙 옮김/ 금담출판사 펴냄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의 교육열(?)은 남다르다. 온갖 가짜 스펙을 위조·조작해 자녀를 명문대에 진학시키면서 의사와 법조인으로 키우려 하다가 검찰에 의해 기소되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떳떳하고 당당하다. 오히려 "억울하다"면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대다수 서민·중산층 가정의 부모들은 자식들 보기가 민망하다. "부모 잘못 만나 너희들이 X고생하는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조국 가족의 불공정과 불법행위에 분개하기는 커녕 "조국 가족이 대체 뭘 그리 잘못했느냐?"며 옹호하고 나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부 세력의 준동은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한다.교육, 더 엄밀하게 대학입시(또는 명문대 입학)는 우리사회에서 계층이동의 거의 유일한 사다리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모든 국민은 대학입시에 최소한의 공정성은 담보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와중에 '어떻게 해서든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조국가족류의 특권세력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하지만 우리는 좀 더 평등하게'를 되뇌이며 사회를 좀 먹는다.교육계의 이상과 현실 사이 괴리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저자 알렉스 비어드는 영국 런던의 한 학교에 교사로 부임할 때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같은 선생님을 꿈꿨다. 하지만 기대는 무너졌고 아이들을 간신히 중등교육자격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을 받게 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가 글로벌 교육네트워크 '터치 포 올'에 가입하고, '미래의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21세기에 필요한 인재 역량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 이유이다.이 책에는 알렉스가 2년간 전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형태의 교육기관을 탐사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의 여정은 크게 세가지 과정으로 나뉜다. 첫째는 인간이 어떻게 배움에 이르는지, 우리 뇌의 능력은 어디까지이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지를 살펴보는 '새롭게 생각하기'이다. 둘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위한 교육에서 가장 필요한 것들을 찾아나가는 단계인 '더 잘하기'이다. 마지막 단계는 '더 깊이 관심 갖기'로 정리할 수 있다. 교육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재정립하고자 한 것이다.실리콘밸리 로켓십 페르자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교사 없는 교실인 러닝랩에서 노트북 앞에서 헤드폰을 쓰고 스스로 학습한다. 설립자 프레스턴 스미스는 아이들 각자 수준에 맞는 개별 학습이 가능하고, 기초적인 과정을 기계에 맞김으로써 교사들이 더 효율적이고 창조적인 부분에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을 제시한다.영국 런던 킹 솔로몬 아카데미(KSA)의 설립자 맥스 하이멘 도르프는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학습 능력이 뒤떨어지는 아이들을 선발해 성적을 최상위로 끌어올리는 놀라운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모든 아이들에게 적절한 지원·기대·환경만 갖추어진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KSA의 규율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비난이 있기는 하지만,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그 규율을 잘 따른다.세계적인 IT 인재 전문교육기관 에꼴42(프랑스)는 코딩 능력과 창의성, 협업을 강조한다. 이곳에는 교사, 학비, 입학 자격 조건 자체가 없다. 오직 미래 사회에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꼽히는 코딩교육에만 집중한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현재 IT 분야 고소득 직종에 취업하고 있다.런던의 스쿨21은 아이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내는 데 주력한다. 사회에서 맞부딪치게 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실질적인 것들을 만들어낼 능력에 집중하는 것이다. 머리(지식)와 가슴(인성), 손(기술, 행동력)을 균형 있게 발달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웅변·투자·손재주·전문성·생기·뛰어난 기량이라는 6가지 기둥을 중심으로 교육한다.이뿐이 아니다. 품성 개발에 중심을 두는 브레이크스루 마그넷 스쿨,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키자니아, 핀란드 예술교육의 산실 히덴키벤 종합학교, 창의력을 키우는 몬테소리 학교,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MIT 미디어랩….제 각각 목표도 다르고 운영 방식도 달랐다. 획일적 평준화 교육방식은 아이들의 미래교육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교육의 공통점이 있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생님'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는 교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대우하는 학교였다. 교사들이 스스로를 '단순히 월급 받는 노동자'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아이들의 행복과 미래는 없는 셈이다. 학생들의 다양성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시스템 없는 사회 역시 미래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 또한 명확하다.이 책은 우리 한국사회의 교육제도와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 방향, 그리고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한다.560쪽, 1만7천800원.

2020-02-01 06:30:00

[반갑다 새책]이덕일의 한국통사/이덕일 지음/다산초당 펴냄

'땅은 반도에서 대륙과 열도로 확장을, 시간은 5천년에서 7천년으로 연장된 한국사의 시공간을 다시 찾다.'지은이 이덕일은 조선 노론이 망한 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노론사학이 식민사학으로 변신해 횡행하고 중국의 역사공정에 의해 실재했던 우리 역사마저 축소되는 현실을 보면서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하고, BC 4천500년경에 설립했던 홍산문화에서 1910년 대한제국 멸망기까지 식민사관과 소중화주의에 의해 숨겨지고 뒤틀려 있던 역사를 바로잡고 있는 그대로의 한국통사를 다시 복원했다.요하문명은 중국 하북성·내몽골·요녕성 일대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동이족 문화를 뜻하는데, 세계 4대문명이라는 황화문명보다 1천년 정도 빠르다. 이 요하문명에서 중요한 것이 홍산문화이다. 홍산문화는 1908년 일본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가 내몽골 적봉 일대에서 많은 신석기 유물과 동이족 무덤이 돌로 쌓은 적석총을 발견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중국은 홍산문화를 중국 고대 오제의 첫 인물이자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黃帝)의 후손인 황제족의 문화라고 주장했지만, 지은이에 따르면 황제의 아들 소호가 동이족이라는 점에서 황제는 동이족일 개연성이 높다. 이는 곧 세계 최고(最古)문명인 홍산문화가 동이족과 관련성이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지은이는 또한 고구려 초기 중심지와 건국연대를 수정하고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모순도 지적한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지도가 토끼모양이라고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고려와 조선이 국경선이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에 있었던 점을 지적, 그동안 역사적 지식에 대한 왜곡을 비판하고 있다.지은이 이덕일은 역사학자로서 사료에 대한 세심한 고증과 대중과 호흡하는 집필가로서의 감각과 날카로운 문체로 한국사에서 숨겨져 있고 뒤틀려 있는 가장 비밀한 부분을 건드려 왔다. 572쪽, 2만8천원

2020-02-01 06:30:00

행복북구문화재단 태전도서관은 이달 20일부터 31일까지 대구 북구청 중앙현관 로비 에서 '나 만의 그림책' 전시회를 연다. 행복북구문화재단 제공

'난처한 그림책 작가전' 이달 말까지 대구 북구청 로비에서 계속

행복북구문화재단 태전도서관은 이달 31일까지 대구 북구청 중앙현관 로비에서 '단 하나뿐인' 그림책 전시회를 연다.이번 전시회에서는 지난해 태전도서관 수강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림책을 제작해 선보인다. 출품작은 20여 점이다.특히 미세스 도티(본명 신혜리)란 필명으로 출품한 '새콤달콤 쌍둥이 이야기'는 태아에서부터 쌍둥이의 성장과정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려 눈길을 끌고 있다.태전도서관 관계자는 "앞으로도 주민 맞춤형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해 주민의 자기 개발에 힘쓸 것"이라며 "내 이웃이 땀과 열정으로 만든 작품을 많은 분들이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한편 태전도서관은 미래의 작가를 양성하기 위한 '별별 그림책 어린이 작가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연말에는 전국 146개 도서관에서 3천753명이 참가한 '책 속 인물에게 보내는 한글 손편지 공모전'에서 대상(이채민·동평초)을 수상한 바 있다.

2020-01-21 11:47:49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부산 출신 이옥선 할머니가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 선고 관련 뉴스를 시청한 후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강일출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 29명과 유족 12명이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각하 결정했다. 연합뉴스

일본은 왜 식민지 역사를 외면하나?…'역사 피로감'의 실체

지난해 출판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반일 종족주의'에 정면으로 맞선 신간이 출시됐다.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은 '반일 종족주의' 수요 현상의 실체는 일본 우익세력이 주도하는 역사수정주의가 한국에 수출된 뒤 일본 자본에 의해 다시 역수입돼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의 부활에 이용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특히 이 책은 야스쿠니 신사, 전후 협정 등 일본 근현대사의 핵심주제를 파헤쳐 일본 우익세력의 왜곡된 주장을 드러내면서 일본 전체를 '악의 세력'으로 매도하기보다는 일본 내 양심세력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일본은 왜 식민지 역사 외면하나?일본 내에 팽배한 '역사 피로감'이라는 말은 주로 일본 우익세력의 입에서 나오지만, 일본인 다수의 정서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전쟁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일본인마저 '일본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일본 정부가 한일 역사 문제 해결 과정에서 자국에 곤란한 사실은 숨기는 등 이중적인 여론 작업을 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일본은 여러차례의 사죄 기회를 저버림으로써 역사를 반성할 기회마저 잃고 말았다. 도쿄재판,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965년 한일기본조약 등 식민지배 사과와 배상이 이뤄질 수 있는 기회마다 일본은 매번 책임을 회피하면서 오히려 식민지배를 부정하는 논리를 펴고 '사죄할 일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위안부 역사를 보편적 인권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자국에게만 유리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일본 우익세력의 편협한 종족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특히 '반일종족주의'는 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시기의 경제발전에 대해 일본 극우세력의 입장을 베끼다시피 했다고 책은 지적하고 있다.◆돌아온 일본 극우세력일본에서 다시금 극우세력이 패권을 장악한 것은 90년대 이후 이어진 긴 불황과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태 등 재해의 결과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대규모 재해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일본에 '위대한 일본의 재건'을 주창한 아베 총리가 등장하면서 '강한 일본'을 동경하는 일본 국민들의 제국주의적 노스텔지어를 자극했다는 것이다.일본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보수를 대신할 새로운 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사회당‧민주당 등 제도권의 야당 세력은 동일본 대지진을 거치며 해체하거나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고, 안보투쟁 등 주요한 계기가 되었던 사건들에서 패배해온 역사도 대안세력을 더욱 위축시키고 말았다.이런 현실 속에서 정치적 대안을 갈망하는 일본 국민의 이성적이고 진보적인 선택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일본의 민주주의의 회복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전망하고 있다.◆한일 관계 해답은? 결국 '연대'저자가 이 책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결국 '오늘날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이다.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 시민세력과 연대를 맺는 것 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우리가 잘 몰랐던 일본 사회의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바탕으로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재일조선인 문제 등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일본 사회의 변화와 직결되어 있으며, 촛불혁명을 거친 한국 사회운동과 지역사회 운동에서 단단한 경험을 가진 일본 사회운동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충분히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다.'한국에게 일본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잠시 고민해보자. '동반자' 혹은 '라이벌'과 같은 단편적인 단어로는 한일 관계를 정의하긴 힘들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일본을 포기한다면 미국·중국 등 강대국의 대립에 끼어 영원히 분단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반목·갈등을 넘어선 협력·연대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근대사 문제가 한일관계의 위기가 된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양국 시민사회의 연대를 새롭고 공고하게 다질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88쪽, 1만6천원.

2020-01-18 06:30:00

[책]소셜임팩트

[책] 소셜임팩트

[소셜임팩트]이상일·최승범·박창수 지음/ 한국경제신문 한경BP 펴냄 기업이 오랫동안 번성하기 위해서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자의 효용을 극대화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세상이 바뀌었고, 또 급속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미국의 대표적 캡슐커피 회사 '큐리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소비자들의 인기에 힘입어 고성장을 거듭하던 큐리그는 프라스틱 캡슐용기 쓰레기 배출에 따른 환경오염 개선 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바람에 소비자들의 못매를 맞고 6분기 연속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고 말았다. 세계 최고의 유니콘 기업으로 현대자동차의 2배가 넘는 기업가치를 자랑하던 차량공유 서비스 기업 '우버'는 2017년 갑자기 창업자가 무기 휴직에 들어가고, 임원들도 줄줄이 사퇴했다. 사내 성희롱과 갑질논란 탓이다.이같은 사례는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항공사인 대한항공이 오너일가의 갑질논란으로 위기를 맞았고,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호식이두마리치킨 역시 같은 이유로 위기를 겪고 있다.◆사회적으로 유익한 기업이 선택 받는다과거의 기업과 브랜드가 상품적 혜택과 감성적 혜택을 주는 것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으로 유익한 기업과 브랜드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 소비자가 소비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소비자'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오늘날 소셜임팩트(사회적 평판)는 구글 검색에서 17억 건이나 쏟아져 나올 정도로 폭발적으로 회자되는 단어가 되었다. 긍정적 영향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소셜임팩트는 ▷조직·지역·세계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 ▷지속가능성이 있을 것 등 2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기업이 지구적 차원의 환경문제와 인권, 빈부격차 해소 등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던 가치추구의 시대가 있었다. 기업이 환경단체나 인권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소비자들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인권단체에 기부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을 직접 채용하라고 요구한다. 기업이 직접 인종간 남녀간 임금격차를 줄이고, 소수자의 임원 비율을 높이라고 요구한다. 이제 '가치'를 넘어 기업의 '존제 목적'이 사회와 소비자들에게 유익한지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경제력 갖춘 오피니언 리더, 소셜임팩트 주도소셜임팩트의 거대한 파도는 일부 선진국을 비롯한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니다. '2019년 소셜임팩트 국민의식 및 사회적 신뢰 브랜드' 조사(2019년 7월 입소스코리아)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87%가 비재무적 평가, 즉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하는 것에 대해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한 '제품을 구매할 때 기업의 사회적 평판에 영향을 받는다'는 응답이 82.8%에 달했다.소셜임팩트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면, 지속가능한 성장과 번영을 바라는 기업은 과연 누가 소셜임팩트를 주도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관심이 높은 소셜임팩트 주도층은 전체 국민의 34.3%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수도권' '남자 40~50대' '여자 30~50대' '대졸 이상 고학력자' '화이트칼라' '주부' '월 500만원 이상 고소득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제품 구매력도 높으며, 소위 오피니언 리더 그룹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여기에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소셜임팩트가 지속가능한 사회에 목적을 둔 시대적 흐름이라면 굳이 경제영역의 활동에만 국한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소셜임팩트의 핵심 정서는 공감이며, 환경·윤리·인권·불평등의 문제를 일부 사람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직접 행동에 나서고 공유하면서 세상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그 출발선이다.◆소셜임팩트, 정치도 예외 아니다때문에 정치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소셜임팩트의 프리즘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포퓰리즘을 바라보면, 기존의 엘리트 정치가 외면한 대중의 목소리가 뭉쳐진 결과일 수 있다. 부의 크기나 교육 수준과 무관하게 참정권이 모든 시민에게 주어진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 시민, 대중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정치가 끌려가는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등장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엄청난 혼란과 시련을 맞고 있다. 자유·보수·우파의 위기도 심화하고 있다. '소셜임팩트'와 '포퓰리즘'의 화두는 비단 기업 경영에서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자유·보수·우파에게도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낡은 과거의 성장논리 만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개척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76쪽, 1만6천원.

2020-01-18 06:30:00

[책] 대중지성, 소세키와 만나다

[반갑다 새책] 대중지성, 소세키와 만나다

대중지성, 소세키와 만나다박성옥 지음/ 북드라망 펴냄감이당 감성프로그램의 결과물인 감성(감이당 대중지성)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감성프로그램은 봄-여름-가을-겨울 4학기를 1년 코스로 철학·문학·인류학 등 고전을 읽고 쓰고 낭독하는 프로그램이다. 고전 중 하나를 선택해서 거기에 담긴 지혜와 비전을 우리시대의 삶의 현장에 생생하게 연결하는 글쓰기를 지향한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 대중이 인문학을 깊이 공부하면서 자신의 삶과 고전을 연결해 내는 셈이다.저자 박성옥은 감이당 대중지성에서 공부하기 위해 잘 나가는 학원사업을 접었다. 4년 간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인문학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일본의 근대를 연 작자 나쓰메 소세키를 만났다.이 책의 부제는 '현대인의 불안과 소세키의 질문들'이다. 소세키 소설의 매력은 한마디로 말하긴 애매하지만, 인간의 심연을 투사한다고 할 수 있다. 옆에서 누가 암에 걸렸다고 해도 당장 내 손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고, 배짱 없고 우유부단한 사람이 겪는 마음의 지옥을 보여준다.인간의 마음을 믿을 수 있는지, 죄의식에서 자신을 구원할 길은 있는지, 결혼의 엉킨 실타래를 풀 단서는 있는지, 세상과 섞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현대인의 불안에 대한 소세키의 질문과 그 대답을 소세키의 소설 속에서, 또 필자의 삶 속에서 찾아보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소세키와 새로운 만남을 경험할 수 있다.대책도 없이 그냥 현실을 도피하고 싶다는 절박감에 강력히 사로잡혀 삶의 밑바닥으로 전락하는 19세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갱부', 소세키 작품 중 가장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분량도 많으며, 가장 드라마틱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명암' 등이 소재가 된다. '명암'에는 노골적으로 반목하는 시누이와 올케, 은밀하게 신경전을 펼치는 부부, 남의 인생에 끼어드는 오지랖 대마왕, 과거를 빌미 삼아 삥을 뜯는 친구를 비롯한 온갖 인간군상들이 등장한다. 248쪽, 1만4천500원.

2020-01-18 06:30:00

스무살, 나답게 산다는 것

[책 체크] 스무살, 나답게 산다는 것

영남대 신입생들에게는 다른 대학에서 좀처럼 맛 보기 힘든 특권이 있다. 매년 봄학기가 시작되면 500명의 학생들이 들을 수 있는 대규모 교양강좌 '스무 살의 인문학'이 펼쳐진다.스무 살의 청춘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각은 다양하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청춘이 삶을 끝까지 스스로 살아내는 것, 살아가는 것이 스스로에게 '답'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이 책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존-기성의 '썰'과 '카더라'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의 길을 외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뚜벅뚜벅 걸어가라고 권한다. '나답게' 산다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나답게 죽어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나아갈 방향을 못잡고 허우적거릴 때, 이미 청춘을 겪은 선배들의 조언은 인생의 네비게이션이 될 수 있다. 물론 최종 목적지에 대한 선택은 청춘 본인에게 달렸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교양학부), 백승대 영남대 교수(사회학), 박일우 계명대 교수, 허재윤 국악예술단 동동 대표, 김훈호 순천대 교수(중어중문), 남정섭 영남대 교수(영어영문), 최문기 경산 M피트니스 대표, 임병덕 영남대 교수(기계공학), 함성호 건축가·시인, 이현 영남대 교수(성악과), 박철홍 영남대 교수(교육학)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224쪽, 1만3천원.

2020-01-18 06:30:00

오철환 신임 대구소설가협회장

[인터뷰] 오철환 "현진건 현창 사업 원고료 인상 추진"

"현진건 선생을 현창하는 사업에 좀 더 주력할 계획입니다. 현진건 선생은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로서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이 일본제국주의의 회유와 압력에 굴복했던 것과 달리 끝까지 절개를 지킨 드문 인물입니다. 이상화 시인과 더불어 대구의 정신과 기개를 대표할 만한 문학인입니다."오철환 신임 대구소설가협회장 겸 현진건문학상 운영위원장은 16일 인터뷰에서 "현진건 선생은 일제 강점기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우리 민족의 비참한 삶과 가난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 일제에 저항했다"면서 "대구 정신과 기개의 재발견이라는 측면에서도 지방정부 차원의 현창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현진건 선생은 대구의 유복한 가정 출신이었지만, 형제들이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동아일보 사회부장 시절 손기정 선생의 올릭픽 마라톤 금메달 수상 사진에서 일장기를 없애버린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역이기도 하다.신문사에서 쫓겨난 현진건 선생은 실업자로 지내며 민중들의 비참한 삶을 처절하게 경험했고, 이같은 생생한 체험은 그의 작품 세계를 구성했다. 그러나 혹독한 가난과 핍박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일제의 회유에 굴복하지 않았다.오 신임 회장은 또 "소설은 특성상 전업을 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작품을 쓰기 어렵다"며 "소설가들의 문학 활동을 활성화 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원고료 인상'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대구 소설가들 간의 교류 활성화와 화합, 청년작가의 발굴 역시 새 집행부의 과제라고 말했다. 혼자 작업하는 소설의 특성상 회원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지만, 교류를 더욱 활성화 함으로써 어려움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오 신임 회장은 대륜고와 영남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구시의원(6·7대)을 지냈으며, 현재 대구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근로자예술제 수필부문 당선을 시작으로 대구문학 신인상(수필), 문학세계 신인상(소설), 대구문학상을 수상했다. 임기는 올해부터 3년 간이다.저서로는 소설집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오늘' '검은 옷을 입은 여자', 스토리텔링집 '대구는 살아있다', 수필집 '아직도 할 일이 많다' 등이 있다.

2020-01-16 13:51:53

2020 매일신춘문예 시상식이 15일 오후 매일신문 8층 강당에서 열렸다. 강복영(동시 부문), 김옥자(수필 부문), 최란주(시 부문), 정승애(희곡 부문), 고수경(단편소설 부문), 나동광(시조 부문), 송선금(동화 부문·앞줄 왼쪽부터) 씨 등 각 부문 수상자들이 매일신문 이상택 사장, 심사위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2020 매일신춘문예 시상식…고수경 씨 등 작가 7명 배출

2020 매일신춘문예 시상식이 15일 오후 매일신문 8층 강당에서 열렸다.2020 매일신춘문예에는 7개 부문 4천652편이 접수됐으며, 7명의 신인 작가를 배출했다.단편소설 부문에 고수경(29) 씨가 '옆사람', 시 부문에 최란주(53) 씨가 '남쪽의 집수리', 시조 부문에 나동광(63) 씨가 '비누, 마리안느와 마가렛', 동시 부문에 강복영(61) 씨가 '응', 수필 부문에 김옥자(56) 씨가 '아버지 게밥 짓는다', 동화 부문에 송선금(45) 씨가 '하늘을 달리다', 희곡·시나리오 부문에 정승애(21) 씨가 '32일의 식탁'으로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매일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고수경 씨는 현진건문학상 신인상 수상의 영예도 함께 안았다.시상식에서 박기섭 시조시인 등 심사위원들이 참석해 수상자들에게 축하를 전했다. 박방희 대구문인협회 회장과 최규목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박미영 아트센터 달 대표를 비롯해 송일호 소설가, 도광의 시인, 이정환 시조시인 등이 시상식을 찾아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고수경 씨는 "신춘문예 당선으로 많은 축하를 받았고 오늘 시상식에도 모든 가족과 지인들이 모여 축하해주시니 마치 소설과 저의 결혼식 같은 느낌이 든다"며 "앞으로 소설과의 전쟁 같은 부부 생활을 열심히 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이상택 매일신문 사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신춘문예 출품작은 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인간의 자기 표현 욕구,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공간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문인들께서는 힘든 순간마다 오늘의 영광을 기억해주시고 정진해주시길 바란다"고 축사를 전했다.

2020-01-15 17:13:09

일본에서 K-문학(한국문학)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주역 김승복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 '쿠온' 대표의 특별강의가 17일 오후 7시 대구 동구 율하동 반계공원 산책로 작은서점에서 열린다. 사진은 관련 포스터.

일본 속 K-문학 열풍 주역, 김승복 대구 특별강연

일본에서 K-문학(한국문학)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주역 김승복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 '쿠온' 대표의 특별강의가 대구에서 열린다.17일 (금) 오후 7시 대구시 동구 율하동 반계공원 산책로의 작은 서점(동네책방협동조합)에서 열리는 이번 강연의 주제는 '문학의 힘은 어떻게 국경을 넘어서는가'이다.김승복 '쿠온' 대표는 일본 도쿄 한복판 고서점 거리인 진보초에서 서점 '책거리'를 함께 운영하면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일본어로 번역해 1만 부 넘게 판매하는 등 한국 드라마와 한국 가요에 이어 한국 문학으로 일본인의 감성을 사로잡고 있다.특히 지난해 7월부터 본격화 한 한국의 노재팬 열기에도 불구하고, 김승복 대표는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K-Book 페스티벌을 성황리에 개최했다.동네책방협동조합 박주연 씨는 "겨울방학을 맞아 자녀들과 더불어 일본 속 한국문학의 열풍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의 053)982-0100.

2020-01-14 11:44:51

최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글판에 대구 출신 작가의 새해를 맞이하는 희망찬 의지를 담은 글귀가 걸렸다. 박상희 씨 제공

"새 하늘이 밝다"…대구 시인 박상희 작품, 새해 글판 장식

"새 하늘이 밝다. 웃음을 가득 담아 보자."경자년 새해를 맞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글판에 대구 시인의 새해를 맞이하는 희망찬 의지를 담은 글귀가 걸려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이는 대구 시인이자 작가인 박상희 씨의 작품이다. 해당 글귀는 박 씨의 '새해 아침'이라는 시에 등장하는 구절로 이달 말까지 글판에 전시된다.박 씨는 "2007년쯤 새해를 맞으면서 쓴 시"라며 "살다 보면 좋은 일도 많지만 힘든 일도 많다. 해가 바뀌는 만큼 새 마음 새 뜻으로 웃음이 가득한 새해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박 씨의 다른 작품도 2014년 수원시청 희망 글판에 소개된 적이 있다. 당시 글판에 실린 '지친 나그네 덥석 주저앉아도 초록으로 다독다독 감싸주렴'이라는 문구는 '여름 숲'이라는 작품의 한 구절이다. 따뜻한 위로를 담은 이 문구는 서울 동대문구 글판, 용산 전쟁기념관 글판도 장식했다.박 씨는 1952년 칠곡 출생으로 수필 '운명이었을까'로 2003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같은 해 시 '민들레 홀씨 되어'로 한맥문학 신인문학상도 받았다.작가는 경북문협 공로상, 황희문화예술상, 매월당김시습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시집 '숲은 밤새 품었던 새를 날려보낸다', 수필집 '밤하늘에 등불 하나 걸어두고'가 대표작이다. 현재는 블로그 '이슬나라 시인 박상희'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박 씨는 "비록 시의 짧은 한 구절이지만 누군가가 이를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내가 쓴 글이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20-01-12 17:21:08

신간 '배움의 발견'

[책] 배움의 발견/타라 웨스트오버 지음/열린책들 펴냄

열여섯 살까지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는 독학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해 1년 만에 미국 유타주 브리검 영 대학에 입학해 최우등으로 졸업했고 명문대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내내 장학금을 받아 가며 공부해 28세로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미국 아이다호주 산골 출신 타라 웨스트오버가 쓴 '배움의 발견'(원제 Educated)은 우리네 흔한 입시 성공담과 얼핏 비슷해보이지만 그의 인생은 한국의 평균적인 또래 청년들은 경험하지 못할 난관의 연속이었다.타라는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로서 정부와 병원, 교육 시스템을 사탄 또는 사회주의자 기구라고 불신한 아버지는 자식들이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보내지 않고 출생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타라의 가족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폐철처리장에서 폐기 처리된 자동차와 고물 등을 절단하고 재분류하는 고된 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아버지의 성격을 물려받은 오빠 션은 화가 나면 타라의 팔을 등 뒤로 꺾고 얼굴을 변기에 처박는 폭력을 행사했다. 타라는 이 집과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뿐임을 깨닫는다. 배움이란 새로운 인생을 향한 문이나 다름 없었다.미국 대학입학시험(ACT)을 준비해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곳은 브리검 영 대학이었다. 기초 학력 부족과 돈 문제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타라는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마침내 교수 추천으로 케임브리지대학 대학원에 장학생으로 진학했으며 역사학 박사가 됐다. 그러나 이는 이 책의 결말이 아니다.타라는 가족들 앞에서 션 오빠의 폭력을 폭로하고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많은 가르침이 옳지 않았음을 선언하지만 종교적 확신을 가진 부모와 가족은 타라에게서 등을 돌렸다.이 책은 한 여성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투쟁의 이야기다. 타라에게 배움은 단순히 좋은 대학에서 학위를 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고 더 넓게 보는 눈을 뜨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이었다.타라의 인생 이야기는 어떤 소설보다 극적이지만 결론은 그다지 '소설적'이지 않다. 인생이란 소설처럼 어느 시점에 덮고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0년, 아니면 20년 뒤가 될지 모르지만 타라의 그 뒤 인생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김희정 옮김. 520쪽. 1만8천원.

2020-01-11 06:30:00

[책] 국가와 공직

국가와 공직에 대해 쉽고 재미있는 책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이 책은 ▷국가는 國家 ▷제2장 국가는 헌법인 ▷국가와 국민 ▷국가의 통치기구 ▷국가와 극장모형 ▷공직과 인생2막 ▷사명자의 길 ▷대통령과 인사정치 ▷내가 본 이명박 대통령 ▷인생3막을 시작하며 등으로 이뤄졌다.이 책은 국가가 무엇이며 국민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라는 기본적 질문에 적절하게 대답하고 있다. 먼저 한자어 '국가(國家)'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국가가 설립된 배경과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는 헌법과 함께 존재하는 인격체라는 측면에서 '헌법인(憲法人)'의 개념을 도입해 국가를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국가의 사명은 국경을 튼튼하게 지켜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체 특히 국민이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뺏길 걱정 없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면서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17쪽)지은이가 말하는 국가에 대한 정의는 모든 공직자와 국민이 새겨들을 만한 대목이다.지은이는 국민이 국가를 잘 알면 국정의 책임성을 확보하는 초석이 된다고 강조했다. 국정을 맡아 수행하는 공직자는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신탁을 받은 대리인이라는 것이다. 대리인이 투철한 국가관과 공직관 위에서 윤리관이 확립돼 있다면 국민은 기꺼이 세금을 낼 것이다.지은이는 효과적인 행정통제는 국정운영의 핵심 정보와 메카니즘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했다.이 책은 지은의의 학문적 성과와 공직 경험의 산물이다.지은이는 1980년부터 33년간 중앙정부에서 일하면서 국정운영 시스템을 다양하게 체험했다. 특히 공직생활의 마지막 5년간 이명박정부의 청와대 인사비서관과 인사기획관을 역임하면서 국정 전반을 바라볼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공직자의 자세는 물론 총무처와 중앙인사위원회 등에서 행정실무를 담당하면서 내재화된 공직윤리의 모형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2020-01-11 06:30:00

너에게 가는 길_하승미

[내가 읽은 책]쉼표 한 잔

너에게 가려 한다. 내 안의 나인 너, 지금보다 나은 나인 너를 향해 간다. 아직 너에게 닿지 못했으니 오늘도 걷는다. 내일도 꾹꾹 눌러 걷는다. 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른 길을 낼 뿐입니다(5쪽). 수필의 샛길 하나 내고 싶다는 이미영 작가는 대구사람이다. 2019년 '빛나는 수필가 60인'에 선정된 그녀는 201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2년 동리목월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두 번째 수필집인 『너에게 가는 길』은 글쓰기 전부터 사용한 그녀의 닉네임이다. 매일 읽고 생각하며 즐겁게 쓰는 삶을 통해 하루하루 더 나은 내가 되기를 소망하는 저자의 글 속에는 사람의 향기가 가득하다.41편의 수필은 '돌이 기도한다, 삼김시대, 간병일기, 포장의 달인, 어름' 다섯 묶음으로 모여 있다. 수필들 사이를 산책하다 보면 나에게로 가는 걸음, 가족을 위한 두 손, 그리고 이웃을 향한 눈빛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나에게로 가는 걸음. 「갱년기 여행」을 통해 가 본 적 없는 길을 아는 채 하지 않는 경구로 삼을 줄 아는 작가는 복이 와서 웃는 것이 아닌 웃으면 복이 오는 「포장의 달인」을 꿈꾼다. 험한 산을 넘고 고산병까지 견뎌야 갈 수 있는 바다 「성숙해」는 황하의 발원지를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다. 삶의 구석구석에서 더 나은 나, 너에게 방점을 두고 매 순간 싸우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누가 좀 알아달라고 시를 외우고 책을 뒤적이던 나를 생각한다(120쪽. 「별을 새기다」 中). 말의 속성이 입술의 성질을 닮은 것이라면 거울을 꼭 챙기고 다니면 큰 탈은 없으려니 싶다(51쪽. 「입」 中).가족을 위한 두 손. 병환으로 날로 쇠약해져 홀로 걸을 수 없는 아버지에게 커플 댄스를 추듯 걷자고 손을 내민다. 한 쌍의 두루미가 춤을 추면 주변의 다른 녀석들도 춤추게 만들듯 잿빛 병실에 손을 잡고 군무를 이루도록 그녀는 자꾸만 「춤을 추겠소」 한다. 병간호가 삶의 일부인 이들은 가족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를 부단히 지고 가는 「간병 일기」의 주인공이다.나는 오래전 내가 돌아가고 싶었던 집이 되어 있었다. 익숙한 냄새를 풍기며 주문하지 않아도 입맛 당기는 밥상이 알아서 나오고 마음이 놓여 절로 잠이 쏟아지는 그런 터가 되었다(13쪽. 「집이 되다」 中).이웃을 향한 눈빛. 꼬리부터 먹을지 머리부터 먹을지 찬바람 가르며 고민하던 붕어빵을 구워내던 동네 맛집 「황금마차」가 돌아오지 않음이 애석하다. 허전한 속을 삼각김밥으로 달래는 입시지옥의 학생, 직업훈련 중인 아이, 립스틱 짙은 친구는 모두 같은 거리 「삼김시대」를 살아가는 동네 아이들이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일상 안에 우린 함께 서 있다. 누군가의 절실함을 바로 앞에서 외면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다. 중학교 때 짝꿍이 노동시장으로 내몰렸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시위대 중간에 그 애가 낀 것 같아서 더 그렇다(153쪽. 「건너편에 서 있다」 中) 느리게 읽자. 한 번에 다 읽기보다 한 편 읽고 음미하고 또 하나 보고 생각에 잠기길 바란다. 화장실이나 식탁, 자동차 어딘가에 두고 잔잔한 쉼표 한 잔 마시고 싶을 때 꺼내 들면 좋겠다. 기계같은 일상에서 나와 우리에게 다가설 수 있는 따스한 바람 한 줌 선사하고 남을 터이다.하승미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20-01-11 06:30:00

우리 몸과 각 신체 기관.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책] 우리 뇌의 8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유전자에서부터 언어 능력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몸은 한 편의 경이로운 작품이나 다름 없다. 우리는 하나뿐인 몸으로 평생을 살아가지만 정작 몸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몸의 구성요소를 촘촘히 분석하고 몸을 잘 쓰기 위한 유의사항을 빽빽한 한 권의 책에 실은 내 몸 사용설명서. 신간 '바디 : 우리 몸 안내서'는 우리의 몸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얼마나 놀라운 치유 능력을 가졌는지, 또 얼마나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를 군더더기 없는 명쾌한 문체로 담아냈다.이 책은 무지와 무관심으로 스스로 몸을 망치고 있는 우리에게 따끔한 질책과 유용한 가르침을 동시에 제공한다.◆색다른 접근, 숫자 활용…저자의 표현법저자는 우리 몸의 각 신체 기관과 생리 현상 등을 모두 23개 장으로 나눠 차례로 설명해나간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몸에 대한 신비하고도 인상적인 사실들이 쉼없이 열거되는데, 이는 기승전결이라는 서사적 구성에 기대지 않은 심심한 전개의 자연과학 서적임에도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한다.사람의 몸을 만드는 59가지 원소, 우리 몸에서 가장 큰 기관인 피부, 약 80%가 물로 이뤄져있는 뇌, 균형을 잡으며 중력에 끝없이 맞서야만 가능한 직립보행,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잠, 엄청난 확률을 뚫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임신. 이처럼 저자는 익숙하게만 여겨졌던 우리 몸에 대한 색다른 접근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저자는 몸에 대한 묘사에 숫자를 적극 활용한다. 예컨대 '평균적인 몸집의 남성은 소화관의 길이가 12m에 이르며, 남성의 경우 음식물이 입에서 항문에 도달하는 데에 평균 55시간이 걸린다'는 식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뇌는 우리 몸무게의 2%를 차지할 뿐이지만 에너지의 20%를 쓰는데, 뇌의 피질 1㎣는 2000TB의 정보를 저장한다'는 류의 과학적 사실들은 숫자로 표현되면서 더욱 명확하고도 흥미롭게 다가온다.◆인간의 주요 관심사 '성'과 '암' 톺아보기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인간의 주요 관심사인 성과 암에 대한 내용이다. 책은 우리의 몸의 가장 큰 수수께끼인 성과 생식 기관을 면밀히 들여다본다. 인류는 놀라울 만큼 최근에야 성염색체를 알게 되었고, 여전히 남녀의 생식기에 대해서는 놀라울 만큼 아는 것이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염색체가 발견된 것은 1880년대지만 정확히 남녀의 성별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는 무려 100여년이 지난 1990년에야 알아냈다.무병장수가 꿈인 인간의 최대 고민거리인 암에 대해서도 다룬다. 20세기 초 암보다 무서운 것은 파상풍, 익사, 광견병이었지만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상당수의 질병이 정복되고 수명이 길어지면서 암은 인류의 가장 무서운 적으로 떠올랐다. 저자는 암을 '섬뜩하게도 자신을 죽이려고 최선을 다하는 자신의 몸'이라고 정의했다. 암은 나이, 생활습관, 환경 노출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운이 나쁘다'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이와 무관하게 발병되기도 한다.◆몸에 대한 속설 탐구…책의 또 다른 묘미저자는 상식처럼 알고 있었던 '하루에 1만 보를 걸으면 건강해진다'거나 '하루에 물을 8잔 마셔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룻밤에 7~9시간을 자야 한다'는 등의 속설들도 파헤친다.이 책을 통해 파킨슨·알츠하이머 등 낯선 질병에 대한 정보와 '곰은 사실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조류와 해양 포유류는 뇌의 절반만 잠을 잔다' 등 인간과 동물의 몸에 관한 새로운 사실과도 조우하게 된다.'인간은 왜 잠을 자야 할까' '하품은 피로와 관련이 있을까' 등의 의문점에 대하여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고 설명하는 구절은 책의 전반에 걸쳐 수없이 등장한다. 우리 몸에 대해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의미다. 이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자 경이로운 세계인 우리 몸에 대한 연구와 탐험을 이어나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베스트셀러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의 역사를 집대성했던 저자 빌 브라이슨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을 몸의 세계로 초대한다. 브라이슨은 특유의 재치 넘치는 표현력과 정보의 바다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진실을 선별하는 통찰력으로 몸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펼쳐낸다. 576쪽, 2만3천원.

2020-01-11 06:30:00

판례로 본 송대사회

[반갑다 새책] 판례로 본 송대사회/임대희 경북대 교수 엮음/민속원 펴냄

송나라 인종 시절 판관이었던 포청천의 공명정대한 판결을 다룬 드라마 '포청천'. 이처럼 중국에서 송대(宋代)의 법 제도와 판결을 주제로 당시 시대를 조명한 드라마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작품은 대중적 인기를 끄는 데도 성공했다.국내에 발간된 책을 통해서도 송나라 시대상을 엿볼 수 있게 됐다. '판례로 본 송대사회'는 송대의 판례가 담긴 '명공서판청명집(이하 청명집)'을 연구한 21편의 학술논문을 엮은 책이다. 당시의 민사법과 가족제도·형벌과 사법제도 등에 관한 판례와 사료가 실렸다.엮은이 임대희 경북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제자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꾸려 청명집을 심층 연구했으며, 그 연구 결과가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완성된 셈이다.중국 문화가 꽃피었던 송나라 시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다투고 송사를 벌였을까? 이 책은 여러 재판 사례들을 통해 당시 생활상과 사람들의 이해관계·제도의 운영실태 등을 생생하게 담았다.특히 책에는 당시 부동산 거래 계약서 위조 양상이나 송나라 여성의 재혼과 재산 문제 등 우리네 현실과 가까운 판례도 소개돼 공감을 끌어낸다.전통시대의 법률은 역사 속에서 지나간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현행 법률에서도 형식으로나마 남아 있다. 중국의 현행법이 서구의 요소를 많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형식적인 틀에서는 중국 전통법의 형식을 갖고 있는 점이 많다. 그런 점에서 중국 전통법의 운영과정에 대한 이해를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엮은이는 말한다.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더라도 청명집이라는 하나의 사료를 깊이 연구한 결실이라는 점에서 국내 학술사에서 높이 평가될 만한 작품이다. 특히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894쪽. 8만5천원.

2020-01-11 06:30:00

선비, 그 위대한 뿌리

이상길 대구부시장이 쓴 책 '선비, 그 위대한 뿌리'

문화탐험가를 자처하는 이상길의 이 책은 단순한 기행문이나 답사기가 아니다. 생각하는 여행, 살아 움직이는 답사, 기억의 반추와 삶을 전망하는 여행과 답사의 전형을 제시한 인문학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을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으로 숨어 있던 역사와 전설도 짚어내고 있다.고령의 장기리 암각화를 탐방하고 난 뒤 적은 감상을 보자. 저자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늑골이 아리고 둔중하다"고 고백했다. 고령 장기리의 암각화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 못지 않게 풍부한 예술적 감각을 자랑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좌우대칭의 균형이 엿보이는 검파형문, 태양을 상징하는 동심원문, 후세에 전하는 메시지임이 분명한 듯한 선각문과 원문들을 자세히 보면서 환각에 빠져들어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고 토로했다.대구미술관에 전시된 박생광(1904~1985) 선생의 작품을 보고 오면서 "한국의 피카소라고? 아니다. 박생광은 그냥 한국의 박생광이다"는 말을 되뇌었다. 박생광 선생을 누구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선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물질적 풍요 속에서 혐오에 가까운 극심한 세대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불공정과 불평등에 대한 해소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럴 때일수록 과거의 경험을 거울 삼아 그 해법을 모색하려는 경향성이 강해진다.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기업문화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으려는 노력 역시 가속화 하고 있다.저자 이상길은 "미래는 아직 개척되지 않았다. 과거의 좋은 경험들을 소환하여 원동력으로 삼아, 기계적인 해결이 아닌 인간 본질을 추구하려는 궁극적인 갈망을 작동시켜야 한다"면서 "과거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다. 미래는 과거에서 꾸준하게 성찰과 반성을 얻음으로써 더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320쪽, 2만원. [지은이 이상길은?]고령 출생으로 고령 성산중과 대구 성광고, 경북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시라큐스대학(행정학)을 졸업했다. 사병으로 군복무를 한 뒤, 1992년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의 길로 들어섰다. 대구시 체육진흥과장·과학기술팀장·정책기획관·첨단의료복합단지추진단장·기획조정실장과 행정안전부 재정관리과장·지방행정연수원 기획부장·지방재정정책관 등을 역임하고, 현재 대구시 행정부시장으로 재직하고 있다.2004년~2006년 사이 미국연수를 비롯해 일본, 프랑스, 스위스, 대만 등을 시찰했으며, 교관연찬대회우수상(내무부장관상), 공무원교육훈련유공표창(중앙공무원교육원장상), 녹조근정훈장(대통령) 등을 수상했다.

2020-01-11 06:30:00

인구감소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책 체크] 인구감소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이 책의 제목은 다소 역설적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인구감소를 문명사적 규모의 문제로 파악한다. 결혼이나 출산 장려, 육아대책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의미이다. 또한 인구감소에 따른 시장의 축소로 인해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 상당수는 퇴출 당하거나 근본적인 변화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기존 관념에 비춰볼 때 인구감소는 분명 엄청난 위기이고 위험이다.저자는 다가오는 위기를 모르는 척 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다. 인구감소는 천재지변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구감소로 인한 사회구조의 극적 변화와 수많은 사회제도의 기능장애, 특정 산업분야의 소멸 등은 피할 수 없겠지만 피해를 최소화 하고 파국적 사태를 피할 수 있는 연차륙 대책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일본의 지성'이라 불리는 우치다 다쓰루가 편저로 참여한 이 책은 인류학·사회학·지역학·정치학 등 각 분야별 10인의 전문가들이 일본의 인구 감소 문제를 주제로 쓴 논의들을 엮었다. 두뇌자본주의, 축소사회, 도시와 지방을 살리는 건축, 문화, 관계인구 등이 핵심 개념으로 등장한다. 294쪽, 1만5천원

2020-01-11 06:30:00

박정남 시인

수성문화재단 용학도서관, 1월 이달의 시인 '박정남' 선정

(재)수성문화재단 용학도서관은 박정남 시인(사진)을 2020년 1월 '이 달의 시인'으로 선정했다.이에 따라 용학도서관은 1월 한달간 시(詩)라키비움에서 박 시인의 시집과 육필원고, 시선집, 동인지, 사진, 상패, 동영상 등 50여 점의 자료를 전시한다.또 이달 30일(목) 오후 7시 창의체험실(4층)에서 '여성으로 치환된 디오니소스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김상환 시인의 진행에 따라 '시인과의 만남'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박정남 시인은 1951년 경북 구미 출생으로, 197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효성여고 교사, 대구대 강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대구시인협회상(1992), 금복문화예술상(2005), 상화시인상(2010)을 수상한 바 있다.저서로는 시집 〈숯검정이 여자〉, 〈길은 붉고 따뜻하다〉, 〈이팝나무길을 가다〉, 〈명자〉, 〈옻고름〉, 〈꽃을 물었다〉 등이 있다.

2020-01-09 14:44:30

장하빈 시인

장하빈 시인, 다락헌시인학교 3기 수강생 모집

팔공산 문학의 집 '다락헌'에서 제3기 다락헌시인학교 시창작 강좌 3기 수강생을 모집한다.이번 강좌는 오는 3월 4일부터 12월 23일까지 10개월 동안 40강으로 이루어지며,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한다. 〈저녁의 시인들〉(대구문화예술회관 펴냄)을 강의 교재로 채택, 시창작 강의와 창작시제를 제시한 시쓰기 및 작품토론 등으로 강의를 구성할 예정이다.특히 초대강연으로 '시인의 체험적 시쓰기' 및 '시인과 독자와의 대화'가 계획되어 있으며, 초대시인은 이태수(3월 25일), 이진흥(5월 27일), 이진엽(6월 24일), 김선굉(8월 26일), 이정환(9월 23일), 이무열(11월 25일) 등 6명이다.장하빈(사진) 시인은 지난해 '카르페 디엠(Carpe diem), 카르페 포엠(Carpe poem)'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다락헌시인학교를 출범했다.수강료 80만원(교재비 및 특강비 포함), 문의: 010-2522-7590

2020-01-09 14:43:15

강복순

디자이너 박동준을 키운 엄마 '김옥순'의 직업은?

대구여성가족재단은 대구 여성들의 삶을 기록한 책인 대구여성생애구술사 '대구 방문판매 여성'을 발간했다.대구여성가족재단은 2014년부터 대구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대구여성생애구술사'를 매년 발간하고 있다. 2014년은 '섬유', 2015년 '시장', 2016년 '의료', 2017년 '예술', 2018년 '패션・미용', 2019년 '방문판매'의 키워드를 정해 특정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했던 여성들을 찾아 대구의 역사와 여성의 삶이 교차되는 부분을 담아냈다.올해 발간한 대구여성생애구술사에는 '대구 방문판매 여성'을 주제로 6명의 여성들이 등장한다.강복순(86·보험상품 판매), 공순규(85·양말, 의류, 건어물 방문판매), 김옥순(92·수입화장품, 수입옷감 방문판매), 박백합자(81·화장품 방문판매), 석명분(78·화장품 방문판매), 정태극(69·야쿠르트 방문판매) 씨가 주인공이다.공순규 씨는 1979년 지인을 따라 장사의 길에 접어들었다. 당시 대구의 주요 산업이었던 양말 및 겨울 니트 의류가 주요 품목이었다. 여름에는 기차를 타고 부산, 마산, 충무 등지로 양말 공장이 없는 지역을 중심으로 다니며 양말을 판매했고 추석을 기점으로 겨울 니트 의류가 생산되지 않는 전라도 지역을 다니며 3개월가량 겨울 의류를 판매했다. 설을 쇠고 나면 건어물을 트럭에 싣고 안동, 영주, 풍기 태백 등지로 다니며 판매했다. 추석과 설을 기점으로 품목을 바꾸어가며 물류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물건을 직접 들고 전국을 다니며 판매했다. 35년간 타지로 다니는 장사를 하다가 70세부터 80세까지 10년동안 대구 오일장을 중심으로 건어물을 판매했고 80세가 되던 해에 장사를 그만두었다.김옥순 씨는 1928년 만주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살았지만 해방이 되면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1962년 수입 화장품 판매를 시작했으며 1963년에는 수입 옷감으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물건을 고르는 안목이 매우 뛰어났으며 화려한 외모와 언변,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신뢰 덕분에 승승장구했다. 부산, 서울, 대구를 오가며 옷감을 판매했다. 특히 외제 물품은 사치품이라고 해서 판매를 금지했고 단속이 심하던 시절이라 오히려 고급 수입 원단은 더욱 인기가 있었다. 옷감 방문 판매를 하다가 물건값을 대신해 양장점을 인수했으며 큰 딸인 박동준을 디자이너로 키우고 양장점을 운영했다.일본에서 태어난 박백합자 씨는 1979년 처음 화장품 방문판매를 시작해 1992년 교통사고가 나서 그만둘 때까지 13년간 방문판매를 했다. 가방 가득 화장품을 들고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도둑 누명을 쓴 적도 있었고 물건값을 수금하는 것이 힘들어 울기도 많이 울었다. 당시 화장품값을 치르지 않고 갑자기 이사를 해버린 고객을 온갖 방법으로 찾아내 '형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이밖에도 금융이 발달하기 이전 매달 보험금을 받아 은행에 입금시켜야 했던 보험상품 방문판매를 했던 이야기(강복순), 화장품 방문 판매와 레코드 도매업을 했던 이야기(석명분), 야쿠르트를 판매하고 있는 이야기(정태극) 등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 취업이 어렵던 시절 방문판매 종사자의 대부분은 여성이었으며 특히 40, 50대 기혼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방문판매 직업군은 한국 유통사뿐만 아니라 여성 직업의 역사에서 특이한 위상을 점한다"면서 "이번 방문판매 주제를 통해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관통해 방문판매에 나섰던 여성 여섯 분의 육성이 담긴 생애사를 채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대구여성생애구술사 책 '대구 방문판매 여성'은 비매품으로, 책에 관한 문의는 전화(053-219-9976) 또는 이메일(bird@dwff.or.kr)로 하면 된다.

2020-01-09 14:11:32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눈보라 치는 밤 누가 돌아오는가 - 유장경

날 저물자 푸른 산 멀어져가고 / 日暮蒼山遠(일모창산원)찬 하늘, 가난한 하얀 초가집 / 天寒白屋貧(천한백옥빈)사립문 멍멍이가 멍멍 짖으니 / 柴門聞犬吠(시문문견폐)눈보라 치는 밤 누가 돌아오는가 / 風雪夜歸人(풍설야귀인)* 원제: 逢雪宿芙蓉山(봉설숙부용산: 눈을 만나 부용산에서 자다.)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폴 발레리는 노벨문학상을 타야 마땅한데 상복이 없어서 못 탄 사람이다. "내 시는 그것을 읽는 독자들이 부여하는 의미를 지닌다." 바로 그 상복 없는 시인이 남긴 명언이다. 그러니까 시의 의미는 처음부터 확고하게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 의하여 부여되는 것이라는 뜻이 되겠다.발레리의 말이 아니더라도 시는 일단 발표되고 나면, 더 이상 시인의 시가 아니라 독자들의 시다. 그 시를 읽는 독자들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하게 읽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사 시인의 의도와 다르게 읽혔다고 하더라도 그게 큰 문제가 될 일도 없다. 오히려 다양하게 읽힐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야말로 훌륭한 작품일 가능성이 높고, 세계의 명작들도 대부분 그런 작품이다.당나라의 시인 유장경(劉長卿)이 지은 위의 시도 이해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작품이다. 대번에 그림이 떠오르지만, 독자마다 그 그림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물론 상상하기 나름이다. 실제로 이 시를 소재로 한 그림 '풍설야귀도(風雪夜歸圖)'가 많이 남아 있는데, 그들은 모두 천차만별의 다양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은 마당개가 짖고 있는 초가로 누군가가 돌아오고 있는 것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나, 그 초가 앞으로 나그네가 그냥 지나가고 있는 그림도 있다.조선 후기의 화가 최북(崔北)의 '풍설야귀도'가 그런 경우다. 최북의 그림 속에는 개가 대문 밖까지 쫓아 나와 맹렬하게 짖어대고 있는데, 노인과 아이가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짖고 있는 개를 지나가고 있다. 한밤중 혹독한 추위 속에서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갈까? 이 첩첩산중에 어디 갈 데가 있기는 할까? 저러다가 혹시 얼어 죽지는 않을는지, 겁이 덜컥 나는 상황이다. 최북은 왜 그렇게 그렸을까? 가혹하고 혹독했던 그의 생애가 이 시의 이해에 은연중에 반영된 결과일 게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실제로 오랜 굶주림 끝에, 그림 한 장 팔아서 술을 퍼마시고 돌아가다가 눈보라 속에서 얼어 죽어버렸다. 새해 벽두부터 날씨가 찬데, 돌아갈 데도 없으면서 돌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연유다.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20-01-04 06:30:00

[반갑다 새책]명예훼손소송과 오신의 상당성/배병일 지음/영남대학교출판부 펴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지은이가 언론이 명예훼손소송을 당하는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여부에 관한 법리를 서술하고 있다. 언론은 취재하거나 보도를 하는 과정에서 언론윤리 규범을 준수하여야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전문 용어나 어휘 선택 등의 잘못으로 그 진의와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당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언론사 기자에게는 언론 자유를 위한 투쟁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부정과 불의에 대항해서 두려움 없이 정론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위를 인정해 주기 위한 법리가 필요하다.이때 언론은 위법성조각사유라는 면책사유로 버틸 수 있지만 그 요건은 매우 엄격하다. 따라서 좀 더 완화된 면책사유가 필요하다. 강구된 법리로서 언론이 갖고 있는 언론의 숨구멍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오신의 상당성이다.책은 언론 자유의 주체로서 언론은 명예훼손소송에서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 오신의 상당성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들을 이 책을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했다.사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영향력은 중요하고 지대한 만큼 공공의 이익뿐 아니라 개인의 명예 보호 등 타인의 기본권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경우 그에 따른 법적인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지 않으면 안 된다.표현의 자유로 얻어지는 가치와 명예 보호에 의해 달성되는 가치를 비교형량하여 그 규제의 폭과 방법을 정해야 한 것임은 명백하다. 기자가 취재보도과정상에 가하는 명예훼손과 일반 시민이 다른 사람에게 가하는 명예훼손을 동일하게 취재해서는 안 되고 달리 취급돼야 함은 마땅하기 때문이다.책은 여론의 형성과정부터 시작해서 명예훼손과 법적 구제, 민법과 형법 및 특별법에 의한 구제,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과 기사삭제청구권 등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412쪽, 2만3천원

2020-01-04 06:30:00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

[책] 만들어진 성장/ 데이비드 필링 지음/ 조진서 옮김/ 이콘 펴냄

지난 70여년, 세계 경제를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라는 지표가 주도했다. 이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이것이 오르면 오를수록 좋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GDP가 성장한 정도에 비례해 실제 우리 삶이 나아지진 않았다. 경제학자들이 정한 전문적 수치가 현실과 괴리돼 있었다는 것이다.◆"정부 지출 배제" 쿠즈네츠 vs "정부 경제가 필수" 케인스경제 관점에서만 보면 세계 경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좋은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인류의 구매력 또한 사상 최대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소득의 불평등'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이 가려지고 있다. GDP가 성장할수록 부자들만 점점 더 부자가 되고, 당신의 생활 수준에는 변화가 없다면 당신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성장이라는 것은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가?'GDP는 1930년대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에 대응하고자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만든 척도다. 쿠즈네츠의 경제 측정 방식은 당시 정보가 부족했던 국가의 경제라는 영역을 가늠케 하는 시도였다. 그의 보고서는 대공황 이후 미국 경제가 반토막났다는 걸 알려줬다. 이후 공공사업에 큰 비용을 투자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2차 뉴딜 정책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이는 경제 상황을 측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건이었다.하지만 쿠즈네츠의 GDP는 곧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다. 쿠즈네츠는 정부 지출과 사회적 후생에 저해되는 경제적 수치를 GDP 계산에서 제외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동시대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정부가 경제에서 필수적 역할을 한다는, 쿠즈네츠와 반대되는 새로운 경제관을 내놨다. 케인스의 영향력과 제2차 세계대전, 현실적 필요성 등과 맞물려 쿠즈네츠의 방식보다는 케인스의 방식이 인정받아 그를 중심으로 한 GDP가 서구로부터 전 세계에 뿌리내렸다.◆'경제성장'으로 보였던 아이슬란드, 아무런 경고도 못 받아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세계는 경제성장 만능주의에 빠져 경제를 부풀리는 데 혈안을 올렸다.아이슬란드 역시 규제 완화 정책을 펼치며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한 은행 시스템 확장을 시도하고 있었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서로 돈을 빌려주며 유럽 전역의 자산을 인수했고 일반 시민들도 곧 같은 방법으로 주식시장 돈을 쏟아부었다. 아이슬란드 경제는 고삐가 풀린 것처럼 성장해 이내 세계에서 6번째로 부유한 나라가 됐다.하지만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금융위기가 닥쳤다. 아이슬란드는 한 달만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를 요청하는 신세로 전락했다.소위 '전문가들'이라 불리는 경제학자들은 당시 아무런 경고도 주지 못했다. 그저 GDP만 봤을 때 아이슬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경제의 덩치는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더 큰 문제는 이런 한계를 보여준 방식이 여전히 국가 경제 지표로 쓰인다는 점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GDP의 허점을 노려 어마어마한 이득을 취하기도 했으며,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측정한 경제 통계는 놀랍도록 부정확한 상황이다.◆자연자산, 행복 등 가치 반영해 GDP 수정해야GDP는 국가 차원 문제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개인의 경제 활동에도 맞추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생산성 경계'가 변화하면서 지금껏 GDP가 집계해 온 활동만으로는 새로운 경제활동을 집계하지 못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과거엔 항공사 직원이 보딩패스를 출력했으나 지금은 개인이 혼자서도 뽑을 수 있게 됐다. GDP는 이를 오히려 직원 일이 사라져 경제활동이 축소된 것이라 측정한다.인터넷 상의 활동도 마찬가지다. 위키피디아에서 지식을 찾거나 페이스타임, 카카오톡 영상통화 등을 이용하고 메신저로 대화하는 활동 또한 GDP는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책은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도 GDP를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자연자본과 행복에 대해 그렇다. 저자는 벤담의 행복론과 국가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GNH)이라는 지수를 중심으로 행복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경제성장이라는 고정된 가치를 내려놓고, 새로운 시야에서 미래를 살피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360쪽, 1만8천원.※ 데이비드 필링은파이낸셜타임즈에서 약 30년 근무한 기자이자 에디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여러 대륙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비즈니스, 투자, 정치, 경제 칼럼을 썼다. 전세계 지도자와 경영자, 경제학자 등과 수십 번의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파이낸셜타임즈 주요 칼럼니스트로 꾸준히 활동 중이다.

2020-01-04 06:30:00

문재인 독해법

정치PD의 눈-문재인 독해법

문재인 정부가 집권 4년차를 맞고, 21대 총선을 앞둔 가운데 보수진영에서 나온 정치 비평집에 관심이 쏠린다.이 책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비평 72선을 엮었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치를 만들 수 있는 대안을 '정치PD'의 시선으로 제시하고 있다.이 책은 ▷좌파 독재와 좌파 포퓰리즘 ▷조급한 좌파의 빈곤한 철학 ▷부끄러운 역사는 반복된다 ▷문재인 스톱(STOP), 국민심판 ▷보수 총결집, 그리고 보수 빅텐트 ▷에필로그 대한민국에서 산적을 몰아내야 한다 등으로 구성됐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는 물론 좌파 이념의 한계를 심층 분석했다는 평을 들었다.지은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흥분한 민심은 따져 보지도 않고 문재인 정부를 선택했다"며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필연적인 결과였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은, 그를 신뢰해서가 아닌 박근혜 정부 심판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이어 "총선은 승패의 향배가 문제가 아니라 국가 향방을 좌우할 중대한 기로에 섰다. 국민에게 길을 묻고, 공인은 심판 받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지은이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자신의 능력과 비전, 진정성을 입증하지 않고도 이른바 '반사이익'으로 대권을 쥐었다는 것이다.지은이는 집권 4년차를 맞은 현 정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와 안보, 소통과 통합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이 지은이의 분석이다.지은이는 "내년 총선과 함께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치를 만드려면 제도권 정당과 보수논객, 1인 방송인 등 진영의 역량을 모두 합쳐야 한다"면서 "정치인은 정책을, 국민은 콘텐츠 소비와 응원으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 책이 그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추천사를 통해 "많은 국민, 특히 자유우파 시민이 이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며 "현 정권을 알고 견제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같은 당 나경원 전 원내대표도 "날카롭고 해박한 정치PD의 눈으로 문재인 정권의 신 좌파 독재의 문제점과 실정을 분석하고 있다. 정치인은 물론 나라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께 이 책을 추천한다"고 했다.도서출판 데일리안. 362쪽. 1만5천원.▷김우석은대표적인 합리적 보수논객으로 공중파와 종편 및 케이블 방송 등에서 예리한 정치평론을 하며 인터넷신문 '데일리안'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정치평론가' 보다는 '정치PD'라는 명칭으로 불려지길 원한다. 지금은 한가하게 평론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인 것 같다.

2020-01-04 06:30:00

연잎차

[내가 읽은 책]다시(茶詩)를 드십시오

누군가를 만나려고 할 때 '차 한잔하자'고 한다. 책을 한 권 손에 들면서 우리는 찻잔을 함께 든다. 사람으로 사람을 만날 때, 책으로 세상을 만날 때 우리는 왜 차를 대동하는 것일까. 마음 문을 열고 진리를 향해 가는 길에, 차는 그보다 좋은 이 없을 참 도반이 되기 때문이다.차나 한 잔 드시게 그냥 들면 되나요 꽉 찬 의문 차 마시茶 제풀에 풀리듯이 가게나 차 맛 속으로 저 안에 나我 있는가 「끽다거喫茶去」 전문『사질토 분청 찻잔』은 시인이자 다인(茶人) 오영환이 등단 20년 만에 출간한 첫 시집이다. 읍을 하듯 정성스럽게 독자들에게 올리는 이 한 권의 시집은 마치 오랜 행다(行茶)의 과정 후 나온 오롯한 한 잔의 차와 같다. '내 시는 물을 끓여 식히고 우려내어/차 한 잔 목구멍으로 삼키듯이 푸는 거다'(서시 「茶」 중에서)라고 했듯이 말이다. 1999년 현대시조 신인상 수상 이후 기나긴 수행의 심호흡과 굴신(屈身)으로 기운을 모아 드디어 일보(一步)를 딛었기에, 오영환의 시집은 그 호흡의 길이와 무게감이 엄청나다. 그의 시 한 수를 읽다 보면 한 줄 한 줄 행간의 호흡이 상당히 길다는 것을 느낀다. 바쁜 일상 속에서 흘깃 읽어서는 그 시의 맛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마치 너무 급해 뜨거운 차가 무미(無味)한 것처럼, 혹은 바빠서 못다 마시고 두었다 식어버린 차가 고삽미(苦澁味)만 남은 것처럼, 제 맛을 잃어버린다. 그의 시는 한 잔의 차 같아서 마음의 온도를 맞추고 마음이 넘치지 않을 때 그 색, 향, 미를 제대로 음미할 수가 있다.엄지만 한 찻잔에 한가로운 마음 줄기 온 숨이 멈춰 서서 어린 살결 설레는 젖빛 향 운무 서리어 적막에 들고 있다 「차·1」 전문시집 『사질토 분청 찻잔』은 서시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무심차'에는 백차, 진여금차(眞如金茶) 등 차를 소재로 한 시 16편이 담겨있다. 2장 '차 만나러 가는 길'에는 차와 관련된 삶과 인연에 대한 시 15편이 수록되어 있다. 깨진 사질토 분청 찻잔을 만난 사연, 찻그릇에 비유한 어머니에 대한 정, 차를 만드는 과정 등 다인의 삶이 그려져 있다. 3장 '비움에 대하여'에서는 비움과 하심(下心)과 행보(行步)에 대한 이야기들, 수행의 과정에서 얻은 명철과 통찰이 담겨 있다. 4장 '행주를 삶으며'에서는 시인, 다인으로서의 삶을 지탱하는 바탕의 자아인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의 삶이 배어 있다. 전반적으로 다향이 가득하고 깊이가 있어 청소년들에게 읽히기에는 난해한 감수성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인성센터에서 근무하는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분주한 아침을 시 한 수로 열어보려 했지만, 그날은 마음이 급하고 떠있었던 것일까. 조용히 혼자 앉아 다시 읽다 보니 시구(詩句) 곳곳에 도전이고 가르침이다.어린순을 따면서 마음으로 묻는다 뜨거운 불과 물을 견딜 수 있겠는가 「차를 만들며」 중에서배움의 자리는 비단 청소년의 자리만은 아닐 것이다. 달려가는 청년들에게도, 여전히 청년 정신으로 가득한 우리네 부모님들 마음에도, 세대를 아울러 이 한 권의 시집이 주는 여운과 내면세계의 고요함은 우리에게 울림 있는 가르침을 준다.온갖 자리 내려놓고 바라보는 창 아래키 낮은 들꽃 무리 말없이 나를 본다가을 든 고운 이파리 제 발등을 덮는 오후 「하심창下心窓」 전문 이 시집은 반드시 시간을 두고 음미하실 것을 권해드린다.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하게 되어 선정(禪定)으로 인도받으실 터이다.김서윤(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20-01-04 06:30:00

제21대 국회의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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