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문화유적을 둘러보고 출출한 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인 쌈밥. 휴먼앤북스 제공

경주의 味路 속으로…『신라왕이 몰래 간 맛집』

신라왕이 몰래 간 맛집/ 김남일 기획/ 이명아 지음/ 이동춘 사진/ 휴먼 앤 북스 펴냄 경주는 흥미롭다. 사찰과 왕릉, 절터와 불탑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장소이자 산과 들, 강과 바다로부터 모여든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음식은 남도가 제일이라 했다. 하지만, 천년고도의 비밀이 달리 있으랴. 경주에는 드러내지 않아 몰랐던 맛집이 골목골목 자리 잡고 있다. 젊은 층의 활기마저 쉬어가는 황리단길, 해녀의 바다냄새를 머금은 감포 등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곳이 경주다. 행차하던 신라 왕도 멈추게 하지 않았을까. ◆쳔년의 왕도(王都), 맛을 품다 경주는 억울하다. 볼거리에 밀려 먹을거리는 빛을 보지 못했다. 불국사와 석굴암, 동궁과 월지, 대릉원 등은 경주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하루 이틀 머물렀다 가는 관광객이라면 문화유적을 둘러보고 쌈밥으로 출출한 배를 채운 뒤 황남빵을 사들고 가는 게 경주 여행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관광객이 몰랐던, 진짜 경주의 맛은 따로 있다. 책 '신라왕이 몰래 간 맛집'은 아는 사람만 아는 진짜 맛집을 소개한다. 김남일 전 경주부시장이 기획하고 잡지사 음식 평론가이자 요리연구가인 이명아 숙명여대 객원교수가 썼다. 경북지역 종가의 의례, 한옥, 음식문화를 담아내 온 사진작가 이동춘의 사진은 음식과 재료를 더 맛깔 나고 정갈하게 보여준다. 언론 잡지에 소개됐거나 모범음식점 인증을 받은 곳은 될 수 있으면 배제했다. 가족 단위 관광객이 찾을 수 있는 곳을 발로 뛰어 찾아냈다. 경주를 떠올리게 하는 56곳의 맛집은 이렇게 선별됐다. 왜 하필 56곳일까? 궁중음식에 질린 왕이 잠행한다면 찾아갔을 법한 식당을 상상하는 데서 만든 제목에 힌트가 있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 신라를 다스린 왕의 수다. 고집스레 고향을 지켜온 냄새가 나는 식당, 남산과 단석산, 형산강과 지천, 동해에서 나는 소박한 식재료를 정직하게 버무려 낸 곳은 생각보다 많았다. 저자는 1년간 경주 구석구석을 누비며 먹을거리를 찾았다. 색다른 음식이나 재료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주인에게 물어 재료 파는 곳을 찾았다. ◆힐링여행 가이드 책은 맛지도를 그리기에 앞서 식재료가 나오는 환경에 주목한다. 첫째는 바다다. 양남 주상절리와 문무대왕 수중릉도 좋지만, 감포를 추천한다. 번잡하지 않은 해변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감포항이 일제에 문을 연 건 1920년이었다. 일본인의 살림집, 점포로 쓰인 적산가옥은 민족의 아픈 역사를 증언한다. 퇴락한 역사거리와 송대말 등대, 주상절리를 봤다면 다음은 어판장이다. 동해안 등줄기에서 유독 많이 잡히는 가자미를 이용한 구이, 뼈 육수, 무침회, 미주구리회와 조림, 거기에 가자미식해까지. 책은 경주에서 먹어야 제대로 입에 감기는 밥상을 차례로 차려내며 식도락여행의 재미를 선사한다. 이름난 사찰이 아니라도 잘만 찾으면 정신이 맑아지는 사찰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운 좋으면 한국에서 차(茶) 문화가 최초로 시작됐다고 알려진 기림사에서 오종약수차를 한 사발 얻어 마실 수도 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커피전문점에 지친 힐링여행에는 제격이다. '뭐 볼 게 있겠나' 하는 생각으로 황리단길을 걷다 보면 완성되지 않은 경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과 경주 황남동의 '황'을 불여 만든 이름인데 TV에 여러 차례 소개되며 '핫 플레이스'로 등극했다. 천년 유적이 주는 무게를 잠시 떨치고 싶다면 젊음과 자유의 거리를 누비라고 추천한다. 토박이처럼 놀고 먹고 싶다면 5일장으로 가면 된다. 경주에는 공설(11개)과 사설(9개)을 합쳐 20개의 전통시장이 있다. 감포시장'성동시장'중앙시장 등 경주를 대표하는 시장은 상설장과 5일장을 겸한다. 건천읍장이라 불리는 건천장은 같은 자리에서 100년을 넘게 섰다. 알 굵은 마늘, 벌건 쇠를 일일이 손으로 두들겨 수작업하는 대장간은 건천장이 내놓는 작품이다. 엄마를 따라가서 떡볶이와 순대 한 줄을 먹고 왔던 시장은 변신, 진화하고 있다. 20가지가 넘는 반찬을 정성 들여 차려낸 좌판이 10개쯤 모여 '한식뷔페' 거리를 만들었다. 어느 때든 성동시장에 가면 푸짐한 한 상이 기다리고 있다. ◆경주, 이 맛에 간다 미식 여행의 트렌드를 따라 경주를 여행하면 남도음식과 전혀 다른 향토음식의 참맛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읍성 안에 있던 토속 밥집과 선술집은 프랜차이즈 레스토랑과 커피집에 자리를 내줬다. 골목 안으로 숨어든 집은 경주 사람이라야 찾아갈 수 있으니 경주를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다. 가족과 짧은 휴가여행, 출장이나 나홀로 여행을 하게 된 사람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식당을 정리했다.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거나 기본적인 장이나 김치를 직접 담그는 집을 위주로 선별했다. 한 식당은 친환경 농법으로 직접 농사를 지어 웬만한 재료를 충당했는데 출근 전 직원이 밭에 나가 합심해서 벌레를 잡는다고 했다. 새벽에 직접 배를 타고 바다에서 조업하거나, 동네 해녀 할머니들이 잡아오는 성게를 제철에 구입해 1년 사용분을 확보하는 횟집들은 기본 상차림에 내는 미역국조차 직접 채취한 재료를 사용하곤 했다. 경주 사람들은 식초를 직접 만들어 국수를 비벼주는 집이 있고, 열 가지도 넘는 장아찌를 아침마다 조금씩 꺼내 새로 양념한 밑반찬을 내는 곳이 한정식집이 아니라 민물매운탕집이라는 반전에 놀라지도 않는다. 그들에겐 그저 단골집일 뿐인데. 맛집을 찾겠다고 TV 프로그램이나 SNS를 뒤져서는 절반도 못 가보고 돌아서야 했을 곳이다. 경주에 대한 추억은 제각각이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아련한 첫사랑의 데이트코스로, 역사기행으로, 가족여행으로. 대구경북 사람치고 경주를 안 가본 이도 드물다. 볼거리 많고 즐길거리 많은 이곳을 음식으로 재발견하는 것은 어떨까. ▷기획한 김남일은… 고려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경북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정홍보처, 국무총리실을 거쳐 경북도청 문화관광체육국장과 경주부시장을 지냈다. 행정도 예술이라는 신념으로 지속 가능한 삼촌(산촌'강촌'어촌) 만들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독도, 대양을 꿈꾸다' '마을 예술을 이야기하다'가 있다. 311쪽, 1만5천원.

2018-01-20 00:05:00

[반갑다 새책] 디지털 모더니트의 인간과 디자인

영남대 산업디자인학과 류호용 교수가 4차 산업 시대 초연결사회의 디자인 개념에 관해 서술한 책이다. 류 교수는 디자인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정보사회, 미래 디자인의 방법과 새로운 개념 및 가치 창조를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모바일,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첨단 ICT 기술이 시장의 대규모 변화를 주도하면서 사람과 사물, 공간이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온, 오프라인의 구분이 없어진 초연결사회가 도래했다. 유비쿼터스 환경이 본격화됨에 따라 디자이너도 제품 외관을 위한 조형 능력 외에 소비자의 경험을 디지털 형식의 제품'서비스로 풀어내는 데 열중하고 있다. 저자는 "디자이너에겐 서비스를 디자인으로 가시화시킬 수 있는 서비스 엔지니어링 능력이 요구된다"며 "이 책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미래 디자인의 방법과 새로운 개념 및 가치 창조를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디지털서비스와 같은 무형적 요소의 디자인은 사용자의 심리, 행동에 기초한 사용자경험(UX) 디자인 등과 연결된다. 따라서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통합적 시스템의 새로운 디자인 방법이 필요하다. 류 교수는 "향후의 교육은 디자인은 물론, 많은 분야에서 융'복합의 원리를 알고 전체를 통찰해낼 수 있는 다학제적 교육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252쪽, 1만8천원.

2018-01-20 00:05:00

[반갑다 새책] 교수처럼 문학 읽기

미국 미시간대 영문학과 교수가 영미문학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는 상징과 코드 등을 해설한 책이다. 창작의 기본 원리를 파헤치고 싶은 소설가 지망생들이 읽으면 특히 좋을 교재다. 저자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관점으로 책을 읽는 대신 이야기가 쓰인 시대의 사회'역사'문화적 배경을 파악하며 독서를 하라고 조언한다. 또한,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몇 작품을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분석하는 실례를 통해 비평 이론이 독자들의 독서 경험을 어떻게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자와 함께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고전과 명작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아마 뜻밖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 것이다. 나아가 창작의 원리까지 아울러 파헤침으로써 영화, 연극, 드라마 등 파생 장르의 감상 전반에 대한 눈을 뜨게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문가와 독자를 갈라놓는 해묵은 담을 허물고자 한다. 문학 전공자의 독서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줘 일반 독자에게는 여러 장르의 작품을 좀 더 깊고 포괄적으로 즐기게 하고, 문학도에게는 더 세련된 비평 안목을 갖추는 계기를 선사한다. 아마존에서 10년 넘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유지하며 미국 대학생들의 '문학 감상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424쪽, 2만5천원.

2018-01-20 00:05:00

[책 CHECK] 우리 속에 울이 있다

우리 속에 울이 있다 박방희 지음/ 김미화 그림/ 푸른책들 펴냄 이 책은 정해진 구조에 맞춰 단어를 음악적으로 변주하는 시조만의 매력과, 이를 적절히 해체하고 다듬어 동심까지 곁들여진 동시의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동시조집이다. 시조의 율격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거기에 매이는 법 없이 바람이 당기는 얼레의 연실처럼 술술 풀려나간다. 시상이 자연스레 전개되고 이미지가 선명하게 펼쳐지며 다 읽고 나면 한 편의 이야기가 한 장의 인상적인 그림으로 마음에 새겨진다. 자연의 서정을 노래할 때는 먼 곳의 동떨어진 자연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도시 한복판에서 그 서정이 출렁이게 한다. 또 일상을 노래할 때도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 한창 누리고 있거나 이제 곧 맞닥뜨릴 삶의 실제적인 현장을 생생하게 제시한다. 저자는 1985년 무크지 '일꾼의 땅'과 1987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제5회 푸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새벗문학상'불교아동문학작가상'방정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동시집 '참새의 한자 공부', '머릿속에 사는 생쥐', '바다를 끌고 온 정어리', 시집 '불빛 하나', '세상은 잘도 간다' 등이 있다. 96쪽, 1만1천500원.

2018-01-20 00:05:00

[이종문의 한시 산책] 실수로 보내 백지 편지…아내의 재치 있는 답장

백지에 담긴 사연 곽휘원의 아내 벽사창에 기대서서 봉투를 뜯어보니 碧紗窓下啓緘封(벽사창하계함봉) 조그만 종이 한 장 텅텅 비어 있습디다 尺紙終頭徹尾空(척지종두철미공) 옳거니, 낭군님이 이별 한을 품으시고 應是仙郞懷別恨(응시선랑회별한) 날 그리는 온갖 사연 침묵 속에 담았네요 憶人全在不言中(억인전재불언중) 사오 년 전이다. 참 어여쁜 여학생 하나가 겨울 방학 때 제법 두툼한 편지를 보내왔다. 화들짝 뜯어보다가, 그만 어안이 벙벙해서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다. 기나긴 편지에 뜨겁고도 진진한 사랑이 구석구석 넘쳐흘렀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연인에게 보낸 편지였다. 아마 그녀의 연인도 그날쯤 난데없는 편지를 받고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자기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라, 연인의 선생에게 보낸 편지였을 테니까. 얼마 후에 그 여학생이 연구실로 나를 찾아왔다. 연인으로부터 돌려받은 편지를 꺼내면서 가만히 얼굴을 붉혔다. 나도 잘못 받은 편지를 돌려주며, 그냥 슬며시 웃어주었다. 서로 말없이 마주 앉아서 아주 오래도록 차를 마시다가 헤어졌다. 이 일화가 생각날 때마다 청(淸)나라의 시인 원매(袁枚)의 '수원시화'(隨園詩話)에 수록된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오른다. 곽휘원(郭暉遠)이라는 사람이 고향을 떠나서 벼슬살이하다가 그리운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다 써서 봉투에 넣을 때, 실수로 그만 사연 많은 편지 대신에 백지를 넣어 보내고 말았다. 아내가 남편의 편지를 받고 반가운 마음에 화들짝 뜯어보니, 어이없게도 백지 한 장이 전부였다. 이에 아내는 답장 대신에 위의 시를 써서 남편에게 보냈다. 눈 내린 들판같이 하얀 편지, 바로 그 순도 100%의 무언(無言) 가운데 오롯이 담겨 있는 온갖 사연들을 잘 읽었다는 뜻이 되겠다. 재치가 넘치는 시이기도 하나, 꿈보다 해몽이 더 기가 막히는 견강부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심전심의 교감이 오고 가는 부부 사이에, 말이 없다 해서 모를 게 도대체 무엇이 있겠는가. 사오 년 전 학기말 시험 때다. 시험지를 나눠주자마자 조용하던 교실에 한동안 다각다각 말 달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불과 얼마 후에 여기저기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우르르 답안지를 내고 나간다. 죄다 나갔는데, 텅 빈 교실에서 최후의 일각까지 몸부림을 치며 사투를 벌이는 여학생이 있다. 무슨 경천동지할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나 보다 했는데, 정말 놀랍게도 완전 백지를 내고 나간다. 나는 이 눈 내린 들판같이 하얀 종이를 눈에 안 보이는 글씨로 충만한 엄청나게 사연 많은 백비(白碑'글씨를 새기지 않은 비석)로 읽는다. 그러나 사연이 아무리 많아도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므로 어쩔 수 없이 에프를 주노니, 용서하시라 백비를 쓴 이여! 네 마음 내가 다 안다.

2018-01-20 00:05:00

[책 CHECK] 브래지어를 풀다

브래지어를 풀다 김아인 지음 / 학이사 펴냄 김아인 수필가의 첫 번째 수필집이다. 이 책은 1부 '꼿꼿하고 검푸른', 2부 '침묵의 시간을', 3부 '복원하듯 그렇게', 4부 '소리 없이 일어서는' 등 4부로 구성돼 있으며 총 52편의 글이 실려 있다. 저자의 수필가적 장점은 사연이 많다는 것과 그것과 정면 승부를 걸듯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자신의 치부를 숨기려하거나 수박 겉핥기 방식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고부갈등이란 뻔한 스토리와 노름꾼 아버지에 대한 회상은 식상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성적인 문체의 특색 덕분에 진부할 수 있는 글감까지도 이야기성의 흥미로움으로 이끌고 간다. 때로는 묵직하고 또 때로는 발랄한 감각적 사유가 오래된 기억마저 날 것의 언어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재생시킨다. 경남 사천 출신인 저자는 방송통신대 국문학과와 계명대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했다. 2011 평사리문학 대상, 2015 해가림여성문예 큰상을 받았으며, 2017 대구문화재단 개인예술가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됐다. 232쪽, 1만4천원.

2018-01-20 00:05:00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유엔군 위문차 대구 동촌비행장을 방문한 마릴린 먼로의 모습.

한국전쟁의 이면, 그리고 화해법…『마릴린 먼로와 두 남자』

'마릴린과 두 남자'/ 전경일 지음/ 다빈치북스 펴냄 미국 배우 마릴린 먼로가 1954년 2월 대구 동촌비행장을 방문했다. 당시 마릴린 먼로(이하 먼로)는 미국 프로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와 결혼식을 올리고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첫날밤도 보내지 못하고 한국으로 가야 했다. 한국전쟁은 끝났지만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유엔군 위문 공연 때문이었다. 대구를 방문했을 때는 배우 백성희와 최은희가 마중을 나갔으며, 동촌비행장은 환영 인파로 난리가 났다. 먼로는 4일 동안 대구에 머물면서 총 10차례의 대대적인 공연을 펼쳤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섹시한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고 춤추는 먼로의 모습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화제가 됐다. 먼로 역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먼로는 생전 인터뷰에서 "내 생애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는 한국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강원도 인제군이 소양강 가에 마릴린 먼로 동상을 세운 것도 당시 군부대를 방문한 먼로를 기리기 위함이다. 먼로와 대구의 흥미로운 인연은 여기까지만 소개한다. 먼로의 이름만으로도 섹시한 제목의 이 책은 전경일 작가가 5년 동안 쓴 원고지 7천 매 분량의 장편소설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 당시 신인배우 마릴린 먼로를 세계적 대스타로 만들기 위해 종군기자 칼 마이어스가 기획한 기상천외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전 세계 젊은이들 머리 위로 그녀의 누드사진을 살포한다. 당시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괴한 마케팅이었지만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칼은 처음의 치기 어린 생각과 달리 한국의 전쟁터에 가서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인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로 인해 그는 '라이프' 지의 종군기자 하워드와 전쟁을 보는 인식 차이로 극심한 갈등을 빚게 되고, 1급 군사 작전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군 정보 당국에 끌려가는 위기에 빠진다. 이 위기를 피하고자 칼은 진눈깨비가 퍼붓는 야밤에 도주함으로써 결국 군당국 기록에는 공식적으론 사망한 것으로 처리된다. 그로부터 50년 후, 미국 뉴저지 옥수수 농장에서 생활하는 90세 노인 하워드에게 칼의 유해사진이 날아온다. 칼과 대립관계를 유지하던 주인공 하워드는 한국전쟁을 회고하게 되고, 급기야 유골 인수식에 참석하고자 한국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그때, 은밀히 접근한 AP 기자가 믿기 힘든 정보를 흘렸다. 칼이 중국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소식. 결국 하워드는 북경으로 날아가게 되고, 마침내 칼과 50년 만에 운명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칼 마이어스와 하워드의 전쟁을 회고하는 스펙터클한 대화가 이 책의 주된 메시지다. 마릴린 먼로를 등장시킨 것은 단순히 흥미를 유발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 전쟁 속 인간, 이념적 갈등하의 인간, 인간 본연의 욕구인 사랑과 애증, 원망과 희구를 드러내는 인간 보편적 이야기를 역사의 포연 속에 담기 위함이다. 두 종군기자의 눈으로 진실을 파헤치다 보니, 그간 반공 이데올로기 하에서만 본 한국전쟁의 진실도 낱낱이 드러난다. 결국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진실, 화해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의 남북관계에도 훈풍을 바라는 마음과 닿아있다. 그는 정전 65주년 기념 벽두에 이 책을 내놓으며, "어쩌다 동족의 심장을 향해 총을 겨누게 된 우리는 어떻게 화해해야 할까요"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 책은 종군기자들이 느낀 진실을 향한 고뇌를 잘 엿보여주며, 그로 인해 극대화되는 갈등 국면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종군기자 간의 대화 중에 흥미로운 대사가 있다. "내게는 두 개 눈이 있소. 현상을 보는 눈과 진실을 보는 눈 말이오. 카메라의 눈과 육안 중 어느 것으로 볼 때, 진실을 더 잘 볼 수 있을까요? 카메라는 무엇을 담아내야 하죠?" 전경일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 한반도에 다시는 전화(戰火)가 있어서는 안 되며, 인간의 피로 물든 대지는 누구에게도 복되지 않다는 강력한 평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1권 491쪽, 2권 498쪽, 3권 494쪽. 각권 1만5천원.

2018-01-20 00:05:00

조선 후기의 상차림. 당시는 소반에 혼자 앉아서 식사하는 것을 예법으로 여겼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겐 낯선 한국인의 식사법

연간 외국인 입국자 1천700만 명 시대를 맞아 한국의 문화생활 전반은 물론 음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최근 K-팝 열풍이 K-푸드로 이어지며 외국인 중에는 한국 음식을 직접 조리해 먹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구글 같은 검색 엔진에 'Korean food & recipes'를 넣어 검색하면 한국 요리법이 넘쳐난다. 또 외국 인터넷에는 '한식당에서 현지인처럼 식사하는 방법'이라는 웹사이트도 등장했다. 이 책은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인의 식사, 문화 방식을 살피고 있다. 한국의 낯선 음식 문화에 대한 기원과 궁금증을 '인류 식사 방식'이라는 배경하에 하나씩 풀어냈다. ◆한국인 식사 과정 13가지 주제로 분류=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 놓고, 불편한 책상다리 자세로 앉아서 다 같이 찌개를 떠먹으며 '술잔은 돌려야 제 맛'이라는 한국인.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낯설고 이상하게만 보이는 한국인의 식사 방식이다. 저자는 한국인의 몸에 밴 식사 방식과 습관에 대한 의문들을 사례를 들어 정리했다. 음식인문학자이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다양한 사료를 섭렵하고 재구성해 식당에 들어가 신발을 벗고 앉는 순간부터 식사를 하고 디저트 커피를 들고 나오기까지 전 과정을 13가지 단계로 나눠 풀어냈다. 식사 방식에 대한 역사는 물론 식습관과 상차림, 글로벌화된 한국인의 맛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음식문화를 쉽고도 재미있게 소개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주변의 아시아 국가는 물론이고, 유럽인들의 식사 문화를 우리의 식사 방식과 비교하며 비교문화사적 연구 방법을 통해 오늘날 한국인의 식사 방식이 어떤 역사, 문화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살핀다. ◆한국의 식사 기원'변화 과정 추적=우리의 고문헌들이 대부분 왕실이나 관변 사료에 집중돼 있어 한국 식사 문화의 기원을 다룬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의 실기, 문집 등에서 작은 단서들을 찾아내고, 중국과 일본, 유럽 여러 나라의 사료를 비교했으며, 근현대 신문과 잡지에 실린 사회경제적 변화와 일상의 면면을 체크했다. 여기에 상차림이나 좌석 배치, 식기와 식탁 등을 보여주는 그림, 사진까지 활용해 한국인의 식사 방식에 대한 퍼즐을 맞춰 나갔다. 이젠 정식 코스가 돼버린 '식사 후 커피 한잔'에는 우리의 애잔한 한국사가 녹아 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커피는 6'25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당시 커피의 확산을 주도한 것은 다방에서 팔던 '믹스 커피'였다. 이 인스턴트 커피에는 깊은맛이나 향, 멋이 없었지만 맛있고 간편하다는 점에서 빠르게 우리의 입맛을 리드해 나갔다. 한국인의 전통 '좌식(坐式)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은 이어진다. 저자는 유럽, 중국과 달리 조선에 식사 공간인 다이닝룸이 없었던 이유를 '꺾음집' 형태와 온돌에서 찾고 있다. 각 방과 마루가 연결되어 있고, 신발을 벗고 실내에서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정된 식탁과 의자 없이도 방 안에서 밥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식사 방식'습관에 녹아든 문화 코드=우리만의 독특한 식사 문화도 저자의 주된 관심 분야였다. 우리 술자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술잔 돌리기, 여기엔 어떤 문화 코드가 숨어 있을까. 본래 술잔 돌리기는 고대 중국 주법(酒法)에서 시작된 것으로 조선시대 양반들의 제사와 풍속 교화를 통해 지속되었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정착된 술잔 돌리기는 '공동체의 연대감'과 '집단주의' 의식이 깊이 깔려 있지만, 본래 의미는 왕과 신하, 웃어른과 아랫사람이, 주인과 손님 간에 공경과 답례의 의미를 담은 주도(酒道)였다. 저자는 한국인의 식사 방식을 크게 변화시킨 원인으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를 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식기를 든다. 조선 후기까지 민간에서는 주로 막사기가 유통됐지만 식민지를 거치면서 한반도 도자기 산업이 일본인 손에 넘어갔고, 막사기는 저렴한 질그릇과 오지그릇으로 대체되었다. 이 시기 우리 전통자기도 자취를 감추고 만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잠시 양은그릇이 퍼졌고, 1960년대 이후엔 멜라민 수지 그릇과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이 유행했다. ◆현대적 의미에서 본 한국인의 식사 방식=21세기 초입 한국에서 '혼밥' '혼술'이 유행하면서 '함께 식사' 규칙들이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대도시 중심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가족과의 식사는 물론이고 손님 초대까지도 외식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식사의 개별화 현상은 날로 심화되어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횟수를 늘리자'는 '국민공통식생활지침'이 정부 차원에서 마련되기도 했다. 이제는 인사말이 되어버린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라는 말은 한국인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은 '함께 식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말의 '식구'(食口)도 '한솥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 독자들에게 부탁한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그들을 자신 있게 식사에 초대해 보라고. '언제 한번'이라고 하지 말고 '다음 주말'같이 진정성을 가지고 말이다. 집밥, 외식을 떠나 한식(韓食)을 나누며 한국의 식사 방식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면 훨씬 더 식탁이 풍성해질 것이다. 426쪽, 2만2천원.

2018-01-20 00:05:00

신호철 작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

[내가 읽은 책] 높고 푸른 사다리(공지영/한겨례출판)

작가는 10여 년 전, 송봉모 신부의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에서 100자도 안 되는 문장이 작가의 가슴을 두드렸다. 이 책에 나오는 마리너스 수사와 성 베네딕도회 왜관 남자수도원의 신비로운 만남에 대한 글이었다. 한국전쟁 중 1950년 12월 20일 흥남철수 때, 1만4천 명의 한국인을 구조한 빅토리아러디스호의 선장 마리너스의 소설보다 더한 실제 이야기를, 허구의 한 청년 수도자와 엮어서 능숙한 솜씨로 서사를 창조한다. 장편소설인 『높고 푸른 사다리』는 신부 서품을 앞둔 베네딕도회 수사의 사랑과 이별, 죽음과 상실의 순례이자 성장 소설이다. 소설은 정요한 신부가 한때, 신보다 사랑했던 소희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아빠로부터 전해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대체, 왜?'라는 짧고 높은 외침으로 독자의 심장을 파고든다. '대체, 왜?'라는 질문은 삶과 죽음, 운명에 대해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난과 불의, 정의와 제도에 대해서라는 것, 인간의 영역에서 신과 씨름해야 한다는 걸 세상에 외친다. 신의 멱살을 붙들고 "지금 여기서! 잘 살도록 축복을 내려달라"고 한 야곱처럼 반항했고 싸웠다. 야곱은 세속의 일에 매달렸으므로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다리를 타고 훌쩍 올랐다. 어처구니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갓난아이 앞에서만이 아니라, 불의한 권력자 앞에서(pp308-309), 정의로운 사람들이 함부로 짓밟히는 현장 앞에서, '대체, 왜?'라고 신에게 끈질기게 질문하기를 독려하고 있다. 진정한 세속이야말로 진정한 천상일지도 모르니까. 작가는 섬세한 통찰력과 흡인력 있는 문장으로 독자의 감정이입을 사냥한다. 공지영의 소설은 사랑이라는 달콤한 성분으로 당의정을 입힌다. 독자가 단맛을 느낄 즈음, 이내 몸 전체에 퍼지는 약리 작용, 바로 한 사발의 보약 세례이다. 작가는 사회문제라는 단단한 공감대 위에 사유의 구조물을 세운다.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에 당당히 맞서는 문자의 시위이다.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민감하고 부드러운 촉수로 독자의 뜨거운 호응을 얻어낸 작품들을 발표해 온 작가이다.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는 한 번 읽고 덮어두는 소설이 아니다. 크리스천만을 위한 책은 더욱 아니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ㅡCRAS TIBI). 인간이 어떤 시련과 맞닥뜨렸을 때 '여기에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시련을 품위 있게 넘길 수 있다. 품위 있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려움을 잘 견디는 사람이다. 마리너스 수사의 말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절대 미리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을요.(p355) 서로 돕는 배는 난관을 이겨냅니다. 우리 모두는 약하고 모자라니까요."(pp345-346)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또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

2018-01-20 00:05:00

정대호 '사람의 문학' 발행인.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문화人&스토리] 정대호 '사람의 문학' 발행인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1990년대는 사회주의 이념이 붕괴하고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이 불었다. 거대 담론은 소소한 이야기로 대체됐고, 잘 팔릴수록 좋은 작품이라는 상업주의는 출판자본을 거대화하고 문단의 패거리주의를 악화시켰다.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혹독한 현실에서도 '사람의 문학'은 '시와 반시'와 함께 지역 문단의 한 축을 형성하며 종합문예지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말에는 통권 86호를 펴내기도 했다. 25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사람의 문학' 발행인 정대호 씨를 만났다. ◆'탁 치니 억' 하던 때…문학이 움트다 1980년 독재정권이 물러난 자리에 서슬 퍼런 신군부가 들어섰다. 집권에 눈이 먼 군부의 계엄확대조치에 항의하는 광주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사건은 총포에 가려지는 듯했지만,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전국으로 확산했다. 경북대 국문학과 졸업을 앞둔 정 발행인에게도 광주민주화운동은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해 전두환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한 그는 '계엄포고령위반죄'로 기소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대구교도소에서 가을을 보내고 찬 서리를 맞으며 출소한 그의 그림자는 '안기부 계장'이었다. 어딜 가든 사찰이 따라붙었다. 마음을 추스르는 데엔 글만 한 게 없었다. 제적 상태로 대학 주변을 맴돌며 '분단시대' 동인으로 시를 발표했다. 신군부는 복학을 명분으로 제적생들을 옥죄어왔다. 과외금지조치(1980년)로 주머니마저 가벼워진 학생들에게 취업은 넘어서야 할 현실의 벽이었다. 경북대 복학생협의회를 이끌었던 그가 그런 친구들의 속사정마저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1984년 간신히, 그러나 굴욕적으로 복학했다. 그리고 첫 시집 '다시 봄을 위하여'를 펴냈다. 이듬해 교육대학원에 진학했고,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빨간줄'이 그인 운동권 출신 강사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일신학원에 있던 한 선배가 그를 받아줬다. 1990년대는 1980년대적인 것들과 결별해야 했던 때였다. 다양성'자율성'대중성을 중시하던 문화 환경의 변화는 지역에서도 문예지 창간의 불씨를 지폈다. '창비'(창작과 비평)와 '문지'(문학과 지성)로 대별되던 문예지 시장에 대구에서는 최초로 '시와 반시'가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시 전문지만으로 지역 문단의 갈증을 달래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밥벌이를 하게 된 정 발행인에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글이었다. 그중에서도 시대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현실주의 문학 작품을 알리고 싶었다. '분단시대' 동인이 하나 둘 모였다. 소설가 정만진, 시인 김윤현, 시인 배창환, 시인 김용락과 시인 정대호까지 5명이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판을 만들어보자." 1994년 1월 '사람의 문학'을 창간했다. 단일 장르 전문지가 아닌, 시'소설'비평 등을 두루 싣는 종합문예지로서는 대구 최초였다. 창간호인 1994년 봄호의 발행인은 정대호의 아내였다. 4월은 여전히 '잔인한 달'(T.S.엘리엇의 '황무지' 중)이었기 때문이다. 정 발행인은 "(운동권 출신으로) 제적당한 내 이름을 썼다간 외부에서 '사람의 문학'에 대해 편견을 가질 것 같았다"고 했다. ◆자금난'좋은 원고…산 넘어 산 '사람의 문학'도 IMF가 몰고 온 자금난 앞에서는 흔들렸다. 아내로 돼 있던 발행인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문예미학사'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펴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접어야 했다. 지역 내 출판 수요는 정해져 있는데 물량을 나눠 가질 출판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점점 쪼그라들었다. 사무직원도, 편집자도 없는 1인 출판사가 낼 수 있는 책은 서점에 내놓고 팔 걱정이 없는 책 몇 권과 돈 안 되는 민주항쟁 이야기가 전부였다. 문학평론가인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가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잡지 발행인을 시키라"고 했던 말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열악한 문학 환경에서 '사람의 문학'이 86호까지 발행될 수 있었던 건 정 씨와 편집인의 열정, 청탁에 흔쾌히 응했던 필진과 정기 구독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부 보조금이 끊기고, IMF를 거치면서 원고료 지급은 사실상 중단됐다. 매 차례 600부를 발행하는 데 드는 돈은 300만원 남짓이다. 모자란 돈은 정 발행인이 채운다. 매년 1천만원 가까운 사재를 털어 넣으면서도 '사람의 문학'을 만들어내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등단과 작품 발표를 미끼로 문단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그의 소신은 '사람의 문학'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이것도 안 하면 문화가 왜곡될 것 같아서요." '사람의 문학'에는 '창비' '문지' '문학동네' 등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온기가 있다. 지역에서 태어났든, 지역에서 활동하든 대구경북을 뿌리로 둔 작가들이 만들어가는 문예지이기 때문이다. 정 발행인은 "지역 문인들로 끌고 갈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문예지 가운데서도 지역지로 시작했다"고 했다. 기대는 바람에 불과했다. 충분할 줄 알았던 필진에 문제가 생겼다. 그는 "문예지 발표 작품이 대학교수 실적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양질의 원고가 끊기다시피 했다"면서 "어쩔 수 없이 점차 필진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지면의 3분의 1 정도를 서울'수도권 등 타지에서 나고 활동하는 작가에 할애한다. 출신보다는 작품이 중요하다. 시인 도종환이 '분단시대' 동인지로 첫 작품을 발표한 것처럼. 그러려면 지역 출신 작가가 다른 잡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사람의 문학'이 발판 역할을 해야 한다. 나머지 지면인 3분의 2 정도가 지역 문인의 작품으로 꾸며지는 건 딜레마다. 간혹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 실리기도 한다. 대체로 지역 문예지가 아니고서는 빛을 보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지역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그래서 '질이 떨어진다' '필진을 지역 외로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역 문단에서 문예지의 역할이 사라지면 우리의 존재 이유가 없겠죠." ◆더 건강해질 리얼리즘을 향해 '사람의 문학'은 촌스럽다. 디자인도, 판형도, 콘텐츠도 조금 더 세련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말이다. 편집자도 조금 바꿔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정 발행인은 거절했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책도, 정 발행인도. "시간이 지나면 색깔은 날아가지만 좋은 글은 남는다. 외관보다는 내용에 집중하고 싶어요." 어렵게 살림을 꾸려왔지만, 그는 장사치는 아니라고 자부했다. 문학을 상품화하는 작품을 싣지 않았고, 계산되고 위장된 순수인 척 포장하지도 않았다. 작가도, 작품도, 자본도, 모든 것이 서울로 옮겨가는 동안에도 그의 믿음은 변치 않았다. 정 발행인은 "예전엔 우리(사람의 문학)의 수준이 중앙 문예지에 못 미쳤을 수 있다. 하지만, 중앙 문예지가 상업화하는 동안 꾸준히 양질의 작품을 내놨고 이제는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람의 문학'이 종합문예지로 25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현실주의' 라는 큰 줄기를 놓치지 않았던 덕분이다. 문학은 현실의 기록적 측면에 저항정신이 가미돼 형성된 현실주의(리얼리즘)라는 문학 사조는 발행인 정대호와 '사람의 문학'을 동시에 설명하는 키워드다. "살다 보면 '이게 아닌데'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내가 무엇을 써야 할지 깨닫죠." 지역 문단에 대한 그의 진단도 같은 뉘앙스로 들린다. 김춘수'신동집 시인을 필두로 한 대구경북의 문학이 순수주의에 경도돼 있다는 것. 겨우 일궈온 꿈에 덧붙이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지역 문단의 균형추 역할을 하면서 기록하지 못하는 동안 사라져 갈 것들에 대한 기록을 하는 것이다. 쪽방촌, 자갈마당, 이천동 골동품 길, 남산동 까치마을처럼 대구와 넓게는 경상도 지역의 삶을 글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그는 "미세담론이든, 개인사든 역사로 기록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사람의 문학'에 담기길 바란다"면서 "그렇게 좋은 책을 계속 펴냄으로써 지역 인재를 발굴해 돕고 싶다"고 했다.

2018-01-19 00:05:00

우연일까, 필연일까…산중 스님에 찾아온 '猫한 인연'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보경 스님 지음/ 권윤주 그림/ 불광출판사 펴냄 겨울 안거(安居)가 시작된 산중 사찰에 손님이 찾아들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느닷없이 들어선 길고양이 한 마리와 고즈넉한 일상에 젖어들던 스님의 동거는 이렇게 시작됐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반쯤 찢긴 쓰레기 봉지에서 과일껍질을 뒤지던 '길냥이'가 발각됐다. 스님은 입가를 노랗게 물들여가며 허기를 채우던 고양이에게 우유와 토스트를 챙겨줬다. 처음엔 '이 풍족한 세상에 사람이건 동물이건 배고픈 것만은 절대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길고양이가 떠나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 쪼그리고 앉아 스님을 바라보거나 졸졸 따라다닌다. "야~옹" 하며. 종이 상자를 가져와 내복으로 찬 바람을 막고 헌 수건을 깔아 집도 만들어줬다. 고양이 이름은 '탑전 냥이', 졸지에 '캣파파'가 된 스님은 고양이와의 작은 교감을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는 책으로 펼쳤다. ◆스님, 길냥이 아빠 되다 12년간 서울 북촌의 법련사 주지와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를 지낸 보경 스님은 방대한 독서로 다져진 글솜씨로 유명하다. 법정 스님이 생전 "글이 좋다"고 칭찬했을 정도다. 열 권이 넘는 책을 써낸 스님이 고양이에 대한 책을 썼다. 생경한 이야기다. 저자 보경 스님은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출가했다. 14년 서울 생활을 마치고 송광사 탑전의 한 칸짜리 반지하 방으로 '환지본처'(還至本處'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한 스님이 시골 사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낡은 선풍기 바람에 더위를 식혀야 하는 산중에서 도시의 습(習)을 버리고자 스님이 택한 것은 독서와 산행이었다. 법정 스님의 처소(불일암)로 이어지는 무소유 길을 따라 걸으며 그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양이가 왔다. 흰색과 황색이 반반 섞여 있고, 원래 집고양이였는지 꼬리가 잘려나간 귀여운 녀석은 스님에게 불가의 수행으로 얻지 못한 새로운 감정을 선사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고 했던 여우의 말처럼 스님과 고양이는 서로에게 길들여진다. 부지불식간에 '고양이 집사'가 되어버린 스님은 때론 친구처럼, 때론 아이처럼 고양이와의 하루에 집중하게 된다. 아침이면 "안녕, 잘 잤어? 배고프지 기다려봐" 하고 사료와 물을 챙겨주는가 하면, 해 질 녘 함께 산보(散步)를 하거나, 숨바꼭질을 한다. 매일 물티슈로 눈물을 닦아주고, 밤에는 '냥이'가 눈부실까 봐 불도 제대로 못 켠다. 기온이 떨어지자 따뜻한 방으로 들어오려는 고양이를 위해 보일러실에 전기 매트를 깔고 새집을 마련해준다. 그것도 종이 박스와 스티로폼 박스로 아늑함을 더하고, 매트 위에 헝겊을 덮어 열기가 직접 닿지 않도록. 그야말로 지극정성이다. 밥을 안 먹는 냥이가 걱정돼 들여다볼 때나 영역 다툼으로 다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애 아빠다. ◆고양이, 스님에게 철학을 가르치다 혼자도 좋고, 둘이어도 좋을 그의 삶에 고양이가 들어오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알아낼 수 없는 깨달음이 일었다. 함께하는 만큼 다른 무엇을 느끼게 되는 것. 책은 내면의 그 소소한 기록을 담았다. 집에 잘 들어왔는지, 잠은 잘 잤는지 안부를 확인하고, 적적한 절간에서 말을 걸 상대가 생긴 데서 스님과 고양이 사이에는 신뢰가 생긴다. 스님은 고양이를 보살피고, 고양이는 스님을 위로하고 자각하게 한다. 고양이는 스님에게 '바라보기'와 기다리기'라는 교훈을 안겼다. 높은 곳에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고양이는 번뇌의 불을 꺼트리고 자신을 성찰해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더욱 설레게 하는 고양이에게서 기다림과 인내를 배운다. 불살생(不殺生)을 제1계목으로 하는 불교에서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의 본능은 스님을 화나게 한다. 당당히 쥐를 물어오는 고양이의 살생에 당혹스러워하지만, 그것도 보살펴주는 스님에게 보이는 '공양'이라고 생각하고 머리를 쓰다듬게 된다. 며칠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갈 때에는 큰 절 스님에게 고양이 밥을 부탁하지만, 마음이 편찮다. 장난감과 간식을 잔뜩 사들고 눈길을 헤쳐 한달음에 도착해 고양이가 잘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게 되는 자신을 보고 끊임없이 문답한다. '선문염송'에는 '비가 좋은 것은 비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여름 숲 속 선사에 장중하게 내리는 비처럼 반가운 손님, 스님에게 냥이는 그런 존재다. 결막염에 걸린 냥이를 안고 동물병원에 갔던 날 스님은 생로병사라는 숙명과 그를 대하는 자세를 곱씹었다. 또 자기 의사가 분명할 때만 움직이고, 먹을 만큼만 먹는 냥이에게서 '결코 지나치지 않게 적당히'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발견한다. ◆다독가의 서재를 엿보는 재미 보경 스님이 개인적으로 체험한 일상의 기쁨은 단순한 에세이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고양이가 가져다준 행복, 고양이로부터 느끼는 사랑은 수시로 떠오르는 글귀나 이야기에 녹여냈다. 다독가답게 장르도 다양하다. '열반경' '금강경' '유마경' 등 불교 경전은 물론이고, '시경' '논어' '주역' 같은 유교 경전, 고대 티베트의 기도문이나 인도 우화까지. 또 그가 즐겨 읽은 장 그르니에의 '섬'과 고양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소개도 빼놓지 않았다. 반지하방 왕국을 이미 냥이에게 양보한 스님은 사료를 먹느라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물을 먹느라 쫄쫄거리는 소리가 행복하다. 출가 인생에서 설렘을 일깨워준 유일한 존재, 탑전의 고양이가 사랑스러울수록 이별의 아픔이 클 것을 예감한다. 스님은 산중에서 일어난 고양이와의 일을 흘려보내기가 아까워 차곡차곡 기록했다고 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을 고대 로마 한 권으로 정리한 그는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로 언젠가 마주하게 될 고양이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감히 현명하여라. 시작하라, 잘 살아볼 시간을 미루는 일은 강을 건너려고 물이 다 흘러가버리기를 기다리는 촌사람 격이니라. 그동안 강물은 흐르며 영원히 흘러갈 것이다. -238, 239쪽 그렇게 겨울 한 철, 스님이 고양이를 바라보고 고양이가 스님을 바라본다. 서로 말한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 ▷지은이 보경 스님은… 송광사에서 현호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10년간 선방 생활을 거쳐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계종 교육원 교육국장, 중앙종회의원,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법련사 주지를 지내고 현재는 보조사상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사는 즐거움' '이야기 숲을 거닐다' 등 수필집 4권과 '기도하는 즐거움' '한 권으로 읽는 법화경' '42강경 강설집' 등 강설집 8권을 펴냈다. 264쪽, 1만6천원.

2018-01-13 00:05:03

[반갑다 새책]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오찬호 지음/동양북스 펴냄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대한민국 20대를 파헤친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한국 남성의 몸과 정신을 사회적으로 파헤친 책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로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진 사회학자 오찬호의 후속작이다. 이 책은 우리 마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학 입문서다. 근대화 과정에서 등장한 군부독재 정권이 통치 수단으로 사용한 애국심 마케팅과 이순신 프로파간다(propaganda), 정치 혐오와 엘리트주의를 부추기는 미디어, 경제지상주의, 비판 문화의 실종, 군대 문화, 남성, 권력자, 중앙 중심주의'''. 저자는 이와 같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사회, 문화, 경제적 환경들을 하나하나 해부하여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11년 동안 대학에서 사회학 강의를 하면서 '왜, 어떻게, 사회비판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수없이 경험한 그가 그동안 기록한 강의 노트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새로운 가치관의 세계로 안내하는 사회학 입문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이상한 사람과 사건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서 역할도 기대할 만하다. 301쪽, 1만4천원.

2018-01-13 00:05:03

김우진

[정혜영의 근대문학] 김우진의 '난파'와 자살 권하는 사회

누군가 자살할 때에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우연하게 일어난 사건이 누군가의 내면에 위태롭게 묻혀 있던 심리적 상처를 건드려 그 상처가 순식간에 폭발해서 자살이라는 치명적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적어도 일제강점기 천재적 극작가 김우진은 그랬다. 1926년 8월 4일 김우진은 '사의 찬미'로 유명한 성악가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을 건너는 배에서 투신자살한다. 그의 나이 서른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엘리트 유부남과 미모의 신여성 간의 정사(情死)라는 점에서 당시 언론은 김우진과 윤심덕의 자살을 사랑의 절망에 따른 낭만적 죽음으로 만들어갔다. 그러나 동반자살에 이르기 전부터 김우진은 윤심덕의 그악스러운 성격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에 목포 부호로서 집안의 사업을 물려받기를 바란 완고한 아버지 때문에 상당한 심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김우진이 자살 석 달 전 발표한 자전적 희곡 '난파'(難破'1926)는 자살에 이른 그의 복잡한 내면을 읽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난파'는 시인, 시인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비비라는 이름의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3막 2장의 희곡이다. 희곡 속 시인은 보험통계나 양도증서 등 이재에는 관심 없이 과거에 연연하며, 꿈을 찾는 인물이다. 이처럼 연약하고 섬세한 성향이 있는 시인의 한쪽에서는 아버지가 '신라 성족의 후예', 그리고 자랑스러운 아들의 역할을 철저하게 완수하라고 몰아붙이고 또 한쪽에서는 비비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햇살처럼 빛나고 멋지게 살 것을 권유한다. 시인은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인생이 군두(그네) 뛰는 것인 줄 알고 싶"다, "한 번 더 알고 싶"다면서 삶의 다양한 국면을 주체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는 열망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1920년대 전근대적 조선 현실 속에서 그 열망은 실현되지 못한 채 좌초되어 버린다. 시인의 삶을 난파시킨 것이 무엇인지 쉽게 규정할 수 없다. 고루한 인습, 불륜의 사랑, 시대에 맞지 않은 열망,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뒤섞여서 삶의 난파라는 파국적 상황으로 시인을 이끌고 간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처럼 김우진 역시 시대와 맞지 않는 열정과 열망을 지녔고,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사랑을 했지만, 아버지의 아들로 사는 것을 거부할 용기도 없었고 어렵게 선택한 사랑은 그를 지치게 했다. 그 속에서 김우진의 삶 또한 방향을 잃고 파국을 향해 갔다. 한국은 수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이어가고 있다. 이 중에는 청소년 자살이 만만치 않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100여 년 전 조선의 젊은이는 시대에 맞서다 좌절해서 죽음을 선택했지만, 현재 한국의 젊은이들은 무엇 때문에 자살이라는 자기 파괴적 선택을 하는 것일까. 대학 진학에서도, 취업에서도 생활 안정이 최고 목표가 되는 '안정' 위주의 대한민국이다. 이처럼 우리의 대한민국은 젊은이 스스로 길을 찾게 하기보다 안전하게 가야 할 길을 앞서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왜 자살을 권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살펴볼 때이다.

2018-01-13 00:05:03

[반갑다 새책]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 최성애'조벽 지음/ 해냄 펴냄 경제 성장을 향해 쉼 없이 달려온 대한민국, 국민소득 3만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실상 오늘 우리의 자화상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세계 최하위 수준의 출산율, 아시아 국가 1위인 이혼율, 성인 20명 중 1명은 우울증, 취학아동 4명 중 1명은 정서 불안에 시달린다. 경제적 가치는 사회의 지고선(善)이 되어 '금수저 신드롬'이 거세지만, 오히려 마음의 허기와 불안정한 인간관계에 허덕이는 '정서적 흙수저'들이 늘어간다. 심리치유, 교육 분야 전문가인 최성애 박사와 조벽 교수가 애착 손상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펴낸 책이다. 저자들은 30여 년간의 현장 경험과 최신 이론, 다양한 사례를 토대로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애착 양육의 중요성과 이를 회복하기 위해 개인, 기업,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다. 저자들은 위험수위에 이른 우리 사회 애착 손상 문제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애착 이론의 핵심부터 오늘날 우리의 상황까지 폭넓게 분석하고 있다. 폭력, 중독, 이혼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 행동들을 애착과 연결하여 설명하며, 금수저 흙수저 신드롬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311쪽 1만6천500원.

2018-01-13 00:05:03

불법도박장은 바퀴벌레 박멸처럼 힘들다. 동네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불법 PC방의 모습. 매일신문 DB

대박과 도박 사이, 아슬아슬 '파멸놀이'…『나비와 불꽃놀이』

나비와 불꽃놀이/ 장정옥 지음/ 학이사 펴냄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해무'로 등단한 장정옥의 4번째 장편소설이다. 지은이는 '놀이의 이데아'라는 화두에 천착했다. 키워드는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 '놀이의 정신이야말로 인류를 위대하게 만드는 무엇이고, 위대한 과제를 대하는 방법으로 놀이보다 좋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니체의 말도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다. 저자는 집필의 동기를 찾았다. '인류를 위대하게 만드는 이 '놀이'의 이데아를 '도박'과 접목시켜 객관화시키고자 했다. 이 소설은 골목 쓰레기 더미 속에 버려진 그림액자(폴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로 출발한다. 그림은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고, 둘 사이에는 술병이 놓여 있다. 이 그림은 이 소설의 전체를 비추는 하나의 상징적 힌트로 보면 된다. 이 책은 불법도박장을 무대로 놀이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적인 추이를 따라가고 있다. 어둠 속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악의 꽃 도박, 생산 없는 노동과 본능적인 욕구에 끌려가는 이의 허망한 날갯짓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출구 없는 삶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한탕을 추구한다. 놀이의 불꽃 속으로 뛰어든 그들은 연약한 날개를 펄럭이며,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노래 부른다. '한탕에 희망을 건 이들이 날마다 맨홀에 모여들었다. 사회에서 무엇을 하고 살았건 맨홀은 그들에게 'Who are you?'라고 묻지 않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한 신문지국장은 신문을 파는 대신 불법도박장에 뛰어든다. 손님들을 실어나르고 형제나 다름없는 친구를 도박장으로 끌어들이는가 하면, 돈을 위해서 성노리개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운명은 그저 착하기만 한 사람보다 쟁취하는 자,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자, 악착스레 재산을 긁어모으는 자들에게 더 호의적이다. 역설적인 말이 되겠으나 나는 아내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병실을 떠났다.' 피자가게 하나 얻을 돈만 생기면 손을 떼겠다고 마음먹지만 놀이의 신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 적과의 동침으로 서로 상처를 입지만 어둠 속에도 엄연히 삶이 있다. 어떤 이는 육체의 유형을 살고, 어떤 이는 영혼의 유형을 살며, 오늘도 그들은 주문처럼 한탕을 외친다. "딱! 한 번만 더."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세상에 없는 유토피아를 부르는지도 모른다. 한탕의 유혹은 인간의 욕망과 고뇌를 먹고 자라며, 노름꾼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기를 서슴지 않는다. 망하거나 죽거나, 도박을 버리기 전에는 살아날 방법이 없는데 덫에 걸린 듯 발을 빼기가 쉽지 않다. 경찰의 추적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불법 사설도박장은 끈질기게 살아남으며 끊임없이 세포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본인의 불행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경제적 파탄으로 악순환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게 된다. 저자는 도박에 중독돼 삶이 파탄난 인간을 암사마귀의 사랑에 비유한다. 마지막 쾌락의 극대화를 위해 교미 후 수컷을 머리를 따먹는 암사마귀의 사랑처럼 도박 중독자들은 불법도박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마지막 출구를 찾아 몸부림친다. 이 책은 도박으로 정신과 육체가 피폐되고, 가정의 평화까지 탕진하기에 이르는 노름꾼의 삶과 욕망, 빗나간 희망을 비추고 있다. 최근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비트코인 열풍' 역시 어쩌면 한탕의 유혹에 휘둘린 대한민국 대박주의자들의 비뚤어진 허상인지 모른다. 한편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저자는 2008년에 여성동아 장편소설에 공모해 '스무 살의 축제'로 당선됐으며, 등단 이후 20년 동안 '비단길' '고요한 종소리' 등을 펴냈다. 317쪽, 1만3천800원.

2018-01-13 00:05:03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 생태는 물론 해양영토, 주권의식까지 통찰한 울릉'독도 인문서 '하늘에서 본 울릉도와 독도의 해양영토'가 출간 됐다. 독도 전경, 울릉도 도동, 독도 영해기점 표지석. 지성사 제공

해양영토, 헌법에는 없는 주권 이야기…『하늘에서 본 울릉도와 독도의 해양영토』

하늘에서 본 울릉도와 독도의 해양영토/ 김윤배'김성수 지음/ 지성사 펴냄 세계 10대 해양관광섬(론리 플래닛 선정), 한국 10대 생태관광지, 동해안 최초 해양보호구역, 국내 최초 국가지질공원…. 현재 울릉도와 독도를 지칭하는 타이틀이자 수식어들이다. 연간 울릉도 방문객은 30만~40만 명, 이 중에 15만~20만 명이 독도를 방문한다. 본토에서 울릉도까지 왕복 6, 7시간, 그리고 울릉도에서 다시 독도까지 3시간 반, 총 10시간이 소요된다. 배멀미를 참아가며 힘든 여행에 나서지만 그들이 담아가는 건 긴 뱃길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몇 장의 사진뿐. "울릉'독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두 섬의 역사 문화적 가치와 정체성을 제대로 알려보자." 이 책은 해양과학기술원의 김윤배'김성수 씨가 동해 오지 섬에서 탐사한 국토 사랑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울릉도 역사'마을 기원'생태 이야기 정리=해양과학기술원에서 기획한 이 책은 '과학 바다 시리즈' 중 일부. 전체 구성을 3장으로 나누어 울릉도 이야기, 울릉도의 마을과 항구, 독도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먼저 '울릉도 이야기'에서는 이 지역의 청동기 역사, 우산국 건국 스토리, 신라(지증왕 13년'512년) 영토로 편입 후 한반도 본토와의 교류가 시작되는 역사를 담고 있다. 이 외 날씨, 바람과 파도, 해수 순환과 수온의 변화, 울릉도의 생성과 주변의 해저 지형, 그리고 해양보호구역 등에 관해 두루 살펴본다. '울릉도의 마을과 항구'에서는 동해안 어업 전진기지 저동항, 행정 중심지 도동항, 새로운 관문으로 떠오르는 사동항을 비롯하여 통구미, 남양, 학포, 태하, 현포, 추산, 천부항, 나리분지, 석포, 관음도, 죽도 등을 소개한다. 지역마다, 항구마다 역사적 배경 및 생태적 특징을 살피고,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사진을 나란히 배치해 기록성을 살렸다. '독도 이야기'에서는 동도에 세워진 접안시설, 독도 등대, 독대경비대 숙소, 통신탑, 위성 안테나, 기상청 자동기상관측장비와 기후변화감시소 등 해양영토를 수호하기 위한 시설물을 소개한다. 또 문무대왕의 유훈을 간직한 독도 접안시설 준공비, 1947년 9월 18일 미군의 폭격 사건으로 희생당한 어민을 기리는 독도조난어민위령비와 대한민국 국가기준점 표식, 대한민국 영해기점 표식도 볼 수 있다. 주민들의 숙소와 독도의 샘터 물골이 있는 서도, 그리고 크고 작은 바위에 얽힌 이야기와 약 250여 종의 바닷말류, 약 110여 종의 어류 등 독도바다 생물 이야기도 곁들인다. ◆해양 영토적 관점에서 본 독도=이 책은 역사와 문화, 주민들의 삶의 모습 외 울릉도'독도의 숨겨진 가치를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자 기획됐다. 특히 그동안 학술적, 정치적 틀 속에 갇혀 박제된 울릉도'독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가꾸고 지켜야 할 우리의 영토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런데 왜 해양영토일까?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흔히 울릉군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군(郡)이라고 한다. 수면 위에 드러난 육지만 고려한다면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해양영토가 빠져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조차 '해양'이란 단어가 없는 것이 해양영토에 대한 인식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 책은 울릉도와 독도의 해양영토를 지켜온 사람들과 그 해양영토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담고자 하였다." 우리가 해양영토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때 울릉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군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자치단체로 다가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해양영토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곧 동해의 거친 바다를 터전으로 살고 있는 울릉도'독도 주민들, 그리고 그 척박한 환경에서 일궈온 바다와 땅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울릉도'독도 비경 드론으로 촬영=비행기 여행을 할 때 느끼는 작은 이벤트 하나가 이착륙 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다. 아직 활주로를 갖추지 못한 울릉도에서 항공 뷰(View)는 그림의 떡이었다. 최근 드론의 등장으로 이런 일이 현실로 다가오게 됐다. 이 책을 기획한 해양과학기술원은 드론을 띄워 울릉도와 독도 연안생태계의 과학적 이해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울릉도와 독도의 수려한 경관을 잡아냈다. 울릉도와 독도의 사계를 담은 총 150여 장의 컬러 사진은 그 자체로 지상 중계요, 화보다. 해양과학기술원은 2015년부터 드론을 도입하여 울릉도와 독도의 연안 생태계 연구에 활용해 왔다. 동해의 연안 해역은 투명도가 뛰어나 10m 내외의 바닷속 해조류 군락의 변화까지 관찰할 수 있다. 또한 파고 10m가 넘는 해일 속에서도 독도의 해안선이 변화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화보 같은 사진에 몰입하다 보면 자칫 문화'학술 콘텐츠와 해양영토가 의미하는 애국심 코드를 놓칠 수 있다. 사진 너머에 있는 울릉도의 역사적, 생태적 가치와 독도의 영토적, 주권적 가치까지 통찰해야 이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지금도 해발 104m에 있는 독도 등대는 10초에 한 번 불빛을 깜빡이며 76㎞(41해리)를 밝게 비추고 있다. 안개 낀 날이면 경적을 울려 우리 어선과 국민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준다. 저자는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독도에 들르면 정상부 동쪽 끝단에 영해기점 표식을 돌아보자. 독도의 가치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비록 18만㎡에 지나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독도가 품고 있는 해양영토의 가치는 몇만 배나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132쪽, 1만7천원.

2018-01-13 00:05:03

[책 CHECK]노계 문학세계와 문화콘텐츠화 전략/바람의 가객

노계 문학세계와 문화콘텐츠화 전략 노계연구총서 편찬위원회 지음 / 북코리아 펴냄 바람의 가객 강현국'박숙혜 지음 / 북코리아 펴냄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 노계 박인로 선생을 선양하기 위한 책 두 권이 출간됐다. 하나는 연구총서 '노계 문학세계와 문화콘텐츠화 전략'이고, 다른 한 권은 노계 선양을 위한 스토리텔링 '바람의 가객'이다. 노계의 문학과 삶을 총체적으로 다룬 '노계 문학세계와 문화콘텐츠화 전략'은 학문적 접근이며 선양 사업에 필요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에서는 노계 문학을 바깥에서 접근했고, 2부에서는 텍스트 안쪽에서 노계문학을 살피고 있다. 3부는 노계 박인로의 문화콘텐츠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3부에 묶은 문화콘텐츠 개발과 관련된 글은 종래의 연구서적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기획이다. 문학이 외연을 확대하고 그 생산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문화산업과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창권 교수의 융복합 노년 콘텐츠 개발과 송광인 교수의 기존 문학관의 문제점 지적, 김미경 교수의 노계 박인로의 영천지역 브랜드화 전략 등은 새겨들은 만한 제안이다. 편찬위원회는 책머리에서 "노계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제작, 출간된 이 연구총서가 어제의 역사와 오늘의 역사를 잇는 가교가 되고, 책 속의 문학과 책 밖의 산업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고,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이 행복하게 조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한 권의 책 '바람의 가객'은 노계 박인로 선생의 삶과 문학세계를 스토리텔링한 것이다. 바람의 가객은 소설 형식을 따라 제작한 작품이다. 그것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을 말한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당연히 노계 박인로이다. 노계가 성장하면서 깨달아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임란 의병으로 영천성 복성전투에 참전하는 등 장기간의 무관 생활을 비롯해 도학 지향의 자기계발과 창작, 그리고 폭넓은 인간관계를 통해 스스로 깨우치고 발전해 나가는 노계의 자유롭고 동적인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재미를 위해 상상력을 덧붙였다. YCI부설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 김정식 원장은 "이 책의 발간으로 누구나 노계 박인로를 쉽게 이해하고, 나아가 지방정부나 문화단체는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노계 문화콘텐츠를 제작해 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비매품

2018-01-13 00:05:03

송숙 작 '동급생'.

[내가 읽은 책] 동급생 (프레드 울만)

동급생/ 프레드 울만 / 열린 책들/ 2017년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그것이 편협한 시선 안에서 재단된 실수일 때가 있다. 슈바르츠와 콘라딘의 관계도 그랬다. 슈바르츠와 콘라딘의 순수한 우정에 끼어든 역사의 소용돌이는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무너지게 했다. 결국 부모들의 이념을 따라 각각 그들의 세상으로 간 슈바르츠와 콘라딘의 삶은 모두의 기대와는 달랐다. 어릴 적 상처를 끌어안은 채 평생을 낯선 이국땅에서 살아야 했던 슈바르츠에게 콘라딘은 끊을 수 없는 애증의 실체였다. 저자 프레드 울만은 190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했으나 히틀러가 집권한 후 1933년 프랑스로 망명하여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 후 스페인과 영국을 전전하며 마지막엔 런던에서 생을 마감했다. 평생 동안 자신이 태어난 낭만적인 고향을 잊지 못하여 그의 작품 『동급생』에 녹여 놓았다. 처음 『동급생』이 영어로 세상에 나왔을 때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아서 케스틀러의 서문과 함께 1977년 재출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슈바르츠의 아버지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평범하고도 완벽한 독일인으로 살아왔다. 슈바르츠도 아버지의 안정된 그늘에서 순탄한 소년기를 맞이한다. 전통적인 독일 귀족 백작의 아들인 콘라딘과는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우정을 쌓아갔다. 어느 날 독일 사회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다는 나치의 등장은 평범한 소시민의 의무를 충실히 하며 살아가던 슈바르츠 부모님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렸다. 독일인이 되고자 신명을 바쳐 살아온 그동안의 삶이 배신당하자 슈바르츠의 부모님은 결국 목숨을 끊고 슈바르츠는 미국으로 보내진다. 30년이 지난 후, 미국 생활에 성공한 슈바르츠는 우연히 자신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내몰았던 알렉산더 김나지움으로부터 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동창들을 위한 추모비 건립에 기부를 해 달라는 호소문을 받게 된다. 슈바르츠는 그 호소문과 인명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자신의 삶에서 잘라내 버리고 싶었던 17년의 흔적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슈바르츠는 호소문을 다시 꺼내 읽어 내려갔다. 자기가 알고 지냈던 친구들, 혹은 관심 밖의 친구들 이름이 하나둘 나타나자 두려움에 휩싸인다. 콘라딘, 잊지 못할 그 아이의 이름이 있는 페이지는 차마 확인하고 싶지가 않았다. '작은 남자지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그의 확신에서 오는 순수한 힘과 강철 같은 의지, 천재적인 강렬함, 예언자적인 통찰에 휩쓸려 들고 말아. 어머니는 신께서 저분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어. 그리고 독일에는 너를 위한 자리가 없을 것." 귀족의 명성만큼이나 푸르렀던 그들의 우정은 역시 아름다웠다. 정의 앞에서 진실되고 명백한 의지를 가진 콘라딘은 슈바르츠의 영원한 친구였던 것이다. 과거의 기억에서 확신하고 있는 사실들이 그것으로 멈추어 있지 않고 마침내 살아서 정의로 기운다는 것을 콘라딘을 통해 보여준다. 슈바르츠를 떠나보낸 후 겪었을 콘라딘의 아픔은 오랫동안 가슴을 아리게 한다.

2018-01-13 00:05:03

[책 CHECK] 문득 그대

구활 지음/눈빛 펴냄 "저승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띠리르릉 띠리르릉…' 두 번쯤 신호가 가더니 '이 전화는 없는 번호이니 헛짓 그만하고 끊어 주세요'라는 녹음된 음성이 영어로 들려왔다. 그럴 줄 알았다. 내 전화기에 친구의 번호는 멀쩡하게 살아 있었지만 친구는 가고 없다."('저승 전화' 중에서)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써온 여행과 음식이란 주제에서 벗어나 새롭게 쓴 산문집이다. 먼저 저승으로 간 저자의 어머니를 비롯해 옛 선비, 어른, 친지, 친구들에 대한 추모의 글들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시골 예배당의 종지기처럼 살아야겠다. 그러나 요즘 성당과 교회에는 종지기가 없다. 주민들의 새벽잠을 깨운다며 종소리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어릴 적 듣던 종소리가 듣고 싶으면 인터넷에 들어가 프랑스 솔렘수도원에서 검은 옷을 입은 늙은 수사가 치는 종소리를 듣는다. '뎅 데엥 데엥…' 그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귀와 눈이 열리고 마음까지 열린다"고 썼다. 신문기자 출신인 저자는 그동안 고향 이야기, 문화유산 답사, 절집 탐방, 옛 선비들의 풍류, 어머니의 손맛, 여행, 바닷가 음식 등 30여 년 동안 14권의 책을 냈다. 272쪽, 1만2천원.

2018-01-06 00:05:00

[책 CHECK] 어른 수업

하쿠호도 새로운어른문화연구소 지음/ 오선이 옮김/ 어른의 시간 펴냄 어느덧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향해 가는 고령화 사회에서 50, 60대는 예전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보다 앞서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50, 60대는 인생의 말년이 아니라 인생의 절반을 지나는 시기이자, 앞으로 30, 40년을 충실하게 보내기 위해서 새로운 활동을 해나가는 무대가 된다. 그들은 자녀의 양육 의무에서 벗어나고 회사 일에서도 해방되어 경제적인 여유와 자유로운 시간을 손에 쥔 새로운 어른들이다. 그중에서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취미와 여가활동을 즐기는 활동적인 집단이 있다. 같은 세대에게 영향을 끼치며 라이프 스타일을 이끌어가는 이들을 가리켜 일본에서는 '어른 이노베이터'라 부른다. 어른 이노베이터는 같은 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와도 교류하며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모든 세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 책은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멋진 어른의 모습과 함께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가정과 직장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상세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248쪽, 1만4천원.

2018-01-06 00:05:00

양성애 작, '별마당 도서관'

[내가 읽은 책] 너무 시끄러운 고독

한타가 그랬던 것처럼…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문학동네. 2016 쫓기듯 앞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면서도 우리는 늘 누군가보다 못하다고 느낀다. 순간순간을 고군분투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보통의 우리들. 그렇게 우리는 살고 있다. 진정으로 원했던 삶은 까맣게 잊은 채…. 자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한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이것이 바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다. 그리고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삶 자체이기도 하다. 체코의 작가 보후밀 흐라발은 2차 세계대전, 공산주의 치하에 살면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없는 처지였지만 끝까지 체코어로 글을 쓰며 체코를 지켰다. 그 시대의 많은 체코 작가들이 고국을 떠나버렸으나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애썼다. 그 이유로 인해 그의 작품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빛을 발하고 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란 제목을 대하는 순간 고독해지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될 준비를 마친 후 읽기 시작한 책에서 난 고독의 심연에 빠졌다. 시끄럽게 말이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9, 21, 35쪽) 8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이 문장 안에 주인공 한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고스란히 들어 있다. 늘 고독한 주인공 한타는 오랜 세월 젖어온 시 같은 문장과 아름다운 글귀들의 소란스러움을 고스란히 안고 고독을 즐기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써내려 간 이야기는 길진 않지만 담담하게 가슴속에 새겨지는 아주 긴 이야기였다. 오랜 시간 책을 압축하는 일을 하면서 그는 아름다운 문장이 담긴 책을 차마 버릴 수 없었다. 그는 그 아름다운 책들을 하나하나 모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가 모은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만은 그는 외롭지도 고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오롯이 그만을 위해 펼쳐진 또 다른 세상이었다. "가치 있는 무언가가 담긴 책이라면 분서의 화염 속에서도 조용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11쪽) 하지만 그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새로운 세상이 다가왔다. 그가 삼십오 년째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평생을 함께하려 한 그 일은 기계화에 밀려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과 앞으로의 삶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걸 느꼈다. 어쩌면 그가 다가올 세상에 절망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이루어놓은 세상에 온전히 혼자 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와 책을 떼어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영원히 그 아름다운 문장과 오래된 책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빨아 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10쪽) 한타만큼 강렬히 책을 사랑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쏜살같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들은 늘 초조해하며 그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 삶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어떠한가? 맞서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고 또한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내가 추구했던 삶과는 다른 삶에 동조하지 못하는 합리성을 찾아내고 만다. 하지만 한타를 만나고 난 뒤의 내 삶은 바뀌리라. 진정으로 내가 추구하는 삶을 위해 내 온몸을 바치리라. 오롯이 내 삶을 사랑하리라. 한타가 그랬던 것처럼….

2018-01-06 00:05:00

[이종문의 한시 산책] 동문의 노래

동문의 노래[東門行] 작자미상 동문을 나서며 出東門(출동문)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나 不顧歸(불고귀) 다시 와서 문에 들어와 보니 來入門(래입문) 슬픔이 북받쳐 오르는구나 悵欲悲(창욕비) 항아리엔 쌀이 다 떨어졌고 盎中無斗米儲(앙중무두미저) 시렁엔 걸려 있는 옷도 없구나 還視架上無懸衣(환시가상무현의) 칼을 뽑아들고 동문으로 가려는데 拔劍東門去(발검동문거) 아이 엄마 옷을 잡고 흐느껴 우네 舍中兒母牽衣啼(시중아모견의제) 다른 사람들은 부귀를 원하지만 他家但願富貴(타가단원부귀) 저는 당신과 죽을 먹더라도 함께 살래요 賤妾與君共餔糜(천첩여군공포미) 위로는 저 푸른 하늘의 뜻이고 上用倉浪天故(상용창랑천고) 아래로는 이 어린 것 생각하셔야죠 下當用此黃口兒(하당용차황구아) 지금 이렇게 가시면 안돼요 今非(금비) 쯧쯧 咄(돌) 가야 해 行(행) 갈 때가 이미 늦었어 吾去爲遲(오거위지) 백년해로는 다 글렀어 白髮時下難久居(백발시하난구거) 여기 절대적인 가난에 시달리는 한 가장이 있다. 그는 참다못해 칼을 빼들고 범행 장소로 나서다가, 윤리와 도덕이 떠올랐는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굶주리고 헐벗은 처자식의 모습을 보는 순간, 다시 눈이 까뒤집혀서 칼을 빼들기로 결단을 내린다. 강도질을 하려고 칼을 빼들고 나가는 남편과 이를 말리는 아내, 아내를 뿌리치고 기어이 나가는 남편 사이의 극적 갈등이 아주 생생한 대화체로 전개된다. 그야말로 한편의 단막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한(漢)나라 시대의 시가인 이 작품의 묘미를 더해주는 것은 내용에 상응하는 격한 호흡과 리듬이다. 보다시피 이 작품은 각 구절의 글자 수가 변화무쌍하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글자 수가 같게 구성된 한시의 보편 리듬이나 호흡과는 느낌이 하늘과 땅 차이다. 때로는 '今非/ 咄/ 行/ 吾去爲遲'처럼 급박한 상황에 걸맞게 스타카토로 짧게 툭툭 끊기기도 한다. 촉급한 리듬과 호흡을 통해 작품내적 상황을 더욱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래서 가슴이 더욱더 아프다. "한 대학생 누나/ 너무 배고파/ 메추리알, 우유, 김치, 핫바/ 6,650원어치 훔쳤다고 한다./ 설 때도 고향집에/ 아무도 없는 누나/ 누나의 가난을/ 누가 훔쳐 갔음 좋겠다./ 누나의 슬픔을/ 누가 훔쳐 갔음 좋겠다." 이화주의 '누가 훔쳐갔음 좋겠다'라는 동시다. 이 세상 사람들의 극한 가난, 극한 슬픔을 누군가가 몽땅 훔쳐가면 참 좋겠다. 만약 그런 도둑이 있다면, '참 착한 도둑 상'을 주고 싶다.

2018-01-06 00:05:00

임진왜란 때 조선이 약해진 건 인플루엔자 때문?

판데믹 히스토리/ 장항석 지음/ 시대의창 펴냄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한 이래 인류는 '바이러스'의 공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1347년 유럽으로 전파된 아시아 내륙 페스트균은 유럽 인구 절반을 앗아갔다. 유럽을 초토화한 이 역병은 767년이 지나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졌다. 어떻게 사라졌을까? 아무리 강한 페스트균이라도 감염이 계속되려면 병을 옮길 숙주가 있어야 한다. 학계는 감수성 있는 숙주가 사라지면서 페스트도 사라졌다고 추정한다. 이후에도 역병은 계속됐다. 스페인독감(1918~1920), 아시아독감(1957~1958), 홍콩독감(1968~1969)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사스(SARS), 메르스(MERS), 에볼라. 지카, AI 등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콜레라나 뇌수막염 등 세균성 질병은 어느 정도 잡혔지만, 바이러스성 질병은 아직 속수무책이다. 에이즈는 여전히 공포 그 자체다. 이 책 '판데믹 히스토리'는 인류의 역사를 끊임없이 조정했던 질병에 대한 문명사적 기록이다. 현직 의사인 저자는 방대한 역사 자료 연구와 임상체험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문명사를 해부했다. 그리고 그만의 독창적인 관점과 다방면에 걸친 지식으로 질병 연대기를 깔끔하게 봉합했다. ◆침입의 역사 침입이 반드시 질병을 일으키진 않는다. 인류도 침입에서 비롯됐다. 핵도, 세포질 구분도 없지만, 독자적인 DNA를 가진 한 생물체가 우리 몸에 우연히 들어왔다. 미토콘드리아의 침입으로 시작된 기적은 생명을 탄생시켰다. 침입과 공생이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면역력이 없는 집단은 감염에 취약했다. 문명사는 그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람세스 2세가 즉위하고서 강제노역에 시달린 유대인은 역병의 도움으로 이집트를 탈출했다. 천재지변으로 나일강이 범람하고 하늘이 어두워졌으며 해충이 들끓고 가축과 사람에 전염병이 번졌다. 히타이트와의 전쟁은 천연두로 추정되는 질병이 창궐하던 이집트에 더 큰 타격을 주었다. 패퇴하지는 않았지만, 국력이 급속도로 쇠퇴한 이집트의 지배력이 약화하면서 유대인은 탈출에 성공했다. 아즈텍 문명은 스페인 군대와 함께 침입한 천연두로 파괴됐다. 트로이 전쟁 때도 아폴론 신은 제사장인 크리세스의 딸 크리세이스를 붙잡아 간 그리스군에 저주를 내려 질병의 화살을 쏴대면서 그리스군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동로마 제국을 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게 만든 것도 페스트로 설명한다. 2014년 의학 학술지 '란셋'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541년 콘스탄티노플을 덮치고 750년까지 유행했던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으로 동로마와 난공불락의 요새 콘스탄티노플은 멸망의 길로 치달았다. 논문은 이 역병이 잠복하고 있다가 흑사병으로 나타났고, 19세기 남중국과 홍콩을 중심으로 판데믹(Pandemic)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임진왜란의 배후에도 유럽발 인플루엔자가 있었다는 주장도 흥미롭다. 16세기 전국을 강타한 역병에 조선은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우리나라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건 전염병 때문이라는 것.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창궐한 스페인독감은 전사자 수의 3배에 달하는 5천만 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렇듯 생명 탄생의 순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를 감염시키고 파괴하면서 새로운 문명과 질서를 만들었다. 수천 년간 세계사는 질병에 걸렸다. ◆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하다 저자는 인류 역사를 감염과 내성의 변증법적 역사로 본다. 생태계 교란종인 우리나라 '황소개구리'처럼, 오스트레일리아에 들어간 '영국토끼'가 생태계를 위협하자 토끼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사례를 든다. 1년 만에 토끼는 거의 절멸했지만 7년이 지나자 내성을 가진 토끼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멸종되지 않은 집단은 질병과 균형을 이루며 번성, 번영한다. 저자는 천연두가 몰락시킨 아즈텍 문명의 후예나, 흑사병이 훑고 간 뒤 살아남은 사람들처럼 감염과 면역, 침투와 내성의 역학관계에서 승리한 생명체로부터 문명은 시작한다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는 동물-인간, 인간-인간의 전파 여부와 속도에 따라 전염병을 6단계로 구분한다. 4단계는 세계적 전염의 초기 단계, 5단계는 동일 권역 2개국 이상에 퍼져 대유행에 접어든 상태로 에피데믹(Epidemic), 마지막 6단계는 여러 대륙의 국가에 퍼져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판데믹(Pandemic)이라고 한다. 최근 발생한 에볼라와 신종인플루엔자는 5단계까지는 갔으나 판데믹을 형성하진 않았다. 현대적 사회구조와 시스템 덕분이었다. 몇 해 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생소한 병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다. 같은 공간에만 있어도 전염이 된다는 공포가 대한민국에 퍼졌다. 증상이 있으면 가족으로부터, 회사로부터, 사회로부터 격리됐다. 병원이 감염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병원 근처에 얼씬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정부는 근거 없는 지침을 내놨다. 낙타와의 접촉을 피하고 멸균되지 않은 낙타유나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 낙타는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던가. 결국, 격리된 서울대공원의 낙타는 중동이 어딘지도 모르는 '한국 태생'이었다. 심지어 이 낙타는 중동이 어딘지도 모르는 몽골지역 쌍봉낙타였다. 질병을 모르는 데서 벌어진 촌극이다. 질병은 얼마나 위험하고,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408쪽, 1만8천500원.

2018-01-06 00:05:00

함께 떠나는 문학관 여행…앉아서 전국 38개 문학관 탐방

수필가이자 경기도 안양 문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지은이가 1년 동안 전국의 문학관을 탐방한 여행기다. 전국 38개 문학관과 44명 작가들의 삶과 문학을 담고 있다. 서울, 경기, 충청, 강원, 전라, 경상까지 지역별로, 또 작가들의 출생 연도순으로 정리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문학관은 대부분 우리나라 문학사에 한 획을 긋거나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을 기리는 곳이다. 대충은 알고 있지만, 속속들이는 모르는, 그래서 알고 나면 더 애틋한 마음이 일어난다. 가령 서정주 시인, 하면 '훌륭한 시와 친일'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서정주 시인은) 1924년 줄포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30년 광주학생운동의 여파로 시위가 일어나자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돼 퇴학당한다. 이듬해 고창고등보통학교로 편입했으나 자퇴를 강요당한다. 그래서 상경한 시인은 경성부립도서관 종로분관에서 일어판 서양문학작품을 탐독하며 지내기도 하고, 간도 한 양곡회사에 취직한 적도 있으며, 호구지책으로 한문소설을 번역하기도 하며 팍팍한 생활을 이어간다.' -207쪽- '1950년 6'25전쟁 때 정신분열 증세가 심해 대구와 부산 등에서 요양했고, 1'4 후퇴 때는 피란 가서 전주고 교사, 조선대 부교수, 환도 후에는 서라벌 예술대, 동국대 교수를 지낸다.' -208쪽- 통영 앞바다가 보이는 김춘수 유품전시관(경남 통영시 해평 5길 142-16)은 특이하게도 이름이 문학관이 아니라 유품전시관이다. 다른 작가들의 문학관에도 일정한 정도의 유품이 있다. 그러나 김춘수 유품전시관에는 유난히 작가의 유품이 많다. 1층 전시관에는 각종 문예지와 작가의 저서 관련 자료, 육필원고, 연필통과 도장 등이 있다. 2층 전시관에는 이부자리가 덮인 대형 침대와 간이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가지, 탁자와 소파, 도자기가 놓여 있는 장식대, 다기 세트, 서재 등 작가의 생전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자료들이 많다.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이다. 호 '육사'는 일제 강점기 수감번호 '264'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17번이나 감옥에 갇혔고 독립운동단체에 가입해 일본과 중국에서 항일운동과 학업을 병행했다.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감옥에서 마흔의 나이로 순국했다. 안동시 도산면 이육사 문학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은이는 이육사가 어째서 그처럼 철저한 저항시인이 되었는지를 되새긴다. 이육사는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6형제 중 4형제가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외가는 의병장 집안으로 만주지역 독립운동에 이바지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이중직에게 글을 배워 선비정신이 몸에 뱄다. 옳고 그름, 사람의 도리, 자신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바를 자라는 환경 속에서 체득한 것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문학관은 다음과 같다. 윤동주 문학관, 한무숙 문학관, 김수영 문학관, 노작 홍사용 문학관, 황순원 문학촌, 박두진 자료실, 조병화 문학관, 심훈 기념관, 정지용 문학관, 오장환 문학관, 신동엽 문학관, 만해마을, 김동명 문학관, 이효석 문학관, 김유정 문학촌, 월하 문학관, 박인환 문학관, 목포 문학관, 채만식 문학관, 석정 문학관, 김환태 문학관, 미당 시 문학관, 조태일 시문학 기념관, 순천 문학관, 최명희 문학관, 청마 문학관, 이원수 문학관, 이병주 문학관, 김춘수 유품전시관, 박경리 기념관, 박재삼 문학관, 이육사 문학관, 요산 문학관, 오영수 문학관, 동리목월 문학관, 구상 문학관, 지훈 문학관, 권정생 동화나라. 전국 문학관 기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떠나기 전에 작가의 책 한두 권을 읽는다면 금상첨화겠다. 352쪽, 1만7천원.

2018-01-06 00:05:00

[반갑다 새책] 구석기인에 대한 환상 반박

"구석기인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더 이상 과거를 미화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 한때 미국을 중심으로 구석기 다이어트가 큰 화제를 모았다. 이는 인간은 구석기 시대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 당시 방식으로 돌아가면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농사 이전의 사냥 시절 식습관을 차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제품과 가공식품은 건강에 반하는 음식으로 치부하고, 특히 곡물에 있는 녹말이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이라고 지목하고 구석기인들처럼 육류와 채식, 과일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를 구석기에 대한 환상이라고 단언한다. 이는 진화에 대한 잘못된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 이 책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구석기 시대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깨주고, 선사시대 생활방식을 현재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 알려주는 동시에 진화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선사인식 식습관 추종 같은 구석기 시대의 착각들을 과학에 입각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구석기 시대에 대한 맹신은 진화에 대한 착각이 만들어낸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463쪽, 1만8천원.

2018-01-06 00:05:00

[반갑대 새 책] 변방의 사운드

인터아시아 관점에서 본 '아시안 팝' 안내서다. 전문성 높은 집필진과 꼼꼼한 번역으로 엮어낸 아시안 팝 음악 통사의 성격이다. 우리에게 서양의 '팝'은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정작 이웃한 나라의 '팝'에는 별 관심이 없다. 무관심이 무지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 책은 '서로 너무나 몰랐던 아시아끼리 이제는 좀 알고 지내자'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이런 취지에서 아시아 각국'각지의 팝 음악에 관한 개관과 역사를 제공하고 있다. 여러 국적을 가진 연구자들이 아시아 국가 중 11개 국가(혹은 지역)의 20세기 후반 팝 음악 역사를 집필하고 이것을 읽기 쉽게 다듬어 한 권에 담아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양과 다른 경로로 발전해 온 아시안 팝 음악의 공통성을 느낄 수 있고, 각 나라와 지역 간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글로벌 팝 음악으로서의 아시안 팝을 알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집필은 그 나라 혹은 지역의 현지인이거나 전문가인 필자들이 담당했다. 집필진을 모으는 과정도 난관이 많았다. 우선 아시아 대중음악에 관한 구체적인 사전지식이 필요했고, 제각각인 로마자 표기법, 대중적이지 않은 언어의 의미 파악 등 장애 요소가 아주 많았다. 책이 나오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단어 하나까지 세심하게 골라 원문의 본 의미를 최대한 살리고, 꼼꼼히 번역한 덕에 이질감 없이 매끄럽게 읽힌다. 456쪽, 2만9천원.

2018-01-06 00:05:00

'청년 vs 기성세대' 프레임 만들어 정치적 수익 노리는 세력들

인종, 젠더, 지역… 이제 문제는 '세대'다. '부자 아빠가 가난한 아들의 밥그릇을 훔친다'는 표현처럼 세대 갈등은 최근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오랫동안 세대론을 연구해온 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이 책에서 오늘날 세대 갈등 문제를 '세대 게임'이라는 틀로 해석하며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고 있다. '세대 게임'이란 그에 참가한 사람들이 세대를 이뤄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활동과, 게임의 판을 짠 집단들이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세대를 활용해 사람들의 경쟁이나 갈등을 부추기는 움직임을 말한다. 해묵은 지역 갈등이나 계층'계급 대립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세대 갈등, 청년 대 기성세대의 대결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레스터 서로 교수 '세대 대결' 예측="가까운 미래에 계급 전쟁은 빈자와 부자의 대결이 아니라 젊은이와 노인의 싸움으로 다시금 정의될 것이다." MIT 경제학 교수 레스터 서로는 1996년 '뉴욕 타임스 매거진' 칼럼에서 '어떤 혁명적 계급의 탄생'을 알렸다. 그의 예견은 초고령'저출산 시대를 맞아 국제 흐름은 물론 특히 한국의 현 상황과도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16년 19~75세 국민 3천66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사회통합 실태 및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가 '10년 후 고령자와 젊은이 간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인구가 감소하면 사회적 긴장도는 높아지게 되는데 특히 정치적 긴장이 커진다. 정치는 재화의 분배를 결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계층 간, 세대 간 이해가 부딪칠 수밖에 없다. 저자는 기득권, 노인들의 정치적 성향을 '시니어 권력 모델'로 정의한다. 이들은 막강한 득표력으로 자신들의 몫(연금, 의료 혜택 등)을 챙기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들에 유리한 정책을 수립하도록 압박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젊은 층들이 조직적 반발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 언론의 보도, 학교, 직장, 가정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세대 갈등은 위험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말이 안 통하는 꼰대' '젊은 애들은 이래서 문제'라고 서로 비난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세대 게임'이란 틀로 사회 현상 진단=저자는 일상적, 혹은 학술적으로 혼재해 쓰이는 '세대' 개념을 알기 쉽게 정의하고, 한때 청년의 전유물이던 '세대' 개념이 변화해온 배경과 과정을 살피고 있다. 또 청년과 기성세대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세대 전쟁론'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펼쳐 보이며, 새롭게 대두된 세대 연구의 최신 성과들을 대입해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다. 전 교수는 우리 사회 도처에 널려 있는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세대 게임'이라는 틀로 분석하고 있다. 보통 세대 게임은 게임에 참여하는 '세대 당사자'와 게임을 고안하고 설계하여 그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세대 플레이어'라는 두 집단으로 나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세대 플레이어'와 그들이 게임을 통해 얻는 '정치적 수익'에 주목한다. 세대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사회 현안을 세대의 문제로 해석하는 '세대 프레임'을 통해 온갖 사회문제를 '세대'의 부호로 변환한다. 즉 사회문제들이 세대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원인들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치 촛불과 태극기가 대립했던 지난 광장의 소란을 법치와 민주주의의 틀이 아닌, 세대 대립의 문제로 몰아가 사회 갈등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세대 게임 플레이어는 대체 누굴까. 저자는 명확히 '용의자'를 지목하고 있지는 않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누군지 특정하지 않았지만 시민들의 정치적 소외와 차별을 숨기려는 위정자일 수도 있고, 부의 불균등한 분배'불평등 모순을 감추려는 기업 집단일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세대 프레임으로 사회 갈등을 바라보면 문제의 해결책은 특정 세대에게 책임을 묻고 그들로 인해 손해를 입은 다른 세대에게 보상하는 식이 된다. 이 결과 이기적인 기성세대가 청년의 현재를 빼앗고 미래를 '탕진'하기 때문에 (불공정한 처사를 일삼는) 기성세대를 벌해야 한다는 식의 사회 분열적, 소모적 논리가 성립된다. ◆'세대 프레임' 허구에 속지 말아야=전 교수는 '정말 세대들의 싸움이 시작된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한다. 누군가 현재 사회의 갈등을 세대 갈등으로 비치도록 기획하는 세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취객과 경관의 일화'로 지금의 상황을 비유한다. 가로등 불빛 아래 취객과 경관이 열쇠를 찾고 있다. 여기서 열쇠를 잃어버린 게 맞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취객은 "여기가 아니라 저긴데, 저긴 가로등이 없어서 못 찾는다"고 답한다. 저자는 우리가 '세대 프레임'이라는 가로등의 강렬한 불빛에 현혹된 것은 아닌지를 되물으며 그 나름의 손전등으로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아보자고 말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의거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혹시 우리도 세대 프레임의 강렬한 불빛에 현혹되어 엉뚱한 곳만 주시하는 것이 아닐까." 책은 이런 세대 프레임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게임 플레이어들이 짜놓은 틀을 항상 '의심하라'고 말한다. 세대 플레이어들이 아직 건재하고 쉽게 조작이 가능한 세대 프레임 탓에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갈등이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저자는 "갈등은 모든 사회에 상존하고 필요악으로 존재한다"며 "중요한 것은 여러 사회 갈등들이 중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무의미한 세대 갈등들을 여러 겹으로 겹쳐 놓으면, 갈등이 더욱 선명해져 소모적 싸움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 전상진은=서강대학교 사회학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 시대의 다양한 현상들을 사회학이라는 '도구'로 해석하고 진단하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세대 문제, 음모론, 자기계발 붐 등의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음모론의 시대' '세대 게임―세대 프레임을 넘어서'가 있다.

2018-01-06 00:05:00

박선주 영남대 생명과학과 교수가 독도의 야생화를 연구한 생태서적 '독도를 지키는 우리 야생화'를 펴냈다. 영남대 제공

"야생화, 거기 있어줘 고맙다"…『독도를 지키는 우리 야생화』

사람, 식수, 그리고 나무. 독도가 국제법상 '바위'가 아닌 완벽한 '섬'의 지위를 갖게 하는 필수 조건이다. 울릉읍 독도리에 김성도 이장이 살고 '물골'이라는 식수원도 있으니 남은 것은 식생(植生)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도의 나무, 풀, 야생화는 우리의 영토주권을 확보하는 마지막 관건이다. 독도 야생화들의 생태를 그대로 옮긴 '독도를 지키는 우리 야생화'가 책으로 나왔다. 이 책은 영남대 박선주 교수와 마산대 정연옥 교수가 수년간 조사해온 독도 야생화에 대한 모든 기록이다. 작년 4월부터 10월까지 3차례에 걸쳐 가파른 동도와 서도를 오르내리며 독도의 생태계를 모니터링 했다. 박 교수팀은 조사를 통해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무당벌레 '사임너스' (Scymnus) 등 곤충류 10종, 조류 6종을 새로 발견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 현장에서 채취한 샘플 DNA 분석을 통해 독도와 울릉도, 강원 양양, 일본 서해안에만 서식하는 해국(海菊)이 한국 고유의 종(種)임을 입증했다. 한국 고유의 종을 찾았다는 것은 우리만의 유전자원을 확보했다는 의미로, 전 세계적으로 '생물자원 전쟁'이 전개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박 교수는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별로 독도의 야생식물들을 구분하고 야생화 57종에 대해 현지 촬영 사진을 수록하는 한편 생태적 특성, 식물학적인 여러 기작과 서식지 천이(遷移) 과정을 상세히 정리했다. 섬초롱꽃, 섬기린초에서부터 쇠무릎, 쇠비름, 흰명아주, 강아지풀, 별꽃 등 흔히 '잡초'라고 알려진 야생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 새 이름 모를 잡초의 존재가 묘하게 '나라 사랑'이나 '애국 코드'와 만난다. 책갈피를 넘기는 독자들은 '거기 있어줘 고맙다'며 꽃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된다. 생태학적으로 독도는 육지와 한 번도 연결된 적이 없는 대양섬으로 보고되고 있다. 식물학적으로 분화와 식물특성을 파악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학계에서는 '제2 갈라파고스'라고도 부른다. 이런 활동과 독도의 생태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팀은 우리의 생태주권 활동이 아직은 미흡하다고 말한다. 현재 일부 기관에서 벌이고 있는 독도 생태 연구는 생물 모니터링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 이제 큰 틀에서, 정부 정책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현재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매년 독도의 생태주권에 대한 유전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가장 절실한 프로젝트"라며 "여기에 우리 팀처럼 몇몇 학술단체가 나름의 애국심과 학구적 목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는 정도"라고 말한다. 또 이런 학술행사 상당수가 독도 분쟁이 발발할 때마다 이벤트식 행사로 진행되거나 대부분이 보여주기에 그치고 있다는 것. 최근 중일(中日)의 패권화와 일본의 간헐적인 독도 도발로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당장은 정부 차원에서 배타적 국토주권을 바로 세우는 일이 절실한 과제지만 민간, 학계에서도 사료 수집이나 생태주권을 위한 노력을 하나씩 쌓아간다면 영토주권은 더욱 선명하게 우리 앞으로 다가올 것이다. 박선주 교수는 고려대 생물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고 뉴욕 텍사스주립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영남대 생명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64쪽, 1만5천원.

2017-12-09 00:05:15

[이종문의 한시 산책] 아내가 꿈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일세

아내가 꿈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일세 진도 오랑캐 소탕을 위해 몸을 아니 돌보다가 誓掃匈奴不顧身(서소흉노불고신) 오천 정예병이 일망타진 당했다네 五千貂錦喪胡塵(오천초금상호진) 가련타, 전쟁터에 나뒹구는 저 해골들 可憐無定河邊骨(가련무정하변골) 아내가 꿈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일세 猶是深閨夢裡人(유시심규몽리인) *원제: 隴西行(농서행)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한반도 주변의 각국 지도자들이 꼭 읽어보시라고 소개하는, 당나라의 시인 진도(陳陶, 812?-885?)의 시다. 보다시피 오랑캐들을 일망타진(一網打盡)하기 위해 출정을 했던 무려 5천 명의 병사들이 도리어 일망타진을 당해버렸다. 전쟁터에는 그들의 해골이 참혹하게 나뒹굴고 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병사들의 아내는 아직도 자나 깨나 전쟁터의 남편을 그리워한다. 그 넓은 품에 안겨 한바탕 회포를 진하게 풀 날을 애가 다 타도록 기다리고 있다. 읽는 순간에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터져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바로 쿵, 하고 떨어진다. 1950년 8월 10일 목요일, 포항의 하늘은 쾌청하였다.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학도병 이우근은 그날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2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머님!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님!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머님!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이!" 하고 부르며 어머님 품에 덜썩 안기고 싶습니다……. 어머님!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이 저희를 살려두고 그냥은 물러갈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을 재검스럽게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벌컥벌컥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어머님! 놈들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뿔싸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이따가 또……." 학도병 이우근은 살아서 돌아가 어머니 품에 '덜썩' 안기기를 이토록 뜨겁게 갈망하였다. 하지만, 그의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안녕이 아니라고 했지만 바로 그것이 안녕이었다. 이 편지를 쓴 다음 날 그는 피묻은 편지를 호주머니 속에다 남겨둔 채 48명의 동료와 함께 처절하게 전사를 해버렸으니까.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자나 깨나 기도하고 있었으리라. 5천 병사의 아내들이 이미 해골로 나뒹굴던 남편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자나깨나 기도했던 것처럼!

2017-12-09 00:05:15

[반갑다 새책] 가자미식해를 기다리는 동안

가자미식해를 기다리는 동안/ 조성순 지음/ km 펴냄 조성순 시인이 두 번째 시집 '가자미식해를 기다리는 동안'을 펴냈다. 2013년 '목침'에 이어 두 번째로 펴낸 이번 시집에는 총 66편 시가 실렸다. 시인 조성순은 길 위의 방랑자다. 그가 걷는 길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아 안과 밖이 이어져 있다. 진실에서 벗어나 도망치고 감추려 할수록 세상과 통하는 통로를 찾게 된다. 행장을 짊어지고 떠난 여행자의 시선은 다가올 시간과 나아갈 길에 희망을 담았다. 덮고 가리고 벗어나려 하지만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는 어쩔 수 없이 앞마당에 뿌리내린 늙은 감나무일 수밖에 없다. 그의 시에서 사물은 독립된 객체가 아니라 관계를 맺는 매개물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정대호는 "그의 시 '감꽃'과 '고등어'는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게 하는 특별한 존재이다. 또 '무지개'가 유년기의 낭만이면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꿈과 같은 것이라는 시인만의 문제 제기는 재미있는 탐색이 될 것"이라고 해설했다. 경북 예천에서 나고 자란 조 시인은 대건고, 동국대를 졸업했다. 1989년 이광웅'김춘복'김진경'도종환'윤재철'안도현'조재도 등과 교육문예창작회를 창립하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몽골 고비사막, 실크로드와 고산 트레킹을 즐겼던 그는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920㎞ 도보 여행을 끝내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160쪽, 1만원.

2017-12-09 0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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