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반갑다 새책] 그 아이에게 물었다

청소년기, 그 엇나가는 시간을 다독일 시집이 출간됐다. 2015년부터 꾸준히 출간된 한상권의 '창비청소년시선' 열두 번째 책이다. 교단에서 오랜 시간 청소년들과 함께해 온 시인은 아이들과 함께 묻고, 꿈꾸고, 생각의 기둥을 세우는 빛나는 순간들을 생각의 꾸러미에 담아냈다. 시집엔 엇나가는 청소년들의 시간이 거칠게 녹아 있다. 시인은 그 어긋남의 시간을 '나'와 '나', '나'와 '너', 스승과 제자가 나누는 다양한 대화를 통해 담아냈다. 그런데 이 대화는 동문서답처럼 자꾸 주제에서 비껴 나고, 한 개의 정답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예외 규정이 많아 자꾸 빗나가는 '문법 시간'처럼 말이다. 대화는 문제없어 보였던 일상에 틈을 내고 세상과 자신을 눈여겨본다. 대화들은 뚜렷한 답이 없고 이렇다 할 끝도 없다. 그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옳은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하나의 답으로 수렴되지 않는 이 시들은 엇나가고만 싶은 청소년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줄 것이다. 저자는 현재 대구 심인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아이들과 시와 연극이 있는 삶을 공유하고 있다. 109쪽, 8천500원.

2018-03-24 00:05:00

[반갑다 새책] 송진환 시집 하류

시집 '못갖춘마디' 송진환 시인의 여섯 번째 작품집이다. 송 시인은 1978년 현대시학에 시가, 2001년엔 매일신문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돼 문단에 나섰다. 수록된 시들은 밝은 곳보다 어두운 곳에, 기쁨보다 슬픔에 중심이 향한다. 시인은 어둡고 슬픈 곳에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다며 그곳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시집 작품의 태반은 아픔, 상처로 채워졌다. 시들이 우울한 시상(詩想)을 머금은 데 대해 저자는 "1970년대 암울한 시대가, 1960년대 가족의 궁핍이 나를 어둡게 몰고 갔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서'에서 "40년을 달려와 이제 여섯 번째 시집을 냈다"며 "별반 이룬 것도 없지만 부끄러움도 없다"고 적고 있다. 다행히 시는 아픔만으로 끝나진 않는다.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새 살 돋는 기쁨이 그 안에 녹아 있다. 이것이 시인이 독자에게 주는 유일한 서비스라 믿기에, 매번 그걸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낮은 곳, 버려진 것, 어두운 곳, 그늘진 곳으로만 향하는 시, 그러기에 무겁다는 느낌이 가슴을 압박해 오지만, 시인은 오히려 그 무게 속에 우리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며 다시 펜을 잡는다. 104쪽, 1만원.

2018-03-24 00:05:00

겸재 정선이 그린 '대은암'.

[이종문의 한시 산책] 참 오래된 담장 가에

참 오래된 담장 가에 崔慶昌(최경창) 문 앞의 수레와 말 안개처럼 사라지니 門前車馬散如烟(문전거마산여연) 잘 나가던 그 권력도 그리 오래 가지 않네 相國繁華未百年(상국번화미백년) 깊은 마을 적요 속에 한식날 지나는데 深巷寥寥過寒食(심항료료과한식) 수유 꽃만 노랗구나, 참 오래된 담장 가에 茱萸花發古墻邊(수유화발고장변) 이 시의 원래 제목은 '대은암'(大隱巖)인데, 대은암은 청와대 뒤쪽 인왕산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었던 거대한 바위 이름이다. 바로 그 바위 앞에 지족당(知足堂) 남곤(南袞'1471~1527)의 집이 있었다. 위의 한시는 고죽(孤竹) 최경창(1539~1583)이 그의 옛집을 지나가다가, 권력 무상에 대한 가슴 뭉클한 소회의 일단을 시적 구도 속에 포착한 작품이다. 그런데 가만, 남곤이라니? 도대체 남곤이 누구였더라? 남곤은 원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서 사림파(士林派)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는 박은(朴誾), 이행(李荇) 등 빼어난 시인들과 어울리면서 문명을 크게 떨쳤던 당대 최고의 풍류 시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교적 도덕정치의 깃발을 내걸고 급진적인 개혁을 주도하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와 사사건건 의견이 충돌되면서, 그의 운명이 엉뚱한 곳으로 튀기 시작했다. 조광조가 개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남곤을 소인배로 몰아붙이자, 도분이 난 남곤은 심정(沈貞), 홍경주(洪景舟) 등 몹쓸 인간들과 손을 잡고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조광조 등을 일망타진했다. 일이 뜻밖에도 크게 벌어지자, 그는 적지 않게 후회가 되었던 모양이다. 귀양 간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리려고 하자 '죽일 것까지는 없다'고 건의를 했다. 건의가 묵살되어 조광조가 죽자, '소인이 군자를 죽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묘사화 등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려 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 높은 벼슬이 주어져서 마침내 영의정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원래 자신과 같은 편이던 사림파들을 몰살하는 일에 가담했으므로 조선조 내내 '저 죽일 놈'으로 맹비난을 받았다. 좌우간 한때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누리며,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던 남곤! 그가 한창 잘 나가고 있을 때 대은암에 있는 그의 집 앞은 찾아오는 수레로 완전 북새통을 이루었다. 하지만 권력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자, 더 이상은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오늘은 한식날,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인 아주 뜻 깊은 날인데도 마을 전체가 적막하기 짝이 없다. 퇴락한 담장 가에 산수유 꽃만 저 혼자 노랗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남곤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죽은 사람이었다. 그는 임종을 맞이하여 '평생 동안 마음과 행동이 어긋났다'면서 비석을 세우지 못하게 했다. 평생 동안 써놓았던 글들을 모조리 다 불사르게 하고, 자제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나는 헛된 명성으로 세상 사람들을 속여 왔다. 너희들은 내가 쓴 글들이 세상에 전해져서, 나의 죄를 더 무겁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2018-03-24 00:05:00

문우이자 단짝이었던 이상(왼쪽)과 김유정. 매일신문 DB

文友 이상·김유정, 함께한 예술혼…『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

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 이상·김유정/ 홍재 펴냄 20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문학 천재는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요절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 이 둘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81주년이다.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긋고 떠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예술혼을 이해하며 한날한시에 함께 죽으려고 결의할 만큼 단짝이었다. 먼저 사망한 이는 김유정이다. 병마에 시달리던 그는 1937년 3월 29일에 오랜 벗인 안회남에게 쓴 편지 '필승 前'을 끝으로 외롭고 신산했던 삶을 마감했다. 김유정이 사망하고 19일이 지난 4월 17일 이상이 일본 도쿄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운명의 장난치고는 둘에게 잔인한 해였다. 김유정 29세, 이상 27세였다. 연이은 비보에 둘의 가족과 벗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고, 얼마 후 합동추도식으로 두 사람의 죽음을 애도했다. 둘 다 살아생전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문학가였다. 기성 문학계에서는 미친 사람의 헛소리라거나 어린 아이의 말장난, 혹은 촌스럽고 수준 낮은 잡설로 치부했다. 그런 상황에서 둘은 가난, 고독과 싸우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결국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나니 후대가 둘을 천재 문학인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상과 김유정의 첫 만남은 1935년 봄이었다. 김유정의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첫 조우가 이뤄졌는데, 둘의 성격은 판이했다. 김유정은 낯을 심하게 가리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고, 이상은 말 그대로 모던보이 투사와도 같았다. 성격은 달랐지만 어찌된 일인지 유독 잘 어울렸고 이후 우정은 점점 깊어졌다. 아마도 둘 다 몹시 가난한 데다, 폐병과 사랑의 열병을 앓았으며,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았던 동병상련의 정 때문에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영혼의 짝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상과 김유정이라는 두 천재가 문학을 통해 빚어낸 삶의 희로애락을 오롯이 담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이 남긴 주옥같은 글 중 삶이 직접 투영된 에세이만을 엄선해 당시 그들이 느꼈던 외로움과 고독, 삶의 순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작품들은 연대순으로 실려 있으며, 속어와 방언 역시 그대로 살려서 작품의 맛과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또한 두 사람이 사후 그의 벗들이 슬픔을 억누르며 둘을 추억하는 글을 함께 실어 감동과 가슴 먹먹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소설가 채만식은 "유정은 단지 원고료 때문에 소설을 쓰고, 수필을 썼다. 400자 원고지 1장에 대돈 50전을 바라고 피 섞인 침을 뱉어가며 소설과 수필을 썼다"고 회상했다. 시인 김기림은 "이상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그는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이 없다.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 책의 목차는 ▷프롤로그-이상'김유정, 두 문학 천재가 빚어낸 삶의 희로애락 ▷이상 다시 읽기 ▷김유정 다시 읽기 ▷이상, 김유정을 추억하다 순으로 싣고 있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두 사람의 살아생전 마지막 대화를 잠시 소개한다. ▷이상=김 형(김유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상=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유정=이 형(이상)! 이 형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이상=김 형(김유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이 마지막 대화에서 이상은 김유정에게 동반자살을 제안했다. 그러나 김유정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김유정은 소설을 더 쓰고 싶어서 죽기 싫었다. 하지만 1937년 3월에 김유정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4월에 이상도 이승을 등졌다. 둘은 저승에서 만났을까. 320쪽, 1만5천원.

2018-03-24 00:05:00

[책 CHECK] 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지음/ 김영사 펴냄 이 책은 재료가 가진 본래의 생명력을 망가뜨리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한 요리라는 철학으로 다양한 자연식을 소개해온 저자의 첫 에세이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만든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단순하고 소박한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요리 철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밝힌다. 운명적으로 요리사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 권위 있는 요리학원 원장이자 각종 매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명인의 삶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간 이유, 자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방황과 탐구, 세계적인 명상학교 브라마쿠마리스에서의 수행과 생명의 법칙을 깨닫게 된 과정. 쉽지만은 않았던 그 시간들을 치열하게 통과하며 지금에 이른 저자는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두 가지라고 말한다. 그것은 '밥 먹는 것'과 '숨 쉬는 것'이다. "지금도 매일매일 밥상을 차리며 먹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한다"는 저자는 '평화가 깃든 밥상' '문성희의 쉽게 만드는 자연식 밥상' '풍석 서유구 선생의 생명 밥상' 등의 저서가 있다. 304쪽, 1만5천원.

2018-03-24 00:05:00

[책 CHECK] 금호강에는 개미귀신이 산다

금호강에는 개미귀신이 산다 권오용 지음/ 만인사 펴냄 권오용 시인의 첫 시집이다. 시집에는 금호강을 배경으로 한 연작 시와 고향인 문경과 관련된 시 등 총 65편이 실려 있다. 시인은 고향의 영강을 닮은 금호강 부근에 산다. 시 기반 또한 고향에 대한 기억과 상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문경 오일장이나 다리, 문경시를 흐르는 낙동강 지류, 생가, 혈육, 지명 등이 등장한다. 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이 됐지만 시인의 마음은 여전히 고향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집에는 또 금호강변을 산책하면서 얻은 영감으로 쓴 시가 많은데, 시 '개미귀신에 홀리다'의 모티브가 되는 '개미귀신'의 거처 또한 금호강이다. '아양루에 올라'를 읽으면 누(樓)에 오른 자만의 고유한 시선과 여유가 느껴진다. 저자는 "오늘은 기억 속 어제와 닮아 있다. 읽던 책을 덮고 가끔 강변길에 나선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물과 기억들, 새로운 풍경이 시가 되었다"고 했다. 해설을 쓴 김상환 시인은 "그의 시는 금호강과 영강 사이에 있다. 신화와 현실, 부재와 현존, 신체와 영혼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고 평했다. 시인은 2014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섬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128쪽, 9천원.

2018-03-24 00:05:00

김형기 경북대 교수가 정책 에세이집을 펴냈다. 이 책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며 새로운 한국 발전 모델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은 '박정희 발전 모델'의 상징인 포스코. 매일신문 DB

분권형 복지국가 실현, 한국형 모델 최우선 과제…『새로운 한국 모델』

새로운 한국 모델/ 김형기 지음/ 한울 펴냄 낡은 국가 발전 모델을 극복하고, 보수와 진보가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 모델을 찾아 고민해 온 경북대 김형기 교수가 펴낸 정책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경제 제3의 길' '새로운 진보의 길' '지방분권 국가의 길'을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개헌 논의가 한창인 정국에서 우리가 어떤 발전 모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은 전혀 다른 궤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저자는 새로운 한국 모델의 최우선 과제로 '분권형 복지국가 실현'을 들고 있다. 이 원칙을 전제로 분권 개헌, 노동시장 유연성 실현, 고복지'고부담 체제 구축, 소득 주도 성장체제 확립 등 새로운 의제들을 정리했다. ◆진보-보수 합의 한국형 발전 모델 찾아야=저자는 1997년 외환위기로 박정희 모델 효력이 종언을 맞았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대체할 새로운 한국 모델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즉 개발 독재, 수출 주도 성장, 재벌 지배 체제, 중앙집권 체제로 요약되는 박정희 모델의 특징은 1980, 90년대 민주화, 자유화 과정에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는 것. 박정희 모델이 붕괴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왜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한국 모델을 정립하지 못했을까? 김 교수는 5년 주기로 반복되는 정권 교체를 주범으로 든다. 과거 정부가 도입한 새로운 경제 정책이 다음 정부에서 부정되는 과정이 반복된 것이다. 지속적으로 실현해나갈 수 있는 새로운 한국 모델을 마련하는 일, 저자는 첫 단추로 진보와 보수가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 모델' 정립을 든다. 2012년 대선에서 보수 진영은 과거의 성장 우선, 효율화 같은 정책 대신 경제민주주의, 복지국가를 공약한 바 있고, 진보 진영에서도 분배, 평등보다 성장, 효율성, 혁신을 중시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망이 밝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발전 모델은 '공생적 시장경제'=책의 첫머리에 저자의 관심은 '동아시아 발전 모델'에 미친다. 기존 한국의 경제 발전 모델을 동아시아 발전 모델의 한 변형으로 보고, 이를 일본 모델, 중국 모델과 비교하며 그 특징을 밝히고 있다. 또한 박정희 모델이라고도 불리는 낡은 한국 모델의 효율과 위기, 그리고 위기 이후 전환 과정을 분석한다. 아울러 세계경제 질서의 변화 과정에서 낡은 한국 모델이 붕괴한 요인을 살펴보고 새로운 한국 사회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4장에서 저자는 새로운 한국 모델을 이루는 새로운 경제 질서로 '공생적 시장경제'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공생적 시장경제는 기존의 한국 모델을 구성했던 개발 국가모델과 그것이 해체되고 새롭게 등장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한국 경제 '제3의 길'을 말한다. 저자는 공생적 시장경제로 나가는 정책 기조로 ▷신자유주의를 넘어 신진보주의로 ▷금융 주도 경제를 넘어 지식 주도 경제로 ▷하향식 경제를 넘어 상향식 경제로 ▷노동시장 유연성과 참가적 노사관계를 들고 있다. 수도권 집중체제의 극복도 이 책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다. 현재도 경제 흐름을 왜곡시키고 있는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려면 새로운 한국 모델에 '지방분권-다극발전체제'라는 가치를 반드시 담아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구체적인 정책으로 지역대표형 상원제, 국민소환제, 재정조정제 등을 제시한다. ◆분권 개헌 이뤄내지 못하면 역사 퇴행=저자는 정치경제학의 이론적 성과를 한국적 환경에 맞게 적용하는 연구와 실천에 앞장 서왔다. 이런 접근에 기초해 한국 모델의 비전과 정책을 ▷국가시스템 ▷헌법질서 ▷경제질서 ▷성장체제 ▷지역전략 ▷복지체제 ▷공공성 등의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 대한민국에 절실한, 그리고 진보와 보수가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 모델'과 그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한다. 서문에서 "박정희 모델의 긍정적 유산인 산업정책과 금융 통제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부정적 유산인 성장 지상주의, 재벌 지배, 중앙집권 체제를 넘어서는 보수와 진보 간의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정권이 교체돼도 이 합의에 기초한 한국 모델의 근간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개헌'이라는 국가 과제를 앞둔 시점에 발간됐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국민의 강력한 열망으로 새 정권이 출발한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한국 모델을 이끌어낼 적기라는 것. 바람직한 한국형 모델을 만드는 일의 첫 단추는 '분권형 복지국가'로의 개헌임이 틀림없다. 30년 만에 찾아온 개헌 정국, 이번에 분권 개헌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이야말로 역사에 대한 '범죄'가 아니겠는가. 319쪽, 2만원.

2018-03-24 00:05:00

추사 김정희 '세한도'.

[내가 읽은 책] 『조선의 글씨를 천하에 세운 김정희』 조정욱

조정욱, 『조선의 글씨를 천하에 세운 김정희』, 아이세움, 2007.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은 외국 편과 한국 편으로 나누어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다. 한국 편은 김홍도, 이중섭, 장승업, 정선. 다섯 번째로 추사 김정희 선생을 소개했다. 미술가들을 다룬 책에 '조선의 글씨를 천하에 세운 인물 김정희'라고 소개한 것이 뜨악하다. 글씨가 아니더라도 나 등 적지 않은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제목을 '조선의 글씨를 세운 김정희'라고 했을까.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이란 글씨에서 그 의문을 풀 수 있다. 그 글씨는, 그림이 곧 글씨고 글씨가 곧 그림임을 보여준다. "김정희에게 글씨와 그림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림을 그릴 때도 글씨를 쓰듯이 그렸고, 글씨를 쓸 때도 그림을 보듯 시각적인 효과를 충분히 한 후에 붓을 들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선생의 그림에 포커스를 맞추고자 한다. '세한도'는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죄인으로 제주도에 유배된 자신의 처지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권력을 누릴 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죄인의 신분으로 전락하니 찾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한겨울의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제자 이상적이다. 그는 역관으로 중국을 갈 때마다 선생이 부탁한 책을 구해다 준다. 조선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만학집', '대운산방문고', '황조경세문편' 등을 기꺼이 구해주었으니 선생으로서는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 고마운 마음을 편지로 쓰다가 영감이 떠올라 그린 것이 세한도다. '세한도' 우측에 '우선시상'(藕船是賞)이라고 적혀 있다. 우선은 이상적의 호로 '우선, 먼저 이것을 감상해 보라'는 뜻이다. 그림 속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있고 집이 한 채 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공자의 말을 편지에 인용하다 추운 바람 속에 서 있는 자신의 처지를 늙은 소나무에, 어린 소나무는 이상적의 마음을, 황량하고 쓸쓸한 처지를 집 한 채에 담았음이다. 이상적은 선생으로부터 받은 세한도를 중국으로 가져가 중국 학자들의 시와 조선 학자들의 시를 덧붙이는데 그 길이가 1천388센티미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그림이다. 선생의 그림을 말할 때 '세한도'뿐만 아니라 '불이선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과천에 살 때 그의 곁에서 공부하며 시중을 들던 달준이를 위해 그려준 것으로 '난맹첩' 이후 20년 만의 작품으로 글씨와 그림이 하나가 되는 경지를 추구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정진하는 선생의 생활 태도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열 개의 벼루와 천 개의 붓을 사용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얼마만큼 노력하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따뜻한 봄날이다. 책이랑을 걸어 나와 옥산서원, 은해사, 백흥암으로 떠나자. 그곳에 가면 추사 선생의 그림은 아니더라도 기품 있는 글씨를 만나볼 수 있을 테니까.

2018-03-17 00:05:00

긍정적 생각이 노화를 막는다…『늙지 않는 비밀』

늙지 않는 비밀/ 엘리자베스 블랙번'엘리사 에펠 지음/ 이한음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최근 미항공우주국(NASA) 연구팀은 유전자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중 1명은 우주에서, 다른 1명은 지구에서 1년을 생활한 뒤 나타난 신체 변화를 분석했다. 우주인 동생의 골밀도는 감소했고, 근육은 위축됐으며, 척추는 늘어났다. 이 가운데 연구팀이 가장 놀란 변화는 텔로미어(telomere)였다. 우주인 동생의 텔로미어가 지구에 남았던 형보다 길어졌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말단에 반복되는 염기서열로, 텔로미어의 길이가 길수록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밝혀져 있다. 실험대로라면 지구에서 더 빨리 늙고, 우주에 머물면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장수의 비밀이 우주에만 있지는 않다. ◆노화의 비밀, 텔로미어 마모에 있다 텔로미어의 길이와 장수의 상관관계를 다룬 '늙지 않는 비밀'(The Telomere Effect)이 나왔다. 텔로미어의 분자학적 특성과 텔로미어를 합성하는 효소 텔로머라아제(telomerase)를 발견한 공로로 캐럴 그리더, 잭 쇼스택과 함께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와 건강심리학자 엘리사 에펠 교수가 텔로미어를 연구하면서 밝혀낸 사실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우리 몸의 염색체에는 유전자 DNA가 있다. DNA는 마치 두 가닥 실을 꼬아놓은 모양이다. 세포가 분열하려면 DNA가 복제돼야 하는데, DNA 복제효소는 한 가닥씩 복제해 다시 두 가닥을 만들어 낼 때마다 염색체 말단이 짧아진다. 두 가닥 실을 묶었다가 매듭을 잘라내 다시 두 가닥을 만들 때마다 길이가 짧아지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을 할 때 유전정보의 소실을 막고자 유전자 DNA 말단에 붙어 있는 염기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가닥을 말한다. 유전 정보를 담지 않은 이 염기 서열은 DNA 말단에 수천 개가 반복돼 있으며 DNA가 복제될 때마다 잘려나갈 뻔한 유전자 DNA를 대신해 떨어져 나간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진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그 길이가 짧아진다는 얘기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어느 정도 줄어들면 세포는 분열을 멈춘다. 건강한 세포가 더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우리 몸에 노화가 시작되는 것도 이때부터다. 텔로미어가 짧을수록 더 일찍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텔로미어의 마모는 노화와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텔로미어는 짧아지기만 하는 걸까. 과학계는 염색체 DNA는 기존 DNA로부터 생화학적으로 복사되어야만 만들어진다고 여겼다. 하지만, 어떤 생물은 전에 없던 곳에서 DNA를 만들어냈다. 원생동물의 하나인 테트라히메나에서 세포분열 때마다 짧아진 텔로미어 끝에 DNA를 덧붙여서 원상 복원하는 효소, 즉 텔로머라아제(telomerase)를 찾아낸 것. 불행히도 인간에게는 계속 텔로미어를 늘릴 수 있는 텔로머라아제가 충분하지 않다. 수명을 연장하거나, 노화를 지연시키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텔로머라아제를 인위적으로 늘릴 수는 없을까. 어떤 영양보조제, 어떤 화장품은 텔로머라아제를 늘린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이런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 한다. 분열을 멈추지 않는 암세포를 상상하면 된다. 암세포는 끊임없이 세포분열을 하지만 텔로머라아제가 있어서 죽지 않고 증식할 수 있다. 억지로 몸속 텔로머라아제를 늘린다면 암 발병 위험이 커진다. ◆건강과 장수를 부르는 습관 '웃으면 복이 온다' '스트레스는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조언은 지겹다. 책은 텔로미어를 짧아지게 하는 상황과 텔로미어를 보호하는 습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스트레스는 건강의 적이다. 저자들은 잘 알려진 '명제'를 연구로 증명한다. 스트레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이를 두려워하고, 위협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결과를 낼 것이란 기대로 자신 있게 대처하는 사람보다 텔로미어 길이가 짧다고 한다. 냉소적 적대감, 우울증, 불안도 같은 결과를 나타낸다. 스트레스는 면역계를 손상하고, 면역세포(T cell)의 활동을 증가시킨다. 부지런하게 일하는 면역세포는 분열을 빨리하고, 텔로미어 길이가 빠른 속도로 짧아진다. 결국, 세포가 늙으면 면역계는 더욱 약해지게 된다.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관점이 필요한 이유다. 대사성 건강과 인슐린 내성에도 유의하라고 조언한다. 복부지방은 텔로미어를 짧게 한다. 짧은 텔로미어 때문에 인슐린 내성은 커지고, 당뇨병 위험이 커진다. 지방세포는 염증 유발 물질을 분비해 면역세포를 더 늙게 한다.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 적절한 수면도 텔로미어의 활성과 관련이 있다. 운동은 체내 항산화 물질을 늘려 세포가 손상되는 것을 막는다. 일주일에 3번, 45분씩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노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잠을 충분히 자면 배가 덜 고프고, 감정 기복이 덜하며, 텔로미어 소실도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최소 7시간 수면을 권한다. 섬유질이 많은 채소와 과일, 견과류, 해조류로 짜인 식단과 오메가3가 풍부한 연어'다랑어를 추천한다. 가공육과 붉은 살코기, 흰 빵과 당을 첨가한 음료 등은 당연히 적(敵)이다. 부모의 텔로미어는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아이는 수정과 동시에 모든 유전물질을 넘겨받는다. 임신기의 스트레스'흡연이나 열악한 환경도 모두 물려받게 되고, 동시에 아기의 텔로미어가 침식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저자들은 단백질, 코엔자임 Q, 엽산 등 모체의 영양 상태나 자궁관리, 나아가 건강한 아이로 키울 수 있는 양육법까지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똑같은 나이라도, 누군가는 늙어보이고 병들었는데, 누군가는 탄력 있는 피부에 건강한 체력을 자랑한다. 건강과 장수, 젊음과 행복의 비결은 세포에 있다. 460쪽, 1만7천원.

2018-03-17 00:05:00

[책 CHECK] 나는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했나?

나는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했나? 예이르 리페스타드 글'김희상 옮김/ 그러나 펴냄 민주주의,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것은 비효율적인 제도이다. 죄가 명확한 사람한테는 그냥 처벌을 내리면 되는 것을 굳이 변호사라는 제도를 둬서, 변호사로 하여금 범죄자를 변호하게 한다. 또 돈이 없어서 변호사를 고용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변호를 거부하는 사람한테도 형사재판의 경우 강제로 국선 변호인을 선임해 범죄자의 입장에서 변호를 하도록 민주주의는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주의이다. 비록 비효율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비효율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논의를 하고, 이성적인 판단, 최대한 옳은 결정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한다. 우리 인간이 역사를 발전시켜 오면서 최대한 오류를 피하고 바르게 결정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 중 하나가 변호사 제도인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파괴하려 했던 브레이비크라는 테러리스트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변호하는 변호사의 역설과 고민이 담겨 있다. 브레이비크의 변호인이었던 저자는 이 책에서 브레이비크가 무엇 때문에 이 같은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고, 또한 자신은 왜 변호를 맡게 됐는지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244쪽, 1만5천원.

2018-03-17 00:05:00

[책 CHECK] 빼앗긴 들에서 봄을 지키다

빼앗긴 들에서 봄을 지키다 심후섭 지음/ 해조음 펴냄 이 책은 이상화기념사업회가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민족저항시인 이상화의 시와 그 정신을 전해주기 위해 펴낸 것이다. '할배가 들려주시는 이상화 시인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이상화 시인이 살았던 당시의 사회 상황을 비롯해 3'1만세운동 참여 과정, 친구인 백기만과 현진건 등과 동인 '거화' 구성 과정, 여러 시작(詩作) 활동의 배경 등이 시인이 남긴 작품과 함께 그려져 있다. 맨 끝에는 이상화 연보가 수록돼 있다. 이상화기념사업회 공재성 이사장은 "팩트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번 검토했고, 초등학생들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기법을 구사해 엮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이기도 한 집필자 심후섭 동화작가는 "이상화 시인의 인간적 고뇌가 어떻게 문학 작품으로 승화되는지에 초점을 맞춰 독자들에게 보다 의미 깊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앞으로 이상화 전기 독후감 쓰기 대회에 활용된다. 200쪽, 1만2천원.

2018-03-17 00:05:00

후쿠시마 원전 재앙 인류에게 던진 논란…『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간 나오토 지음/ 김영춘'고종환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미야기현 오시카 반도에서 동쪽으로 70㎞ 떨어져 있는 해저 29㎞ 지점에서 지축이 요동쳤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된 규모 9.0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도쿄 및 수도권 일대 건물까지 무너뜨린 지진은 초대형 쓰나미를 만들며 해안도시를 덮쳤다. 지진해일은 후쿠시마 원전을 덮치면서 엄청난 핵 재앙으로 발전했다. 수천, 수만 채의 건물, 교량, 자동차들이 마치 강물처럼 흘러가는 모습에 세계인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사고가 발생한 지 7년. 지금도 사람들의 뇌리 속에 해일 사태는 여전히 공포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 행정 수반이었던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가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3월 11일부터 19일까지의 모습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온갖 정부 매뉴얼이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국가 시스템을 비판하고 원전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하나씩 지적하고 있다. ◆방사능 공포 vs 효율적인 전기 생산 수단=원전은 접근하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원전은 정말 위험한 걸까. 원자력은 포기해야만 하는 에너지원인가. 이런 점에서 지진과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도사리고 있는 우리 입장에선 일본 후쿠시마 사례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좋은 사례로 다가온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저자는 국가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 원자력 안전 신화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 등을 서술하며 자신이 상황에 따라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시간 순서대로 밝히고 있다. 사고 수습 과정을 통해 일본의 비상시 대응 메커니즘, 정책 집행, 추진 과정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 사고가 일어난 직후 저자는 피해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지의 가설에 근거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반경 170㎞ 이내는 강제 이전 구역으로, 도쿄를 포함한 250㎞ 이내는 희망자 이전 구역으로 정했다. 약 5천만 명의 대피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 구역에서는 대기와 바다를 통해 방사능이 뿌려지고 수십 년에 걸쳐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저자는 고마쓰 사쿄의 SF소설 '일본 침몰'을 생각하며 '5천만 명의 수십 년에 걸친 피난'을 떠올렸다고 한다. ◆총리 퇴임 후에도 '탈원전' 운동=간 나오토 총리는 퇴진 후에도 탈원전 운동을 이어가며 자연에너지, 대체에너지 등의 실제 적용을 연구해 '원전 가동이 불가피하다'는 이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비판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 대안까지 제시해 설득력을 높였다. 물론 원자력 마피아들의 교묘하고 집요한 로비를 피해가며 말이다. 또한 대국민 담화뿐 아니라 직접 피해지를 방문해 이들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듣고, 트위터로 소통하는 등 적극적으로 국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또 '원전 제로'가 국민 스스로 선택한 생존 방식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에너지 정책에 반영하고자 싸우고, 결국 법안을 통과시켰다. 후쿠시마 사고 후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자 일본, 독일, 스위스, 대만, 벨기에 등 5개국도 탈원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전기료 상승으로 일본의 무역흑자가 31년 만에 적자로 전환(약 26조원)되고, 석탄과 LNG 발전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해 엄청난 탄소세 부담(파리기후협정)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일본은 2015년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재가동을 시작했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한 아베 정부는 '피난 지시'를 해제했다. 저자는 이에 따라 각국 피폭 지역 주민들이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 돌아올 경우 닥치게 될 위험도 지적한다. 그린피스 조사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방사능 오염은 다음 세기까지 지속할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 정책 고민하는 한국에도 타산지석=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원전 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공정률 20%였던 신고리 5, 6호기의 중단 여부에 관해 3개월 동안 치열한 공론화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같은 해 10월 원전을 재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런데 2017년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3의 지진은 한반도에서도 규모 7 이상 강력한 지진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에 '원전 철폐' 주장이 다시 설득력을 얻으며 불안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은 원전 정책을 고민하는 우리의 상황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일본 재앙을 다룬 또 다른 책 '도쿄 최후의 날'의 저자 히로세 다카시는 후쿠시마 재앙 이후 또 한 번의 재앙을 경고하고 있다. "향후 50년간 40만 명 이상이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암 발병에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핵 재앙의 고리를 미래세대에게 물려 주지 않는 일,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숙제요, 다짐이다. 196쪽, 1만3천원.

2018-03-17 00:05:00

[반갑다 새책] 분꽃 귀걸이

호남의 한 소도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송숙 씨가 아이들의 동심을 엮은 동시집을 펴냈다. 이 시집엔 올해 새로 담임을 맡은 4학년 학급 26명의 작품이 실려 있다. 교실 한쪽에 작은 베란다가 딸려 있었고 송 교사는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 꽃과 채소를 심었다. 식물이 자라고 꽃이 피면서 화단엔 곤충과 벌레들이 모여들었다. 시집에는 이 과정에서 일어났던 생명에 대한 외경, 자연에 대한 단상(斷想)이 동심이라는 렌즈를 통해 투영되었다. 퍼온 흙을 낑낑대며 나르던 시간, 이랑을 고를 때 들리던 경쾌한 연장소리, 개구리밥을 걷어내던 분주한 손길은 한 줄 시가 되어 문장 속으로 녹아들었다. 추천사를 쓴 소설가 이외수는 "아이들의 시를 읽으며 나의 나이가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며 "책을 덮을 때 난 7살 어린이로 돌아가 있었다"고 적고 있다. 조석구 시인도 "4학년 6반 교실 구석구석엔 맑은 음표들이 떠다니고 아이들은 상상의 뜰채로 음표를 걷어 올려 시를 쓴다"며 "뜰채 아래로 빠져나온 것들이 화분에 내려앉아 꽃씨, 채소, 옥수수, 벼, 애벌레가 된다"고 평했다. 송 교사는 2년간의 휴직 후 아이들과 시로 공감을 나누기 시작했으며, 작년에도 아이들이 써온 시를 엮은 '시똥누기'를 펴내기도 했다. 127쪽, 1만1천원.

2018-03-17 00:05:00

[반갑다 새책] 아주 오래 천천히

영덕 출신 수필가 윤영 씨가 7년 만에 수필집을 펴냈다. '지칠 때 아무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의자' 같은 책을 콘셉트로 삶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간결한 필체로 그려냈다. 개인의 '사소한 슬픔' 이후에 전개됐던 자신의 주변 이야기들을 담았다. 숨, 곁, 덧, 헛 등 4부로 구성된 작품엔 오랫동안 천천히 자신의 일상을 바라본 작가의 시선이 그대로 닿아 있다. 다른 문학매체에 발표되었거나 자신이 필진으로 있는 대가야신문에 실렸던 45편의 글이 실렸다. 무료하게 비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소소한 사건과 늘 마주하는 주변 사람,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일출까지 작가의 안테나가 미치고 있다. 작가의 서정적인 시각을 따라 천천히 묵상하노라면 일상의 모든 것이 특별한 시선으로 다가오고, 의미 있게 해석된다. 작가는 인사말에서 "못된 풀도 화분에 심어 놓으면 화초가 되듯 잡초 같은 글이지만 세상에 나가 누군가를 위무(慰撫)해주는 약으로 쓰인다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라고 적고 있다. 윤 씨는 2005년 '한국수필'로 등단, 현재 대가야신문 '윤영의 문학공간'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에는 대구문인협회에서 '올해의 작품상'을 받았다.

2018-03-17 00:05:00

이 책의 공동저자인 오상훈'곽대훈'김도균'김득주'배태만'최성욱'도은한 씨(왼쪽부터). 도서출판 부카 제공

동양고전에서 현대경영의 길 찾다…『인문의 어깨에 올라 경영을 바라보다』

인문의 어깨에 올라 경영을 바라보다/ 배태만 외 6인 공저/ 도서출판 부카 대구지역 출신의 CEO와 중간 관리자들이 경영 현장에서 부닥치는 어려움에 대해 동양고전을 읽고 토론하며 찾은 해답을 한 권의 책으로 발간했다. 배태만 KB국민은행 성서종합금융센터 부지점장, 곽대훈 마케팅 광고회사 대표, 김도균 경영컨설팅 회사 대표, 김득주 비영리 공익법인 팀장, 도은한 대구스타기업 IT회사 대표, 오상훈 외국계 제약회사 팀장, 최성욱 치과의원 원장이 논어, 맹자 등 7권의 동양고전과 기업 경영을 연결하여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공동 저자들은 현재 자신의 일을 하면서, 경북대학교 MBA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거나 재학 중이다. 지난 2년 동안 인문고전 독서토론회 '리케이온'(아리스토텔레스 학당의 그리스어 이름)에 참여하며 각자 글을 다듬어왔다. '리케이온' 멤버들은 바쁜 직장 관계로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전 7시에 모여, 인문고전(동양'서양) 위주로 1년치 독서 분량을 정하고, 사회자와 발제자를 미리 정해 10개 내외의 발제문을 만들어 토론했다. 이에 더해 책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본인의 경험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점 등을 발제하며 다른 회원들과 의견을 공유했다. 그런 7인의 팀워크와 성실, 가치공유가 함께 어우러져 7인의 공저 출판을 가능케 했다. 이 책은 어렵게 느껴지는 고전을 각자의 직종에서 경험한 노하우와 경영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흔하게 마주하는 상황에 비추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각자의 글을 리더십, 조직관리, 자기관리로 나누어 고전의 내용을 현장 경험과 융합하여 풀어내고 있어 흥미롭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 그대로 옛것에 토대를 두고 변화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되 근본을 잃지 않으려는 고민과 의지가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융합이 강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 동양고전과 현대경영이론을 융합한 글쓰기가 학자들의 해설과 달리 쉽고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신득렬 파이데이아 원장은 추천사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저자들은 자신의 직장생활이 보다 더 인간적인 삶이 되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지적, 도덕적 성장을 위해 지난 2년 동안 20여 권의 동서양 고전을 읽고 토론해 왔다"며 "전업작가들의 저서와는 달리 이 책은 직장생활의 체험이 녹아 있어 큰 공감을 갖게 해준다"고 칭찬했다. 이 책을 함께 쓴 7인 저자는 "고전의 지혜 속에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경영의 열쇠를 찾아보길 바란다"고 공통적으로 전했다. 곽대훈 저자는 "세상의 변화 속도는 매우 빠르고, 리더들이 그 속도를 따라가야 기업을 유지하고 성장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성욱 저자는 "현대 경영학의 핵심 키워드 중에서도 동양고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들이 많다"며 "그것을 받아들일 때 사람마다 차이를 느끼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인문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동 저자들이 독서토론회 '리케이온'에서 함께 읽은 책들은 '논어', '도덕경' 등 동양고전과 '군주론', '자유론' 등 서양고전, '노인과 바다', '고도를 기다리며' 등의 문학작품이 있다. 이 독서토론회는 창립된 지 만 2년 동안 26권의 책을 읽었다. 오상훈 저자는 "이 모임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있어 각각 다른 해석을 들을 수 있다 보니 사고의 유연성이 높아진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배태만 저자는 "토론 과정에서 평소에는 읽지 않을 책도 읽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통해 몰랐던 것을 알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책은 리더십'조직관리'자기경영이라는 세 가지 테마를 잡았다. '인문과 경영의 융합'이라고 보면 된다. 7인의 저자는 다 같이 외친다. "인문학은 자신의 가치 증명과 꿈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252쪽, 1만4천원.

2018-03-17 00:05:00

명랑한 전망(매일신보, 1939년 4월 9일 자)

[정혜영의 근대문학] 1930년대 '명랑한 전망'과 미투 운동

1930년대 중반 조선사회에 '명랑'(明朗)이라는 단어가 느닷없이 최고의 유행어로 등장한다. '명랑'은 신문이나 잡지 기사에 빈번하게 등장한 것은 물론 소설 제목으로까지 채택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명랑',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유쾌해지는 단어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만들어내는 유쾌하고 활발한 정조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들여다보면 1930년대는 결코 명랑할 수 없는 시대였다. 일본제국이 중일전쟁의 전시체제에 돌입함에 따라서 조선인은 조선어 사용을 금지당했고, 일본 이름으로 창씨개명해야 했다. 아울러 조선 청년이 일본제국 군인으로 이국 땅 중국으로 가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강제로 요청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어떻게 명랑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박태원의 '명랑한 전망'(1939)은 1930년대 중반 조선에 유포된 '명랑'이라는 정체불명의 정조를 전면에 내세운 소설이다. '명랑한 전망'은 엘리트 회사원 희재가 연말 보너스로 받은 두둑한 돈 봉투를 들고 약혼녀 혜경에게 선물할 보석 반지를 사러 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후 이 화려하고도 멋진 커플은 오해로 인해 결별한 후 제각각 바람직하지 않은 상대와 애정 관계에 들어간다. 혜경은 방탕한 유부남과 동거를 하고, 희재는 카페 여급과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는 일탈을 경험한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은 두 사람이 다시 서로 결합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방탕한 유부남과 동거하는 일은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카페 여급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여성과 그녀 사이에서 낳은 딸까지 버려가면서 부잣집 딸과 재결합한 엘리트 청년의 행위가 과연 '명랑한 전망'으로 칭송받을 일이었을까. 어이없게도 소설은 자식도 저버리고 도리도 저버린 희재의 냉혹한 행위를 '명랑한 전망'이라며 당대 남녀 관계의 바람직한 전망으로 제시하고 있다. 1930년대 조선 사회의 명랑 선풍은 이처럼 잔혹한 일면을 지니고 있었다. 거지나 부랑자 정리를 내건 도시 명랑화, 애상적이고, 나약하며, 퇴폐적 음조를 배척하기 위한 음반 명랑화, 도박 축출을 내건 농촌 명랑화 등, 1930년대 조선 사회에 갑자기 등장한 '명랑'은 유쾌, 활발이라는 원래 의미와는 무관하게 일사불란한 규율이나 통제와 동등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런 조선 사회에서 사회의 건전성을 해치는 카페 여급은 척결 대상이지 사랑의 승리자가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일본제국에 규율과 통제는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70년도 더 지난 최근까지도 규율, 통제, 획일성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다. 1930년대 '명랑'이라는 모습으로 등장한 규율과 통제의 유령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외형을 바꾸어 새로운 얼굴로 등장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미투 운동은 그런 전근대적 전통과 관습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투 운동이 가해자 대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 잔재를 청산하고 미래를 향한 바람직한 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2018-03-17 00:05:00

마네 작 '올랭피아'

[내가 읽은 책] '11분'/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4

'11분'/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4 '옛날 옛적에 마리아라는 창녀가 있었다.' 소설가는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독자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모든 창녀가 그렇듯, 그녀 역시 순결한 동정녀로 태어났다.' 설마 코엘료가 그분(!)의 어머니인 그분(!)을 대상으로 소설을 쓰려는 것인가.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읽기를 멈출 수도 없다. 아니지. 코엘료라면 그럴'만두'하지. '…브라질 동북부에 있는 그녀의 고향 도시는….' 동명이인이다. 코엘료는 그런 도발은 하지 않았다. 소설은 브라질에 사는 마리아라는 여자의 성장을 통해 성과 사랑 그리고 뜻하지 않게, 롤러코스터와 같이 격렬했던 한 해의 삶을 이야기한다. 직물가게에서 일하던 평범하기 짝이 없던 이 아가씨는 모험과 돈, 혹은 남편감을 찾아 지구 반대편인 유럽의 스위스로 날아간다. 처음엔 삼바 춤을 추는 무희로, 다음엔 창녀라는 생각지도 못한 직업을 가지게 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불행이 있다. 하나는 가지고 싶은 것을 못 가지게 되는 불행, 또 하나는 가지고 싶지 않은 것을 가지게 되는 불행. '나는 세상의 제물일 수도 있고, 자신의 보물을 찾아 떠난 모험가일 수도 있다. 문제는, 내가 어떤 시선으로 내 삶을 바라볼 것인지에 달려 있다.' 스스로 절대 불행해지지 않겠다는 다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이 일을 하는 진짜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돈벌이의 수단인 '직업'을 통해 언제부터 성이 세속화되었는지 말함으로써, 그 민낯과 함께 본질까지 파헤친다. 여기서 '직업'은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말한 세 가지(노동, 작업, 행위) 활동 영역 중 마땅히 노동을 일컫는다. 그런데 유독 성을 행위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렌트가 정의한 '행위'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행위는 본질적으로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인류, 우리 인간은 누구나 성적 경험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누구도 성행위에 대해 관심 있게 책을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그분(!)은 아니었지만, 마리아의 이야기를 토대로 쓰인 책은 성에 대한 코엘료의 과감한 도발을 목격할 수 있는 책이다. 혹시, 성에 대해 낯가림이 심하다면 얼굴이 붉어질 수도 있다. 브라질행 비행기 표를 예약하던 날, 마리아는 모든 사람이 신뢰하는 돈 때문에 결국 자신이 돌아가기를 망설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산더미처럼 쌓인 돈을 들고 스위스 은행을 찾는다. "이 돈으로 내 인생의 몇 시간을 살 수 있을까요?" 무슨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은행 직원은 자신들은 팔지는 않고 사기만 한다고 대답한다. 그래,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시간을 팔기만 한다. 소중한 육체와 영혼을 담고 있는 자신의 시간을. 3월, 어쩌면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문장이 될 시간이다. 올 한 해 우리는 각자 어떤 '사람책'이 될까? 첫 문장이 자못 궁금하다.

2018-03-10 00:05:00

삐딱한 시선으로 본 북유럽…『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글항아리 펴냄 이케아, H&M, 칼스버그, 레고, 볼보, 일렉트로룩스, 무민…. 어느새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북유럽 브랜드다. 또 느리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휘게 라이프'(Hygge Life)와 함께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유럽 스타일 가구, 북유럽식 인테리어, 북유럽식 교육, 북유럽식 복지까지. 저출산, 사교육, 양성평등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대안을 찾는 곳도 북유럽이다. 이대로라면 북유럽은 유토피아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흠 잡을 게 없을까. ◆한 겹 벗겨 내고 본 북유럽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인 북유럽 예찬론에서 벗어나겠다는 한 영국인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을 10년 넘게 돌아보고 쓴 책이다. 영국 언론인 마이클 부스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찾을 수 있는 북유럽의 '사소한' 결함을 찾아 5개국을 탐방했다. 덴마크 출신 부인 덕에 덴마크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는 그의 삐딱한 시선은 북유럽 상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시작부터 흥미롭다. 4월의 어느 새벽, 코펜하겐 집에서 담요를 두른 채 신문을 읽던 그는 '덴마크, 삶의 만족도 1위'라는 머리기사를 보고 코웃음을 친다. 축축하고 따분하고 생기 없는 나라, 지갑 열기가 무서울 정도로 비싼 물건을 불친절하게 파는 상점, 폭탄 같은 세금고지서가 떠오르는 덴마크는 2012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 번이 아니라 1973년부터 내내 1위였다. 핀란드 2위, 노르웨이 3위, 스웨덴 7위, UN 인간개발지수에서는 노르웨이가 1위를 차지했고, '뉴스위크'는 핀란드를 1위로 꼽았다. 스웨덴은 여성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데 저자는 갸우뚱한다. 엎치락뒤치락 순위 다툼을 하는 곳에 왜 사람들이 살러 오지 않는지, 왜 유럽인들은 스페인이나 프랑스에 집을 사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졌다. 간과했던 모습이 드러났다. 밝게 채색된 스칸디나비아 환상을 들여다보니 그늘도 있다. 덴마크는 소득의 72%를 직간접세로 내고, 암 발병률이 세계 1위인 국가다. 북유럽 국가 가운데 평균수명이 가장 짧고, 알코올 소비량은 가장 많다. 일을 하지 않으려는 '나태 지수'는 OECD 국가 중 2위다. 복지제도가 너무 잘 갖춰진 탓이다. 끊임없이 늘어놓는 변명은 그들의 생산성을 떨어트린다. 상점 간판은 단출하다. 미용실은 '헤어', 베이커리는 '빵'이라고 써놓은 게 전부다. 핀란드는 서유럽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고, 총기 소지율은 세계 3위다.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은 항정신제, 인슐린, 항우울제다. 핀란드인은 과묵하다. 북유럽 사람들은 대체로 조용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말이 없기로 유명하다. 예컨대 애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려면 10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묵묵히 고장 난 세탁기를 고쳐주는 식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침묵을 미덕으로 여기고 대화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이 탓에 말 많은 사람을 불신한다. 이곳 사람들은 상대가 5분 이상 이야기하면 무언가 숨기려는 것으로 의심한다. 북해에서 발견된 석유로 부자가 된 노르웨이는 생산인구의 3분의 1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정부보조금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노르웨이인을 빈정거리는 스웨덴인의 태도가 이해된다. 그런 노르웨이인의 문해력, 수학'과학 실력은 유럽 평균을 밑돌고 10년간 악화했다. 스웨덴인, 특히 스웨덴 남성은 남성적이지 않다. 스웨덴인에게서 섹시하거나 예술적인 면을 찾기도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연인에게 칭찬하지도, 밥을 사지도 않는 스웨덴 남성은 지나치게 독립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다 보니 남녀관계도 개인주의 극치를 달린다. 아이슬란드는 모범적인 북유럽 국가의 이미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하다. 과도한 무절제 때문이다. 위스키 한 병에 8천달러를 써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슬란드인이라고 한다. ◆결국엔 북유럽 저자는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북유럽의 실상을 소개하겠다면서 시민은 물론 역사학자, 인류학자, 언론인, 예술가, 정치인, 철학자, 과학자, 심지어 요정연구가, 산타클로스까지 만나봤다. 그리고는 낙천적이고 여유 있는 삶을 말하는 '휘게'가 광범위한 사회적 억압의 산물이 아닌지 묻는다. 튀지 않고, 진지한 토론과 반성을 하지 않는 대신 순응하는 삶의 방식이 숨 막히는 사회문화적 분위기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가장 활발한 사회 같지만, 속내는 일손 부족이라는 지적도 내놓는다. 출산'육아 논쟁에서 우리와 반대인 점은 여성을 부엌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국민성으로 포장해 내놓은 그의 분석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100% 맞지도 않다. 덴마크인은 사교적이다. 평소 연락하는 친구가 어느 나라보다도 많다. 또 타인을 잘 믿는다. 타인에 대한 높은 신뢰 수준은 그들의 행복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핀란드인은 과묵한 대신 믿을 만하다. 세계에서 1인당 책 구매량이 가장 많은 국가는 아이슬란드다. 여전히 북유럽은 매력적이고, 그곳 사람들에게서 고쳐야 할 점보다는 배워야 할 점이 더 많다. 삶의 방식과 우선순위, 돈을 쓰는 방법, 일과 삶의 균형, 효과적인 교육제도, 협동, 그리고 행복해지는 방법까지 샘날 정도로 넉넉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결국, 저자의 결론도 '그럼에도 지상낙원'이다.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Work&Life Balance), '욜로'(YOLO) 열풍이 불었다. 이런 트렌드는 단순하고 느긋하게 일상을 즐기려는 북유럽식 생활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삶의 자율성, 튼튼한 사회안전망, 거의 완벽에 가까운 그들의 겉만 닮을 것이 아니라, 민낯부터 살펴봐야 행복의 비밀을 알 수 있지 않을까. 552쪽, 1만8천500원.

2018-03-10 00:05:00

[책 CHECK] 번역청을 설립하라

번역청을 설립하라 박상익 지음 / 유유 펴냄 저자는 번역을 통한 한국어 콘텐츠 확충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몰이해가 21세기 한국의 앞날에 걸림돌이 되리라는 암울한 전망과 대안을 담은 책 '번역은 반역인가'를 쓴 이후에도 정부가 번역 지원 사업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번역 환경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저자는 "누군가의 말처럼 100년 후 한국어가 경쟁력을 잃게 될 경우, 후손들이 지금의 우리를 못난 조상으로 지목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면서 "번역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진지한 의제로 다루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의지와 희망을 담은 글을 모아 이 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저자는 이어 "적어도 이 시대에 모국어를 저주하고 망치는 자들의 대열에 서기를 거부한 사람이 있었다는 물증 하나는 후대에 남겨야겠다는 심정으로 썼다"고 말했다. 저자는 역사'문학'종교의 학제 연구에 관심을 갖고 저술 및 번역을 하고 있다. '번역은 반역인가'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존 밀턴의 탄생 400주년을 맞아 '밀턴 평전: 불굴의 이상주의자'를 썼고, '나의 서양사편력 1·2', '성서를 읽다:역사학자가 구약성서를 읽는 법' 등을 출간했다. 152쪽, 9천원.

2018-03-10 00:05:00

[책 CHECK] 이겨 놓고 싸우기

이겨 놓고 싸우기 변학수 지음/ 세창출판사 펴냄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누구나 논쟁술을 사용한다. 그러나 논쟁을 벌이다 보면 논쟁의 본질은 사라지고 풀리지 않는 감정만 남는 경우가 많다. 국회에서 답변할 때도, 국정감사장에서 질의응답을 할 때도, 검찰청에서도, 경찰서에서도, 부동산사무소에서 계약을 하거나 대학교 강의실에서 조별과제를 논의할 때도 그렇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막무가내식 논쟁을 일삼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응하는지 그 전술을 발견했다. 논쟁술이 그저 상대가 야비하게 나올 때 방어하는 차원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태도를 취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논쟁술'에서 말한 여러 가지 전술에 대한 해설과 사례의 적용에 관한 책이다. 총 9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주제를 정하고 세부적으로 소주제를 잡아 설명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쇼펜하우어의 주장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주위에서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들, 그리고 뉴스나 신문 기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례들을 언급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왜 내가 지금까지 억울하게 당하고만 살았지?' '왜 내가 가족들과 소통이 되지 않았지?' '왜 저 정치가는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거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72쪽, 1만6천원.

2018-03-10 00:05:00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싱크탱크인 카이스트가 2030년 한국 사회를 예측한 보고서를 펴냈다. 10년 후 한국 사회는 로봇과 인간이 공존, 협조하는 사회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매일신문 DB

2030년 한국, 인간과 같이 사는 '로봇법' 제정?…『2031 카이스트 미래보고서』

2031 카이스트 미래보고서/ 카이스트 지음/ 김영사 펴냄 "가까운 미래, 인간은 기계를 조율하고 관장하는 '디지털 지휘자'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미국 델 테크놀로지스의 '2030 보고서' 내용이다. 2030년쯤엔 인간과 기계가 공존을 넘어, 협조하는 사회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한다. 환자 간병, 청소, 스포츠 분야에 로봇이 진출하고 사람과 기계가 같이 살기 위한 법이 제정된다. 대부분 학교 수업은 AI 교사가 담당하며, 부속실에선 AI 비서가 24시간 주인 명령을 기다린다. 입기만 하면 몸 상태를 알려 주는 의복이 등장하고 사물인터넷(IoT)이 의식주에 밀착해 우리의 모든 일상을 컨트롤 한다. 카이스트가 예측한 2030년의 우리 사회 모습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최고의 싱크탱크 집단인 카이스트가 12년 후 한국의 장래를 분석한 미래보고서다. 대응전략까지 꼼꼼히 체크하고 있으니 미래 생존을 위한 로드맵으로서 의미도 있다. ◆과학기술 혁명 속 대응 전략 소개=1부 '미래 세계와 한국, 미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서는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진단하고 한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핀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바이오 사이언스, 신재생에너지 등 숨 막히게 진화해가는 과학기술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계 조류의 흐름에 낙오되지 않고 어떻게 위기를 돌파할 것인지 실천적 방안을 모색한다. 기초과학과 공학의 균형, 제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 산업에 대한 분석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2부 '미래 교육, 새로운 길은 어디에서 열리는가'에서는 미래가 요구하는 대학의 역할은 무엇이며, 미래 교육과 인재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밝힌다. 카이스트가 국가산업 발전과 인재 양성이라는 기본 목적을 달성해 놓고 현실에 안주하는 기득권 세력이 되지 않았는지, '작은 성공'에 취해 자만하지 않았는지, 내부 성찰의 목소리도 여과 없이 담아냈다. 이런 자성을 바탕으로 융합교육과 연구혁신 등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도전을 생생하게 공개한다. ◆식량 문제, 질병 등 인류 난제도 해결=바이오 혁명이 꽃피는 10년 후 우리는 유전자를 편집한 '디자이너 베이비'의 출현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유전자 편집은 현재 유전성 질병의 원인 제거와 치료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많은 연구자들은 알츠하이머병, 에이즈, 암 같은 불치병 치료에도 뚜렷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30년 내에 생명의 모든 구성 요소와 시스템의 관계성이 밝혀질 것으로 보고 있다. A, G, T, C라는 네 가지 염기 배열로 모든 DNA의 비밀을 해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세계 인구는 100억 명을 향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식량 위기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때쯤 우리는 세포 배양을 통해 많은 식량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제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 분야에서도 기계화와 자동화가 진전되면서 농장은 공장에 가깝게 진화된다. 로봇 트랙터와 콤바인 수확기가 작물의 생육, 수확을 담당하고 드론과 위성이 작물 성장을 모니터링해 컴퓨터로 실시간으로 전송해준다. ◆디지털 혁명시대 한국의 나아갈 길=인구 변화 조사를 통해 각국의 경제 예측도 가능해진다. 2030년까지의 경제성장률을 추측한 결과에 따르면 일본은 1%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노동력 인구 감소폭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과 한국의 성장률은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의 감소, 초고령화 사회 진입, 재정 악화 때문이다. 우울한 회색빛이 드리운 한국 경제, 그렇다면 한국 경제의 위기는 어디서 극복의 전기를 마련해야 할까. 이 책에서는 여러 대안 중 하나로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디지털 혁명을 현실 생활에서 구체화해주는 것은 제조업이고, 디지털과 제조업은 상호보완적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이 10~20년 안에 전기자동차화, AI 탑재, 3D프린터 설계를 거쳐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진화하고, 컴퓨터 기술이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3D프린터와 결합해 제4차 산업혁명시대 승부를 가늠할 지렛대로 작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두개의 큰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거품이 빠진 국제 경제가 불황, 정체기로 진행한다는 분석이고, 다른 하나는 AI, IoT, 로봇, 빅데이터 등 새 기술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전망이다. 두 흐름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10년 후 정치, 경제 지도자들의 역할이지만, 미리 준비하고 초석을 다지는 일은 지금 우리 세대의 몫일 것이다. 276쪽, 1만4천500원.

2018-03-10 00:05:00

[이종문의 한시 산책] 남 보듯이 보려느냐 宋氏(송씨)

남 보듯이 보려느냐 宋氏(송씨) 세상에, 요 몇 년간, 뼈에 저린 가난으로 自歎年來刺骨貧(자탄년래자골빈) 정들었던 내 집조차 이웃 손에 넘어갔네 吾廬今已屬西隣(오려금이속서린) 뜰에 선 저 버들아, 어디 한번, 물어보자 殷勤說與東園柳(은근설여동원류) 앞으로, 설마 나를, 남 보듯이, 보려느냐 他日相逢是路人(타일상봉시로인) 근원(近園) 김용준의 전설적 수필집 '근원수필'(近園隨筆)에 인용되는 바람에, 제법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송(宋)나라의 조규(趙葵)가 편찬한 '행영잡록'(行營雜錄)에 이 시와 함께 좀 더 자세한 창작 동기가 수록되어 있다. "천태송씨(天台宋氏)는 원래 집안이 부유했다. 그러나 그 후 가난에 시달리게 되자, 살던 집마저도 이웃 사람에게 팔아먹어 버렸다. 흥정을 다 끝낸 뒤에 위의 시를 지어 읊었다. 집을 산 부자가 이 시를 보고 측은하게 여긴 나머지, 곧바로 집문서를 돌려주고 이미 치른 집값도 돌려받지 않으니, 고을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였다." 무엇보다도 그 이웃 사람이 참 어지간하다. 세상에, 애틋한 시 한 편을 지었다고 해서 손에 쥔 집문서를 돌려주고, 이미 지급한 집값도 돌려받지 않았다니! 마음씨가 좋은 그 이웃에게 '참 착한 이웃 상'을 주고 싶다. '참 착한 이웃 상'을 받은 그에게 덩달아 우리 집도 팔아먹고 싶다. 애틋한 시 한 편을 짓기만 하면, 상까지 받은 그 착한 이웃이 응당 집문서를 돌려줄 테니까. 아아, 위대하다. 시의 힘이여! 오늘날 우리에게 집은 재산 증식을 위한 아주 중요한 수단의 하나다. 집값이 뛰어올라 대박을 터뜨릴 집을 골라서 사고, 쪽박을 차기 전에 얼른 팔아치운다. 그러다 보니 집 주소가 수시로 바뀌고, 살던 집에 대한 미련도 없다. 아파트 앞에 있는 버즘나무 때문에 차마 이사를 갈 수가 없다는 장옥관 시인은 이제 멸종위기 동물에 속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들었던 집을 팔았던 송씨도 그만하면 어지간하다. 그에게 집은 아내와 첫날밤을 함께 보냈던, 이른바 역사의 현장이다. 3월 초가 되면 무려 만 송이의 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저 백목련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심은 것이고, 감나무에 매달려 바람 부는 대로 왔다리 갔다리하는 것은 손자와 손녀들이 타는 그네다. 그러므로 이제 남의 것이 되어버린 집과, 그 집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참 애틋한 정이 없을 수가 없다. 그 가운데서도 송씨는 바람결에 가는허리를 이리저리 낭창거리는 수양버들을 유달리 사랑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들었던 집도 이제는 남의 집, 그 버드나무도 새로운 주인을 섬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면 나는? 나는 이제 저 버드나무에게 완전히 남이 되고 말았다는 말인가? 설마 그럴 리가? 그는 수양버들 아가씨의 옆구리를 찌르며, 은근한 눈길로 물어본다. 이제부터 나를 남 보듯이, 정말 남 보듯이 대할 거냐고?

2018-03-10 00:05:00

[반갑다 새책] 아무것도 아닌 모든

2013년 '천강문학상'을 수상한 변희수의 첫 번째 시집이다. 5부 120편의 시를 통해 시인은 '관계에 대한 사유와 사이의 미학'을 풀어놓았다. IT 사회에 진입하면서 개인 간의 소통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인터넷상의 정보 공유와 대화를 통해 시공을 초월해 무수한 인간관계망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시인은 "소통이 많아질수록 역설적으로 개인의 고립은 더 심화된다"며 "관계 속에서 '나'는 사라지고 진정한 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나의 관계들 역시 소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관계망의 복잡성과 개인 고립의 심화, 시인은 이런 현대사회의 관계 이면을 담백한 언어로 성찰한다. 거대한 사회망 속에서 점차 커지는 개인들의 소외를 주시하며 시인은 관계의 복원을 시도한다. 허망한 관계들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삐걱거리는 대화'나 '구겨진 백지'는 아직도 소통의 수단을 찾지 못한 우리를 상징한다. 해설을 쓴 황정산 문학평론가는 "단절되고 하나가 될 수 없는 우리 사이에 놓인 '사이'를 구체화할 수 있다면 단절을 해소할 수 있다"며 "그 일을 (어쩔 수 없이) 시인들이 맡아야 하기에 시를 쓰는 일이 그만큼 소중한 작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139쪽 1만천원.

2018-03-10 00:05:00

[반갑다 새책] 와각을 위하여

군위 출신 김도향 시인이 펴낸 첫 시집이다. '와각'(蝸角)은 달팽이 뿔이라는 뜻으로 본래 의미는 '세상일은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듯 보잘것없는 다툼'이라는 뜻이다. 시들은 대부분 자연과 눈을 맞추고 있는 서정적 자아로 형상화되고, 주관화된 내면의 공조는 모두 불교의 평등적 세계관으로 귀결된다. 서범석 문학평론가는 '시인의 친불성(親佛性)은 모든 텍스트를 끌어안는 벼리(綱)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그의 시세계는 누에에서, '금강경' 바위에서, '보리달마' 수국에서, '만월보살' 파리지옥에서 '무간지옥'을 유추해 내며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있다. 특히 '자서'(自序)에서 '보리수나무 아래 개미 떼 한식경 놀다간다/ 어슬렁어슬렁 곰 한 마리 한나절 앉았다 간다…(중략) 나는 한 백 년쯤 앉아있다 보면 마애불 될까'로 적을 정도로 장(章)마다 불심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시 '마지막 주유소'는 이 책의 모든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 목적지가 정해졌다면 기름을 넣을지 말지 고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수도자의 고민은 마지막 주유소에서 극대화된다. 사바의 길을 주행(走行)하는 수도자들의 번뇌는 어디쯤에서 끝날까. 이 책이 던지는 최종 화두다. 139쪽 1만원.

2018-03-10 00:05:00

유럽 혁명의 주역은 '보통 사람들'…『유럽민중사』

유럽민중사/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펴냄 이 책의 부제가 길다.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 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대략 저자가 말하려는 주요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A. 펠츠는 엘긴 커뮤니티 칼리지의 역사학 교수이자 시카고 노동계급연구소 이사다. 주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관한 저서들을 많이 썼다. 이 책을 옮긴 장석준(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유럽의 민중투쟁사를 살펴보면서, 우리나라의 1987년 6월 항쟁과 2017 촛불혁명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자 했다. 유럽은 종교개혁 급진파, 18세기 정치혁명, 노동계급의 발흥 등 아래로부터의 반란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데 더없이 좋은 토양을 갖고 있다. 20세기에는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의 등장이 있었고, 냉전 시기의 민중 저항, 1968년의 학생'노동자 저항이 있었다. 저자는 역사라는 무대를 활보하는 위인의 행적을 구경꾼처럼 쫓아가지 않고, 오히려 민중이 사회 변화의 주역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중세 이후 유럽 민중사의 입문서다. 민중투쟁사와 민중생활사를 소수 지배 엘리트의 시각에서 탈피해, 보통 사람들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재서술하고 있다. 민중사란 이런 지배적 역사 서술을 비판하고 전복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즉, 이제껏 발언권도 제대로 없었던 집단(민중)을 끊임없이 새로 무대에 올려 역사 전반을 재구성하는 일로 보면 된다. 유럽 여러 나라들은 평탄한 진보의 길을 밟으며 복지국가라는 정점에 도달했다기보다 끊임없는 민중투쟁의 전진과 후퇴 속에 그나마 좀 더 나은 사회로 변해왔다. 지금도 그 과정은 진행 중이다. '유러피언 드림'이라는 이름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던 유럽이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에는 가장 반동적인 신자유주의 지배층과 민중의 대립, 극우 인종주의 대안의 득세 등으로 시끄럽다. 이 책을 보면, 지금의 투쟁하는 유럽이 실은 기나긴 역사에서 오히려 더 익숙한 광경임을 깨닫게 된다. 유럽 중심주의의 신화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유럽 민중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유럽 민중의 투쟁과 역사를 집대성한 이 책의 밑바탕에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깔고 있다. 새로운 역사기술의 모범을 보인 20세기 중반 영어권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에릭 홉스봄, 에드워드 파머 톰슨 등)이 있고, 20세기 말의 풍요로운 미시역사 연구들이 있다. 이에 더해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 여성사 연구다. 이 방면의 역사학자들은 이제껏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관련 주제들에 천착할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시각에서 기존 역사상을 철처히 비판하고 재구성한다. 미국, 러시아 양측의 기밀문서 해제 덕분에 1차 사료의 양과 질 자체가 달라지면서 새로운 지평을 맞이한 냉전사의 연구 성과도 생생히 소개한다. 저자 펠츠는 종교개혁 급진파의 숨은 역사에도 민중의 함성이 메아리치고 있었고, 러시아 혁명의 주인공도 몇몇 혁명가가 아니라 당대의 보통 사람들이었음을 적시하고 있다. 대다수의 유럽사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계몽주의 이후 유럽 문명이 이룬 승리가 찬가로 끝맺는 반면 펠츠는 철저히 민중사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보리스 카갈리츠키(지구화 연구 및 사회운동 연구사 이사)는 이 책에 대해 "더 나은 삶을 위해 그리고 사회정치적 권리를 위해 여러 세대에 걸쳐 전개된 민중투쟁의 흥미로운 이야기"라며 "계몽, 진보, 사회 변화라는 관념들이 의문시되는 지금이야말로 이 이야기들을 다시 살펴봐야 할 때"라고 추천했다. 이 책의 목차는 중세의 붕괴부터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17세기 영국혁명, 19세기 파리 코뮌, 20세기 러시아 혁명, 냉전 중의 유럽인들, 유럽 21세기에 던져지다의 순으로 기술하고 있다. 488쪽, 2만원.

2018-03-10 00:05:00

도광의 시인. 사진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문화人&스토리] 대구 '원로문인' 도광의 시인

한 국어교사가 있었다. 제자들이 펴낸 책의 판매 부수를 합치면 1천만 부가 넘는다고 한다. 문단에 이름을 올린 제자만 20여 명이다. 자신도 1965년 등단해 올해로 54년째 시인이다. 시인은 시를 짓는 사람인데, 어찌 된 탓인지 이 사람은 등단 이후 54년 동안 겨우 세 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주무르고 깎다 보니 그렇다고 했다. 전 대구 대건고 국어교사였던 도광의 시인에 관한 이야기다. ◆시 쓰기가 가장 어렵네요 우리나라 문단에 시인은 많지만, 도광의 시인만큼 시력이 긴 시인은 드물다. 또 그렇게 오랫동안 시인으로 살아온 사람치고 도광의 시인만큼 과작(寡作)한 시인도 드물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54년 시작(詩作) 인생에 달랑 시집 3권을 냈으니 굳이 시인이라는 호칭이 필요할까 싶었다. 그러나 빛바랜 면바지에 콤비 재킷, 남색 베레모를 쓰고 새파란 운동화를 신고 나타난 그는 영락없는 시인이었다. "너무나 많은 시인이 작품을 내놓고 있어요. 난해하거나, 호흡이 처지거나…. 나도 부담을 가지는데 독자는 오죽하겠어요?" 과작 시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시가 아무리 난해해도 어불성설이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읽는 사람도, 쓴 사람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난센스가 배출되는 시대다. 그는 "'실패한 은유'를 써놓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오만하게 '설'(說)을 풀어대는 시인을 여럿 봤다"면서 "아무리 어려운 시라도 의미의 언저리에 이미지가 닿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마지막 구절을 암송하고는 비둘기가 지붕 위를 걸어다니는 것을 고기잡이 배에 비유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폴 발레리가 7, 8년에 걸쳐 시를 써내려갔듯이 다듬고 다듬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교단에 서던 시절 교과 진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흥에 겨워 쏟아내곤 했던 시론(詩論) 강의를 인터뷰 자리에서 기자를 앞에 두고 펼쳐내기 시작했다. 소월, 미당(서정주), 김춘수, 박용래, 한성기…. 그는 신문 인터뷰 기사로 적당히 이야기를 풀어내다가도 어느새 좋아하는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그들의 작품을 줄줄 읊었다. 선물 보따리를 앞에 둔 여섯 살배기 어린아이 표정으로.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 미당을 언급했다. "친일 행적은 작품으로 보상했다고 해도 될 만큼 미당은 훌륭한 시인이오." 그는 마산고 재직 시절 미당의 시에 푹 빠져 "미당의 시를 모르면 속물"이라고 외치고 다녔다고 했다. 도광의 시인은 200편 정도의 시를 암기하며, 술자리에서 흥이 오르면 암송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암송 리듬이 기막혀 귀를 쫑긋 기울이고 듣던 옆자리 손님들이 새 술 한 병을 건네기도 한다. 도 시인은 인터뷰 중에 한성기 시인의 '역'(驛)을 꼭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우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자화상을 담은 시라고 했다. 그리고 차근차근 시를 되뇌었다. 가끔 고개를 저어가면서, 미간을 찌푸려가면서 얼른 떠오르지 않는 시구를 몇 번이고 반복하기도 했다. "자꾸 잊어버리네. 요새는…." 자신의 작품 가운데 '갑골길' 외에 '저녁답' '하양의 강물 2' '하양의 강물 3'에 애착이 간다고 했다. '갑골길'을 쓰도록 한 것은 절박한 상황과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이었다. "마산고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경남 함안에서 한하균 선생을 만나고 술에 취해 밤새 눈길을 걸어왔어요. 새벽녘 북마산 파출소 다다미방에 도착해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깼는데 성에 낀 유리 너머 황량한 합포만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편찮으신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그 순간 떠오른 구절을 벽에 옮겨 적었는데, 그걸 대건고에서 근무할 때 완성했으니 몇 년이 걸린 건지…." 그렇게 완성된 갑골길은 그의 대표작이 됐다. 그러나 도광의 시인은 여전하다. "일관된 흐름으로 시를 쓰기가 참 어렵습디다." ◆교과서 밖 감수성 196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마산고와 마산 창신고를 거쳐 1971년 대구 대건고에 부임했고, 1997년 효성여고에서 교사 생활을 마쳤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를 국어교사보다는 문예반 지도교사로 기억하는 것 같다. 수업 시간에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시를 읊었고, 문예반 학생의 이름은 수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는 것을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진도를 나가면 시원찮게 가르치니 학생들 항의를 많이 받았어요." 미당에 빠지고, 술에 빠져 지낼 때였다. 자정이 넘도록 술을 마시고 교과 준비도 없이 출근하던 때가 있었다. 과음은 예삿일이었고, 숙취를 푸느라 교탁에 주전자를 놓고 물을 들이켜 '금붕어'라는 별명이 붙었다. 동료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가르치라는 건 안 가르치고 딴 것만 가르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교과서에 나오던 신경림의 '농무'보다 '제삿날 밤'이 더 좋았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좋아 통째로 외웠다는 그다. 수업 시간에도 교과서는 뒷전이었으니 학교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데 대학 본고사를 치르고 온 학생들이 그의 수업을 듣고 시험을 잘 봤다고 했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교감은 도리어 그를 칭찬했다. 어쩌면 족집게 교사였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도 그들에게 가르친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오히려 배운 게 더 많아요." 대건고 28회 문예반 제자들의 출판기념회에서 축사했다. '분홍(粉紅) 풀색'이라는 시를 들려줬다. 외상 술값을 받으러 온 식당 주인은 술만 마시고 학생들을 돌보지 않았던 과거를 돌이켜보게 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에서 쓴 시였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제자들은 모일 때마다 도광의 선생님을 이야기한다. "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입니다. 그 녀석들이 '그 시 좋습니다'하면 용기를 내서 더 잘 쓰고 싶어지지요." 그들에게 잊지 않고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아끼는 제자이자 문예반장이었던 시인 안도현이 고3 때 원고 뭉치를 가져왔을 때도 했던 말이다. "시는 길면 안 된다. 언어는 보석처럼 갈고 다듬어야 한다. 언어를 함부로 부도내지 마라." 등단한 제자만 20명이 넘는다. 시인 서정규'안도현'이정하'권태현, 소설가 겸 시인 박덕규, 소설가 김완준. 한 스승 밑에서 이렇게 많은 문인이 배출된 건 이례적이다. 여기에 번역가, 기자, 교수 등 글로 먹고사는 제자를 합치면 셀 수도 없다. "비결이요? 감수성이 아닐까요?" ◆로맨티시스트를 말하다 "로맨티시스트, 그건 날 놀리려고 하는 말 같아요." 제2대 대구문인협회장 출마 당시를 떠올리며 자신도 철저한 리얼리스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숨길 수 없는 로맨티시스트다. 시인 도광의를 이야기하며 술이 빠질 수가 없다. 그리고 술 하면 외상값이 빠질 수 없다. 월급날, 방학하는 날이면 술값을 받으려고 교문 앞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식당 주인을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나이가 들어 예전만 못하지만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를 찾는다. 아니, 그가 있는 곳에 술과 사람이 모여든다. "술을 마시면 시가 떠올라요. 그러니 시 없는 술, 술 없는 시는 생각하기 어렵겠지." 인터뷰를 끝낸 그와 단골집에 갔다. 자정까지 술을 마시지는 않겠다던 그였다. 빈 술병이 탑을 쌓았다. 백발이 성성한 시인의 낭만시계는 인터뷰가 시작될 때 이미 멈춰 있었다. 취기가 올라도 시를 잊지는 않는다. 잠들기 전 머리맡에는 400자 원고지와 볼펜이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좋은 시가 안 나온다. 그는 등단 후 18년 만에 첫 시집 '갑골길'을 냈고, 그로부터 21년 뒤에 두 번째 시집 '그리운 남풍'을, 다시 9년 뒤인 2012년에 세 번째 시집 '하양의 강물'을 펴냈다. 그리고 침잠이다. "상 좀 못 받으면 어떤가!" 마지막일지도 모를 네 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55년 전 처음 썼던 '포플러'의 마지막 구절을 이제 완성했다. 고치고 다듬은 시는 파닥인다. 발랄하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시는 젊어야 한다. 다 처져 빠진, 무미건조한 시를 쓸 바엔 안 쓰는 게 낫다"면서 "대구에서 시를 소중하게 갈고 다듬어 문학을 손상하지 않으려는 시인은 송재학"이라고 거듭 말했다. 시가 아닌 것을 가르치면서 시론 강의를 하는 세상이다.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 시를 내놓고 시라고 떠든다. 그에게 시는 고투하고 다듬어서 내놓느라 오래 걸려야 한다. "내가 독자가 되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2018-03-08 17:04:49

최수남 작 '폴트라인'

[내가 읽은 책] 폴트라인(라구람 G. 라잔)

『폴트라인』, 라구람 G. 라잔, 옮긴이: 김민주'송희령, 에코리브르 지구에서 대륙판들이 접촉하거나 부딪힐 때, 끝쪽이 부서지거나 꺾이면서 엄청난 압력이 발생한다. 그것이 지진이고, 지진이 발생하는 그 판의 접촉면을 폴트라인이라고 부른다. 이를 책의 제목으로 활용하여 현실 경제 상황을 빗대어서 표현한 것이다. 저자 라구람 G. 라잔은 국제통화기금 수석 경제학자를 역임하고 현재 시카고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10년 피셔 블랙상을 받았다. 이 책은 논문에 가까운 형태를 가지고 있다. 먼저 문제를 찾는다. 그 문제가 어떤 이유에서 일어나는지 밝힌다. 그러면서 그 이유가 일어난 원인을 밝히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조언한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는 것이다. 단순히 범인을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범인이 문제를 일으킨 배경 원인을 이야기해주고, 더 나아가 그 배경 원인이 일어난 이유를 분석한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난 인과 관계가 완전히 분절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가 집단적으로 미쳤거나 무슨 병에 걸려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 각자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인센티브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뿐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보통 그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무래도 편하기 때문이다." 인용구에서 보듯이 이 책은 경제를 다루고 있지만, 인간 본질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있다.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수치를 이론에 대입하여 답을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도 계산에 의해 말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얽힌 너무도 많은 사람이 현상 유지를 선호하고 있어 변화는 쉽지 않다." 경제를 다루고 있으며, 인간의 본질을 말한다고 하니 어려운 책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멋진 머리말을 가지고 있어 그런 걱정을 덜어준다. 모든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머리말이다. 그리고 문제들을 설명함에 있어 그 문제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사람들의 사례를 들어 이해를 돕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미국을 중심으로 적혀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무서운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심각한 문제는 경기가 회복기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이 계속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고용 없는 회복'(jobless recovery)이라고 부른다." 인터넷 뉴스를 조금만 찾아본다면 저런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뉴스가 아니라 한국의 뉴스에서이다. 이 책은 무언가 예언서나 바보 같은 소문을 수집해서 만든 책이 아니다. 믿을 수 있는 경제학자가 그의 동료들의 도움으로 만들어낸 책이다. 논리적인 수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던 무서운 현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2018-03-03 00:05:04

저출산·고령화 지속되면, 2030년 이후 '요양 지옥' 온다…『미래 연표』

미래 연표/ 가와이 마사시 지음/ 최미숙 옮김/ 한국경제신문 펴냄 고요한 재난이 시작됐다. 정원 미달로 도산하는 대학이 속출하고, 빈집이 빠르게 늘어나 3채 중 1채가 빈집이 된다. 지방에서는 백화점'은행이 사라진다. 급기야 외국인이 영토를 점령한다. 20년 내 일본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저출산'고령화가 가져올 잿빛 미래다. 유례없는 인구 감소를 경험한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저출산'고령화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막을 수도 없다. 예견된 변화에 대응할 방법은 없을까. ◆인구 감소 캘린더 '미래 예측은 어렵지만, 인구는 예측할 수 있다'면서 인구 감소 사회의 충격적 결말을 예고한 '미래 연표'가 나왔다. 일본 산케이신문 논설위원이자, 인구정책'사회보장정책 전문가인 가와이 마사시가 2017년부터 100년간 벌어질 일을 연대표처럼 정리했다. 저자는 수치와 그래프를 더한 체계적인 분석으로 미래에 어떤 일이, 언제, 왜 생길지 경고한다. 암울한 미래와 단계적 소멸이라는 파국을 예언하면서 일본 사회는 술렁였다. 책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여성 3명 가운데 1명은 65세 이상 고령자로, 일본은 이미 '할머니 대국'이 됐다. 신입생 정원 절반을 못 채우는 사립대의 현실은 국립대의 존립도 위협하고 있다. 2019년이면 IT 인재가 부족해진다. 기반 시설을 개선'보수할 사람이 사라진다는 뜻이고, 청년인력 부족 사태는 인공지능(AI)을 구현할 인력조차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끼와 순발력이 뛰어난 젊은이가 필요한, 예컨대 패션, 문화예술, 체육 분야의 성장도 멈춘다. 2020년에는 일본 여성 2명 중 1명이 50세 이상이 된다. 전체 여성 중 출산 가능한 여성이 절반이라는 뜻이다. 2022년에는 '나홀로 가구'가 3분의 1을 넘는다. 홀로 사는 고령 인구가 늘면, 돌봄 문제가 심각해진다. 노인이 노인을 보살피는 노노(老老)케어 문제가 본격화하고, 간병 이직도 이슈가 된다. 부모, 또는 배우자 간호를 위해 휴직하거나 이직하더라도 직장을 되찾을 가능성이 작고, 한창 일해야 할 사람들을 얼마나 지속할지 모르는 기간에 병상 옆에 묶어둠으로써 경제는 활력을 잃는다. 숙련도 높은 고령 노동자는 관리직에 가깝고, 인건비는 비싸다. 경제활동인구가 급감해 일손이 부족하다. 주문이 있어도 생산 가능한 인력이 없으면 기업은 경영난에 직면한다. 구매력 있는 소비주도층인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는 국가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2030년이 되면, 지방은 점차 소멸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지방은 세수 부족으로 행정기능이 약화하고, 편의시설, 서비스 시설은 문을 닫는다. 인구가 몰리는 도시도 마찬가지다. 고령 인구가 폭발적으로 유입되면서 도시는 '요양 지옥'이 된다. 수혈용 혈액이 부족해 병원에 가도 나을 수 없고, 무연고 묘지와 시신이 늘어나 장례식장도 부족해진다. 미혼'독신 인구가 늘어나 저출산 속도도 가속한다. 고령 인구, 특히 빈곤한 노인이 늘어나면 재정은 무너지고, 인프라 관리가 불가능하다. 빈 땅은 외국인이 차지하고 국가는 소멸 위기에 놓인다. 지나친 상상일까. ◆앞당겨진 인구절벽, 남의 일이 아니다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2017년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1.05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인구 유지를 위한 합계출산율은 2.1명이다. 두 사람이 결혼해 1명을 낳으면 1세대를 거칠 때마다 인구가 절반이 된다. 2016년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44명이다. 일본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인구가 감소할 것이란 얘기다. 이미 진행된 인구 감소는 저출산화를 악화시킨다. 과거 진행된 저출산화로 여아 수가 줄었고, 출산 가능한 여성이 줄어들어 합계출산율이 올라가도 출생아 수가 감소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산(多産) 사회가 재도래하기 전까지는 저출산이 다시 저출산을 낳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한편 통계청은 2016년, 2032년에 인구가 정점에 달할 것으로 관측했다가 지난달 말 발표를 통해 2031년에 우리나라 인구가 정점을 찍고서 줄어들 것으로 예측치를 수정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현재의 출산율을 고려하면 2027년으로 4년가량 앞당겨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저출산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로 이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생산 가능 인구는 2016년 3천762만7천 명을 정점으로 지난해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2065년에는 생산 가능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에 못 미치는 2천62만 명(47.9%)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생산 가능 인구 중 주요 경제활동인구(25~49세)는 2015년 52.8%에서 2065년 49.3%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노동시장 위축은 구인난을 심화시키고 경제규모를 축소한다. 저성장의 고착화다. 일본이 아닌, 우리 이야기다. ◆작지만 빛나는 나라로 책은 위험한 상상을 늘어놓는 것으로 논의를 매듭짓지 않는다. 소리없이 들이닥칠 재난에 맞설 방법을 제시한다. 피할 수 없다면 이를 전제로 사회 구조를 재편하면 된다. 저자는 20세기형 성공스토리에 기대지 말고 전략적으로 다이어트를 하자고 주장한다. 우선 65세 이상인 고령자를 70세, 또는 75세 이상으로 올려 고령자를 줄인다. 65~74세 인구를 사회의 기둥으로 재인식하는 것이다. 불이 꺼지지 않는 24시간 사회의 편의를 포기하면 과잉서비스에 필요한 비용과 인력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파격적인 제안도 있다. 비거주지역을 지정해 인구밀도가 높은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행정서비스 효율성을 높인다. 강제 이주 등이 동반되는 급진적인 방안이다. 정원 유지가 어려워 도산한 지방 대학 캠퍼스를 은퇴자 커뮤니티로 만들자는 것도 비슷한 방식이다. 국가적 지원도 필수적이다. 국비 장학생 제도로 꼭 필요한 인재 육성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고, 셋째 아이 출산 가정에 1천만엔을 지급한다는 대책도 내놨다. 인구 감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급격하게 감소한 뒤의 상황을 고려한 알찬 계획의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불편한 미래를 예견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영국의 옥스퍼드대 인구 문제 연구소는 '한국이 지구 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하는 나라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강 건너 불구경하던 시절은 지났다. 244쪽, 1만5천원.

2018-03-03 00:05:04

[책 CHECK] 바로크, 바로크적인

바로크, 바로크적인 한명식 지음 / 연암서가 펴냄 바로크(baroque)는 17~18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예술 사조다. 16세기 이전 유럽을 풍미했던 고전주의 르네상스가 질서와 균형, 조화와 논리성을 중시한 것과는 대비된다. 바로크 예술 작품은 화려하고 우아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중세를 막 벗어난 근대인들의 극심한 혼란과 우울함이 담겨 있다. 르네상스라는 극단적인 세계관의 변화, 폭포 같은 새로움과 인식의 모순, 그리고 우주의 중심에서 밀려난 짙은 고독은 시대의 불안을 드러내는 바로크의 증상을 불러왔다. 바로크 예술의 역동성, 오묘함, 장대함, 혼란, 모호함은 그러한 고뇌로부터 싹튼 문화적 현상체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뒤틀린 틈 속에서 싹튼 바로크가 오늘날의 문화적 다양성을 꽃피워냈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저자는 세계는 불안정한 형태와 변화, 그 자체라고 말한다. 세계를 변화하는 존재로 보면서도 영원하고 불변적인 대상을 찾다 보니 바로크 예술에 비극적 장엄미, 요란한 조형성, 찬란한 호사스러움 같은 특징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프랑스 리옹시립응용예술학교에서 공간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대구한의대 건축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396쪽, 1만8천원.

2018-03-03 00:05:04

[책 CHECK] 팔공산, 그 짙은 역사와 경승의 향기

팔공산, 그 짙은 역사와 경승의 향기 글 홍종흠 조명래/ 사진 강위원/ 민속원 펴냄 팔공산은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 첫 통일국가인 통일신라를 상징하는 산이다. 이곳에서 김유신 장군이 '삼한일통'의 검을 받는 신화가 탄생했고, 통일 후에는 이 산이 국토의 영역을 상징하는 오악 가운데 가장 중심되는 중악으로 불렸다. 고려시대엔 몽골 병란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난극복을 위해 민심을 모아 조성한 초조대장경을 이곳 부인사에 봉안했다. 임진왜란 당시 전국의 승병을 지휘한 총본부가 이곳에 있었다. 정신사적으로는 한국불교사의 가장 큰 봉우리를 이룬 원효 대사가 이곳에서 수행 득도했고, 일연 스님은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고려시대의 지눌 스님은 이곳에서 정혜 결사를 통해 한국불교를 중흥시켰고 현 조계종단의 원류를 만들었다. 이 밖에 우리나라 최초의 석굴암과 갓바위 부처도 이곳에 있다. 이처럼 팔공산은 우리 민족의 성산이며, 문화와 역사의 발원지이고, 빼어난 경관과 희귀한 생태자원의 보고이다. 그러나 아직 세상에 참모습을 드러내지 못해 신라 오악 중에서도 유독 팔공산만 국립공원에서 빠져 있다. 이 책은 국내의 다른 산들이 넘보지 못할 역사와 문화, 경승을 지닌 팔공산의 진면목을 두루 알리기 위해 쓰여 졌다. 416쪽, 3만5천원.

2018-03-03 0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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