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책 CHECK] 그림으로 읽는 빅히스토리

그림으로 읽는 빅히스토리 김서형 지음/ 학교도서관 저널 펴냄 이 책은 그림을 통해 다양한 층위의 역사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반 고흐의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에서 초승달, 화성, 금성이 같은 하늘에 나타나는 '천체 결집현상'이 묘사된 것에서 출발해 별의 탄생 역사, 별과 관련된 신화, 인류의 우주관 변화 과정 등을 살펴보는가 하면, 모네의 그림에서 태양의 탄생과 태양이 인류의 예술에 미친 영향, 오늘날 지구와 태양의 관계를 살펴보는 식이다. 이 책은 빅뱅부터 혁명과 전쟁 이후의 현대사회까지 살펴보고 있다. 원숭이가 그려진 앙리 루소의 그림에서 다윈의 진화론과 논쟁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으며,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에서 신과 인간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나무와 관련된 북유럽 신화를 이해하고, 생명의 근원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언급한다. "인류의 기원과 현재, 미래가 한 화폭에 담겨 있는 이 그림처럼 세상 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의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의 기원을 연구하고 고찰하는 것은 다양한 생명체와 인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220쪽, 1만4천원.

2018-02-03 00:05:00

[책 CHECK] 대구지오그라피

대구지오그라피 박진관 지음/ 도서출판 보물섬 펴냄 이 책은 저자가 4년 동안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어 엮은 것으로 대구의 역사와 지리, 문화, 자연 등을 살펴보고 생생하게 되살려낸 저서다.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그 역사와 문화, 그 안에 살아있는 우리 삶의 스토리'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1982년 대구시가 펴낸 '대구의 향기'에서 대구를 서울, 부산에 이은 한국 3대 도시에 포함시키고 분지성 내륙도시, 정치도시, 군사도시, 상업도시, 섬유도시, 사과도시, 교육과 문화도시로 규정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대구가 3대 도시로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라면서 "글을 연재하는 과정에서 대구 새로운 정체성 찾기에 골몰했고 그 결과 다른 지역과 비교되는 특색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도시 정체성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생물처럼 변한다고 본 저자는 대구의 자연지리에 주목하고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보물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이외에도 일제 강점기 일본의 자취, 2'28민주운동, 대구 사람 전태일'조영래 이야기 등을 사진과 함께 다루고 있다. 저자는 "다른 지역은 없는 것도 만들어내고 과장하는 데 비해 대구는 자연과 역사'문화유산을 알리고 선양하는 데 인색했다"면서 "이 책이 대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08쪽, 2만5천원.

2018-02-03 00:05:00

한국의 경제 번영을 상징하는 서울 도심 빌딩. 매일신문 DB

한국 경제 재도약 위해 반드시 짚고 가야할 것들…『한국 경제 진단과 처방…』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2015년 홍상수 감독이 제작한 영화다. 1부에서 속물, 찌질남으로 묘사되던 주인공(정재영 분)이 장면을 바꾸어 2부에서는 지적이고 상식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시선을 살짝 비틀어 정반대의 해석을 도출해 내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이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듯한 이 책은 시점을 바꾸어(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한국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경제 흐름이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개발, 성장시대 때 통용되던 '성공 방정식'이 현실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재정부 전'현직 관료 6명이 대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저자들은 해외의 경제 대가 7인을 지상(紙上)으로 초대해 그들의 혜안을 빌려 우리 경제가 고민해야할 일곱 가지 주제를 살피고 있다. 1장에서는 우리나라의 재벌 문제를 살펴본다. 기업 이론의 대가 로널드 코스(Ronald Coase)의 견해를 통해 우리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재벌은 대중들이 '욕망하면서 혐오하는 존재'다. 근대화의 주역이라는 찬사를 받아왔지만, 한편에서는 정경유착과 비리의 온상이라는 비난도 함께 받고 있다. 코스는 '비용 이론'의 관점에서 기업의 순기능을 강조한 학자다. 기업가의 자원 배분 역할을 평가한 그의 이론은 정부 개입을 비판하고 재벌을 옹호하는 맥락에서 활용되었지만 그렇다고 '정부 무용론자'도 아니었다. 코스는 '현재 우리 재벌들이 자원을 배분하는 기업가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며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2장에서는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로부터 저성장의 원인과 대책을 듣는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발전의 동인을 설파한 혁신 전도사로 유명하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저성장의 장기화 추세다. 저성장을 운명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다시 한 번 재도약을 꾀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저자는 '삶의 질'이라는 화두 앞에서 GDP 성장률 중심의 정책을 유지해 나갈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혁신 방향을 찾아 나설지 고민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경제학자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를 호출하는 3장에서는 저소비가 문제인지, 과소비가 문제인지를 살펴본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소비 부족을 재앙으로 보고, 반대로 개인의 입장에서는 분수에 넘치게 소비하는 게 문제라고 한다. 소비 경제 주체들이 모인 국가 경제가 오히려 저소비로 홍역을 앓고 있는 것도 난센스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의 소비를 증가시키는 것이 효과가 있는지, 효과는 지속 가능한지 궁금해진다. 갤브레이스는 부자들의 무분별한 과소비가 문제라고 지적하며 개인의 과소비를 부추기지 않고 경제 전체의 수요 부족을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우리에게 디플레이션과 맞설 용기'지혜가 있는지 살펴보는 4장에서는 윌리엄 필립스(William Daniel Phillips)가 등장한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기억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는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경제 성장률을 올리려면 물가 상승을 감수해야 한다는 '필립스 곡선'은 이제 재해석되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인플레이션을 감수하고서라도 성장률을 올려서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일본과 유로존 국가들은 마이너스 금리라는 초강도 대책을 써가며 인플레이션을 유도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는 과연 디플레이션을 감당할 체력을 갖추었느냐'고 묻는다. 로버트 배로(Robert Barro)의 '조세 평탄화 이론'이 적용되는 5장에서는 정부의 재원 조달이 대해 살핀다. 재정수단으로 '조세'를 선택할지 '부채'를 선택할지 고민이 크다. 과거에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세수가 저절로 늘어났기 때문에 국가 부채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로존 재정 위기에서 보듯 국가 부채 문제는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우리도 부채가 누적되는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증세를 할 것인지, 국채를 발행할 것인지는 중요한 선택이다. 배로의 '조세 평탄화 이론'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살펴본다. 6장에서는 리처드 칸(Richard Kahn)의 혜안을 빌린다. '재정 승수'(Fiscal multiplier)를 통해서 경기 침체와 불황의 시기마다 구원 투수를 자임한 정부 재정의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경제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언제나 정부와 시장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지지하는 케인스주의를 부활시켰고, 각국은 빚을 내서 경기를 뒷받침하는 재정 확대 정책에 매진했다. 현재의 장기 침체 국면에서 또다시 재정을 구원 투수로 내세워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마지막 7장에서는 행동경제학 대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나서 어떤 경제 정책이 좋은 정책인지 살펴본다. 오늘날 정책 입안자들은 요리책에서 레시피를 고르듯 정책들을 선택하지만 그 결과는 초라하다. 현실의 경제 주체들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일관성도 없기 때문에 그런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경제 정책은 태생부터 허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소화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많은 경제 이론들이 존재한다. 이 책의 지은이들은 그동안 익숙했던 경제 정책의 틀을 깨고 새로운 경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자고 말한다. 한국의 최고 엘리트 관료들이 세계 경제 석학들의 지혜와 이론을 빌려 우리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은 해법 도출의 유무를 떠나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2018-02-03 00:05:00

[반갑다 새책] 오빠 이상, 누이옥희

요절한 천재 시인, 소설가 이상을 문우나 예술가 친구가 아닌 가족의 시선으로 접근한 책이다. 기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이상이 '나의 유일한 이해자'라고 지칭한 여동생 옥희 씨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으로 스토리를 풀어 간다. 작가는 2015년 우연한 계기로 이상의 여동생 옥희 씨의 둘째 아들이자 이상의 조카인 문유성 씨 부부를 만나면서 이상의 인간적인 체취를 좇는다. 특히 이상이 여동생 옥희에게 편지글 형식으로 쓴 산문 '동생 옥희 보아라-세상 오빠들도 보시오'와 옥희 씨가 1962년, 1964년 각각 '현대문학'과 '신동아'에 쓴 회고기 '오빠 이상'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 옥희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할머니(이상의 어머니)의 아들 사랑, 어머니의 애틋한 오빠생각을 풀어내는 것이다. 저자가 발굴해낸 손창섭 소설가의 흔적을 이상의 가족과 연결 짓기도 한다. 천재라는 베일을 걷어낸 인간 이상의 모습이 단락과 행간에 그대로 녹아있다. 한편으로 이상에겐 여성 편력이 심한 탕아, 제멋대로 산 광기 예술가, 천하 난봉꾼 등 비운의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옥희 씨는 오빠를 삐딱하게 평가하는 세상의 시선을 향해 오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변명한다. '오빠는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편안히 모시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던 사람이었다.' 348쪽, 1만8천500원.

2018-02-03 00:05:00

[반갑다 새책] 규슈 역사문화여행

유일상 건국대 명예교수가 일본 규슈의 구석구석 명소와 사연을 소개하는 규슈 역사문화여행 가이드북을 펴냈다. 이 책은 규슈를 깊게 이해하며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8개 장으로 나눠 규슈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여러 명소를 소개하며 규슈를 깊이 있게 즐기는 방법을 제시한다. 규슈의 7개 현을 모두 다루면서 그 현에서 가볼 만한 곳과 그곳에 깃든 역사적 사연, 그곳과 관련된 인물, 최신 여행 루트까지 소개한다. 이 책의 특징은 그렇게 여러 지역을 소개하면서 그곳에 담긴 사연과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관련된 인물들, 역사적 사건들을 많이 다루는 데 관련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규슈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백제의 유민들이 정착한 곳이나 임진왜란에서 우리나라를 침략한 장수들과 관련이 있는 곳,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들의 흔적이 남은 곳은 규슈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우리와 밀접하게 연관된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431쪽, 2만원.

2018-02-03 00:05:00

[이종문의 한시 산책] 나이 들어도 쉽지 않은 게 혀 간수하는 것이라

혀[舌] 풍도 입은 재앙이 나오는 문이고 口是禍之門 (구시화지문) 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라 舌是斬身刀 (설시참신도)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수한다면 閉口深藏舌 (폐구심장설) 어딜 가도 몸이 편안하리라 安身處處牢 (안신처처뢰) 옛날 중국에 하약돈(賀若敦)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장군으로서 나라에 큰 공을 세웠는데, 공에 비하여 상이 작다고 여기저기서 투덜거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혀를 함부로 놀려댄 죄로, 황제로부터 자살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목숨을 끊기 전에 그는 아들 하약필(賀若弼: 544~607)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나는 꼭 강남(江南)을 평정하고 싶었다. 그 꿈도 이제 다 글렀구나. 부디 네가 내 꿈을 대신 이루어다오. 그리고 아들아, 나는 혀를 함부로 놀리다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게 되었다. 나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부디 혀를 잘 간수하여라." 말을 마친 그는 뾰족한 송곳으로 난데없이 아들의 혀를 콱 찔렀다. 붉은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 후로 하약필은 혀를 놀리고 싶을 때마다 송곳에 찔릴 때의 그 아찔한 아픔을 떠올렸다. 대장군으로서 강남을 평정하여 아버지의 꿈도 이루어드렸다. 그러나 지위가 높아지자 점점 더 기고만장해져서 함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혀를 마구 놀려대다가 황제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황제의 경고도 자유롭고 싶은 그의 혀를 끝내 말리지 못하여, 결국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토록 모질게 훈계했는데도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말았으니, 입안의 혀를 통제하는 것이 정말 어렵기는 어려운가 보다. 위의 시를 지은 馮道(882~954)는 바로 그 혀를 아주 잘 통제했던 사람이다. 그는 당나라 말기로부터 자고 일어나면 왕조가 뒤바뀌던 5대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섯 왕조에 걸쳐 무려 11명의 황제들을 모셨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왕조의 현실적 당위성을 강조함으로써 벼슬살이를 계속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된 위의 시에는 바로 그 오묘한 처세술의 비결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입을 열어서 말을 해야 할 때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몸을 고이 보존하면서 높은 벼슬을 끝까지 유지한 비결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문학적 능력과 원만한 성품 같은 미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줄타기와 줄서기의 명수로 더욱더 널리 알려졌으며, 급기야 처세술에 능한 지조 없는 벼슬아치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군자는 말을 잘 한다고 해서 사람을 천거하지 않으며, 사람이 시원치 않다고 해서 그가 한 좋은 말까지 버리지는 않는다"(君子 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인생을 풍도같이 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그의 시에 담긴 메시지만큼은 송곳 같은 아픔으로 기억하고 싶다. 과거에 무심코 했던 말들이 낱낱이 다 부메랑이 되어 유턴을 하고, 어젯밤 술김에 한 말들이 아차, 하고 떠오를 때마다, 풍도의 시를 되새김질하게 되는 이유다. 벌써 환갑이 지났는데도 그 게 아직도 안 되느냐, 이 세상 천하 미련한 것아!

2018-02-03 00:05:00

북극의 마스코트 '북극곰'. 매일신문DB

한국 과학자들이 직접 본 북극 모습…『'아틱 노트'(알래스카에서 그린란드까지)』

'아틱 노트'(알래스카에서 그린란드까지)/ 이유경 외 24인 지음/ 지오북 펴냄 '아틱'(Arctic)은 남극을 제외한 북극만을 지칭하는 단어다. '북극' 하면 코카콜라 광고에 나오는 북극곰 또는 하얗게 펼쳐진 빙원 위를 어슬렁거리는 북극곰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때로는 아름다운 빛의 커튼 오로라, 이글루와 *이누이트 등 북극 원주민과 밤하늘의 우주쇼를 연상케 한다. 일반인들은 막연하게 아름다운 북극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북극 연구자들에게는 결코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끊임없이 불어대는 폭풍(블리자드)으로 현장탐사는커녕 텐트 속에 갇혀 있거나, 슬러시처럼 변한 눈밭에 푹푹 빠지며 한없이 헤매야 하는 생존의 위협이 도사리는 곳이다. 이 춥고 위험한 북극해와 북극권의 그린란드, 스발바르제도, 시베리아의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에 이르는 연구현장을 이유경을 비롯한 25명의 과학자가 함께 이 책을 펴냈다. 25명의 공동저자는 한국인 과학자 최초로 북극점을 탐사하고, 북위 80도에 기후관측 타워를 설치하고, 빙하시추를 통해 토양 및 화석연구까지 했다. 북극 카라-바렌츠해(해빙의 변화가 가장 크게 나타난 지역)의 해빙에 대한 연구는 김성중'김백민 박사가 이 책 228쪽부터 풀어놓았다. 두 박사는 우리나라의 한파 뒤에는 카라-바렌츠해의 얼음 면적이 감소함에 따른 대기순환의 변화라고 보고 있다. 따뜻한 북극해와 북극의 대기가 시베리아 찬 공기의 유입을 더 쉽게 한다는 설명이다. 북극해의 한복판에 위치한 북극점에 간 남승일 박사는 북극해에 있는 영구 결빙지역의 해저 퇴적물 연구를 썼다. 북극해의 해저에 쌓여 있는 퇴적물은 북극해의 진화를 알려주는 단서가 들어 있다. 북극점 주변의 로모노소프 해령에서 시추한 퇴적물을 분석한 결과, 북극해는 에오세 때에 북극해 표층 수온이 약 20~25℃ 이상이었던 사실과 담수가 담긴 지구 상에서 가장 거대한 호수 중 하나였던 사실도 밝혀졌다. 미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빙하코어의 시추현장에는 국내 유일의 빙하시추 전문가 정지웅 기술원이 투입됐다. '드래곤 코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정지웅 기술원은 북극과 그린란드에서 빙하를 시추하며 생긴 에피소드, 그리고 흥미진진한 사진들을 소개하고 있다. 알래스카에는 툰드라 동토코어 전문가 남성진 기술원이 있다. 그는 6차례나 현장에 가서 40~50㎝의 표층을 지나 시멘트만큼 단단하게 굳은 동토층을 뚫는 기술을 연마했다. 북그린란드의 유명한 화석산지인 시리우스 파셋에서 동물생태 연구를 한 이원영 박사는 사향소와 북극 토끼, 여우, 꼬까도요, 흰갈매기의 행동을 연구했다. 이 박사는 전 세계적으로 50여 개체밖에 남지 않은 희귀한 그린란드 늑대를 3번이나 만난 행운도 소개했다. 2013년 우리나라는 북극 이사회의 정식 옵서버로 승격했다. 북극 이사회는 북극 개발과 보호를 위해 1996년 설립된 기구로 북극에 인접한 8개국(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아이슬란드'캐나다'미국'러시아)이 회원국이며, 이들은 북극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다. 이 책은 북극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시대에 해양'대기'기후'지질'토양'지구물리'해양생물'동물행동'탄소순환'원격탐사'위성해양'우주 등 북극으로 간 과학자들과 기술원들의 생생한 기록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북극에 대한 좀 더 상세하고, 구체적인 지식을 더해줄 것이다. 304쪽, 2만원. ※용어설명 이누이트(Innuit)=그린란드'알래스카'시베리아 등 북극해 연안에 주로 사는 어로'수렵 인종. 캐나다에서 부르는 에스키모족의 공식 호칭이다. '에스키모'라고 하는데 이 명칭은 캐나다 인디언이 '날고기를 먹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부르는 '이누이트'(인간)가 정확한 표현이다.

2018-02-03 00:05:00

하우메 우게트가 그린 '성 아우구스티누스 서품식'. 두산백과

[내가 읽은 책]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 (박승찬/가톨릭출판사/2017)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 (박승찬/가톨릭출판사/2017) "왜 지금 '아우구스티누스'인가?"로 이 책은 시작한다. 저자는 다시 묻는다. "지금 행복하냐?"고. 중세 철학자인 저자는 철학과 교수인데 생각하는 힘을 키워 주는 강의로 유명한 분이다. 그의 '중세 철학사' 강의는 2012년 11월에 SBS와 대학교육협의회에서 공동으로 주관하는 '대학 100대 명강의'로 선정되었다. 이 책은 방송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각 강의가 끝날 때마다 질의응답을 넣고 인물, 사건에 대한 용어 설명을 따로 해놓아 이해하기가 쉽다. 그리스도교 최고의 스승이며 위대한 사상가인, 1600년 전의 성인 아우구스티누스는 많은 책을 남겼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책은 『고백론』인데 우리나라에서만 무려 40번이나 번역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학적인 이론만 연구했거나 특별하게만 살았다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많은 방황을 한 인간적이었던 분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명예욕, 출세욕, 성욕 등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회심하여 삶을 아주 깊게 성찰하고 신과 영혼에 대해 평생을 바친, 교부 철학자이자 위대한 사상가였다. 이 책은 스토리텔링 화법으로 되어 있어 편하게 읽힌다.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다양한 고민들, 나는 누구인지,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행복, 악, 절망, 불행, 죽음, 정의와 평화 등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과 함께 답을 구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쉽지 않은 내용이지만 주위에서 흔히 접하는, 쉬운 비유를 들며 아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친절하고 감사한 책이다. 현대 신학자 헨리 채드윅은 아우구스티누스를 '최초의 현대인'이라고 표현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오늘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인간의 감정, 교육, 행복의 추구 등을 1600년 전에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내면에서 진리와 지혜를 소유하게 되었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하고,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혜를 가지지 못해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좋아했던 로마 철학자 중 한 명인 세네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사는 방법은 일생을 통해서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불가사의하게 여겨지겠지만, 아마도 사는 것 이상으로 평생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죽는 일이다. 우리가 타고난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짧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인생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생도 알맞게 잘 쓰는 사람에게 그 폭이 두드러지게 넓어지는 법이다."(262쪽) 평생을 통해 고민하고 통찰하여 얻은 답변에서 16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얻는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행복의 열차를 타는 티켓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2018-01-27 00:05:00

리투아니아 네무나스 강에서.

"내 사랑 내 곁에 있어줘" 치매 걸린 아내와 마지막 여행

2008년 늦여름 리투아니아 네무나스 강가. 백발의 노부부가 마주 보고 있다. 남편이 깍지 낀 손으로 아내를 안고 있고, 두 손을 모은 아내는 환한 미소로 남편을 바라본다. 웃는 아내를 내려다보는 남편의 눈길은 그윽하면서도 뜨겁다. 금방이라도 입맞춤을 할 것 같이 촉촉하다. 강물도, 잎사귀도 그들의 포옹을 기다리고 있다. ◆나들이를 준비하다 평화로운 모습을 렌즈에 담은 이는 독일 사진작가 지뷜레 펜트다. '게르트너 부부의 여행'은 독일 남부 뮐바흐에 살던 게르트너 부부의 평소 모습과 발트해 연안국을 여행한 1년 남짓한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한 앨범이다. 독일에서 2012년 출간돼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책이다. 평소 캐러밴을 타고 여행 다니기를 좋아한 게르트너 부부는 2008년 발트해 주변 나라를 여행하기로 했다. 부부는 이전에도 수차례 유럽 여러 곳을 다녔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두 가지. 사진작가와 함께 떠난다는 것과 부인 엘케 게르트너의 치매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지뷜레 펜트는 그해 초 게르트너 부부를 알게 됐다. 2년 전에 첫 증상을 보였던 엘케의 병은 빨리 진행되고 있었고, 그가 부부를 만났을 때 이미 엘케는 말을 하지 못하고 메모로 간단한 의사를 표시할 때였다. 대부분 '해줘' '하고 싶어'로 끝나는 메모였다. 작가는 그해 3월부터 부부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그들 삶의 일부가 됐다. 남편 로타어 게르트너는 많은 시간을 아내에게 할애했다. 매주 연극 모임에도 나가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전문 재택 요양보호 서비스는 받지 않았다. 여가를 제외한 모든 시간에 아내를 돌보는 무거운 짐을 지더라도. 아내 엘케는 점점 어린아이가 됐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사소한 것에 즐거워하며, 무엇을 하려다가도 잊어버리곤 했다. 색칠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서툴러졌다.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그의 손에는 화상 자국이 있고, 파리가 앉아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정강이에 난 상처도 이전, 그리고 앞으로 닥칠 위험을 암시하고 있다. 다가오는 불행을 뿌리치려는 로타어의 노력에도 그림자는 계속 드리운다.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 여행은 늦여름에 시작됐다. 폴란드-리투아니아-라트비아-러시아-에스토니아를 도는 여정이었다. 용감했지만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부부와 작가는 그해 겨울까지 늘 함께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아내 엘케의 표정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를 지켜보는 듯한 남편 로타어의 눈빛은 가감 없이 지뷜레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정처 없이 거니는 엘케의 뒤에는 항상 로타어가, 지뷜레가 있었다. 이동식 주택과 야간열차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여행의 안식처가 됐다. 로타어는 야영장 한쪽에 차를 주차하고 햇살이 비치는 곳에 엘케를 앉혀놓고선 토마토를 갖다준다. 집에서와 같이 빨래를 널고, 캐러밴을 끌고 가 짐을 정리한다. 엘케의 머리를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수시로 피곤한 엘케의 옷을 갈아입히고 잠자리에 누이는 것도 당연히 로타어의 몫이다. 남자는 아내가 없는 곳에서 얼굴을 감싼다.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다. 엘케는 자작나무 숲을 걷기도 하고, 강가를 바라보기도 하지만 종종 초점을 잃는다. 내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지만 친절한 이 남자가 때로는 낯설다. 이들의 조금은 무력하고, 희미한 미소는 수천 마디 글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은 종종 충격적인 장면을 묘사해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책은 환자의 고통과 눈물겨운 보살핌에 천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받은 남녀가 병마에 맞서 싸우는 동안 피어나는 사랑에 주목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뜨겁고, 평화로워 보이는 하루하루가 투쟁이었을 그들을 보는 내내 마음속에 물결이 인다. 잔잔한 일상과 생애 최고로 행복한 순간을 담은 이 사진집은 그들의 마지막 여행 기록이 됐다. 여행이 끝나고 두 달 뒤 엘케는 세상을 떠났다. 뒤로 넘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쳤고, 발트해의 풍경은 다시는 함께 볼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더이상 말을 할 줄 모르게 된 엘케는 수첩에 짤막한 문장을 남겼다. 아마도 로타어에게 하는 말이었을 메모. '내 곁에 있어줘.' '내 곁에 있어줘.' '내 곁에 있어줘.' 아프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신체의 어떤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아프다고 말한다. 책은 노부부의 사랑으로 두려움을 보여주고 다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이 사라지고 장소와 거리가 낯설어지고, 익숙했던 물건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동안 의식은 공포로 채워지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별의 순간은 다가오게 마련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만 대부분 듣지 못한 채 헤어진다. 모든 것이 어렴풋해지는 순간, 그래도 누군가가 곁에 있어준다면 행복할 것 같다. 120쪽, 1만7천800원.

2018-01-27 00:05:00

[책 CHECK] 별, 빛의 과학

별, 빛의 과학 지웅배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과학 지식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교양이 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올바른 과학 지식이 공유되어야만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는 문제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과학이 고유의 영역에서 벗어나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인문학적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천문학의 핵심 키워드들―관측, 망원경, 빛, 우주 탐사 등―을 통해 천문학에 대한 대중의 지식과 이해를 넓히는 과학 교양서이다. 특히 천문학에서 '관측'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관측 기기의 발달과 함께 새롭게 발견된 우주의 모습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우주에 대한 인류의 지식이 성장해온 역사를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빛의 성질에 대한 논쟁―빛 입자설과 파동설의 대립―과 빅뱅 우주론의 등장, 중력파의 발견, 우주 탐사를 통한 외계 행성 찾기까지 천문학 역사를 짧지만 굵게 훑어볼 수 있는 주제들을 흥미롭게 펼쳐낸다. 또한 젊은 천문학도로서 인공지능의 발달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천문학자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통해 인간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312쪽, 1만6천원.

2018-01-27 00:05:00

[책 CHECK] 청소년을 위한 의학 에세이

청소년을 위한 의학 에세이 서민 지음/ 해냄출판사 펴냄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의학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과학자 24인의 삶과 업적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350번이나 같은 실험을 반복한 끝에 효과적인 살충제를 만드는 데 성공한 파울 뮐러, 새로 발견한 기생충의 증상을 알기 위해 기생충을 직접 먹어 본 엄기선 등 과학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위대한 발견 뒤에 숨어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1장 질병의 정체를 밝히다'에서는 말라리아, 스페인독감, 광우병 등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질병의 원인을 밝혀낸 과학자들의 성취를 소개한다. '2장 치료법을 찾아내다'에서는 결핵, 소아마비, 신부전 등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수많은 생명을 살린 발견을, '3장 병의 전파 경로를 파악하다'에서는 질병의 전염 과정을 추적해 감염 차단에 공을 세운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4장 의료'연구 기술을 발견하다'에서는 시험관 아기, MRI 등의 의료 기술과 고분자 질량 분석, 자가포식 등의 연구 기술 개발을, 마지막으로 '5장 새로운 의학 영역을 개척하다'에서는 혈액형, 신생아학 등 틀을 깬 생각으로 의학의 영역을 넓힌 성취를 소개한다. 결핵 치료의 열쇠를 찾아낸 셀먼 왁스먼, 말라리아 벡터를 밝혀낸 로널드 로스 등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각 장 끝에 실었다. 264쪽, 1만3천800원.

2018-01-27 00:05:00

수원 화성에서 재연 중인 '장용영 수위의식' 모습. 매일신문 DB

'강한 조선' 개혁군주 정조가 추구한 국방개혁…『정조가 만든 조선의 최강 군대 장용영』

재야사학자 이덕일은 '조선왕 독살사건'에서 조선의 국왕 중 상당수가 군신(君臣) 갈등 속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그 원인을 '정치적 타살'로 보고 있다. 왕(王) 하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존재인 것 같지만 사실 조선의 27대 왕 중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던 군주는 태종, 세종, 세조, 영'정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 후기 개혁 군주로 추앙받는 정조, 사실 그가 숱한 쿠데타, 정변, 시해 음모 속에서 살아온 고독한 군주였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조가 즉위 후 제일 먼저 서두른 일은 친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을 창설한 일이었다. 이 책은 정조가 왜 즉위 직후 자신의 경호부대인 장용영을 창설하고 실전 훈련서인 '무예도보통지'를 발간했는지에 대해 살피고 있다. 작게는 자신의 등극을 도왔던 홍국영의 외풍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독립하는 것이었고, 크게는 병권 장악을 통한 왕권 강화를 이룩하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는 배타적 통치체제 구축을 통한 진정한 군주제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정조의 '화성행차'에 숨은 정치적 의도=1997년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서 정조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이런 현상은 역사학계에도 영향을 미쳐 정조의 위민사상과 개혁정치, 그리고 그가 추진했던 자주적 국방개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2017년 10월 '무예도보통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비록 북한 단독 신청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이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무예와 군사기록물에 대한 책 내용이 세계적으로 독창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정조는 왜 '장용영'이라는 친위 군대와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었을까? 저자는 이 일련의 과정을 군사적 시위, 정치적 과시를 통한 자신의 권력 강화를 도모한 선전(propaganda) 행위로 보고 있다. 저자는 정조가 1795년 행한 '8일간의 화성행차'를 주목한다. 이 행차는 표면적으로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선양하기 위한 의례행위였지만 사실은 의전 속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연출해 자신이 구상해온 군사적 능력을 과시하는 게 주목적이었다. 장용영 외영(外營) 군사들의 일사불란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신무기를 공개함으로써 화성유수부(華城留守府)가 강력한 군사도시임을 입증했다. 화성 내에 거주하는 백성들과 함께 민관 합동훈련을 통해 민보(民堡), 즉 백성이 국방의 보루가 되는 새로운 개념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문무 겸비한 개혁군주로서 평가=많은 역사학자들이 정조를 '학자군주'(學子君主)라고 부른다. 조선의 왕들 중 세종과 함께 '교수나 박사급' 학식과 정견을 갖춘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정조의 또 다른 매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무인'(武人)으로서의 정조다. 정조는 규장각(奎章閣)을 통해 국가의 국정 이념을 정립하였고, 각종 연구와 출판사업을 통해 조선의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며 문예부흥 시대를 열었다. 동시에 무(武)에 대한 문(文)의 차별을 경계하며 외세 침입 시 조정 총화를 위해 문무(文武) 조화를 강조했다. 이런 구상에 대한 실천적 대안이 바로 규장각과 장용영이었던 것이다. 즉 '문치규장 무설장용'(文治奎章 武設壯勇)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문무를 병행 발전시켜 나갔고 명분과 실리를 아우르며 조선 후기의 집권 안정화를 도모해 나갔던 것이다. ◆좌절된 개혁 정책, 조선 미래도 굴절=정조는 통치기간 중 단 하루도 편한 날 없이 매일 치열하게 살았다. 당파를 경계하고 신분으로 인하여 차별받지 않는 세상, 힘이 없어 외세에 침략당해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재위 24년 내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정조는 1800년 6월 28일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의 죽음 원인에 대해서는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조가 쓰러지면서 조선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권력이 바뀌면서 권력의 주체들이 정조의 개혁을 지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렴청정을 시작한 정순대비가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이 장용영의 혁파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장용영에 쏟아부어지는 군비 재원을 핑계로 들었지만 정순대비를 비롯한 벽파에서는 정조와 연관된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조의 친위군영인 장용영을 없애야 했던 것이다. 장용영 혁파는 철저한 정치적 논리에 의해 강제되었고, 친위부대 창설을 통해 정조가 이루고자 했던 조선후기 군제혁파와 민생안정 등 개혁정책은 좌절되고 말았다. ◆정조의 개혁사상, 오늘날 화두로=많은 역사가들이 정조가 그렇게 급서(急逝)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1786년 박제가가 올린 상소 내용대로 서양 선교사들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개화(開化)로 나갔다면 동북아의 맹주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또 그가 만든 장용영을 바탕으로 국방을 강화하고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였다면 대한제국 말기에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는 비극을 피했을 것이다. 비록 민주주의 시대가 아닌 왕조사회였지만 정조의 개혁사상은 시대를 초월하여 계승해야 할 정신이고, 그의 인간존중과 소통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조선의 백성들은 선대왕의 백성으로 살았던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정조가 죽고 난 후 '정조실록'에 사관이 썼다는 글이다. 국민들에게 이런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이제는 군주 시대가 아니니 거꾸로 우리 스스로가 행복하고 기뻐할 '민주 지도자'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368쪽, 1만8천원.

2018-01-27 00:05:00

[반갑다 새책] 침대에서 읽는 과학

벼락이 칠 때 전기를 저장해 사용할 수는 없을까? 백두산은 정말 폭발할까? 왜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살까? 등 평소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들이나 혹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해 과학 원리를 이용해 설명한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일상의 이면에 숨어 있는 과학 관련 이야기 중에서 중요하고 흥미로우며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것을 각종 연구 결과를 근거로 설명한 책이다. 지구의 비밀을 벗겨주는 과학, 사람에 관한 과학, 일상을 움직이는 과학, 과학으로 엿보는 미래 등 총 4개 주제에 26개 에피소드를 담아 과학적 상식과 호기심을 채워준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논란 중인 문제에 객관적인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일상에 얽힌 모든 과학적 지식을 전해주는 것은 아니다. 지면에는 한계가 있고 설명하기 어렵거나 명쾌하지 않은 것도 있어 주제 선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저자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은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부터 국제사회 갈등까지 과학과 관련 없는 것은 없다"면서 "과학은 우리 시대의 필수 교양"이라고 강조했다. 296쪽, 1만4천원.

2018-01-27 00:05:00

[반갑다 새책] 브론테 자매 유품으로 문학 재조명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애그니스 그레이'를 쓴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 자매들의 복합적이고 매혹적인 삶과 문학을 분석한 책이다. 빅토리아 시대 문학 연구가 데버러 러츠가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브론테가 관련 자료와 유품들을 연구하여 쓴 이 책은 아홉 개의 유품을 통해 자매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고 있다. 세 자매가 목사 아버지를 따라 영국 요크셔의 한 저택에서 오랫동안 함께 자란 자매라는 점도 눈길을 끌지만, 동시에 한결같이 여성의 독립적 삶을 다루며 19세기 유럽의 가부장적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움을 주고 있다. 브론테가의 딸들이 살았던 시기는 영국의 제국주의가 절정으로 치닫던 '빅토리아 시대'(1837∼1901)였다. 정치적으로는 자유당과 보수당의 의회정치가 대립했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이 맹아를 틔웠던 시대였다. 저자는 히스(heath)가 무성한 황야의 세찬 바람 속을 고독하게 산책하며 작품의 영감을 키워낸 브론테가 세 여성의 물질적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사물의 세계에 시대를 초월하는 문화적 가치가 깃들어 있음을 탁월하게 증명하고 있다. 408쪽, 2만4천원.

2018-01-27 00:05:00

인간관계는 유토피아적 윤리의 실천 가능성을 지향하지만 현실은 싸움과 갈등의 연속이다. 지난해 말 스페인 알리칸테의 이비 마을에서 열린 밀가루 싸움 축제 '엘센파리나츠'(Els Enfarinats)의 모습.

유토피아적 윤리 실현 가능성 찾기…『낯선 사람들과의 불화』

'낯선 사람들과의 불화'(윤리학 연구)/ 테리 이글턴 지음'김준환 옮김/ 도서출판 길 펴냄 이 책의 '보다 더 나은 사회를 이뤄나가는 데, 적합한 윤리는 존재하는가'라는 화두로 출발한다. '낯선 사람들과의 불화'라는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인생 살면서 가장 큰 고민은 아마도 '사람과 돈'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일단 돈 문제는 각자의 복으로 미루고, 사람과의 문제에 천착해보자. 이 책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때, 타인으로 인한 갈등을 풀어나가는 데 다소나마 도움을 줄 것이다. 저자는 영국 마르크스주의 문학, 문화비평가로 잘 알려진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타자'(他者)의 문제를 서구의 18세기에서 현대에 이르는 윤리학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면서 메타-이론적 차원에서 규명했다. 특유의 냉정과 위트를 구사하면서 글쓰기를 해온 그는 이 책을 통해서도 윤리학을 중심으로 신학, 미학, 정치학, 정신분석학, 문학, 사회학, 법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을 넘나들며 적합한 윤리를 제시하는 실천적 차원을 제공한다. 이글턴은 '자기'와 '타자'란 어떤 존재이며,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가에 관한 세 단계 유형을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낯선 사람들을 배제한 채 가까이 있는 이웃들 사이의 자연발생적인 공감과 정감을 중심으로 도덕감각에 기초한 18세기 영국의 '상상계적 윤리', 둘째, 제한적인 공감과 정감을 벗어나 의무와 책무를 중심으로 가까이 있는 이웃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낯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보편적 도덕법에 기초한 유럽(특히 독일)의 '상징계적 윤리', 셋째,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이 두 유형의 윤리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할 수 있는 '실재계의 윤리'. 저자는 자크 라캉의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라는 세 유형을 자신의 변증법적, 역사적 유물론으로 재해석해 서구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 따라 변화해가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철학은 사실상 저변에 넌지시 배경만 보여줄 뿐, 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실재계의 윤리는 이마누엘 칸트 이후의 포스트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 구조주의식 윤리의 공과를 비판적으로 가늠하고 있다. 이 책은 사회주의 및 유대 기독교 전통의 윤리를 시금석으로 삼아 기존 윤리담론의 향방을 가늠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는 현 단계의 사회에서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프랜시스 허치슨, 데이비드 흄, 에드먼트 버크, 애덤 스미스,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이마누엘 칸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쇠렌 키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 에마뉘엘 레비나스,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 등 수많은 사상가들의 철학이나 주장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더불어 신약'구약성서를 비롯해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자에는 자로'와 '베니스의 상인' 등 서구의 문학작품도 분석 대상에 등장한다. 이클턴은 윤리학에 관한 다층적인 분석과 설명을 통해 18세기 이래 자본주의의 진행 과정에서 생산된, 구체성과 공감에 기초한 상상계적 윤리, 추상성과 보편법에 기초한 상징계적 윤리,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재계의 윤리를 변증법적으로 끌어안았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구체성과 추상성이 변증법적으로 통합된 육체(희생양으로서의 육체)를 반석으로 삼는 윤리, 범속한 일상 속에서 참된 인간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제도에 기초한 윤리를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유토피아적인 윤리의 실현 가능성'을 모색 내지 탐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550쪽, 3만5천원.

2018-01-27 00:05:00

이광수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번역과 오역의 차이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즉 'Uncle Tom's Cabin'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13년이다. 흑인 인권문제를 다룬 원작 의도가 무색하도록 조선어 번역판 제목은 '검둥의 설움'이었다. 번역자는 이광수이고 저본(底本)으로 삼은 것은 'Uncle Tom's Cabin'의 일본어판이다. 영어 해독 능력이 부족해서 이광수가 일본어판을 활용한 것은 아니었다. 영어 수업 중심의 일본 메이지학원에 유학해서 영어를 공부했고, 여기서 익힌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영시까지 창작한 이광수였다. 원작을 두고 일본어판을 번역한 것은 이광수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식민지 시기 조선에서 소개된 대부분의 서양문학은 일본어판을 조선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번역자 상당수는 이광수처럼 일본 유학을 통해 영어나 러시아어 혹은 불어 원서 해독 능력을 익힌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원서 대신 일본어판을 조선어로 번역한 것일까. 외국어를 자국어로 번역하는 순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그 나라의 문화가 함께 묻어오기 때문이었다. 쉽게 설명해보자. 1800년대 말, 우연히 영어를 익힌 조선의 누군가가 근대 영미소설을 원어로 읽다가 'ego'나 'individual' 같은 단어를 발견했다고 하자. 과연 그가 이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었을까?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를 마음에 새기며 살았던 그 사람의 삶에서 '나'는 언제나 '아버지'나 '임금'과 동일시되었을 것이다. 그런 그 사람이 독립개체인 '나'를 의미하는 'ego'나 'individual'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번역이란 이처럼 외국어와 자국어 간의 거리를 이해하고, 낯선 개념의 외국어를 자국어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작업이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힘을 쏟아부은 것이 바로 이 작업이었다. 'ego'나 'individual' 같은 단어는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세계 속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일본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이 단어에 대응하는 일본어로 '自我'(자아)와 '個人'(개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었다. 일본은 그런 고민 속에서 서구의 근대적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해갔다. 이광수가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가지고도 영어판 'Uncle Tom's Cabin' 대신 일본어판을 번역한 것은 일본이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서구문화 번역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한강의 2016년 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 오역(誤譯) 논쟁이 재개되고 있다.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는 원문을 훼손할 정도로 심각한 오역 문제에 대해 '직역이란 있을 수 없고, 모든 번역은 창조적이다'고 맞서고 있다. 물론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 번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번역은 언어의 변환을 넘어 문화의 변환까지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데보라 스미스는 근대초기 일본이 서구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번역에 퍼부었던 노력이라든가, 원작 대신 일본어판을 번역할 수밖에 없었던 이광수와 같은 식민지 조선 엘리트들의 비애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데보라 스미스가 이 점에 대한 이해력을 지니고 있다면 식지 않는 오역 논란에 대해서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2018-01-27 00:05:00

신호철 작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

[내가 읽은 책] 높고 푸른 사다리(공지영/한겨례출판)

작가는 10여 년 전, 송봉모 신부의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에서 100자도 안 되는 문장이 작가의 가슴을 두드렸다. 이 책에 나오는 마리너스 수사와 성 베네딕도회 왜관 남자수도원의 신비로운 만남에 대한 글이었다. 한국전쟁 중 1950년 12월 20일 흥남철수 때, 1만4천 명의 한국인을 구조한 빅토리아러디스호의 선장 마리너스의 소설보다 더한 실제 이야기를, 허구의 한 청년 수도자와 엮어서 능숙한 솜씨로 서사를 창조한다. 장편소설인 『높고 푸른 사다리』는 신부 서품을 앞둔 베네딕도회 수사의 사랑과 이별, 죽음과 상실의 순례이자 성장 소설이다. 소설은 정요한 신부가 한때, 신보다 사랑했던 소희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아빠로부터 전해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대체, 왜?'라는 짧고 높은 외침으로 독자의 심장을 파고든다. '대체, 왜?'라는 질문은 삶과 죽음, 운명에 대해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난과 불의, 정의와 제도에 대해서라는 것, 인간의 영역에서 신과 씨름해야 한다는 걸 세상에 외친다. 신의 멱살을 붙들고 "지금 여기서! 잘 살도록 축복을 내려달라"고 한 야곱처럼 반항했고 싸웠다. 야곱은 세속의 일에 매달렸으므로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다리를 타고 훌쩍 올랐다. 어처구니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갓난아이 앞에서만이 아니라, 불의한 권력자 앞에서(pp308-309), 정의로운 사람들이 함부로 짓밟히는 현장 앞에서, '대체, 왜?'라고 신에게 끈질기게 질문하기를 독려하고 있다. 진정한 세속이야말로 진정한 천상일지도 모르니까. 작가는 섬세한 통찰력과 흡인력 있는 문장으로 독자의 감정이입을 사냥한다. 공지영의 소설은 사랑이라는 달콤한 성분으로 당의정을 입힌다. 독자가 단맛을 느낄 즈음, 이내 몸 전체에 퍼지는 약리 작용, 바로 한 사발의 보약 세례이다. 작가는 사회문제라는 단단한 공감대 위에 사유의 구조물을 세운다.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에 당당히 맞서는 문자의 시위이다.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민감하고 부드러운 촉수로 독자의 뜨거운 호응을 얻어낸 작품들을 발표해 온 작가이다.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는 한 번 읽고 덮어두는 소설이 아니다. 크리스천만을 위한 책은 더욱 아니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ㅡCRAS TIBI). 인간이 어떤 시련과 맞닥뜨렸을 때 '여기에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시련을 품위 있게 넘길 수 있다. 품위 있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려움을 잘 견디는 사람이다. 마리너스 수사의 말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절대 미리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을요.(p355) 서로 돕는 배는 난관을 이겨냅니다. 우리 모두는 약하고 모자라니까요."(pp345-346)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또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

2018-01-20 00:05:00

[책 CHECK] 브래지어를 풀다

브래지어를 풀다 김아인 지음 / 학이사 펴냄 김아인 수필가의 첫 번째 수필집이다. 이 책은 1부 '꼿꼿하고 검푸른', 2부 '침묵의 시간을', 3부 '복원하듯 그렇게', 4부 '소리 없이 일어서는' 등 4부로 구성돼 있으며 총 52편의 글이 실려 있다. 저자의 수필가적 장점은 사연이 많다는 것과 그것과 정면 승부를 걸듯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자신의 치부를 숨기려하거나 수박 겉핥기 방식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고부갈등이란 뻔한 스토리와 노름꾼 아버지에 대한 회상은 식상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성적인 문체의 특색 덕분에 진부할 수 있는 글감까지도 이야기성의 흥미로움으로 이끌고 간다. 때로는 묵직하고 또 때로는 발랄한 감각적 사유가 오래된 기억마저 날 것의 언어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재생시킨다. 경남 사천 출신인 저자는 방송통신대 국문학과와 계명대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했다. 2011 평사리문학 대상, 2015 해가림여성문예 큰상을 받았으며, 2017 대구문화재단 개인예술가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됐다. 232쪽, 1만4천원.

2018-01-20 00:05:00

[책 CHECK] 우리 속에 울이 있다

우리 속에 울이 있다 박방희 지음/ 김미화 그림/ 푸른책들 펴냄 이 책은 정해진 구조에 맞춰 단어를 음악적으로 변주하는 시조만의 매력과, 이를 적절히 해체하고 다듬어 동심까지 곁들여진 동시의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동시조집이다. 시조의 율격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거기에 매이는 법 없이 바람이 당기는 얼레의 연실처럼 술술 풀려나간다. 시상이 자연스레 전개되고 이미지가 선명하게 펼쳐지며 다 읽고 나면 한 편의 이야기가 한 장의 인상적인 그림으로 마음에 새겨진다. 자연의 서정을 노래할 때는 먼 곳의 동떨어진 자연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도시 한복판에서 그 서정이 출렁이게 한다. 또 일상을 노래할 때도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 한창 누리고 있거나 이제 곧 맞닥뜨릴 삶의 실제적인 현장을 생생하게 제시한다. 저자는 1985년 무크지 '일꾼의 땅'과 1987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제5회 푸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새벗문학상'불교아동문학작가상'방정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동시집 '참새의 한자 공부', '머릿속에 사는 생쥐', '바다를 끌고 온 정어리', 시집 '불빛 하나', '세상은 잘도 간다' 등이 있다. 96쪽, 1만1천500원.

2018-01-20 00:05:00

조선 후기의 상차림. 당시는 소반에 혼자 앉아서 식사하는 것을 예법으로 여겼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겐 낯선 한국인의 식사법

연간 외국인 입국자 1천700만 명 시대를 맞아 한국의 문화생활 전반은 물론 음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최근 K-팝 열풍이 K-푸드로 이어지며 외국인 중에는 한국 음식을 직접 조리해 먹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구글 같은 검색 엔진에 'Korean food & recipes'를 넣어 검색하면 한국 요리법이 넘쳐난다. 또 외국 인터넷에는 '한식당에서 현지인처럼 식사하는 방법'이라는 웹사이트도 등장했다. 이 책은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인의 식사, 문화 방식을 살피고 있다. 한국의 낯선 음식 문화에 대한 기원과 궁금증을 '인류 식사 방식'이라는 배경하에 하나씩 풀어냈다. ◆한국인 식사 과정 13가지 주제로 분류=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 놓고, 불편한 책상다리 자세로 앉아서 다 같이 찌개를 떠먹으며 '술잔은 돌려야 제 맛'이라는 한국인.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낯설고 이상하게만 보이는 한국인의 식사 방식이다. 저자는 한국인의 몸에 밴 식사 방식과 습관에 대한 의문들을 사례를 들어 정리했다. 음식인문학자이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다양한 사료를 섭렵하고 재구성해 식당에 들어가 신발을 벗고 앉는 순간부터 식사를 하고 디저트 커피를 들고 나오기까지 전 과정을 13가지 단계로 나눠 풀어냈다. 식사 방식에 대한 역사는 물론 식습관과 상차림, 글로벌화된 한국인의 맛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음식문화를 쉽고도 재미있게 소개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주변의 아시아 국가는 물론이고, 유럽인들의 식사 문화를 우리의 식사 방식과 비교하며 비교문화사적 연구 방법을 통해 오늘날 한국인의 식사 방식이 어떤 역사, 문화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살핀다. ◆한국의 식사 기원'변화 과정 추적=우리의 고문헌들이 대부분 왕실이나 관변 사료에 집중돼 있어 한국 식사 문화의 기원을 다룬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의 실기, 문집 등에서 작은 단서들을 찾아내고, 중국과 일본, 유럽 여러 나라의 사료를 비교했으며, 근현대 신문과 잡지에 실린 사회경제적 변화와 일상의 면면을 체크했다. 여기에 상차림이나 좌석 배치, 식기와 식탁 등을 보여주는 그림, 사진까지 활용해 한국인의 식사 방식에 대한 퍼즐을 맞춰 나갔다. 이젠 정식 코스가 돼버린 '식사 후 커피 한잔'에는 우리의 애잔한 한국사가 녹아 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커피는 6'25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당시 커피의 확산을 주도한 것은 다방에서 팔던 '믹스 커피'였다. 이 인스턴트 커피에는 깊은맛이나 향, 멋이 없었지만 맛있고 간편하다는 점에서 빠르게 우리의 입맛을 리드해 나갔다. 한국인의 전통 '좌식(坐式)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은 이어진다. 저자는 유럽, 중국과 달리 조선에 식사 공간인 다이닝룸이 없었던 이유를 '꺾음집' 형태와 온돌에서 찾고 있다. 각 방과 마루가 연결되어 있고, 신발을 벗고 실내에서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정된 식탁과 의자 없이도 방 안에서 밥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식사 방식'습관에 녹아든 문화 코드=우리만의 독특한 식사 문화도 저자의 주된 관심 분야였다. 우리 술자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술잔 돌리기, 여기엔 어떤 문화 코드가 숨어 있을까. 본래 술잔 돌리기는 고대 중국 주법(酒法)에서 시작된 것으로 조선시대 양반들의 제사와 풍속 교화를 통해 지속되었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정착된 술잔 돌리기는 '공동체의 연대감'과 '집단주의' 의식이 깊이 깔려 있지만, 본래 의미는 왕과 신하, 웃어른과 아랫사람이, 주인과 손님 간에 공경과 답례의 의미를 담은 주도(酒道)였다. 저자는 한국인의 식사 방식을 크게 변화시킨 원인으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를 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식기를 든다. 조선 후기까지 민간에서는 주로 막사기가 유통됐지만 식민지를 거치면서 한반도 도자기 산업이 일본인 손에 넘어갔고, 막사기는 저렴한 질그릇과 오지그릇으로 대체되었다. 이 시기 우리 전통자기도 자취를 감추고 만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잠시 양은그릇이 퍼졌고, 1960년대 이후엔 멜라민 수지 그릇과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이 유행했다. ◆현대적 의미에서 본 한국인의 식사 방식=21세기 초입 한국에서 '혼밥' '혼술'이 유행하면서 '함께 식사' 규칙들이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대도시 중심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가족과의 식사는 물론이고 손님 초대까지도 외식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식사의 개별화 현상은 날로 심화되어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횟수를 늘리자'는 '국민공통식생활지침'이 정부 차원에서 마련되기도 했다. 이제는 인사말이 되어버린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라는 말은 한국인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은 '함께 식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말의 '식구'(食口)도 '한솥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 독자들에게 부탁한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그들을 자신 있게 식사에 초대해 보라고. '언제 한번'이라고 하지 말고 '다음 주말'같이 진정성을 가지고 말이다. 집밥, 외식을 떠나 한식(韓食)을 나누며 한국의 식사 방식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면 훨씬 더 식탁이 풍성해질 것이다. 426쪽, 2만2천원.

2018-01-20 00:05:00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유엔군 위문차 대구 동촌비행장을 방문한 마릴린 먼로의 모습.

한국전쟁의 이면, 그리고 화해법…『마릴린 먼로와 두 남자』

'마릴린과 두 남자'/ 전경일 지음/ 다빈치북스 펴냄 미국 배우 마릴린 먼로가 1954년 2월 대구 동촌비행장을 방문했다. 당시 마릴린 먼로(이하 먼로)는 미국 프로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와 결혼식을 올리고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첫날밤도 보내지 못하고 한국으로 가야 했다. 한국전쟁은 끝났지만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유엔군 위문 공연 때문이었다. 대구를 방문했을 때는 배우 백성희와 최은희가 마중을 나갔으며, 동촌비행장은 환영 인파로 난리가 났다. 먼로는 4일 동안 대구에 머물면서 총 10차례의 대대적인 공연을 펼쳤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섹시한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고 춤추는 먼로의 모습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화제가 됐다. 먼로 역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먼로는 생전 인터뷰에서 "내 생애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는 한국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강원도 인제군이 소양강 가에 마릴린 먼로 동상을 세운 것도 당시 군부대를 방문한 먼로를 기리기 위함이다. 먼로와 대구의 흥미로운 인연은 여기까지만 소개한다. 먼로의 이름만으로도 섹시한 제목의 이 책은 전경일 작가가 5년 동안 쓴 원고지 7천 매 분량의 장편소설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 당시 신인배우 마릴린 먼로를 세계적 대스타로 만들기 위해 종군기자 칼 마이어스가 기획한 기상천외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전 세계 젊은이들 머리 위로 그녀의 누드사진을 살포한다. 당시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괴한 마케팅이었지만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칼은 처음의 치기 어린 생각과 달리 한국의 전쟁터에 가서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인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로 인해 그는 '라이프' 지의 종군기자 하워드와 전쟁을 보는 인식 차이로 극심한 갈등을 빚게 되고, 1급 군사 작전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군 정보 당국에 끌려가는 위기에 빠진다. 이 위기를 피하고자 칼은 진눈깨비가 퍼붓는 야밤에 도주함으로써 결국 군당국 기록에는 공식적으론 사망한 것으로 처리된다. 그로부터 50년 후, 미국 뉴저지 옥수수 농장에서 생활하는 90세 노인 하워드에게 칼의 유해사진이 날아온다. 칼과 대립관계를 유지하던 주인공 하워드는 한국전쟁을 회고하게 되고, 급기야 유골 인수식에 참석하고자 한국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그때, 은밀히 접근한 AP 기자가 믿기 힘든 정보를 흘렸다. 칼이 중국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소식. 결국 하워드는 북경으로 날아가게 되고, 마침내 칼과 50년 만에 운명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칼 마이어스와 하워드의 전쟁을 회고하는 스펙터클한 대화가 이 책의 주된 메시지다. 마릴린 먼로를 등장시킨 것은 단순히 흥미를 유발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 전쟁 속 인간, 이념적 갈등하의 인간, 인간 본연의 욕구인 사랑과 애증, 원망과 희구를 드러내는 인간 보편적 이야기를 역사의 포연 속에 담기 위함이다. 두 종군기자의 눈으로 진실을 파헤치다 보니, 그간 반공 이데올로기 하에서만 본 한국전쟁의 진실도 낱낱이 드러난다. 결국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진실, 화해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의 남북관계에도 훈풍을 바라는 마음과 닿아있다. 그는 정전 65주년 기념 벽두에 이 책을 내놓으며, "어쩌다 동족의 심장을 향해 총을 겨누게 된 우리는 어떻게 화해해야 할까요"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 책은 종군기자들이 느낀 진실을 향한 고뇌를 잘 엿보여주며, 그로 인해 극대화되는 갈등 국면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종군기자 간의 대화 중에 흥미로운 대사가 있다. "내게는 두 개 눈이 있소. 현상을 보는 눈과 진실을 보는 눈 말이오. 카메라의 눈과 육안 중 어느 것으로 볼 때, 진실을 더 잘 볼 수 있을까요? 카메라는 무엇을 담아내야 하죠?" 전경일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 한반도에 다시는 전화(戰火)가 있어서는 안 되며, 인간의 피로 물든 대지는 누구에게도 복되지 않다는 강력한 평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1권 491쪽, 2권 498쪽, 3권 494쪽. 각권 1만5천원.

2018-01-20 00:05:00

[이종문의 한시 산책] 실수로 보내 백지 편지…아내의 재치 있는 답장

백지에 담긴 사연 곽휘원의 아내 벽사창에 기대서서 봉투를 뜯어보니 碧紗窓下啓緘封(벽사창하계함봉) 조그만 종이 한 장 텅텅 비어 있습디다 尺紙終頭徹尾空(척지종두철미공) 옳거니, 낭군님이 이별 한을 품으시고 應是仙郞懷別恨(응시선랑회별한) 날 그리는 온갖 사연 침묵 속에 담았네요 憶人全在不言中(억인전재불언중) 사오 년 전이다. 참 어여쁜 여학생 하나가 겨울 방학 때 제법 두툼한 편지를 보내왔다. 화들짝 뜯어보다가, 그만 어안이 벙벙해서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다. 기나긴 편지에 뜨겁고도 진진한 사랑이 구석구석 넘쳐흘렀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연인에게 보낸 편지였다. 아마 그녀의 연인도 그날쯤 난데없는 편지를 받고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자기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라, 연인의 선생에게 보낸 편지였을 테니까. 얼마 후에 그 여학생이 연구실로 나를 찾아왔다. 연인으로부터 돌려받은 편지를 꺼내면서 가만히 얼굴을 붉혔다. 나도 잘못 받은 편지를 돌려주며, 그냥 슬며시 웃어주었다. 서로 말없이 마주 앉아서 아주 오래도록 차를 마시다가 헤어졌다. 이 일화가 생각날 때마다 청(淸)나라의 시인 원매(袁枚)의 '수원시화'(隨園詩話)에 수록된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오른다. 곽휘원(郭暉遠)이라는 사람이 고향을 떠나서 벼슬살이하다가 그리운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다 써서 봉투에 넣을 때, 실수로 그만 사연 많은 편지 대신에 백지를 넣어 보내고 말았다. 아내가 남편의 편지를 받고 반가운 마음에 화들짝 뜯어보니, 어이없게도 백지 한 장이 전부였다. 이에 아내는 답장 대신에 위의 시를 써서 남편에게 보냈다. 눈 내린 들판같이 하얀 편지, 바로 그 순도 100%의 무언(無言) 가운데 오롯이 담겨 있는 온갖 사연들을 잘 읽었다는 뜻이 되겠다. 재치가 넘치는 시이기도 하나, 꿈보다 해몽이 더 기가 막히는 견강부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심전심의 교감이 오고 가는 부부 사이에, 말이 없다 해서 모를 게 도대체 무엇이 있겠는가. 사오 년 전 학기말 시험 때다. 시험지를 나눠주자마자 조용하던 교실에 한동안 다각다각 말 달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불과 얼마 후에 여기저기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우르르 답안지를 내고 나간다. 죄다 나갔는데, 텅 빈 교실에서 최후의 일각까지 몸부림을 치며 사투를 벌이는 여학생이 있다. 무슨 경천동지할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나 보다 했는데, 정말 놀랍게도 완전 백지를 내고 나간다. 나는 이 눈 내린 들판같이 하얀 종이를 눈에 안 보이는 글씨로 충만한 엄청나게 사연 많은 백비(白碑'글씨를 새기지 않은 비석)로 읽는다. 그러나 사연이 아무리 많아도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므로 어쩔 수 없이 에프를 주노니, 용서하시라 백비를 쓴 이여! 네 마음 내가 다 안다.

2018-01-20 00:05:00

[반갑다 새책] 교수처럼 문학 읽기

미국 미시간대 영문학과 교수가 영미문학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는 상징과 코드 등을 해설한 책이다. 창작의 기본 원리를 파헤치고 싶은 소설가 지망생들이 읽으면 특히 좋을 교재다. 저자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관점으로 책을 읽는 대신 이야기가 쓰인 시대의 사회'역사'문화적 배경을 파악하며 독서를 하라고 조언한다. 또한,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몇 작품을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분석하는 실례를 통해 비평 이론이 독자들의 독서 경험을 어떻게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자와 함께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고전과 명작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아마 뜻밖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 것이다. 나아가 창작의 원리까지 아울러 파헤침으로써 영화, 연극, 드라마 등 파생 장르의 감상 전반에 대한 눈을 뜨게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문가와 독자를 갈라놓는 해묵은 담을 허물고자 한다. 문학 전공자의 독서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줘 일반 독자에게는 여러 장르의 작품을 좀 더 깊고 포괄적으로 즐기게 하고, 문학도에게는 더 세련된 비평 안목을 갖추는 계기를 선사한다. 아마존에서 10년 넘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유지하며 미국 대학생들의 '문학 감상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424쪽, 2만5천원.

2018-01-20 00:05:00

[반갑다 새책] 디지털 모더니트의 인간과 디자인

영남대 산업디자인학과 류호용 교수가 4차 산업 시대 초연결사회의 디자인 개념에 관해 서술한 책이다. 류 교수는 디자인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정보사회, 미래 디자인의 방법과 새로운 개념 및 가치 창조를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모바일,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첨단 ICT 기술이 시장의 대규모 변화를 주도하면서 사람과 사물, 공간이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온, 오프라인의 구분이 없어진 초연결사회가 도래했다. 유비쿼터스 환경이 본격화됨에 따라 디자이너도 제품 외관을 위한 조형 능력 외에 소비자의 경험을 디지털 형식의 제품'서비스로 풀어내는 데 열중하고 있다. 저자는 "디자이너에겐 서비스를 디자인으로 가시화시킬 수 있는 서비스 엔지니어링 능력이 요구된다"며 "이 책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미래 디자인의 방법과 새로운 개념 및 가치 창조를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디지털서비스와 같은 무형적 요소의 디자인은 사용자의 심리, 행동에 기초한 사용자경험(UX) 디자인 등과 연결된다. 따라서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통합적 시스템의 새로운 디자인 방법이 필요하다. 류 교수는 "향후의 교육은 디자인은 물론, 많은 분야에서 융'복합의 원리를 알고 전체를 통찰해낼 수 있는 다학제적 교육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252쪽, 1만8천원.

2018-01-20 00:05:00

문화유적을 둘러보고 출출한 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인 쌈밥. 휴먼앤북스 제공

경주의 味路 속으로…『신라왕이 몰래 간 맛집』

신라왕이 몰래 간 맛집/ 김남일 기획/ 이명아 지음/ 이동춘 사진/ 휴먼 앤 북스 펴냄 경주는 흥미롭다. 사찰과 왕릉, 절터와 불탑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장소이자 산과 들, 강과 바다로부터 모여든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음식은 남도가 제일이라 했다. 하지만, 천년고도의 비밀이 달리 있으랴. 경주에는 드러내지 않아 몰랐던 맛집이 골목골목 자리 잡고 있다. 젊은 층의 활기마저 쉬어가는 황리단길, 해녀의 바다냄새를 머금은 감포 등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곳이 경주다. 행차하던 신라 왕도 멈추게 하지 않았을까. ◆쳔년의 왕도(王都), 맛을 품다 경주는 억울하다. 볼거리에 밀려 먹을거리는 빛을 보지 못했다. 불국사와 석굴암, 동궁과 월지, 대릉원 등은 경주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하루 이틀 머물렀다 가는 관광객이라면 문화유적을 둘러보고 쌈밥으로 출출한 배를 채운 뒤 황남빵을 사들고 가는 게 경주 여행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관광객이 몰랐던, 진짜 경주의 맛은 따로 있다. 책 '신라왕이 몰래 간 맛집'은 아는 사람만 아는 진짜 맛집을 소개한다. 김남일 전 경주부시장이 기획하고 잡지사 음식 평론가이자 요리연구가인 이명아 숙명여대 객원교수가 썼다. 경북지역 종가의 의례, 한옥, 음식문화를 담아내 온 사진작가 이동춘의 사진은 음식과 재료를 더 맛깔 나고 정갈하게 보여준다. 언론 잡지에 소개됐거나 모범음식점 인증을 받은 곳은 될 수 있으면 배제했다. 가족 단위 관광객이 찾을 수 있는 곳을 발로 뛰어 찾아냈다. 경주를 떠올리게 하는 56곳의 맛집은 이렇게 선별됐다. 왜 하필 56곳일까? 궁중음식에 질린 왕이 잠행한다면 찾아갔을 법한 식당을 상상하는 데서 만든 제목에 힌트가 있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 신라를 다스린 왕의 수다. 고집스레 고향을 지켜온 냄새가 나는 식당, 남산과 단석산, 형산강과 지천, 동해에서 나는 소박한 식재료를 정직하게 버무려 낸 곳은 생각보다 많았다. 저자는 1년간 경주 구석구석을 누비며 먹을거리를 찾았다. 색다른 음식이나 재료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주인에게 물어 재료 파는 곳을 찾았다. ◆힐링여행 가이드 책은 맛지도를 그리기에 앞서 식재료가 나오는 환경에 주목한다. 첫째는 바다다. 양남 주상절리와 문무대왕 수중릉도 좋지만, 감포를 추천한다. 번잡하지 않은 해변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감포항이 일제에 문을 연 건 1920년이었다. 일본인의 살림집, 점포로 쓰인 적산가옥은 민족의 아픈 역사를 증언한다. 퇴락한 역사거리와 송대말 등대, 주상절리를 봤다면 다음은 어판장이다. 동해안 등줄기에서 유독 많이 잡히는 가자미를 이용한 구이, 뼈 육수, 무침회, 미주구리회와 조림, 거기에 가자미식해까지. 책은 경주에서 먹어야 제대로 입에 감기는 밥상을 차례로 차려내며 식도락여행의 재미를 선사한다. 이름난 사찰이 아니라도 잘만 찾으면 정신이 맑아지는 사찰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운 좋으면 한국에서 차(茶) 문화가 최초로 시작됐다고 알려진 기림사에서 오종약수차를 한 사발 얻어 마실 수도 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커피전문점에 지친 힐링여행에는 제격이다. '뭐 볼 게 있겠나' 하는 생각으로 황리단길을 걷다 보면 완성되지 않은 경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과 경주 황남동의 '황'을 불여 만든 이름인데 TV에 여러 차례 소개되며 '핫 플레이스'로 등극했다. 천년 유적이 주는 무게를 잠시 떨치고 싶다면 젊음과 자유의 거리를 누비라고 추천한다. 토박이처럼 놀고 먹고 싶다면 5일장으로 가면 된다. 경주에는 공설(11개)과 사설(9개)을 합쳐 20개의 전통시장이 있다. 감포시장'성동시장'중앙시장 등 경주를 대표하는 시장은 상설장과 5일장을 겸한다. 건천읍장이라 불리는 건천장은 같은 자리에서 100년을 넘게 섰다. 알 굵은 마늘, 벌건 쇠를 일일이 손으로 두들겨 수작업하는 대장간은 건천장이 내놓는 작품이다. 엄마를 따라가서 떡볶이와 순대 한 줄을 먹고 왔던 시장은 변신, 진화하고 있다. 20가지가 넘는 반찬을 정성 들여 차려낸 좌판이 10개쯤 모여 '한식뷔페' 거리를 만들었다. 어느 때든 성동시장에 가면 푸짐한 한 상이 기다리고 있다. ◆경주, 이 맛에 간다 미식 여행의 트렌드를 따라 경주를 여행하면 남도음식과 전혀 다른 향토음식의 참맛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읍성 안에 있던 토속 밥집과 선술집은 프랜차이즈 레스토랑과 커피집에 자리를 내줬다. 골목 안으로 숨어든 집은 경주 사람이라야 찾아갈 수 있으니 경주를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다. 가족과 짧은 휴가여행, 출장이나 나홀로 여행을 하게 된 사람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식당을 정리했다.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거나 기본적인 장이나 김치를 직접 담그는 집을 위주로 선별했다. 한 식당은 친환경 농법으로 직접 농사를 지어 웬만한 재료를 충당했는데 출근 전 직원이 밭에 나가 합심해서 벌레를 잡는다고 했다. 새벽에 직접 배를 타고 바다에서 조업하거나, 동네 해녀 할머니들이 잡아오는 성게를 제철에 구입해 1년 사용분을 확보하는 횟집들은 기본 상차림에 내는 미역국조차 직접 채취한 재료를 사용하곤 했다. 경주 사람들은 식초를 직접 만들어 국수를 비벼주는 집이 있고, 열 가지도 넘는 장아찌를 아침마다 조금씩 꺼내 새로 양념한 밑반찬을 내는 곳이 한정식집이 아니라 민물매운탕집이라는 반전에 놀라지도 않는다. 그들에겐 그저 단골집일 뿐인데. 맛집을 찾겠다고 TV 프로그램이나 SNS를 뒤져서는 절반도 못 가보고 돌아서야 했을 곳이다. 경주에 대한 추억은 제각각이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아련한 첫사랑의 데이트코스로, 역사기행으로, 가족여행으로. 대구경북 사람치고 경주를 안 가본 이도 드물다. 볼거리 많고 즐길거리 많은 이곳을 음식으로 재발견하는 것은 어떨까. ▷기획한 김남일은… 고려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경북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정홍보처, 국무총리실을 거쳐 경북도청 문화관광체육국장과 경주부시장을 지냈다. 행정도 예술이라는 신념으로 지속 가능한 삼촌(산촌'강촌'어촌) 만들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독도, 대양을 꿈꾸다' '마을 예술을 이야기하다'가 있다. 311쪽, 1만5천원.

2018-01-20 00:05:00

정대호 '사람의 문학' 발행인.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문화人&스토리] 정대호 '사람의 문학' 발행인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1990년대는 사회주의 이념이 붕괴하고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이 불었다. 거대 담론은 소소한 이야기로 대체됐고, 잘 팔릴수록 좋은 작품이라는 상업주의는 출판자본을 거대화하고 문단의 패거리주의를 악화시켰다.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혹독한 현실에서도 '사람의 문학'은 '시와 반시'와 함께 지역 문단의 한 축을 형성하며 종합문예지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말에는 통권 86호를 펴내기도 했다. 25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사람의 문학' 발행인 정대호 씨를 만났다. ◆'탁 치니 억' 하던 때…문학이 움트다 1980년 독재정권이 물러난 자리에 서슬 퍼런 신군부가 들어섰다. 집권에 눈이 먼 군부의 계엄확대조치에 항의하는 광주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사건은 총포에 가려지는 듯했지만,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전국으로 확산했다. 경북대 국문학과 졸업을 앞둔 정 발행인에게도 광주민주화운동은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해 전두환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한 그는 '계엄포고령위반죄'로 기소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대구교도소에서 가을을 보내고 찬 서리를 맞으며 출소한 그의 그림자는 '안기부 계장'이었다. 어딜 가든 사찰이 따라붙었다. 마음을 추스르는 데엔 글만 한 게 없었다. 제적 상태로 대학 주변을 맴돌며 '분단시대' 동인으로 시를 발표했다. 신군부는 복학을 명분으로 제적생들을 옥죄어왔다. 과외금지조치(1980년)로 주머니마저 가벼워진 학생들에게 취업은 넘어서야 할 현실의 벽이었다. 경북대 복학생협의회를 이끌었던 그가 그런 친구들의 속사정마저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1984년 간신히, 그러나 굴욕적으로 복학했다. 그리고 첫 시집 '다시 봄을 위하여'를 펴냈다. 이듬해 교육대학원에 진학했고,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빨간줄'이 그인 운동권 출신 강사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일신학원에 있던 한 선배가 그를 받아줬다. 1990년대는 1980년대적인 것들과 결별해야 했던 때였다. 다양성'자율성'대중성을 중시하던 문화 환경의 변화는 지역에서도 문예지 창간의 불씨를 지폈다. '창비'(창작과 비평)와 '문지'(문학과 지성)로 대별되던 문예지 시장에 대구에서는 최초로 '시와 반시'가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시 전문지만으로 지역 문단의 갈증을 달래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밥벌이를 하게 된 정 발행인에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글이었다. 그중에서도 시대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현실주의 문학 작품을 알리고 싶었다. '분단시대' 동인이 하나 둘 모였다. 소설가 정만진, 시인 김윤현, 시인 배창환, 시인 김용락과 시인 정대호까지 5명이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판을 만들어보자." 1994년 1월 '사람의 문학'을 창간했다. 단일 장르 전문지가 아닌, 시'소설'비평 등을 두루 싣는 종합문예지로서는 대구 최초였다. 창간호인 1994년 봄호의 발행인은 정대호의 아내였다. 4월은 여전히 '잔인한 달'(T.S.엘리엇의 '황무지' 중)이었기 때문이다. 정 발행인은 "(운동권 출신으로) 제적당한 내 이름을 썼다간 외부에서 '사람의 문학'에 대해 편견을 가질 것 같았다"고 했다. ◆자금난'좋은 원고…산 넘어 산 '사람의 문학'도 IMF가 몰고 온 자금난 앞에서는 흔들렸다. 아내로 돼 있던 발행인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문예미학사'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펴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접어야 했다. 지역 내 출판 수요는 정해져 있는데 물량을 나눠 가질 출판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점점 쪼그라들었다. 사무직원도, 편집자도 없는 1인 출판사가 낼 수 있는 책은 서점에 내놓고 팔 걱정이 없는 책 몇 권과 돈 안 되는 민주항쟁 이야기가 전부였다. 문학평론가인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가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잡지 발행인을 시키라"고 했던 말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열악한 문학 환경에서 '사람의 문학'이 86호까지 발행될 수 있었던 건 정 씨와 편집인의 열정, 청탁에 흔쾌히 응했던 필진과 정기 구독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부 보조금이 끊기고, IMF를 거치면서 원고료 지급은 사실상 중단됐다. 매 차례 600부를 발행하는 데 드는 돈은 300만원 남짓이다. 모자란 돈은 정 발행인이 채운다. 매년 1천만원 가까운 사재를 털어 넣으면서도 '사람의 문학'을 만들어내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등단과 작품 발표를 미끼로 문단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그의 소신은 '사람의 문학'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이것도 안 하면 문화가 왜곡될 것 같아서요." '사람의 문학'에는 '창비' '문지' '문학동네' 등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온기가 있다. 지역에서 태어났든, 지역에서 활동하든 대구경북을 뿌리로 둔 작가들이 만들어가는 문예지이기 때문이다. 정 발행인은 "지역 문인들로 끌고 갈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문예지 가운데서도 지역지로 시작했다"고 했다. 기대는 바람에 불과했다. 충분할 줄 알았던 필진에 문제가 생겼다. 그는 "문예지 발표 작품이 대학교수 실적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양질의 원고가 끊기다시피 했다"면서 "어쩔 수 없이 점차 필진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지면의 3분의 1 정도를 서울'수도권 등 타지에서 나고 활동하는 작가에 할애한다. 출신보다는 작품이 중요하다. 시인 도종환이 '분단시대' 동인지로 첫 작품을 발표한 것처럼. 그러려면 지역 출신 작가가 다른 잡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사람의 문학'이 발판 역할을 해야 한다. 나머지 지면인 3분의 2 정도가 지역 문인의 작품으로 꾸며지는 건 딜레마다. 간혹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 실리기도 한다. 대체로 지역 문예지가 아니고서는 빛을 보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지역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그래서 '질이 떨어진다' '필진을 지역 외로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역 문단에서 문예지의 역할이 사라지면 우리의 존재 이유가 없겠죠." ◆더 건강해질 리얼리즘을 향해 '사람의 문학'은 촌스럽다. 디자인도, 판형도, 콘텐츠도 조금 더 세련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말이다. 편집자도 조금 바꿔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정 발행인은 거절했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책도, 정 발행인도. "시간이 지나면 색깔은 날아가지만 좋은 글은 남는다. 외관보다는 내용에 집중하고 싶어요." 어렵게 살림을 꾸려왔지만, 그는 장사치는 아니라고 자부했다. 문학을 상품화하는 작품을 싣지 않았고, 계산되고 위장된 순수인 척 포장하지도 않았다. 작가도, 작품도, 자본도, 모든 것이 서울로 옮겨가는 동안에도 그의 믿음은 변치 않았다. 정 발행인은 "예전엔 우리(사람의 문학)의 수준이 중앙 문예지에 못 미쳤을 수 있다. 하지만, 중앙 문예지가 상업화하는 동안 꾸준히 양질의 작품을 내놨고 이제는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람의 문학'이 종합문예지로 25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현실주의' 라는 큰 줄기를 놓치지 않았던 덕분이다. 문학은 현실의 기록적 측면에 저항정신이 가미돼 형성된 현실주의(리얼리즘)라는 문학 사조는 발행인 정대호와 '사람의 문학'을 동시에 설명하는 키워드다. "살다 보면 '이게 아닌데'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내가 무엇을 써야 할지 깨닫죠." 지역 문단에 대한 그의 진단도 같은 뉘앙스로 들린다. 김춘수'신동집 시인을 필두로 한 대구경북의 문학이 순수주의에 경도돼 있다는 것. 겨우 일궈온 꿈에 덧붙이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지역 문단의 균형추 역할을 하면서 기록하지 못하는 동안 사라져 갈 것들에 대한 기록을 하는 것이다. 쪽방촌, 자갈마당, 이천동 골동품 길, 남산동 까치마을처럼 대구와 넓게는 경상도 지역의 삶을 글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그는 "미세담론이든, 개인사든 역사로 기록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사람의 문학'에 담기길 바란다"면서 "그렇게 좋은 책을 계속 펴냄으로써 지역 인재를 발굴해 돕고 싶다"고 했다.

2018-01-19 00:05:00

우연일까, 필연일까…산중 스님에 찾아온 '猫한 인연'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보경 스님 지음/ 권윤주 그림/ 불광출판사 펴냄 겨울 안거(安居)가 시작된 산중 사찰에 손님이 찾아들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느닷없이 들어선 길고양이 한 마리와 고즈넉한 일상에 젖어들던 스님의 동거는 이렇게 시작됐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반쯤 찢긴 쓰레기 봉지에서 과일껍질을 뒤지던 '길냥이'가 발각됐다. 스님은 입가를 노랗게 물들여가며 허기를 채우던 고양이에게 우유와 토스트를 챙겨줬다. 처음엔 '이 풍족한 세상에 사람이건 동물이건 배고픈 것만은 절대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길고양이가 떠나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 쪼그리고 앉아 스님을 바라보거나 졸졸 따라다닌다. "야~옹" 하며. 종이 상자를 가져와 내복으로 찬 바람을 막고 헌 수건을 깔아 집도 만들어줬다. 고양이 이름은 '탑전 냥이', 졸지에 '캣파파'가 된 스님은 고양이와의 작은 교감을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는 책으로 펼쳤다. ◆스님, 길냥이 아빠 되다 12년간 서울 북촌의 법련사 주지와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를 지낸 보경 스님은 방대한 독서로 다져진 글솜씨로 유명하다. 법정 스님이 생전 "글이 좋다"고 칭찬했을 정도다. 열 권이 넘는 책을 써낸 스님이 고양이에 대한 책을 썼다. 생경한 이야기다. 저자 보경 스님은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출가했다. 14년 서울 생활을 마치고 송광사 탑전의 한 칸짜리 반지하 방으로 '환지본처'(還至本處'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한 스님이 시골 사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낡은 선풍기 바람에 더위를 식혀야 하는 산중에서 도시의 습(習)을 버리고자 스님이 택한 것은 독서와 산행이었다. 법정 스님의 처소(불일암)로 이어지는 무소유 길을 따라 걸으며 그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양이가 왔다. 흰색과 황색이 반반 섞여 있고, 원래 집고양이였는지 꼬리가 잘려나간 귀여운 녀석은 스님에게 불가의 수행으로 얻지 못한 새로운 감정을 선사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고 했던 여우의 말처럼 스님과 고양이는 서로에게 길들여진다. 부지불식간에 '고양이 집사'가 되어버린 스님은 때론 친구처럼, 때론 아이처럼 고양이와의 하루에 집중하게 된다. 아침이면 "안녕, 잘 잤어? 배고프지 기다려봐" 하고 사료와 물을 챙겨주는가 하면, 해 질 녘 함께 산보(散步)를 하거나, 숨바꼭질을 한다. 매일 물티슈로 눈물을 닦아주고, 밤에는 '냥이'가 눈부실까 봐 불도 제대로 못 켠다. 기온이 떨어지자 따뜻한 방으로 들어오려는 고양이를 위해 보일러실에 전기 매트를 깔고 새집을 마련해준다. 그것도 종이 박스와 스티로폼 박스로 아늑함을 더하고, 매트 위에 헝겊을 덮어 열기가 직접 닿지 않도록. 그야말로 지극정성이다. 밥을 안 먹는 냥이가 걱정돼 들여다볼 때나 영역 다툼으로 다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애 아빠다. ◆고양이, 스님에게 철학을 가르치다 혼자도 좋고, 둘이어도 좋을 그의 삶에 고양이가 들어오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알아낼 수 없는 깨달음이 일었다. 함께하는 만큼 다른 무엇을 느끼게 되는 것. 책은 내면의 그 소소한 기록을 담았다. 집에 잘 들어왔는지, 잠은 잘 잤는지 안부를 확인하고, 적적한 절간에서 말을 걸 상대가 생긴 데서 스님과 고양이 사이에는 신뢰가 생긴다. 스님은 고양이를 보살피고, 고양이는 스님을 위로하고 자각하게 한다. 고양이는 스님에게 '바라보기'와 기다리기'라는 교훈을 안겼다. 높은 곳에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고양이는 번뇌의 불을 꺼트리고 자신을 성찰해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더욱 설레게 하는 고양이에게서 기다림과 인내를 배운다. 불살생(不殺生)을 제1계목으로 하는 불교에서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의 본능은 스님을 화나게 한다. 당당히 쥐를 물어오는 고양이의 살생에 당혹스러워하지만, 그것도 보살펴주는 스님에게 보이는 '공양'이라고 생각하고 머리를 쓰다듬게 된다. 며칠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갈 때에는 큰 절 스님에게 고양이 밥을 부탁하지만, 마음이 편찮다. 장난감과 간식을 잔뜩 사들고 눈길을 헤쳐 한달음에 도착해 고양이가 잘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게 되는 자신을 보고 끊임없이 문답한다. '선문염송'에는 '비가 좋은 것은 비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여름 숲 속 선사에 장중하게 내리는 비처럼 반가운 손님, 스님에게 냥이는 그런 존재다. 결막염에 걸린 냥이를 안고 동물병원에 갔던 날 스님은 생로병사라는 숙명과 그를 대하는 자세를 곱씹었다. 또 자기 의사가 분명할 때만 움직이고, 먹을 만큼만 먹는 냥이에게서 '결코 지나치지 않게 적당히'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발견한다. ◆다독가의 서재를 엿보는 재미 보경 스님이 개인적으로 체험한 일상의 기쁨은 단순한 에세이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고양이가 가져다준 행복, 고양이로부터 느끼는 사랑은 수시로 떠오르는 글귀나 이야기에 녹여냈다. 다독가답게 장르도 다양하다. '열반경' '금강경' '유마경' 등 불교 경전은 물론이고, '시경' '논어' '주역' 같은 유교 경전, 고대 티베트의 기도문이나 인도 우화까지. 또 그가 즐겨 읽은 장 그르니에의 '섬'과 고양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소개도 빼놓지 않았다. 반지하방 왕국을 이미 냥이에게 양보한 스님은 사료를 먹느라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물을 먹느라 쫄쫄거리는 소리가 행복하다. 출가 인생에서 설렘을 일깨워준 유일한 존재, 탑전의 고양이가 사랑스러울수록 이별의 아픔이 클 것을 예감한다. 스님은 산중에서 일어난 고양이와의 일을 흘려보내기가 아까워 차곡차곡 기록했다고 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을 고대 로마 한 권으로 정리한 그는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로 언젠가 마주하게 될 고양이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감히 현명하여라. 시작하라, 잘 살아볼 시간을 미루는 일은 강을 건너려고 물이 다 흘러가버리기를 기다리는 촌사람 격이니라. 그동안 강물은 흐르며 영원히 흘러갈 것이다. -238, 239쪽 그렇게 겨울 한 철, 스님이 고양이를 바라보고 고양이가 스님을 바라본다. 서로 말한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 ▷지은이 보경 스님은… 송광사에서 현호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10년간 선방 생활을 거쳐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계종 교육원 교육국장, 중앙종회의원,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법련사 주지를 지내고 현재는 보조사상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사는 즐거움' '이야기 숲을 거닐다' 등 수필집 4권과 '기도하는 즐거움' '한 권으로 읽는 법화경' '42강경 강설집' 등 강설집 8권을 펴냈다. 264쪽, 1만6천원.

2018-01-13 00:05:03

송숙 작 '동급생'.

[내가 읽은 책] 동급생 (프레드 울만)

동급생/ 프레드 울만 / 열린 책들/ 2017년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그것이 편협한 시선 안에서 재단된 실수일 때가 있다. 슈바르츠와 콘라딘의 관계도 그랬다. 슈바르츠와 콘라딘의 순수한 우정에 끼어든 역사의 소용돌이는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무너지게 했다. 결국 부모들의 이념을 따라 각각 그들의 세상으로 간 슈바르츠와 콘라딘의 삶은 모두의 기대와는 달랐다. 어릴 적 상처를 끌어안은 채 평생을 낯선 이국땅에서 살아야 했던 슈바르츠에게 콘라딘은 끊을 수 없는 애증의 실체였다. 저자 프레드 울만은 190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했으나 히틀러가 집권한 후 1933년 프랑스로 망명하여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 후 스페인과 영국을 전전하며 마지막엔 런던에서 생을 마감했다. 평생 동안 자신이 태어난 낭만적인 고향을 잊지 못하여 그의 작품 『동급생』에 녹여 놓았다. 처음 『동급생』이 영어로 세상에 나왔을 때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아서 케스틀러의 서문과 함께 1977년 재출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슈바르츠의 아버지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평범하고도 완벽한 독일인으로 살아왔다. 슈바르츠도 아버지의 안정된 그늘에서 순탄한 소년기를 맞이한다. 전통적인 독일 귀족 백작의 아들인 콘라딘과는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우정을 쌓아갔다. 어느 날 독일 사회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다는 나치의 등장은 평범한 소시민의 의무를 충실히 하며 살아가던 슈바르츠 부모님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렸다. 독일인이 되고자 신명을 바쳐 살아온 그동안의 삶이 배신당하자 슈바르츠의 부모님은 결국 목숨을 끊고 슈바르츠는 미국으로 보내진다. 30년이 지난 후, 미국 생활에 성공한 슈바르츠는 우연히 자신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내몰았던 알렉산더 김나지움으로부터 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동창들을 위한 추모비 건립에 기부를 해 달라는 호소문을 받게 된다. 슈바르츠는 그 호소문과 인명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자신의 삶에서 잘라내 버리고 싶었던 17년의 흔적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슈바르츠는 호소문을 다시 꺼내 읽어 내려갔다. 자기가 알고 지냈던 친구들, 혹은 관심 밖의 친구들 이름이 하나둘 나타나자 두려움에 휩싸인다. 콘라딘, 잊지 못할 그 아이의 이름이 있는 페이지는 차마 확인하고 싶지가 않았다. '작은 남자지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그의 확신에서 오는 순수한 힘과 강철 같은 의지, 천재적인 강렬함, 예언자적인 통찰에 휩쓸려 들고 말아. 어머니는 신께서 저분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어. 그리고 독일에는 너를 위한 자리가 없을 것." 귀족의 명성만큼이나 푸르렀던 그들의 우정은 역시 아름다웠다. 정의 앞에서 진실되고 명백한 의지를 가진 콘라딘은 슈바르츠의 영원한 친구였던 것이다. 과거의 기억에서 확신하고 있는 사실들이 그것으로 멈추어 있지 않고 마침내 살아서 정의로 기운다는 것을 콘라딘을 통해 보여준다. 슈바르츠를 떠나보낸 후 겪었을 콘라딘의 아픔은 오랫동안 가슴을 아리게 한다.

2018-01-13 00:05:03

[책 CHECK]노계 문학세계와 문화콘텐츠화 전략/바람의 가객

노계 문학세계와 문화콘텐츠화 전략 노계연구총서 편찬위원회 지음 / 북코리아 펴냄 바람의 가객 강현국'박숙혜 지음 / 북코리아 펴냄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 노계 박인로 선생을 선양하기 위한 책 두 권이 출간됐다. 하나는 연구총서 '노계 문학세계와 문화콘텐츠화 전략'이고, 다른 한 권은 노계 선양을 위한 스토리텔링 '바람의 가객'이다. 노계의 문학과 삶을 총체적으로 다룬 '노계 문학세계와 문화콘텐츠화 전략'은 학문적 접근이며 선양 사업에 필요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에서는 노계 문학을 바깥에서 접근했고, 2부에서는 텍스트 안쪽에서 노계문학을 살피고 있다. 3부는 노계 박인로의 문화콘텐츠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3부에 묶은 문화콘텐츠 개발과 관련된 글은 종래의 연구서적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기획이다. 문학이 외연을 확대하고 그 생산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문화산업과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창권 교수의 융복합 노년 콘텐츠 개발과 송광인 교수의 기존 문학관의 문제점 지적, 김미경 교수의 노계 박인로의 영천지역 브랜드화 전략 등은 새겨들은 만한 제안이다. 편찬위원회는 책머리에서 "노계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제작, 출간된 이 연구총서가 어제의 역사와 오늘의 역사를 잇는 가교가 되고, 책 속의 문학과 책 밖의 산업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고,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이 행복하게 조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한 권의 책 '바람의 가객'은 노계 박인로 선생의 삶과 문학세계를 스토리텔링한 것이다. 바람의 가객은 소설 형식을 따라 제작한 작품이다. 그것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을 말한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당연히 노계 박인로이다. 노계가 성장하면서 깨달아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임란 의병으로 영천성 복성전투에 참전하는 등 장기간의 무관 생활을 비롯해 도학 지향의 자기계발과 창작, 그리고 폭넓은 인간관계를 통해 스스로 깨우치고 발전해 나가는 노계의 자유롭고 동적인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재미를 위해 상상력을 덧붙였다. YCI부설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 김정식 원장은 "이 책의 발간으로 누구나 노계 박인로를 쉽게 이해하고, 나아가 지방정부나 문화단체는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노계 문화콘텐츠를 제작해 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비매품

2018-01-13 00:05:03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 생태는 물론 해양영토, 주권의식까지 통찰한 울릉'독도 인문서 '하늘에서 본 울릉도와 독도의 해양영토'가 출간 됐다. 독도 전경, 울릉도 도동, 독도 영해기점 표지석. 지성사 제공

해양영토, 헌법에는 없는 주권 이야기…『하늘에서 본 울릉도와 독도의 해양영토』

하늘에서 본 울릉도와 독도의 해양영토/ 김윤배'김성수 지음/ 지성사 펴냄 세계 10대 해양관광섬(론리 플래닛 선정), 한국 10대 생태관광지, 동해안 최초 해양보호구역, 국내 최초 국가지질공원…. 현재 울릉도와 독도를 지칭하는 타이틀이자 수식어들이다. 연간 울릉도 방문객은 30만~40만 명, 이 중에 15만~20만 명이 독도를 방문한다. 본토에서 울릉도까지 왕복 6, 7시간, 그리고 울릉도에서 다시 독도까지 3시간 반, 총 10시간이 소요된다. 배멀미를 참아가며 힘든 여행에 나서지만 그들이 담아가는 건 긴 뱃길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몇 장의 사진뿐. "울릉'독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두 섬의 역사 문화적 가치와 정체성을 제대로 알려보자." 이 책은 해양과학기술원의 김윤배'김성수 씨가 동해 오지 섬에서 탐사한 국토 사랑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울릉도 역사'마을 기원'생태 이야기 정리=해양과학기술원에서 기획한 이 책은 '과학 바다 시리즈' 중 일부. 전체 구성을 3장으로 나누어 울릉도 이야기, 울릉도의 마을과 항구, 독도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먼저 '울릉도 이야기'에서는 이 지역의 청동기 역사, 우산국 건국 스토리, 신라(지증왕 13년'512년) 영토로 편입 후 한반도 본토와의 교류가 시작되는 역사를 담고 있다. 이 외 날씨, 바람과 파도, 해수 순환과 수온의 변화, 울릉도의 생성과 주변의 해저 지형, 그리고 해양보호구역 등에 관해 두루 살펴본다. '울릉도의 마을과 항구'에서는 동해안 어업 전진기지 저동항, 행정 중심지 도동항, 새로운 관문으로 떠오르는 사동항을 비롯하여 통구미, 남양, 학포, 태하, 현포, 추산, 천부항, 나리분지, 석포, 관음도, 죽도 등을 소개한다. 지역마다, 항구마다 역사적 배경 및 생태적 특징을 살피고,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사진을 나란히 배치해 기록성을 살렸다. '독도 이야기'에서는 동도에 세워진 접안시설, 독도 등대, 독대경비대 숙소, 통신탑, 위성 안테나, 기상청 자동기상관측장비와 기후변화감시소 등 해양영토를 수호하기 위한 시설물을 소개한다. 또 문무대왕의 유훈을 간직한 독도 접안시설 준공비, 1947년 9월 18일 미군의 폭격 사건으로 희생당한 어민을 기리는 독도조난어민위령비와 대한민국 국가기준점 표식, 대한민국 영해기점 표식도 볼 수 있다. 주민들의 숙소와 독도의 샘터 물골이 있는 서도, 그리고 크고 작은 바위에 얽힌 이야기와 약 250여 종의 바닷말류, 약 110여 종의 어류 등 독도바다 생물 이야기도 곁들인다. ◆해양 영토적 관점에서 본 독도=이 책은 역사와 문화, 주민들의 삶의 모습 외 울릉도'독도의 숨겨진 가치를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자 기획됐다. 특히 그동안 학술적, 정치적 틀 속에 갇혀 박제된 울릉도'독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가꾸고 지켜야 할 우리의 영토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런데 왜 해양영토일까?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흔히 울릉군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군(郡)이라고 한다. 수면 위에 드러난 육지만 고려한다면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해양영토가 빠져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조차 '해양'이란 단어가 없는 것이 해양영토에 대한 인식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 책은 울릉도와 독도의 해양영토를 지켜온 사람들과 그 해양영토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담고자 하였다." 우리가 해양영토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때 울릉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군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자치단체로 다가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해양영토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곧 동해의 거친 바다를 터전으로 살고 있는 울릉도'독도 주민들, 그리고 그 척박한 환경에서 일궈온 바다와 땅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울릉도'독도 비경 드론으로 촬영=비행기 여행을 할 때 느끼는 작은 이벤트 하나가 이착륙 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다. 아직 활주로를 갖추지 못한 울릉도에서 항공 뷰(View)는 그림의 떡이었다. 최근 드론의 등장으로 이런 일이 현실로 다가오게 됐다. 이 책을 기획한 해양과학기술원은 드론을 띄워 울릉도와 독도 연안생태계의 과학적 이해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울릉도와 독도의 수려한 경관을 잡아냈다. 울릉도와 독도의 사계를 담은 총 150여 장의 컬러 사진은 그 자체로 지상 중계요, 화보다. 해양과학기술원은 2015년부터 드론을 도입하여 울릉도와 독도의 연안 생태계 연구에 활용해 왔다. 동해의 연안 해역은 투명도가 뛰어나 10m 내외의 바닷속 해조류 군락의 변화까지 관찰할 수 있다. 또한 파고 10m가 넘는 해일 속에서도 독도의 해안선이 변화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화보 같은 사진에 몰입하다 보면 자칫 문화'학술 콘텐츠와 해양영토가 의미하는 애국심 코드를 놓칠 수 있다. 사진 너머에 있는 울릉도의 역사적, 생태적 가치와 독도의 영토적, 주권적 가치까지 통찰해야 이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지금도 해발 104m에 있는 독도 등대는 10초에 한 번 불빛을 깜빡이며 76㎞(41해리)를 밝게 비추고 있다. 안개 낀 날이면 경적을 울려 우리 어선과 국민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준다. 저자는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독도에 들르면 정상부 동쪽 끝단에 영해기점 표식을 돌아보자. 독도의 가치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비록 18만㎡에 지나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독도가 품고 있는 해양영토의 가치는 몇만 배나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132쪽, 1만7천원.

2018-01-13 00:05:03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