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 호의가 당신의 권리인가요?"… ‘모두의 친절’

모두의 친절 / 이나리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모두의 친절 / 이나리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모두의 친절 / 이나리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어라'로 시작해 '이것 보게'를 지난다. '허허, 이거 참'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짚는다. 활강하듯 흘러내리는 문장과 단락을 지나 어느 새 골인 지점. 그곳에서 두어 키 소리 높여 뱉어내는 "이 맛에 소설을 읽는다"는 '소설찬가'까지. 소설마니아들에겐 설레는 행운이다.

기억 앞에서 겸손해야 하건만 2014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나리 작가의 단편소설 '오른쪽'을 봤을 때 느낌이 이러했다. 악몽이 구현된 듯, 마치 뭉크의 '절규'를 봤을 때처럼, 기분이 왠지 나쁜데도 잊히지 않는 거였다.

박민정 소설가의 세련된 추천사가 반가웠던 이유였다. 그는 '오른쪽'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그악스러운 진술, 흔들리는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듯 위태롭게 끝을 알 수 없는 외길로 내달리던 독서의 경험"이라고 썼다.

등단 이후 꾸준히 문예지에 발표되던 이나리 작가의 단편들이 첫 소설집 '모두의 친절'로 묶여 나왔다. 30페이지 이내의 단편 여덟 편이 실렸다. '모두의 친절'(문학들 2020년 여름호)을 표제작으로 삼았다.

소설집 속 적잖은 작품들이 '친절'을 고리로 연결된다. 작품 속 비중이 큰 인물들에게 '내 호의=네 권리'라는 불편한 등식 관계가 거듭된다. '적당한 게 좋은 거'라는 인물들의 경험치를 악용하는 이들이 어디서건 등장한다.

세종시의 한 어린이집에서 긴급보육을 마친 어린이와 학부모가 하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종시의 한 어린이집에서 긴급보육을 마친 어린이와 학부모가 하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표제작인 '모두의 친절'에서 주인공은 지나친 친절로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코로나 시국에 재택근무를 허락하지 않는 이웃집 언니의 아이를 호의로 맡아준 게 발단이었다. 언니도 긴급 보육 프로그램을 하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대신 주인공의 집 문을 두드리는 쪽을 선택한다.

주인공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아이를 맡아줄 수 없다는 말을 전하자 언니는 화를 낸다. 하필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으니 언니도 그럴 만했지만 주인공은 자신이 미안해해야 하는 일인지 어리둥절해 한다.

작품 '비타민'에서도 친절로 치환 가능한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어김없이 작동한다. 이사 온 첫날 만난 옆집 아줌마는 이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주인공 부부가 신혼부부임을 알자마자 정수기 렌탈 영업을 시작한다. 어느새 집에는 정수기가 설치되고 옆집 아줌마의 참견은 슬금슬금 강도를 더한다.

심지어 혼수로 마련해온 고급 브랜드 접시를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다. 달라는 말도 선뜻 하질 못한다. 점점 자신의 물건을 되돌려 받는 게 아니라 남의 물건을 내놓으라는 말을 하는 것만 같다. 독자도 이런 빌어먹을 친절에 분통이 터진다.

반려식물 키우기 수업의 한 장면. 매일신문 DB 반려식물 키우기 수업의 한 장면. 매일신문 DB

안타깝게도 소설 속 친절은 친절로 기능하지 않는다. 극단적 친절은 불친절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다. 작품 '애완식물'(악스트 2018년 7/8월호에 발표할 당시 제목은 '달콤한 집'이었다)에서 딸은 엄마에게 동성애자라고 밝힌다. 엄마는 "아이를 이해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딸의 성 정체성에 맞게끔 머리를 짧게 잘라준다. 교복도 바지를 입힌다. 과공비례(過恭非禮)다.

집에서 기르는 식물의 키와 잎의 크기, 개수를 정확하게 파악하던 엄마의 이해는 친절이란 이름의 몰이해였다. 엄마를 더 이상 속일 수 없다며 커밍아웃한 딸에게 엄마의 행위는 무엇이었을까. 학대에 가깝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것이다.

임정균 문학평론가는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이 신경과민을 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소설 속 인물들은 대개 신혼부부이거나 사춘기 청소년들로 생애주기의 시작점에 놓여 있는데 이런 시기는 새로운 것과 마주하는 데서 오는 묘한 흥분과 함께 낯선 체계 및 규범을 배워야하는 스트레스를 동반하기 마련"이라고 풀이했다.

작가는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가능한가. 사람들이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그 세계들이 맞닿아 부딪치는 순간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있을 뿐이다. 서로로부터 격리돼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작가는 소설집 마지막에 실린 '유턴 지점을 만나게 되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눈을 깜빡이다 보면 잔상은 천천히, 하지만 반드시 사라진다. 모든 건 적응되기 마련이었다."

226쪽. 1만3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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