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삶의 질 낮추는 불안·우울이 나를 생존케 하는 역설

이기적 감정/ 랜돌프 M.네스 지음/ 안진이 옮김/ 최재천 감수/ 더퀘스트 펴냄

코로나 블루 관련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 블루 관련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일상의 변화와 교류 단절로 무력감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현상을 말하는 '코로나 블루'. 정신 장애는 이제 개인적 경험이 원인이 될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사회적 문제가 야기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신간 '이기적 감정'의 저자이자 진화정신의학의 선구자인 랜돌프 M. 네스는 코로나 블루처럼 정신 장애가 유행하고 있다는 식의 접근은 문제 해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진화적 관점에서는 개인을 개인으로 이해하고 개개인의 경험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책 '이기적 감정' 책 '이기적 감정'

◆감정의 작동 매커니즘 이해하기

"세계적으로 매일 3억5천만명이 기분장애로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며 상당수는 불행하게도 삶을 중단해버린다. 미국에서만 해도 우울증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2천100억 달러로 추산된다."(19쪽)

실상이 이런데도 우리는 '인간은 왜 정신병에 걸리는가'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많지 않다. 지난 50년간 정신 장애에 관한 진단과 치료에 관한 연구에는 괄목할 만한 성과가 없었다. 정신분석학은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했고, 기대했던 각종 질병의 유전자 변이도 발견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간이 나쁜 감정을 느끼는 근거를 알아내지 못했다. 이제야 우리는 '접근법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신간 '이기적 감정'은 기존의 방식을 대신해 진화의학을 동원해 감정의 정상적인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평생 환자를 치료한 의사이자 진화의학의 연구자로서 진화의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학자다. 저자는 "진화의학은 바로 현실에 적용하는 치료법이 아니라, 진화 생물학의 원리를 활용해 의학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기적 감정'에서 진화 생물학을 바탕으로 감정과 정신질환에 집중해 '정신장애가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불안과 우울, 중독, 거식증, 자폐 등을 일으키는 유전자들은 왜 여전히 남아 있을까?'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는 인간의 정신장애에 관해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2부는 부정적의 감정들이 진화적으로 어떤 유용성을 가지는지 밝힌다. 3부는 개인의 감정과 행동, 도덕적 행동과 사회적 선택, 무의식적 억압과 인지 왜곡이 가진 의미에 관해 진화적인 논점을 펼치고 4부는 다양한 정신장애, 특히 현대문명이 새롭게 만들어 낸 병에 대해 다룬다.

◆나쁜 감정은 생존을 위한 자연선택

불안, 우울, 슬픔, 수치심, 질투 등의 나쁜 감정은 인간의 삶의 질을 낮추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진화 과정에서 이러한 감정들은 인간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인간이 생존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나쁜 감정을 인간이 느끼게끔 자연선택한 결과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나쁜 감정이 당신을 보호하는 데 쓸모가 있어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의학에서는 통증, 기침과 같은 증상을 몸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로 간주한다. 그러나 정신의학에서는 불안, 우울 같은 증상을 그 자체로 문제로 바라보는 잘못된 시선을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화재 감지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증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질병을 키우게 된다. 즉 모든 감정에는 의미(신호)가 있으며, 우리는 감정의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이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울러 어떠한 감정도 적당해야 알맞다. 우리는 대개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고 긍정적인 감정을 적게 느낄 때 정신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을 적게 느끼고 긍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는 경우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불안이 부족한 과소공포증 환자는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고, 질투심이 전혀 없으면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낮아진다. 슬픔을 전혀 못 느끼는 사람은 똑같은 실수나 잘못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커진다.

불안 등 나쁜 감정의 진화적 기원과 기능을 우리가 이해한다고 해서 특별한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고 나면 확실히 치료에도 변화가 생긴다. 저자는 환자를 치료할 때 "불안은 유용한 반응인데 종종 지나치게 커지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하자 환자가 자신이 정상적인 사람으로 대우받고 자신감을 얻는 느낌을 받은 경험을 언급한다. 어떤 사람은 기분 저하나 우울 등의 증상이 유용하다는 점을 알고 난 뒤 우울증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그만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526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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