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시와 함께]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류경무(1966~ )

 

 

불어터진 구더기떼 고라니 한 마리

냄비밥처럼 척,

길 바깥에서 끓고 있다

 

아래로부터 속을 뒤집어 다시 게워내는 일

이렇듯 수승(殊勝)한 죽음도 몹시 가려울 때가 있다는 듯

송곳니 앙다물고

 

죽어서 참 다행이다, 라고 말하며

냄비 뚜껑 들썩이며

한껏 끓어넘치는 미소를 스윽 날려준다

 

우리는 어차피 다 익은 밥이라서

이제 이곳에서 그만 뒹굴어도 된단다

 

콘크리트의 약사(略史)에 새로 새겨진

불어터진 고라니께서 말씀하셨다

 

거참, 고약한 시다. '수승(殊勝)한 죽음'이라니! '수승'은 가장 뛰어난 일, 아주 뛰어남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냄비밥처럼 척,/ 길 바깥에서 끓고 있'는 이 고라니의 죽음이 어째서 가장 뛰어난 죽음이란 말인가?

엊그제 잠시 비가 갤 때, 시골에 가서 예초기를 메고 풀을 벴었다. 농사를 짓진 않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비탈밭이 우후죽순 자라나는 풀에 뒤덮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비지땀을 흘리며 왱왱 예초기를 돌려나가는데 뭔가 풀숲에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고라니 새끼였다. 작고 예뻤다. 생후 한 달이나 됐을까. 뒤가 낭떠러지라 물러설 데가 없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도망을 가라고 어서, 장화 신은 발로 쿡쿡 풀숲을 걷어차 보아도 옹그리고만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여. 그래, 시인이 왜 '콘크리트의 약사(略史)'를 이렇게 틀고 꼬아 말했는지 알 것 같다. 로드 킬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처참한 만행 중에 하나. 고라니 입장에서 살 만한 세상이 아니라면 차라리 '죽어서 참 다행'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이곳에서 그만 뒹굴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엊그제 그 풀숲에서 바들바들 떨던 고라니 새끼는 내가 기계를 끄자 비로소 작고 날렵한 궁뎅이를 흔들며 도망을 갔다. 예뻤다. 비록 저것이 애써 지어 놓은 농작물을 망치는 유해 조수가 되어 내려온다 해도, 혼비백산 산을 향해 내빼는 그 모습이 나는 참 예뻐 미소를 지었다.

 

시인 유홍준: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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