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건축을 통한 세상 읽기…유현준 교수의 '공간이 만든 공간'

공간이 만든 공간/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매일신문 DB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매일신문 DB
책 '공간이 만든 공간' 책 '공간이 만든 공간'

'인문건축학'. 어디서 들어봤다 싶으면서도 어쩐지 낯설다. 건축은 인간이 지리, 기후, 환경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태어났으며 역사와 문화, 과학 등이 복합된 문명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인간의 산물이자 문명의 결정체다. 이는 건축, 즉 공간의 변화를 통해 문화의 진화를 이해하고 당대 사람들의 생각까지 읽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는 인문건축학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건축에 대한 공학적 접근을 배제한 인문건축학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인문건축학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이유는 건축 그 자체를 완벽히 해석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인간과 우리네 인생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대구 중구의 한 한옥. 매일신문 DB 대구 중구의 한 한옥. 매일신문 DB

◆건축적 관점에서 세상 탐구해보기

인문건축가로 일컬어지는 유현준 교수가 신간 '공간이 만든 공간'을 펴냈다. 저자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문화나 생각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건축적 관점에서 탐구하고자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건축의 변화를 총망라해 한권의 역사책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건축과 관련된 상당한 정보가 사진과 함께 정리돼있어 백과사전 같기도 하다. 책은 '왜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의 문명이 발생했는가' '동양은 왜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등의 흥미로운 질문에 대해서도 풀어낸다.

피타고라스, 석가모니, 공자 등 위대한 사상가들이 나타난 시대로부터 출발해보면 당대는 지리적·기후적인 특성이 사람들의 생각을 좌우하고 각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강수량이라는 기후적 차이로부터 동·서양의 건축이 확연히 다른 모습을 띄게 된다. 비가 적게 오는 서양의 땅은 단단해 돌이나 벽돌 같은 무겁지만 단단한 건축 재료를 이용해 벽으로 지붕을 받치는 벽 중심의 건축을 했다.

반면 비가 많이 오는 동양은 장마철에 땅이 물러지기 때문에 가벼운 나무를 사용했고, 나무 기둥이 비에 젖지 않도록 처마로 비를 막고 지붕의 경사를 만들어 빗물이 잘 흐르게 하는 기둥 중심 건축을 택했다. 기둥 중심의 건축물은 정자나 툇마루처럼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으로 개방감과 안정감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동서양의 차이는 비단 건축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책은 동서양의 다른 유전자에 대해 한 장(章)을 할애해 설명한다. 알파벳과 한자, 체스와 바둑, 남북으로 흐르는 나일강과 동서로 흐르는 황하를 비교하면서 동서양의 문화적 성격의 차이를 풀어낸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성당. 매일신문DB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성당. 매일신문DB

◆융합을 거듭하며 발전한 건축…미래는?

교통의 발달로 동서양이 서로 교류하게 되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이종교배한 '변종'이 탄생하게 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등 건축의 거장들도 동양의 건축양식을 받아들였는데 데크(테라스)가 대표작이다. 안도 다다오는 기존 건축가들과는 또 다른 동서양의 건축적 요소를 융합한 건축물을 만들어 세계적인 거장의 대열에 합류했다.

20세기 중반에는 세계 어디에서나 건축물을 똑같은 양식으로 짓는 '국제주의 양식'이 팽배하며 건축은 발전의 정체기를 맞는다. 건축가들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고자 끊임없이 고민했고 마침내 미술, 철학, 패션, IT 등 다른 분야를 접목시켜 새로운 개척지를 찾게 된다. 물론 모든 융합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건축에 철학을 접목시킨 해체주의 건축은 현실과 거리가 먼 공간을 만들어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고 말았다.

기술 발달은 과거에는 구현할 수 없던 형태의 건축물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게 해 줬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IT와 건축의 결합으로 탄생한 것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다. 더불어 많은 건축가들은 3D 프린터와 자율 주행 자동차를 이용해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처럼 머릿 속 구상을 컴퓨터로 구현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컴퓨터의 상상력을 빌리는 단계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디자인 분야에서 인공지능(AI)과 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미래에는 건축은 무엇과 결합해 공간을 창조하게 될까? 저자는 디지털 기계와 아날로그 인간의 융합이 있는 곳에 새로운 문화가 나타날 거라고 주장하며, 기술에만 의존하면 다양성이 사라진다고 경고하면서 인간다움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갈등을 화합으로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이라고 말한다. 408쪽, 1만6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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