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민주주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로버트 커트너 지음/ 박형신 옮김/ 한울아카데미 펴냄

민주당의 대선 경선 유력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020 미국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첫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뉴햄프셔 주에서 실시된 날 맨체스터의 한 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 도착,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미국 좌파·진보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세계화를 통해 적나라해진 자본주의와 무력해진 민주주의의 비뚤어진 관계를 바로 잡기 위한 집요한 탐구를 시작했다. 연합뉴스 민주당의 대선 경선 유력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020 미국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첫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뉴햄프셔 주에서 실시된 날 맨체스터의 한 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 도착,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미국 좌파·진보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세계화를 통해 적나라해진 자본주의와 무력해진 민주주의의 비뚤어진 관계를 바로 잡기 위한 집요한 탐구를 시작했다. 연합뉴스

이 책 '민주주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의 저자 로버트 커트너는 미국의 진보·좌파 저널리스트이면서 작가이다. 그가 민주주의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본주의를 제약하는 능력에 세계화(역자는 '지구화'로 변역했지만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좀 더 대중적인 '세계화'로 표현함)가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계속 밀리던 이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천착하게 된 계기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과잉이 점점 더 극우 민족주의적 반발을 일으키고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명백한 증거가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생'인 셈이다.

세계화의 가장 큰 피해자인 노동계급에게 극단적인 민족주의 감정을 조장함으로써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만들어준 트럼프의 전략은 매우 주효했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 서구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의 노동계급은 진보정치를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트럼프식 구호와 민족주의 성향의 우파 포퓰리즘 정당에 환호한다. 저자는 이 같은 현상을 20세기 파시즘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불만과 치유책 간의 단절에는 믿기 힘든 혼란상태가 자리하고 있다. 화가 난 사람들은 외견상 포퓰리스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투표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의 정책과 지명자들을 통해 경제를 매우 부유한 사람들에게 더욱 유리하게 만들 독재자를 얻는다. 트럼프의 포퓰리즘은 앙심, 기분전환, 맹목적 애국주의의 혼합물이고, 실제 정책은 기업과의 동맹임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약탈에 반대하는 정부 정책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주의가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66쪽〉'

자본주의가 무소불위의 힘을 얻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게 된 역사적 배경은 1970년대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적극 도입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가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이 합의한 사회적 약속을 해체시키는 추동력이 되었고, (글로벌) 금융은 경제의 하인에서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더욱이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 소위 진보적이라는 중도좌파 정부는 하인이 아니라 주인 노릇하는 글로벌 금융을 저지하기는 커녕, 이 물결에 편승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함으로써 전 세계를 불평등과 양극화로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들게 했다. 더 큰 문제는 돈이 시민권 보다 강력해진 상황에 분노한 사람들이 분노의 원천을 파악해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 분명하게 자각하지 못하고 우파 포퓰리스트에게 매료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는 대안을 2차 세계대전 이후 루스벨트가 뉴딜정책을 통해 구축했던 '혼합경제체제'에서 찾는다.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던 그 당시에는 '자본주의 엔진'과 '민주주의 이상' 간에 건전한 균형이 이루어졌고, 현재의 세계화와는 달리 민주주의에 의해 관리되는 글로벌리즘 체계가 작동했던 것이다. 이처럼 혼합경제체제에서 '자본주의를 이용해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기적'을 이루었고 그 결과 30년 간의 호황을 누렸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따라서 저자는 단순하고 효율적인 금융체계로 되돌아가 금융이 경제의 주인이 아니라 하인이 된다면, 또 2차 세계대전 규모의 사회투자 프로그램을 실행한다면, 그리고 전제정치와 과두정치를 종식시킨다면 우리는 다시 관리되는 자본주의로 돌아갈 수 있다고 확언한다.

미국과 서구 유럽의 정치와 경제·사회를 예리하게 분석한 이 책은 4·15총선과 대선을 앞둔 한국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우파 포퓰리즘의 포로가 된 미국, 서구 유럽과 달리 한국은 오히려 좌파 포퓰리즘에 빠져 있다. 우파 포퓰리즘의 서구가 파시즘적 경향성을 갖는다면, 좌파 포퓰리즘의 한국은 사회주의적 좌파독재의 길에 접어든 느낌이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한국의 좌파정권과 그 핵심 인물들은 저자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가장 대표적 병폐로 예시한 '사모펀드'와 얽혀 있다. 조국펀드가 그렇고, 이철의 VIK(밸류 인베스트먼트 코리아)가 그렇고, 라임사태가 그렇고, 최근 코로나19로 초래된 마스크 대란 중 독과점적 공급권을 정부로부터 얻은 지오영이 그렇다. '지오영'은 중국계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지분의 70%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저자 로버트 커트너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좌파정권은 진짜 '진보' '좌파'가 아닐 뿐 아니라, 진보·좌파의 탈을 쓰고 파시즘적 포퓰리즘적 정책을 구사하는 '좌파 변종 바이러스' 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진보·좌파 정권의 핵심 인물들이 약탈적 자본주의의 대표격인 사모펀드와 이해관계로 얽히고, 파시즘의 상징인 극우 민족주의와 비견되는 '반일 종족주의'로 국민의 분노 대상을 왜곡시킬까.

전 세계 곳곳에서 '독재자들은 민주주의의 형식을 이용하여 민주주의의 내용을 파괴하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울림이 크다. 544쪽, 4만2천원.

관련기사

AD

문화기사

제21대 국회의원선거
D-5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