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지성인들의 도시 아카이브-01 풍운의 도시, 난징/ 신경란 지음/ 보고사 펴냄

중국의 오랜 도읍지이자 문화 중심지, 난징대학살의 아픔과 항일 역사를 우리 민족과 공유한 찬란한 슬픔의 도시

지성인들의 도시 아카이브-01 풍운의 도시, 난징 지성인들의 도시 아카이브-01 풍운의 도시, 난징

'지성인들의 도시 아카이브' 시리즈 그 첫번째 책이다. 시리즈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기획된 것이다.

처음 소개하는 도시 '난징'(南京)은 중국사에서 10개 나라가 수도로 삼았던 데다 수도가 아니었을 때도 문화 중심지였다. 삼국시대 오나라 손권이 수도로 정해 급속 발전한 난진은 남북조 시대를 거치며 남조 귀족 문화의 중심지이자 당시 세상의 중심이 됐다.

아픔도 많다. 중화민족 수도였던 이곳은 중일전쟁 때 난징대학살이라는 참사를 겪었다. 일본군이 운영한 난징위안소까지 이곳에 자리잡으면서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기도 했다.

 

◆새 수도 '북경'의 남쪽 오랜 수도 '남경'

난징의 이름은 어떻게 해서 붙은 것일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고려 때 지명도 남경(南京)이었다. 도읍인 개경을 보완하는 여러 부도시 가운데 남쪽에 있다는 이유였다. 일본 도쿄(東京) 또한 메이지유신 때 천황(일왕)이 교토를 떠나면서 동쪽 에도(도쿄의 옛 이름)에 새 서울을 만들며 이름붙였다.

난징은 1368년 주원장이 이곳을 명나라 도읍지로 택할 때까지 금릉 또는 강녕이라 불렀다. 주원장은 '천명에 응한다'는 뜻에서 도읍 이름을 '응천'(應天)이라 정했다.

이곳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였다. 그러나 주원장이 죽자 정권에 권력다툼이 생기면서 남북전쟁이 발발, 북평(北平, 오늘날 베이징北京)에 근거지를 뒀던 주체(영락제)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당대 사람들이 새로운 도읍지 북평을 '응천 북쪽에 있다' 하여 북경(베이징)으로 불렀고, 북경이 생기자 남쪽의 응천은 자연히 남경(난징)이 됐다.

이렇게 생겨난 베이징과 난징이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명을 유지하고 있다. 난징은 19세기 태평천국의 수도가 되면서 잠시 천경(天京)으로 불렸으나 다시 난징으로 바뀌었고, 신해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중화민국의 수도가 됐다. 북경은 명, 청대를 지나 중화인민공화국 수도가 됐다.

오늘날로부터 1천500년 전 당시 세계를 휘어잡은 선진국의 수도 난징. 중국을 집어삼키려던 대영제국이 아편전쟁을 일으켜 '난징조약'을 체결하고 중국 근현대사 문을 연 도시. 남경의 젖줄로 밤뱃놀이의 절경을 자랑하는 강 '진회하'(秦淮河), 진회하 근처에 자리잡은 공자 사당 '부자묘'(夫子廟)와 축구장 42개 규모 초대형 부지를 자랑하는 옛 과거시험장 '공원'(貢院). 중국의 3천600여 년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난징에는 이처럼 수많은 이들의 흔적이 흩어져 있다.

◆일제 침탈 상흔 깊은 곳, 우리 민족이 숱하게 다녀간 곳

난징은 우리 민족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신라 최치원이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해 이곳에서 율수현위로 부임하고 백제 사신이 오갔으며 원나라 요청을 받은 2만3천 고려군이 이곳으로 원정을 떠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은 근대 일본 제국군의 침탈을 받아 우리와 비슷한 근현대사 상처를 안고 있다. 중일전쟁 때 처참히 파괴되고 난징대학살을 당했다. 일본군이 전쟁 중 만든 위안소에서 조선인과 중국인, 일본인이 무차별로 끌려와 비인간적 학대를 당했다. 일본군이 당시 설치한 위안소 가운데 가장 큰 곳이 오늘날 전시관으로 남았고 조선인으로 당시의 참상을 고발한 유일한 증인 '박영심'의 이름도 고스란히 기록했다.

우리 민족의 항일운동 거점 중 하나로도 큰 역할을 했다. 김구는 1930년대 난징에서 정치 지도자로 가장 빛나는 시절을 보냈다. 김원봉의 의열단이 중심이 돼 좌파 '혁명'과 우파 '민족'이 합작, '민족혁명당'을 결성하기도 했다.

책은 이처럼 난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담되 중국사와 한중의 관계사라는 두 가지 기준을 중점으로 서술했다. 아울러 난징박물관, 총통부, 부자묘, 진회하 등 난징의 여러 명소, 관광지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도 함께 다뤘다.

지은이는 "난징은 이야기가 풍성한 곳이나, 재주가 부족해 그 이야기를 책에 모두 담지 못했다"고 겸손을 표하면서도 "난징은 중국 고대사부터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터널이자, 고구려와 백제 이후 역대에 걸쳐 우리 국제 활동 무대였다. 이 책이 독자를 실망시킬지언정, 찾는 만큼 보물을 캐낼 수 있는 도시 난징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 자부했다.

304쪽. 1만6천원.

 

※신경란은=

대구에서 태어나 열여덟 해를 지낸 후 객지살이를 시작, 지금까지 여러 도시를 떠돌았다. 서울과 베이징을 거쳐 난징에서 지낸 십여 년 삶이 이 책을 쓴 원동력이 됐다. 서울에서는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일했고, 중국에서는 번역 일을 주로 했다. 현재는 '한서'를 번역 중이다.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뒤지고 뒤지면 제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집단지성의 문명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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