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유발 하라리 지음/김영사 펴냄

유발 하라리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를 시작으로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까지 이른바 '인류 3부작'을 펴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책을 통해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보잘 것 없는 존재였던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한 뒤 스스로 신의 자리를 넘보게 됐다는 대서사를 통해 불가해한 세상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탁월하고 대담한 이야기로 각계각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세상의 의미를 구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쓴 셈이다.

이번에는 유발 하라리가 '우리' 속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한다. 그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파고들기 위해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이 남긴 회고록에 주목해 '유발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을 펴냈다.

◆역사 속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의 본질적 차이', '역사의 진보와 방향성', '역사 속 행복의 문제' 등 광범위한 질문을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는 하라리는 기로에 선 21세기 사피엔스를 위해 인류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탐색한 '인류 3부작' 이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출간돼 1천600만 부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21세기 사상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이 책은 인류 3부작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선행 연구로, 2002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하라리의 박사 논문이기도 하다.

하라리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파고들기 위해 주목한 것이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이 남긴 회고록이다.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은 군인회고록은 1450년에서 1600년 사이 34명이 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문헌으로, 17세기 중앙집권적 근대국가가 등장하기 전 역사(history)와 개인사(lifestory) 사이의 긴장 관계를 첨예하게 드러낸다.

사실상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의 회고록은 오늘날 기준에서는 구색을 갖춘 글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과관계로 이어진 이야기라기보다 제각각인 에피소드의 나열이다. 역사적 사건과 자신의 현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다. 또 그들은 회고록에서 사실을 감정이나 생각이라는 필터를 거쳐 묘사하지 않았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추상적인 경험보다 구체적인 행동이 명예의 준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은 역사와 개인사가 일치하는 나의 역사였고, 역사와 개인사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잣대로 손색이 없다.

하라리는 역사 속 개인의 의미에 주목한다. 왕과 국가의 권력에 맞서 자신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우려 했던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의 삶을 통해 역사 속 개인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논리적 인과관계 없는 군인들의 무용담 기록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찾아 의미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르네상스 시대 군인은 명예를 목숨처럼 여긴 전사 귀족(warrior noblemen)이었다. 귀족이 아니면 역사 속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없었고, 정체성도 빼앗기고 말았다. 여기서 개인은 전사 귀족도 하급 전사도 모두 포함한다.

◆'우리'의 역사와 '나'의 역사

하라리는 "인간의 현실 중 '역사적인' 일부가 먼 과거에 속할 때는 '역사'라고 불리고, 가까운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속할 때는 '정치'라고 불린다"고 말한다. 역사적 현실의 경계선이 어디인가 하는 문제는 학문적인 질문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질문이다. 경계선 안의 사람과 사건들에서 새로운 권력과 역할이 생성된다. 반면 역사적 현실에서 밀려나면 정치의 세계에서도 밀려난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이 역사적 현실을 묘사하는 방식을 역사와 개인사의 동일시로 고찰한다. 일화 중심적인 역사는 기록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며, 언제라도 추가할 수 있게 결말이 열려 있다. 각자가 인과율의 억압 없이 자유로운 글을 쓸 수 있다면, 삶 또한 의미를 가지며, 닫히지 않을 것이다. '왕조-민족의 위대한 이야기'는 개인사는 분리되어 떨어져나간 '우리'의 역사다.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은 역사와 개인사가 일치하는 '나'의 역사다. 물론 당대 회고록 저자는 귀족 남성으로 정체성이 한정되었고, 역사의 내용은 명예로운 행동으로 국한되었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역사와 개인사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잣대로는 손색이 없다.

하라리는 현재 역사가 결말을 열어둔 일화 모음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점친다. 르네상스 군인회고록이 개인사와 역사를 동일시했던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개인사가 역사보다 우위를 점하려 한다는 것이다. 역사가 개인사와 개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야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주장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는 이 논문을 쓰고 7년 뒤 '사피엔스'를 통해 역사의 흐름과 개인의 행복 사이에는 아직 커다란 공백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이 공백을 채워나가야한다고 말한다. 516쪽, 2만2천원.

 

 

관련기사

문화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