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미식가들/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83세까지 장수한 영조는 고추장을 즐겨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의 미식가 15명의 이야기를 담은 '조선의 미식가들'이 출간됐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83세까지 장수한 영조는 고추장을 즐겨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의 미식가 15명의 이야기를 담은 '조선의 미식가들'이 출간됐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어릴 적부터 입맛이 남달랐던 허균은 유배지에 와서 보니 쌀겨조차 부족했고 밥상 위의 반찬이라곤 썩어 문드러진 뱀장어나 비린 생선에 쇠비름과 미나리뿐이었다. 그나마 하루에 간신히 두 끼를 먹다 보니 종일 배가 고팠다. 허균은 여러 음식을 종류대로 나열해 기록하고 때때로 보면서 고기 한 점을 눈앞에 둔 셈치기 위해 글을 썼다. 그리고 글의 제목을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맛을 다시다'라는 뜻으로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고 붙였다. …… '도문대작'에서 언급된 지역은 동해·남해·황해를 비롯하여 조선 팔도에서 빠지는 곳이 없을 정도다. 벼슬한 뒤로는 남북으로 임지를 옮겨 다니며 이런저런 음식을 대접받았다. 이쯤 되니 우리나라에서 나는 음식이라면 고기며 나물이며 먹어보지 않은 게 없다고 하니, 그야말로 허균은 '식신로드'의 주인공이었던 셈이다.(조선의 미식가 中)

먹방인 쿡방이 유행하고 자신이 다닌 맛집을 SNS나 블로그에 남기는 것이 유행이다. 조선시대에도 이처럼 먹은 것을 기록하고 남긴 15명의 미식가들이 있었다. 이들이 남긴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조선의 미식가들'이 출간됐다.

◆왕부터 사대부 여성까지, 조선의 미식가들

음식을 문화와 인문학, 역사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해 온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가 조선시대 음식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지은이는 조선시대 문헌을 두루 살펴 직접 먹거나 만들어본 음식에 관한 글을 남긴 15명을 뽑아, 그들의 글을 통해 음식 취향과 경험을 책에 담았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남긴 글에서는 음식이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성리학을 중시했던 그들이 '군자라면 먹고 마시는 일을 즐기지 말고 피해야 한다'는 공자의 말로 인해 음식은 절제해야하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균은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성이요, 특히 식욕은 생명과 관계된. 옛 선현들이 먹고 마시는 일을 천히 여겼던 것은 먹는 것을 탐해 이익을 좇는 일을 경계한 것이지, 어찌 먹는 일을 폐하고 음식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것이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책에서는 다섯 가지 사건과 시기로 한반도의 음식 역사를 구분한다. 불교의 유입에 따른 육식 기피, 원나라 간섭기 육식 문화의 확대와 새로운 음식 유행,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이 된 성리학의 영향, 17세기 본격 시작된 연행사의 청나라 방문, '콜럼버스 교환'으로 새로운 식재료의 등장 등이다. '조선 미식가' 15인의 글에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음식 취향과 경험이 등장한다. 왕과 어의, 선비, 사대부 여성 등 15명은 살았던 시대도, 남긴 글의 형식도 신분이나 성(性)도 다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각의 시대에 유행했던 음식과 식재료, 요리법, 그리고 생생한 '식후감(食後感)'까지 살필 수 있다.

◆음식에 대한 애정을 글로 남긴 미식가들

고려 말 조선 초를 살았던 이색은 원나라에서 들어온 소주와 두부에 관한 시를 지었고, 조선 중기 연행사로 연경을 다녀온 김창업은 중국에서 맛본 새로운 음식에 관한 글을 남겼다. 정조 때의 학자 홍석모는 세시기를 통해 조선 후기 민간의 세시풍속을 자세히 기록했다.

사대부 여성들도 서재에서 요리에 관한 글을 남겼다. 이들은 요리법을 연구하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었다. 조선 여성이 쓴 가장 유명한 요리책은 장계향이 쓴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과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가 있다. 이들은 손수 요리책을 지어 집안 대대로 물려주었고, 여강 이씨는 집을 떠나 임지에 있던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며 요리법과 음식 맛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사대부가 여성들이 남긴 글은 조선시대 지배층의 식생활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음식만을 주제로 한 글은 흔치 않았지만, 허균과 김려, 이옥 등은 직접 맛본 음식에 관해 글을 남겼다. 허균은 조선 팔도에서 먹어본 음식의 품평과 함께 먹은 장소, 요리법, 잘 만드는 사람과 명산지 등의 정보를 '도문대작'에 자세히 기록했고, 이옥은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의 맛과 먹는 방법을 글로 남겼다. 김려는 귀양살이를 하며 박물학적 관심에서 어류학서 '우해이어보'를 썼는데, 그는 고추를 좋아해 고추에 대한 애정 가득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유교사회에서도 음식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고 글로 드러낸 이들 덕분에 우리가 조선의 음식에 대해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352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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