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문학상 논픽션부문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⑤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그것은 지난 6월 달이었다. 쑤이까이 망망계곡, 이 작전에서 크게 당했다. 작전 미숙과 통신 두절이 발목을 잡았다. 서 중위는 이 작전에서 그 당시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3중대에서는 우리들에게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었어야 했다.

그것이 문제가 됐고 그다음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7중대의 중대장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했었다. 처음부터 첨병 소대에 치명타를 받게 해서는 대열이 흐트러졌고 상황 종료 모양으로 해 놨으니 자연히 시간만 지체하는 꼴이 된 것은 물론이다. 서 중위로서는 사태를 주시하고 어쩐지 이번은 정말 당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에 힘이 빠지고 열기가 식는 느낌을 받았었다.

서 중위는 즉시 잠시 벌어졌던 상황을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수륙양용 차 없이 진격하는 방법을 모색한 후 다시 보고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앞을 쳐다봤는데 이번에는 그 러닝 셔스 장교가 없어진 대신 3중대 진지에 남아있다 튀어나온 듯한 동기생인 이 중위가 서 중위를 향해 급히 오는 것이 보였다. 이 중위가 왜 빨리 숲으로 들어가지 않느냐는 짜증스러운 소리를 자신에게 다가오며 큰 소리로 하는 것을 들었다.

서 중위는 나름대로는 중대장에게 수륙 양용차는 포기하고 이제 2열 종대로 들어가겠다는 보고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또 아무리 다급한 처지라 하더라도 서 중위는 어디까지나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입장이었다. 밤하늘엔 먹구름이 달빛을 가리고 더 컴컴해지더니 소나기가 퍼 붇기 시작한다. 그대로 비를 맞다가 판초 우의를 풀어 텐트를 치기도 한다.

결국 서 중위 소대의 첨병 분대가 3중대 대원들의 뒤를 따랐고 긴 중대의 대열이 차츰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긴장을 해 들어갔던 대열의 선두가 겨우 숲을 향해 20여 미터쯤 들어갔을 때였는데 그만 '꽝~하는 소리와 함께 적이 쏜 로켓 한 발이 또 대열의 맨 앞줄에서 폭발을 했다.

불행하게도 앞장을 섰던 3중대 대원 2명이 모두 쓰러지는 것이 보였고 뒤따르던 서 중위 소대는 멈칫하며 모두가 제 자리에 웅크려 잠시 앉았다가 급히 그쪽을 피해 우회 진입로를 찾아 무작정 숲속으로 전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불과 100여 미터 정도 진입을 했을 때 중대장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내용은 제자리에서 경계를 하되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더 이상 진입을 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사실상 상황은 이미 끝이 난 후다. 3중대 대원들은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에서 거의 모두가 빠져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용감하기로 소문난 3중대장 장 대위도 팔에 총을 맞아 하얀 붕대를 칭칭 감고는 얼굴을 찌푸린 채 숲을 빠져나가기 위해 서 중위 소대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물론 서 중위는 인사를 했으나 그는 아무 반응도 없이 그저 찡그린 얼굴 표정으로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지나 나간다. 그러나 다음부터 시야에 들어오고 있는 광경은 차마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참혹한 것이었다.

적을 발견하고 뒤쫓다 머리에 총을 맞았다는 소대장과 많은 대원들이 이미 시신이 된 채 들것에 실리거나 대원들의 손에 끌려 줄줄이 이어 나오는 비통한 광경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 대원이 전사하면 세 사람의 대원이 전사자를 위해 붙어야 했다. 두 사람은 시신을 들어야 하고 한 사람은 장비를 모두 챙겨 그 옆에서 경계를 하며 따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 오늘은 하늘도 무심한 날이구나!" 이미 상황이 끝이 난 뒤라 서 중위는 비참하게 죽어간 전우들의 영혼에 비통한 마음을 억누르며 정중히 묵례를 하는 수밖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20대 초반 젊음이들이 이곳에서 죽고 사는 건 자신들의 의지완 상관이 없었다.

서 중위가 나중에야 자세히 들었던 내용이지만 그렇게 3중대가 허무하게 적들에게 당했던 것은 갑작스러운 적들의 공격에 모두가 반사적으로 바싹 마른 사질토 위에 엎드려 응사를 하게 되었는데 어쩐 일인지 총알이 나가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어이없게도 지급받은 M16 소총은 불량품이 더러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쩌 저 쩡!'소리가 귀를 가르며 지축을 흔들더니 바로 서 중위 소대에게도 정면과 옆구리에서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작전이 빗나간 것이다. 따따따 땅 따다다 따다 당 소리에 놀란 소대원들은 소총을 연발로 놓고 좌우 없이 쏴 대기 시작한다.

적이 가까이서 공격하고 있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엎드려 수류탄을 까서 정면으로 던지고 유탄 발사를 하는데 바로 옆에서 소대원이 맞았는지 "아 앗!" 하고 드러눕는 것이 보인다. 맞았냐? 하니까 그냥 고개를 떨군다. 서 중위는 작전이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긴박하게 작전상 후퇴를 처음 단행했고 즉시 철수했다.

966포대 지원 포 사격이 적을 차단시켰고 2열 철수 행군은 이어졌다. '같이 죽을 수도 있었구나.'를 되씹다 맥이 빠진다. 그때가 새벽 3시쯤, 날은 개고 그날도 새벽에 뜨는 그믐달은 동쪽 하늘에 비치고 무심한 초원에 날이 밝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서 중위 소대는 이슬에 젖고 달빛에 젖어 쓴맛을 삼키며 귀대했다.

다시 그때가 떠오른다. 아!..... 차 중사, 박 소위, 구 중위, 장 병장 등의 모습들, 다시 볼 수 없는 그들이 꿈에 보인다. 몇 번의 작전에서 전사자가 된 그들이다. 가엾고 애처롭게 마음을 할퀴고 지나간다. 자신만 멀쩡히 살아있다는 게 현실 같지 않고 미안해진다.

구 중위의 비보를 들은 여자 친구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차중사의 와이프와 애들은... 그리고 장병장의 부모는 모두에게 이 밤은 끊어지고 바뀌어 전 인연의 벽을 실감하는 밤이었을까... 몇 주 전 서쪽의 초승달은 이제 동쪽에서 그믐달로 바뀌어 이 병동 위에 떠 있다 사라진다.

잠시 후 태양은 서서히 남중국해 해면 위로 불꽃을 토해내고 벌써 훤해진 햇빛은 병실 창문을 노크도 없이 스며든다. 정신이 또렷해진다. 건너편 침대의 새로 들어온 부상병이 통증을 호소하는 신음소리에 이곳이 어디인지를 인지하고 서 중위는 일찍 깼다.

짧은 3개월이었지만 서 중위를 태워 어디든 다녔던 박 상병, 끝내 귀대하지 못하고 들판에서 죽었다. 아까운 또 한 사람의 젊음이 이국땅에서 그리던 귀국의 꿈이 꺾이었다. 서중위는 자기탓인듯 죄스럽다. 시신은 찾아 백골만 고국에 보내졌다.

꼬딴의 언니 꾸엉판도 그곳에서 죽었다. 한국군의 수색작전에 그 부대 근거지가 다 불태워 없어졌다. 그녀가 하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당신들은 모른다. 우리 베트남 민족이 얼마나 수난 속에 살아왔는지..' 그녀는 그의 아버지처럼 자신의 나라를 구하는 데 힘을 보탠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정확히 1973년 3월, 월맹은 사이공을 함락시켰다. 큰 나라 미국이 결국 게릴라전에 손을 든 것이다. 엄청난 돈만 그곳에 뿌리고 망신만 당한 꼴이 되었다. 자주독립의 역사를 만들었다. 안주했던 월남 정부군 수뇌들은 자기 가족만을 데리고 국외로 탈출하기 바빴다. 한국군도 3월 말까지 완전 철수를 단행했다. 이렇게 월남은 통일을 이뤄냈고 이젠 당당히 독립국가로 서게 됐다. 월남이 아니라 월맹이 해낸 일이다. 어느덧 46년이 지난 지금 월남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편을 갈라 총질하고 적이라고 보이면 그냥 쏴 대고 죽이고 불태우던 짓들이 이제는 멈췄을 것이다. 지상의 모든 생물을 삶아 낼 기세 같던 한낮의 붉은 태양과 야간 내내 정글 속을 비추며 우릴 더 향수병에 젖게 하던 그 달빛도 이젠 늘 푸른 들판을 내려다보며 모두 편한 표정이 됐을 것 같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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