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김도훈·박시윤 지음/디앤씨 펴냄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김도훈·박시윤 지음/디앤씨 펴냄

'거친 바다 위 세 척의 배는 가랑잎처럼 떠돌았다.'

1882년 왕명을 받아 울릉도로 향하던 울릉도검찰사 이규원은 배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전 울릉도는 수백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었다. 고려 때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탓에 조선 태종 때부터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키고 섬을 비우는 쇄환정책(刷還政策)을 펴왔던 터였다. 대신 2, 3년에 한 번씩 수토관을 보내 섬을 관리했다.

1882년 고종은 울릉도를 계속 비워둬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이규원을 현지로 보내 섬의 상황을 낱낱이 보고하도록 했다. 이규원은 지금으로 치자면 군 사단장급 장성에 해당하는 정3품 무관이었다. 그는 10여 일 동안 울릉도 전역과 해안을 검찰한 뒤 보고서와 지도를 작성해 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고종이 이듬해 16가구 54명을 섬으로 이주시키며 울릉도 재개척의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이규원이 남긴 보고서가 '울릉도 검찰일기'다. 이규원은 고종에게 하직인사를 한 뒤 출발해 울릉도를 조사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2개월의 여정을 일기에 담았다. 특히 12일간의 울릉도 조사 기록엔 매일의 날씨와 지형, 식생, 만난 사람들, 느낀 점 등을 상세히 적었다.

책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은 검찰일기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울릉도·독도 이야기다. 울릉도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는지, 조선 정부는 왜 울릉도를 비워두고 관리했는지, 울릉도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면 독도를 어떻게 인지할 수 있었는지, 다시 사람이 살게 된 것은 언제 부터였는지 등 상당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지나쳤을 우리 역사를 쉽게 풀어 알려준다.

태하천 상류에 자리 잡은 서달마을에 겨울이 찾아왔다. 눈과 바람이 어우러져 수묵화 같은 풍경을 만들었다. 김도훈 기자 태하천 상류에 자리 잡은 서달마을에 겨울이 찾아왔다. 눈과 바람이 어우러져 수묵화 같은 풍경을 만들었다. 김도훈 기자

책은 130여 년 전 이규원의 여정을 따라가며 울릉도·독도 역사를 하나씩 끄집어내는데, 픽션과 논픽션을 결합한 독특한 형식으로 독자의 흥미를 돋운다.

'종이 위의 섬' 이란 제목의 8장(章) 소설 부분이다.

"유연호는 잠들지 않았다. 낱장으로 그린 그림들이 한 장의 종이 위에 퍼즐을 맞추듯 제자리를 잡아 나갔다. 붓끝에 걸린 그의 감각이 새하얀 종이를 생생히 채웠다. 점잖고 단아했던 그는 밤새 지지리도 궁상맞은 몰골이었다. (중략) 칠흑의 밤, 그만의 기법은 아득한 이끌림으로 되살아나 종이 위에서 분출하였다. 먹 선은 산 능선을 타고 기어 내려와 물속에 잠기는 듯싶다가 다시 기어올라 선명하게 산과 바위를 일으켜 놓았다. 산과 기암괴석이 밤새 종이 위에 적당하게 올라와 있었다."

다음은 같은 장 해설 부분이다.

"당시 검찰사 일행 중엔 그림을 그리는 화원이 있었다.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 유연호. 지금으로 치자면 국가 소속 공무원이었다. (중략) 유연호 같은 차비대령화원은 '도화서'가 아닌 '규장각' 소속이었다. 1783년 정조는 유능한 화원을 왕실에서 수시로 데려다 쓰기 위해 차비대령화원 제도를 만들었다. 도화서 화원을 대상으로 별도의 시험을 통해 뽑힌 이들은 '당대 최고수'였다. 규장각 일지인 '내각일력'에 따르면 1783년에서 1881년까지에 기록된 차비대령화원은 100여 명. 김홍도, 김득신 등 친숙한 이름도 여럿 눈에 띈다. 다시 말해 고종은 당대 최고 화원 가운데 한 명인 유연호를 울릉도 검찰에 동행하도록 명했다. 고종의 울릉도·독도에 대한 검찰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사 일행이 뱃길로 이동한 북면 해안은 울릉도 해안경관의 백미로 꼽힌다. 울릉군 서면과 북면 경계에 있는 초봉에서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 거대하게 솟은 바위봉우리가 해발 430m 송곳봉이다. 왼쪽 바위섬은 이규원이 '공암'으로 기록한 코끼리바위다. 김도훈 기자 검찰사 일행이 뱃길로 이동한 북면 해안은 울릉도 해안경관의 백미로 꼽힌다. 울릉군 서면과 북면 경계에 있는 초봉에서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 거대하게 솟은 바위봉우리가 해발 430m 송곳봉이다. 왼쪽 바위섬은 이규원이 '공암'으로 기록한 코끼리바위다. 김도훈 기자

지난해 매일신문 '에세이산책', 2017년 '매일춘추' 필진으로 참여했던 박시윤 작가가 소설 부분을 맡아 썼다. 김도훈 매일신문 기자는 이 책을 기획하고 해설 부분과 부록을 썼다.

두 지은이가 가장 애썼던 부분은 '역사의 대중화'다. 박시윤 작가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소설을 통해 130여 년 전 이규원 검찰사 일행과 울릉도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김도훈 기자는 당시 여정을 소개하고 그동안 제대로 몰랐던 울릉도·독도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쉽게 풀어 설명했다. 독자들이 역사의 흔적을 직접 찾아가볼 수 있도록 장소에 대한 안내도 빼놓지 않았다. "상상력을 동원했지만 기록에 없는 이야기는 피했고 객관적 사실을 따랐다. 그러면서도 독자가 읽기 편하도록 애썼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울릉도 검찰 이듬해 울릉도에 첫 이주민이 들어온 이후 지난 100여 년 간 섬사람들이 일궈온 삶과 문화 이야기도 부록으로 엮었다. 김 기자가 올해 1월 초까지 5년 넘게 울릉도에 근무하며 찍은 100여 컷 사진은 책의 또다른 볼거리다.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를 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 책을 이렇게 평한다.

"책장을 넘기면 울릉도의 아름다움과 함께 참으로 안타깝고 놀랍고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사실이 전개된다. 그래서 울릉도의 아름다움은 더욱 처연하게 다가오고 기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각성과 함께 우리 국민들이 모두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일어난다."

울릉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화산이다. 분화구 안에 자리 잡은 나리마을은 화구벽을 이룬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나리마을에서 본 겨울 화구벽 풍경. 김도훈 기자 울릉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화산이다. 분화구 안에 자리 잡은 나리마을은 화구벽을 이룬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나리마을에서 본 겨울 화구벽 풍경. 김도훈 기자
사동3리 간령 쪽에서 본 사동 전경. 사진 왼편 멀리 보이는 봉우리 아래가 사동1리다. 사동은 4㎞의 길고 오목한 해안선을 따라 1리, 2리, 3리 마을이 이어져 있다. 김도훈 기자 사동3리 간령 쪽에서 본 사동 전경. 사진 왼편 멀리 보이는 봉우리 아래가 사동1리다. 사동은 4㎞의 길고 오목한 해안선을 따라 1리, 2리, 3리 마을이 이어져 있다. 김도훈 기자
울릉읍 저동·도동, 북면 천부 등 울릉도 곳곳에 있는 '까끼등 마을'은 깍새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깍새는 산란기가 되면 산등성이 쪽으로 올라오는데 바닷가 높은 곳을 '깍새등' '각새등'으로 부르다 지금은 '깍끼등' '까끼등' '깍깨등' 등으로 부른다. 사진은 저동 까끼등 마을이다. 김도훈 기자 울릉읍 저동·도동, 북면 천부 등 울릉도 곳곳에 있는 '까끼등 마을'은 깍새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깍새는 산란기가 되면 산등성이 쪽으로 올라오는데 바닷가 높은 곳을 '깍새등' '각새등'으로 부르다 지금은 '깍끼등' '까끼등' '깍깨등' 등으로 부른다. 사진은 저동 까끼등 마을이다. 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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