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해마를 찾아서/ 윌바 외스트뷔, 힐데 외스트뷔 지음/ 안미란 옮김/ 민음사 펴냄

인간 뇌 속 해마 인간 뇌 속 해마

 

사람들은 매일 기억과 씨름하며 살아간다. 당시엔 분명 뇌리에 박혔다고 생각한 각종 정보들이 시간이 지나 다시 머리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거나 다른 정보들과 뒤엉켜 뭐가 뭔지 모를 때가 많다. 기억이 나지 않아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누구도 반기지 않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기억에 대한 불안은 나이가 들면서 더 커진다. 도대체 기억이 무엇이기에 우리의 삶 곳곳에 침투해 영향을 미치는 걸까.

지은이인 신경심리학자 윌바 외스트뷔와 언론인이자 작가인 힐데 외스트뷔 자매는 450여 년 전 해마의 발견에서 시작해 현대의 기억 연구에 위대한 기여를 한 실험과 연구 성과를 짚어 나가며 기억이란 무엇이며, 어떤 과정으로 우리의 경험이 기억으로 저장되는지, 기억을 효과적으로 불러내기 위한 기억 훈련법은 무엇인지, 허위 기억과 망각은 왜 일어나는 것인지를 살피고 있다.

◆인간 뇌 속에서 발견한 해마

바다에 사는 생물과 우리 뇌 사이의 거리는 멀지만, 바다의 해마와 뇌의 해마 사이에는 공통점이 몇가지 있다. 새끼들이 바다에서 헤엄치는데 위험이 없고 그들이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배에 알을 품는 해마 수컷처럼, 인간 뇌의 해마 역시 무언가를 품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기억이다. 해마는 기억이 크고 강해져서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지키고 꼭 붙잡아 둔다. 해마는 기억을 위하 인큐베이터인 것이다. 이탈리아 해부학자 율리우스 아란티우스는 1564년 뇌의 측두엽에 묻혀 있는 해마를 처음 발견했다. 바다의 해마와 비슷하게 생겨 '해마'라 이름을 붙였다. 이런 해마의 발견은 해마를 제거해 순간만 기억하는 사람 헨리 몰레이슨과 그 반대편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 솔로몬 셰레셰프스를 연구함으로써 인간 기억의 작동 방식과 현대의 기억 연구가 본격 진행됐다.

바다 속 해마 바다 속 해마

 

◆ 기억은 인간의 뇌 어디에 있을까

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자 덩컨 고든과 앨런 배들리는 1975년 기억이 어떻게 그물에 갇히는가를 보이기 위해 잠수부를 상대로 스코틀랜드의 해안에서 했던 잠수 실험을 오늘날에 재현했다. 당시 잠수부들은 다리 위와 수심 5m라는 서로 다른 조건에서 단어 목록을 암기했다. 그 결과 물 속에서 외운 단어는 물속에서 훨씬 더 잘 기억해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기억의 상황 의존적 성질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시와 동일한 환경에서 꺼내기가 수월함을 알려 준다. 기억이 다른 무엇에도 관계없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헤엄치고 다니는 일은 드물고, 다른 물고기와 함께 그물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기억을 다시 꺼내야 한다면, 함께 묶여 있는 다른 기억 몇개를 함께 찾는 게 고기가 잡힐 가능성이 높다.

◆ 허위 기억은 어떻게 들어오나

우리가 가진 기억 하나하나는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대부분의 기억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회상을 할 때마다 재구성이 되어야 한다. 뇌는 우리의 모든 경험을 영화 필름처럼 정확하게 저장할 필요가 없다. 대신 해마가 경험들을 꼭 붙잡아 주는 기억 망으로 엮여지게 된다. 그럼으로써 공간이 생기고 우리의 생각이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허위 기억의 구성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관여한다. 우리가 겪은 일은 시간이 지날 수록 희미해져 허위 기억이 들어오기 쉽고, 일상적인 일은 적극적이고 이상한 일보다 쉽게 거짓 기억이 되어 파고 들어온다. 진짜 기억은 사실 상상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허위 기억은 환상에서 시작하여 기억을 거쳐 어느 순간 현실로 인식되는 것이다.

해마를 찾아서 책표지 해마를 찾아서 책표지

◆기억, 얼마만큼 좋아질 수 있나

런던 교수인 엘리너 매과이어는 런던 택시 기사의 뇌와 일반인의 뇌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검은색 런던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들은 장소 기억 시험을 통과해야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이 시험에는 GPS의 도움 없이 2만5천개의 도로와 320개의 루트를 기억해야 한다. 런던은 단순히 오래된 도로와 새로운 도로, 큰길과 샛길의 미로일 뿐 아니라, 공간 기억을 극한까지 훈련할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런 환경이다. 훈련 전 택시 기사 지망생들의 해마는 대부분 사람들의 것과 같은 크기였다. 그러나 매과이어는 오토바이를 타고 장소 기억을 집중적으로 훈련한 택시 기사들의 경우 해마도 달라졌다는 걸 발견했다. 대부분 사람들보다 해마가 있는 뒤쪽이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뇌가 훈련될 수 있다는 증거이다.

◆미래에 대한 상상은 기억의 일부

'미래에 대한 상상은 기억의 일부다.' 미래 연구자인 호주 퀸즐랜드대학의 토머스 서든도프가 이 기능을 밝히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기억 체계가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질문의 답은 진화에 있다고 봤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생각이 뇌의 기억 체계에 포함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진화적 이점 때문이라는 것. 생존에 관해서라면 과거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유용할 뿐이다. 오류투성이이고 유연하지만 살아 있는 우리의 기억은 살아 있고 유연한 미래의 비전을 만드는 기능을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었더라면 인간에게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화기와 기차, 잠수함과 비행기.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먼저 꿈을 꾸기 시작했기 때문에 존재한다. 인간은 꿈을 꾸는 존재이며, 꿈의 뿌리는 기억에 있다. 기억은 환상의 재료이다. 그리고 환상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에너지다. 388쪽 1만6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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