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⑤열망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나도 얼른 밖으로 나가 고양이세수를 한 다음 식당을 향했다. 식당이라고 해봤자 역시 좁은 공간에 나무로 된 밥상이 길게 놓여있는 정도였지만. 그러나 여공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보였다.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 그녀들에게 또 다른 꿈을 안겨주며 희망의 터널 속으로 몰아넣었는지도 정녕 알 수 없다.

그리고 모두들 바쁘게 식사를 마친다. 늘 그렇듯 머리카락이 섞인 밥그릇을 비우며 그녀들은 단 한마디 말이 없었다. 어젯밤 꿈 얘기, 오늘의 일 얘기, 아님 가정사 등등 하고 싶은 얘기도 많을 법한데 그녀들은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는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들을 바라보며 가슴한편이 또다시 먹먹해왔다 누군가의 말대로 시절을 잘못 만났는지도 모르는 일이겠고 부모 복이 없는 건지도 알 수 없는 문제겠지만 다만 분명한 것은 자신의 운명, 태어남 그 자체가 모순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밥 대신 물 한 사발을 마시고 일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마음속이 여전히 찝찝했다.

가발공장에는 야학교를 다니는 몇몇 학생들이 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정규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불우한 환경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밤잠을 설쳐야만 하는 야간작업도 전혀 싫은 기색 없이 한달 내내 하는 학생도 있었고 조금이라도 수당을 더 받기위해 잔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학비를 벌기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내가 본 견지에서는 마치 불타오르는 듯했다. 가끔 정규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찾아오곤 했는데 그들은 중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들인 거 같았다. 비록 생활여건이 달라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수시로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아마도 꿈은 같은 걸로 여겨졌다. 어느 때는 사회문제 또 그 어느 날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각자 가정에 대한 얘기 그리고 언제나 매듭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기도 하는 모양이었는데 결론은 너무 불공평한 빈부의 격차, 학업을 계속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들을 비관하고 속상해하는 정도였다. 누가 나무랄까. 배우고 싶다는데 더 많이 알고 지식을 쌓아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고 싶다는데. 사회를 원망하면 무슨 소용이며 가진 거 없는 부모를 탓하면 그렇다고 되돌릴 수 있는 문제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쓰는 듯 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강우라는 야학생은 늘 배움을 강조하며 공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여러분, 배워야합니다. 배우지 않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제 아무리 어려운 여건 환경이라지만 틈을 내십시오. 그것만이 살길이라 여기고 용기와 힘을 내셔야합니다. 비록 가진 거 없어 정규학교엔 다닐 수 없지만 야학이 있잖습니까. 그곳은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친구들과 함께 힘껏 돕겠습니다."

힘주어 말하는 서강우의 의지에 공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손해 볼 거 없잖아? 공장일 끝나고 자유 시간에 다니는 건데."

"울 엄마 알면 혼쭐날 텐데......"

"왜?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그럼 얘기하지 마."

"그럼 되겠다, 비밀."

근심과 걱정이 앞섰던 공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꼴값들 하고 자빠졌네."

그러나 걸림돌이 생겼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감독이 한껏 비아냥거리며 반대하고 나섰다. 문제는 야학에서 밤새 공부를 하면 다음날 피곤이 겹쳐 일에 지장이 생긴다는 거였다. 물론 시간은 자유였다. 일을 마치고 잔업이 없는 날은 저녁 8시 퇴근했기에 집으로 가는 공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씻은 다음 공장을 벗어나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길을 거닐며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무려 4일 정도는 잔업이 있는 관계로 피곤이 누적될까 모든 걸 포기하고 자리에 눕기 일쑤였다. 다음날 새벽 거뜬한 정신과 육체을 지탱하려면 오직 그 방법밖엔 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부 학업에 뜻을 두고 늘 가슴한편에 소망으로 여겼던 공원들은 어려운 여건과 감독의 들볶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야학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감독의 매서운 눈초리와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못살게 구는 역할은 날이 갈수록 극심해졌다.

"졸다 또 실수한 거잖아!"

멀쩡한 가발을 내던지기 부지기수였고 날카로운 음성으로 어느 때는 머리를 쿡쿡 쥐어박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원들의 의식수준은 높아졌고 이젠 좀 더 당당히 자신의 의사를 표출할 수도 있게 됐다. 서강우는 그것이 교육의 힘이라고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공원들의 세상이 열리고 있다. 억울해도 참아야했고 분해도 알지 못해 따지고 덤빌 수 없었던 그들의 삶, 배움은 그만큼 소중한 그 무엇이었으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힘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열심히 야학교에 드나들었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려 몸이 천근만근 버거웠지만 배움의 시간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교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가르치는 대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보다 먼저 배운 사람이 다음 사람을 가르치는 릴레이식 교육방법, 나도 언젠가 저 교단에서 목청을 돋우는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나는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을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제자리에 돌려놓곤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라는 말을 나는 머릿속에 다시 한 번 새기며 이를 몇 번이고 앙다물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눈보라가 휘날리고 봄꽃이 피고 가을엔 사방이 곱게 물든 단풍으로 세상을 뒤덮을 즈음 나는 드디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기쁨이 나를 휘감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가난하기에 할 수 없었던 공부, 돈이 없기에 남의 집 식모로 팔려가야만 했던 서글픈 지난날, 나는 합격자 발표 날 가슴을 터놓고 엄청 울었다. 야학교의 선생님들이 내 등을 다독이며 격려해줬다. 공원들도 다 함께 축하해 줬고 나도 스스로를 자축하며 들뜬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에 몰두했다.

5. 비정한 사랑

공원 일명 공돌이 안재민이 공장 내 변소에서 목매달아 죽은 것은 큰 충격이었다. 평소 사랑하던 여대생 지화영의 결혼소식에 좌절한 나머지 그는 단 하나뿐인 목숨을 거침없이 버린 것이다. 처음 지화영은 가난한 집 딸로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가발공장에 취직했으나 공장장이었던 안재민은 무려 10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그녀를 알뜰살뜰 보살폈다. 그리고 학교를 보내 학업을 계속하도록 도와줬던 것이다. 안재민역시 가진 거라곤 불알 두 쪽밖에 없는 형편이었지만 매달 월급을 그녀의 학비에 보탰고 중 고등학교를 마치자 공장부근에 방을 얻어 동거에 들어갔다.

(2월26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인 '열망' 6회가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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