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고급 노숙자/김정래

 

어느 늦은 봄날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 떠돌이 개 한마리가 들어왔다. 개는 머리털이 텁수룩한 것이 앞으로 길게 내려 한 쪽 눈을 가렸고 크기는 어미 고양이만 했다. 몇 날 며칠을 굶었는지 배는 등가죽에 붙었고 바싹 마르고 꾀죄죄한 것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평소에 개를 좋아하는 아내는 불쌍하다면서 밥을 국에 말아다 주었다. 개는 멀찍이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면서 가까이 오지 않고 사람을 몹시 경계하였다. 아내는 개 밥그릇을 개가 보는 한쪽에다 놓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얼마 후 나가보니 개는 밥그릇에 입도 대지 않았다. 주변을 의식하여 밥그릇에 가까이 오지 않는 것으로 짐작하고 그냥 놓아두고 하룻밤을 지났지만 그대로였다. 아내는 작전을 달리하여 식구들이 먹다 남은 고깃덩이를 갖다 주었다. 개는 여전히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고기가 담긴 그릇을 두고 자리를 피해주니 설설 다가 와서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먹기 시작했다. 개는 떠돌이 신세로 여러 날을 굶었음에도 불구하고 굶으면 굶었지 아무 것이나 먹지 않는 입맛은 고급이었다. 아마도 어느 돈푼이나 있는 집에서 귀여움과 사랑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쓰라린 배신을 당하여 쫓겨난 것 같았다.

이웃 주민들도 우유를 갖다 주고 외식하고 남은 고기도 가져다주면서 보살펴 주었다. 잠자리는 정문 가까이 베란다 밑 화단에다 정해놓고 기거하였다. 저층 아파트에, 노년층이 많이 사는 곳이라, 이웃 간에 인심도 그리 박절하지 않았다. 굴러 들어온 개라 신고를 하자는 주민도 있었지만 한 울타리 동거를 싫어하는 이는 없었다.

아내는 우유와 고기를 구해다 주면서 개를 거두는 성의가 보통이 아니었다. 개도 그 정성을 아는지 우리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아파트 출입문 입구에 앉아 기다리다가 꼬리를 흔들면서 주위를 빙빙 돌다가 발딱 뒤집어 누워 네 다리를 흔들면서 재롱을 피웠다. 그리고는 집안까지 따라 들어오려는 것을 억지로 떼어 놓곤 했다. 아내의 신조는 개는 어디까지나 밖에서 키우고 집안에 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 맘을 놓이게 했다.

나는 사실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다 애완견이 진열되어 있는 거리를 지나갈라치면 개 특유의 노리끼한(노리착지근한) 냄새가 비위를 몹시 뒤틀리게 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개에게 고급 천으로 옷을 입혀가지고 안고 다니는 것을 보면 지성으로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개 주둥이에다가 연신 입을 맞추면서 엄마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개를 어르는 것은 꼴불견이다. 한술 더 떠 죽은 개를 화장시켜 납골당에 안치하는데 수백만 원이 드는데 대구에는 화장장이 없어 부산까지

가서 화장을 한다고도 했다. 주변에서 개를 부모형제보다 더 챙기고 정성을 쏟는 사람들을 보면 인간이 누려야할 사랑과 행복을 애완견이 앗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에 개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어머니를 따라 동네 입구에 있는 과수원집에 간적이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마당에 있던 송아지만한 개가 정면으로 뛰어와 달려드는 바람에 엉겁결에 고함을 지르며 뒤로 돌아섰는데 개는 내 어깨위로 확 뛰어올라 머리를 물었다. 개 주인이 빗자루를 들고 쫓아 나와서 개를 후리 쫓지 않았으면 더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개 주인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개털을 잘라 주는 것을 볶아서 기름에 개 가지고 물린 상처에 발랐지만 별 효험도 없이 쉽게 아물지 않아 한 동안 고생을 했다. 그로부터 개를 만나면 물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 피하게 되었다.

아내가 개를 너무 좋아해서 오래전 단독 주택에 살적에 개를 키운 적도 있었다. 이웃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 받아서 아내가 바둑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지극정성으로 거두니까 개도 식구들을 잘 따랐다. 다 자랐는데도 고양이 크기만 한 것이 어린아이들과 장난을 치면서 잘 어울려 놀았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걸음으로 마당에 들어서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반가이 맞이하여 무덤덤하게 대해주던 내 마음도 돌려놓았다.

온 식구들의 귀여움을 재롱으로 보답하여 주던 바둑이가 어느 날 사람을 물 듯 한 표정으로 마당을 정신없이 몇 바퀴 돌더니만 마루 밑 컴컴한 구석에 들어가 나오지를 않는다. 이웃집 할머니가 쥐약을 섞어놓은 음식물을 먹은 것 같았다. 말은 못하고 사경을 해매이고 있는 것이 너무 애처롭고 안타까워 약이라도 먹여 보려고 마루 밑을 들여다보고 손짓으로 불러내어도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짖어 대면서 식구들이 접근을 못하게 했다. 마당에 똥 한번 눈 적이 없는 영리하고 순한 것이 배속에 창자가 녹아 내려가고 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생각하니 내 마음도 녹아 내렸다. 그렇게 가족들의 가슴을 졸이고 애태우던 바둑이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개에게는 정을 주지 않기로 했다.

베란다 밑에서 노숙하는 것이 안쓰러워서(안슬프서) 이곳저곳 수소문을 해서 아담한 개집을 구해다가 말끔히 청소와 소독을 하여 이부자리까지 깔아서 뒷담벼락 밑에 호텔처럼 마련하여 자리를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밥그릇까지 그 앞에 가져다 놓았지만 개는 안에 들어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개집 안에 입맛 당기는 음식을 차려 놓고 유인을 했지만, 들어가서는 그릇만 비우고 다시 나와 버렸다. 제 의지를 쉽게 바꾸지 않는 주관이 뚜렷한 면모를 가졌다고 할까, 아니면 고집불통이라고나 할까? 끝내 개는 고급 호텔에는 들어갈 생각도 않는다.

그날로부터 아내는 개에게 "고급 노숙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고급노숙자의 입맛은 변함없이 고급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고급노숙자가 때 물을 좀 벗고, 털에는 윤기가 돌 즈음부터 밤에는 가끔씩 "컹컹" 하고 짖기 시작하였다.

풍신에 비해서 목소리는 우렁차고 듣기에 부드러웠다. 제 비위에 거슬리는 것이 지나가면 한 번씩 영역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늦잠으로 일관하던 나도 고급노숙자가 둥지를 틀고 부터는 밤새 안녕을 문안하는 아침이 잦았다.

낙엽이 한잎 두잎 쌓여 가을이 깊어 가던 날, 아침이 되어도 고급노숙자가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주변과 골목길을 둘러보아도 흔적도 없고, 외출을 했나 해서 저녁까지 기다려 보았지만 그 날 이후로는 영영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 올 때면 어디에 있다가 조르르 달려와서 재롱을 피우던 것이 보이지 않으니 가슴 한 구석이 허전했다.

"고급 노숙자"는 첫 만남부터 내안에 잠재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자아내게 했는데, 떠나면서는 애잔한 그리움을 남기는구나!

몇 달 동안이나마 우리들 가슴에 따스한 정을 일깨워 준 "고급 노숙자"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더 따사롭게 보살펴 주는 새 주인을 만나 귀여움을 받고 있을까? 아니면 굶주리고 지친 모습으로 어느 골목을 해매고 있지나 않을까? 우연히 닥아 와서 홀연히 가버린 "고급노숙자"의 재롱이 못내 애련한 흔적으로 아롱아롱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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