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새로 쓴 인간불평등사/이선경 지음/프리스마 펴냄

 

21세기에 새로 쓴 인간불평등사/이선경 지음/프리스마 펴냄

 

2017년 크레디트 스위스의 데이터를 인용한 옥스팜에 따르면 지구촌 부(富)는 상위 1%가 이미 전체 부의 50%를 넘게 차지해 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이 나타나고 있다. 더 실감나게 말하자면 지구촌 약 37억 명의 부를 합한 것과 맞먹는 부를 소유한 부자는 2000년 388명, 2013년 85명, 2017년엔 다시 42명으로 부의 집중도가 점점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 7월 현재 세계 최고 부자 순위 1, 2위인 제프 베조스(아마존 창립자)와 빌 게이츠의 재산은 각각 1천490억달러와 938억달러로 매일 1억원씩 아낌없이 써도 대략 4,600년과 2,900년이 걸린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IMF이후 '88만원 세대'와 같은 책이 회자되면서 불평등 문제가 어렴풋이나마 사회문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책은 생물학, 역사, 철학, 사회학, 경제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불평등에 관한 모든 것을 망라한 역작(무려 696쪽)으로 평가된다. 놀라운 건 저자가 교수나 학자가 아닌 평범한 시민으로 6년에 걸친 끈질긴 연구와 놀라운 통찰력이 돋보인다.

◆평등한 세상은 유토피아에 불과?

인간을 폭력성과 욕망의 덩어리로 일단 규정하면 인류 역사는 불평등의 피라미드를 유지'강화하려는 자와 이를 허물려는 자의 투쟁으로 점철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 인간은 호혜적 협력과 상호 관심, 자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집단지성을 발휘할 줄 아는 존재이다. 또 이러한 인간의 양면적 특성은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적 불평등과 정의에 관한 본질적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 같은 모순의 근거로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헌법과 법률에 정의에 관한 보편적 개념을 담고 있으나 정의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실현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오히려 세상이 아직도 충분히 정의롭지 않다면 그 이유는 뭘까?

그것은 불평등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연 생태계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뱀, 소, 돼지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 불의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식인행위'는 또 어떠한가? 자연의 눈에서 보면 동종살해나 전쟁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선악이나 시비의 개념으로 부자연스럽다고 잘못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판단은 독자의 몫인 것 같다.

결국 정의란 것도 인간 사회 내에서의 '상호생존'이라는 토대위에서 요구될 수밖에 없는 필요조건이다.

◆왜 우리는 불평등한가?

생물의 시각에서 인간을 보면 크게 3가지 특성이 있다. 물질대사, 환경적응, 후손 복제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성은 생태계의 맨 밑바닥을 차지하는 단세포 생물인 박테리아의 작동원리와 다르지 않다. 또 역사의 기원을 거슬러 가면 도덕성이나 정의를 전제로 하는 사회는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후 첫 복제가 일어난 그 순간부터 존재하기 시작하고 사회 속의 생물은 이때부터 경쟁과 협력이란 두 바퀴를 굴리며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그리고 생물은 그들이 선택한 생존전략에 따라 ▷각자도생형 ▷진사회성형 ▷사회적 동물형을 구분된다. 진사회성은 독립된 개체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하나의 유기체처럼 살아가는 형태를, 사회적 동물형은 동종의 혈연이나 비혈연 개체와 조직적인 사회를 형성해 살아가는 동물을 의미하며 인간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이 경우에 독립적인 개인플레이형(호랑이)의 세계가 지배하는 원리가 '경쟁'이고 팀플레이형(개미) 진사회성 동물의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가 '협력'이라면 사회적 동물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는 개체들 간 '경쟁'과 '협력'이 묘하게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공존한다. 또 사회적 동물 사회는 상호 이기성의 충돌과 상호 의존이라는 딜레마가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면서 사회 내에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존재하고 또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사회 속 질서와 집단 유지라는 명목으로 서열이 생겨나고 이 서열이 결국은 불평등의 기원으로 작용하게 된다.

◆보다 높은 수준의 정의는 가능한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든 간에 때때로 나 자신이나 나의 행위는 선에 부합하고 타인이나 타인의 행위는 악에 부합하는 것처럼 꾸미는 속임수를 발명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본문 중에서)

인류의 역사의 단계에서 노예제, 봉건제, 공산주의, 자본주의의 공통점을 꼽으면 소수로 하여금 다수에 대해 구조적 기생을 가능하게 해주는 피라미드 구조임을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다.

저자가 책에서 든 다양한 사례처럼 역사는 피라미드와 반(反)피라미드의 얼개로 짜여져 있다.

왕과 귀족은 전 국민을 도구로 사용하려 했고 평민은 노예를 도구로 사용하는 피라미드형 권력을 형성한 대신, 고통스러운 불평등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한 하층민과 노예들의 저항 또한 다른 역사의 물줄기를 형성해 왔던 것이다.

이러던 것이 근현대에 이르러 불평등 피라미드 구축원리인 자본주의와 평등을 전제로 한 민주주의가 묘한 동거를 시작하면서 정의라는 개념은 흥정과 협상의 산물로서 역사의 전면에 떠오르게 된다.

그럼 보다 높은 수준의 정의는 가능할까? 저자는 사회적 신뢰가 구축된다는 전제로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그 일례로 열린 정보와 초공간적 소통이 가능한 블록체인을 든다.

개체는 분산하되 집단지성과 비슷한 상호 작용으로 모든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블록체인 같은 효율성을 보장한다면 '정의구현'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지은이 이선경은

한양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 예술디자인대학 석사과정을 중퇴했다. 현재 원스탑잉글리쉬 대표이자 유튜브 채널 '알아둘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의 운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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