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한시 산책] 맛있는 이 음식, 어머니께 드릴 수 있다면

밥상을 받고 정온

이 가난을 어쩔거나, 어머니는 늙었는데 慈顏已老奈家貧(자안이로내가빈)

끼니마다 입에 맞는 찬도 못해 드리다니 朝夕傷無適口珍(조석상무적구진)

상다리 부러지겠네, 어디 가도 산해진미 到處盤中多異味(도처반중다이미)

젓가락 들다가 말고 멀리 계신 엄마 생각 悵然臨箸遠思親(창연임저원사친)

*원제: 對案有感(대안유감: 밥상을 마주하고 느낌이 있어서)

이 시를 지은 동계(桐溪) 정온(鄭蘊: 1569~1641). 그는 가을 서리처럼 숙연하고도 강개한 품성의 소유자였다. 예컨대 그는 당시 국왕이던 광해군에게, 광해군 일파의 사주를 받고 영창대군을 죽인 정항을 참수하라는 격렬하기 짝이 없는 상소문을 올렸다. 역린(逆鱗)을 건드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라를 들다 말고 상소문을 읽고 있던 광해군은 수라상을 뒤집어 엎어버렸고, 동계는 머나먼 제주도에서 10년 동안이나 위리안치 당했다. 인조반정으로 정계에 다시 복귀한 그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김상헌과 함께 척화파의 최선봉에 서서, 청나라와 사생결단의 맞짱을 뜨자고 주장했다.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조가 마침내 항복을 결정하자, 동계는 차고 있던 칼로 배를 찔러 자결을 감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격렬하고도 서슬 퍼런 품성을 지녔던 동계도, 어머니 앞에서는 감성의 결이 부드러워지는 착한 아들에 불과하였다. 귀양에서 풀려나 벼슬을 제수받고 서울로 갈 때도 먼저 고향으로 내달려가 어머니의 품에 안겼던 사람이다.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감정을 즉물적(卽物的)으로 토로하고 있는 위의 시를 봐도 역시 그렇다.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을 때, 그는 몹시도 가난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이미 늙으신 어머니의 입에 맞는 음식조차도 제대로 해드리지 못하였고, 그것이 항상 가슴에 사무쳤다. 그런데 그는 지금 가는 곳마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푸짐한 밥상을 받고 있다. 하지만 산해진미가 아무리 가득해도 젓가락을 제대로 들 수가 없다. 찬물에 보리밥을 말아서 들고 계실 어머니 생각에 망연자실의 심회를 금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중(盤中) 조홍(早紅) 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 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 하나이다." 국민 시조인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의 '조홍시가'(早紅柿歌)다. 결국 계실 때 잘 하라는 얘긴데, 그게 도무지 잘 안 되니,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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