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인 양 거닐다, 해무에 푹~ 젖었소…경남 사량도

[힐링&여행] 환상의 섬, 사량도

사량도에 해무가 가득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사량도에 해무가 가득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자연의 풍경 속에서 힐링을 찾는다. 여행은 일상의 묵은 때를 씻겨주며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 자연과 하나되게 한다. 자연의 풍경은 내 마음 속 심장소리를 들리게하는 울림이다. 시니어매일 취재6부장이며 사진작가인 이원선 씨는 틈만나면 자신을 찾기위해 길을 떠난다. 그 첫 번째로 한국의 대표적인 섬, 사량도를 찾았다.

◆봄 기운 전하는 남녘의 섬

남녘의 봄바람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섬,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섬 중의 하나인 사량도. 이번 여행에는 부부동반 10명이 함께 했다. 일행 중 누군가 웃자며 이야기한다. 부부사랑을 느끼기위해 사량도를 찾는다고.

통영시에 속하는 사량도는 상도(윗섬)와 하도(아랫섬), 수우도의 세 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섬은 윗섬으로 지리산, 불모산, 옥녀봉 등이 있다. 연간 약 20만여 명, 특히 주말이면 약 5천여명이 찾을 정도로 이름난 섬이기도 한다. 반면 아랫섬은 낚시꾼들이 주로 찾는 섬이다. 배로 다니던 예전과 달리 현재는 사량대교가 윗섬과 아랫섬을 연결하고 있어서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

옥녀봉에서 바라본 남해바다. 옥녀봉에서 바라본 남해바다.

배에 오르자 마이크를 잡은 선장은 뱀이 많은 섬이라는 뜻에서 사량도(蛇梁島)라고 소개했지만 상도와 하도 사이를 흐르는 물길이 가늘고 긴 뱀처럼 구불구불한데서 유래되었다는 설, 섬 두 개가 짝짓기 직전의 뱀처럼 생겼다는 설, 한 남자가 상사병으로 죽어 뱀으로 환생했다는 설 등 다양한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오전 10시 30분경 유람선이 금평선착장에 닿자 배에서 내린 일행은 곧장 옥녀봉을 오르자는 의견과 대항 쪽으로 돌아서 오르자는 의견이 평행선을 달렸다. 이내 의견은 대항 쪽으로 기울어 뱀처럼 구불거리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약 10여분 정도를 걸었을까? 도로변에다 난전을 펼친 주민들을 만났다. 각종 해산물과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을 비롯하여 지역 특산물 등을 오종종 펼쳐 팔고 있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띈 것이 사슴뿔을 닮은 청각이란 해초였다. 어느 때 김치에 든 청각은 지렁이처럼 구불거려 입맛을 버린 적이 있어서 더 기억에 남는 해초다. 실물을 보자 오히려 더 정감이 붙어 향후에는 맛있게 먹을 것 같았다.

윗섬과 아랫섬을 연결하는 가량대교에 해무가 자리해 시원한 남해바다를 가로막고 있다. 윗섬과 아랫섬을 연결하는 가량대교에 해무가 자리해 시원한 남해바다를 가로막고 있다.

◆몽환의 해무가 여행객을 반기다.

대지를 어루만지듯 따사롭게 내려놓는 볕 속에 오르는 산행은 경사가 심하고 돌부리가 툭툭 불거지다보니 얼마 안 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잡힌다. 그렇다고 어디를 가서 힘이 들었다고 하소연하기에는 옥녀봉의 높이가 해발 281m에 불과했다. 잠시 숨을 고르는 중에 "인동초도 보이고 다래순도 있네!"라는 말이 들린다. 산나물이 지천이란다. 일행 중 부인네들 대부분이 주부들이라 산나물에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섬에서 함부로 채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늑대처럼 입맛을 다시며 조용히 돌아선다.

이윽고 산등성이 오르자 너덜겅의 연속이다. 조심조심 걷는 중에 내려다보는 풍광이 기가 막힌다. 바다위로 은은한 해무가 감돌고 때마침 부는 해풍에 진녹색바다 가득 은비늘이 반짝인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옥녀봉이 빤히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산 아래로부터 뭉글뭉글 해무가 피어오른다. 일행을 앞세우고 때를 기다린다.

사진은 찰나의 예술이기도 하지만 기다림의 예술이기도 하다. 해무가 사량도를 뒤덮어 옥녀봉을 품었으면! 해무에 휩싸인 옥녀봉을 마음 속으로 그렸다. 해무가 점점 짙어져감에 따라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앞서간 일행이 걸음을 재촉하라는 듯 유행가를 토하는 휴대폰은 깡그리 무시했다. 점차 상황은 기대 이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단지 아쉬운 점은 구도와 자연이 베풀어 준 조건은 맞는데 인위적인 조건, 즉 등산객이 빠졌다는 것이다. 그 많던 등산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먼저 간 일행들이 마냥 아쉬울 즈음 두 명의 등산객이 거짓말처럼 철제계단으로 들어서고 있다. 마침내 그럴싸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선 철제계단으로 향한다.

옥녀봉이 빤히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산 아래로부터 뭉글뭉글 해무가 피어 오른다. 옥녀봉이 빤히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산 아래로부터 뭉글뭉글 해무가 피어 오른다.

◆사량도를 품은 바다향이 입 안 가득

철제계단 초입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심연에 빠진 듯 까마득해 보인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부상은 물론 사망사고도 참 많았다고 한다. 이후 구름다리가 생기고 철제계단으로 등산로가 정비 된 후부터는 안전한 등산길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커다란 항아리가 아가리를 벌린 듯 깊은 계곡은, 누구에게는 스릴이 있어 좋다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서움에 오금이 저리는 길이다. 난간을 부여잡고 내렸다 오른 끝에 맞은편에 닿자 아이스크림 장수가 보인다. "이 장사를 시작한 지도 10여년! 이렇게 지독한 해무는 처음입니다."너스레를 귀로 흘리며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자 부드러운 운평선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의붓아버지의 금지된 사랑에 희생됐다는 불행한 전설을 고스란히 안은 옥녀봉을 뒤로하곤 하산 끝에 곧장 횟집을 찾아들었다. 느지막이 찾은 횟집에서 회 한 점을 입에 넣자 사량도를 품은 바다향이 입 안 가득하다. 몇 순배의 잔이 돌고 자질구레한 이야기와 함께 배가 불러올 즈음 시키지도 않은 해물전이 나온다. 모처럼의 등산에 지친 심신은 해물전도 맛있단다. 어쩌면 횟집주인이 베푸는 인심에 더 취했는지도 모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행이 꿀처럼 달달한 행복이라 여겼다.

해무로 배 출항이 늦어져 여행객들이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배에 오르고 있다. 해무로 배 출항이 늦어져 여행객들이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배에 오르고 있다.

배를 타기위해 부두에 이르자 해무가 온통 섬을 집어 삼켰다. 그제야 해무가 행복만을 몰고 온 것이 아님을 알았다. 들리는 소문은 더욱 참담했다. 이장님이 관광객들의 하룻밤을 위해 학교와 마을회관을 청소하고 라면 등 식료품 준비에 한창이란다. 결국 배는 뜨질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다보니 사연도 가지가지다. "까짓것 욕이나 좀 얻어먹고 이참에 하루 쉬지 뭐!"호기롭게 떠벌리지만 얼굴 가득 수심이고, 근심은 6월의 능소화꽃처럼 툭툭 떨어진다. 그 와중에도 짙은 해무는 뱀이 온몸을 감아오듯 칙칙하게 주위를 감싸고 돌았다. 그간 많은 섬 여행 중에서 이런 해무를 만나기도 처음이고, 해무로 인해 발이 묶이기도 처음이다. 250여명이 부두에서 발을 구르는 가운데 밤은 점점 두께를 더해간다. 그렇게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울 것 같은 두려움 속의 지난한 시간은 밤 8시쯤 해경의 도움으로 그 막을 내린다.

이원선 시니어매일 취재6부장 이원선 시니어매일 취재6부장

그제야 짙은 해무 속에 어둡게 가라앉았던 얼굴에서 다행한 미소가 깃든다. 때를 같이하여 부산하게 배에 오르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천천히 오르세요!"라는 안내방송은 오히려 안달을 부추겨 우르르 몰려든다.

해무, 사량도 그리고 사진과 함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글·사진 이원선 시니어매일 취재6부장

lwonss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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