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농촌문화활동의 추억

1962년 예천 감천초교에서 있은 농촌문화활동의 한 장면

1962년 예천군 감천면 주민들이 운동장에서 농촌계몽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가설물이 스크린이다. 독자 송일호 씨 제공. 1962년 예천군 감천면 주민들이 운동장에서 농촌계몽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가설물이 스크린이다. 독자 송일호 씨 제공.

독자 송일호 씨의 타임캡슐이다. 1962년 봄 즈음으로 기억한다. 예천 감천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동네 주민들이 모여 영화를 보고 있는 사진이다. 중간에 정장을 입고 서 있는 청년이 송 씨다. 송 씨의 타임캡슐 사연을 살려 싣는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 경제는 GNP 80달러였다. 70%가 농민이었고 양조장, 과수원, 방앗간 집 자식이 아니면 대학에 보낼 생각도 못한 시기였다. 대리만족으로 논 팔고, 소까지 팔아 대학에 보낸 부모가 많았다. 때문에 '우골대학'이라고도 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농촌계몽에 관심이 많았다. 대구에도 '농촌출신학우회'가 조직돼 농촌계몽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학생들에겐 열정만 있었지 장비가 없었다. 학생들은 머리를 짜냈다. 당시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던 건 활동사진, 영화였다. 영화만 있다면 10리, 20리 밖 사람들도 구름떼같이 모여들었다.

영화도 상영하고 계몽운동도 펼칠 수 있는 장비는 오직 농촌진흥원에 있었다. 빌리는 데 경북도지사의 힘이 필요했다. 도지사는 뜻밖에 군복을 입은, 별 하나의 장군이었다. 재건국민운동 혁명정부시절이었다. 당시 도지사였던 박경원 장군은 흔쾌히 허락했다.

영화라고 해봐야 고작 '특수작물은 이렇게 하자', '위생을 이렇게 처리하자'는 등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길이도 50분 정도였다. 하지만 밤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농촌계몽영화를 상영한다는 말에 사람들이 몰렸다. 영화 내용과 관계없이 남녀노소 그저 움직이는 사진을 신기해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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