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숨은 이야기 <20> 풍경-내면의 회상

조안 미첼 작 '큰 계곡 XIV' 조안 미첼 작 '큰 계곡 XIV'

 

조안 미첼, 큰 계곡 XIV, 280 x 600cm, 캔버스에 유화, 1983, 퐁피두센터 소장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은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예로 잭슨 폴록의 '뿌리기'(dripping) 기법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전면화(all-over)를 들 수 있다. 조안 미첼(1925~1992)의 거대한 풍경추상 작품들 또한 모네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탄생했다.

미첼은 1957년 뉴욕의 유대인미술관에서 열렸던 '뉴욕스쿨 2세대 작가들' 전시에 참여하면서 2세대 추상표현주의 작가로 이름을 굳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부터 뉴욕에서 일군의 젊은 화가들이 유럽의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양식의 미술을 추구하고자 결성한 '추상표현주의'는 '뉴욕스쿨'로도 불리며 미국 미술의 국제적 확산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시카고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한 미첼은 1947년 12월에 뉴욕에 도착해서 추상표현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끼친 아쉴 고르키와 잭슨 폴록의 전시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1950년, 그녀는 폴록, 빌렘 드쿠닝, 프란츠 클라인 등 1세대 뉴욕스쿨 작가들이 자주 모이던 '삼나무 바'에서 그들과 친분을 쌓았고, 드쿠닝과 클라인이 1949년에 결성한 '예술가 클럽'의 일원이 되었다.

미첼은 1955년 여름을 파리에서 보냈는데,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당시 그곳에서 활동하던 샘 프란시스와 캐나다 퀘벡 출신 화가 장-폴 리오포엘과 친해졌다. 리오포엘과는 연인으로 발전해 1979년까지 파리와 뉴욕, 또 파리에서 약 50km 떨어진 베뙤이유에서 삶을 함께하며 묵직하고도 파란 많은 관계를 유지했다. 이 두 사람은 가까이 살면서도 작업실을 공유하지도, 같은 집에서 살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치 무슨 의식처럼 반드시 저녁식사는 함께했다고 한다.

뉴욕과 파리를 오가던 미첼은 마침내 1959년에 파리에 정착했고 1964년에는 베뙤이유에 집을 마련했다. 베뙤이유는 모네가 마지막 정착지인 지베르니로 가기 전에 머물었던 곳으로 아름다운 계곡으로 유명하다. 미첼의 마지막 시기의 걸작인, 지각과 감수성이 교차한 빛이 거대한 화면을 장악하는 <큰 계곡> 시리즈(1983~84년, 21점)도 여기서 제작되었다. 그녀에게 그림의 주제는 모네와 마찬가지로 빛과 색, 그리고 그 둘의 연관성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모네처럼 실제 풍경을 그리지는 않았다. 비록 모네의 마지막 작품들은 추상화에 가깝지만, 결코 추상화는 아니다. '액션페인팅'에 뿌리를 둔 미첼은 내면의 감동을 표현했다. 작품을 행위의 흔적으로 삼으며 창조과정에서 화가의 신체성을 강조한 '액션페인팅'의 선두 주자인 폴록이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최면에 가까운 상태에서 물감을 뿌렸다면, 미첼은 벽에 세운 그림과 마주 서서 관조적인 자세로 작업했다.

'잠깐 동안'이란 부제가 딸린 <큰 계곡 XIV>는 유일한 피붙이인 언니와 아주 가까운 친구의 연이은 죽음을 맞아 애도의 상태에서 그렸다. 세 개의 캔버스가 하나(triptyque)를 이루는 이 작품에서 먼저 화면 전체를 누비며 거침없이 춤을 추는 붓놀림이 눈길을 끈다. 리드미컬한 붓놀림은 캔버스 위에서 물감을 흘러내리게 하거나 두텁게 뭉쳐지게도 하며 완벽하게 통제된 대담성을 보인다. 눈부신 노랑과 푸른 색조의 대비는 풍경의 아름다움과 거대함으로부터 나왔으며, 빛과의 시각적 접촉은 그녀를 내면의 회상(reminiscence)으로 인도했고, 이를 통해 미첼은 애도를 표현했다.

<큰 계곡> 시리즈에서 미첼은 행복한 유년기의 추억을 추출해냈다. 의사이자 아마추어 화가인 아버지와 시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부유하고 예술적인 분위기로 충만한 가정에서 자랐다. 미첼은 베뙤이유 계곡의 장엄한 풍경에 어린 시절을 보낸 미시간호의 풍경을 중첩시켰다. 프랑스의 비평가 이브 미쇼는 <큰 계곡> 시리즈를 '실제와 상상의 풍경이 합류하는 곳이며, 어린이와 죽은 이들의 계곡이고 변형과 깊은 명상의 장소'라고 평했다.

말년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미첼은 눈물겹도록 감동적이다. 그녀는 두 번의 암 수술과 고관절 통증으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신체적 고통과 고독을 견디면서도 거대한 화면과 마주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림 그리는 행위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숭고한 자세는 살아있을 때의 명성을 사후에 더욱 높이게 했다. 지금까지도 미국과 유럽의 여러 미술관에서 그녀의 대규모 회고전이 이어지고 있고, 미술시장에서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 중 최고가를 유지하고 있다.

박소영(전시기획자, PK Art & Medi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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