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요리산책]박나물

박나물

 

 

박 이파리가 사랑채 지붕을 덮었다. 담장에 세워둔 지주대를 타고 오른 박 넝쿨은 여름 햇살을 배불리 먹은 후 넌출넌출 기어 다녔다. 박꽃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나 보다. 어둑살이 내린 후에 비로소 하얗게 몸을 열었다. 달빛 아래서 수줍음 타는 미인(月下美人)이었다.

아버지는 잘 익은 박을 골라 톱으로 잘랐다. 속을 파내고 쇠죽솥에 안쳐 푹 쪄내었다. 쪄낸 박은 물러지는 게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더 여물어 졌다. 숟가락으로 겉껍질을 살살 긁어낸 후 씻어서 말리면 단단한 바가지가 되었다. 꼬투리 부분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끈을 묶은 후, 한 다발씩 꿰어서 걸어두고 요긴하게 사용했다. 박은 동화나라의 제비가 강남에서 물어다 준 씨앗으로부터 얻은 식물이다. 그래서 일까, 논 밭둑에 흔한 호박 보다는 지붕이나 나무를 타고 오른 박을 귀하게 여겼다. 금은보화를 가득 담았던 그릇이니 어찌 값어치를 매기랴. 세게 부딪치면 깨질 수도 있으니 어쨌거나 함부로 다루지 못할 그릇이었다. 큰 바가지에는 곡식을 담고, 작은 바가지는 물바가지로, 그 외 자잘한 물건을 담기도 했다. 농사철에는 그릇 대용으로 사용했는데 부피는 컸으나 무겁지 않아서 용이했다. 아버지 지겟다리에 걸어도 되었고 밥 광주리 위에 소복하게 얹어도 되었다. 박바가지에 담아먹는 새참국수는 먹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별미였다.

언젠가부터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이 시골까지 밀려왔고, 박바가지는 어두운 광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어둠 속에 의탁한 채 다발다발 묶인 바가지 꾸러미는 풍선 무더기처럼 보였다. 훗날 작은언니가 박공예 한다며 바가지를 몽땅 가져가 버렸다. 고향 집에 박바가지가 사라지자 박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해져 갔다.

박, 박을 먹는다고요? 어른이 되어서야 박이 식용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았다. 할머니가 박고지 만드는 것을 분명 보았기에 박나물도 먹었을 것이다. 박은 가을 한 철 음식이기에 박고지를 만들어 저장해 두고 탕을 끓일 때 사용한다. 반찬으로 올린 박나물은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대개는 무나물로 착각한다. 시각적으로 보았을 때도 그렇거니와 별 생각 없이 먹으면 식감도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박나물을 먹어 본 사람은 그 미묘한 맛의 차이를 안다. 무나물과는 다른 매끈한 감촉과 씹었을 때도 쫄깃한 맛이랄까.

이제 박나물은 별식에 속한다. 그 맛이 순하고 약용성분이 있어서 귀히 대접받는다. 박을 넣은 연포탕(낙지), 새우나 조갯살을 넣은 찌개는 특히 별식이다. 박을 구입했는데 쓴맛이 난다면 아직 설익은 박일 확률이 높다. 쓴맛은 약성이 좋다고 하니 버리지 말고 조금씩 요리하든지 말려서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설탕을 첨가하면 쓴맛이 완화된다. 요리하는 방식은 무나물과 차이가 없다. 채 썬 나물을 들기름에 볶아 간을 했다. 채 썰고 난 자투리 부분은 나박나박 썰어서 국을 끓였다. 북어를 넣었더니 시원한 맛이 속풀이 국으로 그만이다.

이제 박넝쿨은 관상용 화초로 변했다. 초가을이 되면 박덩이를 두드린다. 잠시나마 어린 시절로 돌아가 동화나라 흥부네 집을 방문한다.

 

Tip: 박나물의 베타카로틴 성분은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다이어트에 좋다. 칼슘 함유, 소화 작용 증진, 배뇨, 가슴이 답답하고 몸에 열이 날 때, 팔다리 부종, 잇몸이 붓거나 농이 생기는 경우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니 특히 갱년기 여성에게 권하고 싶은 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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