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문경, 절경이네요, 장관이고요. 신이 주신 선물이네요.

문경새재만이 전부가 아냐
진남교반, 고모산성, 오미자터널... 열거하기 모자라
가은 석탄박물관 주변도 업그레이드된다고

청운의 뜻을 품고 걸었던 간절한 소원의 길인 문경새재는 한양과 영남을 잇는 가장 번듯한 길이었다.세월이 흘러 현재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야간산행에 나선 등산객들이 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청운의 뜻을 품고 걸었던 간절한 소원의 길인 문경새재는 한양과 영남을 잇는 가장 번듯한 길이었다.세월이 흘러 현재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야간산행에 나선 등산객들이 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문경은 곧 문경새재였다. 문경을 떠올리면 '#문경새재', 흠칫, 그리고 떠오르는 게, 없었다.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를 연단에 올려놓고 소개해야 하는데, 미안하게도 친구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음을 뒤늦게 안다.

문경새재 양 옆에 솟아 있는 조령산과 주흘산을 잊고 있었고, 문경을 관통하는 영강을 놓치고 있었고, 산업화시대 문경을 지탱했던 석탄 마을들을 건너 뛰었다.

문경새재는 또 어떤가. 맨발로 걷고서야 비로소 들숨날숨 호흡을 맞춘다. 달이 뜨고서야 과거길 선비에게도 밤길이 있었음을 상상하고, 전란에도 기어이 살아남아 역사의 증인이 되어줌에 감사한다.

 

오미자테마터널을 찾은 관광객들이 오미자조형물을 지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오미자테마터널을 찾은 관광객들이 오미자조형물을 지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오미자터널과 고모산성

석탄을 실은 문경선 기차가 다녔던 '석현터널'이 존재감을 잃은 건 12년 전이었다. 석탄 수송이 끊기면서 첩첩산중을 뚫어주는 터널 본연의 기능이 사라진 탓이었다. 뚫려 있었어도 닫힌 공간이던 석현터널에 생기를 불어준 것은 기차가 아닌 오미자였다. 오미자가 열어준 터널엔 보은의 의미가 담겼다. '오미자터널'로 명명됐다.

터널은 기찻길이라는 본연의 기능 외에 뜻밖의 성능도 갖고 있었는데 '천연 에어컨' 기능이었다. 여름철 피서지로 몸값이 올랐던 이유였다. 올 여름에도 하루 3천 명씩 찾았다 한다. 사람의 온기도 만만찮게 강했을 법하나 영상 15도의 터널 내부 온도는 올라가지 않는다. 관람객들은 내내 걷거나 움직여야 한다. 냉기를 견디지 못한 탓이다. 눅눅함은 중세시대 어느 성에 들어온 느낌마저 준다. 겨울철에나 입는 파카를 걸친 오미자 판매원들만 가만히 서있을 수 있다.

삼국시대 신라가 쌓은 고모산성은 구한말 이강년 의병대장의 격전지이며 6.25전쟁에서도 요충지로 알려져 있다.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삼국시대 신라가 쌓은 고모산성은 구한말 이강년 의병대장의 격전지이며 6.25전쟁에서도 요충지로 알려져 있다.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540미터 길이의 터널 끝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따뜻한 차 한 잔이 간절하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이 공간에선 마법에 걸린 듯 방문객들의 지갑이 열린다. 바깥으로 나오니 여름 땡볕이 반가울 지경이다.

진남교반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고모산성과 붙어 있다. 터널 위가 고모산성이다. 그래서 어디를 먼저 갈까 고민하게 되는데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다. 터널 입구 30미터 앞에 서자 시원한 바람이 몰아쳐 나온다. 까만 터널 입구가 흡사 대형 에어컨의 송풍구로 보인다.

고모산성 정상에 오르면 경북 8경 중에서도 가장 첫손으로 꼽히는 진남교반 일대가 한눈에 펼쳐져 보인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고모산성 정상에 오르면 경북 8경 중에서도 가장 첫손으로 꼽히는 진남교반 일대가 한눈에 펼쳐져 보인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그러니 고모산성에 먼저 올라 진남교반의 풍광을 감상한 뒤 땀으로 적신 상의를 말리러 오미자터널에 들어가는 수순을 선택하는 게 옳다. 무릎이 좋지 않다면 진남문까지만 오르는 걸 추천한다. 오정산줄기, 영강물줄기, 옛 국도 3호선 도로가 태극 문양을 그리며 뻗어가는 걸 볼 수 있는 삼태극전망대가 1.8km 거리에 있으나 각도가 반영되지 않았다. 수월한 경사가 아니다.

 

에코랄라에 있는 플로우모션 스튜디오.체험자의 움직임을 21대의 카메라로 촬영하여 정지된 동작을 다양한 각도로 연출하는 타임슬라이스 기법을 활용한 스튜디오이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에코랄라에 있는 플로우모션 스튜디오.체험자의 움직임을 21대의 카메라로 촬영하여 정지된 동작을 다양한 각도로 연출하는 타임슬라이스 기법을 활용한 스튜디오이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룰루랄라, 가은

석탄 역사를 조명한 석탄박물관, 드라마 촬영장인 가은오픈세트장, 가은 모노레일, 철로자전거를 비롯해 근대문화유산인 가은역, 가은양조장 등이 가은에 몰려있다. 문경새재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다.

먼저 가은의 근대문화유산인 가은역과 가은양조장은 50대 이상에게는 향수를 자극할 공간이다. 은성탄광의 석탄을 전국으로 실어 나르는 창구였던 가은역은 지난해 카페로 환생하며 존재감이 대폭발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관광지로 자주 오르내리더니 은퇴한 60대들이 점령하다시피 한다. 오랜 동지를 찾듯 은퇴한 가은역과 은퇴한 산업화역군들의 만남이다.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가은역은 기꺼이 모델이 돼 준다.

인근의 또 다른 근대문화유산 가은양조장은 가은의 근현대사와 함께 했던 곳이다. 가은읍의 호황과 흥청망청, 그리고 쇠퇴를 목격한 증인으로 스스로도 쇠약했다. 아쉽게도 출입은 할 수 없다. 외관만 볼 수 있다. 사진 촬영에는 문제가 없다.

에코랄라 야외에 설치된 에코랄라 야외에 설치된 "거인의 숲"이라는 모티브로 삼은 놀이터.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가은의 터줏대감 석탄박물관을 주축으로 가은오픈세트장, 모노레일을 한데 묶은 테마파크 '에코랄라'도 개장 초읽기에 들어갔다.

친환경을 뜻하는 '에코(Eco)'와 의성어 '룰루랄라'를 합친 말을 이름으로 삼았다. 특이한 시설물들이 이채롭다. 킬러콘텐츠는 단연 '미디어센터'다. 여러 종류의 특수효과를 활용해 영상을 제작해 볼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영상 촬영의 기획부터 편집까지 가능하다. 영화감독이나 영상을 활용한 창작자를 꿈꾸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보였다. 이것저것 만지고, 찍고, 잇고, 떼어 내다보면 120분 시간도 한달음에 지난다.

에코랄라에서는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증강현실을 체험할수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에코랄라에서는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증강현실을 체험할수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야외에 있는 유아용 대형 놀이터도 눈길을 끈다. 그냥 뛰어놀아도 되지만 스마트폰을 활용하면 증강현실이 시도된 색다른 놀이를 즐길 수 있다. '거인의 숲'이라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놀이터는 거인이란 이름답게 규모에서 압도한다. '거인의 손'이 랜드마크처럼 놀이터 한쪽에서 두드러진다. 거인의 포크와 숟가락 모양의 미끄럼틀, 거미 모양의 놀이기구는 흡사 거인국에 온 느낌이다.

에코랄라 개장 후 모험시설도 점진적으로 들어선다고 한다. 짚와이어, 마운틴카트 등도 계획돼 있다는데 적정 입장료 책정이 숙제로 남았다.

 

◆그리고, 문경새재

문경새재 주흘관 아래 열린 문에 섰다. 남쪽으로 열린 광장과 북쪽으로 열린 길을 번갈아 본다. 지금이야 주흘관 위에서 옛길박물관까지 널찍한 광장처럼 한 눈에 들어오지만 1592년의 조령 앞은 달랐으리라. 산세가 험했을 것이고, 오르막에 은폐할 정도의 나무가 있었을 것이라 축성술의 역사로 짐작한다.

1592년 봄, 고니시 유키나가는 한참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 정적, 가토 기요사마보다 먼저 조선의 왕을 포박해야 했다. 실력 입증을 위해 한양으로 향한 빠른 길 찾기는 필수였다. 새들도 쉬어간다는 이곳이었다. 2만에 가까운 대군을 한 줄로 보낼 수도 없는 노릇.

그런데 앞서 보낸 정찰병이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다. 정찰병은 이렇게 전했으리라. 문경새재 앞을 유심히 살폈는데 24시간 조선군은 잠들지 않았고 자세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라고.

원나라 군대의 침략을 막아준 태풍이 신의 바람, 카미카제였다면 문경새재를 지킨 조선군이 허수아비라는 걸 알려준 건 까마귀였다. 까마귀가 조선군의 머리 위에 앉아도 조선군은 꿈쩍하지 않았다. 정찰병의 보고는 '조선군이 까마귀를 제 맘대로 부리고 있다'가 아니라 '조선군은 새재에 없다'였다. 8년 뒤 일본의 명운을 바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한 고니시는 교토 강변에서 참수 당하는데 이때 고니시의 시신을 쪼아 먹은 것 역시 까마귀였다.

그 시각 조선의 장군은 탄금대에서 전쟁사에 남을 전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합지졸이 못 미더웠던 장군은 누구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배수의 진을 쳤다. 도망가지 못한 것까진 노림수가 적중했다. 그런데 과했다. 하필 며칠 전 비와 왔고 전장은 진흙구덩이로 변했다. 기동력이 생명인 기병은 달리기는커녕 이동하기조차 힘겨웠다. 전멸이었다.

이런 상상을 하다 재차 눈을 들어 주흘관을 들여다 본다. 이 요새를 뚫으려 고심했던 일본 장수는 유유히 이곳을 지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오른쪽 주흘산, 왼쪽 조령산은 1592년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해가 떨어져도 야간 산행에 나선 이들이 더러 있다. 20세기 초까지 호랑이가 제법 있었다는데 과거를 보러 이 길을 넘던 양반네 자제들은 어떤 심정으로 이 고개를 넘었을까. 교교한 달빛 아래, 새재로 둘러가던 조령산 어딘가를 봉두난발로 오가던 조선의 보부상도 상상해본다. 김주영의 소설, 객주의 첫 장면을 재생시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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