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컬럼

 

[관풍루] 중소기업 비중이 88%에 달하는 구미산단, 근로자 50인 미만 기업 가동률 30%…

○…중소기업 비중이 88%에 달하는 구미산단, 근로자 50인 미만 기업 가동률 30%까지 떨어져. '중소기업 하기 좋은 나라' 만든다던 정부는 어디에.○…미국 국채 장·단기 금리 역전하며 'R'의 공포, 유사한 현상 벌어지는 한국에서도 빠르게 확산. 그래도 '우리 경제 기초 체력 튼튼하다'는 대통령 있어 든든(?).○…올 상반기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 영업이익 작년 동기보다 54% 감소. 대기업 돈 저소득층에 흐르지 않아 양극화 현상 심해졌다는 정부, 한시름 놔도 되겠네.

2019-08-20 06:30:00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국민 자존심은 무너진다

'한강의 기적'이란 말에 익숙했던 탓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8·15 기념사에서 '동아시아의 기적'을 말했을 때 뜨악했다. 한국의 대통령이, 광복 후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야기했으니, 당연히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기대는 어긋났다. 문 대통령은 끝까지 '한강의 기적'을 언급하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기적을 말했지만 누가 그 주역이었는지도 침묵했다.'한강의 기적'은 폐기할 수 없는 한국 경제 성장의 상징이다. 폐허가 된 전쟁터에서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주도형 경제로 중진국으로 도약하는 기적을 일군 것이 '한강의 기적'이다. 세계가 한국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경험한 일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세계 6대 제조강국, 6대 수출강국의 원천 역시 '한강의 기적'이다. 그러지 못했다면 한국은 여전히 북한처럼 아직도 '이밥에 고깃국' 타령이나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강의 기적'은 '동아시아의 기적'으로 치환 불가한 한국민의 자존심이다.우리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나라라는 지표는 차고 넘친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 이상 국가)에 들었다. 지난해 IMF가 정한 세계 GDP 순위에선 11위에 올라 있다. 세계은행의 순위론 12위다. 세계 6위 수출대국이다. 국토 면적 순위 세계 109위, 인구 기준 27위 나라로는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뿐 아니다. 요즘 K팝에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드라마, 영화로 시작한 한류는 이제 세계 문화로 확산하고 있다.경제성장을 통해 국력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세계가 한국을 주목했을 리 없다. 국력이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과거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국민 자긍심은 크고 자존심은 세졌다. 국민들은 어찌하면 더 강한 나라, 더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꿈꾸고 있었다.그런 대한민국이 마구 흔들린다. '한강의 기적' 이후 키우고 지켜온 국민 자존심이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 꿈은 멀어지고 네 편, 내 편 갈려 서로 적개심만 불태운다. 한국이 영락없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대일 경제 전쟁이 벌어지자 문 대통령은 남북 경협으로 일본을 단숨에 넘겠다며 '평화경제' 카드를 내밀었다. 한반도는 세계 1·2·3위의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의 각축장이다. 한국은 IMF 기준 11위 경제국이고 북한은 98위까지 매긴 IMF 순위 밖에 있다. 그런 집단과 협력해 극일하겠다는 발상이 국민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현실은 북한이 잘 짚고 있다. 북은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늘을 보고 크게 웃음)할 노릇"이라 했다.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며 콧방귀를 뀌고 있다. 그들 앞에 문 대통령은 '겁먹은 개'고,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이다.그런데도 아무 소리도 못하는 대통령은 비굴하고, 국민들은 비참하다. 국제적으로 이리저리 차이고 조롱당하면서도 말로 이루는 '평화'에 흠이 날까 집착하는 모습에 국민 자존심은 여지없이 또 무너진다.안보 경제가 모두 위기에 빠진 요즘 한국을 구한말에 견줘 걱정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당시 황준헌의 '조선책략'은 조선을 '연작처당'(燕雀處堂)에 빗댔다. 사람의 집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사는 제비와 참새가 집이 불타 저 죽을 줄도 모르고 재잘거린다는 뜻이다. 그런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

2019-08-1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구의 두 일본인 남녀

두 일본인 남녀가 있었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여럿이다. 1905년에 태어나 1997년 삶을 마감한 노구치 미노루(野口稔) 또는 노구치 가쿠츄(野口赫宙)와 지금도 활동 중인 1927년생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 대구에서 태어났고, 한때 경주에서 삶을 살았던, 글을 쓰는 작가이다. 또 일제강점기의 한국 관련 작품을 썼고, 한국과 일본에 걸쳐 살았지만 한국과 남다른 인연을 이어간 이력을 가졌다.다른 점도 있다. 앞의 남성은 망한 식민지 나라 사람으로서, 장혁주(張赫宙)라는 한국 이름을 하나 더 가졌다. 한국어, 영어, 특히 일본어로 된 작품을 더 많이 남겼다. 한국 여성과의 사이에 자녀를 두었으나 다시 일본 여성과 결혼했고, 1952년에는 일본에 귀화를 했다. 한국을 비판하고 자신을 낳아준 땅을 싫어했고 마침내 등지고 나라를 버렸다.일본 여성 모리사키는 17년 머물렀던 한국을 떠나 1944년 귀국, 지금까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장혁주와 달리 한국에 '원죄' 의식을 가졌다. 식민지배 시기, 일본 때문에 죽은 숱한 한국인은 자신을 대신해 희생됐다는 '원죄'에 시달렸다. 그가 태어난 대구나 살았던 경주의 한국을 고향이 아닌 원향(原鄕)이라 불렀다. 1984년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나의 원향(原鄕)'이란 책은 이런 배경으로 탄생한 셈이다.두 작가의 운명은 일제의 식민지배 결과였다. 생명을 준 땅과 나라까지 버린 장혁주, 그 땅과 나라에 원죄를 느낀 모리사키 가즈에. 스스로의 조국을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여기지 못했던 두 사람. 그러나 세월은 두 사람을 달리 평가하고 있다. 대구(한국)는 장혁주를 잊었고, 그와 그의 뭇 작품은 잊혀졌다. 반면, 대구(사람)는 모리사키를 다시 기억해 그 작품도 머잖아 번역, 출판될 모양이다. 두 사람의 역사가 얄궂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15 광복절 행사에서 말한 것처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였으면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도 없었을 터인데 안타깝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일본과 한창 경제 전쟁을 치르는 지금, 나라 사정을 살피면 과연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는 실현될지, 언제쯤 이뤄질지 답답하다. 안팎에서 어려운 한국을 흔드는 '아무'가 벌써부터 바다 건너는 물론, 안에서조차 여기저기 우후죽순이니 말이다.

2019-08-19 06:30:00

[관풍루] 미국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에다 우리 국채 금리 차도 11년 만에 최저치 기록…

○…미국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에다 우리 국채 금리 차도 11년 만에 최저치 기록하며 경기 침체 우려 확산. 더 졸라맬 수도 없는 개미허리니, 청명에 가나 한식에 가나-서민.○…황교안 한국당 대표 "24일 광화문 구국집회 개최 등 장외투쟁, 원내투쟁 병행한다" 선언. 투쟁은 자유인데 웬만하면 냉방 시원한 국회 내에서 치열하게~.○…아베, 고용노동부의 일본·아세안 해외취업박람회 재검토 소식에 "한국 학생들 곤란해질 텐데…" 은근히 조롱. 걱정해도 우리가 할 테니 제 집안 단속이나 잘해!

2019-08-19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망조(亡兆)든 미국

로마의 첫 통치자 로물루스는 첫 전쟁을 사비니와 치렀다. 승리한 로물루스의 결정은 뜻밖이었다. 승자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사비니에 로마와 동등하게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로물루스와 사비니 왕 타티우스는 공동으로 왕이 됐고 두 부족은 권력을 나눠 가졌다. 세계제국 로마는 패자까지 품은 관용(寬容)에서 싹이 텄다.인류사에서 유일무이하게 '보편제국'을 이룬 로마의 힘은 관용 한 단어로 집약할 수 있다. 로마제국 설계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통치 방침을 관용이라고 선언했다. 갈리아족, 유대인 등 로마는 이민족들의 다양성을 존중했고 그들에게 시민권을 줬다. 관용을 바탕으로 민족, 문화, 종교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질성을 극복해 제국을 만들었다.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아 로마에 자주 비견되는 것이 미국이다. 실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로마 공화정은 이상적 통치 체제였다. 대통령과 의회, 법원이 권력을 나눠 갖는 체제는 로마를 모델로 했다. 다양한 이민족을 포용해 '팍스 아메리카'를 만든 것 역시 로마를 빼닮았다.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던 30대 후반의 한국계 외교관이 자괴감을 견딜 수 없다며 사표를 던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종주의, 여성 혐오 등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게 외교관을 그만둔 이유다. 관용을 비롯해 자유, 공정 등 미국적 가치를 확산하려고 외교관으로 열심히 일했는데 이런 가치들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에 나설 때 트럼프의 참모습을 알아봤어야 했다. 급기야 적도 아닌 동맹국에까지 폭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임대아파트에서 114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고 한국을 조롱·폄훼하고 문재인 대통령 말투를 흉내 내며 희화화했다. 품격·관용은 차치하고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다. 관용은 사라지고 원주민들을 축출하고 아프리카인 노예로 부를 쌓은 초기의 '야만 미국'으로 퇴보하는 모습을 트럼프에게서 볼 수 있다. 미국도 망조(亡兆)가 단단히 들었나 보다.

2019-08-17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조강(糟糠)

일본에서 250만 부나 팔린 후지와라 마사히코(전 오차노미즈대 교수)의 '국가의 품격' 한글판 서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때 조선인들이 베풀어준 음식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패망 후 1946년 8월, 저자 가족이 귀국길에서 겪은 고생과 굶주림, 자신을 핍박하던 일본인을 되레 도와준 조선인들의 온정에 대한 이야기다.피난 경로를 자세히 밝히지 않았지만 만주 신경(창춘) 태생인 그와 가족이 만주나 한반도 북부에서 살다 피난길에 오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어머니와 다섯 살이던 저자 등 삼 형제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개성(開城)에 다다르는 과정이 나온다.무사히 귀국 후 어머니가 저자에게 여러 차례 들려준 말도 서문에 담았다. "돈 많은 조선인은 차가웠지만, 궁핍했던 조선인들은 음식을 베풀어주는 등 우리를 따뜻하게 도와주었다"는 내용이다. '비에 젖어 거지꼴인 우리를 따뜻한 마구간에 재워준 분도 있었다. 그렇게 친절을 베풀어준 조선인 여러분이 없었으면 우리 가족은 북한의 산 어딘가에 묻혀서 흙이 되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회상한다.그때 후지와라 가족이 얻어먹은 음식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돌이켜보면 격식을 차린 음식은 결코 아닐 터다. 해방 무렵 이 땅의 사람들이 먹던 흔한 밥과 반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음식이 한 가족을 살렸고 먼 훗날 기억에 박제된 것이다.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청와대 초청 오찬에 제공된 김구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 화제다. 백범이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휴대하기 편해 자주 먹었다는 대나무 잎으로 감싼 '쫑즈'와 돼지고기 간장조림 요리 '홍샤오로우'다. 요즘 사람에게는 생소한 음식이지만 그 음식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최근 안동에서 독립군이 먹던 밥상을 복원하는 사업도 활발하다. 항일 투사들이 평소에 먹던 보리개떡, 소금에 절인 콩자반 등을 되살려내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조강(糟糠)과도 같은 음식이다. 조강은 지게미와 쌀겨를 말하는데 가난한 이들이 늘 먹는 음식이다. "조선인은 밥을 많이 먹어서 늘 배가 고프다 투정한다"며 혐한 망언을 쏟아내는 저질 일본 TV 출연자들은 음식의 가치나 박애의 의미를 알기나 할까.

2019-08-16 06:30:00

[관풍루]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에서 납북 시인 김기림의 시구 인용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강조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에서 납북 시인 김기림의 시구 인용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강조. 흔들리지 않던 나라를 스스로 흔든 건 아닌지부터 생각해 볼 일.○…김원웅 광복회 회장, 일본 경제 보복은 "친일정권을 다시 세우려는 의도"라고 주장. 일본의 전문가들은 경제 보복이 오히려 문 대통령을 소생시켰다고 하는데도요.○…사노맹 사건으로 복역한 은수미 성남시장, "사노맹에 무례하게 굴지 말라"며 황교안 한국당 대표 공격. 뭘 잘했다고 이렇게 큰소리치는지,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네.

2019-08-16 06:30:00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지기(知己)부터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 조선 팔도에 수백 명의 세작을 보냈다. 이들은 조선의 주요 지형지물을 베끼고 민정을 염탐했다. 하지만 '왕만 잡으면 백성은 항복할 것'이라는 사실과 동떨어진 보고를 한다. 손자병법에 비춰볼 때 '지피'(知彼)에 무지했다.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大望)에 따르면 일본 다이묘(봉건 영주)는 전투에서 지면 할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부하인 사무라이가 자신의 죽음으로 영주를 지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영주를 잃은 휘하의 무사들은 낭인으로 떠돌다가 새 주인을 만나는 게 보통이었다.반면 조선은 고려 때부터 계속된 일본의 약탈 행위에 이골이 났다. 이런 불만은 민족 저항운동(의병 봉기)으로 승화됐다. 관군만 상대하면 된다고 여겼던 일본은 민간 의병 봉기에 전략적 혼선이 생겼다. 결국 패전이 이어졌다.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을 향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돌파, 일본처럼 선진국에 올랐다는 자신에 찬 발언이었다. 얼마 뒤 우리 경제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일본 자금이 가장 먼저 빠졌고 '고치려던 버르장머리'가 IMF를 불렀다는 주장이 나왔다.지난 2일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뺐다.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날 긴급 국무회의에서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결의했다. 정부의 대(對)일본 강경 기조에 맞춰 국민도 '일본 제품 불매'로 호응했다. 국민 DNA(유전자)에 뿌리 박힌 반일 감정은 들불처럼 번졌고 거세졌다. 대일본 감정이 이성적으로 제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까지 왔다.하지만 정부나 우리 국민이 일본과 마주 달리는 기차가 돼서는 안 된다. 경제 규모가 일본의 3분의 1 수준인 우리나라가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데다, '욱'하는 감정에 자칫 우리의 위치를 바로 보지 못하는 누를 범할 수 있어서다. 축구를 이긴다고 경제까지 승리할 수는 없고 유니클로 티셔츠 한 장 안 사고, 사케를 마시지 않는다고 극일(克日)이 될 수는 없다. 한 발짝 물러서 우리부터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물론 대한민국은 1910년 무기력하게 불법적으로 병탄을 당한 100여 년 전의 대한제국이 아니다. 세계 11위권의 경제 대국이며, 일본만큼이나 많은 우호 국가를 두고 있다. 비록 경제력으로는 일본에 비해 모자라지만 국제 명분에서는 우리가 우위에 있다.차분히 국제적 동의를 얻고 우방 국가와 함께 일본의 불공정 무역 규제의 부당함을 알리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반(反)일본과 반아베를 분리해 압박해가는 프레임 작업도 필요하다. 일본이 수출규제 카드를 꺼냈다고 우리까지 '함무라비 법전'(이에는 이, 눈에는 눈)을 들이댄다면 그 나물에 그 밥밖에 안 된다.일본의 특성을 가장 잘 연구했다는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 정치가들이 국가와 국민 간의 '알맞은 위치'를 세밀히 규정했다고 봤다. 바꿔 말해, 일본은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는 것을 근대국가의 주춧돌로 놓았다.하물며 이런 일본을 이기려는 데 우리가 우리를 모른다면 미래의 '봉오동 전투'는 담보되지 않는다. 감정은 살짝 누르되 정치는 정치를, 경제는 경제를, 가계는 가계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가슴을 가져야 한다. 상대가 일본일 때는 더더욱 '지피지기'(나를 알고 적을 아는)가 병법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2019-08-15 17:54:04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굴욕적인 평화

초한(楚漢) 쟁패전에서 중원을 통일한 한 고조 유방은 북방의 골칫거리였던 흉노 정벌에 나섰다가 되레 포위를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월등한 군사력에도 유목 기마병 특유의 치고 빠지는 전략에 말려들었던 것이다. 결국은 매년 많은 양의 비단과 곡물을 보낸다는 치욕적인 화친조약을 맺고 겨우 돌아왔는데, 그마저 오래가지 못했다.흉노는 점점 더 많은 공물을 요구하며 변방을 침략해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다. 한나라는 무제에 이르러서야 대군을 일으켜 흉노를 정벌하고 멀리 내쫓았다. 돈으로 산 평화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실증한 역사적 사례이다. 송나라의 경우는 더 가관이었다. 쿠데타를 통해 황제로 등극한 송 태조 조광윤은 도둑이 제 발 저린 탓인지, 무인(武人)의 힘을 약화시키며 지나치게 문치주의를 표방했다.백성의 비약적인 증가와 농업 생산량 증대로 경제적인 번영과 문화적인 융성을 구가했으나 외세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미국 역사학자인 존 킹 페어뱅크가 "경제와 문화 대국이었던 송나라가 가난뱅이 유목 민족에 정복당한 것은 놀라운 역설"이라고 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는 너무도 약체였던 것이다. 그러니 늘 싸움은 피하고 보자는 식이었다.거란족이 세운 요(遼)가 쳐들어오자 '전연의 맹'이라는 강화조약을 맺고 해마다 비단과 은을 보냈다. 서북 지역 탕구스족의 서하가 침입하자 또 강화를 체결하고 많은 공물을 보냈다. 동북 지역의 여진족이 금(金)을 건국하자 이전보다 더 많은 공물을 요구했다. 여진은 기어이 수도 개봉을 함락하고 황제와 일가족을 포로로 잡아갔다. 황제의 아우가 항주로 쫓겨 내려와 남송(南宋)시대를 이어갔다. 하지만 금나라에 세공을 바치며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다가 몽골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송나라에는 상무정신이 없었다. 적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은과 비단을 내주며 달래는 방법을 택했다. 굴욕적인 평화가 오래간 사례는 역사상 없었다. 북한은 남한의 쌀 지원도 거절해버렸다.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며 남한을 '겁먹은 개'라고 원색적으로 조롱한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남북 경제 협력과 평화 타령을 하고 있다. '평화는 힘이 있어야 보장된다'는 김정은의 충고가 오히려 폐부를 찌른다.

2019-08-15 06:30:00

[관풍루] 외교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 움직임에 일본 정부의 구체적인 입장과 정보 공개 요구하며 이슈화

○…외교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 움직임에 일본 정부의 구체적인 입장과 정보 공개 요구하며 이슈화. 후쿠시마 수산물 시식 퍼포먼스에 아베가 또 한 번 출연하겠네!○…대구시, 4천800억원 예산 들여 도시공원 일몰제 앞둔 20곳 도심공원 사유지 매입 발표. 시민 건강·생활권 생각하면 공원 필요하고, 빚더미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10호 태풍 크로사 오늘 일본 내륙 관통 후 독도 동남쪽 동해로 진출 예보돼 태풍 경계령. 뜻 깊은 광복절인 만큼 큰 비바람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게 맞는데….

2019-08-15 06:30:00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시각과 전망] 포스코와 박태준 정신

고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은 1970년 포항1기 건설 때 고가 설비 구입 과정에서 보험회사 리베이트 6천만원을 받았다. 박 전 회장은 임원들과 상의한 뒤 박정희 대통령에게 통치 자금으로 주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박 대통령은 "포철은 절대 정치 자금 안 낸다고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래?" 하며 돈을 돌려주었다.박 전 회장은 청와대를 나서면서 '장학재단'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포항으로 돌아온 즉시 임원회의를 소집, 6천만원을 종잣돈 삼아 '재단법인 제철장학회'를 설립했다. 이를 모태로 1971년 포항주택단지 안에 유치원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초·중·고교와 포항공대(포스텍)를 차례차례 설립했다.박 전 회장은 당시 "사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욕으로 포스코의 학교들에 '교육보국'(敎育報國)을 건학 이념으로 내걸었다"고 말했다.박 전 회장의 혼이 서린 포스코교육재단(이하 재단) 소속 학교 공립화 추진을 두고 포항 사회가 시끌벅적하다. 재단이 지원하는 학교는 포항과 광양의 유치원, 초·중·고 등 14개 학교다.포스코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재단은 최근 자사고인 포항제철고의 일반고 전환과 인력 구조 조정, 야구부·체조부를 비롯한 운동부 폐지 등을 골자로 한 보고서를 최정우 포스코 회장에게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최 회장이 이를 수용할 경우 재단은 소속 학교의 공립화를 위한 과정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는 해마다 재단 출연금을 줄여가고 있고, 2021년엔 '0'으로 만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포항시와 시의회는 물론 시민사회 단체와 시민들이 반발하고 있다.포스코가 이런 움직임을 보인 데는 일부 재단 이사진의 "왜 포스코 돈으로 포스코 가족이 아닌 일반 시민의 자녀를 교육시키느냐?"는 비판적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포스코 안팎에서는 보고 있다.또 다른 배경으로는 재무통으로 알려진 최정우 회장 등 포스코 수뇌부가 경비 절감만을 앞세워 '포항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포철고 등의 공립화를 추진한다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는 최정우 회장이 자사고 폐지를 지향하는 현 정부에 발을 맞추기 위해 공립화를 추진한다는 의구심마저 보내고 있다.포철고 등 재단 소속 학교는 포스텍, 방사광가속기 등 대학과 연구시설에서 일하는 교수, 연구진, 우수 인력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 요소가 되고 있다. 고급 인력들이 그들의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학교가 없다면 과연 포항에 정주하려 하겠는가.이런 이유로 재단 소속 학교는 포스코와 포항 경쟁력의 원천인 것이다. 또 포스코가 포항 경제의 근간으로 기여하고 있지만 환경오염 등 온갖 고충을 견뎌 온 포항 시민에 대한 사회 공헌 측면에서도 재고되어야 한다.작년 기준 200억원이 넘었던 포스코의 재단 출연금이 중지되고, 소속 학교가 공립화된다면 기존 공립학교에 대한 지원금이 줄어들 수도 있어 현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역(逆) 사회 공헌 의미도 있다.포스코는 그동안 강원도 고성 산불 등 큰 재해나 사고 땐 100억원, 150억원씩 큰돈을 성금으로 내놨다. 하물며 인재 양성과 교육 백년대계를 위한 투자에는 무엇이 아까우랴.최정우 회장은 '박태준 정신'에 입각한 포스코 리더십을 곧추 세워야 한다. 작년 8월 대비 1년 만에 시가총액이 10조원 줄어든 포스코의 위기도 근본에 충실하지 않은 무소신과 눈치 보기 리더십에 기인한다면 기우인가?

2019-08-14 06:30:00

[관풍루] 한국도 백색국가서 일본 제외하며 맞대응하자 지역 수출 기업들 행여 수출 차질 빚을까 전전긍긍

○…한국도 백색국가서 일본 제외하며 맞대응하자 지역 수출 기업들 행여 수출 차질 빚을까 전전긍긍.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과연 이 시대에도 맞을까.○…지난해 임금근로자의 평균 대출액, 전년 동기 대비 7.4% 늘어난 4천76만원. 소득주도성장 한다더니 소득은 안 늘고 빚만 잔뜩 늘렸던 모양.○…8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 앞두고 자유한국당 현역 의원들, 제각각 자신들에게 유리한 공천 기조 제시. 공천 파동으로 망가진 역사는 역사가 아니었기에.

2019-08-14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망사(亡事)된 인사

기초단체장을 3연임하고 퇴직한 인사가 들려준 얘기. 단체장 취임 직후 똘똘하고 정직하다고 평판이 난 공무원 몇 명을 불러 부탁(?)을 했다. "당신들은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 내가 잘못한 일을 거리낌 없이 질타해 주기 바란다." 내부 비판을 통해 더 나은 행정을 펴고자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 주저하던 공무원들은 단체장을 찾아와 비판하기 시작했고 나름 목표한 성과를 거뒀다. 6개월가량 흘렀을까. 예상치 않은 문제가 생겼다. 자신을 찾아온 공무원이 아무 말도 않았는데도 마음이 언짢아졌다. "오늘은 저 사람이 무슨 비판을 할까란 생각에 얼굴만 봐도 기분이 나빠졌다"는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이 법무장관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내정하는 등 개각을 했다. 지금껏 문 대통령 인사에 실망한 적이 한두 번 아니지만 이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개각이 대통령의 국정 쇄신에 기여는커녕 측근들 돌려막기에 그쳤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일방통행 코드 인사가 되풀이되고 말았다.더 개탄스러운 것은 이번 인사에서도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쓴소리를 할 인사들을 기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선 외교·안보 라인. 경질 요구가 쏟아졌던 존재감 제로(0)의 외교·국방장관을 유임시켰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엔 반미(反美)·친북(親北)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인사를, 국립외교원장엔 대선 때 캠프에 참여한 인사를 임명했다. 외교·안보 위기 돌파는 고사하고 대통령의 정책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인사다.압권은 조 전 수석의 법무장관 기용. 인사 검증 실패 등 책임을 물어도 시원찮을 사람을 발탁한 것도 문제지만 조 전 수석은 대통령에게 직언(直言)은커녕 한술 더 떠 친일·반일로 국민 편 가르기에 앞장선 사람이다. 이순신 장군 시에 나온 '서해맹산'(誓海盟山)을 들먹이며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을 왜군에 빗대는 절묘한 편 가르기를 한 것을 보면 그의 언행은 달라지지 않을 게 틀림없다.인사는 만사(萬事)라고 했는데 받침 하나가 다른 망사(亡事)가 되기 십상인 게 인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쓴소리를 하던 측근을 차례로 내치고 백악관을 '예스맨'으로 채웠다는 비판이 나왔다.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아예 쓰지 않는 문 대통령이 이 부분에선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2019-08-14 06:30:00

박기호 경북부 기자

[취재현장] 성범죄 2차 피해 '모르쇠'한 도교육청

최근 경북 울릉군의 한 초등학교에서 성범죄와 관련한 2차 피해가 여러 차례 일어났지만 교육 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학교 교장이었던 A씨(직위해제 상태)가 학교 공사 업체로부터 현금 50만원을 받은 뒤 피해 교직원에게 이를 학교 회식비로 집행하라고 했지만, 피해 교직원인 행정실장이 이를 거부하자 성희롱과 강제추행을 했다"는 게 경찰 수사로 밝혀진 1차 피해다. 현재 A씨는 '강제추행과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1차 피해에 대한 형사적인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또 다른 문제는 학교 안팎에서 가해진 2차 피해에 있다. 일부 학부모가 피해자인 교직원에게 성범죄 피해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는 행위가 수차례 일어났다. 학부모 대표들은 '학교를 떠나달라'는 요구도 했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진위를 묻거나 근무지를 옮겨라'고 하는 행위 모두 명백한 성범죄 2차 피해다. 해당 학교 학부모들은 피해자를 보호해주지는 못할망정 '피해 교직원의 전보조치를 요구'하며 집단으로 학생들을 이틀간 등교 거부까지 시키는 일을 벌였다. 결국 학생들은 무단결석 처리됐다.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교장 A씨가 피해 교직원을 학교에서 쫓아낸 후, 자기의 잘못을 덮으려고 학부모와 교사를 동원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학생들까지 동원된 등교 거부 사태의 전말이다. 학부모들의 주장과 집단행동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피해자인 교직원에게 성범죄 사건으로 학교가 시끄러워졌으니 학교에서 떠나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뇌물수수와 강제추행을 일으킨 '교장 A씨가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 요구했어야 했다.그런데도 교육 당국은 실태조사조차 않고 있다. 피해자가 2차 피해 조사를 요청하지 않는다며, 2차 피해 조사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피해 교직원은 '2차 피해에 대해 진상조사를 요청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직장 내 따돌림 등 지금껏 일어난 2차 피해보다도 더 큰 피해를 걱정하기 때문이다.학부모들의 집단행동도 문제였지만, 경북도교육청 등 교육 당국의 성범죄와 2차 피해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대처가 문제를 더욱 키웠다. 피해자의 권리 회복과 건강한 근로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교육 당국을 향한 지탄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인 교직원을 전보 조치해 달라'는 탄원서를 작성한 교사는 말할 필요도 없다. 도교육청 감사관실 직원이 해당 학교 교감에게 문제의 탄원서에 대해 물었지만, 교감은 알면서도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감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알면서도 보고하지 않는 '학교', 보고하지 않고 대답하지 않는다고 조사할 수 없다는 '울릉교육지원청'과 '경북도교육청' 모두 2차 가해자다. 2차 피해 예방에 나서야 하는 교육 당국의 태도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경북도교육청과 울릉교육지원청, 해당 학교 등 교육 당국은 성범죄 2차 피해 사건을 은폐·묵인할 의도인가.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을 살펴보면, 성 관련 비위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히는 불법행위를 할 경우 관련 직원에 대해 교육 당국은 최대 파면까지 할 수 있다.가해자인 교장 A씨는 피해자인 교직원에 대해 업무상 '갑'의 위치에 있다. 뇌물수수와 강제추행 그리고 2차 가해는 '갑'의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가 범죄불법행위까지 용납할 것을 기대하며 행한 '갑'의 횡포다.'갑'의 횡포를 막지 않고, 방조한 교육청 또한 나쁜 '갑'이다.

2019-08-13 14:00:52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마도 정벌의 교훈

'이종무가 다시 대마도로 향해 진군하다.' '이종무 등이 수군을 이끌고 돌아와 거제도에 머물다.'600년 전 여름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년 1419년 6월 19일과 7월 3일(음력) 기록이다. 거제도를 오전 9~11시에 떠나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은 이종무 장군이 이끈 일본 대마도 정벌이다. 이기고 왔으니 고려·조선 조의 3차례 대마도 정벌의 끝인 기해동정(己亥東征)은 우리 군대의 마지막 일본 진출 기록인 셈이다.비록 100명 넘는 전사자가 나왔지만 조선은 승리로 얻은 게 있었다. 먼저 대마도의 항복으로 골칫거리인 왜구의 침탈을 제도적으로 막을 길을 마련했다. 또 왜구를 달래고 살기 척박한 대마도 사람을 돕느라 그들의 물건을 사고 팔아주는데 든 엄청난 재정적인 부담도 어느 정도 덜었다. 물론 수시로 보냈던 곡식과 토산품 등 양국 간 불균형 무역도 어느 정도 바로잡게 됐다.당시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리던 명나라의 일본 정벌 계획도 미리 막아 다행이었다. 만약 명이 일본과 싸울 경우, 원나라 지배 때 고려가 원의 일본 원정군 지원을 위해 겪었던 인적 물적 동원에 따른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감수했던 일을 조선이 다시 각오해야 하는 탓이다. 아울러 조선은 무기 제조에 필요하지만 조선에 없거나 구하기 힘든 유황과 구리를 보다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600년 뒤 기해(己亥) 여름, 길어질 한·일 경제 전쟁에서 이기려면 할 일이 있다. 우선 만성적 무역적자 구조의 불균형을 바뤄야 한다. '가마우지 경제'라는 말처럼, 기껏 일본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한국 경제의 체질과 틀을 바꿀 계기를 이번 기회에 갖춰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기술과 경제 독립을 위한 지속적 지원과 투자를 말만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까닭이다.또 핵심 부품의 안정적인 공급 길도 찾아야 한다. 유황과 구리 수입을 일본에 기댄 600년 전과 달라야 하고, 되레 일본 밖에서의 안정적 부품 공급이나 국산화로 살길을 내야 한다. 이리만 되면 이번 한·일 경제 전쟁과 미·중 환율 전쟁, 중·러의 하늘 침범, 북한 도발 등 한국의 궁박한 입장을 기다린 듯 큰 폭의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는 미국의 평지풍파가 속 쓰리지만 600년 전 여름의 승리 꿈은 꿀 만하다.

2019-08-13 06:30:00

[관풍루] 연일 신형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던 북한 당국이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겁먹은 개'라는 표현을 써가며 원색적인 조롱

○…연일 신형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던 북한 당국이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겁먹은 개'라는 표현을 써가며 원색적인 조롱. 복날 '개타령'까지 나와도 흔들리지 않는 짝사랑!○…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구역질 나는 책'이라 혹평한 '반일 종족주의'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1위로 등극. 취지와 결과의 엇박자는 이 정권의 전매 특권?○…유력 용의자에 대한 1심 무죄 선고에 따라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청도 살인사건이 미궁 속으로. 영화 '살인의 추억' 범인이 빙의라도 되었단 말인가….

2019-08-13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누가 '친일파'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가

반일운동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상황을 보고 있으니 문득 10년 전 일본에서 경험한 해프닝이 떠오른다. 필자는 2009년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시리즈 취재 차 도쿄 시나가와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묘소를 찾았다. 사전 약속을 하지 않은 불청객이었기에 묘지기 할머니는 몇 차례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취재를 허락했다.사진 촬영을 하려고 하자, 이 할머니가 막아서더니 갑자기 청소를 시작했다. 작은 운동장만한 널따란 묘소에는 낙엽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할머니 혼자 치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일행은 경로사상을 발휘해 할머니를 쉬게 하고 대신 나섰다. 1시간 남짓 땀 흘리며 청소하니 묘소 주변이 쓰레기 한 점 없이 깨끗해졌고, 무사히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안 의사 취재를 하던 중에 원수인 이토의 묘소를 청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안 의사의 일대기를 취재한 것은 '애국심의 발로'임이 분명하나, 과열된 반일 분위기를 보면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다. 문맥 앞뒤 떼고 이토의 묘소를 청소한 사실만 콕 집어 '친일파'로 매도될 지도 모를 일이다. '친일파'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함부로 내뱉는 세상이 되다 보니 지레 겁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일본 제품을 쓴다는 이유로, 반일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친일파'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한 지인은 연비가 좋다는 최하급의 도요타 승용차를 타는데, 곤혹스러운 일을 자주 겪고 있다. 주차한 뒤 볼일 보고 돌아와 보면 차에 껌이 붙어 있거나 커피를 쏟은 자국이 남아 있다고 했다. 유니클로 매장에 들어가는 사람을 촬영해 SNS에 올려 놓고 '친일파'로 조롱하는 것도 정상이 아니다.필자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찬성하고 일본 제품을 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강요와 압박은 싫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동참하면 될 일을 강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래전에 읽은 '반일' 유머가 생각난다.한국 대통령과 일본 왕이 만났다. 한국과 일본 국민 수만 명이 모인 자리에서 일본 왕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국민은 제가 손을 한 번 흔들면 박수치고 환호할 것입니다." 일본 왕이 자국민을 향해 손을 흔들자 모두 박수치며 환호했다.이 장면을 본 한국 대통령이 일본 왕에게 말했다. "제가 손을 한 번만 쓰면 여기 있는 국민은 물론이고 집에서 TV 보는 국민들도 모두 환호하고 기뻐해 오늘을 국경일로 지정할 것입니다." 일본 왕은 비웃듯 말했다. "한 번 해 보시지요."그러자 한국 대통령은 일본 왕의 귀싸대기를 갈겼다.한국인에게 반일 감정은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천 년 이상 한국인의 DNA에 깊이 새겨져 있는 유전자나 다름없다. 실제 '친일파'라고 불릴 만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전 국민이 '반일주의자'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이 밉다는 이유로 일본을 두둔하는 듯한 이들조차 내심으로는 '반일주의자'다.모두가 '반일주의자'임에도, 그 앞에서 '반일'을 강요하거나 상대를 함부로 '친일파'로 모욕하는 것이야말로 '매국적' 행위다. 정치에 이용하려거나 자신의 출세를 위해 날뛰는 것일 뿐, 순수한 '반일'이 아니다.상식에 반하는 강경 발언을 일삼는 정치인이나 단체는 딴마음을 가졌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반일운동'은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진행돼야 성공할 수 있다. 최소한 아베보다 도덕적으로 나은 국민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2019-08-13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여름꽃

내리쬐는 햇빛과 태풍의 숨결이 언뜻언뜻 섞인 바람에 연신 출렁이는 연분홍 웨이브피튜니아가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달 들어 도청교 등 대구 시내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여름꽃 이야기다. 7, 8월 무더위를 견디며 피는 여름꽃은 봄꽃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크게 주목받지도 못한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꽃을 피우고 주위 분위기를 한결 청량하게 또 편안하게 바꿔준다는 점에서 여름꽃의 존재는 더욱 경이롭다.8월은 삼복더위가 절정에 다다르는 시기다. 견디기 힘든 무더위 속에서도 갖가지 여름꽃은 어김없이 알록달록 꽃을 피워낸다. 백일홍과 접시꽃, 나팔꽃, 맨드라미, 패랭이꽃, 쑥부쟁이, 해바라기, 원추리, 백합, 메리골드, 피튜니아 등은 여름을 장식하고 채우는 대표적인 꽃들이다. 예전과 달리 해바라기백합 등은 도심에서는 좀체 보기 힘들다. 시골이나 이맘때 청주나 태백시의 '해바라기 축제'를 찾지 않는다면 못 보고 넘어갈 꽃들이다.대신 요즘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백일홍이다. 신천동로를 지나다 보면 키 나지막한 배롱나무를 온통 붉게 물들인 백일홍꽃이 때를 맞았다. 안동시내 육사로나 옥동로 등에도 요즘 백일홍이 한창이다. 수령 380년의 고목 등 120여 그루의 배롱나무가 꽉 들어찬 풍천 병산서원의 백일홍도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태양의 기운이 강한 성하(盛夏)에는 바깥나들이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작심하고 떠나는 휴가라면 몰라도 주말에 가까운 교외로 향하는 발걸음도 쉽지는 않다. 그래도 집을 나서지 않으면 여름꽃이 펼치는 세계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 5년 연속해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로 벌어지는 '월복'(越伏)이 들면서 삼복더위가 더 길어진 느낌이지만 입추가 지났고 더위가 가시어 풀이 더 자라지 않는다는 처서(處暑)도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노(NO) 재팬' 사회 분위기에다 여유가 없어 아직 여름휴가를 내지 못한 직장인이라면 광복절 공휴일과 주말에 잠시 짬을 내 가까운 곳으로 여름꽃 구경이라도 나서는 것은 어떨까 싶다. 화사한 여름꽃 축제를 염두에 두고 일정을 맞춘다면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색다른 테마여행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19-08-12 06:30:00

[관풍루]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러브콜과 관련 친박계에서 몸값만 높인다고 반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러브콜과 관련 친박계에서 몸값만 높인다고 반발. 데리러 가기도 싫은데 모시러 가게 될까 걱정이라는 말씀!○…문 정부의 이번 개각에서 TK 출신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단 1명뿐이라는 볼멘소리. 너무도 당당한 청와대에서 "그것도 생각해서 준 것"이라는 큰소리 나올라.○…과학기술정보통신부, 2년간 예산 1천억원 투입해서 미취업 이공계 대졸생 4천 명에게 월 150만원씩 지급. 일 안 해도 돈 잘 주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2019-08-12 06:30:00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한일 경제전쟁에서 빛나는 시민의식

시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었다. 무도(無道)한 일본 아베 정부에 대한 항거다.9일 대구에서 처음으로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경제보복 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NO 아베'를 외쳤다.서울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10일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7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아베 규탄 시민행동'이 '아베 규탄 4차 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 시민행동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배상 판결로 촉발된 일본의 경제보복 조처가 '침략 역사에 대한 반성 거부'이자 '부당한 보복 조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일본 경제보복에 시민들의 첫 대응은 불매운동이었다. 이는 민주시민의 자발적인 주권 행사다. 불매운동은 들불처럼 번졌다. 하지만 열기가 고조되면서 우려가 제기됐다. 격한 반일(反日)로 비화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일식집은 손님이 끊겼다. 주인이 한국인이며, 국내산 재료를 쓰는 곳이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일본산 자동차는 세차장에서 퇴짜를 맞기도 했다. 일본산 제품을 쓰거나 사려는 사람에게 눈을 흘기는 일도 벌어졌다.정치권과 지자체는 한술 더 떴다. 여당은 '열두 척의 배' '죽창가' '의병' 등의 상징어로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 '도쿄 여행금지' '올림픽 보이콧' 등의 제안도 내놨다. 일부 지자체는 한일 교류까지 중단했다. 자유한국당은 '신쇄국주의'라며 정부와 여당에 총질을 했다. 시민들은 혼란을 겪었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며, 어떤 것을 먹지 말아야 할지.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는 엇나간 애국주의를 경계했다. 서울의 한 구청은 'NO 재팬' 깃발을 걸었다가 하루 만에 내렸다. 시민들의 질타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정부·정치권의 지나친 반일 행보를 호되게 비판했다. 시민사회는 'NO 재팬'이 아니라 'NO 아베'로 선을 그었다. 그래야 극일(克日)할 수 있다는 것이다.현명한 전략이다. 우리의 투쟁 대상은 일본 국민이 아니라, 일본 정부와 극우집단이다. 쇼비니즘(chauvinism·배타적 애국주의)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일본 국민을 배척하면 국제사회와 세계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또한 아베 정권을 끌어내리는 힘(투표권)은 일본 국민에게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일본에서도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들은 지난 8일 참의원회관에서 집회를 열고 '평화에 역행하는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정책에 항의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앞서 4일에는 도쿄 신주쿠역 앞에서 일본 시민들이 모여 '아베 정권 타도'를 외쳤다. 트위터에선 '#좋아요_한국' 등의 해시태그를 게재하는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의 저명인사들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철회를 촉구하며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들은 '반(反)아베 공동전선'을 형성하기도 했다. 양국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 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15일(광복절) 서울에서 '국제평화행진'을 한다.일본의 양심 세력이 일본에서 영향력을 갖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한국 시민사회는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 일본은 국제분업과 자유무역질서를 위배했다. 더욱이 식민지배 역사의 잘못을 부정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 정부에 공존공영과 호혜 협력 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인류의 보편 가치이며, 국제규범이다. 우리는 자신감을 갖고 우호적인 국제여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시민사회의 책무는 막중하다.

2019-08-11 14:28:46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독수리와 제국

독수리는 수리류 중에서도 몸집이 가장 크며 가장 강한 맹금류이다. 넓고 긴 날개를 쭉 펴고 창공에 날아오르면 지상의 모든 동물들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이라는 위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역의 확장성 때문에 유사 이래 패권을 추구했던 많은 국가와 통치자들이 스스로의 상징으로 삼았다. 서양 문화의 모태인 그리스 문명에서 독수리는 으뜸가는 표상이었다. 독수리는 최고의 신인 제우스 그 자체였다. 로마제국에서 독수리는 초기 건국신화에 등장한 이후 제국의 유일무이한 상징이 되었다.로마의 저력을 견인했던 군단기를 내건 장대 위에는 어김없이 독수리상이 버티고 있다. 이 군단 깃발이야말로 로마의 명예이자 영광이었다. 로마의 통치력을 상징하는 신성한 영물이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되자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은 쌍두 독수리를 내세웠다. 동·서를 모두 계승한다는 의미였다. 기독교 개종과 함께 서로마제국의 권위를 계승하고자 했던 게르만족의 신성로마제국도 쌍두 독수리 문장을 사용했다.이 같은 독수리의 상징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제국은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었다.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나치가 차용한 독수리는 광대한 제국과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던 로마의 이미지를 주목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치 독일과 로마제국을 동일시하며 유럽 정복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나치의 방식으로 재현하려던 그들의 광기 어린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현대 지구촌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의 국장에도 어김없이 독수리가 등장한다. 나치의 독수리가 검은 독수리인데 반해 미국의 국조(國鳥)는 흰머리 독수리이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강연장 스크린에 학생단체가 가짜 대통령 문장(紋章)을 띄운 게 논란이 되었다. 머리 둘 달린 독수리가 골프채를 쥔 모습은 러시아 스캔들과 골프에 빠진 트럼프를 비꼰 것이라고 한다. 무상한 게 권력이요, 제국의 운명인가. 민주제도가 포퓰리즘으로 전락하고 코미디언 같은 대통령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독수리도 이젠 사양길로 접어든 것인가.

2019-08-10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적반하장의 번역

국가 간 소통에서 오역(誤譯)은 치명적인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1956년 11월 소련 지도자 흐루쇼프가 모스크바 주재 폴란드 대사관 리셉션에서 NATO 회원국 대사들에게 한 연설의 오역도 그런 경우다. 당시 흐루쇼프는 "당신들이 좋든 싫든 역사는 우리 편이다. 우리는 당신들을 묻어버릴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은 이를 서방에 대한 공격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였다.그러나 "We will bury you"로 번역된 연설문의 러시아어 원문은 'My vas pokhoronim'으로, 직역(直譯)하면 영어 번역문과 똑같은 의미지만 실제 의미는 "우리는 당신들보다 오래 살 것이다" 또는 "우리는 당신들보다 오래 살아 당신들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다"이다. 즉 흐루쇼프가 의도한 것은 "우리는 자본주의를 끝장내버릴 것이다"가 아니라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파멸을 고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였다.('오역의 제국', 서욱식)그러나 서방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설 다음 해인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린 충격은 이런 의심에 기름을 부었다. 흐루쇼프의 '연설'이 괜한 엄포가 아니라고 믿게 된 것이다.이에 흐루쇼프는 경악했다. 미국과 같은 핵보유국이 됐지만, 아직 전체적인 핵전력에서 미국에 열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흐루쇼프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연설'의 진의(眞意)를 해명했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멸망하고 사회주의가 그 뒤를 이을 것이라는, 자신이 굳게 믿는 역사 발전 전망을 얘기했다는 것이다.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비판을 두고 양국 정부가 치고받으면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게 된 것은 일본 언론이 적반하장을 사전에 나오는 대로 "도둑이 정색하고 뻔뻔하게 나온다"고 번역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색을 하면서 강하게 나온다"고 의역한 마이니치 신문을 제외하고 NHK 등 상당수 일본 매체가 그렇게 번역했다.그러나 한국에서 적반하장은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화를 낸다"는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일본 언론이 번역에 좀 더 세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 대통령의 적반하장이란 표현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굳이 그렇게 표현했어야 했나라는.

2019-08-09 06:30:00

[관풍루] 북, "신형 전술무기 위력 시위에 질겁한 남조선 당국이 또 평화 타령한다"며 문 대통령 비아냥

○…북, "신형 전술무기 위력 시위에 질겁한 남조선 당국이 또 평화 타령한다"며 문 대통령 비아냥. '평화경제' 허망함은 북도 알고 남도 알 건만 한사람만 모르지.○…방위비 분담금 협정 논의 시작되자 트럼프, '한국이 방위비 더 내기로 했다'고 트윗. 억울하면 우리도 핵개발하고 미군 철수하라고 큰소리치든가.○…여당의 일본 가지 말고 국내 관광 활성화하자는 주문에 관광업계, "민간 교류 금지는 안 된다" 쓴소리.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는 법도 몰라.

2019-08-09 06:30:00

이상준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反일본이 아니라 反아베다

여기 한 장의 흑백사진이 있다. 때는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잔뜩 흐린 하늘에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다. 당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애도를 표하다가 갑자기 차가운 대리석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과거 나치 독일에 상처받은 폴란드 국민들에게 용서를 빌었다.이날 사진은 언론을 통해 전 세계로 전송됐고, 서독 총리의 진심 어린 참회와 사죄에 전 세계가 환호했다. 독일의 진정성이 유럽연합 창립으로 이어지는 등 유럽의 평화와 발전에도 기여했다.이에 반해 일본의 역사 인식은 어떠한가. 1945년 패전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 대한 일본 지도자들의 진심 어린 참회와 사죄가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오히려 2012년 재취임 이후 장기집권에 성공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른바 '극우 포퓰리즘'을 통해 식민 지배의 정당성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그는 2013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이어 2014년 위안부 피해자의 강제 동원을 부인했다. 2015년 패전 70주년 담화에선 "미래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라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급기야 아베 정부는 지난해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한국과의 역사 갈등이 이슈로 떠오르자 수출규제와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라는 '경제 보복'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를 기저에 깔고 외부 위협을 과장함으로써 권력을 공고화하는 극우 포퓰리즘의 전형이다.안타까운 현실은 이 같은 아베 정권의 극우 포퓰리즘에 대한 한국 정서가 '반(反)아베'가 아니라 '반(反)일본'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대표적인 사례가 정봉주 전 의원이 공개한 '일본 가면 코피 나' 티셔츠 사진이다. 정 전 의원은 SNS에 "2020년 올림픽도 참가하면 방사능 세슘 오염 때문에 코피 나고 암 걸린다는 것을 널리 알리겠다"고도 적었다.응원글 못지 않게 비판글이 달렸다. 여성학자 권김현영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벼움이 무기가 되는 국면이 아닌데도 상황 파악도 못하고 눈치도 없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SNS에는 대구도시철도 승강장이나 열차에서 방송하는 일본인 대상 안내 방송을 중지해 달라는 주장도 나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지난 3일 대구도시철도공사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듯 대구 지하철도 일본어 안내 멘트를 확 빼내자"는 글이 올랐다.해당 게시물을 공유한 페이스북 페이지 '실시간 대구'의 댓글창에서 "공용어도 아닌 일본어 방송은 필요없다"는 주장과 "한국에 넘어와서 열심히 살고 있는 좋은 (일본) 분들도 있다. 잘못에 대해 곱절로 보복하는 게 맞지만, 같은 국적이라고 무작정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극단으로 치닫는 반일 감정은 '여권'이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도 들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는 것을 '제2의 독립운동'으로 규정한 데 이어 '일본 전역 여행 금지 구역 설정 검토' '내년 도쿄올림픽 보이콧 고려' 등 자극적 대안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친일(자유한국당)·반일(민주당) 구도를 내년 총선에 유리하게 이용하자는 민주당 내부 보고서까지 나왔다.아베 정권과 일본을 구분하지 못하고 무개념적인 반일과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정치권 행태는 우리 국론만 분열시킬 뿐 국익과 한·일 관계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잘못된 역사 인식과 경제 보복의 당사자가 '아베 정부'이지 선량한 '일본 국민'은 아니지 않은가.

2019-08-08 16:13:34

정욱진 사회부장

[데스크칼럼] 신청사 입지, 시민들에게 맡기자

도쿄에 가면 신주쿠 고층빌딩 숲에서도 눈에 띄는 건물이 도쿄도청사다. 1991년 3월 완공된 이곳이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명소가 된 것은 남쪽과 북쪽 타워에 각각 들어선 전망대 때문이다. 입장료가 무료인 45층 전망대에서 도쿄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매력적인 건물이다. 맑은 날에는 후지산까지 보이는 시원한 전경에, 밤에는 도쿄의 낭만적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단게 겐조(丹下健三)가 설계한 도쿄도청사는 부지 4만2천940㎡, 건평 2만7천500㎡, 총면적 38만1천㎡ 등 규모도 압도적이다.영국 런던의 타워 브리지 남단에 있는 런던시청은 2002년에 완공된 현대식 돔으로,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외관이 독특하다.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런던 고유의 느낌과 달리 시청 건물은 현대식이라 유독 시선을 압도한다. 특히 미래적인 건축물로 유명하다. 에너지 절약형 친환경 건축물로 지어져 과거 도시의 모습과 미래 도시의 모습이 절묘하게 조화되는 느낌을 준다. 타워 브리지, 런던 탑과 더불어 런던 관광 3대 명소다.2012년 새로 지은 서울시청은 도심 한복판 대규모 건물 전면에 파도 치는 형상의 유리를 덮은 디자인으로 이목을 끌었다. 특히 고층 만능주의를 떨치고 유려한 디자인을 도입한 점, 세계 최초로 청사 공간 10% 정도를 개방해 시민청으로 조성한 점 등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위에 소개한 3곳은 대구 시민이 신청사를 지을 때 벤치마킹해야 할 곳으로 선택한 곳이다. 최근 대구시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회가 온라인 투표시스템을 통해 '대구시 신청사는 어느 지역의 시청처럼 건립됐으면 좋겠습니까'라는 물음에 1천494명의 대구 시민이 응답한 결과다. 시민들은 또 미래 대구시청 신청사 이미지로 ▷상징·랜드마크·명소 ▷휴식·문화·공원 ▷친근·함께·접근·소통·편안함 등을 꼽았다.시민들이 이런 요구를 한 이유는 현재 대구시청은 너무 낡고, 대구의 미래를 상징하기엔 모자라며, 일을 처리하기에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1993년 준공한 대구시청사 연면적은 고작 2만5천㎡다. 전국 8대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비좁은 청사로, 대한민국 3대 도시로서의 위상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낡고 좁은 공간 문제 때문에 지난 2004년 이후 15년간 청사를 이원화하면서 업무차 시청을 방문하는 시민들이 본관, 별관으로 옮겨 다니며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옆 동네 부산만 해도 1998년 이전·신축한 부산시청(지하 3층~지상 26층, 연면적 13만1천590㎡)은 3만9천797㎡ 규모의 시청광장을 마련했다. 시민광장, 동백광장, 녹음광장, 등대광장, 잔디광장을 구성해 사랑받고 있다. 시청사 규모만 대구시청의 5배가 넘는다.이런 까닭에 대구시는 올해만큼은 반드시 입지 선정을 마무리한다는 목표로 다시 한 번 신청사 건립에 나섰지만,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불협화음과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한 정치적 입김 등으로 삐걱대고 있다. 지난달 신청사를 주제로 한 대구시민원탁회의에 일반 시민이 아닌 지자체 공무원들이 유치를 위해 대거 참석하는 등 빗나간 열정으로 시민원탁회의의 취지를 거슬렀다는 소식에 실소가 나온다.정정당당하게 유치를 홍보하고, 마지막 결과에 승복하는 기본에 충실했으면 한다. 또 대구시와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회도 모든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공정할 룰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신청사 입지는 제발 대구 시민들에게 맡겨두자. 일부 정치인들이 왈가왈부하며 물을 흐리기엔 너무나도 중요한 사안이다.

2019-08-08 06:30:00

[관풍루] 삼성 이재용 부회장 "긴장하되 두려워 말고 반도체 등 핵심사업 소재 다변화로 위기 넘자" 강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긴장하되 두려워 말고 반도체 등 핵심사업 소재 다변화로 위기 넘자" 강조. 근데 "돕겠다" 큰소리치는 '관군'(정부)이 길을 막지는 않을지 그게 걱정.○…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삼분된 보수 우파, 하나로 뭉쳐야 산다"며 통합 강조. 돈 없어 '특별 당비'까지 걷는 처지다 보니 그런 소리 나올 법도 하네.○…한·일 갈등에다 미·중 경제 전쟁 악재로 안전자산 투자 쏠리면서 한국금거래소 금(金) 없어서 못 팔 정도. 무일푼이라 돈 걱정, 투자 걱정 않으니 만사형통-서민.

2019-08-08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己亥倭亂(기해왜란)

이스라엘 민족은 나치 독일에 의해 수백만 명이 학살당하는 참혹한 시련을 겪었다. 그 수난의 대가로 1948년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와 독립국가를 세웠지만, 이집트를 비롯한 주변 아랍국들은 이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1967년 6월 5일 일어난 이른바 '6일전쟁' 또한 그 연장선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250만 명인데, 아랍권은 1억5천만 명이었다. 신생국가인 이스라엘은 군사력 또한 한참 열세였다.그러나 전쟁은 불과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기적이었다. 승리의 비결은 지도자들의 치밀한 작전 계획과 허를 찌르는 기습 폭격으로 제공권을 장악한 데 있었다. 지상전에서도 이스라엘군은 무기의 열세를 운영 능력과 정비 기술로 만회했다. 무엇보다도 승리의 신화는 탁월한 정신 전력의 결과였다. 전쟁이 터지자 미국의 유대인 유학생들은 참전을 위해, 아랍권 학생들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사라졌다는 유명한 얘기가 나온 것도 그즈음이다.아랍 연합군이란 거대한 골리앗이 다윗의 이스라엘에 패배한 것은 군사력이 아닌 정치적·전략적 실패의 결과였다. 위정자들이 국민을 하나로 아우르지 못했고, 나태한 국민은 정치권을 불신했다. 만일 이스라엘이 6일전쟁에서 졌다면 2천 년 만에 세운 나라는 다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밀려나 '디아스포라'의 운명과 마주했을지도 모른다.백의종군의 고난을 겪은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되었을 때 조선 수군은 궤멸한 상태였고 지상군도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고작 40여 일 만에 12척의 군함으로 330척의 왜군과 맞섰다. 명량해전이었다. 그 짧은 기간 장군은 백성들을 위무하며 희망을 복원하고, 전장을 치밀하게 분석해 적을 무찌를 전술을 세웠다. 가능한 한 승산 있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자신 있는 전술로 싸운 것이다.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라 하여 덮어놓고 달려든 게 아니었다. 백성들과 함께 총력전 체제를 구축한 뒤 최선의 전략 아래 사력을 다해 싸워서 기적적인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다. 일본의 선전포고로 기해년 '경제왜란'이 발발했다. 왜란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과 민족의 자존이 걸린 전쟁이다. 틈만 나면 이순신 장군과 12척의 배를 입에 올리는 문재인 정권의 전략은 무엇일까.

2019-08-08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계산동 스케치] 진보세력의 자기 고백

개인적으로 자서전 읽기를 좋아한다. 개인의 굴곡진 삶과 시대상을 일별하고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자서전을 읽을 때 주의할 것은 자기 미화와 과장으로 포장돼 있어 이를 헤아릴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치인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 박준규 전 국회의장은 생전에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평한 적이 있다. "YS는 절반쯤 사실과 달라. DJ는 그보다 낫지만 미화와 과장이 아주 많아."필자가 좋아하는 자서전은 시인 김지하의 '흰 그늘의 길'이다. 이 자서전은 꾸밈이나 가식이 없고 솔직하다. 그의 사상적 궤적과 고난은 익히 아는 바이나, 자신의 약점이나 여자·가족 문제, 방탕한 생활까지 가감 없이 써놓았다. 공술 얻어먹고 술주정 부린 다음 날의 허탈감, 타인을 욕한 뒤의 후회, 남에게 신세 진 부끄러움 같은 인간적인 면모가 곳곳에 들어있다. 심지어 정신병 병력이나 국정원에 끌려가 덜 맞기 위해 잔꾀를 부린 부분까지 나온다.김지하 선생이 198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세력에게 영웅에서 경원시되는 인물로 급전직하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NL이니 PD니 하면서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가 판치는 시대에 생명·개벽사상이라는 '낭만적 사회주의'를 주창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꾸밈없고 소탈한 시인의 감수성은 가식과 음모·조직생활 따위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애시당초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는 인간형이다.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설전을 벌인 일이 있다. 황 대표가 "임종석 씨가 무슨 돈을 벌어본 사람인가"라고 하자, 임 전 실장이 "아직도 좌파 우파 타령을 하니 공안검사 시절 인식에서 한 걸음도 진화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별것 아닌 일을 끄집어낸 이유는 여기에 진보세력의 모순이 담겨 있는 듯해서다.황 대표가 '진화 못 한 공안검사' 비판을 받는 것은 처신을 볼 때 당연하다. 그보다 눈여겨볼 점은 임 전 실장은 남을 탓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한 번이라도 고백이나 반성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전대협 의장 출신인 임 전 실장은 자신이 한때 주사파였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없다. 대학 시절 임 전 실장이 김일성주의를 신봉했음을 증언할 사람은 아마 작은 교실 하나 채우고 남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강철서신'의 저자이자 주사파의 대부였던 김영환 씨는 "임 전 실장 등 전대협 핵심은 주사파 언더조직의 지도를 받았다"고 했다. 물론 임 전 실장이 아직도 주사파일 리 없고, 한동안 학생운동권을 휩쓴 사상에 경도됐다고 해서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의 과거 행적은 미화와 찬양으로 일관하면서 남의 허물만 손가락질하는 '내로남불'은 볼썽사납지 않은가.'반성 없는 자기 미화'는 임 전 실장만이 아니라 진보세력 모두가 비슷하다. '죽창가'를 외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사노맹사건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한때 공산주의를 신봉했음이 분명하지만, 한 번도 그런 고백을 한 적이 없다.그저 민주화운동이니 학생운동을 내세울 뿐이지만, 본질은 공산주의 신봉자였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대가 다르니 '한때 공산주의자'가 아닐 개연성이 높지만, 당시의 지식인 그룹처럼 독재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을 가능성이 있다.이들은 젊은 날의 사상을 온전히 갖고 있지 않지만, 새 시대의 새 사상으로 갈아타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옛날 젊은 시절의 사고·사상 가운데 무장혁명 같은 극단적인 요소만 제거한 채 남은 찌꺼기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친북, 친중, 반미, 반일' 이데올로기가 대표적이다.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고백할 수도 없고, 토론할 수도 없으니 내면에서 고체화되고 수구화되는 것은 필연이다. 보수정권보다 도덕적인 측면에서 약간의 비교우위가 있어 정권을 잡았지만, 낡고 진부한 생각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자기 고백과 반성이 없다면 한국의 진보세력도 보수세력의 행로와 비슷해질 것이다. 이들이 훗날 자서전을 쓸 때 김지하 선생처럼 솔직하게 자기 고백을 할 용기나 있을까.

2019-08-07 18:0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강남 좌파의 이중성

환경운동가이자 전 미국 부통령인 엘 고어가 2010년 아내 티퍼와 이혼했다. 사이가 좋기로 소문난 고어 부부가 갈라선 것은 의외였다. 부부 싸움 중 티퍼가 "나는 지구온난화 같은 것은 믿지 않아"라고 말하자, 엘 고어가 이혼을 결심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거부이자 명문가 출신이면서 환경운동에 매진하는 엘 고어의 이중성을 비꼬는 유머였다.엘 고어는 전 세계에서 수천 회의 강연을 하면서 친환경, 친자연 생활 습관을 외치는 환경전도사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였지만, 위선 논란에 시달렸다. 테네시정책연구센터는 엘 고어가 아내와 둘이 사는 저택에 20개의 방과 8개의 화장실이 있으며 월평균 전기료는 130만원(일반 가정의 20배)에 달해 환경적으로 매우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 후 엘 고어는 집을 친환경적으로 개조해 태양열, 지열을 이용한 난방시설과 빗물 사용 설비, 친환경 단열재를 갖춰 체면을 가까스로 지켰다.미국에서는 엘 고어처럼 타인의 고통에 지나치게 공감하는 사람을 두고 '블리딩 하트 리버럴'(Bleeding Heart Liberal·동정심이 과도한 민주당 지지자)이라고 비꼬곤 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처음 쓴 '강남 좌파'와 같은 의미다.현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이끄는 인사들은 전형적인 고학력 부자들이다. 장하성 주중대사는 지난 4월 103억9천887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장 대사는 청와대 정책실장에서 물러나면서 토지 2억2천여만원, 건물 17억9천여만원, 예금 82억5천여만원 등을 신고한 바 있다.'죽창가'를 외치고 서울대 재학 시절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건으로 구속됐던 조국 전 민정수석의 재산 신고액은 54억7천645만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산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0억1천601만원이다. 토지·건물은 공시지가 기준이므로 실제 재산은 훨씬 많다.우리 사회에서 부자라고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변호사·교수 출신에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 입만 떼면 '노동자' '소외계층'을 외치는 모습은 왠지 어색하고 공허하게 들린다. 그들의 주의·주장이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것인지, 자신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현 정부 들어 서민생활이 훨씬 나아졌는가?

2019-08-07 06:30:00

[시각과 전망] 8·15 경축사에 담겨야 할 내용

매일신문 기자 출신 정치평론가 전계완 씨가 5년 전 출간한 '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가 다시 관심을 끈다고 한다. 사료 연구 및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정밀한 분석을 통해 일본이 다시 한국을 경제적으로 침략한다고 했는데 작금의 상황과 맞아떨어져서란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일본은 끊임없이 준비하며 기회를 노린다. 기회가 오면 범처럼 달려든다. 조선 침략,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등이 그랬다. 미국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도 그랬다. 그러나 준비가 됐음에도 기회가 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일본을 막으려면 우리가 강해져서 공격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 책에서 보듯 일본은 이번 경제 전쟁에 돌입하면서 세밀히 준비했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대비하지 못했다.여기서 오버랩 되는 일화 한 토막. 지난 7월 4일 일본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며칠 뒤. 정부 경제 컨트롤타워의 최고위급 인사를 만났다. 일본이 그럴 줄 알았냐고 물었다. '미리 대처하고 있었다'는 대답이 나오길 기대했다. 그런데 솔직히 이리 빨리 행동할 줄 몰랐다고 했다.이게 경제 전쟁 국면에 들어가 있는 우리의 현주소다. 일본이 교활한 게 아니라 우리가 무지하고 무능력한 것이다. 아베의 경제 전쟁 시나리오는 문재인 정부가 전 정권의 위안부 합의를 백지화하면서 시작됐다. 아무리 적폐로 낙인찍혀 탄핵당한 정권이지만 협상에 고민이 없었을까. 타결은 적폐 정권의 산물로 넘기고 실리를 취하는 쪽으로 가야 했지만 국가 간 합의를 깨버렸다. 국가 간 합의 폐기는 한미 FTA 사례에서 보듯 미국 같은 패권 국가만이 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이다.이 정부는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8개월이 지나도록 외교적 해결 노력도 등한시했다. 아베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보복을 준비했는데, 강하지 못한 우리는 알아채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화이트리스트 제외'라는 선전포고를 받았다.이제야 내놓는 대책이 '5년 내 주요 부품 국산화', '남북경협' 같은 먼 산 불구경하는 것들이다. 더욱이 남북경협은 우리 힘으로 할 수도 없다. 위안부 합의를 파기할 때부터 적폐 수사와는 별개로 기업과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이순신 장군의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는 상소는 사즉생의 각오로 임한다는 결기다. 지금 이 순간 그 말이 대통령 입에서 나오면 국민들은 불안해진다. 지금은 준비된 수만 척의 군함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정부는 이달 내 독도상륙훈련을 한다고 한다. 경찰이 아닌 해병대에 독도 경비를 맡기는 것도 검토한단다. 악수의 연속이 될 공산이 크다. 다시 경제외적인 문제까지 겹치면 한일 관계 복원은 요원해지고 우리 경제는 더욱 힘들어진다.독도는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일본도 그걸 인정하고 있다. 망언망발을 하는 건 그들의 입장이고, 우리는 우리 땅 독도를 지금처럼 지켜내면 된다.극일은 불매운동을 벌이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 데모하면서 집권 여당과 지지 세력이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우리가 강해져야만 극일이 가능하다. 그러려면 때론 수모도 견뎌내야 한다. 내년 총선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면 지지 세력이 아닌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다음 주가 광복절이다. 대통령 경축사가 극한으로 치닫는 것은 분명 삼가야 한다. 흥분한 지지자들을 위한 메시지가 아닌 다수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기기를 기대한다.

2019-08-07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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