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컬럼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파르시

종교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박해는 죽음과 엑소더스를 낳는다. '파르시'(Parsi)도 그런 예다. 파르시는 넓은 의미로 '페르시아인'을 뜻하지만 7, 8세기 무렵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옛 페르시아(오늘의 이란) 땅에서 중앙아시아나 인도로 피신한 조로아스터 교도를 부르는 명칭이다. 반면 이란에 남은 조로아스터 교도는 '가바르'로 불렸다. 이는 아랍어로 이교도(카피르)를 뜻한다.'마즈다교'로도 불리는 조로아스터교는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으나 기원전 6세기 옛 페르시아의 예언자 자라수슈트라 스피타마가 창시한 고대 종교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적 산문시에 등장하는 '차라투스트라'가 그다. 사산 페르시아 왕조의 국교였고 '조장'(鳥葬)을 치르는 게 종교적 전통이었다.영국 록 밴드 '퀸'(Queen)의 간판스타이자 팝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보컬리스트로 평가받는 프레디 머큐리도 파르시다. 그는 영국 보호령이던 동아프리카 섬, 잔지바르(현 탄자니아) 태생이나 부모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 출신이다. 1964년 잔지바르 혁명 때 영국으로 이주했다. 1971년 '퀸'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름도 프레드릭 머큐리로 바꿨다.머큐리는 전 세계 약 20만 명에 불과한 조로아스터교 신도 중 가장 이름난 인사다. 인도에도 약 7만 명의 파르시가 산다. 특히 인도의 파르시는 최대 경제도시 뭄바이에 가장 많이 거주하는데 인도 국민기업인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도 파르시다. 머큐리의 묘비에 기록된 본명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가 우리에게 낯선 것도 그의 종교와 인도라는 배경 때문이다.파로크 불사라로 태어나 조로아스터교에서 진실을 상징하는 태양과 가장 가까워 '진실의 배달부'로 여기는 '머큐리'(수성)라는 이름으로 1970, 80년대 음악계를 뒤흔든 프레디 머큐리. 24일은 그가 불사라의 이름으로 다시 돌아간 지 27년이 되는 날이다. '보헤미안 랩소디'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등 그가 남긴 숱한 명곡은 계속 우리 귀를 울린다.

2018-11-24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노동조합의 타락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장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조와 조합원에 좋은 것이 반드시 노조원이 아닌 사람들과 사회 전체에 좋은 것은 아니다. 노조가 이렇게 노조와 조합원에게만 좋은 것에 매몰될 때 노조는 반사회적 기득권 집단으로 전락하게 된다.1980년대 중반까지 영국 국가 경쟁력의 총체적 저하를 가져온 영국 노조의 행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중에서도 인쇄공 조합의 '반사회성'은 특히 두드러졌다. 당시 인쇄공 조합은 식자공(植字工)으로 이뤄진 전국인쇄협회(NGA)와 인쇄 업계의 육체 노동자들로 구성된 '인쇄 및 동업협회 ʼ82' (SOGAT ʼ82)가 있었다.이들 조직은 런던지역에서 까다로운 가입 조건의 클로즈드숍(사용자가 노조 가입자만 고용하는 제도)을 운용하고 있었다. 이는 조합원에 대해서는 엄청난 지배력을, 사용자에 대해서는 막강한 협상력을 인쇄공 노조에 부여했다.이런 힘을 바탕으로 한 인쇄공 노조의 오만은 하늘을 찔렀다. 식자공들이 뉴스 기사와 논평까지 검열했던 것이다. 그들은 동의할 수 없는 문구를 찾으면 바로 삭제해버렸다. 또 툭하면 파업으로 신문 발행을 중단시켰다.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는 1983년 6월 1일부터 8월 8일까지, '더 타임스'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신문도 같은 해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발행되지 못했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더 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지만 그들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인쇄공 노조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인쇄공 노조는 더 나아가 새로운 일간지 '투데이'의 발간을 저지하려 했고, 인쇄공 노조원을 쓰지 않는 루퍼트 머독의 최신식 인쇄공장의 가동을 막기 위해 공장이 들어선 지역을 폐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비노조원에 대한 폭행은 물론 발행자에 대한 살해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고용 세습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민주노총이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노동귀족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고용 세습은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도덕적 타락이다. 그 끝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2018-11-23 06:30:00

[관풍루] 국회 예결특위 예산안소위에 지역 여당 의원이 없으니, 지역구가 경기도인 대구출신 조응천 민주당 의원에 요청 쇄도

○…국회 예결특위 예산안 소위에 지역 여당 의원이 없으니, 지역구가 경기도인 대구 출신 조응천 민주당 의원에 요청 쇄도. 그래도 '고향 까마귀'라고.○…민주노총, 자신들이 촛불 들고 지지했던 현 정권을 향해서도 대규모 집회 열고 강경 투쟁 선포. 그들이 원하는 나라는 언제쯤 이루어질까?○…연구사업비 부당 집행 등으로 감사 받아온 손상혁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 사의 표명. '정치 감사' 등 뒷말도 있지만 학교 발전 위한 중요한 새 걸음 될 듯.

2018-11-23 06:30:00

경북부 최두성 차장

[청라언덕] 진영 싸움 안 될 새마을운동

2008년, 대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타지의 지인으로부터 "견딜 만하냐"는 안부를 듣는 때인 8월 초에 기자는 한낮 뙤약볕이 내리쬐는 수성구 두산오거리 인근에 서 있었다. 수성구청의 '폭염축제' 현장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구청은 두산오거리와 들안길을 잇는 10차로 도로의 5개 차로를 막아 축제의 장을 만들었고 그 공간에 다양한 즐길 거리를 채워 시민들을 기다렸다.더운 도시 대구의 부정적 이미지를 숨기지 않고 축제의 주제로 끌어낸 아이디어에 참신하다는 평가도 나왔으나, '폭염'이라는 말에 손사래 치는 사람들이 더 많아 축제의 흥행에는 의문부호가 붙었다.그러나 축제는 첫날부터 '대박'을 쳤다. 지켜본 축제 현장은 '뜨거워서 기쁘고, 뜨거워서 신나고, 화끈해서 시원한' 축제 슬로건과 흡사했다.핸디캡으로 여겼던 대구의 더위를 상품화한 '발상의 전환'이란 평가가 나왔고, 구청 측은 "축제 사흘 동안 다녀간 이들이 50만 명이나 됐다"며 도심의 대표축제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축제는 2010년에는 80만 명을 불러들였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기도 했다.'명품축제' 탄생의 기대감과 달리 축제의 수명은 길지 않았다. 2010년 구청장이 바뀌자, 구청 측은 교통 체증을 이유로 잠정 중단을 선언했고, 이듬해부터 축제는 열리지 않았다.바뀐 구청장의 전임 구청장 '업적 지우기'라는 수군거림이 나왔다. 전·현직 구청장은 선거로 감정의 골이 팰 대로 팬 상태여서 추측엔 힘이 실렸다.아이러니하게도 그 폭염축제 역시 대구 대표축제로 자리 잡아가던 들안길 맛축제를 밀어내고 시작됐고 폐지 또한 도돌이표였다.10년 전 기억을 소환한 건, 최근 뜨겁게 달궈졌던 구미시의 '새마을과 폐지' 논란 때문이다.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또 '새마을운동 종주 도시'를 자부하는 구미에서 새마을과는 하나의 행정부서 의미를 넘어서기에, 진보 진영 시장의 업무 추진에 반발이 일었다. 보수 진영에서는 '박정희'와 '새마을운동'의 상징성을 송두리째 뽑아내겠다는 의도로 봤고, 거세게 저항했다.구청의 축제 이야기를 새마을운동에 끄집어낸 건 새마을운동이 진보-보수의 진영 싸움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는 맥락에서다.새마을운동은 개발도상국이 배우고 싶어하는 경제 발전 모델이다. UN은 2007년 새마을운동을 아프리카 빈곤 퇴치를 위한 새천년 마을 계획 프로그램으로 채택했고 관련 기록물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하지만 국내에서는 '공'(功)과 '과' (過) 논란이 계속됐고, 정권의 성향에 따라 공과의 평가는 들쭉날쭉했다. 그래서 현 정부의 적폐 청산 기조에 '공'마저 묻혀 휩쓸려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새마을운동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다행히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와 구미시의 새마을과 명칭 유지로 일단락됐다.하지만 언제든 다시 불거질 소지가 다분하다. 이참에 보수 진영은 새마을운동의 '과'를, 진보 진영은 '공'의 보고서를 작성해봄은 어떨까. 이를 통해 논란의 마침표를 찍을 답을 찾아보자. 어쨌든 새마을운동은 우리가 만들어낸 '글로벌 브랜드' 아닌가.

2018-11-22 16:04:00

[야고부] 보헤미안 랩소디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이래저래 화제다. 이번엔 주연 배우 라미 말렉의 인터뷰 사진이 이슈가 됐다. 말렉이 한 주간지와 인터뷰하고 그 주간지를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잡지 표지에 '나는 왜 文정부에 등을 돌렸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진만 보면 말렉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게 됐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오해할 만하다. 영화 배급사가 "배우가 이 문구의 뜻을 알고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다"고 했고, 취재진도 "이전에도 배우와 인터뷰 후 관례적으로 잡지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고 해명해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흥행 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국내에 개봉한 음악 영화 '라라랜드' '비긴어게인' '맘마미아!' 등의 기록을 깨고 가장 빠른 속도로 300만 명을 넘었다. 영화는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던 아웃사이더에서 전설이 된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음악, 삶을 담았다.'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는 1989년까지 우리나라에서 금지곡이었다. 1975년 발표된 이 곡은 사형수에 관한 노래다. 살인을 묘사하는 부분이 가사에 포함돼 있어 금지곡이 됐다. 보헤미아라는 지명이 당시 사회주의 국가인 헝가리·체코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금지곡이 됐다는 웃픈 설(說)도 있다.1970, 80년대 '퀸'은 일류는 아니었다. '레드 제플린'이나 '딥퍼플'보다 아래로 여겨졌다. 하지만 메탈, 록, 팝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그들의 음악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와 무대 매너,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는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장노년층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며 '퀸' 노래를 떼창한다.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도 관람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스포츠에서 우승팀이 결정되면 꼭 나오는 노래 '위 아 더 챔피언'으로 '퀸'을 알고 있다. 영화를 통해 세대 간 소통과 공감을 한다.우리에게도 '퀸'과 같은 존재가 있다. 조용필, 방탄소년단은 세대를 연결하는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하다. 중학생 아들이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싶다는데 슬쩍 동행해 영화를 같이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야겠다.

2018-11-22 06:30:00

[관풍루] 자유한국당의 쇄신이 좌절되면서 '혁신과 대안'이라는 전원책發 신당 창당설이 제기되자 당내에서는 '군불'이라 평가절하

○…자유한국당의 쇄신이 좌절되면서 '혁신과 대안'이라는 전원책발(發) 신당 창당설이 제기되자 당내에서는 '군불'이라 평가절하. 그러다 큰불 나면 어쩌려고….○…'불수능'이란 2019학년도 수능에 역대 최고의 이의신청 쇄도. 매우면 '불수능'이라 하고 싱거우면 '물수능'이라 하니, 수능 밥상 차리기가 고역이군!○…홍준표의 정치 복귀 선언에 정치권의 반응이 썰렁한 가운데 정의당만 '격하게' 환영. 국민은 '돌아온 장고'를 원할까 '돌아온 탕자'를 원할까?

2018-11-22 06:30:00

최창희 정치부장

[데스크 칼럼 ] 소설(小雪)

오늘은 첫눈이 오고 땅이 얼어붙기 시작한다는 소설(小雪)이다. 한겨울의 꽁꽁 언 날씨는 아니지만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추파(秋波)를 던지며 온 산을 붉고 노랗게 물들였던 단풍도 불과 며칠 사이에 낙엽 신세가 돼버렸다. 아직 나무에 매달린 단풍잎이 아무리 '만추'(晩秋)라고 우겨대도 눈이 아니라 비가 오더라도 어쨌든 오늘부터는 공식적으로 겨울인 셈이다.이맘때쯤이면 어느 때보다 바빠지는 곳이 국회다. 국회는 매년 11월이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제대로 편성됐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줄일 것은 줄이고 늘릴 것은 늘리는 작업을 한다.하지만 국회는 최근 허송세월만 했다. 서로 잘났다며 '끝까지 해보자'고 각을 세우며 파행을 거듭하다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에 등 떠밀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상임위 활동을 정상화하기로 가까스로 합의했다. 예산안 법정처리 기한(12월 2일)을 불과 11일 앞두고서 말이다.그나마 다행이지만 왠지 불안하다. 공기업·공공기관 고용세습 채용 비리 의혹 국정조사 등 '정상화 조건'은 곳곳이 지뢰밭이라 언제 또 파행으로 치달을지 몰라서다. 여야가 극적으로 국회 정상화에 합의한 만큼 헌정 사상 초유의 준(準)예산 걱정은 덜었으나 약속대로 지켜질지는 가봐야 한다.무엇보다 시간이 없다. 국회 정상화란 큰 틀에서 합의했지만, 예산 소위 구성이 지나치게 늦은 편이다. 예산 소위에 참가할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급조한 흔적이 역력하다. 지역 안배를 지나치게 의식한 탓에 예산 관련 전문가도 아닌 인사들이 버젓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설령 예산 소위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더라도 470조5천억원 규모의 슈퍼 예산에 대한 꼼꼼한 심사는 물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야말로 '벼락치기' 심사를 할 수밖에 없다.이번 '예산 국회'는 다른 해와 비교해 더 각별하다. 올해보다 9.7% 늘어난 '슈퍼 예산'인 데다 어려운 경제 상황과 양극화를 타개할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면서 내년에는 더욱더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는 만큼 재정이라도 온기를 느끼게 해줘야 한다.대구로서도 중요한 예산들이 많다. 옛 경북도청 매입비(1천억원)를 비롯해 달빛내륙철도 사전 타당성 조사 용역비, 대구권 광역 철도 김천 연결 용역비 등은 지역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예산안들이며 국회 상임위에서 어렵게 증액된 대구의 주요 현안 사업에 대한 것들이다. 또 내년 준공을 앞둔 대구물산업클러스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체성능시험센터 건립에 필요한 예산 120억원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이 예산은 정부안에 반영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경북에서도 중앙선 복선전철화, 중부선 철도 등 SOC 예산을 비롯해 스마트팜혁신밸리 조성, 원자력해체기술연구센터 등 경북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증액해야 할 예산이 15건에 이른다.민생 경제가 최악의 침체 위기를 맞고 있다. 아무쪼록 여야가 힘을 합쳐 지역 간 출혈 경쟁이 아닌 상생할 수 있는 새해 예산을 마련, 경기 활성화의 마중물 만들기를 기대한다. 지금껏 큰 실망만 안겨준 정치권이 다가오는 연말연시에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다.

2018-11-21 19:08:15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대기오염의 공포

이상화 시인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며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울분을 토로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는 미세먼지에 하늘을 빼앗겨 봄을 잃은 지 오래다. 봄뿐만 아니다. 천고마비의 가을이 사라지고 삼한사온의 겨울조차 뒤틀렸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은 옛말이 되었고, 겨울도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로 고통을 겪는 '삼한사미'(三寒四微)로 변했다. 무더운 여름은 오존의 공포가 엄습한다.미세먼지는 이렇게 사시사철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동·식물의 생육을 저해하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군림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3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국민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위험 요소는 바로 대기오염이었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초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 수가 1만 명을 넘었다.오존은 더 위험하다. 장기간 노출되면 기침과 호흡 곤란, 눈의 통증 등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입자 상태이지만 오존은 기체이기 때문에 마스크로도 차단이 어렵다. 그래서 오존 농도가 높은 날은 호흡기 환자나 노약자 및 어린이들에게는 치명적이다.그런데도 우리는 오로지 마스크 하나를 방패막이로 삼아 폐 질환 공포에 떨며 살아간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책이라는 게 대기오염 모니터링 시설 확충이나 신속한 문자 발송 서비스는 외면한 채 마스크 착용과 외부 활동 자제만 외치기 때문이다. 일본과 대만의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과 대처는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일본은 지자체마다 미세먼지와 오존 등 오염물질을 실시간 감시하는 '대기오염 상시 감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를 위한 5~10개의 측정소도 여러 곳에 분산 배치하고 있다. 이렇게 모니터링한 내용을 다양하고 신속한 방식으로 일반 시민은 물론 각 기관단체와 학교 등에 전파한다. 가능한 빠른 대처로 노약자를 비롯한 주민 건강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대만 정부는 연구기관 및 시민들과 함께 미세먼지 측정기 보급 운동을 벌여 도시 곳곳의 대기오염 농도를 실시간 확인하고 있다. 이런 게 선진 행정이다.

2018-11-21 06:30:00

[관풍루] 대구패션조합 보조금 유용 의혹 제기되자 대구시, 조합 전·현 직원 상대로 제보자 색출 나서

○…대구패션조합 보조금 유용 의혹 제기되자 대구시, 조합 전·현 직원 상대로 제보자 색출 나서. 제비 받고 제사도 안 지낸 집에 가서 젯밥부터 얻어 드셨나.○…경기 침체, 정치 불신 여파로 대구지역 국회의원들 정치후원금 지난해 비해 40% 급감. 무노동 무임금에 세비도 아깝다는데 후원금까지 더 들어왔을까.○…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주의 정책 기조인 J노믹스 맞서 탈국가주의 i노믹스 발표. J노믹스의 반대말이 i노믹스 맞죠?

2018-11-21 06:30:00

최정암 서울지사장

[시각과 전망] 김병준, 자유한국당, 대구경북

인적 쇄신에 관해 극히 말을 아끼던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19일 비대위를 주재하면서 "오늘은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중심으로 인적 쇄신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했다.한국당 국회의원들은 이를 예사롭지 않은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전원책 파문으로 존재감이 적어진 김 위원장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 그러려면 큰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협위원장 교체가 최고의 카드다. 이를 인적 쇄신으로 포장할 수 있다. 그는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치르겠다고 했으니 적어도 그전에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교체하려 할 것이다. 당협위원장이 교체되면 신임 당대표가 선출돼도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다시 바꾸는 게 쉽지 않다. 특히 국회의원이 당협위원장에서 배제된다면 이미지 실추로 인해 재기가 어렵다. 국회의원들이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어떤 국회의원이 배제 대상인지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미 조강특위가 그 범위를 계속 흘리고 있다. 영남권 다선들과 진박이 표적이다.여기서 가장 민감한 쪽은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이다. '공천이 곧 당선'이란 말이 나오는 지역에서 누리기만 한 분들은 젊은 인재들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는 게 조강특위의 기본 인식이다. 특히 지방선거 공천(公薦)을 사천(私薦)함으로써 선거 참패에 일조한 다선의원은 물러나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문제는 이런 논리를 갖다 대면 한국당은 대구경북에서 3선 이상 다선이 전멸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회는 선수(選數)가 대장이다. 아무리 유능해도 초·재선 때는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상임위원장이나 원내대표를 해보려면 3선 이상은 돼야 한다. 대구경북 다선 가운데 차기에 국회직이든 당직이든 중용될 사람은 가능하면 살려야 한다. 그럴 가능성이 없는 다선은 존재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진박 논란은 대구경북을 더 어지럽게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진박들이 활거하면서 한국당은 지난 총선을 망쳤다. 현재 대구경북 20명(대구 7명, 경북 13명)의 자유한국당 지역구 국회의원 중 진박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은 대구 서너 명, 경북 한두 명 정도다. 나머지 사람들은 저마다 진박감별사의 눈도장이라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공천을 청와대가 주도하는데 청와대 및 진박을 자처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은 국회의원이 되지 말라는 것이었다.이런 사람들을 진박의 지원을 받았다고 다 배제하는 것은 단연코 옳지 않다. 비록 장관급으로 있다가 발탁된 바람에 논란에서 자유롭진 않지만 지역 현안을 챙기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은 살려야 한다. 그의 노력과 인맥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어서다.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추고 이익단체들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도 필요하다.하지만 장차관, 청와대 수석을 하고도 어떻게 행동하는 게 지역 발전인지 모르는 사람, 금배지에 눈이 멀었다가 선거구민 외면받자 남의 지역구를 엿보는 사람, 진박 대표였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지원을 받아 당선됐지만 그가 어려움에 처하자 외면하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은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 김병준 위원장이 이런 사람들을 날려야 당도 살고, 자신도 산다.

2018-11-21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文대통령, 소심과 우유부단함의 정치

2016년 말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의 일이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인터넷에서 '고구마'로 불렸다. 이재명 후보는 자신을 '사이다'라고 치켜세웠다. 소위 '고구마'와 '사이다' 논쟁이다. 고구마는 답답하고 융통성 없음을, 사이다는 시원하고 청량함을 준다는 의미다. 문 후보는 "고구마를 먹으면 배가 든든하다"는 말로 공세를 피해갔는데, 자신의 재치인지 측근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다.요즘 두 분에 대한 평가를 새로 하면 이재명 경기지사는 아무래도 '사이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고구마'라는 별명이 딱 맞는 것 같다. 정국 상황을 보고 있으면 체한 듯 답답하고 거북한 느낌이 든다. 적폐 청산은 정치 보복에 가까운 듯하고, 경제 살리고 일자리 만드는 것은 거꾸로 가고 있고, 남북관계는 허둥지둥하며 허점만 노출한다. 구호는 드높지만, 무엇 하나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이 없다.문 대통령을 아는 지인들은 '점잖다' '과묵하다' '마음이 모질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대통령이라고 꾸며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하다. 문 대통령 비판자들은 이를 뒤집어 '소심하다' '논리에 투철하지 않다' '우유부단하다'고 평한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문 대통령 비판자들의 평가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국정에 문 대통령의 소심함과 우유부단함이 그대로 투영돼 있는 것 같아 더 답답하다.대통령의 성품이 정부의 정책 방향을 좌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참모와 관료들이 대통령의 뜻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소심과 우유부단함이 현 정권의 드러나지 않은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문 대통령의 소심과 우유부단함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문 대통령은 이제까지 자신의 지지층에 대해 거북한 행동이나 쓴 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민노총이 과격 행동을 일삼아도, 측근이 아무리 경제를 망쳐도, 문빠가 '18원' 문자폭탄을 날려도, 모두 눈감아 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뒤로 딴짓을 해도 별말 없이 감싸안고 만다.마음이 넓어서가 아닌 것 같다. 혹시라도 적극 지지층에게 욕먹지 않을까, 따돌리지 않을까 하는 소심함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1년간 논의 끝에 마련한 국민연금 개편안을 재검토하는 것도 우유부단함의 다른 표현이다.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층 외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1970, 80년대식 진영 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평생 그렇게 살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지층보다는 '실리'를 택한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문 대통령은 아직 그런 대범함을 보여주지 못했다.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최저임금 인상을 강행해야 하고, 기업을 압박하고 삼성현대 때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가 이익'보다는 지지층이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행할 뿐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성격과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지층만을 위한 정치, 정책을 펴나가다 보면 진영 간, 계층 간, 지역 간 분란이 확대재생산될 것이 뻔하다. '고구마'보다는 '사이다'가 필요한 때이지만, 타고난 성격이 바뀔 지 의문이다. 우리는 선량하긴 하지만, 역사상 스케일이 가장 작은 대통령과 함께하는지 모른다.

2018-11-20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한국당은 마피아"

조직폭력배가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정치인과 조폭의 공통점이란 유머가 있다. 혼자 다니기보다는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조직의 이름은 보스의 이름이나 그가 사는 동네를 따서 만든다, 하는 일은 주로 모여서 같이 밥을 먹는다, 싸움하기를 좋아한다, 자칭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는 등이다. 유머의 압권은 뒤에 나오는 법. 정치인과 조폭의 마지막 공통점은 온 국민의 지탄 대상이라는 것이다.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위 외부위원으로 활동하다 '잘린' 전원책 변호사가 "자유한국당은 마피아보다 못한 계파 정치, 보스 정치에 빠져 있다"고 일침을 놨다. 한국당의 제일 큰 문제로 계파 정치를 꼽은 그는 "두목들의 정치죠. 마피아와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마피아보다도 못하죠. 마피아는 역사라도 깊지 않습니까"라고 했다.전 변호사가 이탈리아 조폭 마피아로 격조(?) 있게 표현했지만 한국당의 계파 정치는 조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명박·박근혜 두 보스를 중심으로 한 친이·친박 싸움은 드라마 '야인시대'를 방불케 한다. 공천권이란 칼자루를 쥔 계파가 반대파를 날려버리는 행태를 서로 주고받았다. 싸움에서 이기고 난 뒤 전리품은 자기들끼리 나눠 가졌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는 배신과 변절이 난무했다. 당을 뛰쳐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쪽이나 기득권을 지키려 당에 안주한 쪽 모두 진정한 참회가 없다. 보수가 처참하게 궤멸했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그나마 한국당의 마지막 희망은 남아 있는 조강특위 외부위원들이 전 변호사와 생각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이념과 정책으로 싸운 게 아니라 보잘것없는 권력을 향유하기 위해 서로 싸웠다는 게 이들의 인식이다. 총선 참패, 대통령 탄핵, 보수 궤멸을 불러온 것은 계파 정치, 그로 말미암은 이전투구 탓이다.조폭스러운 것은 한국당은 물론 다른 정당도 매한가지다. 계파 정치가 여전하고 반대파를 난도질하는 것은 한국당과 똑같다. 현대 민주주의, 대중 민주주의에 걸맞은 정당 내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앞으로 미래가 없다는 전 변호사의 진단은 모든 정당이 귀담아들어야 할 탁견(卓見)이다.

2018-11-20 06:30:00

[관풍루] 2019학년도 수능 결시율 역대 최고치 경신은 '수험표 할인 혜택'이 한 몫을 했다고

○…패륜적 막말 일삼은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 주인이 불륜과 콩가루 집안 스캔들의 주인공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아내로 결말. 부창부수가 따로 없군!○…인력 감축과 경영난에 경북 시외버스 18개 노선 운행 중단하자 출퇴근 수단 잃은 사람들 발동동. 세수(稅收)도 넉넉한데 자가용 한 대씩 사주는 게….○…2019학년도 수능 결시율 역대 최고치 경신은 '수험표 할인 혜택'이 한몫했다고. 수시에서 '염불' 끝냈으니 정시에서 '잿밥' 챙기겠다는 전략.

2018-11-20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이수역 사건의 '오류'

전통 가업 등 일의 특성이 사람의 행동과 정서에 영향을 미칠까? 사람마다 다른 개성이나 감정 구조로 인해 타인과의 친소 관계가 구별되는 경우는 많지만 일·직업에 따라 행동 양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은 이해가 쉽지 않다.미국 시카고대 부스(Booth) 비즈니스 스쿨 연구팀이 복잡한 장소에서 타인과 거리를 두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실험 결과는 인간의 행동과 일·직업의 상관관계를 증명한다. 얼마 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이 보고서에는 전통적으로 밀이나 쌀농사를 짓는 지역 출신의 행동 양식이 서로 다르다는 결과가 제시됐다.중국 상하이와 베이징, 광저우, 홍콩 등 6개 도시의 카페 256곳에서 8천964명을 대상으로 의자에 앉는 패턴을 관찰해 보니 전통적으로 쌀농사가 우세한 중국 남부 사람들과 밀농사를 짓는 북부 도시 출신의 행동 양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북부 출신은 타인과 떨어져 홀로 앉는 경우가 남부 지역 사람보다 5~10% 더 많다는 것이다.복도에 의자를 늘어놓은 뒤 앉게 하는 실험의 결과도 비슷하다. 쌀농사 지역 출신은 94%가 비좁아도 웅크리고 앉았지만 밀농사 지역 출신은 84%만 앉고, 16%는 의자를 옮겨 홀로 앉았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밀농사의 특성상 개인주의가 강해 친화력이 떨어지는 반면 협동이 필요한 쌀농사 지역은 집단주의가 강해 타인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고 분석했다.이 실험은 생태 환경이 행동 패턴이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말해준다. 여기에 성별이나 지리적, 문화적 배경 등 여러 조건을 대입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한다.요 며칠 '이수역 주점 폭행 사건'으로 SNS가 들끓었다. 흔한 단순 시비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를 정도로 이슈가 됐고 성(性) 대립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소추'니 '메갈'이니 성차별적 공격으로 양성(兩性)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민감한 성 대립에 초점을 맞추고 흥분한 결과다. 서로 다른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문제다. 편협한 사고나 판단 오류가 잘못된 행동을 낳을 수 있다는 게 '이수역 사건'의 실체가 아닐까 싶다.

2018-11-19 06:30:00

[관풍루] 거듭된 문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사업 적극 지원' 강조에 구미시 '새마을과' 명칭 폐지 논란 종지부

○…거듭된 문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사업 적극 지원' 강조에 구미시 '새마을과' 명칭 폐지 논란 종지부.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시장의 체면은 구기지 않았을 텐데….○…2020년 총선 부활 꿈꾸는 올드보이들, 대구 일부 지역에서 분주한 행보를 보이며 '돌아가는 물레방아' 갈망. '결코 흘러간 물이 아니다'는 말씀! ○…대구에 집값 1억원 이상 오른 주택 소유자 5만 명이 넘고, 정부 대책에도 다주택자 9만 명이 넘었다고. 그냥 앉아 재테크 무능력자 되기 일도 아니네.

2018-11-19 06:30:00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더불어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기회는 균등하지 않았고, 절차는 공정하지 않았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현 정부의 국정 기조가 된 통치 철학이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우리 경제와 시장을 구조적인 거악(巨惡)의 원천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더해 민주당을 비롯한 집권 세력은 자신들만이 거악을 척결할 수 있다고 맹신한다. 나아가 그들의 의식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시장경제 시스템과 시장에 대한 신뢰보다 자신들이 더 정의롭고 우월하다는 사고가 온통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 집권 세력은 지금까지의 불균등한 기회, 불공정한 절차, 불공평한 과실 배분은 모두 시장의 실패이자 기득권 세력의 잘못이므로 자신들이 바로잡아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뭉쳐 있다. 이런 배경으로 민주당의 '적폐청산(積弊淸算) 집권 가치'가 창출된 것이다. 현 집권 세력은 적폐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최소 20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민주당은 '20년 집권론'을 떠들어댄다.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특정 정당이 20년 집권한 때는 1933년부터 1953년까지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3선)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재선) 대통령 재임 기간이 유일하다. 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공화당) 직전만 보더라도 버락 오바마(8년·민주당)-조지 부시 2세(8년·공화당)-빌 클린턴(8년·민주당) 대통령 등 한 정당이 8년 이상 집권하지 못했다.루스벨트 대통령 집권 이후 민주당은 20년간 행정부와 의회를 완벽히 장악할 수 있었다. 20년 집권이 왜 가능했을까? 루스벨트가 당선되던 1930년대는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넘쳐났고, 계급 갈등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루스벨트는 민주당의 정체성 그대로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복지 정책과 노동친화적 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민중의 당'이라는 민주당과 루스벨트는 편협되지 않았다. 국내 상황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거대 자본가와 노동자로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았다.루스벨트가 가장 의식한 쪽은 오히려 자본가였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시행해서 경제 파이와 일자리를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자본가와 기업인들의 협력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루스벨트 정부는 거액의 적자 공채를 발행했고, 이로써 묶여 있던 자금이 탈출구를 찾아 공공사업에 투입되고 멈추었던 기계들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루스벨트의 민주당은 정부와 산업계의 협동 체제가 가동되어야만 민간 구매력을 회복하고 소비재 생산을 자극, 민간 투자의 증대를 가져온다는 믿음에다 또 이런 믿음을 정책으로 옮겨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자들 삶의 질을 높였던 것이다.우리의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자, 서민의 정당임을 자부하지만 노동자, 서민들의 생존을 더 옥죄고 있다. 기업 상황은 기본이고 생산성과 연동돼야 할 최저임금과 근로시간은 막무가내로 선을 그어 정부 요구를 따르라고 한다. 따르지 않거나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기업은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된다. 베트남 삼성전자 핸드폰 공장에서는 16만 명이 고용되지만 삼성전자의 국내 휴대폰 생산 노동자는 5천 명에 불과하다. 좋은 의도가 시장에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는다.기회가 균등하고 절차가 공정하면 되지 왜 결과까지 같아야 하는가? 자유로운 선택을 한 결과가 같아야 한다면 국민의 재산권을, 시장을, 자본주의를 뿌리째 흔드는 일이다.

2018-11-18 19:27:45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헌병'이 일제 잔재라면

한자 종주국인 중국이 가장 자존심 상해하는 한자 단어는 '중화인민공화국'이란 국호에 들어 있는 '공화국'(共和國)이다. 에도시대 일본 학자들이 네덜란드어 'republik' (republic)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자존심 상하는 것은 이미 주(周)나라 때 '공화'라고 불린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이를 찾아냈고 중국은, 못한 것이다.republic은 '왕이 다스리지 않는 정치 체제'다. 네덜란드 서적을 통해 서구와 처음 만났던 에도시대 일본 학자들은 이 말을 접하고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심했다. 유사 이래 동양에서는 그런 정치 체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고전을 샅샅이 뒤졌고 마침해 주나라 10대 임금 여왕(勵王)이 폭정으로 쫓겨난 뒤 주공(周公)과 소공(召公) 두 사람이 함께(共) 합심해(和)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해서 공화라고 했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사마천의 사기 주본기(周本紀)에 나오는 기록이다.이를 찾아낸 학자가 오스키 반케이(大槻磐溪)이고 공화국을 republik의 번역어로 채택한 학자가 오스키의 제자인 미츠쿠리 쇼고(箕作省吾)로, 1845년 네덜란드 지리학 서적을 번역한 곤여도지(坤輿圖識)에 이 말을 처음 사용했다.서양어 번역에서 우리도 중국 못지않게 자존심이 상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번역 한자어는 대부분 일본이 만든 것이다. '철학' '경제' '민족' '국가' '국민' 등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이런 한자어 중 '일제 잔재'로 분류되는 것은 얼마나 될까? 아니 어떤 것이 일제 잔재인지 아닌지 명확히 구분이나 할 수 있을까?최근 국방부가 '헌병'이란 명칭을 '군사경찰'로 바꾸기로 했다. 일제 잔재라는 이유다. 글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헌병뿐만 아니라 육군·해군·군단·사단·포병·사령관·군복·항공모함 등도 일본이 만든 말이다. 바꾸려면 이것도 모두 바꿔야 하지 않겠나. 아 참! 신토불이(身土不二)도 일본이 만든 말이라고 한다.

2018-11-17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침묵의 어제 하루

조선시대 과거에서의 시험 부정과 비리는 다양했고 심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고 곪았는지 박지원 같은 학자는 과거가 치러지는 시험장을 '열에 아홉은 죽거나 다치는 그 위태로운 장소'라고 불렀다. 시험 부정행위도 '콧속이나 붓 대롱에 미리 준비한 종이 숨기기'에서 '답안지를 땅에 떨어뜨려 보여주기'와 심지어 '대리시험'에 이르기까지 숱했다.과거 시험 당일의 당락으로 평생의 운명이 갈리기에 시험장에서의 부정은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시험 당일 시험장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일은 목숨을 걸 만했다.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좋은 장소 차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던 탓이다. 박지원이 이런 과거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한 까닭이다.세월이 흘러 이런 조선시대 시험 부정 같은 일은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더욱 촘촘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시험 부정의 유혹은 피할 수 없는 역사임이 틀림없다. 과거제도와 달리, 오늘날 대학 입학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여기에 맞게 자연스레 새로운 수법들이 생기는 현상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대학 입시를 겨냥한 내신 조작 등이 그렇다.서울 숙명여고에서 터진 시험지 유출 사건은 좋은 사례이다. 쌍둥이 자녀를 위해 학교 교무부장인 아버지는 자녀가 1학년에 다닐 때부터 미리 시험지를 빼냈으니 일찌감치 성적을 관리한 셈이다. 지금 제보되는 학교 현장에서의 다양한 부정행위들 역시 대학 입시에서의 유리한 고지 선점을 위한 일탈이 아닐 수 없다.그렇지만 여전히 이런 일과 전혀 인연이 없는 학생들이 있다. 어제는 바로 이들이 실력을 발휘했던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었다. 이들을 위해 어제 하루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특히 시험장 주변에서는 '침묵의 시간'을 갖는 일이었다. 오후 1시 5분부터 40분까지 35분 동안은 전국에서 항공기 이착륙조차 금지되지 않았던가.어제 시험장으로 향했던 전국의 수험생 여러분, 응원합니다. 수험생 뒷바라지에 지금까지 가슴 졸였던 학부모, 학교 교사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2018-11-16 06:30:00

[관풍루]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교도소 36개월'로 결정 가능성

○…안상수 한국당 의원, 광우병과 천안함은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가짜뉴스도 처벌해 달라고 고발장 제출. '소급 적용 불가' 조항 만들어야겠네 -민주당-○…박정희 전 대통령 숭모제에 참석한 이철우 경북도지사에게 일부 보수단체가 '탄핵 주범'이라 비난. 한강에서 뺨 맞고 낙동강에서 분풀이하는 격은 아닌지….○…'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교도소 36개월'로 결정 가능성. '양심'을 가지고 교도소로 갈까, '양심'을 버리고 군부대로 갈까, 그것이 문제로다.

2018-11-16 06:30:00

문화부 권성훈 차장

[청라언덕] 문재인 정부는 '이대팔' 정부

지난해 5월 9일 대선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 19개월째에 접어들었다. 5년 집권 기간의 3분의 1이 지난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탄핵으로 파탄나지 않았다면, 지난해 연말에 대선이 치러졌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 5년을 무사히 마치고, 정상적으로 대선이 치러졌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현 상황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임기 3분의 1이 지난 현시점에서 문재인 정부를 들여다보자.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남북평화시대로의 문을 활짝 연 대통령, 약자를 대변하는 정부가 될 것이고, 부정적인 것을 앞세운다면 경제를 망친 정부, 과거에 집착하는 정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긍정적 평가도 내막을 보면 오히려 포장돼 있다. 한마디로 '붕 뜬' 정부다. 남북평화시대를 열었다고 하는데, 북한이 뭐가 바뀌었나. 국정원 2차장이 14일 국회 정보위에서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핵개발과 핵탄두 소형화 작업을 계속 진행 중으로 보인다"고 발언했고, 국방부 장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엄중한 현실을 외면한 채 문 대통령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설득하기보다 오히려 해외 정상들에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제재를 먼저 해제하는데 협조해달라고 애걸복걸한다. 그러나 외국 정상들은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공조는커녕 핵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이 물과 기름 같다.약자를 대변하는 정부라는 명분도 무늬만 그럴 뿐 오히려 약자들을 더 큰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정부에서 수십조원의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일자리는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과 경제적 약자들의 아우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경제 투톱(경제부총리, 청와대 정책실장)이 바뀌어도 소득주도성장의 기조(최저임금제, 주 52시간 근무제 등)는 그대로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은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간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개입해 '보이지 않는 손'(공급과 수요에 의해 돌아가는 시장의 기본원칙)을 무력화시켜 총체적 난국을 만들고 있다. 경제정책이 국민경제와 따로 놀고 있다는 방증이다.부정 평가에서 역설이나 반전이 있으면 좋겠지만, 실상을 보면 더 절망적이고 암담하다. 이 정부를 '이대팔' 정부라 일컫고 싶다. 이대팔은 단어 그대로 2대 8을 의미한다. '10'이라는 역량이 있을 때 미래를 위해 8을 쏟고, 과거를 반성하고 치유하는데 2를 쏟으면 미래지향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문 정부는 정반대다. 완벽하게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아직도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부각시키는데 온 정열을 쏟아붓고 있다. 모든 과거사를 '적폐'(積弊)로 규정 짓고, 두 전직 대통령을 평생 감옥에서 보내게 할 작정으로 몰아붙이고 있다.특히 대구경북을 낡아 빠진 보수의 근거지로 보고, 정부 예산이나 인사에서 씨를 말리는 고사작전을 구사하고 있는 듯하다. 비판 세력인 야당(자유한국당)을 보는 시각은 핵으로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북한 김정은 정권과 그 간부들보다 더 싸늘하게 느껴진다.진정 평화와 약자를 위한다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로 답해야 한다. 더불어 부디 '이대팔'에서 '팔대이' 정부로 바뀌기를 간곡하게 부탁한다.

2018-11-15 17:55:01

박상전 서울정경부 차장

[여의도통신] 수능과 정치인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이 났다. 학생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15일 하루 동안 모두 쏟아냈다. 수험생만 총 60만 명에 이른다. 학부모까지 합하면 180여 만 명이다. 정치권이 이처럼 큰 이슈를 그냥 넘길 리가 없다.광주지역 일부 국회의원들은 수능에 쏠린 민심을 교묘하게 자신들의 표심에 연결하려고 해서 눈총을 받았다. '잘 할 거야! 우리 수능생' '덤벼라. 수능아!'란 현수막을 건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소속 한 의원은 글귀보다 자신의 사진을 더 크게 실어 수능까지 자신들 지지에 악용했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공부 좀 했다는 의원들은 직접 나섰다. 수험생들에게 자신의 공부 비법을 전수하고 나선 것이다.서울대 법대 수석 입학이라는 명예가 금배지보다 더 유명한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최근 자신의 재수 사실을 고백하며 "첫 시험 때 너무 긴장해 시험을 망쳤다"며 "재수할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30분 이상 휴식을 취하면서 긴장 푸는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서울대 수학교육학과 출신인 같은 당 박경미 의원은 "EBS 교재와 수능 연계율이 70%이기 때문에 (수능 평가원이) 이를 극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문제를 선호할 것"이라고 팁을 줬다. 서울대 농생물학과 출신인 박정 민주당 의원도 "각 과목 간에 연계성이 있다. 흐름에 따른 정리를 잘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수재'들이 유독 많은 집단 가운데 한 곳이 정치권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인물들 가운데도 정치권 인사를 빼놓을 수 없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30세의 나이에 사시를 패스했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보다 한 살 어린 29세에 합격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29세에 합격했으며 그해 사시 수석의 영예를 안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주영 국회 부의장,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28세에, 박원순 서울시장,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는 25세에 등과했다.지역 출신으로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만 20세의 나이로 사시에 합격해 '수재' 소리를 들었으며 최근 한국당 소속 최교일 의원도 같은 나이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올해 수능은 다행히 무사히 치러졌으나 지난해에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포항 지진 때문에 수능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해 수능을 치른 아들이 당시 '포항 아이들을 생각하면 (수능 1주일 연기 결정은) 잘한 것 같다'고 하더라"며 대견해 바 있다.

2018-11-15 15:45:17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북한 대변인

유럽에서 반핵 시위가 절정을 이룬 시기는 소련이 서유럽 전역을 사정거리에 두는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SS-20을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 등에 배치한 데 대응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헬무트 슈미트 서독 총리의 제안에 따라 1979년 이른바 '이중결의'(dual track decision)를 채택한 뒤인 1980년대 초·중반이다.이중결의란 소련과 협상해 SS-20의 철수를 이끌어내되 안되면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퍼싱Ⅱ를 서독에 배치한다는 것이었다. 서독 내 반핵·반전 단체들은 이에 격렬한 시위로 맞섰다. 1981년 6월 20일 함부르크에서 8만여 명이 참가한 시위를 시작으로 1980년대 전반 내내 서독 전역은 반핵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슈미트 총리의 사민당 주요 인사들도 이에 동조했다. 전 총리인 빌리 브란트는 슈미트 정부를 향해 퍼싱Ⅱ를 일방적으로 포기하라고 촉구했고, 브란트의 동방정책 기획자인 에곤 바는 슈미트 총리가 "동독을 협박하는 전쟁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비난했다. 이에 앞서 1980년 12월에는 사민당 의원 150여 명이 '이중결의'가 위험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는 이른바 '빌레펠트 선언'에 서명하기도 했다.그러나 반핵·반전 단체들은 퍼싱Ⅱ 배치 결정의 원인인 SS-20의 서독 배치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그러면서 퍼싱Ⅱ는 소련을 참수하기 위한 선제공격 무기라는 주장만 반복했다. 소련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준 것이다. 이를 두고 만프레드 빌케 전 베를린자유대학 교수는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의 선(先)무장이라는 원인과 미국 미사일 배치라는 결과를 바꿔치기하는 데 성공했다"고 비판했다. 반핵·반전 단체들은 동독 공산당과 긴밀히 연계돼 있었던 것이다.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북한이 황해북도 비밀기지에서 단거리 미사일을 개발 중인 사실과 관련해 북한을 두둔하고 나서 '북한 대변인'이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의 말은 소련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준 1980년대 서독 반핵 단체들의 궤변을 빼다 박았다. 김 대변인은 우리 기업 총수들에 대한 리선권의 '냉면' 막말도 감싸기로 일관했다. 청와대가 언제부터 북한 대변인실이 됐는지 모르겠다.

2018-11-15 05:00:00

[관풍루] 민주당, 14일 당내 인사 성(性) 비위·음주운전·채용비리 불관용 원칙 발표

○…민주당, 14일 당내 인사 성(性) 비위·음주운전·채용 비리 불관용 원칙 발표. 청와대, ‘글쎄요? 우리조차 국민에 약속한 인사 원칙도 잘 지키지 않았는데….’○…정보원, “북한 핵·미사일 관련 활동 북미 정상회담 뒤에도 진행” 주장. 국민, 정부는 북한이 달라졌다 하고 정보원은 이리 말하니 어느 장단에 춤추나?○…국방부, 대구시에 통합공항 이전 협상자리 요청 등 종전과 다른 모습. 대구경북인, 정부가 하도 말만 앞세운 세월이라 믿기지 않지만 또 한 번 속아보시더.

2018-11-15 05:00:00

이석수 교육팀장

[데스크 칼럼] 수능을 치르는 남매에게

지난해 11월 15일 발생한 포항 지진으로 다음 날 치러질 예정이었던 2018학년도 수능이 불과 12시간 앞두고 일주일 연기되는 결정이 내려졌지. 자연재해로 시험 연기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아 수험생들의 혼란에 빠진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구나. 많은 학생들이 이미 버린 책더미를 뒤졌고, 서점엔 1주일 단기 정리용 문제집이 불티나게 팔렸지. 그럼에도 우리 수험생들은 날벼락을 맞은 포항의 친구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교육부의 조치가 잘된 결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도 당시 지면을 통해 '공정한 경쟁의 가치를 배운 여러분 모두가 승자'라는 내용의 기사를 썼단다.어쨌든 작년 수능에서 넌 평소의 성적을 얻지 못했고, 연년생인 동생과 함께 수능을 다시 보게 되는구나. 부모의 마음으로는 둘 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길 바라지만, 누구 하나가 그렇지 않을까 봐 더욱 염려가 되는 게 사실이다. 열아홉, 스무 살 꽃 같은 나이에 공부밖에는 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몰린 너희들을 애처로운 심정으로 지켜봤기에, 이날을 앞두고 더욱 애잔하고 먹먹한 마음이 든다.지난해 초 임대아파트에 살며 홀로 외아들을 키워 서울대에 보낸 지체장애인 어머니를 취재하면서 "내가 해 줄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었다"는 말이 무겁게 남았다. 행여 너의 실패가 나의 탓인 양 싶었고, 욕심을 부렸지 않았냐는 반성도 했다. 너희들을 키우면서 이미 많은 기쁨을 얻었는데도 말이다. 나도 마음을 내려놓으니 그 어머니처럼 될 수밖에 없더라.수능이 한 문제의 실수로도 등급 당락이 엇갈리는 냉혹한 '룰'이라는 점에 나도 할 말이 많다. 또 기성세대로서 너희들에게 지옥과 같은 입시 경쟁을 물려줄 수밖에 없어 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오늘은 그저 누구나 똑같은 조건에서 치르는 시험이라는 생각만 하자. 기계와 같은 입시 생활을 반복하면서 고통 또한 많았겠지만, 그 시간을 성실하게 보내고 최선을 다한 경험은 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밑천이 될 것이다. 결과가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우리가 지내왔던 시간들, 즉 과정이 있기 때문이야.이제 너희들은 학생에서 어른으로, 학교에서 사회로 나아가는 문을 열고 있다. 수능이나 대학은 그저 네 삶의 작은 과정이자 목표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인생은 너의 친구들과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과 벌이는 장기 레이스임을 알았으면 한다. 남을 만족시키는 삶이 아닌 나를 만족시키는 인생을 살기 바란다. 누구처럼 되기 위한 것이 아닌 너희들만의 색깔을 가진 인생이었으면 좋겠다.살다보면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를 만난다. 그때마다 실패를 생각하면서 주저하지 않기를 바란다. 설사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해도 인생에서 성장할 기회를 얻는다.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시도조차 않는 것, 두려워 도전을 포기하는 것이 패배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또 기억해야 할 것은 너희들이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을 때마다 가까이 지켜보면서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안타까움과 간절한 바람을 지닌 가족들과 여러 선생님이 뒤에 계셨다는 사실이다. 너희들의 성취는 자신의 것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 덕분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간직해라. 묘목에서 굵은 나무로 커나갈 시기에 들어서기까지 잘 견뎌 준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정말 고생 많았다.

2018-11-14 18:13:15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김병준의 꿈

"처음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솜씨가 대단하고 인간관계도 좋지요. 유머 감각까지 갖췄습니다."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본 사람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김 위원장은 정치인이라면 갖춰야 할 덕목을 두루 겸비한 인물로 보인다. 교수 출신답지 않은 유연함과 폭넓은 안목까지 갖고 있기에 미래가 기대되는 정치인이었다. 경북 고령 출생으로 대구상고영남대를 졸업한 지역 출신에, 고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대단한 것도 강점이었다.그가 지난 7월 한국당 비대위원장에 영입되자, 김병준의 미래를 그리는 이들이 하나둘 생겼다. 본인이 '대망론'을 입에 담은 적은 없다. 그렇지만, 그의 지인들은 그가 대권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일했고, 박근혜 정부 막판에 국무총리로 지명받았으니 꿈꿀 자격은 충분했다.며칠 전만 해도 대권 쟁취는 몰라도, 도전에 나설 가능성은 없지 않았다. 지난달 초 전원책 변호사를 조직강화특별위원에 전격 영입할 때만 해도 호시절이었다. 별다른 역할을 못 한다고 비판받던 와중에 전 변호사 영입을 통해 단번에 여론을 바꿨으니 승부사 기질까지 있는 듯했다.지난 9일 전 변호사를 조강특위 위원에서 해촉하면서 김병준의 이미지도 함께 무너졌다. 한국당의 인적 쇄신이 물 건너간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위기관리 능력은 낙제점을 받았고, 지도력마저 치명상을 입었다. 이런 상태에서 내년 2월 비대위원장 임기가 끝날 때까지 무엇을 할 수 있을까.그가 올 초 인터넷 신문에 34년 전 교수 생활을 시작할 때를 회고하며 쓴 기고다.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가 생각났다. 현자(賢者) 필론을 태운 배가 큰 폭풍우를 만났다. 모두 우왕좌왕, 아수라장이 되었건만 바닥에 누운 돼지 한 마리는 세상 모른 채 자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필론, 그는 돼지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그가 34년 전에는 정권의 폭압에 의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욕심과 실책에 의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2018-11-14 05:00:00

[관풍루] 강신욱 통계청장 "지난해 2분기가 경기 정점, 지금은 하강 국면" 비공식 진단

○…강신욱 통계청장 “지난해 2분기가 경기 정점, 지금은 하강 국면” 비공식 진단. 국민은 벌써 ‘경기 후퇴’ 눈치챘는데 1년 넘게 밥값도 못한 통계청.○…임종석 비서실장 민노총 비판 이어 여당 홍영표 원내대표 “민노총 폭력적이고 말이 안 통해” 불만 표출. 죽고 못 사는 사이인데 그래도 손발 잘 맞춰봐야지?○…법원, 유학 간다 속이고 페루에서 광어 양식장 차리고 휴직 급여까지 챙긴 대구경찰 간부에 벌금형. 양손에 떡 쥐려다 결국 떡판까지 뒤엎은 꼴.

2018-11-14 05:00:00

조두진 문화부장

[시각과 전망]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대구시가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관(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을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관으로 변경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일어나고 있다.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을 박물관으로 용도 변경해 리모델링하고, 그 안에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 전시실과 도서실 등을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구한말 일본의 조선 침략 방식은 1592년 일본의 조선침략(임진왜란)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총칼을 앞세웠다면, 근대 일본은 총포와 더불어 자본이라는 신무기로 조선을 침략했다.서양 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조선은 전국 각지의 성(城)을 개보수해 총칼로 맞서고자 했다. 외세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쳐들어오는 데 조정은 여전히 옛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대구 사람들은 달랐다. 패러다임 변화를 정확히 이해했고, 자본이라는 외세의 신무기에 대응하자면, 자본이라는 신무기로 맞서야 함을 알았다. 1907년(융희 1) 2월 대구 사람들이 시작한 국채보상운동이 그것이다.나라가 일본에 빌린 돈을 갚자며 대구가 일어섰고, 전국이 들불처럼 일어섰다. 국채보상운동은 나랏빚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치열한 독립 투쟁이었다. 그러니 국채보상운동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은 역사적 자산을 가꾸고, 미래를 여는 작업이다.중앙도서관의 출발은 1919년 경북도청 안에 있던 뇌경관이었다. 몇 차례 이전과 개보수, 이름 변경을 거쳐 1985년 12월 현재 자리(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내)에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중 두 번째로 설립된 도서관이고, 2017년 한 해 이용자만 160만 명이다.100년 세월을 쌓아온 만큼 보존 가치가 높은 자료들도 많다. 독립신문 영인본, 1904년부터 1910년까지 발행된 대한매일신문, 순조 임금이 하사한 '어정대학유' 등. 무엇보다 중앙도서관 자체가 대구 근대역사의 한 축이다. 그러니 만약 중앙도서관을 없앤다면 근현대 대구 역사의 한 축을 허무는 것이 되고 만다.도서관은 고대부터 대표적인 정보 저장소이자, 사회 구성원 간 소통을 도모하는 문화시설로 역할을 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열람실 중심에서 벗어나 자료실, 복합문화시설로 거듭나고 있다. '라키비움'(Larchiveum), 즉 도서관(Library)과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을 합한 것과 같은 공간과 역할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대구의 역사 자산인 국채보상운동을 널리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리모델링 이후 새롭게 탄생할 시설은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이 합당하다.2017년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대구지역 공공도서관 1관당 연평균 이용자는 35만8천900여 명이다. 박물관 1관당 연평균 관람자는 7만6천400여 명이다. 서울, 부산, 인천, 광주도 양상은 거의 비슷하다. 시민들이 박물관보다 도서관을 친밀하게 인식하는 것이다.이런 점을 고려할 때,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을 리모델링한 뒤 그 명칭을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으로 하고,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관과 중앙도서관 기능이 그 안에서 함께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럴 리 없겠지만 하나의 역사적 자산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다른 역사 자산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

2018-11-14 05:00:00

석민 선임기자

[세사만어] 어느 노부부의 기부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소개된 80대 할머니의 사연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할머니는 88세 병든 할아버지와 함께 평생을 일군 400억원대 재산을 대학에 기부했다. 손수레 과일 장사로 시작해 42년 전 서울 청량리에 처음 건물을 샀고, 그 이후 옆 건물을 계속 사들여 엄청난 부를 일구었다.그러나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우리의 평범한 할머니·할아버지처럼 힘겨움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적은 밑천에 은행 등으로부터 빚을 얻어 재산을 일구다 보니 재산은 늘었지만 원리금 갚느라 고생이 많았다. 할머니도 지난 삶의 모습을 "이자 갚는다고 죽을 둥 살 둥 살았다"고 표현했다.가슴 뭉클하다. 평생을 바쳐 일군 삶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전 재산을 자기 자신과 애지중지하는 혈육을 제쳐놓고 사회를 위해 전부 내놓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따라 하기 힘든 어려운 결정이다. 제발, 기부받은 대학이 할머니·할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잘 받들길 간절히 바란다.솔직히 필자가 꿈꾸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김밥 할머니 등 평생 고생하시면서 자기희생만 해왔던 어르신들이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 걸 보고 감동과 더불어 안타까움을 함께 느꼈다. "1인당 소득 3만달러 시대를 사는 우리가 '기꺼이' '염치없이(?)' 김밥 할머니의 돈을 받아야만 하는가?" 하는 물음이 생겼다.우리 사회는 급속한 경제 발전에 따라 상당한 부를 축적한 수많은 자산가들이 있고, 평범한 생활인이라고 하더라도 내 이웃과 사회를 위한 조그만 나눔이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의 경제생활을 누리고 있다. 기부가 일생의 과업이 아니라, 우리 일상적인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각자의 형편과 사정에 맞는 돈의 기부와 재능 나눔이 생활 그 자체가 되는 그런 사회를 필자는 꿈꾼다. 특정 몇몇 사람의 희생과 헌신에 의해 유지되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모두를 위해 함께 사는 사회를 꿈꾼다.김밥 할머니는 어렵게 모은 재산으로 늘그막에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을 맘껏 누리시다가, 그 유산을 할머니의 뜻을 받들어 자녀들이 사회에 기부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희생과 헌신의 감동보다, 나눔과 봉사가 생활이 되며 모두 함께 행복해 할 수 있는 세상이 진짜 선진사회가 아닐까?

2018-11-13 08:06:39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고시원의 명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이곳에서 산다, 한때는 야망을 품고 이곳에 왔고, 한때는 갈 데가 없어 이곳에 왔으나…가족들을 잊기 위해 산다, 가족들을 잊지 못해 산다….'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차창룡 시인은 '고시원에서'란 시(詩)에서 크고 작은 이산의 아픔과 고독의 등짐을 진 채 이웃과 단절된 삶을 이어가는 고시원 사람들을 이렇게 그렸다.고시원은 한때 청운의 꿈을 보듬었던 희망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외된 사람들이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맨몸 하나 겨우 눕히는 최후의 공간이 되었다. 방 한 칸 제대로 구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외로움과 서러움을 삭이는 쓸쓸한 주거용 둥지가 되었다.고시원은 1970, 80년대 고등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생겨났다. 1990년대에는 50개 이상의 독방을 갖춘 대형 고시원까지 성업을 하며 대학 문화의 한 기형(畸形)을 형성했다. 저렴한 방값과 효율적인 학습 환경 때문이었다. 그런 고시원이 다양한 인간 군상의 마지막 보금자리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전남일 가톨릭대 교수는 우리나라 주거 공간의 변화를 서술한 '집'이라는 책에서 한 칸짜리 집의 원형은 구한말 도시 빈민층의 움막집이라고 밝혔다.그것이 일제강점기 주인집 행랑채와 한국전쟁 때의 변두리 판잣집, 1960년대 달동네와 옥탑방, 산업화시대의 반지하 셋방과 쪽방촌으로 나타났다가, 오늘날 고시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빈곤층의 주거 공간에 안전시설이 확충되었을리가 없다. 서울 도심 고시원을 덮친 불길이 또 고단한 목숨들을 앗아간 연유이다. 정부의 대응도 딜레마이다. 규제를 하자니 방값이 오르고, 묵인하려니 사고가 걱정이다.고시원은 화려한 도시의 뒤안길에 드리운 짙은 그늘이다. 밑바닥 삶들이 매일매일 쓰디쓴 시험을 치르는 곳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가 박민규는 단편 '갑을 고시원 체류기'에서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도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절망의 공간을 익명으로 떠돌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비극을 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2018-11-13 05:0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닥터 둠'과 캐러밴

'위기가 지나가고 한참 뒤에야 비로소 위기임을 알아챈다'는 말이 있다. 대다수 사람이 위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넘겨버릴 만큼 둔감하다는 뜻이다. 한편 국가나 사회, 집단, 개인에게 전달되는 위기의 강도, 시차 등 스펙트럼이 그만큼 다양해 평균율을 구하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기의식이 결핍됐다거나 위기의 실체를 몰라서가 아니라 직면한 현실이 두려워 위기를 부정하는 심리가 작용해 인간 행동 양식을 왜곡시킨다는 해석도 있다. 위기를 역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위기 조장설' 등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최근 눈여겨본 애덤 맥케이 감독의 영화 '더 빅 쇼트'(The Big Short)는 개인적으로 우리 주변의 위기 상황에 대해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 마이클 루이스의 실화 소설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가 소재다. 미국 경제 위기의 진상을 드러내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 거리를 안겨준다. '빅 쇼트'는 주식 등 가치 하락을 전제한 매도(Short) 포지션을 뜻한다.이 소설은 부실 주택저당채권 사태를 미리 내다본 월가의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아이스만, 로버트 벌리 등 실존 인물 4명을 추적해 금융 위기의 배경과 실체를 재조명했다. '닥터 둠'으로 불릴만한 극소수의 비관론자들이 미국 금융 시스템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위기의 스위치를 켜지만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일반 시민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인들마저 폭탄을 옆에 두고도 위기 경고를 무시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복잡한 금융공학으로 변질한 투자 기법 등 시스템에 대한 무지와 맹신은 위기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당시 예민한 후각을 가진 '닥터 둠'은 금융자본의 탐욕이 위기의 본질이자 진원지임을 간파한다. 정부가 월가의 붕괴를 결코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결국 위기의 시그널을 덮어버린다. 부실이 만연한 미국 주택시장의 현실을 확인한 그들은 시스템 붕괴가 멀지 않았음을 예측하고 분노한다. 부실투성이의 금융 시스템을 외면한 채 수익에 열을 올리는 투자은행·신용평가사의 탐욕, 미국 정부의 안이함과 무능이 싱크홀을 만든 것이다. 이달 말 개봉할 최국희 감독의 '국가부도의 날'도 위기론의 관점뿐만 아니라 1997년 IMF 외환 위기 사태를 처음 다뤘다는 점에서 또 다른 관심을 끄는 이유다.'경제 위기는 우리 시대의 문화다'라는 명제가 나올 만큼 이제 위기는 일상 그 자체다. 그러나 위기를 맞기 전까지 아무도 위기의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자 남미 최대 부국인데도 2014년 이후 최악의 경제난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 가난과 내정 불안 때문에 미국행 엑소더스를 시작한 온두라스의 '캐러밴'은 위기 여파가 부른 비극이다.문재인 정부의 제2기 경제 실험이 막 시작됐다. 얼굴은 달라졌지만 정책 기조는 그대로다. 새 경제팀이 위기 국면에 빠져드는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울 구원투수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빅 쇼트'에서처럼 600만 명이 직장을 잃고, 500만 명이 집을 잃는 상황으로 간다면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다. '탄탄한 펀더멘털' 하나만 믿는 우리에게 이런 위기는 그저 강 건너 불일까. '곤경에 빠지는 건 무엇을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경구를 계속 곱씹게 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2018-11-13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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