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오디세이] 꽃잎이 지는 풍경도 아름다운 벚나무

 

대구 중구 남산동 천주교대구대교구청 구내에 있는 에밀 타케 신부가 심은 것으로 알려진 왕벚나무. 타케 신부는 우리나라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처음으로 확인한 사람이다.. 대구 중구 남산동 천주교대구대교구청 구내에 있는 에밀 타케 신부가 심은 것으로 알려진 왕벚나무. 타케 신부는 우리나라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처음으로 확인한 사람이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음~ 둘이 걸어요"

가수 장범준이 부른 노래 「벚꽃엔딩」 가사다. 통기타 선율과 바람에 흩뿌려지는 꽃잎을 감성적으로 담아 쉽게 따라 흥얼거릴 수 있어 해마다 벚꽃이 만개하면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온다.

도심에서 1년에 벚꽃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1주일 정도다. 한꺼번에 확 피었다가 2, 3일의 시간차를 두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5장의 꽃잎은 하염없이 떨어져버린다. 그야말로 '화개작야우(花開昨夜雨·어젯밤 비에 꽃이 활짝 피었더니)/ 화락금조풍(花落今朝風·오늘 아침 바람에 꽃잎이 떨어지네)' 조선 중기 문장가 송한필의 한시 「우음」(偶吟)의 표현이 딱 맞는다. 비슷한 시기에 꽃피는 살구나무, 배나무, 복사나무 등 장미과에 속하는 몇몇 나무 역시 꽃잎이 단숨에 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비처럼 내리는 꽃잎을 화우(花雨) 혹은 산화(散花)라고 한다. 꽃다운 나이에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어버리면 '산화했다'고 쓰기도 한다.

◆벚나무, 일본 국화(國花)로 오해

벚나무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자연산이 아닌 관상용 벚나무는 1906년 무렵 경남 진해와 마산에 일본인들이 들어와 심기 시작했다. 경술국치 이후엔 일본인이 무더기로 한반도에 이주하면서 전국 곳곳에 자리 잡게 됐다. 급기야 궁궐인 창경궁에도 벚나무를 심고 동물원을 만들어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1930년대 군국주의 광풍이 불던 일본에서는 벚꽃의 산화를 일왕과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치는 상징물로 미화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일본은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원들에게 벚꽃의 산화에 빗대 무모한 옥쇄를 강요했다. 가미카제 대원들이 부른 「동기(同期)의 벚꽃」 가사에는 '너와 나는 동기의 벚꽃 흩어지고 흩어져 진다고 해도/ 꽃의 고향 야스쿠니신사 봄의 가지에 피어 만나자'며 젊은이들을 세뇌시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벚꽃놀이를 접한 한국인들이 괜히 벚꽃과 벚나무를 꺼려하고 일본 나무로 오해한 게 아니다.

해방 후 벚꽃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나무를 베어내는 일도 있었지만, 1962년 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도 한라산이라는 식물학자 박만규 당시 국립과학관장의 주장이 한 일간지에 실리고 '벚꽃은 일본 꽃이 아니라 우리 꽃이니 멀리해서 안 된다' 논리가 개발돼 식수를 장려하게 됐다.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 박사는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워싱턴에 있는 아메리칸대학교에 왕벚나무 4그루를 기증했다. 일본 도쿄시장이 기증해 워싱턴 D.C. 포토맥강 주변에 심겨진 왕벚나무를 '저패니즈 체리 트리'라고 부르는데 반발해 '코리언 체리 트리'로 바꿔 줄 것을 요청했지만 당시 미국은 '확실한 증거 부족'을 이유로 들며 대신 '오리엔탈 체리(Oriental Cherry)'로 부르기로 했다는 일화도 있다.

대구대교구청 성직자 묘지의 에밀 타케 신부 묘지. 대구대교구청 성직자 묘지의 에밀 타케 신부 묘지.

◆왕벚나무 자생지 찾아낸 타케 신부

한국의 왕벚나무와 일본의 왕벚나무(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는 꽃이 비슷하기 때문에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두고 두 나라의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한국의 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도, 전남 해남 대둔산 등에서 확인됐지만 일본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는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2018년 9월 국내학자들이 왕벚나무의 게놈(genome)을 완전히 해독해보니 우리나라 왕벚나무는 올벚나무와 산벚나무 사이의 '자연잡종'이며, 일본 왕벚나무는 올벚나무와 이즈반도 고유종인 오오시마벚나무(大島櫻)를 사람이 인위적으로 교잡시켜 만든 '인공교배종'으로 밝혀졌다. 한국과 일본의 왕벚나무가 서로 다른 것으로 규명됨으로써 왕벚나무 원산지 논쟁은 마침표를 찍었다.

그 전에 한국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최초로 찾아낸 사람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프랑스인 선교사 에밀 타케 신부다. 1902년부터 1915년까지 제주도에서 사목하던 그가 1908년 4월 15일 제주도 한라산 북쪽 관음사 뒤 해발 600m 지점의 숲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해 1912년 독일 베를린대학교의 쾨네 박사에게 감정을 받음으로써 왕벚나무 자생지가 한국임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 대구 중구 남산동 천주교대구대교구청에는 타케 신부가 1930년대 유스티노 신학교에 재직할 때 심은 왕벚나무인 일명 '타케 나무'가 있는데 해마다 봄이면 소담스러운 꽃이 활짝 핀다. 타케 신부는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에 안장돼 있다.

대구 수성구 한 아파트단지에 수양벚나무에 꽃이 활짝 피어 있다. 대구 수성구 한 아파트단지에 수양벚나무에 꽃이 활짝 피어 있다.

◆효종 북벌계획과 수양벚나무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벚나무의 종류에는 왕벚나무, 산벚나무, 올벚나무, 개벚나무, 겹벚나무, 처진개벚나무 등이 있다. 왕벚나무는 꽃이 잎보다 먼저 3~6개씩 잎겨드랑이에 모여 피고 꽃자루에 털이 있다. 올벚나무와 함께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종이다. 나머지 벚나무들은 잎이 피어나면서 꽃도 피기 시작한다, 산벚나무는 잎겨드랑이에 2~3개씩 모여 피고 꽃자루에 털이 없고 꽃이 피기 시작할 때 우산 모양 꽃차례를 이룬다. 올벚나무는 꽃받침 턱이 풍선처럼 약간 부풀어 있다. 꽃잎이 5장이면 홑벚꽃, 꽃잎의 수가 10장 넘으면 겹벚꽃이다. 벚나무의 개화순서는 도심의 왕벚꽃이 피고 지면 산벚꽃과 겹벚꽃이 차례로 꽃대궐을 이룬다.

흔히 수양벚나무라고 알려진 처진개벚나무는 개벚나무의 변종으로 전국에 걸쳐 자란다. 수양버들처럼 축축 처지는 가지의 볼품이 뛰어나 조경용 나무로 각광을 받고 있다. 조선시대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와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효종은 북벌계획의 하나로 서울 우이동 골짜기에 수양벚나무를 대대적으로 심게 했다. 수양벚나무는 탄력이 강해 활을 만들고 껍질은 활에 감아서 손을 아프지 않게 하는데 쓸 수 있다고 한다.

전남 구례 화엄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올벚나무도 역시 임금의 강병의지를 받들어 고승 벽암선사가 심은 나무다. 벚나무의 수명은 보통 100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수령이 300년을 넘겼으니 벚나무 세계에서는 장수목인 셈이다.

해마다 4월 중순에 대구 달서구 월곡역사공원에 있는 겹벚나무에 진분홍 꽃이 장관을 이룬다. 해마다 4월 중순에 대구 달서구 월곡역사공원에 있는 겹벚나무에 진분홍 꽃이 장관을 이룬다.

◆대구 월곡역사공원 겹벚꽃 장관

대구경북의 벚꽃 명소가 많다. 대구의 수성못 주변의 '벚꽃 터널'은 해마다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명소다. 1980년대에 개설된 도로의 가로수는 왕벚나무가 많다. 호젓한 영천댐, 대구 가창댐, 팔공산둘레길 등에도 벚나무 경관이 아름답다. 경주는 봄이면 시내 전체가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뒤덮인다. 보문관광단지를 비롯해 김유신 장군 묘가 있는 흥무공원, 불국사 입구, 첨성대와 반월성 주변 도로에서도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왕벚꽃이 지고나면 4월 중순 쯤 겹벚꽃이 뭉게뭉게 피는데 대구 월곡역사공원에는 수 십 그루가 연분홍빛 장관을 연출한다. 그러나 코로나19 탓에 올해도 꽃놀이는 '온택트'로 즐겨야 할 판이다.

벚나무의 열매인 버찌. 벚나무의 열매인 버찌.

벚꽃이 지고 6월 쯤 작고 까만 열매가 열리는데 이름은 버찌다.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에는 들쩍지근한 버찌도 농촌에서는 인기 있는 주전부리였다. 먹고 나면 입안이 온통 보라색으로 물든다. 벚나무의 이름은 열매 버찌에서 유래한 듯하다.

벚나무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를 장황하게 쓴 이유는 우리 벚꽃을 제대로 알아야 일본의 '사쿠라'(さくら)로 오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불멍이나 물멍처럼 떨어지는 벚꽃을 멍하니 바라보는 '꽃멍'에 빠져보는 게 어떨까.

편집부장 chungham@imaeil.com

이종민 편집부장 이종민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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