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만인소' 닮은 경북 유림의 '호소문'

경북 유림단체 지도자들이 1천119명이 연명으로 작성한 길이 80m 짜리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부지 선정 유림 호소문'을 펼쳐보이고 있다. 경북향교재단 제공 경북 유림단체 지도자들이 1천119명이 연명으로 작성한 길이 80m 짜리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부지 선정 유림 호소문'을 펼쳐보이고 있다. 경북향교재단 제공
엄재진 경북본사 기자 엄재진 경북본사 기자

'만인소'(萬人疏)는 1만 명이 연명해 올렸던 상소를 말한다. 조선시대 1만여 명에 달하는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왕에게 청원했던 상소문이다.

이는 당시 여론을 하나의 문서로 만들어 정책에 반영시키려 했던 거대한 '언론 운동'을 의미한다.

감히 누구도 거론하지 못했던 사회적 문제와 시대적 사명을 철저한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한목소리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1만 명의 뜻'은 곧 모두의 '공론'(公論)을 의미하고, 그렇게 인정됐다.

28일 대구경북의 최대 염원인 '통합신공항 이전부지' 선정이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북 도내 유림들이 공동후보지 결단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김영만 군위군수에게 전달했다.

경북의 유림 단체 회원 1천119명이 연명해 길이가 80m에 달하는 호소문은 궤짝 속에 소중히 담겨 전해졌다. 영남 선비 1만 명이 연명한 '만인소'를 임금에게 전하듯 멍석을 깔고, 전통 유림 복장을 갖추고, 예를 다해 호소문을 낭독하고 전달했다

"경북의 유림은 유도가 지향하는 대동 사회 구현을 위해 우리 역사의 굽이마다 선도적으로 앞장서 민족과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경북의 유림들은 510만 시도민의 염원을 깊이 가슴에 담아 간절한 심정으로 호소한다"고 했다.

유림들은 "군위군은 앞으로 다시는 없을 기회인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과 우리 경북의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바람직한 결단을 내려 주시길 간절히 청한다"며 군위 군민들에게 통합신공항 유치를 위한 유림들의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호소했다.

이날 유림들의 호소문 전달 모습에서 1792년(정조 16년)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사도세자 신원 만인소' 이후 19세기 말까지 모두 7차례 이어진 조선 선비들의 목숨을 건 '만인소'를 보는 듯했다.

영남 선비들은 '만인소'의 내용과 연명 과정에서 철저하게 민주적 절차와 정당성을 지켜 왔다. 개인적 사욕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직 '대의'(大義)에 따라 목숨을 내걸었다.

경북향교재단과 경북성균관유도회, 경북성균관청년유도회 등 경북 유림을 대표하는 유림 지도자들의 마음도 그러했다.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에 직면한 대구경북의 쇠락을 돌파할 '대의'를 통합신공항 이전에서 찾아야 한다는 유림들의 간절함과 절절함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날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통 유림 복장으로 군위군청 앞 멍석에 부복한 유림 어르신 100여 명은, 자신들의 절박한 호소가 시대적 과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했으리라.

경북 유림들은 "통합신공항은 지역 경제를 일으켜 대구경북을 역사의 중심에 다시 우뚝 세울 천재일우의 기회이자,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담보할 유일한 희망이다"고 호소했다.

그동안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부지 선정을 둘러싸고, 관·관 갈등과 민·민 갈등이 극한 대결로 치달아 왔다. 그 대결 속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도, 과거에 대한 정당성도 온데간데없었다.

이날 경북 유림들과 함께 경북의 청년, 장애인 단체 등이 잇따라 군위 군수와 군위 군민들의 '공동후보지 유치 신청'이라는 결단을 촉구하는 호소에 나섰다. 지금 대구경북의 '대의'가 통합신공항 이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 '대의'에 목소리를 담았던 '1만 명의 청원, 만인소'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들의 '호소'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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