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김병기의 가벼운 입

김병기 (왼쪽), 태영호. 연합뉴스 김병기 (왼쪽), 태영호. 연합뉴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나는 자유를 선택했다'. 미국 워싱턴 주재 소련 물자구매위원회 소속으로 1944년 미국으로 망명한 빅토르 크라프첸코가 1946년 펴낸 자서전 제목이다. "스탈린 체제가 사회주의와 인륜을 배신했다"고 통렬히 고발한 이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같은 해 5월 프랑스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출간됐다.

우리나라에서도 1948, 1951년 두 번이나 출간됐다. 특히 1948년에 나온 책은 초판 3천 부가 일주일 만에 매진됐으며, 그해에만 3판을 찍을 정도로 독서인(讀書人)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좌파가 장악하고 있던 프랑스 지식계(知識界)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크라프첸코의 책은 미국 정보부가 조작한 거짓말로 가득한 소련 비방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역(逆) 비방은 프랑스 공산당의 잡지 '레 레트르 프랑세즈'가 주도했다. 이에 크라프첸코는 이 잡지를 통해 자신을 비방한 좌파 지식인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렇게 시작된 재판에서 피고인들은 "크라프첸코의 주장에 내포된 의미는 설령 진실이라 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변했다.

이념의 주박(呪縛)이 인간의 정신을 어디까지 타락시킬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들은 크라프첸코가 전하는 소련의 진실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재판부도 크라프첸코가 요구한 손해배상금 5만프랑을 단돈 3프랑(1달러)으로 깎는 모욕적 승소 판결로 사실상 피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도 좌파 지식인과 한통속이었던 셈이다.

국정원 인사처장 출신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북한 김정은 신변 이상설과 관련해 나름의 의견을 밝힌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인을 "스파이"라며 "몇 년 전까지 우리의 적을 위해 헌신했던 사실을 잊지 마시고 더욱 겸손하고 언행에 신중하라"고 비난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정은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라는 소리다.

1940년대 크라프첸코에 대한 프랑스 좌파들의 태도를 빼다박았다. '북한 출신' 태 당선인의 말은 '닥치고' 듣기 싫다는 속내가 그대로 읽힌다. 언행에 신중하지 못하기로는 김 의원이 더 하다. 그는 김정은의 건강 이상 가능성은 0.0001% 이하일 것이라고 했다. 근거는 없다. 태 당선인을 나무라기 전에 자신의 입단속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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