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우리가 영웅이다

김병구 편집국 부국장 김병구 편집국 부국장

#친구 L이 저녁 약속을 못 지키겠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며칠간 좀 바쁘다고 했다. L은 작사 작곡까지 겸해 기타를 치면서 아이들에게 동요를 가르친다. '코로나 사태로 일거리도 없을 텐데, 뭘 그리 바쁠까'라고 생각했다. 혹 바이러스 감염이 겁나 만남을 꺼리는 건 아닌지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중구 동산동에서 한복 짓는 부인과 마스크를 만들고 있었다. 부인이 재봉틀 바느질로 모양을 내면 L이 귀 줄을 붙였다. 재료는 서문시장에서 사온 알록달록한 천과 유기농 면이었다. 밤낮으로 꼬박 3일을 매달렸다고 한다. L은 "마스크 살 돈도, 구할 방법도 없는 쪽방촌 노인들과 어린이집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잘 아는 K법무사의 전화를 받았다. 숙박업 하는 지인이 방을 좀 내주고 싶어 하는데, 관공서와 연결해 줄 수 있느냐고 했다. 뭔 말인지 헛갈렸다. 한참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지인은 코로나로 힘겨운 의료진에게 '내가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깊이 고민했다고 했다. 처음엔 마스크를 대량 구입해 전하려다 여의치 않자 결국 자신이 운영하는 숙소를 제공하기로 한 것. 마침 숙소는 계명대 대구동산병원과 경북대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구역 곁에 있었다.

지인은 이후 타지에서 대구 지원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의료진들을 위해 숙소 한 동을 통째로 내놓았다고 K법무사가 전했다.

#자활을 준비하는 노숙인과 쪽방 주민 7, 8명이 2년 전 만든 모임 '나눔과 베풂'. 이들은 요즘 대구역과 동대구역, 도시철 반월당역을 누빈다. 회원들이 준비한 도시락, 후원받은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들고서.

이들은 방역은커녕 무료급식소 끼니조차 끊긴 노숙자들에게 코로나를 이겨낼 나눔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

우리 주변엔 이처럼 '작은 전사(戰士)'들이 움직이고 있다.

의료 현장에는 방호복 대신 비닐로 몸을 감싼 '의병'(醫兵)들까지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컵라면과 김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이마와 어깨, 발이 쑤시고 상처가 나도 완치 퇴원자가 나올 때면 미소를 머금기도 한다. 가쁜 숨과 구슬땀, 쪽잠으로 심신을 달래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있다.

지원군들도 대구경북을 외롭지 않게 하고 있다.

"진료 의사가 부족하다"는 대구시의사회장의 간절한 호소에 약 300명이 응답했고, 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간호장교 75명이 대구로 왔다. 환자 이송에 손이 달리자, 강릉·익산·용인의 구급 전사들도 동참했다. 심지어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부모님 몰래 한걸음에 달려온 전사도 있다.

달빛동맹 광주의 남구의사회장은 직접 동산병원으로 달려왔고, 광주시와 광주은행, 광주경실련은 물품 등으로 달구벌을 응원했다.

코로나 초기 대구에서 마스크 등을 지원받았던 중국 상하이 현지 교민들은 이번엔 대구를 위해 물품 지원과 함께 성금 모금에 나섰다. 40대 핀란드 교민의 마스크까지 바다 건너 도착하는 등 해외 지원군의 응원 행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병상 부족에 허둥거릴 때 천주교대구대교구는 한티 피정의 집을, 대구은행은 칠곡연수원을 선뜻 내놓았다. 정부가 마스크 구입을 위해 우체국과 마트 앞에 시민들을 줄 세울 때 작은 전사들은 미싱을 돌렸다.

관(官)은 우왕좌왕했고, 민(民)은 차분했다.

의병과 작은 전사들, 지원군으로 대구경북은 외롭지 않다. 이들이 있는 한 코로나를 딛고 봄은 기어코 올 것이다. 이들이 진정한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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