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눈뜬 자들의 나라

김병구 편집국 부국장 김병구 편집국 부국장

대낮 도시에서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며 차 안에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이 멀게 된다. 눈이 멀게 되는 전염병은 급속히 확산되어 도시 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든다. 당국은 전염병 차단을 위해 눈먼 사람들을 치료하는 대신 낡고 더러운 한 병동으로 강제 격리시킨다. 병동에는 눈먼 이들이 수십, 수백 명으로 급속히 늘어난다. 눈먼 사람들의 수용소 격리, 이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군인들, 전염병 억제를 명분으로 대책 없는 조치만 내리는 정치인. 추악한 인간 본성이 낱낱이 드러난다.

1998년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도시에서 발생한 실명이라는 전염병을 통해 인간 본성에 강한 의문을 던진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

후베이성 우한시를 필두로 이 전염병은 중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9일 0시 현재 누적 확진자가 전국 31개 성에서 3만7천198명, 사망자는 811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중증 환자만 6천여 명에 달해 사망자는 계속 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이날 오후 5시 현재 확진자가 27명으로, 이 중 2명은 퇴원했다고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밝혔다. 25명이 격리 병상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대다수 상태는 안정적이고, 중증 환자는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본 89명, 싱가포르 40명, 태국 32명에 비해 확진자 수도 적고 관리도 비교적 잘 되고 있는 편이다.

신종코로나를 가볍게 여기거나 방치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특정인이나 국가를 탓하거나 감염자를 외면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바이러스는 바이러스로 물리쳐야 한다. 신종코로나에 대응할 바이러스는 '나눔과 살핌의 바이러스'다.

그 나눔과 살핌은 국내 자가 및 병원 격리자, 충북 진천과 충남 아산의 격리자, 일본 크루즈선, 중국 현지 교민 등을 향해야 하겠다.

나아가 후베이성을 비롯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노력에 우리도 일조해야 할 때다.

중국은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다. 신종코로나의 중국 전역 확산이 한반도로의 전이와 무관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비롯해 생필품과 의료 장비 등 한국이 통 큰 도움과 나눔의 바이러스를 전파할 적기다.

중국에 불어닥친 신종코로나 위기는 수개월은 몰라도 수년을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렁에 빠진 중국에 손 내밀어 줄 때 그 손은 더 큰 손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이는 중국의 '꽌시(관계)문화'와도 무관치 않다.

눈 먼 자들의 도시 눈 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도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인간성 상실과 절망만을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다.

처음 눈이 멀어 수용소에 들어가게 된 집단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며 도와가는 인간관계의 회복을 역설했다. 특히 그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를 통해 눈먼 자들의 도시를 따뜻한 인간사회로 만들어가는 연대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대구 미르치과와 대구의료관광진흥원 등이 중국 상하이에 나눔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등 대구와 경북이 앞장서 나눔과 살핌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 정부와 민간이 국내외에 나눔 바이러스의 적극적 전파를 통해 이번 신종코로나 사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길 기대한다.

한국이 눈먼 자들의 나라가 아니라 '눈뜬 자들의 나라'임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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