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뭘 잊어달라는 건가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많은 말을 했다. 그중 "대통령 끝나면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가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세간의 반응은 한결같다. "잊어달라고? 왜 그래야 하는데?" 그렇다. 쓰레기통에서 피워낸 우리 민주주의를 다시 쓰레기통으로 처박고, 법치를 파괴했으며, 국민 경제를 거덜냈고,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가리 찢어놓았으며, 북한에 굴종하며 국가안보를 김정은에게 저당잡힌 그 반(反)민주적, 반(反)양심적, 반(反)공동체적, 반(反)역사적 행적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문 대통령의 모든 행적을 잊을 수 없지만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동일한 문제라도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 말과 행동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바꾸는 기만성이다. '윤석열 검찰 대학살'은 이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선 때 "MB(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대통령 및 청와대가 검찰 수사와 인사에 관여했던 악습을 완전히 뜯어고치겠다"고 했다. 2017년 대선 때도 "권력 눈치 안 보는 성역 없는 수사기관을 만들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우리 총장님 윤석열'이 "살아있는 권력에도 똑같이 하라"는 당부를 실천에 옮기자 '윤석열 사단'을 해체해버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검찰의 수사권이 존중되어야 하듯이 장관과 대통령의 인사권도 존중돼야 한다"이다. 그러나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조롱당하고 있다. 인사권 행사로 발탁된 친문 검찰 간부는 "조국을 무혐의 처리하자"고 했다가 후배 검사에게 "네가 검사냐" "조국 변호인이냐"는 반말을 들었다.

또 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2월 박영수 특검의 압수수색을 청와대가 거부하자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방해하고 그것을 통해 탄핵을 모면하고 사법 처리를 모면하려는 행태" "정말 개탄스러운 일"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청와대'는 검찰이 법원의 허락을 받은 합법적 압수수색을 "적법 절차에 따르지 않은 위법한 수사"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이런 이중성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체질화돼 있는 듯하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자 "헌재의 결론이 일반 국민의 상식과 똑같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기각 결정에 대해서는 180도 달랐다.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에 헌재가 어떻게 맞서느냐는 거다. 이런 논리는 마침내 헌재는 선출된 권력은 탄핵할 수 없다는 반(反)헌법적 결론에 이른다.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는 다행히 기각됐다. 하지만 인용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실제로 헌법재판관 2명은 인용 의견이었다. 같은 의견을 가진 재판관이 다수였다면 대통령은 탄핵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줬을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의 정당성이 어디 있을까? 국민이 그들을 헌법재판관으로 선출한 것도 아니다."('문재인의 운명')

이 논리대로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은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을 "국민의 힘으로 가능했다"며 쌍수로 환영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하지 않고 세습이라도 했나? 국민이 지금 문 대통령에게서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기만성의 확대재생산이다. 지긋지긋하지만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