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기후 악당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요즘 호주에서는 붉은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이후 다섯 달째 이어지고 있는 대화마(火魔)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초대형 산불로 뜨거운 열·공기가 상승하면서 형성된 화재적란운(火災積亂雲) 때문에 마른 붉은 하늘에 번개가 치는 현상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호주 산불의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남한 면적의 107%에 해당하는 지역이 산불에 휩싸이면서 5억~10억 마리로 추산되는 야생동물이 희생됐고, 호주 대륙에만 서식하는 코알라도 8천 마리가 피해를 입어 멸종을 우려해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호주 대륙은 다른 대륙에서 볼 수 없는 240여 종의 포유류가 서식하는 생태계 보고다. 하지만 이번 참화로 호주 대륙 생태계가 회복 불능의 상황을 맞을지 모른다는 비관론마저 나오고 있다.

기후학자들은 호주 산불 사태 원인으로 '인도양 쌍극' 현상을 지목하고 있다. 인도양 동쪽과 서쪽 바다의 수온 차가 심해지면서 인도양 서쪽 지역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동쪽 지역 즉, 호주 대륙에는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남극 진동의 반경 약화(남극 상공의 기류 약화)도 원인 중 하나다. 두 현상이 겹쳐지면서 시드니 서부 기온이 48.9℃까지 치솟는 등 호주 대륙은 유례없이 뜨거워지고 건조해졌다.

씁쓸한 것은 호주 산불 대재앙의 원인 중 상당 부분이 인간에게 있다는 점이다. 인도양 쌍극과 남극 진동 약화는 지구온난화의 파생 현상인 탓이다. 사실, 지구온난화에 관해서 호주는 할 말이 없는 나라다. 청정국가라는 세간의 이미지와 달리 호주는 화석 연료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 중 하나다. 지난해 말 발표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순위를 봐도 58개국 중 53번째 나라다. 비영리단체들로부터는 2016년 '기후 악당 4개국'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이때 우리나라도 기후 악당국 중 한 곳으로 함께 지목됐다. 지난해 말 CCPI에서도 한국은 58개국 중 55번째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래서 유례없이 따뜻한 올겨울 날씨를 마냥 좋다고만 할 수 없다. 북극 진동 약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이라서 그렇다. 호주의 일은 결코 '바다 건너 불 구경거리'가 아닌 듯하다. 당장 올봄 산불 걱정부터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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