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3월 2일 만세보에는 '여론이 들끓다'는 제목으로 이런 글이 실렸다.
"요사이 국채를 보상하려고 서울과 시골에서 백성들 가운데 남녀노소 막론하고 의연금을 떠들썩하게 모집하여 지금 모집한 금액만 해도 적지 않은데, 정부 각 대신은 그 차관을 갚기를 강구하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그 빌린 자금 가운데에서 교접비(交接費)라 명목을 정하여 매월 200환씩 태연하게 받아가니…여론이 시끄럽다더라."
뭇 백성이 나서 일제에 진 빚 1천300만원을 갚자며 어린아이의 코 묻은 세뱃돈까지 모으던 시절이다. 그런 엄중한 때에 나라 관리, 그것도 대신들이 빚더미에서 떡고물이나 뒷주머니 사례금(리베이트)처럼 '마음에 불안하지도 않은지' 달마다 꼬박 챙기는 꼴을 폭로한 글이다. 대신이 이러니 나라 꼴은 뒷날 우리가 아는 역사 그대로다.
이런 자료는 110년 지나 2017년 10월 31일, 세계기록유산(세계의 기억)으로 선택돼 세계인도 우리 옛 치부를 알게 됐다. 이는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의 세계기록물유산등재추진위원회에 의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로 이뤄졌다. 지난 1997년, 훈민정음(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이 나라의 첫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고 20년 만이니 경사스러운 일이다.
물론 이런 부끄러운 모습만 등재된 것은 아니다. 모두 2천475건인 기록물 속에 포함된 하나일 뿐이다. 그 속에는 최소한 120건이 넘는 감동적이고 가슴 아린 사연도 있다. 즉 6세 어린이부터 해외 유학생에 이르기까지, 남의 집 밥상(床)이나 나르던 종(奴)노릇의 소년과 바느질 품삯을 내놓은 소녀 등 아이와 청소년 기부 자료가 그렇다.
이 밖에 우리의 세계기록유산에는 14가지가 더 있다.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 팔만대장경판·제경판, 동의보감, 일성록, 5·18민주화운동기록물, 난중일기, 새마을운동기록물, 한국의 유교책판, KBS이산가족찾기기록물, 조선왕조어보·어책, 조선통신사기록물이다.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이 '기억'할 만한 가치를 가진 까닭에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이런 '세계의 기억'인 기록 유산의 나라지만 정치만은 탈(脫)기억이다. 지난날의 기록과 기억을 통한 반성과 새로운 길을 내는 창조적 활용은 뒷걸음질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의 최고 지도자 행적을 보면 더욱 그렇다. 과연 그런 가치를 실현하려는 국정 철학을 갖고 있는지조차도 의심스럽다. 지금까지 물러난 11명 대통령 가운데 여럿이 남긴 오욕(汚辱)으로 점철된 부끄러운 역사는 좋은 증거다.
이들 오욕의 기억과 기록을 남긴 대통령들과 달리, '가보지 않은 길'을 장담하고 그럴듯한 행보였던 문재인 정부가 요즘 걱정스럽다. 분명 공정과 통합, 국민 모두를 위한 지도자가 되겠노라 외쳤던 그였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출범 당시 장밋빛 약속 이행은커녕이다. 앞선 여러 오욕의 지도자들이 권력에 취해 엇길로 빠졌다가 추락한 과거를 기억조차 못하고 되레 그런 길로 접어드는 듯하니 말이다.
특히 조국 사태 이후 청와대와 대통령 친위 세력의 모양새가 고약하다. 청와대 관련 의혹을 캐려는 검찰과의 싸움이 그렇다. '다르겠지' 했던 진보에 대한 기대를 접게 할 만하다. 청와대를 향한 검찰 칼날에, 총장을 차마 바꿀 수 없으니 장관을 앞세워 손발을 자르고 청와대는 법원 발부 영장 집행조차 거부하며 검찰을 뭉갰다. 사관(史官)이 없으니 대통령과 청와대가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면 불안하다. 자칫 잘못되면 뒷사람이 또 하나의 '세계의 기억'으로 한국 역대 대통령 기록물을 등재하려 달려들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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