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막춤 유감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베트남 다낭 여행을 다녀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벤트 코스가 있다. 다낭에서 30㎞ 떨어진 호이안 투본강에서 경험한 이른바 '바구니배 타기'이다. 마른 야자나무 잎으로 만들었다는 둥근 모양의 바구니배가 2인승 관광 유람선으로 변한 것부터가 신기하다. 고즈넉하던 어촌 마을에 한국 관광객들이 밀려들면서 생긴 신풍속도라고 한다.

바구니배에 오르기 위해 선착장에 들어서면 벌써 귀에 익은 노래가 진동하는 가운데 여기저기 한국 사람들로 득시글하다. 수상 투어는 야자나무들이 줄지어 선 좁은 물길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배가 넓은 강 한가운데에 이르면 실로 진풍경이 벌어진다. 고성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빠른 템포의 대중가요 리듬을 따라 베트남 뱃사공들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곳곳에서 관광객이 합세한 춤판이 벌어지고 1달러짜리 팁이 난무한다. 수상 노래방이 따로 없다. 처음에는 그 분위기가 못마땅했다. '뽕짝' 음악에 '막춤'이라는 품격 없는 광경과 팁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그랬지만, 서양인들의 눈에는 이 광경이 어떻게 비칠지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호이안의 대다수 뱃사공들이 라이따이한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쩐지 노래 실력은 물론이고 막춤 솜씨마저 그리 낯설지 않다 싶었다. 호이안은 베트남전쟁 당시 우리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적군의 아들딸로 태어난 숱한 서러움과 모진 박대를 견뎌내고 라이따이한은 그렇게 아버지 나라 관광객의 발길을 모아 온 마을을 명물 관광코스로 바꿔 놓은 것이다. 베트남 고유의 풍광을 한국인 특유의 이벤트로 승화시켰다고 할까. 물론 베트남 정부의 배려와 우리 관광업계의 상술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우리 한국 문화의 미래는 막걸리, 막사발, 막춤 등 토박이 문화에 달렸다는 파격적인 담론을 제시한 적이 있다. 우리 문화의 동력과 지정학적 여건에 관한 분석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대륙 문화의 영향권에 속해 있던 한반도는 100년 전부터 해양 문화를 통해 근대화를 추구하고 글로벌화에 성공하면서 오늘의 한류(韓流)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100년은 대륙 문화도 해양 문화도 아닌 우리의 '막 문화'가 견인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창조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 해답이 바로 '막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대륙과 해양 세력의 상반된 요구를 다 거절할 수 없는 모순적 현실을 토박이 문화로 융합해서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 전 장관은 이것을 한자로 쓰면 잡(雜)이 되지만 우리말로 부르면 '막'이라고 했다. 하긴 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의 국보가 되었고, 한국의 막춤이 오늘날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지 않은가. 싸이의 말춤과 BTS의 몸짓은 노래방과 관광버스에서 벌어지던 그 막춤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근사하게 평가하면 중국의 대륙 문화에서도 서양의 해양 문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우리만의 독창성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도 저도 아닌 한국의 막장 정치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의 우리 정치판은 고삐 풀린 망아지 같다. 막춤에도 일정한 규칙과 가락이 있는 법인데, 이런 막장 놀음은 처음이다. 안면몰수의 천둥벌거숭이 짓을 거듭하면서도 부끄러움조차 없다.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오히려 고개를 쳐들고 대중을 가르치려 한다. 많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일상적 피로와 시름을 달래주는 막걸리 한 사발과 같은 순박한 정치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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