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멧돼지 수난 계절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10년 전 여름 '차우'라는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다. 고즈넉한 마을을 낀 깊은 산속에서 벌어지는 괴물 멧돼지와 전문 사냥꾼들의 한판 승부를 담은 코믹 공포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실제로 야생 멧돼지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올가을 발생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전파의 주범으로 멧돼지가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이 가까운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감염 사례가 잇따라 확인되면서 멧돼지 포획도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남방한계선과 민통선 안에서는 군 병력과 민간 엽사를 동원한 포획 작전이 벌어지면서 하루에 수백 마리의 멧돼지가 사살되기도 한다. 남북 접경지역 멧돼지 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간첩보다 더한 '공공의 적'으로 규정된 탓이다. 북한군에 대한 주적 개념이 사라진 비무장지대(DMZ)에는 멧돼지의 월남을 경계하는 눈빛이 더 날카롭다. 하기는 자연 생태계를 고려해서도 멧돼지 개체수는 적합한 조절이 필요하다. 그러나 멧돼지를 죄다 몰살하고도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숙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조류독감 전파의 범인이 철새라고 하여 새를 다 박멸할 수는 없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모든 게 인간의 탐욕과 생태계 파괴 때문에 생긴 일이다. 맷돼지의 천적인 맹수들을 멸종시킨 것도 사람들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멧돼지가 생태계의 최상위층을 점거하며 이렇게 개체수를 급격히 늘리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개발의 이름으로 서식지를 파괴하고 도토리 등 먹잇감마저 빼앗아가버리니 생존을 위해 농촌 마을은 물론 도심에까지 멧돼지가 출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멧돼지의 무단 침입과 위협으로 간주하고 퇴치 작전을 벌인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먹이를 찾아 나서는 멧돼지의 활동 반경이 더 넓어지는 계절이다. 감염 멧돼지가 남쪽으로 내려오기라도 한다면 돼지열병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영하의 날씨에도 효력을 발휘하는 방역 소독제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ASF 방역에 구멍이 뚫리면서 멧돼지는 더욱 표적이 될 수도 있다. 과거 무장공비 소탕 같은 군사작전이라도 펼쳐야 할지 모를 일이다. 애꿎은 멧돼지와의 전쟁이다. 이래저래 멧돼지 수난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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