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금주령에도 술 마신 까닭은

정인열 위원 정인열 위원

조선시대 대구 사람인 서거정은 1486년 67세 삶의 완숙기에 조정 안팎 이야기 등을 모아 엮은 수필집 같은 '필원잡기'(筆苑雜記)에서 나라의 금주령에 얽힌 흥미로운 글을 남겼다. 지금의 감찰 업무와 언론 역할을 했던 대간(臺諫·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 즉 대관(臺官)이 이를 어기고 예사로 술을 마셔도 아무런 처벌 없이 넘어간 사례로, 오늘날에도 회자된다.

"정절공(정갑손·1396~1451)이 대사헌이 되자…조정 기강을 크게 떨쳤다…금주령이 있을 적에는 대관들은 법을 철저히 지켜 술을 마시지 않았으나 간원(諫院)에서는 술 마시기를 예사로 하였다. 하루는 간관(諫官)이 술을 잔에 가득히 부어 가지고 장난으로 장막 틈으로 대장(臺長·사헌부 장령과 지평)에게 보이니, 대장도 장난삼아 소매로 뿌리쳤는데 술잔이 장막 틈으로 떨어져 대사헌 정절공 책상 앞에 굴러갔다. 여러 대장들은 두려워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대리(臺吏)들도 서로 바라만 볼 뿐 감히 그 술잔을 치우지 못하여 이 술잔이 종일 대사헌 앞에 있었다…정절공이 이르기를 '굴러 나온 틈으로 던져주라' 하니 자리에 있는 사람이 모두 그 아량에 탄복하였다…."

이 일화는 아래 위 눈치 보지 않고 맡은 바 할 일과 할 말을 하는 언론(대간)의 역할을 강조할 때 흔히 인용되곤 한다. 조선은 금주령 위반자에게 최고 사형도 내리며 엄히 다스렸다. 이런 엄한 금주령도 대간에게만 너그러웠다. 이는 늘 목숨을 사선(死線)에 내놓고 왕과 고관에게 서슴없이 제 할 일과 할 말을 하는 이들을 배려했음을 드러낸 사례가 됨직하다. 조선은 그랬다.

사정이 이러니 이들 존재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연산군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왕의 견제를 위해 만든 사간원을 폐지해 언관(言官)의 입을 없앴다. 자신의 잘못을 직언하고 달려드는 신하가 거슬렸을 터이다. 언관의 입을 막고 멋대로 정치를 한 독재로 그는 결국 왕의 자리를 잃었고 죽어서도 왕(王)이 되지 못하고 군(君)에 그친 재앙을 자초한 셈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언로(言路)를 막으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9일로 문 정부 출범 절반을 넘어서지만 언론 정책은 뒷걸음질이다. 법무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그렇다. 이는 기소(공소) 전 형사사건의 혐의 사실과 수사 상황을 공개하지 못하게 했다. 공소 제기 뒤에도 제한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오보 기자의 법무부 출입도 제한케 했다. 한마디로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고 정부 입맛대로 할 모양이다.

12월부터 시행될 법무부 조치는 반정(反正)으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곧바로 사간원이 복구된 사례처럼 아마도 성공보다 실패한, 민주주의 자유 언론의 흐름을 거스르는 문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언로를 막는다고 될 일도 있겠지만, 알지 못하게 국민의 눈을 가린다고 해도 저절로 알게 되는 수도 또한 있게 마련이다. 진실은 그런 것이고, 하물며 지금은 조선의 왕조와도 다른 때임에랴.

무엇보다도 정부가 법의 잣대로 숨기려는 진실을 파헤쳐 언로를 트는 일에 정열과 시간과 땀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금주령을 어기고 술은 마셨지만 할 일과 할 말을 했던 옛 그들처럼 말이다. 게다가 우리 언론은 자유당 시절 대낮 괴한들의 신문사 윤전기 파괴 사건과 1970, 80년대 군사정권 아래의 프레스카드제·기자실 통폐합, 언론사 통폐합 같은 언론 통제의 암흑도 헤쳐 나오지 않았던가. 그런 만큼 진실을 갈구하는 언론에게 이번 법무부 조치는 자칫 옛 금주령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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