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대구의 두 일본인 남녀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두 일본인 남녀가 있었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여럿이다. 1905년에 태어나 1997년 삶을 마감한 노구치 미노루(野口稔) 또는 노구치 가쿠츄(野口赫宙)와 지금도 활동 중인 1927년생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 대구에서 태어났고, 한때 경주에서 삶을 살았던, 글을 쓰는 작가이다. 또 일제강점기의 한국 관련 작품을 썼고, 한국과 일본에 걸쳐 살았지만 한국과 남다른 인연을 이어간 이력을 가졌다.

다른 점도 있다. 앞의 남성은 망한 식민지 나라 사람으로서, 장혁주(張赫宙)라는 한국 이름을 하나 더 가졌다. 한국어, 영어, 특히 일본어로 된 작품을 더 많이 남겼다. 한국 여성과의 사이에 자녀를 두었으나 다시 일본 여성과 결혼했고, 1952년에는 일본에 귀화를 했다. 한국을 비판하고 자신을 낳아준 땅을 싫어했고 마침내 등지고 나라를 버렸다.

일본 여성 모리사키는 17년 머물렀던 한국을 떠나 1944년 귀국, 지금까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장혁주와 달리 한국에 '원죄' 의식을 가졌다. 식민지배 시기, 일본 때문에 죽은 숱한 한국인은 자신을 대신해 희생됐다는 '원죄'에 시달렸다. 그가 태어난 대구나 살았던 경주의 한국을 고향이 아닌 원향(原鄕)이라 불렀다. 1984년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나의 원향(原鄕)'이란 책은 이런 배경으로 탄생한 셈이다.

두 작가의 운명은 일제의 식민지배 결과였다. 생명을 준 땅과 나라까지 버린 장혁주, 그 땅과 나라에 원죄를 느낀 모리사키 가즈에. 스스로의 조국을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여기지 못했던 두 사람. 그러나 세월은 두 사람을 달리 평가하고 있다. 대구(한국)는 장혁주를 잊었고, 그와 그의 뭇 작품은 잊혀졌다. 반면, 대구(사람)는 모리사키를 다시 기억해 그 작품도 머잖아 번역, 출판될 모양이다. 두 사람의 역사가 얄궂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15 광복절 행사에서 말한 것처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였으면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도 없었을 터인데 안타깝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일본과 한창 경제 전쟁을 치르는 지금, 나라 사정을 살피면 과연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는 실현될지, 언제쯤 이뤄질지 답답하다. 안팎에서 어려운 한국을 흔드는 '아무'가 벌써부터 바다 건너는 물론, 안에서조차 여기저기 우후죽순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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