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독수리와 제국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독수리는 수리류 중에서도 몸집이 가장 크며 가장 강한 맹금류이다. 넓고 긴 날개를 쭉 펴고 창공에 날아오르면 지상의 모든 동물들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이라는 위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역의 확장성 때문에 유사 이래 패권을 추구했던 많은 국가와 통치자들이 스스로의 상징으로 삼았다. 서양 문화의 모태인 그리스 문명에서 독수리는 으뜸가는 표상이었다. 독수리는 최고의 신인 제우스 그 자체였다. 로마제국에서 독수리는 초기 건국신화에 등장한 이후 제국의 유일무이한 상징이 되었다.

로마의 저력을 견인했던 군단기를 내건 장대 위에는 어김없이 독수리상이 버티고 있다. 이 군단 깃발이야말로 로마의 명예이자 영광이었다. 로마의 통치력을 상징하는 신성한 영물이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되자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은 쌍두 독수리를 내세웠다. 동·서를 모두 계승한다는 의미였다. 기독교 개종과 함께 서로마제국의 권위를 계승하고자 했던 게르만족의 신성로마제국도 쌍두 독수리 문장을 사용했다.

이 같은 독수리의 상징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제국은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었다.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나치가 차용한 독수리는 광대한 제국과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던 로마의 이미지를 주목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치 독일과 로마제국을 동일시하며 유럽 정복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나치의 방식으로 재현하려던 그들의 광기 어린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현대 지구촌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의 국장에도 어김없이 독수리가 등장한다. 나치의 독수리가 검은 독수리인데 반해 미국의 국조(國鳥)는 흰머리 독수리이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강연장 스크린에 학생단체가 가짜 대통령 문장(紋章)을 띄운 게 논란이 되었다. 머리 둘 달린 독수리가 골프채를 쥔 모습은 러시아 스캔들과 골프에 빠진 트럼프를 비꼰 것이라고 한다. 무상한 게 권력이요, 제국의 운명인가. 민주제도가 포퓰리즘으로 전락하고 코미디언 같은 대통령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독수리도 이젠 사양길로 접어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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