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30년 일본 가이드의 반성문

김교성 경북본사장 김교성 경북본사장

일본의 선전포고로 시작한 우리나라와의 경제 전쟁. 걷잡을 수 없는 확전 양상에서 광복절을 지나면서 차분한 장기전 구도로 가고 있다. 스포츠 한·일전이었다면 한바탕 웃거나 울분을 삼키는 것으로 벌써 끝났을 텐데.

역사 학습에 따라 무조건 미워해야 할 나라. 하지만 지리적, 생리적으로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나라.

일본의 대한민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가 시행된 지난달 초부터 국민들은 일본에 대한 생각으로 혼란스럽다. 일본 조치에 맞서 일본 여행을 가지 말고 일본 제품을 사지 않는 등 '반일'하는 게 애국인가. 평상시처럼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현실적인 사회, 경제 논리로 일본을 바라볼 것인가.

7월 말,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온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패키지여행. 대구 공항에서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으로 향하는 텅 비다시피 한 비행기가 급속히 악화한 한·일 관계를 대변했다.

이 와중에 왜 일본 여행을 강행했을까. 패키지 일행은 몇 개 팀에서 20여 명. 기자가 포함된 팀과 마찬가지로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가이드는 일어일문학을 전공한 30년 경력의 베테랑 여성으로, 일본 역사에 대한 깊이와 배짱이 있었다. 아베 일본 총리의 선거용 벽보 사진을 보고 "아침부터 재수 없다"고 말하는 일행에 대해 그는 "왜 일본에서 아베를 미워하느냐. 아베는 일본인 다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맞섰다.

가이드는 틈날 때마다 일본의 과거 지배 계층이었던 사무라이 역사를 곁들여 일본의 속성에 대해 얘기하며 '반일'이 아니라 '극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쪽발이"라며 일본인들을 미워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교류를 통해 그들을 더 잘 알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는 그동안 '극일'하도록 여행객들을 이끌지 못한 잘못이 있다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비난받더라도 여행객들의 '반일' 사고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아베가 트럼프에 앞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 때부터 비굴할 정도로 머리를 조아렸는데 이는 위기에 빠진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한 조치였다." "아베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아양을 떨었는데, 자존심 버리고 국민을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일본인들은 알고 있다."

그는 아베의 야비한 정치 방식이 밉지만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도 국민을 위해서라면 자존심을 버릴 수 있어야 하고, 현실적인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이드의 '극일론'은 옳고 그름을 떠나 현장에서 먹혀들었다. 공무원, 군인, 의사, 교사, 사업가, 주부 등 다양한 직업으로 짜인 일행은 시의적절하지 않은 여행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정부와 일부 정치권·지방자치단체·언론의 과도한 '반일' 민족주의 조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 경제 전쟁으로 시작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효과를 냈으면 좋겠다.

우리 생활 속에는 일본이 지나칠 정도로 침투해 있다. 카메라를 제외한 가전제품이야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치약, 감기약, 파스, 위장약, 칼, 각종 식품·음료 등 일본 제품이 집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축구 한·일전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번 경제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정치 지도자를 비난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극일'은 무엇인가?

몇 차례 일본에서 홈스테이를 경험하면서 한국산 가전, 통신, 생활용품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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