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승자 없는 싸움

강은경 서울정경부 기자 강은경 서울정경부 기자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명단)에서 제외하면서 전면전을 벌이게 됐다. 한일 관계는 나라 간 경제전쟁으로 비화되면서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연일 우리 경제의 심각한 타격을 우려하는 경고도 쏟아지고 있다. '예견된 사태를 진작 대비할 순 없었냐'는 우리 정부의 무능과 외교 부재를 지적하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순 없다'며 결속을 다지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격화일로에 있다. 불매운동의 주요 대상으로 지목된 관련 소비 제품들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다. 불매운동 장기화 조짐에 일각에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더 손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두 나라가 첨예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피해를 보고 이득인지 분석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손해만 보는 전쟁, 승자에게도 '상처뿐인 영광'만 남을 듯한 이 거대한 전쟁 이면에는 또 다른 '현실'도 있다.

보름 전, 서울의 한 일본 관련 국내 기업에 입사해 2년째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름의 성과를 올리며 잘 적응해가던 친구였다. 하지만 친구는 요즘 일이 없어 힘이 빠진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제품은 일본이지만 담당자는 한국인'이라는 말이 회사 유행어라고 한다. 매출 급감과 일자리 걱정에 대한 자조 섞인 말이자 불안이 내재된 뼈 있는 말이었다.

현실은 막막한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까만 터널에 들어간 것 같다는 친구의 말이 가볍게 들리진 않았다. 국내 기업 상당수가 이처럼 비상경영 상태이지만 기업 차원에서 당장 마련할 수 있는 대안은 사실상 없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불매운동과 별개로 정부는 현실을 냉엄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 대학 한 경제학과 교수는 "국산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지만 소재 개발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며 "결국 일본도 죽고 우리도 죽는 게임이다. 정치적으로는 감정 풀이를 할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라고 했다.

불매운동도 심증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판단하면 결코 쉽지 않고, 수십 년의 산업구조를 바꾸는 것도 하루아침에 쉽게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급한 문제로 인식은 되지만 뾰족한 수가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일본 조치의 대상이 된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대한국 수출액이 일본 총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0.001%, 한국 총수출액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5%." 지난달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했던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의 말에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우리 현실이 있다.

지난 5일 정부는 우리나라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100개 전략 핵심 품목을 선정하고 업종별 자금 지원, 각종 세제와 행정적 지원, 규제 완화 등 지원 대책을 총동원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업계는 이러한 정부의 대책이 시행으로 옮겨졌을 때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당분간 정부가 내놓는 대책과 재정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경제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는 건 정부 스스로 약속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을 때다.

여야 정치인들도 정쟁을 멈추고 오히려 상황을 더 아프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번 사태를 내년 총선에 이용하기 위한 어설픈 진단과 이기적인 선동은 국민들의 힘만 더 빠지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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