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혁산의 교훈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나라를 지키는 군대나 인물을 이를 때 흔히 '간성'(干城)이라고 한다.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는 방패와 성이라는 뜻이다. 특히 군대는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다. 군이 외침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허약하거나 내부 기강이 무너져 제 구실을 못하면 나라가 위기에 처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어서다.

19세기 중엽, 청나라와 영국 간의 아편전쟁은 간성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좋은 역사적 사례다. 1차 아편전쟁이 벌어진 1841년 여름, 청의 도광제는 위내(衛內)대신 혁산(奕山)을 정역장군에 임명해 영국군을 몰아내라고 명령했다. 그에게 무려 7개 성의 대군을 주었고 지급한 군비만도 200만 냥에 달했다.

하지만 기록대로 청군은 전패의 수모를 당했다. 싸움에서 지자 혁산은 영국과 몰래 협상해 광주성 요새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600만 냥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겠다는 약속만 받아내고 사태를 무마한 것이다. 그런데 청 조정에서는 혁산을 위시해 554명을 공신으로 포상했다. 패장에게 포상이라니 믿기지 않은 일이었다.

혁산이 영국 기선을 공격해 침몰시키고는 함대를 불태웠다며 거짓 보고문을 조정에 보냈고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도광제와 청 조정이 그의 거짓말에 속은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큰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아편전쟁의 한 단편이다.

최근 우리 군이 연일 구설에 오르면서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최근 북한 목선에 경계망이 뚫린 삼척·고성 사건에다 해군 2함대사령부 초병의 기강 해이와 지휘관의 사건 조작이 겹치면서 군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 문제가 커지자 야당은 그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냈다. 정 장관의 해임 건의는 올 들어 벌써 두 번째다.

정경두 장관은 지난해 9월 제46대 국방부 장관에 취임했다. 그런데 갖가지 불미스러운 일과 말실수로 그동안 열 번을 사과했다. 장관이 한 달에 한 번꼴로 사과했다면 그는 간성이 아니라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인물이다. 여당이 해임건의안 표결을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 단축 등 꼼수를 부리고 있으나 그렇다고 떨어진 신뢰가 거꾸로 솟지는 않는다. 이쯤 되면 나라를 위해 스스로 거취를 정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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